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있는 힘껏 몸을 일으켰으나, 그들의 손에 눌렸고, 손과 발을 다 쓰며 죽어라 몸부림쳤지만, 점점 힘은 다 빠져나갔다. 결국 커다란 역겨운 손들이 나의 몸을 터치했고 티셔츠가 찢겨나가는 소리가 들렸다...옷이 찢어지고, 나는 비명을 질렀다. 그들의 억압에서 벗어나려 할수록 온몸이 주체를 못 하고 부르르 떨려왔다.“비켜... 손 치워... 살려 줘...”나는 절망에 갇혀 울부짖었고 힘이 다 빠져 더는 저항도 못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남자들은 늑대와 같이 달려들었고 내가 몸부림친다고 해서 그만하지는 않았다. 커다란 손 하나가 이미 나의 청바지 단추를 풀었고, 다른 한 남자가 바지를 아래로 잡아당겼다. 바지가 벗겨질 때쯤 ‘쾅’하는 소리가 밖에서 났고 큰 진동을 동반했다. 나는 누군가가 나를 구해주러 온 것임을 직감하고 힘껏 소리쳤다. “살려... 살려주세요. 살려줘요...”이어서 지진이라도 날 것 같이 방이 흔들리며 또 한 번 쿵 하는 문소리가 났다. 나는 나를 잡고 있는 그 손을 내 손으로 할퀴고 긁으며 떼려고 아등바등했다.“이거 놔... 살려 주세요...”그때, ‘펑’하고 또 한 번 큰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더니 곧 두 사람이 달려 들어왔다. 그 중 한 사람이 나를 누르고 있는 남자를 주먹으로 얼굴을 내리쳤고, 다른 두 남자도 뒤엉켜 육탕전이 벌어졌다.나는 겁에 질려 소리를 지르며 마구 손으로 긁어대기 시작했다.‘ ... 아... 구해줘요...’“한지아 씨. 겁내지 말아요, 저예요!”누군가 내 팔을 잡더니 나를 든든한 품에 안았다. 나는 펑펑 울었다. 낯익은 그의 목소리가 나의 귓가에 속삭였다.“걱정하지 마요. 내가 있어요!”온몸이 뜨거웠던 나는 그를 꼭 껴안고는 염치없게 들릴 수 있는 말을 중얼거렸다.“날 안아주세요. 제발 놓지 말아요...”그의 얼굴이 내 눈앞에서 아른거렸고, 그 사람은 힘줘서 껴안고 있는 내 손을 애써 풀어헤치며 코트를 벗어 나를 감싸 안았고 일으켜 줬다.“병원으로 가요.”“싫어요... 구해줘요.
링거를 다 맞을 때쯤, 내가 배현우에게 먼저 돌아가라고 하기도 전에, 이미연이 부리나케 뛰어 들어왔다.“지아야! 이게 대체...”그녀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멈춰 서더니 내 옆에 있는 배현우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눈을 크게 뜨고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딱 봐도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것 같아서 나는 바로 그녀의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어떻게 이렇게 빨리 찾아왔어?”“지아 씨가 의식을 잃었을 때 전화가 왔었고 내가 대신 받았어요. 너무 걱정하길래 대충 상황을 얘기해줬어요.”배현우가 대신 답을 해줬고 이미연은 그런 배현우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전화를... 받은 사람이 당신... 이였어요? 누구신지? 소개 좀.”빨개진 얼굴을 한 나는 얼른 두 사람을 소개해 줬고, 둘은 의례적으로 악수를 청했다. 이미연은 궁금증을 못 참고 추궁하듯 물었다.