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우미가 뜨거운 물 한 바가지를 받아오자 조은서는 거기에 발을 담그면 숨을 내쉬었다.그녀는 소파에 늘어지게 누워 책을 펼쳐 보고 있었다.유선우는 그 옆에 앉아 있다가 그녀의 발이 꼼지락거리자 그 발을 낚아챘다.조은서가 발을 빼내려고 했지만 결국 빼 내지 못하고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선우 씨."그는 그녀의 발을 씻겨주고 있었다.유선우가 고개를 들어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보더니 발을 닦아 자신의 품으로 가져갔다.양말을 새하얀 발에 신겨 주고 있는 모습이 왠지 모르게 야릇했다.조은서가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유성우가 그런 그녀를 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느껴?"보는 사람은 없었지만 조은서는 순간 얼굴이 확 달아올라 그를 발로 차 버렸다."놔요, 이 변태."유선우가 그녀의 발을 놓아주며 탁자 위에 놓여 있던 청첩장을 집어 들었다.청첩장은 임도영에게서 온 것이었다.조은서는 유선우가 그녀를 놀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유선우는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전 남자친구가 결혼하니까 기분이 많이 안 좋은가 봐?"조은서가 청첩장을 뺏어오며 담담하게 말했다."당신이 상관할 일 아니에요."유선우는 너그럽게 더 이상 그녀를 놀리지 않았다."나도 받았는데, 같이 갈까?"조은서는 소파에 웅크리고 누운 채 자신의 허리까지 오는 장발을 만지며 시치미를 떼고 말했다."우리라뇨? 선우 씨는 선우 씨고 저는 저죠. 그렇게 친밀하게 부르지 마세요."유선우는 소파에 앉아 그녀가 보던 책을 아무렇게나 넘겼다.그러다가 한참 후 가볍게 말했다."발을 만지는 것만으로도 느낌이 오게 만들 수 있는데, 이래도 너는 너고 나는 나야?"조은서가 글을 내보내려고 하자 유선우가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말했다."나 진짜로 가?"어찌 됐든 그는 그녀를 좋아했고, 지금 두 사람 외에 다른 사람도 없었고, 아까 약간 애매한 분위기도 있었기에 유선우는 지금 당장 그녀에게 키스하고 싶었다.하지만 그때 유이안이 밖에서 들어왔다.유이안은 한바탕 즐겁게 놀았는지 온몸에 눈
조은서의 시선은 곧바로 유선우의 다리에 머물게 되었고 한참이 지나서야 천천히 입을 열었다.“눈 오는 날에는 혼자 운전하지 마세요. 제가 기사님한테 데려다주라고 할게요.”그러자 유선우는 눈빛을 번뜩이며 조은서를 뚫어지라 바라보았다.“나 걱정해 주는 거야?”원래도 잘생긴 얼굴에 매력적인 눈빛까지 띠니 무릇 여자라면 이를 감당해 낼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물론 조은서도 예외는 아니다.하지만 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담담할 뿐 그 어떤 흔들림도 보이지 않았다.“선우 씨한테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그러죠. 그러니까 선우 씨, 혼자 김칫국 마시지 말아요.”혼자만의 착각인지 아닌지는 유선우가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다.조은서는 그를 사랑한다.하여 유선우는 아무런 말도 없이 그대로 조은서를 차에 끌고 들어가 자신의 품 안에 가둔 채 문을 쾅 닫아버렸다...바깥에는 흰 가랑눈이 보슬보슬 흩날리고 있다.따뜻하고 편안한 차 안, 좁고 좁은 공간에서는 유선우의 옅은 담배 냄새가 풍겼고 조은서는 약간 부끄러운 자세로 엎드려 있어야 했다.유선우는 조은서를 자신의 검은 눈동자에 가둔 채 곧바로 손을 뻗어 그녀의 몸을 눌렀다.그렇게 의자가 뒤로 젖혀지고...두 사람의 몸은 어느새 바짝 밀착되어 있었고 옷 하나를 사이에 두고도 끊임없이 흔들리는 리듬에 호흡도 흐트러지고 말았다. 이제 성인인 몸이니 약간의 스킨쉽만으로도 남모를 상상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데 하물며 수없이 많은 관계를 맺은 사이는 더했다.“선우 씨, 이거 놔요!”조은서는 당연히 유선우의 스킨쉽을 원하지 않았고 그의 품을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유선우가 한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잡고 있으니 몸부림칠수록 그녀의 꼴은 더욱 엉망이 되어갔다...나중에는 유선우에게 남자로서의 반응이 생겼다는 것마저 느낄 수 있었다.조은서는 더 이상 움직일 엄두를 내지 못했다.그녀는 그의 품에 엎드린 채 물기가 어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인제 그만 나를 놓아줘요. 선우 씨, 이게 뭐예요
