신은지는 그의 품에 안기게 되었고, 머리에서 물이 흘러내렸다. 한참 후에 기침은 멈췄고, 그녀는 머리 들어 죄를 묻는 듯 그에게 얘기했다. “당신이 왜 여기에 있어?”그녀의 눈은 온천에 빠진 것 때문에 붉어졌고, 긴 눈초리에 물방울이 맺힌 것이, 이 순간 너무 가엽게 느껴졌다.사람에게 그 생각이 들게 끔……박태준은 숨을 넘기고, 얘기했다.괴롭히려고.신은지는 눈이 아팠고, 목청도 아팠다. 온천에서 휴식을 취하려던 것이었는데, 결국엔 물 먹고 죽을 뻔했다. 마음속에 분노가 가득했고, 불만 가득한 말투였다. “당신 어떻게 들어왔어?”그녀는 문을 잠근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박태준이 아무 말도 없자, 그녀는 그를 보았다. 그녀를 멍청하다고 비웃었을 것이다. 그의 태도는 티가 나지 않았다.그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니, 신은지는 더욱 화가 났다. “당신 왜 이렇게 제멋대로야? 요청하지 않았는데 허락 없이 들어오고.”이 온천에 더 이상 있기 싫어서, 그녀는 말을 마치고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두 걸음도 가지 못하고 남자에 의해 다시 돌아왔다.“제 멋대로?”박태준은 몸을 돌려 차가운 입술을 그녀의 가까이에 댔다. 차가운 손이 그녀를 만지고 있었다, “우린 부부야, 같이 온천을 하는 것이 어때서?”신은지는 얼굴을 붉혔다. 몸은 굳은 채 그의 품에 안겼다.두 사람은 옷을 얇게 입고 있었기에, 신체적인 접촉은 피면 할 수가 없었고, 서로 신체적인 변화를 느꼈다……박태준의 그 곳은 팽팽하게 변했고, 예쁜 얼굴을 보니, 그리고 물에 젖은 모습을 보니, 참기가 어려웠다.그는 깊은 눈으로 그녀를 보면서, 그녀의 붉은 입술을 보면서 눈을 감고, 침을 삼켰다. 한참 참았지만 결국에는 그 충동을 참지 못했다,신은지는 이 상황에서 그를 자극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참는다는 것은, 진정한 남자가 아니면, 신체적인 문제가 있는 것 둘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역시, 박태준은 둘 다 아니었다.그녀는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당신 여기 왜 왔어?”“온천 하러.”이 나
”은지 씨” 진 대표 부인이 낮은 소리로 신은지를 불렀다. 신은지는 그제야 정신이 돌아왔고, 그녀의 부름에 깜짝 놀랐다. “어디 불편하세요? 안색이 안 좋아 보이시는데.”신은지는 피부가 희고, 화장을 하지 않았지만, 안색이 안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진 대표 부인은 그저 그녀가 천천히 걷자, 말을 걸었을 뿐이었다.그녀의 얘기를 듣자, 앞서가던 사람들도 발걸음을 멈췄다.신은지가 머리 들자, 진 대표와 눈이 마주쳤고, 그 사람은 그녀를 그윽하게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다시 성실한 척한 모습으로 돌아왔다.안색이 변하는 것이 이렇게 빠를 수가, 그녀 외에 누구도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박태준이 눈살을 찌푸렸다. “어디 아파?”아침에 문을 열 때는 화가 나 있었고, 생기가 있어 보였는데.신은지는 다른 사람이 주시하는 것이 싫었다. 그녀는 머리를 저었다. “아니, 침대가 불편해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것뿐이야.”박태준은 그녀에게서 귀찮아하는 낌새를 눈치챘다. 손을 내밀어 관광버스를 세우면서 입을 열었다. “시간도 비슷한데, 차를 타고 가죠.”신은지는 몇백 미터만 더 가면 되기에, 머리를 저었다. “그럴 필요 없어……”말이 아직 끝나기 전에, 박태준은 그녀 앞으로 다가왔고, 그녀의 손을 잡고 차에 올라탔다. “침대가 불편해? 당신이 신당동에서 나올 땐, 전혀 그런 습관이 없었는데.”비꼬는 말투가 섞였고, 그녀가 거짓말을 하는 것을 눈치챈 모양이다.신은지는 그저 웃음으로 넘겼다. “아무리 좋아하는 양말도, 오래 신으면 버려야 해. 좋아한다고, 평생 둘 수는 없잖아. 냄새가 많이 나는데.”박태준은 눈을 지그시 감았고, 냉정하게 얘기했다. “당신 지금 돌려서 나를 욕하는 거야?”두 사람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고, 몇초 후, 신은지는 갑자기 화제를 돌렸다. “갑자기 발견한 건데, 당신 장점이 아주 많아.”자기 자신을 잘 알고 있고, 그 뜻 역시 잘 이해하니, 절대적으로 비상한 사람이다. 박태준 “……”두 사람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을 때, 진 대표
