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혁은 애꿎은 침만 삼킬 뿐이었다.사실, 이 순간만큼은 정말 진시아와의 과거를 뒤로하고 죽음을 쫓는 그녀의 마음을 이루어 준 뒤 박연희와 잘 살고 싶었다.하지만 결국 조은혁은 박연희의 곁을 떠났다.쓰레기들의 손놀림 속에서 강요받고 고통스러워하던 진시아의 모습이 그의 머릿속에서 시종일관 지워지지 않았다.그렇게 박연희는 그가 떠나는 것을 묵묵히 지켜보았다.한참이 지나 그녀는 다시 진료실로 돌아와 독일 의사 앞에 앉았다.“의사 선생님, 방금 한 말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겠어요?”의사는 그녀를 매우 동정했다.그는 검사 결과를 박연희 앞에 살짝 내려놓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태아의 심장이 잘 발달하지 않아 아이를 생각해서라도 낙태 수술을 하는 것을 권합니다.”박연희는 고개를 숙인 채 검사 결과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심장 발육이 잘 안 됐다고...그녀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의사에게 물었다.“괴롭나요? 심장이 좋지 않으면... 아이가 괴롭나요?”의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박연희의 얼굴에는 슬픔이 어려 있었고 그녀는 한참 동안 한 번, 또 한 번 수없이 훑고 나서야 그 보고서를 내려놓을 수 있었다.이윽고 박연희는 약지의 다이아몬드 반지를 살며시 뺐다.그것은 5캐럿짜리 다이아몬드로 가치가 적어도 20억은 되는 매우 귀중한 보석이었다. 박연희는 의사에게 그 다이아몬드 반지를 건네주며 넋이 나간 듯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만약 제 남편이 묻거늘 아이는 건강하다고 해주세요... 네?”의사는 의덕을 지키고 싶었으나 그 다이아몬드는 워낙 희귀한 보물이라서 아무도 유혹을 이겨낼 수 없었다.결국, 의사는 선물을 받고 박연희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하며 그녀에게 거짓 검사기록을 만들어주었다... 안에 있는 모든 데이터에 따르면 이 아이는 매우 건강한 여자 아기이다.진료실을 나서고 텅 빈 복도를 걷는 그녀의 얼굴은 온통 눈물투성이 이다.이 아이는 조은혁이 강요한 것이다.하지만 임신한 뒤로 그녀는 단 한 번도 이 아이를
셋째 날 이른 아침이 되어서야 조은혁은 집에 돌아왔다.그가 아파트로 들어서 신발을 갈아 신을 때, 집안의 고용인이 다가와 작은 소리로 그 말을 꺼냈다.“대표님께서 안 계시던 요 며칠 동안 사모님께서 항상 혼자 울고 계십니다. 정말 너무 울어서 눈을 못 쓰게 될까 봐 걱정될 지경이었다니까요.”고용인의 말에 멈칫한 조은혁은 잠시 후 외투를 벗어두고 침실로 향했다.이른 아침 침실에는 커튼을 통해 한 줄기 희미한 빛만이 부드럽게 들어와 흰 침대를 비춰주었다.하민희는 박연희의 품에 안겨 곤히 자고 있었는데 홍조를 띤 빵빵한 볼이 무척 귀여웠다.그 광경을 본 조은혁이 조심스레 다가가 침대 옆에 걸터앉자 박연희도 잠에서 깼다.그녀는 조용히 그를 응시하며 그의 턱에 미처 긁어내지 못한 푸른 수염 자국과 그의 몸에 걸쳐져 있는 3일 동안 갈아입지 않은 셔츠를 보았다.조은혁은 옷차림에 매우 신경을 써서 매일 옷을 갈아입는다.그런데 요 3일 동안 옷도 갈아입지 않고 진시아의 곁을 지키고 있었던 것을 보면 진시아가 그의 마음속에서 차지하고 있는 분량을 알 수 있다. 그럼 그녀 뱃속의 이 무고한 아이는 뭐가 된단 말인가...