조은서의 말에 순간 화가 난 유선우는 피식 냉소를 터뜨렸다.“난 매 순간 다 필요한데.”조은서는 외투를 껴입고는 차에서 내리며 차 문에 기댄 채 유선우의 각진 옆모습을 바라보며 퉁명스럽게 말을 내뱉었다.“그건 병이니까 제때 병원에 가보세요.”혹여나 휘말려 들까 봐 조은서는 곧바로 운전기사를 불렀다.조은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유선우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고 유선우도 차를 빼지 않았다.짓궂은 장난이었을 뿐 유선우는 조은서의 의사를 매우 존중한다. 그는 운전기사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장소를 옮기며 바깥에 서 있는 조은서에게 말을 덧붙였다.“사모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조은서는 그를 힐끗 곁눈질하고는 곧바로 돌아서서 자리를 떴다.하지만 단호한 움직임과는 달리 몸을 돌리던 그 순간, 그녀의 마음속 가장 여린 부분이 살며시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안으로 들어가니 심정희가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기사님을 부른 거야?”조은서는 조금 전의 일을 떠올리며 아무래도 좀 찔리는지 낮은 소리로 얼버무렸다.심정희 역시 다 겪어봤기에 금세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는 싱긋 웃어 보였다.“강인한 여자가 결국 남자의 사랑을 가장 무서워하는 셈이지.”...유선우가 집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10시가 다 되어갔다.뜻밖에도 정원에는 번쩍번쩍 빛나는 고급 캠핑카 한 대가 세워져 있었는데 그 차는 바로 함은숙이 타고 다니던 그 차였다.유선우는 한참 동안 그 차를 바라보더니 이내 홀 안으로 들어갔다.아니나 다를까, 함은숙이 식당에 앉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식탁 위에는 16개의 반찬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는데 한 젓가락도 손을 대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식탁 앞에 앉아 그 반찬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아하니 오랫동안 그를 기다린듯하다.그때, 발걸음 소리를 듣고 함은숙이 문 쪽을 바라보았다.유선우는 코트를 벗어 고용인에게 맡기고 신발을 갈아 신은 뒤, 함은숙에게 다가가 물었다.“어떻게 왔어요?”가까이서 보니 함은숙의 안색은 매우 초췌했다.함은숙은
함은숙은 조은서가 평생 자신을 용서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그러나 조은서는 매우 너그럽게 그녀를 대해주며 그녀를 감옥에 보내지 않았다... 아마도 행복하게 지냈던 과거를 보아 그녀에게 별다른 벌은 내리지 않은 모양이다.늦은 밤, 호화로운 캠핑카 안에서 함은숙은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같은 시각, 유선우는 계단 위에 서서 조용히 그 차를 바라보았다. 한참이 지나도 떠나지 않는 것을 보아하니 아마 함은숙이 눈물을 흘리고 있으리라 추측했다. 하지만 그는 위로하러 가지 않았다...다시 집으로 돌아온 유선우가 생각에 잠겼다. 누구에게나 마음에 품고 있는 상처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다른 사람이 치유할 수 없는 것이다....설 연휴 두 번째 날, 유선우는 유문호를 보러 갔다.새해지만 유문호의 몸은 좋지 않은 것 같다.유선우는 빨간 벽돌의 작은 양옥 아래에 차를 세우고 차에 앉아 담배를 피운 후에야 물건을 들고 위층으로 올라갔다.이 아파트는 유선우가 산 것인데 부지도 괜찮고 면적도 40평으로 적당한 크기였다.유문호의 집 앞에 도착하고 문을 두드렸다.그러나 뜻밖에도 문을 열어준 사람은 유문호가 아니었다. 그 사람은 유선우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작은이모?”허문혜, 그러니까 함은숙의 친동생이다.그때, 앞치마를 두르고 자애롭고 얌전한 모습을 한 허문혜가 유선우를 보고는 깜짝 놀랐지만 이내 표정을 풀며 그를 반갑게 맞이했다.“어머. 선우 왔어?”“문호 오빠, 선우 왔어!”그녀는 유선우를 반갑게 맞아주고 실내화도 가져다주었다. 한편, 유선우는 세심하게 허문혜의 발에 여성용 슬리퍼가 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보기에 매우 깨끗한 것으로 보아 최근에 새로 산 것 같다.허문혜를 바라보는 유선우의 눈빛은 더욱 깊어졌다.“이모, 안녕하세요. 그럼 잠시 실례하겠습니다.”유선우와 눈이 마주친 허문혜는 유문호의 눈을 쏙 빼닮은 그의 눈을 바라보며 저도 모르게 흠칫하더니 이내 싱긋 웃어 보이며 입을 열었다.“다 한 가족인데 실례라니
