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유선우가 돈을 보낼 때, 조은서는 임지혜랑 한창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임지혜는 박연준의 소식을 듣고 이내 조은서한테 연락한 것이었다. 그녀는 알아본 소식을 조은서에게 말해주었다.“박연준 변호사는 아프리카 어느 마을로 법률 지원을 하러 갔대. 근데 지금 연락이 두절된 상태야. 조수의 말로는 1,2년은 돌아올 수 없다고 하던데. 은서야, 이렇게 성공한 변호사들은 왜 벌써 이 세상을 다 꿰뚫어 본 건걸까? 큰 도시에서 있으면 돈을 엄청 벌 거 아니야...”말을 마친 그녀는 커피 한 모금을 크게 마시고는 얼굴을 찡그렸다. 조은서는 고개를 숙인 채 컵에 담긴 커피를 가볍게 휘젓고 있었다. 임지혜는 조은서가 받아들이지 못할까 봐 그녀를 위로했다. “우리 좀 더 알아보자. 박연준 그 사람이 없으면 안 되는 것도 아니잖아.”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뭔가를 말하려고 할 때 4천만 원이 입금되었다는 알림이 떴다. 그녀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그런 표정을 본 임지혜는 저도 모르게 다가와 그녀의 핸드폰을 쳐다보았다.“무슨 문자이길래 그렇게 넋을 잃고 보는 거야? 유선우 그 나쁜 자식이었네.”“4천만 원을 너한테 주는 이유가 뭐야? 잠자리도 해달라는 거야 뭐야? 조은서, 이 남자 이거 진짜 나쁜 놈이다. 이 남자도 다른 남자들이랑 똑같이 천박한 인간이야...”조은서는 신경 쓰지 않고 핸드폰을 집어넣었다. 옆에 있던 임지혜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사실 일단 받아도 되잖아. 자그마치 4천만 원이야.”그 말에 조은서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유선우의 돈은 쉽게 가질 수 있는 게 아니야.”임지혜는 저도 모르게 욕설이 나갔다. 스케줄이 있었던 그녀는 조은서와 작별을 하고 자리를 떴다. 떠나기 전, 그녀는 맛없는 커피를 벌컥벌컥 들이켰고 한 방울도 남기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몸에 밴 절약 때문인 것 같다. 그녀가 떠나고 조은서도 자리에서 일어서려 하는데 마침 핸드폰이 또 울렸다. 유선우한테서 온 문자인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김 선생님에게서 온
유선우는 비웃는 듯한 말투로 얘기했다.“돈이 아주 고팠나 봐? 그렇게 많이 요구하는 게 부끄럽지도 않아?”조은서는 차갑게 웃으면서 얘기했다.“창피하든지 말든지. 4억에서 한 푼이라도 적으면 안 돼요. 유 대표님은 잘하실 거라고 믿어요.”유선우는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만약 프로젝트가 우리 손에 들어오지 않으면?”조은서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그건 유 대표님의 능력이 거기까지라는 거죠.”...누군가가 이렇게 대놓고 유선우를 도발하는 것은 처음이었다.유선우는 재미있다고 생각했다.몸을 숙인 유선우는 조은서 귓가에 소곤거렸다.“보니까 무조건 이 프로젝트를 따와야겠는걸? 그렇지 않으면 우리 사모님이 나를 너무 무능하게 생각할 것 같아서 말이야.”두 사람의 사이가 좁혀지자 남자의 향이 조은서 귓가에서 뜨거운 열기를 남겼다.조은서는 유선우를 밀어냈다.“얘기하러 온 거 아니에요? 변태 짓 좀 그만해요!”그날 밤의 일은 여전히 조은서의 마음에 걸렸다.바람을 피우는 남편을 볼 때마다 그가 다른 여자를 안고 있을 때가 떠올랐다.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더러웠다.차에서 내릴 때, 유선우는 갑자기 조은서의 손목을 잡았다.화를 억누른 조은서가 얘기했다.“내일 오전에 성진그룹 사모님께 연락을 드릴 거예요. 하지만 그전에 4억을 넘겨야 할 거예요!”유선우는 조은서를 보다가 얘기했다.“지금 당장 줄 수도 있어.”조은서는 유선우를 쳐다보았다. 유선우는 코웃음 치며 물었다.“왜? 날 못 믿겠어?”조은서는 시선을 옮겨 까만 밤하늘을 쳐다보며 가볍게 얘기했다.“당신 같은 사람이랑 오래 있다 보면 알 수 있어요.”둘은 헤어질 테지만 조은서는 살짝 아쉬움이 남았다.이 아쉬움은 다른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유선우는 조은서에게 수표를 써 주었다. 수표를 손에 건넬 때, 그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백아현은...”처음이었다.유선우가 조은서 앞에서 백아현 얘기를 하는 것은.유선우는 이게 변명이 맞는지도 몰랐다.그 이름을 들은 조은서는 굳어