박연희는 한때 귀신에 씌기라도 한 듯 미쳐 있었던 그 얼굴을 바라보며 생각했다.이젠 정말 모든 것을 끝내야 할 때가 왔다고.박연희는 여전히 그 어떤 소란도 피우지 않고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그러자 당황한 조은혁은 손을 뻗어 그녀의 눈물을 가볍게 닦아주며 그녀를 달랬다.“다시는 가지 않을게. 이미 진시아에게 아주 분명하게 말해뒀어. 연희야, 날 믿어줘. 앞으로는 정말 가정을 중시하고 너와 아이들을 잘 돌볼 거야.”그는 애석하게 손톱으로 그녀의 얼굴을 가볍게 스쳤다.그러고는 참지 못하고 박연희의 아랫배를 툭툭 만져주었다. 이젠 하민희에게마저 애정이 생긴 것인지 그 작은 얼굴을 보고 있자니 볼수록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민희는 잘 키우면 진범이의 아내로 딱 맞겠네.”그러자 박연희는 곧바로 등을 돌리고는 싸늘한 목소리로 반박했다.“우리
박연희는 음식을 먹을 때도 우아한 모습으로 조금씩 떼어먹었다.조은혁이 한참 서 있었지만 그녀는 별로 아랑곳하지 않고 그를 냉담하게 대했다.그러나 그녀가 냉담할수록 그는 더욱 가까이 가고 싶어졌다.조은혁은 샤워를 마치고 하얀 유카타만 입은 채 나오다가 박연희의 곁에 앉아 그녀의 몸을 살짝 잡았다. 그러나 박연희가 가볍게 그의 손을 뿌리치자 그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고는 소파에 몸을 기댔다.이윽고 시가를 꺼내 늘씬한 손가락 사이에 끼웠지만 냄새만 맡고 불을 붙이지는 않았다.잠시 후, 조은혁은 시선을 박연희에게 돌린 뒤, 마치 평범한 부부처럼 말을 꺼냈다.“다음 달 베를린에 있는 유명한 귀족의 아들이 결혼하는데 결혼식도 엄청 성대하게 치러지고 Y국 왕실도 참석한다고 들었어. 그때 너도 나와 함께 참석하자... 기분도 풀 겸 가는 거지.”여전히 우아한 자태로 음식을 곱씹던 박연희의 손가락이 흠칫 떨렸다. 길게 늘어뜨린 속눈썹이 눈동자를 가려 그녀의 감정을 읽을 수가 없었다.그녀가 원하지 않는 줄 알고 설득하려던 찰나, 뜻밖에도 박연희는 그의 제안에 동의하며 방긋 웃어 보였다.“좋아요. 돌아온 지 이렇게 오래되었는데 아직 제대로 놀러 간 적이 없잖아요.”환히 웃는 박연희의 얼굴에는 청순함과 순수함이 어려 있어 매우 귀엽고 아름다웠다. 순간, 저도 모르게 잠시 감정이 북받친 조은혁은 예상 밖으로 갑자기 몸을 기울여 그녀의 귓가에 대고 고백했다.“연희야, 요 며칠 네가 너무 보고 싶었어. 예전에는 그저 풋풋하고 어리숙하다고만 생각했는데 지금은 여성스러움이 더해졌으니 얼마나 좋은지 넌 모를 거야.”박연희는 여전히 담담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이 뒤늦은 사랑 고백은 길 가던 개가 들어도 웃음을 터뜨릴 것이기에 박연희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저녁 무렵, 조은혁이 집을 나섰다.박연희는 그가 진시아를 보러 간 줄 알고 있었지만 뜻밖에도 조은혁은 공항에 가서 장씨 아주머니와 진범이를 데려온 것이다. 그들을 태운 차가 아래층에 도착하고 집안의 고용
밤이 깊어 오고 고용인들도 모두 잠이 들었다.물론 아이들도 마찬가지이다.박연희는 밤늦게까지 바삐 돌아치다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목욕하고 피부관리를 시작했다. 박연희가 화장품을 바를 때 조은혁은 결국 참지 못하고 침대에서 내려와 그녀의 얇은 몸을 껴안고는 그녀의 목 뒤에서 가볍게 냄새를 한 모금 맡았다.이윽고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가 묵직하고 어두웠다.