안았다고 하기보다는, 끌고 간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았다. 신은지가 술을 마신 탓에 지금은 정말 속이 울렁거렸다.계약도 체결했고, 그녀의 임무도 완료했으니, 그 사람은 이젠 각자 길을 가는 사이가 되었다고 할 수도 있었다. 그녀는 자기가 많이 참았다고 생각했다. 그녀도 성격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를 3년 동안 참아줬다. 아무리 성격이 좋은 사람도, 그의 무례함은 참기 힘들 것이다. “우리 계약 관계는 끝났어. 묻는 말에 대답하는 것은 업무 시간 외의 일이야, 난 지금 업무 시간 외의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은 없어. 그래서……”그녀는 그의 손을 뿌리치고 얘기했다.“묻고 싶은 말이 있어도 참아.”신은지는 돌아서서 계단으로 가려고 했다. 그녀의 방은 6층에 있었고, 레스토랑은 2층에 있었다. 그녀는 4층을 걸어서 올라가는 한이 있어도, 절대로 그와 단둘이 있고 싶지 않았다.박태준은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면서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 그녀가 멀어지기 전에, 박태준은 또 한번 그녀를 잡아당겼다.“띵……”이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고, 박태준은 강제적으로 신은지를 안았다. 엘리베이터에 있는 사람과 마주하게 되었다……나유성은 엘리베이터 밖의 분위기가 이상한 것을 보고, 의아해하는 눈빛이 스쳐 지났다. 박태준과 오랜 시간 친구로 지냈지만, 두 번째로 그가 감정을 억제하는 모습을 본 것이다. 온몸에서 뿜어 나오는 냉기는 감출 수가 없었다.그리고 또 한번은……그 생각을 하니, 그는 아직도 손이 아파왔고, 그 후유증이 아직도 남아있었다.하지만, 나유성은 바로 웃으면서 그들에게 말을 건넸다. “태준, 은지.”신은지는 그를 향해 웃었고, 엘리베이터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녀는 더 이상 박태준과 실랑이를 벌이지 않았다. 그녀는 다른 사람에게 이런 혼인 관계를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그리고, 엘리베이터에 있는 사람은 애초에 그녀가 박태준과 결혼하는 것을 말렸던 사람들이다. 그때 그녀가 했던 얘기가 그녀의 뺨을 때리는 기분이 들었다. “짝” 아픔이
신은지는 들어온 사람을 보고 안색이 어두워졌다. “진 대표님.”진 대표는 얼굴이 붉어 있었고,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 한눈에 그가 술을 많이 마셨음을 알 수 있었다.그는 징그럽게 그녀를 불렀다. “은지 씨.”신은지의 눈빛은 방 카드를 쥐고 있는 그의 손에 머물렀다. “설명해봐. 왜 내 방 카드가 당신 손에 있는지.”사실, 설명이 따로 필요 없었다. 무조건 직원이 돈을 받고 카드를 줬을 것이다. 그녀가 이렇게 묻는 것은, 단지 그가 카드를 가지고 온 목적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진 대표의 눈빛은 그녀의 몸에 머물렀다. “은지 씨, 저번에, 저한테 CCTV 가 없는 곳에서 당신을 찾아오라고 하지 않았습니까!”그는 들어오면서 문을 닫았다. 그는 신은지를 향해 걸어왔다. “방보다, 더 안전하고 편안한 곳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박 대표가 600억 원으로 당신을 첩으로 뒀다는 사실이 지금 보니 진짜인 듯합니다.”비록 보수적인 잠옷을 입고 있었지만, 화장을 전혀 하지 않았지만, 신은지는 무척 예뻤고, 눈길을 뗄 수가 없었다.“내가 600억 원은 줄 수 없지만, 내가 이것 하나만은 보장하죠. 박 대표보다 더 아껴줄게요. 일편단심으로, 당신 외에 다른 여자는 보지도 않을게요.”600억 원, 그한테 그 돈이 있다. 하지만 그 큰 액수를 첩에게 주는 것을, 그는 아쉬워했다.신은지는 정말 그의 머리를 열어보고 싶었다. 도대체 안에 어떤 뇌가 들어 있는지 보고 싶었다. 그녀는 한 걸음씩 뒤로 물러섰고, 더 이상 물러날 자리가 없을 만큼 왔다.“당신은 돈도 줄 수 없고, 박태준보다 잘생긴 것도 아니고, 내가 왜 그를 포기하고 당신을 선택해야 하지?”이 얘기를 듣자, 진 대표는 희망이 보였다. 진 대표는 이미 그녀 옆에 다가왔고, 두터운 손을 그녀에게 내밀었다.그녀는 차갑게 물었다. “당신이 이렇게 하면, 박 대표가 화낸다는 것을 몰라? 겨우 계약을 성사했다고 들었는데, 물거품으로 만들 셈이야?”요 며칠, 그들이 계약 관련하여 얘기하는 것을 많이 듣지는 못했지만