조은서를 본 이지훈은 크게 놀라지 않았다.그는 높은 곳에서 조은서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화려한 그녀의 옷차림까지.얼마 지나지 않아 내려온 이지훈은 조은서 곁으로 걸어가 공경한 말투로 얘기했다.“드레스 예쁘네요. 하지만 병원에서의 착장이 더 어울렸어요.”조은서는 이제 다 큰 성인 여자였다.이지훈의 이런 의미심장한 말. 그리고 매일 로열 호텔에 가는 이지훈. 아무리 눈치가 없는 조은서라도 눈치 챌 수 있었다. 하지만 모르는 척을 해야 했다.이지훈은 조은서가 건드릴만한 사람이 아니었다.서미연은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하고 웃으면서 소개해 주었다.“은서 씨, 여긴 우리 그이의 친척이에요. 먼 사촌 동생인데 어릴 때부터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편이라... 뭐, 자주 놀러 오긴 해요.”조은서는 담담하게 웃으며 얘기했다.“아는 사이에요.”서미연은 조은서의 어깨를 두드리며 얘기했다.“어머, 내 정신 좀 봐. 이지훈이랑 유선우 씨가 친구라는 걸 깜빡했네요. 먼저 대화 나누고 있어요. 일단 가서 글라스 가져올 테니까요. 고용인들이 자꾸만 깜빡해서.”말을 마친 서미연은 먼저 자리를 떴다.그러자 이지훈은 두 손을 주머니에 넣고 조은서를 쳐다보았다.담배에 불을 붙인 그가 물었다.“다시 유선우 곁으로 돌아와 사모님 소리를 듣고 싶은 거예요?”조은서는 시선을 내리깔았다.“그것까지 제가 일일이 보고해야 하나요?”이지훈은 도자기처럼 매끈한 조은서의 피부를 쳐다보았다. 기다란 속눈썹이 바르르 떨리고 있었는데 예쁘고 귀여웠다.담배를 한 모금 빨아들인 그는 아무 말 하지 않고 먼저 떠났다.그제야 조은서는 한숨을 돌렸다.이지훈을 상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지훈의 기분이 어디로 튈지 모르니까.이때 서미연이 다시 내려왔다.그녀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조은서는 서미연을 도와 여러 일을 해주고 오후 네 시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끝나자마자 유선우가 전화를 걸어왔다.“주차장에서 기다릴게. 드레스로 갈아입어야지.”조은서가 망설이고 있을 때,
유선우는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그러다가 가볍게 웃었다.“여자들은 이런 걸 중요하게 생각하나 보지?”그렇게 말하는 그의 목소리는 아까보다 낮았다. 그리고 조금 부드러웠다.“조은서, 당신은 언제부터 그런 걸 알았지? 사모님 소리를 듣다 보니 알게 된 건가?”그 말은 살짝 매혹적이었다.부부라서 할 수 있는 말이기도 했다.조은서는 대꾸할 마음이 없어 창문 밖으로 시선을 돌리며 담담하게 얘기했다.“어쩌다 보니 알게 됐어요.”유선우는 말을 이으려고 했다.하지만 신호등이 푸른색으로 바뀌었고 뒤에 있는 차가 경적을 울려댔다. 유선우는 어쩔 수 없이 액셀을 밟고 앞으로 나아갔다....B시의 가장 고급스러운 메이크업 샵.유선우는 조은서를 데리고 이곳으로 왔다. 그의 신분이 특별했기에 실장이 직접 나와 그녀를 맞이했다.실장은 예쁘게 말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사모님은 피부도 하얗고 몸매도 늘씬하시잖아요. 마침 Marchesa제작 드레스가 들어왔는데, 사모님께 가장 어울릴 거예요.”그렇게 말하면서 드레스를 가져왔다.확실히 아름다웠다.유선우는 고개를 돌려 조은서를 보며 부드럽게 얘기했다.“가서 피팅해봐.”탈의실 내부.조은서는 드레스로 갈아입었지만 뒤의 지퍼에 손이 닿지 않았다. 몇 번이고 사람을 불러 도와달라고 했지만 대답이 없었다. 그러다가 문밖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유선우였다.두 사람의 눈이 마주친 그 순간,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탈의실 내부는 환했고 사방이 거울이어서 조은서의 몸을 비추고 있었다. 드레스는 조은서의 몸에 딱 달라붙었는데 몇 겹이나 되는 드레스 자락은 무거워 보이지 않고 오히려 가벼워 보였다.하지만 등 뒤의 지퍼를 올리지 못해 가슴 쪽이 훤히 드러나 있었다.조은서는 속옷을 입지 않고 패치를 선택했다.탈의실에 서 있는 조은서는 매우 부드러워 보였다.문을 잠가버린 유선우가 조용히 걸어와 고개를 숙여 물었다.“지퍼가 닿지 않아?”그렇게 말하면서 바로 지퍼에 손을 갖다 댔다.유선우가
두 사람은 몸을 붙인 채 서로 비비고 있었다.조은서도 아무 느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하지만 그녀는 유진우를 밀어내면서 핑계를 댔다.“일곱 시면 파티가 시작이에요. 그 프로젝트를 그렇게 중시하면서 지각하고 싶은 건 아니죠?”그 말을 들은 유진우는 조은서를 놓아주었다. 그리고 거울 속의 조은서를 보면서 가볍게 웃었다.“당신은 정말 흥을 깨는 거로는 일등이야.”그래도 조은서는 유진우의 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돌아가는 길에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저녁 일곱 시. 유진우의 검은색 벤틀리는 천천히 이 씨 저택에 들어섰다. 차에서 내린 유진우는 조은서를 위해 차 문을 열어주었다. 조은서가 차에서 내릴 때, 유진우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조은서는 저도 모르게 유진우를 쳐다보았다.