“한참 동안 바른 것 같은데 이리 줘봐. 내가 해줄게.”그러자 박연희가 그에게 에션셜 오일을 건네주었다.조은혁은 손바닥으로 그녀의 몸을 노닐며 만져야 할 것과 만지지 말아야 할 것을 가리지 않고 전부 손을 댔다.박연희는 그의 품에 기대어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느긋한 모습으로 누워 마치 평범한 아내처럼 남편에게 일상적인 이야기를 했다.“원래도 이 아파트는 지금이 살기 딱 좋았지만 이제 아주머니와 진범이까지 들어왔으니 공간이 부족할 것 같아요. 예전에 장씨 아주머니가 나를 많이 도와주셨으니 저는 그녀를 박대하고 싶지 않아요. 장씨 아주머니가 다른 사람과 침실을 비집고 쓰게 하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에요.”그녀는 큰 눈을 뜨고 남편을 뚫어지라 바라보며 그의 손에서 오일을 되찾은 후 다시 입을 열었다.“우리가 지금 귀국하지 않는 한, 이 대가족이 이렇게 한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는 말이 만약 국내에 전해지기라도 한다면 또 제가 진시아보다 총애를 받지 못한다는 말과 당신이... 내연녀를 품어준다는 말이 나올 거예요.”그러자 조은혁은 가볍게 피식 웃으며 아내의 보드라운 얼굴을 어루만졌다. “앞으로는 절대 안 간다니까. 그런데... 네 말이 맞아. 이렇게 많은 인원이 함께 있는 건 말이 안 돼. 내일 정하자. 내일 김 비서한테 별장에 데려가 달라고 해. 공사가 끝나고 이미 한 달 넘게 지났으니 안주인이 시찰할 일만 남았지.”박연희는 그제야 만족하고 다시 입을 열었다.“집안일이 많아 사람이 더 필요할 수도 있지만 아무리 많아도 장씨 아주머니가 그 안에서 발언권이 있었으면 좋겠어요.”이에 조은혁이 몸을 기
그러자 박연희는 벗어둔 선글라스를 다시 쓰며 빙긋 웃고는 별장 입구를 향해 걸어갔다.오후, 햇볕은 따스하고 좋았지만 김 비서는 왠지 등 뒤가 서늘한 기분이었다. 박연희의 꼿꼿하고 가녀린 뒷모습을 바라보던 김 비서는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대표님을 향한 사랑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나요?”박연희가 걸음을 잠시 멈추었다.그녀는 등을 돌리지 않은 채 고민하는 듯 잠깐의 침묵을 지키더니 이내 김 비서에게 답했다.“아니요.”말을 마치고 그녀는 별장 문을 나섰다.별장 입구에는 번쩍번쩍한 검은색 캠핑카가 멈춰서 있었고 박연희가 별장을 나서자 덩치 큰 독일 운전사가 일찌감치 문을 열어줬다.박연희는 차 안으로 들어가 허리를 꼿꼿이 펴고 자리에 앉았다.검정색 캠핑카가 베를린대로 위를 달리고 있는데 이따금 차창으로 빛이 스며들어 차 안을 알록달록 비춰주었다. 이렇게 조용하고 넘쳐흐르는 분위기는 마치 그들이 처음 데이트를 하던 그 시절의 모습과 흡사했다.그녀는 조은혁과 함께 차에 앉아 있었다.그리고 조은혁이 그녀의 손을 잡았을 때 박연희의 심장은 두근거리다 못해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기세였다.불과 몇 년 전의 일이었지만 현재 그들의 관계에는 수없이 많은 원한만이 남았을 뿐이다.한때 조은혁을 얼마나 사랑했다면 지금은 그만큼 그를 원망하고 있다......아파트로 돌아온 박연희에게 고용인 한 명이 다가와 말을 전했다.“대표님께서 서재에 잠깐 들르라고 당부하셨습니다.”박연희는 핸드백을 다른 한편에 버려두고는 곧바로 서재로 향했다.완전히 닫히지 않은 서재 문을 넘어 갈색과 짙은 녹색을 위주로 차분하고 분위기 있게 연출한 조은혁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새하얀 셔츠를 입고 검은 머리를 올백으로 빗어 넘긴 데다 얼굴까지 반듯하여 짙은 색의 가구에서 특히 눈길을 끌었다.그는 소파에 기대어 서류를 보고 있다.티테이블 위에 시가 한 상자를 놓았지만 한 개도 건드리지 않은 모양이다.이윽고 박연희의 발걸음 소리를 들은 조은혁이 입구를 향해 손을 뻗었지만 그는 여전히 고