“그 외투도 이분 꺼?”나는 뭐라도 들킨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고 배현우를 보며 미연이가 나를 챙기면 된다고 그만 들어가 보라고 했다. 배현우는 몇 마디 당부만 하고 먼저 병실을 나섰다. 이미연은 그제야 모든 과정을 꼬치꼬치 물었고 나는 간단명료하게 다시 한번 반복해서 상황을 설명했다. 이미연은 미친 듯 화를 냈고 나한테 이제 증거도 확보했는데 왜 그 미친 여자를 경찰에 신고하지 않는지 물었다. “그건 너무 싸게 후려치는 거니까!”“내가 원하는 건 신연아를 다시 옛날로 돌려보내서 곤경에 처하는 게 뭔지를 보여 주는 거야. 그 인간이 본인이 살아야 할 삶이 뭔지 느끼게 한 다음에 감방에 보내 반성하게 만들어야지.”나는 평정심을 잃지 않고 말했다. 나는 이미연에게 나를 회사로 데려다 달라고 했다.사실 신씨 노부부가 사는 본가로 가려다가 사무실에서 일을 처리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신씨 집안에 전화해서 신호연 사무실로 불렀다. 차에서 내리기 전, 이미연은 마음이 놓이지 않는지 또 물었다.“혼자 괜찮겠어, 정말?”“걱정하지 마! 나 할 수 있어.”말을 마치고 차 문을 열고
신호연은 무슨 일이 있음을 예감했는지 차가운 얼굴을 하고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한지아, 이게 대체 무슨 소란이야?”나는 홱 하고 고개를 번쩍 들어 앞에 서 있는 신호연을 째려보며 말했다.“소란을 피운다고? 내가? 신연아가 오면 알겠지. 이 소란은 누가 피우는 건지?”신호연은 강경한 나의 태도에 고개를 돌려 이미연을 쳐다보았다. “이미연, 이 사람 대체 왜 이러는 건데!”이미연은 팔짱을 끼고 내 뒤에 서서 시큰둥한 얼굴로 신호연을 바라보았다.“나한테 물으면 난 누구한테 물어볼까? 이따 여동생 오면 물어보면 되겠네.”순간, 사무실 분위기는 상당히 냉랭해졌고, 다들 내가 좋은 의도로 이러는 게 아님을 눈치챘다.마침 신연아가 요염하게 걸어들어왔고 아직도 얼굴엔 승전의 표정이 담겨 있었다. 사무실 안의 많은 사람들을 보고 그녀도 약간은 놀란 듯했고 나를 보며 쌀쌀맞게 물었다.“새언니, 이게 무슨? 뭐 하자는 거예요?”눈앞에서 원수를 보게 되니 나의 분노는 더 치밀어 오르는데, 신연아는 되레 아무 일 없는 척했고, 그 모습을 보니 갈기갈기 찢어 놓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 나는 눈에 쌍심지를 켜고 쌀쌀맞게 말했다.“뭐 하자는 거냐고? 일은 신연아 네가 저질러 놓고. 나한테 물으면 안 되지. 네가 한 일을 찬양이라도 해줘, 내가? 왜? ㄴ겁이나?”“하... 내가 뭘 겁씩이나! 남자한테 안겨 간 건 내가 아니라 한지아 당신 아닌가?”그녀는 눈을 희번덕거리며 뻔뻔스럽게 적반하장으로 나를 내몰았다.“오빠. 두 시간 전쯤에 새언니가 웬 남자한테 안겨 갔고, 바람이 났는지 뭔지 여러 사람 보는 데서 그것도. 두 시간 동안 어디서... 뭔 짓을 했는지 알 게 뭐야!”신연아의 말은 내가 진짜 뭔 짓을 한 것처럼 들렸다.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연은 놀라운 속도로 신연아의 뺨을 때렸다. 아무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반응하기도 전에 힘을 다해 세차게 때렸다.신연아는 ‘악’하는 소리와 함께 비틀거리며 손으로 얼굴을 감쌌고 응석 부리듯 말했다.“아!.
