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선우가 고개를 숙여 그녀를 바라보더니 손바닥으로 그녀의 가는 허리를 감싸더니 안아 들었다.그렇게 그는 조은서의 옆을 그대로 지나치면서 얼음장처럼 차가운 말을 내뱉었다.“이따가 손님들 좀 배웅해 줘.”봄날 오후.햇살이 쏟아졌지만 조은서는 전혀 따뜻함을 느끼지 못했다.그녀의 남편은 지금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녀에게 수모와 망신을 안겨줬기 때문이다.‘다행이다, 지혜를 부르지 않아서. 아니면 선우 씨랑 바로 싸웠을 거야.’주위에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유선우의 선택으로 봤을 때 그는 곧 조은서와 이혼할 거라고 다들 생각했다.이때 서미연이 다가오더니 분노의 얼굴을 보였다.“지우가 너무한 거 아니에요? 유부남을 유혹하기 위해 이런 망신스러운 짓을 하다니!”조은서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너무 지우 씨 탓하지 마세요. 혼자만 잘못한 게 아니잖아요. 선우 씨가 그럴 기회를 주지 않았다면 지우 씨도 선우 씨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겠죠.”서미연은 그런 조은서가 너무나도 가슴 아팠다.그녀는 조은서를 타이르며 말했다.“지우 부모님에게 잘 말해두겠어요. 그리고 선우 씨의 편을 들려는 건 아니지만 선우 씨가 아직 은서 씨를 신경 쓰는 게 눈에 보여요. 하지만 남자가 다 그렇죠, 뭐. 집에서 온기를 느끼지 못하면 밖에서 즐거움을 찾으려고 하잖아요. 은서 씨가 아직 응어리를 풀지 못하고 선우 씨에게 차갑게 대하는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선우 씨도 고통스럽겠죠.”조은서가 살짝 고개를 들었다.서미연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조은서는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두 사람 워낙 젊은 나이에 결혼했으니 이 정도 어려움은 있을 거예요. 나랑 그이보다는 낫죠. 우리 그이는 어떻게 구제할 수 없어요. 밖에서 다른 여자랑 아들 낳은 것도 전혀 모르고 있었죠.”그 얘기를 들은 조은서는 얼굴이 굳어졌다....이지우가 병원에 입원했다.하지만 그녀를 기다리는 건 유선우가 아닌 이지훈이었다.이지훈이 병실에 들어서고는 잔뜩 어두워진 얼굴색을 한 채 동생이 덮고 있던 이불
저녁 무렵, 조은서는 고인들을 시켜 별장 안팎을 깨끗하게 청소하도록 했다.청소를 끝낸 후 그녀는 허리가 시큰 해났다.30분 동안 뜨거운 물로 찜질했는데도 통증은 여전히 완화되지 않았다.내려가 저녁 식사를 하려던 참에 고용인은 조심스럽게 물었다.“아니면 좀 더 기다려볼까요? 혹시 유 도련님께서 오셔서 식사를 하시겠는지.”말이 끝나기 바쁘게 시계 종소리는 7번이나 울렸다.이미 저녁 7시였다. 조은서는 덤덤하게 말했다.“식사하시죠. 기다릴 필요 없습니다.”고용인은 그녀가 기분이 언짢은 걸 눈치채고는 한 가지의 요리를 올릴 때마다 은근한 태도를 보였다.“사모님께서 제일 좋아하시는 쏘가리 탕수육입니다. 게다가 제철이라 가장 맛있을 때입니다. 얼른 드셔보세요. 사모님.”조은서는 가볍게 대답하고 생선 한 점을 집어 맛보았다.그러나 입가에 대자마자 속이 메스꺼워 그녀는 입을 막고 급히 화장실로 달려갔다. 한참을 헛구역질해도 아무것도 토해내지 못했다.고용인은 다소 긴장한 듯 밖에서 문을 연신 두드리며 말했다.“사모님, 어디 편찮으십니까?”“전 괜찮아요.”조은서는 한참 후에야 화장실에서 나왔다. 다시 테이블 앞에 앉았을 때는 이미 입맛이 사라진 지 오랐다. 온 테이블의 음식은 냄새만 맡아도 느끼했다.조은서는 바보가 아니었다.그녀는 뒤늦게 알아채고는 넋이 나간 채 제자리에 서 있었다.한참 뒤, 그녀는 천천히 수저를 내려놓고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저 나갔다 올게요.”고용인은 그녀가 직접 차를 운전하고 나가려는 것을 보더니 걱정되어 말했다.“기사님보고 데려다달라고 하는 건 어떠세요? 이미 너무 늦었는데.”조은서는 현관에 서서 신발을 갈아신으며 덤덤하게 말했다.“금방이면 돼요.”고용인도 더 생각하지 않았다.조은서는 차에 올라탔고, 핸들을 잡고 있는 그녀의 손은 약간 떨렸다.그녀는 요행을 기대했지만, 임신한 것 같은 여자의 촉이 강렬하게 들었다.20분 후, 그녀는 다시 별장으로 돌아갔다.2층 침실 화장실의 불빛은 환히 빛나 있었다.