허문혜는 물끄러미 유문호를 바라보았다.함은숙의 정교함에 비해 늠름한 기색을 더한 허문혜는 또 다른 미를 가지고 있었다.“선우가 기분 나빠할까 봐, 언니가 기분 나빠할까 봐 그래요?”침묵을 지키던 유문호는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말을 더듬으며 입을 열었다.“선우는 아마...”허문혜는 단 한 번도 그에게 깊은 애정을 표한 적이 없었지만, 이 순간만큼은 자신의 마음을 꺼내 솔직하게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선우는 제가 오빠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아챘죠. 맞죠?”그러자 유문호는 아연실색하며 안절부절못했다.평생 성실하게 살아온 유문호는 단 한 번도 격식을 벗어나는 일을 한 적이 없었다. 허문혜의 몰아붙이는 말에 그는 뜻밖에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한참을 생각한 끝에 결국 그녀를 거절했다.“난 유부남이야. 게다가 문혜야, 난 너한테 그런 마음을 품은 적 없어. 난 그저 널 은숙이의 동생이라고 생각해 왔어.”그러자 허문혜는 깊은 눈빛으로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형부, 난 오빠 마음에 내가 없다는 걸 믿지 않아요.”당황한 유문호는 목소리를 낮춰 반박했다.“정말 없다니까. 그러니까 다시는 찾아오지 마. 약은 내가 직접 살게.”허문혜가 계속하여 무슨 말을 덧붙이려 하자 유문호는 곧바로 고개를 돌렸다.지금 그는 비록 함은숙과 별거하고 있지만, 그들은 아직 부부이다. 게다가 허문혜는 그녀의 여동생이니 유문호는 무슨 일이 있어도 짐승만도 못한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유문호가 다시 집에 돌아왔을 때 유선우는 아직 집에 있었다.그는 소파에 기대어 커피 한잔을 마시고 있는데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고 집안에 들어서는 유문호를 바라보았다... 여자와 싸웠는지 풀이 죽은 기색이다.“이모와 말다툼한 거예요?”유문호는 현관에 서서 입을 딱 벌리고 본능적으로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그런 거 아니야. 선우야, 나와 네 이모는 아무 사이도 아니니까 괜한 생각 하지 마.”그러자 유선우는 담담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문혜 이모는 제 작은 이모인데 제가 어떻게
결국, 조은서는 끝까지 그를 거절했다.“선우 씨, 우리는 같이 영화를 볼 사이가 아니에요. 그러니까 앞으로 이런 말 하지 마세요.”그러자 유선우가 그녀의 말에 되물었다.“그럼 우리는 무슨 사이인데?”조은서는 대답하기 싫어서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지만, 전화를 끊고 나니 얼굴이 화끈거리며 뜨거워지고 뒤늦게 수치스러움이 몰려왔다... 어쨌든 그들은 어젯밤 유선우의 차 안에서 매우 친밀한 행동을 했었던 사이이기 때문이다.오후가 되니 햇살이 눈 부신 황금빛을 띠며 세상을 비춰주었다.조은서는 2층 서재의 작은 소파에 기대어 책을 보고 있었다. 따스한 햇볕에 온몸이 나른해지고 그녀의 곁에는 이안이와 이준이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약 30분 후, 정원에서 갑자기 자동차 소리가 울렸다.하지만 조은서는 개의치 않았다.잠시 후, 입구의 고용인이 문을 두드리고 방안에 들어왔다.“은서 씨, 유선우 대표님께서 찾아와서 두 아이를 보고 싶다고 하시는데 어떻게...”조은서가 미처 말을 하기도 전에 이안이가 기쁨에 겨워 자리에서 팔짝 뛰었다.“아빠 왔다!”이안이는 혼자 뛰어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이준이도 데리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그러자 고용인은 실소를 금치 못했다.“두 아이가 다시 눈밭에 뛰어들지 못하도록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좀 지켜봐 주세요.어젯밤 이안이가 좀 기침하더라고요.”고용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고 말하고 즉시 계단을 내려갔다.서재 문이 가볍게 닫히고 조은서는 계속해서 책을 뒤적거렸지만, 그녀의 마음은 계속 혼란스러웠다.요즘 유선우에게 바짝 쫓기고 있는 기분이었다.유선우는 조은서가 다시 사모님의 신분으로 돌아가는 것을 원했고 진심으로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 조은서도 모두 알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쉽게 그를 다시 사랑할 수 없었다.지금, 이 상태도 나쁘지 않았다.아래층 로비에서 두 어린아이가 유선우를 에워싸고 기뻐하며 돈 봉투를 가져갔다. 할머니께서 주셨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이안이의 얼굴에는 기쁜 감정이 잔뜩 어려 있었고 심지어