서늘한 밤바람, 화려한 불빛 아래, 두 사람이 시선을 마주했다.유진우는 그녀의 손을 꼭 잡고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며 낮은 소릴 얘기했다.“오늘은 내 옆에 붙어 다녀. 다른 남자한테 흘리고 다니지 말고. 알겠어?”그 말에는 유진우의 소유욕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유진우의 어깨에 기댄 조은서는 이지훈을 발견했다.이지훈은 별장 입구의 전등 아래에서 와인잔을 들고 서 있었는데 어두운 눈빛으로 조은서를 쳐다보고 있었다.조은서는 이지훈을 마주하기 싫어 입술을 살짝 떨다가 유진우를 꼬옥 안았다.그 모습을 본 이지훈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떠나버렸다.유진우는 바보가 아니었다. 그는 조은서의 턱을 잡고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이젠 사람을 이용할 줄도 아네?”조은서는 고개를 돌렸다.“유진우 씨, 오늘 밤의 목적을 잊지 마세요.”유진우의 시선이 차갑게 굳었다.“당연히 잊지 않았어. 유씨 가문 사모님.”그리고 유진우는 조은서의 손을 잡았다. 그 모습은 마치 신혼부부 같았다.조은서도 그런 유진우의 연기에 맞춰주었다.두 사람은 파티에서 같이 춤을 추기도 했다. 주변에서 박수와 갈채가 끊이지 않았다. 성진그룹 사모님은 또 조은서를 데리고 다른 귀부인들을 소개해 주었다.
이성철은 재빨리 알아차렸다. 그 프로젝트 얘기를 하는 것이었다.하지만 또 다른 사람들을 맞이해야 하기에 먼저 자리를 떴다.유선우는 서미연을 보며 감사 인사를 했다.서미연은 멀어지는 이성철의 뒷모습을 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유선우를 보며 얘기했다.“유선우 씨, 아마 모를 거예요. 예전에 우리 남편에게 다른 여자가 생겼을 때, 심지어 나랑 이혼까지 하려고 했을 때, 우리 이 바닥에서는 다 나를 무시했어요. 그러다가 한 파티장에서 은서 양을 만났는데 그저 열다섯, 열여섯 정도 되는 아이가 얼마나 나를 즐겁게 해주던지... 조은혁 군과 같이 왔었는데 예쁜 드레스를 입고 사람이 적은 곳에서 나에게 발레를 춰줬어요. 그때의 나는 우울해서 오랫동안 웃지 않았었는데...”말하던 서미연은 가볍게 웃었다.“이거 참, 선우 씨만 난처하게 만들었네요.”말을 마치고 떠나는 서미연의 뒷모습은 약간 처량했다.서미연의 위치는 비교적 굳건했다. 이성철도 그녀를 존중해 주고 있었다. 하지만 상류계 여자들은 모두 서미연처럼, 언제 깨질지 모르는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일 것이다.조은서가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서미연은 그녀를 도와주고 싶었다.유선우는 원래의 자리에 서 있었다. 서미연의 도움이 있기에 이 프로젝트는 십중팔구 그의 손에 떨어질 것이다.하지만 그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프로젝트가 아니었다.조은서였다.조은서는 자신이 불행하다고, 사모님이 되고 싶지 않다고 했다. 혹시 서미연과 같은 심정이 아닐까? 남편에게 실망하고 사랑하지 않게 되는 것... 하지만 다른 것은 서미연은 이씨 가문에 남는 것을 선택했고 조은서는 지금 유선우마저 버리려고 한다는 것이다....조은서가 화장실에서 나오니 거의 아홉 시 반이었다. 조은서는 거의 떠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그 생각만 하다가 화장실 입구 쪽에서 실수로 다른 사람과 부딪혔다. 똑바로 서서 보니 이지훈이었다.두 사람은 매우 가까워서 이지훈은 그녀의 향수까지 맡을 수 있었다.옅은 오렌지 향이 났다.조은
화장실에서 나온 조은서는 안색이 좋지 않았다.유선우는 와인잔을 내려놓고 고개를 숙여 그녀를 살폈다.“왜 그래? 어디 아파? 내가 이 대표님한테 우리 먼저 갈 거라고 말할게.”조은서는 거절하지 않았다.유선우는 이 대표와 사모님한테 카톡을 보내고 조은서를 데리고 떠났다.차에 탄 후, 그는 고개를 돌려 한 번도 보인 적 없는 부드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그 프로젝트를 따냈을 거야! 유 사모님, 고마워. 솔직히 난 네가 이렇게 실력 좋은 줄 몰랐어.”조은서는 가죽 좌석에 등을 기댔다.그녀는 온 하루 동안 바쁘게 보내고 난 후, 지금 너무 힘들어서 손가락 까닥할 힘도 없었다.한참 지난 후에야 그녀는 고개를 돌려 그와 눈을 마주치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사실 나 전에도 이랬어요! 단지 선우 씨가 신경 쓰지 않았을 뿐이에요.”결혼 생활 3년 동안, 두 사람의 만남은 대부분 침대 위에서 이루어졌다.남은 시간에 유선우는 회사에서 일하고 있거나 H시에 가서 백아현을 만났다... 조은서가 아무리 그를 좋아했어도 이제 감정이 많이 식었다. 지금 유선우가 갑자기 부드럽게 그녀를 대해도 전혀 감동이 느껴지지 않았다.조용한 그녀의 모습은 매력적이었다. 유선우는 참지 못하고 고개를 숙여 그녀에게 입맞춤하고 싶었다.그러나 조은서는 그의 입술을 막고 고개를 들어 부드러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면서 말했다.