박태준 뒤에 진영웅이 있었고, 두 사람은 여기로 걸어오고 있었다. 얼굴만 봐서는 그의 기분이 어떤지 알 수가 없었다.그는 신은지 앞에 와서 멈춰 섰고, 손을 내밀어 그녀의 턱을 살며시 잡았다. 어둡고 차가운 눈빛이, 뺨 맞은 자국이 생기고, 피멍이 든 부은 얼굴에 닿았다. 박태준은, 쩔쩔매면서 감히 그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진 대표를 보았다. 쓴웃음을 지으면서, 낮은 목소리로 얘기했다. “진 대표, 내 사람을 감히 다치게 하다니? 당신 어떻게 수습할 생각이야?”이건, 아직 수습할 여지가 있다는 뜻인가?긴장했던 그는 다시 평정심을 찾았고, 웃으면서 얘기했다. “이익을, 제가 20% 더 양도하겠습니다……”그는 박태준의 얼굴을 살폈다. 박태준이 아무런 반응이 없자, 이를 악물고 얘기했다. “30%, 제가 30% 양도하겠습니다.”그는 가슴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이익을 30% 양도하면, 그 손해가 600억 원뿐이겠는가? 이 여자 때문에 일이 완전히 틀어졌다.박태준은 진영웅에게 명령했다. “가서, 계약서 가져와.”신은지가 이 얘기를 듣자, 가슴은 철렁했고, 절망에 빠졌다……비록 그녀가 이 남자에게 희망을 품은 적은 없었지만, 막상 그가 이 일을 이렇게 이용해서 이익을 더 챙기려는 것을 보니, 저도 모르게 가슴은 얼음처럼 차가워지고, 절망하게 되었다.그녀는 진 대표의 웃는 얼굴을 보았다. 그녀에 대한 경멸과, 잘못에 대한 죄책감이 전혀 없는, 오만한 태도였다.하지만 신은지는 이렇게 쉽게 넘어갈 사람이 아니었다.“박태준, 진 대표가 조금 전에 얘기했는데, 당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첩으로 뒀다고 했어. 전예은의 성격으로 보아, 아마 진 대표에게 억지로 당했을 거야.”전예은이 언제부터 박 대표의 사랑하는 여자가 되었지?진 대표가 둘러댈 핑계를 생각하기 전에, 박태준의 발에 차였다!박태준은 힘껏 찼고, 그로 인해 뚱뚱한 진 대표는 몇 바퀴 굴러갔다. 진 대표는 복부를 움켜쥐고 갑자기 오바이트했다. 그날 밤에 먹었던 음식은 물론, 피까지
”유성, 이건 우리 부부 문제야.”박태준은 화를 억제하면서 얘기했고, 그 뜻은 아주 명확했다. 나유성보고 나서지 말라는 뜻이었다.형세는 이상하게 돌아갔고, 당장이라도 싸움이 터질 것 같이 긴장해졌다. 그 피비린내와, 진 대표의 비명소리가 더 해지면서, 지금 분위기는 일촉즉발 할 것만 같았다.나유성은 태연하게 얘기했다. “태준, 오늘 저녁에 다들 기분이 안 좋은 것 같아서 그러는데, 넌 여기 일을 정리하고, 내가 오늘엔 은지를 먼저 데려다줄게.”그는 호텔 통로 양측을 한번 봤다. 박태준 역시 곁눈질로 한번 훑어보았다. 많은 방 문이 열렸다. 조금 전 그 소란은 실로 많은 투숙객을 놀라게 했다. 투숙객은 방 문을 열고 그 장면을 구경하는 가 하면, 휴대폰을 꺼내어 동영상을 찍는 사람도 있었다……박태준은 차갑게 신은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급하게 나오는 탓에, 잠옷만 입고 있었다. 비록 보수적인 디자인이긴 하지만, 라인은 유혹적이었다.그는 겉옷을 벗어, 신은지에게 입혔다.신은지는 거절하려고 손을 든 순간, 남자가 그녀에게 차갑게 얘기했다. “그렇게 입고 가려고?”조금 전 같은 분위기에서 그녀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박태준의 얘기를 듣고, 그녀는 그제야 정신이 들었고, 그의 눈빛이 그녀에게 쏠린 것을 보고, 의식적으로 나유성의 뒤에 숨었다.박태준은 들었던 손을 내려놓고, 차갑게 그녀를 바라보았다.신은지는 그가 화를 내든, 안 내든 상관이 없었다. “당신 옷은 전예은에게 남겨 줘. 유성 차에 다른 옷이 있을 거야.”박태준의 목소리는 점점 낮아졌다. “유성은 결벽증이 있어. 다른 사람에게 주지 않을 거야.”나유성은 눈살을 찌푸렸다. “나……”결벽증 없다는 얘기하려던 찰나, 박태준과 눈이 마주쳤다.비록 말은 안 했지만, 의도는 분명했다.나유성은 속으로 웃었다. 이 친구가 지금 나를 연적으로 생각하는 것인가?그는 박태준에게 오해받기 싫어서 그를 맞춰주기로 했다. “맞아, 난 결벽증이 있어. 은지 그냥 입어. 네 것이면, 가지지 않는 한
더 이상 얘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두 사람의 호흡은 거칠었다. 신은지는 화가 나서 그런 것이다.신은지는 박태준의 표정을 볼 수가 없었다. 그가 무슨 심정인지 알고 싶지도 않았다. 몇 초가 지난 후, 그녀는 겨우 평정심을 찾고 감정을 억제하면서 얘기했다. “계약은 체결했고, 당신이 한 얘기를 번복하면 안 돼.”대답하는 남자 역시 차분하게 얘기했다. “계약을 이어가지 않았으니, 성공한 것은 아니야. 아니면 당신이 한번 물어봐, 진 대표가 아직 재경그룹과 계약할 의향이 있는지?”진 대표는 당연히 원할 것이다. 체면보다 회사의 비전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가 신은지에게 그런 짓을 했는데, 그녀가 어찌……신은지는 다시 한번 분노했다. “박태준, 너무 염치없이 그러지마.”박태준은 아마 평생 다른 사람에게 이 정도의 욕을 먹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신은지, 당신 예의는 개가 먹었어?”