오후의 햇살이 나른하게 집안을 비췄다.박연희는 낮잠에서 깨어났지만 두 아이가 아직 깨어나지 않은 탓에 그녀는 조용히 거실에 앉아 무심코 잡지를 뒤적여 보았다... 그런데 그때 문어 구에서 고용인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사모님, 김 비서가 손님을 데려와 사모님을 뵙고 싶다고 하십니다.”박연희가 손가락을 꽉 움켜쥐었다.이어 그녀는 잡지를 내려놓고 문어 구를 향해 외쳤다.“화원 안에 있는 응접실에서 만난다고 전해요.”...응접실 안.운전사처럼 보이는 사람은 가시방석에 앉은 듯 안절부절못했다.그가 바로 김 비서가 데려온 진시아 쪽의 사람인 것이다.김 비서는 그에게 오늘 만날 사람은 조 대표의 법적 사모님이라고 소개해주며 그가 사모님의 분부대로 하기만 하면 큰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알려주었다.자녀들 모두 해외에서 공부하고 있는 탓에 마침 큰돈이 필요했던 것이다.대략 10분 정도 지났을 때 박연희가 응접실에 들어왔다.그녀가 들어오자 고용인은 기다렸다는 듯이 루이보스티를 건네주며 미소를 지었다.“혹여나 사모님께서 차가워하실까 2분 더 끓였습니다. 사모님 뜨거울 때 빨리 드세요.”박연희는 찻물을 꿀꺽꿀꺽 마시고 고용인에게 잔을 돌려주었다.운전기사는 묵묵히 그 광경을 바라보며 이곳이 진시아가 사는 곳보다 더 사치스럽고 박연희도 진시아보다 훨씬 젊고 보기 좋다는 것을 발견했다. 정실부인을 감탄하던 운전기사가 떨리는 입술로 먼저 입을 열었다.“사모님, 하실 분부가 있다면 직접 저한테 맡기십시오.”그러자 박연희는 신문지 한 장을 탁자 위에 가볍게 엎었다.[동양 재벌 조은혁, 부인과 결혼 피로연 참석]운전사가 놀라 두려운 기색을 드러내자 이때 두툼한 돈다발이 신문지에 깔렸다.“이 신문을 진시아 씨 식탁에 올려놓고 결혼식 날 기사님이 직접 차를 몰고 XX 길로 데리고 가면... 이 돈은 기사님 돈입니다.”운전자의 등은 이미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그가 더듬거리며 물었다.“사모님, 이건 무슨 뜻입니까?”“신경 쓰지 마세요.”돈
별장 안.호화로운 원형 침대 위, 남녀의 숨소리가 점차 가라앉았지만 남자는 여전히 부족함을 느끼며 여자를 품에 안아서 여자의 온몸을 가볍게 떨게 했다.조은혁은 그녀의 두 손을 꼭 잡고 부드러운 베개를 높이 들어 꾹 눌렀다.그의 검은 눈동자는 단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그녀를 주시하고 있다.박연희는 긴 속눈썹에 반짝이는 투명한 눈물방울을 묻히고 가볍게 몸을 떨었다. 말할 수 없는 가녀림과 희고 엷은 홍조를 띤 작은 얼굴에 마치 사람 전체가 자욱한 물기 속에 묻혀버린 것만 같았다.조은혁은 허리를 숙여 턱으로부터 귓바퀴까지 입을 맞췄다.이윽고 쉰 목소리가 방안에 울려 퍼졌다.“정말 인형이 따로 없군.”그녀는 임신한 후, 가끔 협조하지 않는 것 외에는 매번 얌전하고 부드러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평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에 조은혁은 너무 좋아 어찌할 줄 몰랐다. 이때 그는 또 그녀를 달래며 애원했다.“한 번만 더 하자... 응?”박연희는 고개를 젖히고 눈을 지그시 감고는 가볍게 몸을 떨며 입을 열었다.