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것 같다는 이 몇 글자를 들었을 때 신은지는 두 무릎에 힘이 빠져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지만 곧 스스로 진정하였다.신은지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고연우를 바라보았다.그녀는 잠시나마 그녀가 직접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아 남의 입에서 듣고 싶었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비틀거리며 그들이 말한 곳을 향해 달려갔다.신은지가 올라가려는데 소방관이 가로막았다.“위험하니 올라가지 마세요.”“방해하지 않을 테니 누군지만 보게 해주세요, 제 남편이...제 남편이 밑에 깔렸어요.”“저희가 사람을 데리고 내려올 테니 옆에서 기다리세요. 위에는 모두 뒤섞인 콘크리트 덩어리여서 헛디뎌지기 십상이에요.”신은지의 안색이 좋지 않자 그 사람은 다시 정중하게 되풀이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저희가 잘 데리고 올게요.”가족들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였지 그 사람은 딱 봐도 이미 죽어 있었다.“제가...”신은지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그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지 물어봐도 될까요.”“어떻게 생겼는지는 못 봤어요. 엎드려 있었어요."소방관은 차마 자세히는 보지 못했지만 등만 보았을 때 피범벅이 된 목과 기괴한 각도의 몸통으로 보아 앞면 역시 참혹했을 것으로 보였다.소방관이 가려고 하자 신은지는 다급히 잡아끌면서 물었다.“저 사람 무슨 색 옷을 입고 있는 거죠?”“진한 셔츠, 검은 정장 바지.”진 한셔츠는 아마 피와 재로 얼룩져 밑색이 보이지 않기 때문일거다.그것은 박태준의 패션스타일이었다. 기민욱은 연한 색을 선호한다. 신은지는 몇 번 기민욱을 만났어도 늘 흰색 셔츠를 입고 있었다. 짙은 색 셔츠라고 들었을 때 신은지는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그녀는 그에게서 확실한 답을 얻으려고 고개를 돌려 고연우를 바라보았다.고연우는 대답했다.“기민욱도 오늘 짙은 색 옷을 입었어요.”신은지는 그곳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 사람 위를 덮던 시멘트 덩어리는 치워져 있었지만 손가락 굵기의 철근 두 개가 몸에 박혀 있는 것을 확인한 의사는 소방관을 향해 고개를 저
신은지는 동의서 마지막 페이지를 넘겼고 떨리는 손을 움켜쥐고 펜을 힘껏 잡은 뒤 재빨리 사인을 했다.막 서명을 마치고 그녀가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간호사가 다시 한 부를 건네왔다.“이건 수술 동의서에요...”연달아 여러 부에 서명하고 나서야 간호사는 마침내 몸을 돌려 들어갔다. 떠날 때 간호사는 재 묻은 그녀의 손을 보면서 말했다.“당신의 상처도 처리해야 될 것 같아요. 재가 가득해서 감염되기 쉬워요.”“네, 고마워요.”그제야 신은지는 틈을 타서 박태준의 상황을 물을 수 있었다.“그는 어때요? 위험하진 않죠?”“환자는 아직 응급처치 중이고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 가족들과 말할게요.”간호사는 그렇게 말하고 서둘러 서명된 동의서 뭉치를 들고 들어갔다.