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아현은 주먹을 불끈 쥐었지만 여전히 착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알았어요, 선우 씨.”이내 유선우는 병실을 나섰고 문밖에서는 백아현의 부모가 얌전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그들은 유선우를 발견하고는 말을 걸 생각이었지만 그들이 입을 열기도 전에 엘리베이터를 탔다. 진 비서는 그들을 한 번 째려보고는 이내 뒤를 따라 들어갔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유선우와 진 비서 둘 뿐이었고 액정 화면의 빨간 숫자가 끊임없이 내려가고 있었다. 갑자기 유선우가 입을 열었다.“백아현을 왜 한림병원으로 데리고 온 거야? 내 기억으로는 은서의 아버님도 이 병원에 입원하신 걸 아는데.”그의 말에 잔뜩 긴장한 표정을 짔던 진 비서가 이내 설명했다.“대표님, 이건 정말 제 생각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공항에 도착했을 때 구급차는 이미 백아현을 싣고 병원으로 갔습니다. 백아현 씨 내일 수술하는데 대표님께서 오실 겁니까?”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유선우는 한마디 툭 던지고 엘리베이터를 나갔다.“내가 의사는 아니잖아.”진 비서는 이내 그의 뒤를 쫓아갔고 차에 올라탄 그가 창문을 내리고는 고개를 살짝 돌렸다.“김 선생님께서 B시에 도착하시면 식사 자리 마련해 봐.”유선우가 백아현을 김 선생에게 소개해 줄 거라는 걸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대표님, 김 선생님께서 이미 마음에 두신 제자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 일은 아마도 안 될 것 같습니다.”고개를 숙이고 핸드폰을 하고 있던 그가 무심하게 물었다.“어떤 사람이길래 김 선생님 눈에 든 거야?”진 비서는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정확한 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김 선생님께서 그 바이올리니스트가 마음에 드신다며 잘 키워보고 싶다고 하셨습니다.”한참 후, 그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그럼 한번 시험해 보지. 김 선생이 얼마나 인격이 높고 절개가 굳은 양반인지.”...7시반, 유선우는 유씨 본가로 돌아왔다. 주방에서는 맛있는 냄새가 한껏 풍겨왔다. 우아한 옷차림의 함은숙이 식탁에
YS그룹의 1층 주차장, 유선우는 차의 시동을 끄고는 한참을 고민 끝에 조은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그의 전화를 끊어버렸고 그는 다시 전화를 걸지 않았다. 그는 가죽 시트에 기대어 앉아 조용히 담배에 불을 붙였다. ‘은서가 화 많이 난 걸까? 어젯밤 내가 거칠게 대해서 그런 거야? 아니면 한밤중에 나가서 그런 거야? 진 비서가 하는 얘기를 은서도 들었겠지?’유선우는 핸드폰을 쥐고는 그녀에게 문자를 보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달래줘야 하는 건가?’그러나 이런 생각은 불과 몇초 만에 사라져 버렸다. 잉꼬부부만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와 조은서에게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다. 그는 조은서를 사랑한 적이 없다. 예전에도 지금에도...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핸드폰을 거두자 진 비서가 다가와 차 문을 열었다. 밤새 잠을 자지 못했지만 진 비서는 여전히 힘이 넘쳐났다.그녀는 항상 열심히 일을 했고 유선우도 그녀의 그런 점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그녀가 선을 넘은 후에도 그녀를 곁에 두고 있는 것이다. 엘리베이터에 들어서자 진 비서가 일정에 대해 보고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유선호가 그녀의 말을 끊어버렸다.“목요일 저녁 시간 비워둬. 성진그룹 사모님께서 파티를 연다고 하셔. 진 비서가 나랑 같이 가줘야겠어. 드레스 비용은 회사에서 처리해 줄게. 성진그룹의 프로젝트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진 비서도 잘 알고 있겠지? 일 망치지 마.”그의 말이 끝나고 한참이 지나서야 진 비서는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그녀는 믿을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대표님, 성진그룹 사모님의 파티에 저랑 함께 가시겠다는 말씀인가요?”“뭐 문제라도 있어?”“아니요, 없습니다.”진 비서는 황급히 부인하며 최대한 프로페셔널한 말투로 말을 이어갔다.“대표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날 꼭 대표님을 도와 이 프로젝트를 따낼 것입니다.”그는 더 이상 말이 없이 엘리베이터를 나섰다. 엘리베이터 안, 진 비서는 거울을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거울 속에 비