조은서는 김재원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눌 때도 미처 어색한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유선우의 존재를 무시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지만 그는 바로 그녀의 옆에 있었고 그녀와 매우 가까이 있었다... 그리고 그의 몸에서는 남성 애프터셰이브 냄새가 풍겼다.하지만 이를 눈치채지 못한 김재원은 여전히 그녀와 담소를 나누었다.그리고 동시에 유선우에게도 친근하게 대하며 그를 완전히 조은서의 남편으로 바라보았다.유선우는 웨이터가 조은서에게 샴페인을 건네자 자연스럽게 그를 막으며 입을 열었다.“주스로 바꿔주세요.”얼핏 보면 지극히 평범한 행동이지만 사실은 소유욕으로 가득 차 있었다.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유선우 대표님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전 사모님을 품고 있다며 수군거리고 있었다... 그들 모두 유선우가 정말 다시 일어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누군가 속삭였다.“유선우 대표님 건강은 회복되었지만 누군가는 이제 재수가 없어지겠네요.”“그러니까요. 대표님은 당한 건 반드시 갚아야 하는 사람이잖아요.”“2년 동안 감히 대표님의 사람을 건드렸으니 이젠 아마 꽁무니를 빼고 도망갈 일만 남았겠네요...”...그러나 유선우는 사람들의 수군거림을 전혀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다.그의 눈은 오직 조은서만 보고 있었다.결혼식이 시작되고 사회자가 다가와 김재원을 불러 대사를 맞추었다. 순간 아무도 말을 하지 않자 지루해진 조은서는 임지혜에게 메시지를 보내 물었다.[왔어?]그리고 한참이 지나서야 임지혜의 답장이 도착했다.[차가 막혀서 조금 늦어질 수도 있어.]조은서는 그제야 안심하고 단상을 응시하며 임도영이 그의 신부와 행복해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녀는 진심으로 선배 임도영의 행복을 위해 기뻐했다.그때, 식탁보 아래에서 누군가가 그녀의 손을 쥐어 잡았다.유선우였다.그러나 그의 얼굴에서는 아무런 표정도 읽을 수 없었다. 조은서 말고는 아무도 가면 뒤에 숨겨진 그의 개인적인 맹랑함을 알 수 없었다. 조은서의 눈빛은 희미한 분노를 띠고 있었지만 그는
그녀는 자신이 미친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분명히 헤어졌는데 유선우가 매번 조은서에게 집적거릴 때마다 그녀는 결국 거절하지 못했다... 그녀는 결국 그의 뛰어난 플러팅 기술 속에 빠져들 것이다.조은서는 눈을 들어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며 정신을 차리도록 일깨워 주었다.그렇게 한참이 지나 화장실을 떠나 이제 연회장으로 돌아가려던 참이었다.앞쪽 통로에서 남녀가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게다가 남자와 여자의 목소리는 모두 조은서에게 익숙한 목소리였다. 모퉁이에 서서 확인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두 사람은 다름 아닌 임지혜와 차준호였다.임지혜는 이곳에서 차준호를 만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녀에게 있어서 차준호는 사실 아주 오래된 추억이다.그녀는 그를 원망했었다.그러나 반성훈이 나타나 그녀를 구해주었고 지금은 반성훈이 그녀의 곁에 없어도 마음속에는 여전히 반성훈의 사랑이 남아 있다.통로에서 오랜만에 옛 애인을 다시 만난 그들은 이제 모두 젊지 않았다.차준호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담배 연기가 스르르 피어오르더니 사방이 희미해지며 서로의 눈길도 흐려졌다.차준호가 먼저 말을 꺼냈다.“요즘은 어떻게 지내?”임지혜는 더 이상 과거의 임지혜가 아니다.과거 임지혜는 차준호의 애인이었다. 아무리 그의 앞에서 발버둥을 쳐도 항상 그보다 한 수 아래였지만 반성훈의 부인이 된 지금은 그녀의 명의로 몇 조에 달하는 자산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이제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다.임지혜는 말없이 차준호를 바라보았다.한참이 지나 임지혜는 가방에서 여성 전용 담배를 꺼내려다 차준호에게 제지당하고 말았다.“넌 여자가 무슨 담배를 피워.”그러자 임지혜는 눈을 들어 그를 빤히 바라보며 피식 가볍게 웃었다. “성훈 씨가 아직 살아있을 때 성훈 씨는 나를 별로 상관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성훈 씨는 나에게 한두 개비만 피울 수 있도록 허락했고 많아지면 주지 않았어요. 내가 또 피우려고 하면 아예 나를 침대로 안아갔죠...”그녀는 더할 나위 없이 선정적으로 말했다.