“선우 씨, 그 4억 원에 자는 건 포함되어 있지 않아요! 선우 씨가 공사 구분을 잘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유선우는 마음이 흔들렸다. 그는 그녀의 손바닥에 키스하고 쉰 목소리로 말했다.“예전엔 네가 나한테 자자고 졸랐었잖아. 내가 콘돔 가지러 갈 때도 고양이처럼 내 목을 끌어안고 가지 말라고 했던 거... 잊었어?”조은서의 하얀 얼굴이 빨개졌다. 그녀는 부끄러워서 고개를 돌렸다.“그만 말해요!”...유선우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액셀을 밟아 그녀를 데리고 떠났다. 여기서 그녀가 머무는 곳까지는 꽤 멀었고 한 시간 정도는 걸렸다.조은서는
유선우는 부드러운 눈빛과 목이 살짝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드레스 입은 모습 예쁘더라.”지금 이 순간은 아마도 그들의 결혼 생활 3년 동안 가장 따뜻한 시간일 것이다. 조은서는 감개무량했지만 그저 살짝 미소만 지었다.“고마워요!”두 사람은 함께 위층으로 올라갔다. 유선우는 낡은 인테리어를 보고 눈살을 찌푸렸지만, 다행히 복도의 고장 난 전등은 다 고쳤다.그들 뒤로 은색 차 한 대가 어두운 밤 속에 멈춰 있었다.차 안에 있는 진유라는 그들이 사라져 가는 방향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원래 파티에서 참석하기 위해 준비했던 흰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그녀의 모습은 아름답기 그지없었다.그녀는 이씨 가문 저택에서부터 따라왔다.진유라는 유선우가 조은서를 데리고 나올 때 지은 그렇게 부드러운 표정은 처음 봤다. 또한 그의 소유욕 충만한 그런 움직임도 처음 봤다. 그의 손바닥은 한시도 떼지 않고 계속 조은서의 가녀린 허리를 잡고 있었다.진유라는 지금까지 유선우가 조은서에게 관심이 없는 줄 알았다.그리고 조은서도 사랑이 없는 이 3년의 결혼 생활을 버텨오면서 지친 줄 알았다. 그러나 파티에서 조은서는 모두의 주목을 받았다! 그녀가 바이올린을 켜는 모습은 너무 아름다워서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그래서 조금 전 유선우는 차 안에서 참지 못하고 그녀에게 키스했다.진유라는 잔뜩 실망한 표정으로 핸들을 잡고 있었다.그녀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휴대폰에서 유선우와 조은서가 함께 춤추는 사진을 골라 비공개 카톡 계정으로 백아현에게 보냈다… 진유라는 백아현이 그렇게 친밀한 사진을 보고 절대 견딜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그렇게 생각한 진유라는 고개를 숙이고 웃었다.그녀가 가질 수 없는 것은 조은서도 가지면 안 되었다.…조은서의 집은 아주 작았다.유선우의 키는 거의 188센티 미터였는데 머리가 거의 문 끝에 닿으면서 들어갔다.집에 들어서자 그는 몸을 완전히 펼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하나밖에 없는 작은 일인 소파에 쭈
진석은 조은희의 조심스러운 태도를 눈치챘다.진석은 미소를 지으며 조은희의 얼굴을 감싸안고 입을 맞췄다.“너와는 결혼 첫날까지 기다리겠다고 약속했었지! 게다가 방금 술을 마셨으니까 오늘은 아마 어려울 거야. 너에게 더 좋은 경험을 주기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해.”조은희는 얼굴이 빨갛게 변했고 진석의 품에 얼굴을 묻으며 중얼거렸다.“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요.”참 묘했다!예전에는 그저 감정에서 비롯된 관계였고 항상 예의를 지키며 선을 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한 침대에 누워 서로의 몸이 밀착된 채로 있다는 것이 조금 부끄러웠다.조은희는 적어도 이런 경험이 처음이었다.진석은 조은희의 마음을 알아채고 그녀의 귀에 입을 가까이 대며 부드럽게 속삭였다.“나도 처음이야! 결혼 첫날 밤을 준비하기 위해서 미리 배워둘게.”조은희는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았다. 사실 책을 보거나 동영상을 본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그녀는 더 이상 묻지 않고 그냥 진석의 품에 몸을 맡겼다.햇살이 창문 틈새로 스며들기 시작할 때쯤, 진석은 조용히 일어나 집을 떠났다. 조은희의 집이었기에 그 잠깐의 온기는 이미 지나쳐버린 상태였다...그들은 예전에는 갑자기 헤어졌지만, 지금 다시 함께하는 것이 너무 자연스럽게 느껴져 조은희는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확실히 진석과 다시 함께하게 되었고 결혼에 대한 얘기도 나누고 있었다.그들은 연애를 건너뛰고 바로 결혼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조은희는 조금 망설였다...조진범은 레드 와인을 손에 들고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사실 일찍 결혼하는 것도 나쁘지 않네. 적어도 아이도 일찍 낳고 그 후엔 둘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을 테니.’진안영은 말했다.“아이를 낳으면 둘만의 시간은 더 이상 없지 않을까요?”조우현이 답했다.“다시 만난 연인들은 가장 먼저 혼인신고를 한다고요. 그게 아니면 후회할 거예요. 많은 시간을 허비할 테니까요. 사실 처음에 부소연과 결혼해야 했어요.”오빠들의 이야기를 듣고 조은희는 그 말