그는 외투를 벗어 던지고 어두컴컴한 침실로 들어갔다.유선우는 조은서의 뒤에 누워 사람에 이불까지 끌어안았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가녀린 목선에 닿은 목울대는 참지 못하고 위아래로 움직였다.그의 몸은 뜨겁게 달아올랐다.조은서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를 밀어내지도 않았다. 귓가에는 그의 허스키한 목소리만 들려왔다.“난 그녀를 좋아한 적 없어. 난 그저 그녀의 눈을 바라보는 게 좋았을 뿐이야. 그녀의 눈빛은 마치 예전의 너처럼...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았어. 은서야, 너 같은 여잔 정말 처음이야. 그 누구도 너처럼 나를 아프게 하고 내 모든 자존심을 바닥까지 떨어뜨린 적이 없었어. 그래도 난 너를 여전히 놓아줄 수 없나 봐. 사실은 포기하려고 한 번쯤 생각은 해봤어. 그저 여자일 뿐인데 굳이 이렇게 집착할 필요가 있을지.”그는 그녀를 꼭 껴안고, 손바닥으로 그녀의 얇은 등을 가볍게 쓰다듬었다.그녀를 자기 쪽으로 밀어붙이고 이마를 맞댄 채 눈을 지그시 감고 말했다.“은서야, 나 너무 힘들어. 널 사랑하기도 미워하기도 한 걸 나조차도 몰랐나봐...”유선우는 그녀의 모든 것을 사랑하지만, 마음속에 다른 남자를 품고 있는 그녀가 또 밉기도 했다. 유선우는 말을 마치자마자 그녀의 붉은 입술을 덮치고는 질척하게 빨아댔다. 그는 오랫동안 그녀를 건드리지 않았다. 그의 동작은 뜨겁기도 하고 또 간절하기도 했다. 조은서는 배 속의 아이가 신경 쓰여 덮치려는 그의 어깨를 밀어내고 말했다.“선우 씨... 안 돼요...”그는 깊은 눈빛으로 바라봤다.“안돼? 그럼 누가 되는데?”그 사람만 생각하면 그의 눈빛은 더욱 깊어졌다. 그러고는 조은서를 침대에 눕혔다. 그는 그녀를 거칠게 대하지 않고 되려 남자의 방식으로 그녀가 즐기게 했다. 그녀를 소리 지르게 하고, 아찔하게 하고 또 느낄 수 있도록.유선우는 술에 잔뜩 취해서 한 번도 대한적 없던 방식으로 그녀를 마음대로 짓이겼다.조은서는 침대 시트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그는 엎드린 채 그녀의
조은서가 카톡을 열어보자 박연준이 보낸 파일을 그녀보고 프린트하라고 했다.그녀는 잠시 뒤로하고 고개를 들더니 유선우랑 얘기하려고 했다.봄볕은 따사로웠지만 조은서는 온몸이 차가웠다.그는 자신의 남편을 바라보며 더구나 잘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가볍게 말했다.“선우 씨, 당신은 늘 내가 당신을 남편으로 안 본다고 했죠? 그럼 당신은? 당신은 날 와이프로 생각해요? 당신이 밖에서 다른 여자들과, 그리고 이지우랑 뭐가 있다고 쳐요. 그건 뭐 날 고의로 엿먹이려고 그런다고 하죠. 그럼 백아현은, 우리 사이에서 무슨 역할을 하고 있는지 당신이 가장 잘 알 거예요. 게다가 지금 그녀를 위해 해외까지 나가 같이 있어 주려고 내 말 한마디 들을 시간도 없네요...”유선우는 걸음을 멈추고 한참 후에야 몸을 돌려 빤히 그녀를 바라봤다.“하고 싶은 말이 뭔데?”조은서가 막 입을 열려던 참에 그의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이 울렸다.유선우는 생각도 하지 않고 이내 전화를 받았다. 아마 해외에서 걸려 온 전화인 듯했다. 그는 조은서를 힐끗 보고는 계단을 올랐다...다이닝 룸에는 조은서 홀로 남아있었다.고용인은 따뜻한 말투로 타일렀다.