신혼부부의 열정이 프레지던트 스위트룸을 빨갛게 태웠다.피로연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한 특별한 손님이 조용히 다녀갔는데 다름이 아니라 그 여자가 자기를 보고 슬퍼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그러나 원수는 항상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는 법, 그들은 생각지도 못하게 복도에서 마주쳤다.성현준은 유이안을 조용히 지켜봤다. 유이안은 강윤을 데리고 화장실에 왔지만 어린아이를 혼자 두지 못해서 작은딸도 데려왔다. 아마 강원영을 위해 낳은 딸인데 오누이 쌍둥이다. 쌍둥이 이름은 강온과 강민이다.강윤은 동생들을 아주 좋아했다. 학교에서 돌아온 후 먼저 동생들과 한참을 놀았고 저녁에도 여동생을 방으로 ‘훔쳐 와’ 인형처럼 꼭 끌어안고 잤다.처음에 유이안은 많이 걱정했지만 동생이 생긴 후 강윤이 더 밝아지자 그제야 시름을 놓았다. 평소에 강윤과 여동생을 데리고 나올 때가 많았고 아들은 강원영이 데리고 다녔다.이때 그들 부부가 막 돌아가려던 참에 지인을 만났다.성현준이 출국한 후 그들은 오랫동안 보지 못했는데 그녀가 출산할 때 그가 돌아왔지만 병원에는 가지 않고 그저 값비싼 선물을 보냈다.유이안의 마음이 자기한테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강원영은 이 부분에 있어 아량이 넓었다.갑자기 만났으나 서로 말이 없었다. 결국 성현준이 몸을 쪼그리고 앉아 강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아저씨 기억나?”기억이 좋은 강윤은 얼굴을 찌푸리더니 쏜살같이 유이안한테 다가가 그녀의 다리를 꽉 껴안았다.성현준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유이안은 강윤의 작은 얼굴을 만지며 저도 모르게 슬퍼졌다.성현준은 명의상 강윤의 아버지고 또 별장도 선물했었다.어린 강윤은 마음을 진정시켰는지 유이안을 놓고 천천히 성현준에게 다가가 살며시 안아줬다.성현준은 잠긴 목소리로 유이안에게 물었다.“잘 지냈어? 아이들은 어때? 그 사람과 사이는 좋아?”“다 좋아요.”유이안도 목소리가 잠기는 것 같다. 이 나이가 되어서 사실 따질것도 없고 과거는 과거일 뿐 연연하지 않았다.유이안도 성현준에게 물었다.“당신
아침의 첫 햇살이 대지를 비추고 있다.오늘은 조씨 가문이 잔치를 치르는 날이다.조은혁 부부의 제일 어린 딸이 마침내 시집갔고 그것도 어릴 적부터 좋아했던 남자에게 시집갔다. 전통 혼례복을 입은 그녀의 모습은 진석이 보았던 그 여느 여자보다도 예뻤다.진석의 부모님도 쉴 틈이 없이 바빴다. 그들은 비록 큰 부자가 아니지만 진석의 아버지인 진대용은 한 가문을 이끄는 어르신으로서 능력이 대단했다. 팔방미인처럼 하객을 잘 접대했을 뿐만 아니라 뜻밖에도 유선우와도 잘 어울렸다.조은혁은 의견이 많았다. 유선우는 사돈도 없는가?유선우는 그와 따지지 않고 아내 조은서와 함께 결혼식 진행을 도왔다. 전통 결혼은 현대식보다 훨씬 번거로웠지만 다행히 양측에 일손이 충분해서 허둥거리지 않아도 된다. 낮에는 떠들썩하게 결혼식을 올리고 저녁에는 B시의 제일 럭시리한 호텔의 가장 큰 홀에 200상을 넘게 안배했다. 조씨와 유씨의 양가 친척과 진석의 협력 파트너를 포함해 모두 축하해주려고 이 자리에 모였다. 이 결혼식은 올해 제일 거대한 행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규모가 컸고 앞으로 3년 동안 이렇게 성대한 결혼식이 없을 수 있다.B시의 명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진석은 조은희와 손잡고 곁에 술을 먹어줄 수 있는 사람을 8명이나 데리고 하객에게 술을 권했다. 200상에 달하는 손님을 한 분이라도 빠뜨리지 않기 위해 진석은 필사적으로 마셨고 8명의 술막이 친구들도 충분히 역할을 발휘했다. 그러나 진석은 학교의 선생님들에게 술을 권할 때 술에 취해 쓰러질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평소에는 학생의 본보기가 되어야 하므로 자제하고 있던 이 선생님들은 진석이 결혼하고 조은희도 같은 학교의 선생님이다 보니 10억을 위해서라도 신랑, 신부를 열정적으로 대했다. 그 결과 진석은 거의 취했고 조진범과 조우현이 대신 막아줘서야 겨우 룸으로 끌려갔다.조은혁은 잠자코 진석을 지켜보다가 놀려줬다.“괜찮겠어? 혹시 밀랍으로 만든 총대여서 쓸모없는 거 아니지?”이때 진대용이 감쪽같이 나타났다.
밤이 되었다.유이준과 진은영은 진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다.집에 돌아가자마자 진별이은 숙제하러 갔고 진은영은 잠든 막내아들을 보러 갔다. 막내아들은 돌보고 있는 가정부는 발자국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려 조용히 말했다. “오셨어요? 한 번도 깨지 않고 계속 자고 있었어요. 엄청 착해요.”진은영은 가볍게 웃으며 아줌마에게 내려가 쉬라고 했다.문이 받히고 그녀는 고개를 숙여 막내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꼬마는 이미 8개월이 지났고 용모는 유이준을 완전히 물려받았고 거의 판에 박힌 것 같았다. 심지어 진별이 조차도 때때로 동생의 얼굴을 보고 감탄했다. “이건 정말 하느님의 걸작이야!”유이준이 물었다.“하느님의 걸작이 뭔지 알아?”진별이가 답했다.“남편의 용모, 아내의 영광!”진은영은 유이준에게 속삭였다.“모델 렌위이를 보고 저러는 거야.”유이준은 즉시 그에게 예쁘냐고 물었다.진은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유이준은 침실 문을 살짝 열고 들어왔다. 