진석은 예의 있게 조은혁을 호칭했다.“아버님.”조은혁은 그를 난처하게 만들지 않았고 가볍게 기침하며 조은희를 보면서 말을 이었다.“먼저 올라가라. 네 엄마가 네가 돌아오기를 계속 기다리고 있었으니 아마 할 얘기가 있을 거다.”조은희는 처음엔 가만히 있었고 진석은 부드럽게 손을 내밀어 그녀를 밀면서 말했다.“먼저 올라가.”조은희는 그제야 움직였고 조은혁 옆에 다가갔다. 집에서 막내딸인 조은희는 가장 애교가 많았고 조은혁을 안고 인사한 후 아쉬운 듯 올라갔다.조은혁은 작은 딸을 안자 화난 기분이 어느 정도 풀리더니 진석을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앉아서 얘기해.”진석은 즉시 자리에 앉아 조은혁에게 차를 따랐고 조은혁은 일부러 그를 자극하는 듯한 말을 던졌다.“눈치가 빠르네.”진석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아버님 앞에서는 실수하지 않으려 합니다.”조은혁은 가볍게 코웃음을 치며 차를 한 모금 마셨다.그는 이제 두 사람이 다시 함께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며 여전히 아버지로서 딸의 미래를 걱정했다.“은희와 만나고 싶다면 지금은 조건은 없어. 하지만 요구 사항은 몇 가지 있네.”진석은 겸손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조은혁은 진석의 태도를 만족스러워했지만, 하는 말은 전혀 봐주지 않았다.“첫째, 결혼을 하게 되면 은희는 너의 집에 가지 않고 결혼식과 생활은 모두 B시에 있어야 해. 둘째, 조씨 가문은 금전적으로 부족함이 없으니 결혼 때 충분한 축의금을 줘서 편하게 생활하게 할거야. 하지만 네가 결혼 후 벌어들인 모든 돈은 은희와 공동 재산으로 해야 하며 은희가 어떤 일을 하고 싶어도 간섭할 수 없어. 또한 아이를 가질지 안 가질지 은희의 선택을 존중해야 해.”이 조건들은 모두 합리적으로 보였지만 실제로 실행에 옮기기는 어려운 일이다.그렇지만 진석은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할 수 있습니다.”조은혁은 더 이상 그를 어렵게 할 수 없음을 깨닫고 진석을 보며 잠시 마음을 정리했다.사실 그도 같은 도시에서 사업을 하며 진석이 처음부터 얼마나 힘들었을
하지만 조은희는 그 답변에 만족하지 않았고 눈물이 맺힌 채 애처롭게 다시 물었다.“결혼했어요? 다른 사람이 있어요? 아직도 저를 좋아해요?”그녀가 물었을 때 처음보다 조금 더 고집스러워졌고 그 모습에 진석은 마음이 아팠다.진석은 그들이 헤어졌을 때 조은희가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소녀였다는 것을 기억했다.하지만 지금 조은희는 이렇게 직설적이고 노골적인 질문을 던지며 진석에게 묻고 있었다. 그녀가 점점 용감해질수록 그의 마음은 더 아팠다.진석은 더 이상 조은희를 놀리지 않았다.그는 조은희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진지하게 답했다.“결혼 안 했고 내 옆에는 다른 사람이 없어. 약혼녀는 다리 치료를 마친 후 올 상반기에 결혼할 거야. 아직도 좋아해. 많이 좋아해.”...조은희의 눈가는 더욱 붉어졌다.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그래도 그게 제가 진석 씨와 사귀겠다는 뜻은 아니에요. 아직도 화가 안 풀렸어요.”진석은 한 걸음 다가가 그녀 눈가의 눈물을 조심스럽게 닦아주었다. 5년이 지난 지금 조은희는 눈물이 많은 여린 여자가 되었다. 그는 예전 조은희가 항상 웃고 뒤에서 그를 끌어안으며 ‘진 선생님’이라고 달콤하게 불렀던 기억을 떠올렸다.그녀를 좋아하는 것 그것은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그때 그는 자신이 자격이 없다는 걸 알았지만, 여전히 그 감정을 시작했다. 그 후 조은희는 해외로 떠났고 진석은 B시에 남았다. 그 뒤 1년 동안 진석은 조은희가 아무 말 없이 떠난 것에 대해 그녀를 미워하기도 했었다. 자신을 먼저 유혹한 것도 조은희였기에 더 화가 났다.하지만 그가 나중에 생각하니 조은희는 겨우 20살이었다.진석은 조은희의 첫사랑이었고 그녀의 청춘 그 전부였다. 게다가 그녀는 진심으로 진석을 사랑했기에 그녀를 비난할 수 없었다.진석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울지 마. 알겠지? 우리의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 먼저 학교 관계자들과 저녁을 먹어야지. 도서관도 지어야 하잖아. 그곳도 우리가 갔던 곳이었지.”그는 조은희가 대답하기 전에