그녀는 차갑게 웃었고, 전혀 거리낌없이 화내면서 얘기했다. “당신이 먹었잖아.”그를 개라고 지금 욕하고 있다!또 몇 초간의 침묵이 흘렀고, 박태준은 감정을 억제하면서 얘기했다. “계좌번호 진영웅에게 보내, 20억 원 이체해 줄 거야. 보상으로 내가 10억 원 더 줄게.”신은지는 알고 있었다. 박태준은 절대로 600억 원에 대하여 쉽게 얘기하지 않을 것을. “10억은 됐어. 당신 나와 먼저 이혼해. 600억 원 빚은 내가 분할로 갚을게.”“당신 나와 조건 얘기 할 자격 있어?”“……”신은지는 침을 삼켰다. 또 이 얘기, 이건 분명 더 이상 가능성이 없음을 얘기해준다!더 이상 얘기 가능성이 없다면, 그녀는 더 이상 그와 얘기하기 싫어 전화를 바로 끊었다.그녀는 눈을 감고, 현재 가지고 있는 돈을 한번 계산해 보았다. 생각할수록 짜증이 났다. 박태준을 지금 당장이라도 주먹으로 때리고 싶었다.세상에 어떻게 이렇게 염치가 없고 짜증난 사람이 있을 수가 있을까?그의 돈도 혹시, 이런 사기 수법으로 번 것은 아닐까?신은지는 박태준의 모든 연락
그녀들이 뜨겁게 그 화제에 대해 논의하고 있을 때, 갑자기 뒤에서 소리가 나서 많이 놀랐다. 그녀들은 반사적으로 몸을 돌렸고, 휴대폰을 든 손을 신속히 뒤로 감췄다. “진……진 비서님.”진영웅은 무서운 사람은 아니지만, 박 대표님의 수행 비서이다. 박 대표는 직원이 회사에서 가십을 떠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진 비서님, 저희가 재무부서에 가서 벌금을 내겠습니다. 이번 일은 못 본 거로 해주세요. 저도 부주의로 그저 봤을 뿐입니다.”진영웅은 눈살을 찌푸리고, 그녀들에게 물었다. “조금 전 그거 무슨 프로그램입니까? 묻는 말에만 답하세요. 다른 얘기는 하지 말고.”“……” 여비서는 속으로 욕을 하면서 얘기했다. “그런 교묘한 일들.”다큐멘터리는 유산되지 않은 문화를 계승하는 일부 수공예 산업을 다루고 있었으며 문화재 복원이 첫 번째 단계였다.진영웅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그 내용이 아니었다. 그는 시종일관 얼굴을 보이지 않은, 그저 손만 찍은, 성별도 그 손의 크기로 구분해야 하는 그 사람이 궁금했을 뿐이다.조금 전엔, 황급히 보기만 했는데, 그 손이 너무 익숙했고, 볼수록 확신이 들었다……이 사람은 은지 씨 아닌가!그는 아이패드를 들고 대표 실로 들어왔다.“박 대표님, 은지 씨가 티브이에 나왔습니다!”박태준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의 첫 번째 반응은 그와 그녀의 관계가 폭로된 줄 알았다. 강혜정의 생일 연회에서 기자를 초대하지 않았지만, 현장에는 많은 사람이 왔고, 새지 않는 바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기사 내리도록 조치하면 돼, 이런 일까지 보고할 필요 없어.”진영웅은 침을 삼키고, 대범하게 아이패드를 박태준 앞에 놓았다. “박 대표님, 한번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만약, 그저 복원에 대한 설명 정도면 그도 그냥 뒀지만, 두 사람이 손을 잡는 장면이 있었다, 요즘은 무슨 영문인지, 이상한 후문도 다 돌고, 분명 그저 실수일 뿐인데, 다른 사람 머리에는 왜 그런 이상한 생각이 드는지 알 수가 없었다.지금 인터넷에서 단독으로 그 장면을 편집
정민아는 팔짱을 끼고는 고연우가 들고 있는 꽃을 무심하게 훑어보았다.“연우 도련님, 이건 또 무슨 의미야?”“공 비서가 오늘이 여성의 명절이라고 했어.”“그래서?”주위는 조용하고 잔잔한 음악 소리가 문을 통해 희미하게 들려왔다.고연우는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정민아, 우리 이혼하지 말자.”너무 진부한 이야기였다. 정민아는 더 이상 이 주제를 논의할 의욕조차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책상 위 담뱃갑을 더듬었다. 옆의 재떨이엔 얇은 층으로 쌓인 담배꽁초가 있었고 그 중 절반 이상이 정민아가 피운 것임을 립스틱 자국이 말해주고 있었다.고연우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정민아가 담배를 피우는 걸 싫어하면서도 막지 않았다.얇게 피어오르는 연기가 정민아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담뱃불은 희미하게 밝아졌다가 사라지며 그녀의 눈을 비췄다. 그 순간, 눈 속의 차가운 무관심이 한층 누그러져 보였다. 은빛 실처럼 가늘게 펴지는 연기 너머로 정민아는 당당하고 제멋대로 미소 지었다. 그리고 정민아가 그렇게 웃을 때마다 고연우는 어김없이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다음 순간 정민아가 말했다.“고연우, 너 이상한 거 아니야?”“그렇지. 