문이 닫히자 신은지는 벽에 기댔고 극도의 긴장 뒤에는 몸이 텅텅 비어버린 것 같은 피로가 몰려왔다.“은지 씨.”어떤 사람이 그녀를 불렀다.신은지는 눈을 뜨고 그녀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오는 진선호를 발견했다.“왜 왔어요?” “걱정돼서요.”그는 그녀의 손에 있는 상처를 내려다보며‘이럴 줄 알았어요’라는 눈빛을 보냈다.그녀의 손은 온통 먼지투성이여서 먼저 물로 깨끗이 씻은 다음 생리식염수로 상처를 씻어야 했다.신은지이 막 말을 하려는데 진선호가 먼저 말을 열었다.“먼저 손을 씻어요, 내가 여기서 지키고 있을게요. 은지 씨가 오면 약을 사러 갈게요.주원씨의 수술이 끝나려면 한참이니 빨리 손부터 씻으세요.”약을 바르는 건 진선호가 도와줬다. 간호사는 교통사고 환자 처리하느라 신경 쓸 겨를이 없어서 신은지는 원래 혼자 바르려고 했지만 진선호는 그녀에게 약을 주지 않았다.신은지는 남자가 면봉을 쥐고 그녀가 아파하랴 조심했다.“안 아파요, 조심할 필요 없어요.”그녀는 양손이 모두 다쳤고 상처는 꽤 컸다. 진선호는 고개도 들지 않았다. “자꾸 이렇게 퉁명스럽게 굴지 마요. 박태준이면 은지 씨가 안 아프다고 하면 정말 안 아픈 줄 알 거예요. 안 아파도 많이 아픈 척 하세요. 그래야 은지 씨를
중환자실.박태준은 조용히 누워있었다. 가끔 기계가 '톡'하는 가벼운 소리를 내는 것 외에는 조용했다.그의 의식은 아직도 그 허름한 아파트에 머물러 있는 듯했다.사느냐 죽느냐, 라이터를 던질 때 절대적인 확신이 서지 않았지만, 그는 이것이 그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폭탄 제조, 인질 납치, 불법 자금 조달, 모든 것은 기민욱이 감옥에서 몇 년을 보내기에 충분한 증거들이었다, 그리고 강오삼과 그 경호원들의 죽음은 비록 기민욱이 손을 댄 것은 아니지만 분명 그와도 관련이 있었다.기민욱이 그를 끌고 같이 죽으려고 할 때 오래 끌수록 불리해졌다.여기는 3층이었고 저택의 높이는 3미터 초반이어서 이 높이면 너무 운이 나쁘지만 않으면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집에는 가드레일이 설치되어 있어 유일한 출로는 복도 끝에서 환기를 위한 창문이었다. 그리고 비를 막기 위해 창문에는 2평 안 되는 플랫폼이 처마로 되어 있었다.중간에 완충 지점이 있었는데 운을 다 쓴다 해도 3, 4미터 높이에서 떨어져 죽을 정도로 운이 나쁘진 않았다.그래서 유일한 걱정거리는 폭탄이었다. 기민욱이 처음 리모컨을 눌렀을 때 박태준은시간을 재고 있었다. 버튼 누르기부터 폭발까지 몇 초의 공백이 있었다.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사람의 두려움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것은 확실히 기민욱이라는 변태가 저지를 수 있는 일이었다.그리고 그 몇 초가 바로 박태준이 살 수 있는 기회였다.박태준은 이미 문가에 다다랐다.“기민욱, 넌 그냥 여기 있어.”그는 기민욱을 이 건물 밖으로 내보내지 않을 것이고 그가 나가더라도 체포될 것이다.하지만 기민욱 같은 사람은 죽어야만 했다.박태준이 문을 닫는 동작을 지켜보던 기민욱은 순간 표정이 어두워지며 리모컨의 버튼을 정신없이 누르며 달려들었다.“형, 도망갈 수 있을 것 같아?”문이 세게 닫히고 박태준은 복도 끝에 있는 창을 향해 달려갔다. 창밖의 어두컴컴한 밤하늘이 한 줄기의 빛, 한 줄기 희망의 빛이 되는 듯했다.그