그의 말은 약간 도발적이었다. 유선우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는 캐디에게 볼을 띄우라고 말하고는 살짝 몸을 기울이고 골프채를 휘둘렀다. 공이 떨어지는 곳을 확인한 그가 그곳을 향해 걸어가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네가 언제부터 나에 대해 알았다고 그래? 맞아, 집에 있는 와이프는 꼭 감춰야지. 데리고 나갔다가 누구 눈에라도 들면 어떡해? 안 그러냐? 이지훈.”이지훈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잠시 후, 그가 차갑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하지만 가끔은 아무리 꽉 잡고 있어도 소용없더라. 그런 말 몰라? 사랑은 손안에 든 모래와 같아 꽉 쥐려고 하면 할수록 더 빨리 사라져 버린다는 걸.”석양 아래, 골프장의 풀들은 유난히 푸르렀다. 흰색 캐주얼 차림을 한 유선우는 훤칠한 모습이었다. 그가 고개를 숙이고 골프채를 휘둘렀다. 단 두 번 만에 골프공이 홀 안으로 들어갔고 유선우는 더 이상 골프를 칠 생각이 없는 듯했다. 그는 캐디에게 골프채를 건네주고는 한 손으로 수건을 받아 손을 닦으며 이지훈을 향해 웃었다. “이지훈, 지금까지 살면서 내가 원한 건 놓친 적이 없었어. 그리고 내 성격 너도 잘 알잖아.”그는 조은서 때문에 이지훈과 얼굴을 붉히지 않았다. 비록 조은서가 그의 아내이긴 하지만 이지훈과 얼굴을 붉힐 만큼 중요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래서 경고 한마디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말을 마친 유선우는 먼저 자리를 떴고 이지훈은 그 자리에 서서 무뚝뚝한 표정을 지었다. 그도 자신이 왜 이러는지 모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조은서를 싫어했는데 지금은 유선우가 그녀를 놓아주기만을 두 사람이 이혼하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그럼 그에게도 기회가 생기는 게 아니겠나?...한편, 유선우는 진 비서가 일을 망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수요일 오후, 진 비서는 성진그룹 사모님의 별장으로 찾아갔다. 그러나 두 시간이 채 되지도 않아 그곳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유선우는 비즈니스 쪽에서 꽤 신분이 높은 사람이었다. 옛말에 개도 주인을 봐가면서 때려야 한다고 성진
한편, 유선우가 돈을 보낼 때, 조은서는 임지혜랑 한창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임지혜는 박연준의 소식을 듣고 이내 조은서한테 연락한 것이었다. 그녀는 알아본 소식을 조은서에게 말해주었다.“박연준 변호사는 아프리카 어느 마을로 법률 지원을 하러 갔대. 근데 지금 연락이 두절된 상태야. 조수의 말로는 1,2년은 돌아올 수 없다고 하던데. 은서야, 이렇게 성공한 변호사들은 왜 벌써 이 세상을 다 꿰뚫어 본 건걸까? 큰 도시에서 있으면 돈을 엄청 벌 거 아니야...”말을 마친 그녀는 커피 한 모금을 크게 마시고는 얼굴을 찡그렸다. 조은서는 고개를 숙인 채 컵에 담긴 커피를 가볍게 휘젓고 있었다. 임지혜는 조은서가 받아들이지 못할까 봐 그녀를 위로했다. “우리 좀 더 알아보자. 박연준 그 사람이 없으면 안 되는 것도 아니잖아.”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뭔가를 말하려고 할 때 4천만 원이 입금되었다는 알림이 떴다. 그녀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그런 표정을 본 임지혜는 저도 모르게 다가와 그녀의 핸드폰을 쳐다보았다.“무슨 문자이길래 그렇게 넋을 잃고 보는 거야? 유선우 그 나쁜 자식이었네.”“4천만 원을 너한테 주는 이유가 뭐야? 잠자리도 해달라는 거야 뭐야? 조은서, 이 남자 이거 진짜 나쁜 놈이다. 이 남자도 다른 남자들이랑 똑같이 천박한 인간이야...”조은서는 신경 쓰지 않고 핸드폰을 집어넣었다. 옆에 있던 임지혜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사실 일단 받아도 되잖아. 자그마치 4천만 원이야.”그 말에 조은서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유선우의 돈은 쉽게 가질 수 있는 게 아니야.”임지혜는 저도 모르게 욕설이 나갔다. 스케줄이 있었던 그녀는 조은서와 작별을 하고 자리를 떴다. 떠나기 전, 그녀는 맛없는 커피를 벌컥벌컥 들이켰고 한 방울도 남기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몸에 밴 절약 때문인 것 같다. 그녀가 떠나고 조은서도 자리에서 일어서려 하는데 마침 핸드폰이 또 울렸다. 유선우한테서 온 문자인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김 선생님에게서 온