이상하지 않았다면 여기 서 있지도 않았을 거야.”고연우는 소매를 걷어 올리며 손목시계를 가리켰다.“시간 됐어. 레스토랑으로 가자. 예약해 놨어.”정민아는 이미 샘플 수정으로 지쳐 있었는데 고연우의 집요함이 정민아를 더욱 짜증 나게 했다. 고연우의 고급스러운 코트가 눈에 들어오자 정민아의 머릿속에 문득 나쁜 생각이 스쳤다.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담배꽁초를 그의 코트에 대고 눌렀다.‘치...’불꽃이 꺼지면서 연기가 피어오르자 타는 냄새가 코트에서 퍼져 나왔다.정민아는 차가운 얼굴로 꺼진 담배꽁초를 옆의 쓰레기통에 던졌다.“꺼져.”고연우는 자신이 입고 있는 코트의 타는 자국은 아랑곳하지 않고 정민아의 손을 잡았다.“이 코트는 가격이 6자리 숫자야. 디자인에서 완성까지 3개월이 걸렸어. 나와 저녁 정도는 함께 먹어줘야 하
고연우는 벨트를 풀며 말했다. 남자는 원래 이런 상황에서 승부욕이 강해지기 마련인데 특히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는 그 감정이 더욱 크게 드러났다.“그런 암흑 같은 분위기는 우리 상황과 맞지 않아.”정민아는 원래 고연우에게 특별한 감정은 없었다. 어둠 속에서 고연우는 마치 사나운 짐승처럼 보였을 것이니 고연우에게 흥미를 느끼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었다.정민아는 그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고연우는 옷을 반쯤 벗었고 단단한 근육이 팽팽히 긴장되었으며 술기운에 물든 피부는 은은한 붉은빛으로 물들어 있었다.공기 중에는 얼굴을 붉히게 만드는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고 마치 곧 무언가가 터질 듯한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가끔 고연우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다.정민아가 말했다.“요즘 운동 안 했어?”고연우는 어이없었다.“?”정민아는 손바닥을 고연우의 가슴 아래쪽에 대고 살짝 눌러보았다. 그러고는 평가하듯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근육이 좀 줄었네.”“...”정민아는 마치 중대한 결정을 앞둔 사람처럼 진지한 표정으로 확신에 찬 눈빛으로 고연우를 응시했다. 고연우는 모른 척하려 했지만, 결국 그녀의 말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는 옷을 다시 입고 정민아의 손을 자기 몸에서 조심스레 떼어내더니 문을 향해 나가며 화가 난 듯 정민아를 한번 매섭게 쳐다보았다.“네가 이겼어.”완전히 흥미가 사라졌다....며칠 동안 고산그룹 대표실이 있는 층은 숨조차 크게 쉴 수 없을 만큼 무거운 분위기에 짓눌려 있었다.공민찬이 급한 서류 묶음을 들고 고연우에게 사인을 받으려 일어서던 순간, 엘리베이터에서 소리가 났다. 그때 최민영이 가방을 들고나와 미소를 지으며 공민찬에게 인사를 건넸다.“공 비서님.”공민찬은 다가서며 말했다.“최민영 씨.”최민영은 사무실 쪽을 가리키며 물었다.“연우 씨 사무실에 있나요?”“최민영 씨, 잠시만요”공민찬은 그녀를 막아섰다.“대표님께서 지금 바쁘십니다. 우선 접대 실에서 잠시 기다리시는 게 어떨까요?” “...”최민영은 눈썹
고연우는 짜증 내며 핸드폰을 테이블에 던지더니 미간을 꾹꾹 눌렀다. “나가세요. 나중에 송씨 아주머니한테 작업복 하나 달라고 하세요.”“도련님, 혹시 어디 불편하세요?”하린은 우유를 들고 테이블 앞으로 다가갔다. “저 예전에 마사지도 배운 적 있는데, 제가...”“그만 나가.” 고연우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그녀의 손을 피하다가 우유를 엎지르고 말았다. 우유가 쏟아지며 더럽혀진 셔츠를 내려다보며 그는 얼굴은 굳어진 채 입술을 오므렸다. 한참 후에야 한 마디 내뱉었다. “사모님께서 보낸 겁니까?”그는 이를 악물고 한 글자 한 글자 뱉어냈다.하린은 고연우의 차가운 눈빛에 그 자리에 굳어진 채 말을 더듬었다. “도련님, 정말로 사모님께 저를 보내셨습니다.”“나가세요. 앞으로 제 허락 없이는 서재에 들어오지 마세요.” 하린은 금수저 남편을 찾기 위해 가사 도우미로 취직했다. 이를 위해 매니저에게 봉투까지 건넸지만 고연우의 사늘한 태도에 더 이상 다른 생각을 품지 못했다. 서재를 나오자마자 난간에 기댄 채 그녀를 쳐다보는 정민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사모님...”하린은 갑자기 발걸음 멈추더니 애써 태연하게 말했다. 아무래도 불순한 의도를 품었던 그녀는 사모님을 보면 본능적으로 불안했다. “도련님께서 드시지 않았어요...”