나는 서강훈을 남겨야 했다. 결정적인 순간에 그는 내 입을 대신할 수 있었다.내가 그 사람들이 모두 남아야 한다고 고집하지 않는 이유는, 스스로 한 발짝 물러서려는 것이고, 신호연을 더는 물러설 수 없는 상황으로 몰아넣을 수 없기 때문이다.하지만 뜻밖에도 신호연의 아버지인 신건우가 입을 열었다.“무슨 일인데 사무실까지 찾아오는 거야, 신중하지 못하게. 집에 가서 얘기하면 안 되는 거야?”신건우가 어르신의 자세로 훈계하려 했다.“점점 꼴이 말이 아니구나.”나는 그의 말을 듣고, 조금도 사양하지 않고 그를 바라보았지만, 그래도 예의를 갖춰 말했다.“아버님, 저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말이 아닌지 긴지는 곧 보시면 알 것입니다. 하지만 잘 듣고 잘 보세요. 누가 말이 아닌지!”“한지아, 누구랑 얘기하는 거야?”신호연이 버럭댔다. 내가 신 씨 집에 시집온 이후 이렇게 말한 적이 없었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내가 얌전하게 말하는 것에 그들은 더 익숙했다.나는 벌떡 일어섰다.“신호연, 내가 얌전하게 말하는 것에 적응됐지? 나 지금 예의를 한껏 갖춰서 말하는 거야. 사람을 너무 업신여기지 마, 정말 내가 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꼭두각시라고 생각하는 거야?”사실 이 말을 하면서 나는 입술이 계속 떨리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신호연은 천우 그룹의 프로젝트를 확신했기 때문에 나를 대하는 태도가 더 강경하다는 걸 나는 잘 알고 있었다.국민 남편이라는 예전의 이미지를 벗고 단물만 빼먹고 버리려는 수작이었다.신호연은 내 행동에 깜짝 놀라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노려보며 내 생각을 짐작했다.“한지아, 여기서 말썽 좀 그만 피워, 내가 뭐 했어? 남자한테 안긴 건 내가 아니라 너야, 네가 어떤 여자인지 내가 모를 것 같아? 네가 내 오빠 몰래 다른 남자를 만나고, 뻔뻔하게 여기 와서 헛소리하는 거야?”신연아는 오늘 내가 강경한 태도를 보이자 조심스럽게 나를 향해 소리치고는 신건우를 바라보며 말했다.“아빠, 우리 가요, 뭐 들을 게 있다고 그래요?”“왜!
아니나 다를까 그녀의 말에 신호연은 안색이 좋지 않은 채 나를 매섭게 바라보았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내가 하고 싶은 말이 뭔지 알고 있잖아! 난 당신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데?”나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신호연을 바라보았다.“그런 짓을 했으면서 조만간 탄로 날 거라는 걸 몰랐어? 진작에 마음의 준비를 했어야지!”내가 구출 당했을 때 신연아가 현장에 있을 줄은 몰랐다.시어머니도 말속에 숨은 뜻을 알아듣고 나를 쳐다보았다.“지아야, 화내지 마, 쟤가 또 너를 건드렸구나, 아이고... 이 천벌 받을 놈아...”“애한테 무슨 말이야?”신건우는 자식을 두둔하며 할머니에게 소리쳤다.“무슨 일인지도 모르면서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아녀자가 집에 가만히 있지 않고, 나와서 뭐 하는 거야?”나는 신건우의 이런 말을 듣고 차갑게 웃으며 헛소리하는 사람은 사실 신건우라고 생각했다.그는 신연아를 늘 아껴왔다. 그의 이런 사랑이 없었다면 신연아가 이렇게까지 전락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하... 