신은지는 혹시라도 제가 들어가면 환자를 살리는 데 방해가 될까 봐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유리창 너머로 의사와 간호사들의 분주한 모습을 보고 있었다."은지야, 안 들어가고 여기서 뭐해?"나유성의 목소리가 들렸고 이내 제 뒤로 인기척이 느껴지면서 나유성도 신은지와 같이 의료진들이 바쁘게 드나드는 것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왜 저러지?""몰라요."나유성을 보자 신은지는 긴장했던 마음을 조금 가라앉힐 수 있었다. 그리고 나유성 뒤로 고연우의 모습도 보였다. 그냥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여전히 표정 변화가 없는 얼굴임에도 그의 기분은 전보다 나아진 것 같았다."버텨낼 거야. 걱정하지 마."신은지는 나유성이 저를 위로하는 줄 알고 미소를 지어 보이려 했는데 뒤이어 들려오는 말을 듣고 그러길 그만두었다."쟤 엄청 쪼잔하잖아. 그런 놈이 네가 다른 남자 만나는 걸 두고 볼 수 있겠어? 저승 문턱까지 갔다가도 다시 돌아올 놈이야.""..."얼마 지나지 않아 의사가 병실에서 나오며 수심이 가득한 신은지를 향해 말했다."환자분이 아까 깨어나셨다가 다시 잠드셨습니다. 상황이 좋아지고 있다는 뜻이니 조금 더 경과를 지켜보고 일반 병실로 옮겨도 될 것 같습니다.""감사합니다."온종일 졸이고 있었던 신은지의 마음을 드디어 놓을 수 있게 하는 말이었다. 기분에 따라 심장박동도 계속 불규칙적이었는데 보호자 노릇도 몇 번만 더 하면 신은지가 먼저 ICU에 입원할 것 같았다."먼저 들어가서 좀 쉬세요. 여기 있어 봐야 소용없으니까 전화번호만 남기시고 들어가세요. 눈 뜨면 연락 드릴게요."의사는 돌아가라는 말을 하고 다시 문을 닫았지만 나유성은 지금 신은지를 설득해봐야 돌아가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신당동이며 신은지가 전에 살던 아파트며 다 병원에서 꽤 멀었기에 나유성은 신은지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옆에 호텔 있으니까 가서 좀 쉬어. 좀 씻고 잠도 자고. 태준이 아직 얼마나 더 있어야 깨어날지도 모르고 너 지금 안 자면 태준이 깼을 때 쓰러질 수도 있어.
곽동건은 일부러 진유라를 자극하려는 듯 대답했다."네가 원한다면 그래도 돼. 난 상관없어.""꿈 깨요."진유라는 가까이 다가오는 곽동건의 얼굴을 보며 말끝을 흐렸다. 법정에서 상대를 죽일 듯 물어뜯으며 백전백승에 거듭나는 곽동건의 그 특유의 아우라는 진유라도 압도할 정도였다.진유라는 곽동건의 가슴팍을 밀어내며 말했다."좀 떨어져요."진유라가 앉아있을 땐 몰랐는데 일어서니 둘 사이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 숨을 쉬면 바로 진유라의 얼굴에 닿을 것만 같아서 곽동건은 숨 쉬는 것조차 조심하는 중이면서도 진유라 앞에서는 태연한 척 말했다."가까이 서면 말 못 해?""네. 그게..."곽동건의 집요한 시선에 진유라는 목소리가 점점 낮아지다 알아서 성질을 죽이고는 문장의 주어를 '당신' 에서 '나' 로 바꿨다."너무 가까우면 제 입 냄새 때문에 어르신 힘드실까 봐 그러죠."말이 끝나고 고개를 숙이며 마치 키스를 하려는 듯 저에게 다가오는 곽동건에 진유라는 제 얼굴 위로 떨어지는 그의 호흡을 느끼며 두 눈을 크게 뜬 채 고개를 비틀었다."뭐 하는 짓이에요?""입 냄새 안 나. 민트 맛이야.""..."진유라는 어이없는지 웃으며 물었다."익숙하지 않아요 이 냄새?"그리고는 곽동건에게 손님들을 위해 테이블 위에 준비해두었던 사탕을 한 아름 안겨주며 말했다."회사에 사탕이 있더라고요. 방금 하나 먹었는데. 민트 맛이에요 이거."곽동건의 품에 채 담기지 못한 딱딱한 사탕 알들이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두 사람의 발아래로 떨어졌다.둘이 또 시작이라며 이마를 짚던 신은지가 마침 문을 두드리는 사람에 전화를 끊고는 일어섰다.나유성이 소독약이 들어있는 약국 봉지를 들고 문 앞에 서 있었다."상처에 물 묻었잖아. 처치해야지."신은지는 그제야 이미 이미 하얗게 부풀어 오른손을 보았다. 아까도 진유라와 영상통화를 한다고 손에 난 상처는 신경도 못 썼었다. 신은지는 나유성이 들고 온 약을 받아들며 말했다."고마워요.""발라 줄까?""아니요, 혼자 할 수 있