순간 조은희의 생각이 멈추고 머릿속이 새하얘졌다.조은희는 진석의 의도를 알 수 없었고 그가 굳이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이유도 이해할 수 없었다. 물어보고 싶었지만, 이미 진석은 그녀를 차에서 이끌어 내리고 있었다.학교에서 준비한 식당은 학교 근처에 있었고 과거에 조은희가 진석과 함께 와본 적이 있었지만, 그때는 별도로 방을 예약하지 않았었다.익숙한 장소를 다시 찾으니 묘한 감회가 밀려왔다.진석과 조은희는 나란히 안으로 들어섰다. 키가 185cm인 남자와 170cm인 여자는 잘생긴 남자와 아름다운 여자의 조합으로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들 사이의 과거를 아는 학교 관계자들은 자연스럽게 몇 마디 농담을 던지며 분위기를 띄웠다.조은희는 약간 불편한 기색을 띠며 가볍게 입을 열었다.“어린 시절엔 철이 없었죠.”반면 최근 몇 년간 사업을 통해 단련된 진석은 여유로운 미소로 담담하게 응대했다.“과거의 인연을 다시 이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은것으로 보여요.”그 말이 나오자 학교 관계자들은 그 의미를 바로 알아챘다. 진석이 조은희 때문에 온 것임이 분명했다. 그 1억이 전부 조은희 덕분이었기에 학교 관계자들은 일부러 조은희를 진석의 옆자리에 앉혔다. 그리고 조은희에게 음료만 권하면서 농담을 건넸다. “잠시 후 진석이 취하시면 조은희가 집에 데려다줘야겠어. 그렇지 않으면 큰일 날 수도 있잖아.”조은희는 그들의 관계를 설명하려 했지만, 탁자 아래로 내려간 그녀의 손이 진석의 손에 잡혔다.진석의 손길은 매우 부드러웠고 남녀 간의 감정이 담긴 것 같지 않은 마치 어른이 아이를 다정하게 어루만지듯 따스한 느낌이었다.조은희의 붉은 입술이 약간 떨렸지만,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잠시 후 손을 빼냈고 진석은 신경 쓰지 않는 듯 보였다. 그는 학교 관계자들에게 술을 따라주며 먼저 한 잔을 마셨다.교장은 여전히 예전의 그 교장이었고 진석의 이런 모습을 보고 깊은 감회에 잠긴 듯 말했다.“많이 변했구나.”감상적인 분위
그날 밤 조은희는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그 후 며칠 동안 그녀는 집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아버지 조은혁은 그 시간 동안 새로 들인 취미인 거북이들을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박연희는 그 모습을 보며 농담을 던졌다. “늙으니까 이런 거나 만지고 있지.” 그날 밤 조은혁은 거북이들을 모두 방생하며 자신이 아직 늙지 않았음을 증명하려 들었다. 심지어 한 마리 거북이 등에 ‘진석’이라는 글자를 새겨 넣으며 괜히 화풀이도 했다. 박연희는 그 모습을 보며 유치하다며 혀를 찼다. 조은희는 이 모든 일을 몰랐다. 그녀는 그저 아버지가 며칠째 자신에게 집에만 있지 말고 좀 나가보라며 걱정하고 있는 것만 알았다. 일주일이 지나며 휴가가 끝났고 조은희는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그녀는 대학에서 미술학과 학생들을 가르치며 그림 수업을 맡고 있었다. 가끔 그녀는 자신이 진석의 영향을 받은 게 아닐까 싶었지만 딱히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그래도 일하는 게 나쁘지는 않았다. 저녁 해 질 녘이었다. 조은희는 차 열쇠를 챙겼다. 차를 몰고 가 간단한 간식을 사서 집에 돌아와 드라마를 보며 먹을 계획이었다. 그녀의 일상은 단순했고 굳이 그것을 깰 생각도 없었다. 며칠 전에 그 일은 그냥 우연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저 진석이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저녁노을이 하늘을 붉게 물들였다. 조은희의 얼굴은 노을빛에 물들어 더욱 맑고 투명해 보였다. 그녀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차 문을 열려던 순간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은희야.” 그 목소리는 진석이였다. 조은희는 천천히 돌아섰고 그곳에 서 있는 진석을 보았다. 그는 몇몇 교직원들과 함께 기부에 관한 대화를 하고 있었다. 조은희는 학교의 오래된 도서관 건물을 새로 짓기 위한 기부를 논의 중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재회에 조은희는 순간적으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진석의 눈빛은 깊고도 복잡했다. 이 학교는 그들이 과거에 함께 있었던 곳이었