“사모님, 우선 아침 식사부터 하시죠!” 조은서는 전혀 입맛이 없었다. 그녀는 문득 박연준이 보내온 서류를 떠올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조금 있다가 먹을게요.”고용인은 걱정에 가득 찼다.조은서는 2층으로 올라가 곧장 서재로 향했다. 그러고는 파일을 프린트했다.그녀는 손을 뻗어 가지려는 순간 실수로 LP 턴테이블을 재생했다. 순간 쥐 죽은 듯 조용했던 서재는 마스네의 ‘명상곡’으로 울려 퍼졌다.조은서는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이 곡, 왜 이렇게 익숙하지?’그녀는 LP를 꺼내보니 자신이 몇 년 전 어머니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었던 게 맞았다. 나중에는 사라져 버렸는데... 이게 왜 유선우한테 있지?문 앞에서 유선우의 차가운 소리가 들려왔다.“뭐 하는 거야?”그는 천천히 걸어 들어와서는 그녀와 반 미터
유선우는 서재에 오래도록 머물러 있었다.그는 부서진 LP판을 집어 들더니 한참을 쳐다본 후에야 살며시 휴지통에 버렸다. 그는 풀이 죽어 소파에 기댄 채 머리를 살짝 젖혔다. 불빛이 눈 부신지라 그는 손을 뻗어 가렸다.손바닥은 은근히 얼얼해 났다. 아까 그가 얼마나 힘주었는지를 마치 일깨워주는 듯했다.그가 조은서를 때리다니...눈을 감은 유선우의 눈앞엔 조은서의 마지막 뜻 모를 웃음만이 보였다. 그 웃음은 눈물을 머금고 있었다... 귀한 집안 출신의 그녀는 조씨 가문에서 애지중지 키운 딸인데 어찌 누구한테 맞아본 적 있겠는가.그는 그녀를 사랑한다면서 그녀를 때렸다.때마침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진 비서한테서 걸려 온 전화다.“유 대표님, 차는 이미 대기시켰습니다. 지금 내려오시겠습니까?”유선우는 덤덤하게 말했다.“하루만 미뤄줘.”진 비서는 아무 생각 없이 입을 열었다.“하지만 대표님, 전문의 협회에서 대표님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유선우의 목소리는 더없이 차가웠고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내가 하루만 미루라고 말하잖아 지금.”말이 끝나기 바쁘게 그는 전화를 끊었다. 진 비서는 아래층에서 핸드폰을 보며 곁에 있는 고용인에게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혹시 대표님께서 또 사모님과 싸웠습니까?”그녀는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당시 둘이 재혼할 때 그녀는 두 눈으로 직접 유 대표님께서 엄청 기뻐하는 것을 봤는데, 아마 조은서를 엄청 아끼실텐데...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을까?유선우가 내리친 그 한대의 뺨 소리를 고용인은 아래층에서 어렴풋이 들었다.그녀는 재삼 망설이다가 털어놓았다.“아까 윗층에서 다툼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대표님께서... 사모님의 뺨을 한 대 내리친듯합니다.”진 비서는 그자리에 멍해 있었다....2층 침실,조은서는 조용히 창가에 서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못난 모습을 남한테 들키고 싶지 않았다.이 바닥에서 그녀처럼 남편한테 뺨 맞은 경우는 드물고도 드물었다. 소문이라도 퍼지게 되면 비웃음당할 정도였다.