신은지는 바로 말을 하지 않고 박태준이 말을 마치기를 기다렸다. 먼저 이렇게 말을 하는 걸 보니 또 다른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박태준은 몸을 옆으로 뉘이고 침대 끝쪽으로 움직이더니 제 옆을 툭툭 치며 말했다."올라와."공립병원의 일 미터 남짓한 침대라 두 명이 눕기는커녕 팔다리 길쭉길쭉한 박태준 한 명만 누워도 꽉 차는 침대였다. 그리고 이곳은 병원이라 간호사들도 수시로 병실에 드나드는데 환자 침대에 떡하니 누워있는 신은지를 보면 환자와 침대를 뺏는 보호자로 오해받을 수도 있었으니 신은지가 올라갈 리가 없었다.금방 눈을 뜬 탓인지 박태준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힘들다며?""힘들어도 어떻게 거기서 같이 자..."신은지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간호사가 들어오며 말했다."박태준 환자, 체온 한 번만 잴게요."신은지는 옆으로 비켜서면서 하품을 했다. 어제도 박태준 걱정 때문에 한숨도 자지 못했는데 오늘 그런 박태준이 깨어나니 마음이 편해져서 그런지 졸음이 밀려왔다.연속 하품을 하느라 눈물까지 새어 나와 눈시울이 벌게진 신은지의 모습은 한눈에 봐도 안쓰러웠으나 공립병원의 보호자 침대는 쓸 수 있는 시간이 정해져 있었기에 지금은 아무리 졸려도 잠을 잘 수가 없었다.박태준은 입술을 말아 물며 말했다."저 언제쯤 퇴원할 수 있나요?""환자분 몸엔 외상만 있는 게 아니라 내상도 있어서 시간이 좀 걸려요. 그리고 오늘 아침에 ICU에서 나오셨으니까 일단은 퇴원 생각 마시고 안정 취하시는 데만 집중하세요.""그럼 병실은 바꿀 수 있나요? 아니면 침대라도 좀 넓은 거로 바꿀 순 없을까요?"간호사는 박태준의 침대가 좁아 보이지는 않아 거절의 뜻으로 말했다."병원 침대는 다 사이즈가 똑같아요. 100키로 되는 환자분들도 다 사용 가능한 침대에요."간호사의 맑은 눈망울을 본 박태준은 잠시 말을 잃었다. 이렇게 말을 곧이곧대로 알아듣고 융통성이 없는 사람은 처음이었다.박태준의 당황하는 모습이 웃긴지 신은지는 눈웃음을 지으며 또 하품을 했다.연달아 몇 번
진유라는 생각할수록 화가 나며 정말 진지하게 곽동건이 당나귀 띠는 아닌가 고민했다. 진유라가 뭐라 하든 사람이 융통성 하나 없이 안 된다는 대답만 해 진유라는 몇 번이고 반항했지만 결국 그 신경전에서 패하고 말았다.둘의 팽팽한 접전 끝에 진유라는 결국 곽동건 사무실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됐지만 자신이 편하지 않으면 상대도 편하게 두지 않는 진유라가 빠르게 사무실에 하나뿐인 3인용 소파를 차지하고 누워 곽동건은 할 수 없이 밤새 파일을 봐야만 했다.진유라는 어디 한번 해보자는 듯 곽동건을 바라봤다. 흥, 누가 더 밤 잘 새나 한번 보자고.하지만 표정 변화라곤 전혀 없는 곽동건의 얼굴은 밤을 새웠음에도 눈가가 조금 파래진 것 빼고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리고 오자마자 바로 박태준과 육영 그룹이 불법적으로 자금을 모으고 있는 일에 대해 열띤 토론을 펼치는데 그 모습이 누가 봐도 밤샌 사람의 모습으론 보이지 않았다.곽동건은 박태준을 향해 말했다."