남자는 아내의 뒤로 와서 가는 허리를 가볍게 껴안고 막내아들의 잠든 얼굴을 함께 보았다. 진은영은 고개를 돌려 조용히 물었다. “진별이 과제는 보았어?”유이준은 그녀의 허리를 꼭 껴안고 말했다.“봤어, 열 개 중 아홉 개가 틀렸어.”진은영은 참지 못하고 가서 직접 확인하려 하였다. 유이준이 그녀를 가로막으며 웃었다.“진별이가 실수하는 것을 어떨 땐 넘길 줄도 알아야 해! 은영, 우리 아이는 그렇게 빠듯하게 살 필요가 없어. 봐, 조민희와 조은희도 잘 살고 있잖아.”진은영은 망설였다.하지만 진별이는 진은영의 아이였고 그녀는 어려서부터 강했다.유이준은 또 진안영을 두고 말했다.“안영도 잘 살고 있잖아. 그녀는 어렸을 때 분명 문제집을 제일 잘 푸는 사람은 아니었을 거야.”진은영이 물었다.“왜 또 안영을 끌어들이는 거야?”유이준은 답했다.“내가 주변 사람들을 예로 들어야 더 설득력이 있지 않겠어? 안영도 진범을 찾았고 지금 딱 쥐고 있잖아.”진은영이 입을 열었다.“고생은 한
2층.조은희는 내일 입을 드레스를 입어보고 있었다. 진석이 그토록 원하는 드레스였다.하얀 눈꽃을 두른 듯한 드레스는 국내 최고 디자이너의 손길을 거쳐 아주 세심하고도 화려한 기품을 뿜고 있었다. 그녀가 쓰고 있는 보석이 박힌 티아라는 수억 단위의 거액으로 마련한 것이었다.거울 속의 여인은 꽃처럼 아름다운 외모를 지녔고 조은희는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혼잣말했다.“자기 애호 때문에 정말 돈을 아끼지 않았네.”좋은 사람과 결혼해서 다행이지 이 어린 딸은 정말 말문이 막혔다. 박연희는 어머니로서 머리를 툭툭 쳤다.그녀는 조민희가 시집갈 때처럼 두둑한 혼수를 주었고 조은희도 마찬가지로 조 씨 그룹의 주식을 요구하지 않았으며 진석이 번 돈은 그녀와 그의 작은 취미를 먹여 살리기에 충분했다.한편, 조민희는 동생을 도와 드레스를 정리해 주고 있었고 그녀도 조금 아쉬워했다. 조은희는 집안의 막냇동생이었고 이제 시집을 가려고 한다.조은희는 그녀를 보며 말했다.“언니, 언제 귀국해서 정착할 거예요? 평소에 일 년에 한두 번 볼 수밖에 없잖아요.”조민희는 그녀의 얼굴을 비비며 답했다.“몇 년만 더!”조은희는 더 이상 묻지 않고 강아지처럼 애교를 부리며 조민희의 품에 안겼고 조민희는 항상 인내심을 가지며 그녀를 아끼며 함께 해주었다.박연희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나와 너의 아버지도 너와 설진이 빨리 귀국해서 정착하기를 바라고 있어.”조민희는 말했다.“설진의 사업은 대부분 밖에 있고, 돌아오면 적어도 10년은 걸릴 것입니다. 다행히 저와 아이들도 그곳 생활에 익숙합니다.”말이 끝나자, 김설진이 밖에서 걸어들어왔다.그는 박연희를 먼저 불렀고 돈봉투를 조은희에게 건네주었다. 조은희는 돈봉투를 받으며 달콤한 말투로 형부라고 불렀고 김설진은 그제야 아내에게 말했다.“김욱의 다리가 찰과상을 입어서 아래층에서 울고 있어.”비록 작은 사나이이자 울보이지만, 김설진은 그런 아이를 응석받이로 키우고 있었다.조민희가 낳은 아이였다!조민희는 고개를 끄덕이고 남
김설진은 말했다.“너랑 나 다 아프잖아.”조민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김욱은 한창 활동적인 나이지만 아버지가 엄격한 교육 아래 매우 예의 바르고 규칙적인 아이로 자라고 있었다. 김욱은 조우현을 보고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둘째 외삼촌.”조우현은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자신의 아이보다 더 튼튼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방유설이 너무 약한 탓도 있었다. 그는 돌아가 조우찬에게 영양을 공급해야겠다고 생각했다.검은색 롤스로이스는 고속도로를 질주하며 저녁이 되기 전에 사람들을 조 씨 저택으로 데려 보냈다.조씨 집안의 아들들은 모두 이사를 나갔지만, 조은희만이 여전히 집에 남아있었다. 조민희가 모처럼 돌아왔어도 그녀는 집에 머물고 있었으며 거절하지 않았다. 조은희는 며칠 묵은 후에 하와이에 가서 친부모님께 향을 피울 계획이었다.차는 저택으로 들어섰고 집안의 불빛은 휘황찬란했다.정원의 주차 공간에는 유명한 차들이 가득 주차되어 있었고 집안의 어른들은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조은희의 내일 결혼식을 위해 남자들은 한 곳에서 이야기하고 있었고 여자들은 2층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김욱은 마당에 남아 조우진, 조우찬과 함께 놀았다.작은 공 하나가 남자아이의 발밑에서 이리저리 날아다녔다.노는 과정에 김욱이 실수로 넘어졌다.사내 녀석은 고통을 참지 못하고 와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조진범은 마침 복도에 서 있었고 그는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겨울이라 검은 코트를 입은 그의 몸집은 더욱 방대해 보였고 그의 성숙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그는 작은 아이를 안아 가볍게 품에 안았고 그의 눈매는 매우 부드러웠다.