유선우는 차에 앉은 채 고개를 들고 2층을 바라보며 낮게 물었다.“사모님께서 집에 계십니까?”고용인은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어르신께서 몸이 편찮으셔서 사모님께서 돌봐주고 계십니다. 이미 여러 날이나 계속 가셨습니다.”유선우의 눈빛은 다소 부드러워졌다.그는 고용인더러 캐리어를 위층으로 옮기라고 하고, 자신은 차를 몰고 유씨네 저택으로 향했다...유선우는 고용인보고 알리지 말라고 하고 어르신의 침실로 곧장 향했다. 침실 안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어르신은 베개에 기대어 눈을 지그시 감고 정신을 수양했다. 그 옆에는 조은서가 침대에 엎드려 있었다... 그녀는 잠든 것 같았다.유선우는 어르신을 깨우지 않았다.그는 조은서 곁에 앉더니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살며시 쓰다듬었다. 그녀는 많이 수척해졌는데, 원래부터 앙증맞던 얼굴은 그의 손바닥보다 작았다...조은서는 잠에서 깼다. 그녀는 초췌해진 그의 모습을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았다.그녀는 그의 터치가 싫었다. 몸을 뒤로 기울였지만 유선우는 그녀의 목덜미를 잡더니 낮고 부드러운 소리로 물었다.“아직도 아파?”조은서는 덤덤하게 말했다.“얼굴 씻고 올게요.’그녀는 말을 마치자마자 그를 밀어내고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향했다.유선우가 막 따라가려던 참에 어르신은 잠에서 깼다. 어르신은 바싹 마른 손으로 따라가려던 손자를 잡고는 몹시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아까부터 깨어 있었다! 너희들이 말하는 걸 듣고서야 네가 은서를 때린 걸 알았다. 선우야... 은서는 조씨네 가문에서 곱게 키운 딸이다. 네가 이젠 감정이 없다면 그만 그녀를 돌려보내거라...”유선우는 잠시 멈칫했다.그는 어르신께서 이렇게 말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전부터 어르신은 줄곧 둘이 잘되기를 바랐었다.어르신은 여전히 눈을 감은 채 말했다.“나는 단지 아픈 거지 장님이 아니다... 은서는 전혀 즐겁지 않단다. 선우야... 네가 정말 조금이라도 은서를 좋아한다면 이젠 그만 돌려보내거라.”