증거는 찾았는데 돈은 이미 해외계좌로 보내진 다음이라 가져오려면 쉽진 않을 것 같습니다. 그 비워진 자금을 채워야 여론이 잠잠해지는데 지금 육 씨 집안에서 그 돈을 채울 능력이 안되고 또 대표님이 지금 육영 그룹 총수신데 하필 기민욱까지 죽어서 저들이 대표님을 물고 늘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그 정도는 이미 박태준도 예상했었기에 담담히 대답했다."그래."비즈니스 얘기를 끝낸 듯 보이자 신은지가 곽동건을 불러세웠다."곽 변호사님, 진짜 단순히 제가 유라 지켜봐달라고 해서 그렇게 옆에 두신 거예요?"곽동건은 아직도 화가 나 있는 진유라에게로 시선을 옮긴 채 덤덤히 대답했다."아니요."그에 진유라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곽동건은 설명을 덧붙였다."제 마음도 모르고 매번 다른 사람 만나니까 제가 이렇게 안 잡아두면 또 한참 동안 못 볼 것 같아서요. 그리고 다시 볼 땐 이혼소송 변호사로 나서게 될까 봐 그런 거죠."전에 몇 번이나 고소당할 뻔했던 일들 때문에 진유라는 곽동건과 최대한 마주치지 않으려 했
박태준은 신은지가 제가 환자라고 안쓰러워하는 틈을 타 빨리 관계를 확실히 하고 싶어 했다. 그래야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았다.하지만 어떤 말들은 특정된 분위기에서만 나오지 그 분위기가 아니면 쉽게 뱉을 수 없는 말들이 있다.박태준이 쳐다보고 있어 불편한 듯 시선을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그녀의 시선이 멈춘 곳은 2인실 또 다른 침대에 누워 구경거리라도 난 듯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두 쌍의 눈이었다.같은 방을 쓰고 누워있는 건 열여덟, 아홉쯤 돼 보이는 여자 아이였는데 보호자도 비슷한 나이 같아 보였다. 신은지와 박태준의 얘기를 재밌게들 듣고 있었는데 신은지와 눈이 마주치니 그들은 바로 시선을 거두고 딴청을 피웠다.박태준도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바라던 결과는 아닐 것 같아 더 말하지 않고 얼굴에 불만을 가득 드러낸 채 핸드폰으로 뉴스를 찾아보고 있었다.핸드폰 화면을 찍어 누르며 빠르게 내리는 모습이 그가 화났음을 대변해주고 있었다.만약 화면이 핸드폰의 눈이었다면 팔백 번은 더 멀었을 것이다.기민욱이 박태준을 노리고 아파트 단지에 화약을 설치해놓았다는 기사가 이미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장소는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었지만 경찰, 소방대원, 구급대원 할 것 없이 총출동한 사건 사고이기에 돈으로도 막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인질, 화약, 폭파 모두 사람들의 마음을 동하게 할 만한 단어들이었는데 그 피해자가 하필 요즘 제일 유명한 육영 그룹 대표였으니 기사는 발표되자마자 삽시간에 퍼져나갔다.사고가 난 아파트는 3분의 2 정도가 불에 타버려 보기에도 상황이 아주 긴급해 보였다.육영 그룹의 자금이 불법적으로 모은 것이라는 확정기사는 아직 나지 않았지만 기사 하단의 댓글들은 다 그쪽으로 여론이 기울었다.[다 인과응보라니까. 그러게 돈을 열심히 일해서 벌었어야지, 불법적으로 꿀꺽 삼키려고 하니까 벌을 받는 거야.][육정현이 불타 죽지 않은 거 보니 하느님이 봐주셨네.]기민욱의 신원이 아직 밝혀지지 않아 이런 얘기들을 하는 거지 만약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