“싫어요. 너무 힘들어요.”그러나 그는 끝까지 그만두려고 하지 않고 여전히 그녀에게 졸랐다.“너더러 힘을 쓰라는 건 아니야. 연희야, 눈을 떠. 눈을 떠서 나를 좀 바라봐 줄래? 내가 널 어떻게 사랑하는지 봐.”그는 당장이라도 처음부터 한 번 더 할 기세였다.다급해진 박연희가 급히 외쳤다.“... 하지 마요...”그런데 가녀린 그녀가 어찌 건장한 남자를 막을 수 있겠는가? 결국, 그녀는 남자의 좁은 허리에 매달려 넋을 잃은 채 그의 미모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한바탕 폭풍우가 지나가고 박연희는 피곤해 잠이 들었다.다른 한편, 조은혁은 땀에 젖은 검은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넘겼다. 이 순간만큼 그의 몸과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상쾌하고 만족스러웠다.잠시 후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 뒤적이던 조은혁은 순간 멈칫했다.그의 휴대폰 화면에 진시아와의 35분간 통화 기록이 찍혀 있었기 때문이다. 시간을 확인하니 마침 박연희와 처음 관계를 맺을 때
운전 기사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사모님의 인정이 돈보다 더 감동적이네요.”하여 그는 곧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박연희에게 알려주었다.“진시아 씨는 신문을 보고 화가 나서 그날 밤 독한 술 한 병을 전부 마셨고 한밤중에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그리고 이튿날 저녁 무렵, 대표님께서 한 번 병문안을 가셨는데 그쪽에서... 한 두세 시간 정도 머물렀습니다.”두세 시간 있었다라.박연희가 담담하게 미소를 지었다.운전 기사가 조심스럽게 다시 입을 열었다.“진시아 씨는 퇴원 후 매우 기뻐서 순백의 고급 드레스를 한벌 샀습니다. 그리고 전고용인으로부터 그 옷이 2억 원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여전히 조 대표님의카드로 긁은 것이고요.”그는 박연희가 언짢아할까 봐 냉큼 입을 다물었다.박연희는 찻물을 들어 한 모금 마시고는 개의치 않고 계속하여 말했다.“조 대표님께서 잘 달래주셨나 보군요.”운전 기사는 통나무와도 같은 사람이었기에 그저 두 여자가 한 남자를 뺏는 연극 코드인 줄 알고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때 박연희가 다시 조용히 입을 열었다.“꽤 비싼 드레스인데 진시아 씨가 드레스를 입는 날, 치마를 더럽히지 않도록 주의해주세요.”기사가 얼른 응했다.“사모님, 당신은 정말 관대하시군요. 그 진시아 씨가 당신의 절반만 철이 들었다면 조 대표님도 양쪽으로 난처해하지 않았을 것입니다.”그러나 박연희는 그저 담소를 지을 뿐이었다.운전기사가 떠난 후, 장씨 아주머니가 버럭 화를 냈다.“그런 상류층 모임에 면목없는 내연녀도 갈 자격이 있습니까? 안돼요. 이 일은 조 대표님께 말해야지. 어떻게든 진시아의 뜻대로 이루지 못하게 할겁니다.”화가 난 장씨 아주머니와는 달리 박연희는 여전히 담담했다.“은혁 씨가 그녀를 총애하고 있어요. 게다가 여자 일인데 왜 그 사람한테 알려줘요?”장씨 아주머니는 그녀를 대신하여 다급해하며 발을 동동 굴렀다.“사모님, 지금 지위가 예전 같지 않습니다. 사모님은 아이를 임신했을 뿐만 아니라 대표님도 예전과 달리 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