휴게실에서 조은희는 진안영의 품에 안겨 억눌린 채로 울고 있었다. 진안영은 그녀의 부드러운 검은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낮게 한숨을 쉬었다. “정말 좋아한다면 내가 대신 가서 말해줄게요.” 조은희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빠가 언니를 대역죄인이라고 할 거예요.” 진안영은 잠시 멈칫한 뒤 부드럽게 말했다. “진범 씨가 도와줄 거예요.” 조은희는 진안영의 품에 더욱 몸을 기댄 채 계속 울었지만 오늘이 조우찬의 첫돌 날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그래서 조금만 울고 말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누구나 젊은 시절에는 눈물을 흘리기 마련이니까. 그때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만 들어도 그 사람이 온화하고 점잖은 사람이라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진안영은 그가 누군지는 몰라도 자기 남편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가 문 열어볼게요.” 진안영이 문을 열었을 때 예상대로 문밖에는 진석이 서 있었다. 진안영은 그와 눈을 마주쳤지만 아무 감정 없이 그대로 서 있었다가 조용히 말했다. “두 분이 얘기하세요.” 진석은 고개를 끄덕였고 진안영은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 휴게실 안은 여전히 조은희의 울음소리만 가득했다. 그녀는 왜 이렇게 슬픈 걸까. 다시 그 사람을 만나는 게 이렇게 슬픈 일일까? 아니면 이 몇 년 동안 계속 슬픔에 잠겨 있었던 걸까? 진석은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5년 동안 떨어져 지낸 그녀에게 다가갔다. 사실 그들이 처음 함께했던 시간은 길지 않았다. 첫 만남 이후 바로 헤어졌으니까. 조은희는 그때 겨우 18살의 어린 소녀였고 5년이 지난 지금 그녀는 많이 성숙해졌지만 여전히 그때의 소녀 같은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언니...” 조은희는 그를 품에 안으며 애교를 부렸다. 처음엔 진안영인 줄 알았지만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진안영의 허리는 이렇게 강건하지 않았다. 분명히 남자의 허리였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름답고 온화한 듯하면서도 차가운 기운을 풍기
다음 해 8월. 조우현과 방유설의 아기가 첫돌을 맞았다. 방유설은 조우현에게 아들을 낳아주었고 그 아이의 이름은 조우찬으로 지어졌다. 이 이름은 큰아버지인 조진범이 지어준 것이었고 방유설은 이 이름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한편 조진범과 진안영의 막내아들의 이름은 조우진이었다. 조우찬과 조우진, 이 두 아이는 조씨 가문의 차세대 남자아이들이었다. 하지만 가문에서 첫 아이는 여전히 진아현이었다. 현재로서는 유일무이한 작은 공주님으로서 이 작은 소녀는 조은희 고모를 따라다니는 걸 좋아했다. 올해로 세 살 반이 된 진아현은 곧 유치원에 입학할 나이가 되었다. 조우찬의 돌잔치 날 조은희는 여전히 진아현을 데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 예상치 못한 옛사람을 마주쳤다.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해 그녀가 타국으로 떠난 이후로 가끔 스쳐 지나갈 뿐 이렇게 제대로 얼굴을 마주한 적은 없었다. 몇 년이 지났을까. 조은희는 차마 생각하기조차 두려웠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시간이 흐른 듯했다. 흐릿한 기억 속에서 벌써 4, 5년이 된 것 같았다. 진석은 옆에 아무도 없이 홀로 서 있었다. 그는 검은색 정장을 입고 행사장의 중앙에서 다른 이들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는 조씨 가문 사람들 사이에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예전의 일은 잊은 듯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조은희 진아현의 손을 잡고 있었고 저절로 눈물이 고였다. 진아현은 고개를 들어 고모를 바라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고모, 저 사람 좋아해요?” “아니야.” 조은희는 순간 당황하며 빠르게 대답했다. 하지만 진아현은 그 말을 믿지 않는 듯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그럼 왜 자꾸 그 사람만 보고 있어요? 물론 잘생겼긴 하지만 여자애들은 좀 더 절제해야 해요.” 조은희는 잠시 놀라며 물었다. “어디서 그런 걸 배웠어?” 진아현은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아빠가 그랬어요! 아빠가 항상 엄마한테 말했어요. 잘생겼어도 자기만 보면 안 된다고. 여