비록 정민아의 표정은 아무런 변화도 없었지만 하린은 괜히 자신을 평가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녀가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을 때 마침 정민아가 입을 열었다. “그럼 몇 번 더 가져다주세요.”하린은 정민아의 말에 담긴 뜻을 단번에 눈치챘다.그녀는 자신이 잘못 이해한 게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였다. ‘도대체 어떤 재벌 부인이 자신의 남편에게 여자를 찾아주는 걸까? 설사 남편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돈이면 충분할 텐데, 그러다 사생아라도 생겨 상속 분배에서 더 많은 문제를 일으키면 어쩔 생각인지.’그녀는 다시 한번 확인했다. “도련님께서 송씨 아주머니한테 익숙해졌는지 저를 좀 꺼리시는 것 같아요. 아
다음 날.정민아와 사연희는 쇼에 대해 논의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민아야...”주소월이었다. 사연희는 정민아의 과거에 대해 완전히 알지는 못했지만 주소월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세상에 자식을 챙기지 않는 엄마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설령 절친이라도 남의 가정사에 깊이 개입하기는 어려웠다. 그녀는 노트북을 들고 일어나 말했다. “초대장 몇 개 빼놓고 못 보낸 것 같은데, 금방 보내고 올게. 쇼에 관한 건 나중에 다시 얘기해.”그녀는 주소월을 흘끗 쳐다보고는 인사도 하지 않은 채 돌아섰다. 정민아도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주소월에게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그녀는 어젯밤에 충분히 더 이상 정씨 가문과 연관되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전달했다고 생각했지만 주소월이 여전히 찾아올 줄은 몰랐다. “오늘 밤에 연회가 있는데, 같이 가겠니?” 정민아가 거절할까 봐 주소월은 서둘러 한 마디 덧붙였다. “너희가 쇼를 열잖아? 오늘 밤 연회에 너와 같은 나이의 사람들이 많이 올 거야. 잠재 고객을 몇 명 발전시킬 기회가 될 수도 있어.”“지금 그 무리에서 잠재 고객을 발전시키라는 말씀이세요?”그녀와 최민영의 갈등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집안이 최씨 가문보다 못한 사람은 그녀에게 다가가는 것을 꺼렸고 반면 집안이 최씨 가문보다 좋은 사람은 고아 때문에 굳이 적을 만들 필요도 없었다. 주소월은 정민아가 당했던 일을 떠올리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민아야, 미안해. 엄마가 너를 데려오긴 했지만 제대로 돌보지도 못하고 너한테 이렇게 상처만 줬네...”“미안해할 필요 없어요. 오히려 제가 고맙죠. 저를 정씨 가문으로 데려와 줘서 고마워요. 그 마을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줘서, 그리고 또... 그 미친놈으로부터 구해줘서 고마워요.”마치 세월의 흔적을 덮은 한 자루의 칼처럼 서서히 그녀의 심장을 파고들었다. “민아야...” 주소월은 울먹거리며 더 이상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그녀는 처음 그
정민아는 문을 열고 지친 몸으로 가방을 내려놓았다. 신발을 갈아신던 중 슬쩍 식탁 위에 차려진 음식을 보았다.“아주머니, 제가 전화드렸잖아요. 저녁 먹고 온다고, 왜 이렇게 음식을 많이 차렸어요?”송씨 아주머니는 2층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도련님께서 아직 저녁을 드시지 않으셨습니다.”고연우라는 말을 듣자 정민아는 더 이상 묻지 않고 뻐근한 목을 주무르며 2층으로 올라갔다. “아, 그렇군요.”“아가씨...”송씨 아주머니가 망설이며 그녀를 불렀다. “도련님께서 아가씨가 돌아오시면 같이 식사하자고 불러달라고 하셨습니다.”“제가요?” 정민아는 걸음을 멈추고 의아해하며 돌아봤다. “왜요?”“도련님께서 기분이 별로 안 좋아 보이셨는데... 두 분 혹시 싸우신 거 아닌가요?”“그 사람이 기분이 안 좋다고 제가 달래줘야 하나요? 그럼 왕자님, 저녁 드세요라고 말이라도 해야겠네요?” 정민아는 피식 웃더니 입가에 맴돌던 웃음이 갑자기 사라졌다. “먹든 안 먹든 마음대로 하라고 하세요. 먹기 싫으면 굶으면 되죠.”송씨 아주머니는 시선을 정민아 뒤쪽으로 옮기더니 표정이 조금 일그러진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도... 도련님...”정민아가 뒤돌아보자 고연우는 난간에 기댄 채 냉랭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방금 샤워를 끝냈는지 머리가 약간 젖어 있었고 외출복을 입고 있었다. 