아들 잘못은 아버지 가르침이 잘못 된 거라고 하더니 틀린 말이 아니네요.”나는 비굴하지도 거만하지도 않게 한마디 했다.“다른 사람을 뭐라 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딸과 아들을 잘 관리해야 발언권이 있는 거예요!”“뭐라고?”신건우가 나를 향해 무정하게 소리쳤다.“신호연, 얘가 바로 너의 그 잘난 아내야? 공공연히 윗사람에게 대들다니, 그래, 잘났다!”아버지한테 혼나서인지, 아니면 믿는 구석이 있다고 생각한 것인지 신호연은 갑자기 나를 쳐다보더니 화가 잔뜩 난 얼굴로 나를 향해 호통을 쳤다.“한지아, 너 점점 막 나가는구나! 걸핏하면 큰소리치고, 인상을 구기고, 이젠 감히 대들기까지 하는 거야? 정말 버릇을 잘...”“버릇이 뭐? 당신 정말 뻔뻔하구나?”나는 신호연의 말을 끊었다.“당신이 그녀의 버릇을 키워줬다면 오히려 말이 되겠지. 그래서 저렇게 뻔뻔스럽게도 파렴치한 짓을 하고 있잖아.”“할 말이 있으면 해. 괜히 그녀를 비난할 필요
전화 속의 목소리는 또렷하고, 잡음 하나 없이, 다크 바의 모든 것을 되돌렸다. 신연아의 방탕한 웃음소리가 사무실 안에서 메아리쳤는데 너무 또렷해서 사무실이 다크 바인 듯 했다.나의 눈은 줄곧 신호연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전화 녹취록의 말은 점점 더 듣기 거북해졌다. 나는 비록 한 번 겪어봤지만, 다시 들으니 여전히 소름이 끼치고 가슴이 아팠다. 눈물이 내 얼굴을 따라 주르륵 흘려내려 하얀 티셔츠 앞자락을 적셨다.“한지아, 젠장, 날 물 먹이려고? 널 죽여버릴 거야!”신연아는 눈앞에서 일어난 일에 놀라서 덤벼들었다.이미연은 미리 준비하고 있다가 발을 들어 그녀를 걷어찼고, 신연아는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 이글거리는 두 눈으로 째려보았다. 그러더니 소파 앞의 재떨이를 집어 들고 나한테 내던졌다.내가 얼른 한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크리스털 재떨이가 땅에 부딪히더니 큰 소리를 내며 산산이 조각났다.방 안에 있던 사람들은 나만 빼고 모두 아연실색했고, 시어머니는 놀라서 소리쳤다.“벌 받을 거야...”신호연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계속 마른 침을 삼켰다. 내가 지켜보는 가운데 그는 눈을 피해 더는 나를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갑자기 그는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더니 손을 뻗어 티테이블에 있던 내 휴대폰에 손을 대려고 했다.나는 재빨리 휴대폰을 주워 뒤로 물러섰고, 이미연은 이내 내 곁으로 달려와 내 앞을 가로막았다.나는 신호연을 바라보았다.“어때? 짜릿해?”“... 계속 들어...”나의 미친듯한 히스테리 비명에 놀란 건지 모두가 흠칫하더니 다시 안정을 되찾았다.나의 울부짖음, 몸부림, 그리고 살려달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 녹음은 계속되었다... 더는 들을 수가 없어, 나는 울먹이며 신호연을 바라보았다.“너 아직... 할 말이 남았어? 신호연!”나는 울음을 꾹 참으며 신건우를 돌아보았다.“신건우 씨, 이래도 내가 말이 안 돼요? 아들 잘못은 아빠 탓이라고 했던 말에 반박할 수 있어요? 당신이 잘 가르친 아들과 딸이 같은