유이안의 말이 끝나자 조씨 가문 사람들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건 박연희였다. 그녀는 서둘러 유이안에 물었다. “유설이 상태는 괜찮아?” 유이안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외숙모, 걱정하지 마세요! 유설 씨 상태는 좋아요. 그냥 조금 놀란 것 같아요. 우현이가 안에서 곁에 있어 주고 있어요.” 박연희가 대답하기도 전에 옆에서 조은혁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뜻밖에 아이라니. 그게 좋은 거지! 좋은 거야.” 두 사람의 부부 사이는 원래도 좋았지만 부모라면 누구나 손주를 보고 싶어 하는 법이다. 게다가 조우현과 방유설의 외모가 워낙 출중하니 그 아이 역시 틀림없이 예쁠 거라는 생각에 조은혁은 그저 상상만으로도 격동되었다. 방유설을 닮은 귀여운 딸일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한참 지난 후 조우현이 방유설을 부축하며 나왔다. 방유설은 설탕물을 조금 마신 덕분에 정신을 차렸지만 집에 돌아가 며칠은 충분히 쉬어야 했다. 특히 임신 초기 3개월 동안은 모든 일을 미루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뜻밖에 찾아온 아이였지만 방유설은 그 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그녀는 한 손으로 아직 평평한 아랫배를 감싸고 다른 손으로는 조우현의 목을 끌어안으며 마음속 깊이 행복이 가득 차올랐다.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절. 방유설도 한 번쯤은 행복을 상상해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행복은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꿈에서조차 감히 바랄 수 없을 정도의 행복이었다. 고개를 들어 보니 조우현이 깊은 애정을 담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목소리가 약간 잠긴 채 말했다. “유설아, 우리에게 아이가 생겼어.” 결혼한 지 오래됐지만 조우현은 가끔은 철없고 유치한 모습을 보일 때도 있었다. 하지만 대체로 성숙했고 갈수록 더욱 성숙해졌다. 가끔 방유설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조우현은 젊은 나이에 결혼한 편이었고 자신의 가장 빛나는 시기를 모두 그녀에게 쏟아부은 것 같다고. 밤에 문득 잠에서 깨어날 때면 그는
몇 달 후 가을 10월쯤.방유설이 주연한 《청홍》이 대히트를 치며 영화 글러브 최우수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시상식 당일 날 조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모여 방유설을 응원하고 있었다. 진안영은 그녀가 부담을 느낄까 봐 다음에 받으면 되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의 말을 계속 전했다. 방유설은 매우 감동했다. 진안영이 갓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를 마친 후 이렇게 와서 자신을 응원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방유설은 진안영을 향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언니! 난 이미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상을 받았어요.” 진안영은 원래 차분한 성격인데 방유설의 말에 웃음을 터뜨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너는 우현이랑 있으면 사람이 이렇게 활발해져! 우현이가 사람을 잘 챙긴다고 네 아주버님이 자주 칭찬하셔.” 방유설은 조금 부끄러워하며 작은 목소리로 진안영과 얘기했다. 조은희는 사탕 하나를 건네며 말했다. “평소에 연기하면서 다이어트해도 이럴 때는 사탕 하나 드세요. 나중에 여우주연상 받고 저혈당으로 쓰러지면 안 되잖아요.” 방유설은 사탕을 받아서 입에 넣었다. 우유사탕이 입안에서 달콤하게 녹았다. 조은희는 살짝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딱 봐도 언니예요! 다른 여배우들보다 언니가 훨씬 이뻐요.” 조우현은 여동생을 흘깃 보며 말했다. “이건 외모로 결정되는 게 아니야. 외모만 보고 결정되면 긴장감이 없잖아.” 조은희는 달콤한 사랑을 떠먹은 기분에 속으로 한숨이 나왔다. 이때 최우수 남자주연상이 발표되었고 다른 영화의 남자 주연이 받게 되었다. 그 주인공은 바로 박도원이었다. 그는 국내에 없어서 촬영 감독이 대신 상을 받으며 발언 중 여러 번 방유설을 언급했다. 갑자기 설원 커플 팬들이 들썩이며 이 장면을 모든 플랫폼에 퍼뜨렸다. 설원 커플 팬클럽에서 활동 중인 팬들은 102만 명에 달한다. 그렇게 인기 있는 커플이었다. 조우현은 아내의 직업을 존중하는 너그러운 모습을 보여주며 그저 코를 머쓱할 뿐이었다. 그리고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