몸에 딱 맞는 셔츠에 검은색 정장 바지를 입은 채 단추는 몇 개 풀려 있었고 옷자락은 허리선에 맞춰 깔끔하게 넣었다. 넓은 어깨, 잘록한 허리에 긴 다리를 뽐내며 그 자리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주변을 배경처럼 흐릿해 보이게 만들었다.고연우는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같이 저녁 먹자.”사실 그는 조금 더 튕기고 싶었지만 계속 자존심을 부리다 이 무심한 여자는 그냥 가버릴 것 같았다.정민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난 이미 먹었어.”“네가 장소 문제를 해결하라고 해서 해결해 줬더니, 겨우 도시락 하나 사주는 거냐? 정민아, 너 정
“난 내가 좋은 사람이라고 한 적 없어.”정민아가 웃으며 고개를 옆으로 하자 덜 말려진 머리카락이 한쪽으로 치우치며 하얗고 맑은 어깨가 그대로 드러났는데 그 위에는 물방울까지 맺혀있어 고연우의 심장을 요동치게 만들었다.그 어떤 뜨거운 것이 가슴속에서 꿈틀거리고 있었고 방안에 가득 찬 정민아의 향기가 그림자마냥 고연우의 주변을 맴도는 탓에 고연우는 흐릿해져 가는 정신을 부여잡으려 주먹을 말아쥐었다.술기운이 뒤늦게 밀려오는 것인지 아니면 저 고혹적인 자세 때문인지 고연우는 머리가 점점 더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그에 정민아는 문을 열고는 손님을 배웅하는 듯한 자세를 취하며 말했다.“내가 불편해지면서까지 다른 사람한테 맞추긴 싫거든. 그러니까 일단 최민영부터 죽이고 와서 사랑 타령해.”“... 다른 건 안 될까?”“다른 거 뭐?”정민아의 산만한 시선이 고연우의 몸에 머물렀다. 사람이 아니라 상품을 보는 듯 곳곳을 훑어보고 있었다.“너한테 나의 흥미를 불러일으킬 만한 뭐 다른 게 있긴 해?”상처가 되는 말은 아니었지만 모욕적인 말임은 틀림없었다.하지만 웃긴 건 정민아의 말에 고연우가 고개를 숙여 제 몸을 보고 있다는 것이다.아무리 봐도 돈과 권력 외에는 정민아가 관심을 가질만한 게 없어 보이는 듯한 몸에 고연우는 고개를 들더니 그래도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그 기생오라비보다는 내가 더 잘생겼어.”정민아가 혹여 듣지 못할까 봐 고연우는 기생오라비라는 단어에 더 힘을 주며 말했다.어려서부터 따라다니는 사람들이 끊이질 않았던 고연우는 저에게도 이렇게 여자의 환심을 사기 위해 어필하는 날이 올 줄 꿈에도 몰랐었다.하지만 정민아는 관심 없다는 듯 입꼬리를 움직이며 말했다.“얼굴 자랑 말고 가서 약이나 좀 사지 그래? 내가 너에 대한 흥미는 약의 자극을 받아야만 생길 것 같거든.”머리에 누가 찬물이라도 끼얹은 듯이 아까의 설렘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도 입안에는 분노 가득한 험한 말들이 서러움과 함께 맴돌고 있었다.“넌 앞으로 그냥 말을 하지 마.”
고연우의 질문에 정민아는 사실대로 대답했다.“대학 때 후배.”그 말에 고연우는 아까 정민아를 보던 임우빈의 이상한 눈빛을 떠올리며 입술을 살짝 깨물고는 물었다.“쟤가 너 좋아해?”“응.”“...”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인정을 해버리는 정민아에 말문이 막혀버린 고연우는 한참 만에야 입을 열었다.“너 저렇게 기생오라비 같은 놈 좋아했었어?”정민아의 성격 때문에 좋아하는지 아닌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임우빈한테 유난히 관대한 것만은 보아낼 수 있었다.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정민아 앞에서 주책맞게 떠들어 댄 게 자신이었다면 정민아는 진작에 제 머리를 비틀어 화분으로 삼겠다고 협박했을 것이다.정민아는 언짢아 보이는 고연우를 보며 말했다.“기생오라비 같은 게 아니라 어린 거야. 턱선이 당신처럼 뚜렷하진 못해 그래서. 그리고 뒤에서 다른 사람 험담하는 건 격 떨어지는 일이야, 고연우 도련님.”고연우 도련님이라는 단어에 올라가는 억양을 붙인 게 아무리 봐도 조롱 같았던 고연우는 냉소를 흘리며 말했다.“턱선이 나보다 뚜렷하지 못하고 어려서 그렇다고? 그럼 뭐 나는 늙었다는 소리야? 그리고 내 앞에서 내 아내를 탐내는 데 내가 얼마나 격을 차려야 한다는 거지? 난...”고연우는 간신히 튀어나오려는 험한 말을 참아냈다.“곧 이혼할 건데 뭘.”“꿈 깨.”혈관 속에서 불꽃이 튀기는 것 같은 느낌에 원래도 나빴던 기분이 더 완벽히 잡쳐버린 고연우는 정민아를 노려보며 말했다.“난 이혼에 합의 안 할 거니까 그런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을 거야. 우리 사이에 사별은 있어도 이혼은 없어.”고연우의 말에 정민아가 문고리를 잡아 내리며 대꾸했다.“그럼 아직 살아있으니까 납골함이라도 직접 골라. 귀신 돼서도 네가 직접 고른 집에 있으면 기분이라도 좋겠지.”“정민아, 너...”고연우가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눈앞에서 문이 “펑” 소리를 내며 닫혀버린 탓에 하마터면 거기에 얼굴을 맞을 뻔한 고연우는 문을 두드리며 소리쳤다.“누가 이딴 식으로 짜증을 내고 들