나는 태연자약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내가 그와 무슨 일이 있는지 네 오빠에게 물어봐야지!”“무슨 말이야? 변명하려는 거야?”신연아가 나를 매우 급하게 쳐다봤다.서강훈은 흠칫 놀라며 얼른 나를 바라보았다.“지아 누님, 그만 해요!”나는 그의 암시를 알아들었다. 그는 내가 감싸지 못하고 그를 드러낼까 봐 두려운 것이다. 하지만 이 두 쓰레기를 토벌하려고 하는데, 그를 팔 필요가 있겠는가?나는 서강훈을 힐끗 보고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가 신연아를 보며 또박또박 물었다.“내가 비 오는 밤 공항에 혼자 갇혔을 때, 그는 너와 함께 내 침대에서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지 않았어?”“아이가 고열로 입원했을 때, 그는 나에게 돈을 한 푼도 남기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너와 호텔에서 격렬한 밤을 보냈어! 설마 네가 보내준 열정적인 사진의 장면을 잊었어?”신연아는 당황한 듯 신호연을 쳐다보다가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나는 경멸의 미소를 지었다.“아니면 당신들이 한 비열한 짓이 너무 많아서 기억도 안 나는 거야? 그래?”“천우 그룹의 프로젝트를 따내기 위해 천우 그룹의 배현우 씨에게 신흥건재의 독점 대리인을 강력히 추천했고, 계약을 따냈을 때 새 차를 사주지 않았어?”“배현우 씨와 무슨 관계냐고?”나는 갑자기 예쁘게 돌아서서 신호연을 쳐다봤다.“신호연, 어떻게 생각해? 무슨 사이일 것 같아?”나는 배천우와의 만남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지만, 그가 매번 나를 위기에서 구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신호연은 무감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다 알고 있었어?”나는 서글프게 웃으며 조용히 되물었다.“계속 얘기해야 할까?”이미연은 욕설을 퍼부었다.“정말 뻔뻔스럽군. 세상에 별일이 다 있네, 이런 일은 또 금시초문이야. 신호연 넌 정말 대단해, 원래 난 네가 그냥 남들 하듯 밖에서 여자들이나 놀고 바람이나 피우는 줄 알았는데 네 여동생과도 자는 거야?”이미연의 말은 귀에 거슬렸지만 신씨 가문은 말문이 막혔다.이미연은 과장된 표정
갑자기 신호연이 울부짖는 소리가 처절하게 들려왔다.내가 반응하기도 전에 갑자기 나는 누군가가 나에게 달려들어 내 갈 길을 막고, 커다란 체구로 내 앞에 털썩 무릎을 꿇는 것을 보았다.“지아야, 여보... 가지 마, 내가 잘못했어! 내가 잠시 미쳤어... 가지 마!”그의 손이 내 손을 꽉 잡았다. 그는 얼굴을 젖히고, 미안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여보... 나 정말 잘못했어!”그는 본인 스스로 뺨을 두 대 때렸다.“고칠게... 다시는 미친 짓을 하지 않을 테니 우리 다시 시작하자!”신연아는 아랑곳하지 않고 달려가 신호연을 잡아당겼다.“오빠...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천우 그룹과 계약하면 헤어지겠다고 약속했잖아, 사랑한 적 없다고, 우리 집만의 미래를 위해 그런다고 했잖아. 어차피 이제 다 아는데 뭐가 무서워?”나는 신연아를 차갑게 쳐다보며 신호연에게 물었다.“당신 그렇게 얘기했어?”“그녀의 헛소리를 듣지 마! 난 널 떠나지 않을 거야, 우리에겐 아직 콩이가 있어!”신호연은 고개를 들고 초조한 표정으로 설명했다.“우리야말로 가족이야, 다시 시작하자!”