“어디가 아픈지 외삼촌에게 말해?”녀석은 희고 작은 얼굴을 찡그리며 눈물을 글썽였다.“무릎이 아파요.”말을 마치자, 그는 외삼촌의 품에 안겨 일어나려 하지 않았다.조진범은 의자에 가서 앉아 한 손으로 꼬마를 껴안고 있었다. 조우찬과 조우진도 다가왔고 조우진은 아주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아빠, 우리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저녁, 조은희는 퇴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그녀는 주차장에서 진석의 차를 보았지만 차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마침, 학교 상사가 지나가며 말을 걸었다.“진석이 학교에 와 강당에서 기증식을 하고 있어. 가서 보고 이따가 같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걸. 이 추운 날 뜨거운 훠궈를 같이 먹으면 얼마나 좋아.”조은희는 장난스레 답했다.“삶을 즐기실 줄 아네요.”상사는 손에 든 요리를 들며 답했다.“이봐, 네 사모님이 아침 일찍 집에 가서 손자를 위해 밥을 해라고 재촉하셨어.”조은희는 가볍게 웃으며 그를 배웅했다.하늘에는 구름이 주황빛을 띠며 금빛 테두리를 두르고 있다.조은희는 뜨거운 물컵을 들고 강당 쪽으로 걸어갔다. 가는 길에 몇몇 학생들이 그녀를 향해 재잘거리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장난스럽게 그녀를 진 사모님이라고 불렀다.“조 선생님이라고 해.”학생들은 답했다.“진 사모님! 진 선생님은 강당에 계십니다.”지나가는 모든 사람은 그녀에게 진석이 강당에 있다고 말했고 조은희는 속으로 생각했다.[진석의 구십억이 가치가 있긴 하네. 학교 유명인이 다 됐어.]그녀는 자작나무 숲을 가로질러 강당 계단을 올라갔고 멀리서 진석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연설하고 있었고 아주 틀에 박힌 듯 말하고 있었지만, 목소리가 좋았다.강당에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정면으로 앉아 집중하고 있다.진석은 남자의 꿈이자 여자의 꿈이었고 조은희의 모든 청춘과 미래였다. 그녀는 들어가지 않고 입구에 서서 조용히 그녀의 남편이 될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약 5분 후, 진석이 강연을 끝내고 그도 그녀를 보았다.조은희는 흰색 코트를 입고 뜨거운 물컵을 들고 그가 가르치던 곳에 서 있다. 그녀는 현재 이곳의 선생님이었다.진석은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사실, 조은희가 그에 대한 사랑은 그에 비해 조금도 부족하지 않다.그녀는 젊고 활발했지만, 아주 용감하고 사랑스러웠다. 그녀는 하늘이 진석에게 맞춤 제작한 인생의 동반자였다. 조은희가 있으니, 그는 이번 생에 여한이 없을 것
조은희는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검은색 코트를 입은 진석은 키가 컸고 그런 그가 서재에 서 있자, 그녀는 압박감을 느꼈다. 그는 그녀를 향해 걸어와 고양이처럼 우는 어린 소녀를 품에 안고 한 손으로 가볍게 쓰다듬어 주었다. 그의 목소리는 매우 부드러웠다.“울지 않는다면서요.”조은희는 그의 어깨 위에 엎드려 말했다.“일부러 그러는 거야?”“좀 감동하지 않았나요?”그녀는 그를 나긋하게 때렸다.진석은 술에 취해 나지막이 웃었고 그녀가 감정을 내뱉도록 내버려두었지만 동시에 그의 마음도 쓰라렸다.지난 5년 동안 그는 사실 방황해야 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는 자신이 출세하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조은서가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될까 봐 무서웠다. 만약 그때가 오면 그는 무엇을 가지고 그녀에게 돌아오라고 부탁할까?가난한 집 부잣집 딸의 사랑은 소설 속에만 있고 현실은 참혹했다.조은희는 개의치 않지만, 그는 그녀가 고생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지금, 그들은 서재에서 서로를 끌어안았고, 그들은 곧 결혼할 것이었다.창밖으로 가랑눈이 흩날리고, 그는 눈을 밟고 돌아와 그녀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진석은 어린 소녀가 그의 목을 껴안고 애교를 부릴 수 있도록 한 손으로 코트를 벗고 소파에 내동댕이쳤다. 그들은 감정에 그치지 않게 서로를 사랑했지만, 한 발짝도 그 선을 넘지 않았다.그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은 그녀는 아주 따가웠고 힘줄 또한 뜨겁게 뛰고 있었다. 그녀는 쉰 목소리로 물었다.“그녀가 준 것을 왜 진작 주지 않았어?”“어제 받았어요.”“편지를 봤는데 잘 쓴 것 같아서 보여드리려고 했어요.”……조은희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고 그를 껴안고 소리 없이 애교를 부렸다. 잠시 후 그의 턱에 뽀뽀를 해주었고 순간 진석의 마음은 말할 수 없는 감정으로 가득 찼다.그는 조은혁 부부에게 감사했다. 그들이 조은희를 낳은 덕분에 그는 인생의 단맛과 쓴맛을 다 볼 수 있었다.그는 엿처럼 달게 여겼다.문밖에서 아주머니가 문을 두드렸다.“선생님 아가씨, 식