유선우는 비웃는 듯한 말투로 얘기했다.“돈이 아주 고팠나 봐? 그렇게 많이 요구하는 게 부끄럽지도 않아?”조은서는 차갑게 웃으면서 얘기했다.“창피하든지 말든지. 4억에서 한 푼이라도 적으면 안 돼요. 유 대표님은 잘하실 거라고 믿어요.”유선우는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만약 프로젝트가 우리 손에 들어오지 않으면?”조은서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그건 유 대표님의 능력이 거기까지라는 거죠.”...누군가가 이렇게 대놓고 유선우를 도발하는 것은 처음이었다.유선우는 재미있다고 생각했다.몸을 숙인 유선우는 조은서 귓가에 소곤거렸다.“보니까 무조건 이 프로젝트를 따와야겠는걸? 그렇지 않으면 우리 사모님이 나를 너무 무능하게 생각할 것 같아서 말이야.”두 사람의 사이가 좁혀지자 남자의 향이 조은서 귓가에서 뜨거운 열기를 남겼다.조은서는 유선우를 밀어냈다.“얘기하러 온 거 아니에요? 변태 짓 좀 그만해요!”그날 밤의 일은 여전히 조은서의 마음에 걸렸다.바람을 피우는 남편을 볼 때마다 그가 다른 여자를 안고 있을 때가 떠올랐다.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더러웠다.차에서 내릴 때, 유선우는 갑자기 조은서의 손목을 잡았다.화를 억누른 조은서가 얘기했다.“내일 오전에 성진그룹 사모님께 연락을 드릴 거예요. 하지만 그전에 4억을 넘겨야 할 거예요!”유선우는 조은서를 보다가 얘기했다.“지금 당장 줄 수도 있어.”조은서는 유선우를 쳐다보았다. 유선우는 코웃음 치며 물었다.“왜? 날 못 믿겠어?”조은서는 시선을 옮겨 까만 밤하늘을 쳐다보며 가볍게 얘기했다.“당신 같은 사람이랑 오래 있다 보면 알 수 있어요.”둘은 헤어질 테지만 조은서는 살짝 아쉬움이 남았다.이 아쉬움은 다른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유선우는 조은서에게 수표를 써 주었다. 수표를 손에 건넬 때, 그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백아현은...”처음이었다.유선우가 조은서 앞에서 백아현 얘기를 하는 것은.유선우는 이게 변명이 맞는지도 몰랐다.그 이름을 들은 조은서는 굳어
조은서를 본 이지훈은 크게 놀라지 않았다.그는 높은 곳에서 조은서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화려한 그녀의 옷차림까지.얼마 지나지 않아 내려온 이지훈은 조은서 곁으로 걸어가 공경한 말투로 얘기했다.“드레스 예쁘네요. 하지만 병원에서의 착장이 더 어울렸어요.”조은서는 이제 다 큰 성인 여자였다.이지훈의 이런 의미심장한 말. 그리고 매일 로열 호텔에 가는 이지훈. 아무리 눈치가 없는 조은서라도 눈치 챌 수 있었다. 하지만 모르는 척을 해야 했다.이지훈은 조은서가 건드릴만한 사람이 아니었다.서미연은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하고 웃으면서 소개해 주었다.“은서 씨, 여긴 우리 그이의 친척이에요. 먼 사촌 동생인데 어릴 때부터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편이라... 뭐, 자주 놀러 오긴 해요.”조은서는 담담하게 웃으며 얘기했다.“아는 사이에요.”서미연은 조은서의 어깨를 두드리며 얘기했다.“어머, 내 정신 좀 봐. 이지훈이랑 유선우 씨가 친구라는 걸 깜빡했네요. 먼저 대화 나누고 있어요. 일단 가서 글라스 가져올 테니까요. 고용인들이 자꾸만 깜빡해서.”말을 마친 서미연은 먼저 자리를 떴다.그러자 이지훈은 두 손을 주머니에 넣고 조은서를 쳐다보았다.담배에 불을 붙인 그가 물었다.“다시 유선우 곁으로 돌아와 사모님 소리를 듣고 싶은 거예요?”조은서는 시선을 내리깔았다.“그것까지 제가 일일이 보고해야 하나요?”이지훈은 도자기처럼 매끈한 조은서의 피부를 쳐다보았다. 기다란 속눈썹이 바르르 떨리고 있었는데 예쁘고 귀여웠다.담배를 한 모금 빨아들인 그는 아무 말 하지 않고 먼저 떠났다.그제야 조은서는 한숨을 돌렸다.이지훈을 상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지훈의 기분이 어디로 튈지 모르니까.이때 서미연이 다시 내려왔다.그녀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조은서는 서미연을 도와 여러 일을 해주고 오후 네 시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끝나자마자 유선우가 전화를 걸어왔다.“주차장에서 기다릴게. 드레스로 갈아입어야지.”조은서가 망설이고 있을 때,