“오빠... 뭘 더 무서워해?”신연아는 신호연을 애타게 바라보며 말했다.“정말 날 버리겠다고?”신호연은 신연아가 자신의 거짓말을 폭로하자 화가 치밀어 올라 신연아의 손을 뿌리치고 무릎을 꿇은 채 두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여보...”“어떻게 다시 시작하고 싶어?”나는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내가 할 수 있는 한 다시는 널 저버리지 않을 거야!”그는 맹세코 말했다.“좋아! 집, 차, 그리고 당신의 재산은 모두 내 이름으로 돌려!”나는 망설임 없이 말했다.“그렇지 않으면, 나는 아까 뱉은 말대로 할 거야!”신호연의 눈빛이 움찔하더니 이내 굳어지며 싸늘해졌다.신연아는 갑자기 나를 힘껏 밀쳤다.“... 죽어 버려!”모든 것이 너무 갑작스러워서 나는 미처 반응하지 못하고 중심을 잃고 뒤로 넘어졌다.이미연이 비명을 지르며 손을 뻗어 나를 잡으려 했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나는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다 마지못해 고개를 들어 서강민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했다.“서강민 씨, 먼저 들어가시죠. 언니가 깨서 서강민 씨를 보면 또 흥분할 것 같은데... 지금 같은 상황에 언니가 회복하는 게 제일 중요하잖아요.”그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는 않았지만, 나는 한마디 더 보탰다.“어떤 일들은 천천히 해야 해요. 언니한테 시간을 좀 주세요. 서로 생각을 정리해 봐요.”서강민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않고 깊은 잠에 빠진 도혜선을 한참이나 지켜보았다. 발길을 돌리기 전에도 아쉬움에 한 번 더 뒤돌아보며 나한테 말했다.“고생해 줘요.”나도 담담히 답했다.“제가 해야 할 일인걸요. 언니에게 시간을 좀 줘요. 언니도 회복할 시간이 필요할 수 있잖아요.”내가 말하는 회복이 뭔지는 서강민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건 도혜선이 마음에 입은 상처였다. 오늘 도혜선의 행동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그녀의 상처는 아물 수 없을 것이다. 언급만 해도 피가 흘러내릴 만한 상처였다.잠시 후, 서강민은 한발 물러섰지만, 눈길은 여전히 도혜선에게 머물러 있었다. 평온해 보이는 모습 아래에서 어떠한 파도가 휘몰아치는지 나는 몰랐다.한참 전 도혜선이 했던 말들은 마디마디가 주옥이었다. 모두 그녀가 마음속으로만 담아두었던 것들이었고 또한 서강민의 약점이었다. 얼마나 아플지는 서강민 본인만 알고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쓰디쓴 독주도 그는 혼자 삼켜내야만 했다.도혜선의 눈가가 파르르 떨려와 깨어나려는 낌새가 보이고 나서야 서강민은 조용히 병실을 나갔다.나는 마음이 아파와 한숨을 내쉬며 손을 뻗어 도혜선의 손을 맞잡았다.인제야 하루 종일 배현우에게서 연락이 없었다는 것이 생각났다. 그쪽에는 어떤 상황인지, 김우연에게서는 소식이 없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도혜선을 보니 아직 깨어나지 않은 것 같아 살며시 그녀의 손을 놓고 일어서려 했을때, 그녀는 다시 나를 잡으며 미약한 목소리로 말했다.“가지 마...”나는 너무 놀라 얼른 그녀를 향해 몸을 돌렸다.