진석 그리고 조은희의 혼사는 순리대로 이루어졌고 아무도 발버둥 치지 않았다.가끔, 조은희는 이런 생각을 가지기도 했다.과정이 너무 순조로운 나머지 몇 년간의 헤어짐이 마치 없었던 일처럼, 마치 항상 붙어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재회한 후에도 그는 그녀에게 해외 생활에 대해 더 묻지 않고 여전히 예전처럼 그녀를 대했다.그녀는 예전처럼 어리지 않았지만, 진석은 그녀를 20세 소녀로 여겼다. 조은희는 그가 18세 소녀를 더욱 좋아할 거라 마음속으로 생각하곤 했다.세월은 야속하게도 흘러만 갔지, 되돌아오진 않았다.진석은 그냥 미소를 지을 뿐.겨울, 낮이 점점 짧아지기 시작했고 조은희는 퇴근 후 진석의 별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진석은 아직 퇴근하지 않았고 도우미 두 아주머니를 집으로 불러 이미 저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조은희가 차에서 내릴 때 마침 진석의 전화를 받았고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언제 돌아와?”전화 한편의 진석은 손을 들어 시계를 보았다.“일곱 시쯤 집에 도착해요.”조은희는 소녀의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진석은 그녀에게 서재로 가서 서류를 가져오라고 지시했고 조은희는 일부러 작은 소리로 입을 열었다.“내가 너의 직원도 아니고 월급도 받지 않는데 내가 왜.”진석이 답했다.“가족 수당을 받잖아요.”조은희는 핸드폰을 사이에 두고 그에게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어준 후 차에서 내렸다.집안의 하인들은 모두 그녀를 보고 잇달아 멈추어 인사를 하였다.“아가씨가 돌아왔나요, 진 선생님은 몇 시에 돌아오죠?””일곱 시요, 바쁜 사람이잖아요.”하인들은 모두 그녀를 좋아했고 배가 고플가 먼저 과일 한 접시를 씻어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조은희는 과일 접시를 들고 위층으로 올라갔고 잠시 후 진석의 노트북에 무슨 영화가 있는지 찾아보려 하였다. 영화 한 편을 보며 진석을 기다리기로 하였다.진석의 서재는 단순하고 섬세하며 고급 원목 가구는 반짝반짝 광을 내고 있었다.조은희는 코트를 벗고 가죽 의자에 놓은 후 서랍을 열어 서류를 찾
조은희는 진석을 빤히 바라보았다.진석은 낮게 웃으며 외투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더니 블랙 카드를 한 장 꺼내 조은희의 손바닥 위에 가만히 올려놓았다.“내 카드야. 한도가 없으니까 마음껏 써.”조은희는 놀란 듯 작은 목소리로 외쳤다.“진석 씨, 정말 통 크시네요! 진 선생님, 감사합니다.”진석이 장난스럽게 그녀를 가볍게 툭 치자 조은희는 그의 목을 감싸안으며 웃었다.“스폰서 오빠, 감사합니다.”진석은 조은희의 장난스러운 말투에 웃음을 터뜨리더니 그녀의 작은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강렬하게 입을 맞추었다. 예전에는 학문적이고 온화했던 그의 이미지가 지금은 사업가다운 자신감으로 바뀌어 있었다. 하지만 조은희의 장난스러운 태도에 그는 어쩔 수 없이 입맞춤 후 그녀의 귀에 낮고 거친 목소리로 농담을 던졌다. 조은희는 그 말을 듣고 묘하게 떨리는 감정을 느꼈다...진석은 그녀의 코끝을 장난스럽게 살짝 물었다.“넌 은근히 독특한 취향이네.”조은희는 더 이상 그를 자극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고 자세를 바로잡으며 운전하라고 했다. 진석은 그녀를 한 번 더 바라보고는 천천히 시선을 돌려 차를 출발시켰다...둘이 별장에 도착했을 때 진석의 어머니는 고향 요리로 한 상을 가득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에는 진석이 조은희가 좋아한다고 말해준 요리도 포함되어 있었다.진석의 아버지는 붉고 싱싱한 과일을 깨끗이 씻어 가지런히 접시에 놓고 있었다.진석의 차가 멈추자 그는 조은희를 데리고 내렸다. 진석의 부모는 반갑게 나와서 두 사람을 맞았다.아버지는 조은희가 가져온 선물을 받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는데요.”어머니는 차가운 바람을 느끼며 감기 조심하라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조은희의 피부는 밝고 투명하게 하얀 편이라 마치 바람이 불면 날아갈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진석의 부모 눈을 사로잡았다. 두 사람은 속으로 진석과 조은희가 아이를 낳는다면 남녀를 불문하고 정말 예쁘고 훌륭한 아이가 태어날 거로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