말을 안 하고 앉아있는 정민아에 기사는 정민아가 슬퍼하는 줄로 알았지만 그렇다고 한낱 외부인이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라 답답한지 기사는 의자에서 앞뒤로 움직이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진심으로 좋아하면 시험하는 게 아니라 마음을 솔직하게 알려줘야죠. 이런 식이면 남자는 점점 더 밀려날 수밖에 없어요. 모든 남자들이 저런 여자를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저런 여자의 유혹을 당해낼 남자도 없어요.”“저도 남자예요, 믿어도 좋아요.”끊임없이 말하는 기사가 귀찮았는지 정민아는 고개를 돌리며 짧게 대꾸했다.“응, 믿으니까 출발해 빨리.”정민아가 고연우를 시험하는 건 그가 저를 사랑하는지 안 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과 주 씨 집안 간의 계약이 성사될 수 있는지를 알고 싶어서 그랬던 건데 지금 보니 이 길은 이미 글러 버린 것 같았다.임우빈은 한 손으로 좌석 등받이를 당기며 고개를 돌려 정민아를 바라보며 그 나이대 특유의 당찬 표정을 하고 말했다.“저렇게 양옆에 여자나 끼고 다니면서 여러 사람 홀려대는 남자는 믿음직스럽지 못하잖아요. 누나 관심을 받을 자격도 없죠. 저는 어때요?”임우빈은 제 이두근을 자랑하며 말했다.“젊고 잘생긴 데다가 체력도 좋고 무엇보다 일편단심이에요. 누나 말곤 아무도 안 봐요, 길가는 암컷 강아지한테 눈길 안 줄 자신 있는데.”“... 너희 엄마는 네가 자기보다 몇 살이나 많은 여자를 집안 며느리로 들이려 한다는 사실 아니?”정민아의 말에 임우빈은 툴툴대며 대답했다.“많이는 아니죠, 고작 세 살인데. 오버는 하지 말죠. 그리고 내가 정말 누나를 집에 데려가면 우리 엄마는 엄청 좋아할걸요. 적어도 앞으로 두 세대는 미모는 보장할 수 있으니까.”임우빈은 정민아의 대학교 후배였는데 1학년 때 운동장에서 정민아를 처음 본 순간 그녀에게 반해버려 결혼하겠다고 호언장담했는데 제대로 들이대 보지도 못하고 정민아가 퇴학을 해버리는 탓에 겨우겨우 수소문해서 정민아가 있다는 경인시까지 와서 대학원을 다니고 여기서 취직
사연희는 잔뜩 감동한 얼굴로 정민아를 바라보며 눈을 빛냈다.“우리 가게 때문에 민아 씨만 고생했네요.”안 그래도 하룻밤 사이에 노 대표님의 생각을 바꿀만한 둘레의 허벅지를 찾는 건 너무 힘든 일인 것 같아 시간이 촉박하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알고 보니 그 시간은 그저 노 대표님이 술을 깨기 위한 시간이었다.사연희가 오해한 걸 알아차린 정민아는 해명하기도 귀찮아져 그냥 사연희를 데리고 나가려 했는데 그때 공민찬이 나오면서 말했다.“고 대표님, 방금 룸까지 다 확인했습니다. 사모님의 머리카락 한 올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그 말이 끝나자 주위의 공기는 순식간에 어색해졌다.고연우는 공민찬을 흘겨보며 언짢은 듯 말했다.“너만 입 달렸어?”“죄송합니다, 제가 괜한 소릴 했네요.”공민찬은 사과 하나는 빨리하며 바로 다시 입을 열었다.“그런데 사모님께 말씀은 하셨어요?”“...”“대표님, 계속 이런 식으로 하시면 사모님 마음 못 돌려요. 사모님이 최민영 씨한테 괴롭힘 당할까 봐 문 앞에 사람까지 세워서 지키시면 뭐해요, 이런 건 대표님이 말씀 안 하시면 사모님은 영영 모르실 텐데요. 그럼 감동도 못 받으실 테고 사모님이 감동하지 못하시면...”그런 공민찬을 보던 사연희는 주먹을 말아쥐며 입술을 깨물더니 정민아에게 귓속말을 했다.“안 되겠어, 나 여기 더는 못 있겠어.”밖으로 나가기 전 사연희는 한 번 더 공민찬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사연희가 만약 공민찬처럼 말 많고 사실만 얘기하며 아픈 데를 콕콕 찌르는 비서를 뒀다면 얼마 참지 못하고 짜증을 냈을 텐데 무표정으로 듣기만 하는 고연우를 보니 허벅지 대표님의 성격은 꽤 차분해 보였다.“입 다물어.”그 차분한 고연우도 더는 듣기 싫었는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로 공민찬 손에 들려있던 차 키를 뺏어 들고는 정민아를 보며 말했다.“가자.”“응.”정민아의 대답을 들은 고연우의 발이 허공에 잠시 머물렀다가 한참 만에 땅에 닿았다.정민아의 조롱 섞인 거절이거나 분노는 너무나 익숙하고 오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