‘서강민은 본인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기나 하는 걸까?’“당시의 사고는 내가 저지른 거야. 그녀도 나 때문에 다쳐서 지금처럼 된 거고… 나는 좋은 남편이 아니야. 아내가 식물인간이 되었는데 나는 다른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으니 말이야...”서강민은 여기까지 말하며 후회하는 기색을 내비쳤다.“그녀를 마주할 때마다 너무 죄책감이 들고 고민스러워. 나 또한 발버둥 쳐봤지.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나의 일탈을 받아들일 수 있어 해. 그녀한테 정말 미안한 일이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내가 널 사랑하고 있다는 거야...”“강민 씨!”도혜선은 꾸짖는 듯한 말투로 그의 말을 잘랐다.“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당신 아내가 듣고 있을 거예요. 저를 끌어들여서 같이 속죄할 생각하지 마세요. 저는 당신의 구세주가 아니에요. 저는 그냥 사람답게 살고 싶은 평범한 여자라고요. 저 좀 그냥 내버려둘 순 없어요?”도혜선은 말하면 할수록 화가 치밀어 올라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하얗게 질린 얼굴이 일그러지며 그녀는 한 손으로 본능적으로 가슴을 움켜쥐었다. 나는 깜짝 놀라 그녀 앞으로 갔다.“혜선 언니, 움직이지 마! 위험해...”늑골 골절과 뇌진탕이 있는 환자다 보니 이러한 행동은 그녀에게 너무나도 위험했다.도혜선은 손을 들어 그녀를 안으려고 하는 한지아를 제지했다.“제가 오늘 한 말이 아직도 이해가 안 되나요? 서강민 씨, 저의 인생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당신한테 묶여 당신의 부속품이 되었었는데 저도 자존심이 있어요. 더 이상 당신처럼 지난날의 죄책감을 짊어지며 답답하게 살아가지 않을 거예요.”도혜선은 여전히 분노에 차 외치고 있었다.“매일 제 앞으로 와 지난날의 행동에 대해 속죄하라고 일깨워 주실 필요 없어요! 당신을 보면 저는 지난날 모든 서울 사람의 웃음거리가 되었던 치욕적인 과거가 떠올라요. 당신은 마음 가는 대로 해요. 당신은 아내와 했던 약속을 지켜야 해요.”말을 마친 도혜선은 숨이 차올랐다. 너무나 고통스러워 보였다.
도혜선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계속하여 들려왔다.“당신은 아무런 부담 가질 필요 없어요. 저 같은 여자 마음속에 담아두지 않아도 돼요.”그녀는 자기비하적인 말을 내뱉었다.”선아...”“설사 강민 씨가 와이프와의 약속을 안 지킨다 해도 당신의 신분과 지위로 당신에게 더 어울릴만한 사람 충분히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저는 당신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에요. 하물며 당신네 부부 눈에는 저는 그냥 염치없고 미천한 사람일 뿐이죠. 저 같은 사람은 본처가 되기에 적합하지 않아요. 사모님이라는 호칭도 어울리지 않죠.”“나는 그렇게 생각한 적 없어. 오해하지 마.”서강민은 조급함에 한 발 앞으로 나서며 해명하려 했다.하지만 도혜선은 손을 들어 그를 막아섰다.“강민 씨... 해명하지 않아도 돼요. 당신의 행동이 모든 걸 설명해 주고 있어요! 장담하건대 아직 당신들이 어떤 의도로 얘기하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바보가 된 건 아니에요. 그녀는 정말 대단하네요. 죽을 때까지도 제가 이길 수 없는 사람이었어요. 그녀는 아무리 병상에 누워있어도 고상한 사람이고 저는 그냥 미천한 사람일 뿐이니 말이에요.”도혜선은 말을 내뱉으며 입가에 처량한 미소를 비췄다. 누가 봐도 가슴 아픈 미소였다.“이전의 저는 확실히 허례허식에 차 있는 사람이었지만 저도 성장했어요. 정신 차렸어요. 당신 앞에 있는 저의 진정한 가치가 어떤 것인지 깨달았어요. 저는 하나의 도구, 들러리뿐이었지만 원망하지 않았어요.”그녀는 여기까지 말하고 한숨 돌렸다. 얼굴빛은 아까보다 더 창백해져 있었다.“하지만 이제 저는 자존감을 챙기며 살고 싶어요. 누군가에게 의탁하지 않고 쓰레기같은 취급을 받더라도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며 살고 싶어졌어요.”점점 더 차가워지는 도혜선을 바라보며 서강민은 답했다.“혜선아, 나는 널 한 번도 무시한 적 없어. 나는 그냥 내가 뭘 하든지 네가 다 이해해 줄 줄 알았어.”도혜선의 서강민의 말을 듣고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안색은 더 창백해져 있었다.“이해? 당신이 어떤 말을