유선우는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그러다가 가볍게 웃었다.“여자들은 이런 걸 중요하게 생각하나 보지?”그렇게 말하는 그의 목소리는 아까보다 낮았다. 그리고 조금 부드러웠다.“조은서, 당신은 언제부터 그런 걸 알았지? 사모님 소리를 듣다 보니 알게 된 건가?”그 말은 살짝 매혹적이었다.부부라서 할 수 있는 말이기도 했다.조은서는 대꾸할 마음이 없어 창문 밖으로 시선을 돌리며 담담하게 얘기했다.“어쩌다 보니 알게 됐어요.”유선우는 말을 이으려고 했다.하지만 신호등이 푸른색으로 바뀌었고 뒤에 있는 차가 경적을 울려댔다. 유선우는 어쩔 수 없이 액셀을 밟고 앞으로 나아갔다....B시의 가장 고급스러운 메이크업 샵.유선우는 조은서를 데리고 이곳으로 왔다. 그의 신분이 특별했기에 실장이 직접 나와 그녀를 맞이했다.실장은 예쁘게 말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사모님은 피부도 하얗고 몸매도 늘씬하시잖아요. 마침 Marchesa제작 드레스가 들어왔는데, 사모님께 가장 어울릴 거예요.”그렇게 말하면서 드레스를 가져왔다.확실히 아름다웠다.유선우는 고개를 돌려 조은서를 보며 부드럽게 얘기했다.“가서 피팅해봐.”탈의실 내부.조은서는 드레스로 갈아입었지만 뒤의 지퍼에 손이 닿지 않았다. 몇 번이고 사람을 불러 도와달라고 했지만 대답이 없었다. 그러다가 문밖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유선우였다.두 사람의 눈이 마주친 그 순간,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탈의실 내부는 환했고 사방이 거울이어서 조은서의 몸을 비추고 있었다. 드레스는 조은서의 몸에 딱 달라붙었는데 몇 겹이나 되는 드레스 자락은 무거워 보이지 않고 오히려 가벼워 보였다.하지만 등 뒤의 지퍼를 올리지 못해 가슴 쪽이 훤히 드러나 있었다.조은서는 속옷을 입지 않고 패치를 선택했다.탈의실에 서 있는 조은서는 매우 부드러워 보였다.문을 잠가버린 유선우가 조용히 걸어와 고개를 숙여 물었다.“지퍼가 닿지 않아?”그렇게 말하면서 바로 지퍼에 손을 갖다 댔다.유선우가
두 사람은 몸을 붙인 채 서로 비비고 있었다.조은서도 아무 느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하지만 그녀는 유진우를 밀어내면서 핑계를 댔다.“일곱 시면 파티가 시작이에요. 그 프로젝트를 그렇게 중시하면서 지각하고 싶은 건 아니죠?”그 말을 들은 유진우는 조은서를 놓아주었다. 그리고 거울 속의 조은서를 보면서 가볍게 웃었다.“당신은 정말 흥을 깨는 거로는 일등이야.”그래도 조은서는 유진우의 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돌아가는 길에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저녁 일곱 시. 유진우의 검은색 벤틀리는 천천히 이 씨 저택에 들어섰다. 차에서 내린 유진우는 조은서를 위해 차 문을 열어주었다. 조은서가 차에서 내릴 때, 유진우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조은서는 저도 모르게 유진우를 쳐다보았다.서늘한 밤바람, 화려한 불빛 아래, 두 사람이 시선을 마주했다.유진우는 그녀의 손을 꼭 잡고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며 낮은 소릴 얘기했다.“오늘은 내 옆에 붙어 다녀. 다른 남자한테 흘리고 다니지 말고. 알겠어?”그 말에는 유진우의 소유욕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유진우의 어깨에 기댄 조은서는 이지훈을 발견했다.이지훈은 별장 입구의 전등 아래에서 와인잔을 들고 서 있었는데 어두운 눈빛으로 조은서를 쳐다보고 있었다.조은서는 이지훈을 마주하기 싫어 입술을 살짝 떨다가 유진우를 꼬옥 안았다.그 모습을 본 이지훈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떠나버렸다.유진우는 바보가 아니었다. 그는 조은서의 턱을 잡고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이젠 사람을 이용할 줄도 아네?”조은서는 고개를 돌렸다.“유진우 씨, 오늘 밤의 목적을 잊지 마세요.”유진우의 시선이 차갑게 굳었다.“당연히 잊지 않았어. 유씨 가문 사모님.”그리고 유진우는 조은서의 손을 잡았다. 그 모습은 마치 신혼부부 같았다.조은서도 그런 유진우의 연기에 맞춰주었다.두 사람은 파티에서 같이 춤을 추기도 했다. 주변에서 박수와 갈채가 끊이지 않았다. 성진그룹 사모님은 또 조은서를 데리고 다른 귀부인들을 소개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