차 안은 어두컴컴했고 서로의 숨소리는 가빠졌다.조은서는 여전히 그의 다리에 앉아 있었는데 그의 회색 슬랙스는 그녀의 새하얀 피부를 더욱 돋보이게 하였다... 그에 의해 벗겨진 스타킹은 그녀의 가느다란 발목에 걸려 있어 분위기를 더욱 야릇하게 했다.한참 후에야 유선우는 정신을 차렸다...그가 아빠가 되다니!그가 그렇게도 애타게 원했었는데, 어쩌면 정말 여자애일지도 모른다.하지만 이런 순간에 그는 그녀를 안아줄 용기조차도 없었다. 그는 한 달 전, 그녀가 할 말이 있다고 하던 날을 떠올렸고, 그는 서둘러 해외로 나간다고 그녀를 입도 열지 못하게 한데다가 그들은 백아현 때문에 말다툼까지 했다... 그리고 그는 조은서의 뺨을 한 대 때렸다.조은서는 임신한 몸으로 그에게 뺨을 맞았다.유선우의 목울대는 살짝 위아래로 움직이더니 기다란 손가락으로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그때는 이미 흔적도 알리지 않았지만 그는 다 쉬어가는 목소리로 다시 한번 물었다.“아직도 아파?”조은서는 여전히 대답하지 않고 되려 덤덤한 채로 있었다.“자리에 앉게 해주세요.”유선우는 눈빛이 가늘게 드리워졌다.그는 그녀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하지만 조은서가 그랑 눈이 마주치는것을 외면하는 게 뻔했다.그녀는 얼굴을 돌리고 또다시 한번 말했다.“내려주세요.”유선우는 이내 그녀의 목덜미를 끌어안더니 그녀더러 자신의 어깨에 기대라고 했다. 이어 그는 손을 뻗어 그녀의 옷을 정리해 줬다. 아마 몇 년 동안의 부부생활을 해온 덕에 그의 길쭉한 손가락은 아주 영활했다.정리하고 나서도 그는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그의 손은 애틋하게 그녀의 평평한 아랫배를 쓰다듬고 있었다. 한참을 그러다가 그는 그녀의 귓가에 입술을 갖다 댔다. 그리고 쉬어가는 목소리로 속삭였다.“은서야, 미안해.”처음부터 끝까지 조은서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이 한마디의 말을 들은 그녀는 눈가가 촉촉해졌지만 여전히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그녀에게 준 상처는 너무도 깊었고,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는
고용인은 멈칫하더니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큰 사모님과 어르신께선 아직 사모님께서 임신한 사실을 모릅니다. 대표님께서 알려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아니면 큰 사모님께서 대표님과 이지우 아가씨를 이어주려고 하고 있습니다. 큰 사모님께선 대표님이 와이프가 있는 몸이라는 것도 다 잊으신듯합니다. 게다가 곧 아빠까지 되시는데!”유선우는 기분이 한결 좋아진 듯 덤덤하게 말했다.“알겠어요.’그는 담배를 꺼버리고 위층으로 올라가려 했다. 마침 새하얀 솜털 뭉텅이가 계단으로 뛰어 내려왔다. 설리였다... 설리는 오랜만에 유선우를 보는지라 반가운 마음에 그를 보고 몇 번 짖었다.유선우는 허리를 숙여 그를 안고서 위층으로 향했다.그는 설리를 목욕시켜 주고 털도 말려주고서 깨끗하고 뽀송한 채로 침실로 돌려보냈다.조은서는 이미 씻고 나왔다.그녀는 실크 잠옷을 걸치고 침대에 기대서 ‘임신 출산 육아 대백과’라는 책을 보고 있었다. 그녀는 골똘히 집중한 채 유선우가 침실에 들어온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유선우는 손을 올려 셔츠 단추를 하나씩 풀어가며 와이프의 담담한 얼굴을 지그 바라봤다. 아무래도 그녀가 예전 같지 않다고 느꼈다.그녀는 확실히 차가웠다.하지만 또 그렇게 차갑지도 않게 느껴지는 게 적어도 가끔은 그를 상대해 주기도 했다.어느 책에서 썼던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여자가 일단 따지지도 않고 화내지도 않는다면 남편에 대해 극도로 실망한 것이라 상대하기조차도 귀찮다는 뜻이라고 했다...유선우는 욕실로 들어가 뜨거운 물이 쏟아져 내릴 때 그는 조은서가 바로 그런 케이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머리속에서 떨칠 수 없었다...씻고 나서 그는 욕실에서 나와 보니 드레스룸에 놓여있던 캐리어는 이미 다 정리되어 있었다.그는 고용인이 위층에 올라오지 않았다고 확신했다.그렇다면 조은서가 정리한 것이다...그녀가 잘해줄수록 유선우는 머릿속이 더 복잡했다. 그는 그녀가 따지고, 심지어는 때리고 욕하고 했으면 더 나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처럼 미적지근한 게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