방금 허투루 한 말이 어머니의 진실인가 싶다. 보아하니 어머니가 나를 속이는 일이 있는 것 같았다. 마음속의 의문점이 점점 많아졌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식사를 마치고 차씨 가문의 할머니께 말씀을 드린 후, 위층으로 돌아가 옷을 갈아입고 도혜선을 보러 가려고 준비했다.그리고 팔도 겸사겸사 검사하려고 했다. 차에 앉고 나서 배현우한테 전화를 걸었는데 받지 않았다. 이 이른 아침에 뭐 하러 갔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김우연 쪽에 무슨 소식이 있는 건 아닌지 걱정했다.'생각해 보니 이렇게 빠르진 않겠지? 몇 시간밖에 안 됐는데.'병실에 도착하자마자 도혜선이 노발대발하는 장면을 포착했다. 병실에는 도혜선과 서강민 두 사람만 보이고 이미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내가 들어서자 분위기가 좀 이상하고 심상치 않는 것을 느꼈다.침대 옆 머릿장에는 보온병이 놓여있다. 서강민은 오늘도 도혜선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주러 온 것 같다.서강민은 침대 앞에 떡 하니 서있었고 침대에 있던 도혜선은 차가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도혜선은 내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 같았다.상황을 정리하려고 다가가서 서강민에게 인사를 하고 도혜선에게 다가갔다. "오늘은 좀 어때?""별로야."도혜선은 차갑게 대답하더니 또 말을 건넸다. "지아야, 손님 좀 배웅해 줄래?"난감했다, 도혜선은 서강민을 내쫓으라고 하는 거였다. 난 당연히 그 뜻을 알고 있다. 조심스럽게 서강민을 쳐다보았다. "혜선아, 꼭 이래야 하니?"서강민은 씁쓸한 표정으로 도혜선을 바라보며 물었다."네! 서강민씨, 저는 이미 분명히 말했고 두 번 다시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도혜선은 내가 그 자리에 있다고 해서 서강민의 체면을 세워주지 않았다.참지 못하고 웃어 버렸다. "언니, 화 그만 내고 진정 좀 해. 초조해하는 거 알아, 점차 좋아질 거야. 강민씨랑 얘기 좀 하고 있어. 나는 팔 검사해야 돼서, 금방 돌아올 거야!"나는 핑계를 대고 떠나서 그들에게 자리를 비워주었다.
배현우는 나의 우울한 모습을 보고 말했다. "그리고 내가 없는 동안에 회사 일도, 한심로얄의 마지막 한방도 둘 다 포기할 수 없잖아요. 신예 쪽 일도 있고, 전희가 다시 살아날 기회를 얻지 않도록 조심해야 돼요. 지금 모든 게 중요한 시기이니까요.""지금 그 누구도 아버지보다 중요하지 않아요! 수십년간 도망치면서만 살았는데 죄책감도 가지고 있었을 거예요, 분명 아주 괴로워하고 있을 거예요. 그리고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무도 모르고 있는데, 내가... 내가 딸로서, 난..."배현우는 내 말을 듣고 나서 침대에 누워 나를 꼭 껴안고 말했다. "일단 내일 소식을 기다려 봅시다. 김우연 쪽에서 어떤 정보를 얻었는지 보고 결정합시다."배현우는 나의 어깨를 툭툭 쳤다. "제 말 듣고 일단 자세요, 내일 일어나서 먼저 할 일들을 처리하고 준비하고 있으세요, 만약에 상황이 좋으면 내일 같이 데리고 갈게요, 당신 마음 충분히 이해해요."배현우가 지금 나를 위로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다. 내가 기분 나빠하는 모습을 보지를 못한다. 그 말을 들으니 마음이 좀 편해지는 것 같았다. 배현우의 따뜻한 품에 안기며 눈을 감고 내일 먼저 무엇을 처리해야 할지 생각했다.근데... 눈을 떠서 배현우를 쳐다보는데 배현우도 잠에 들지 않았다. "현우씨... 할머니가 보존하고 있는 CCTV를 보여주시겠어요?"'그 영상을 꼭 보고 싶었다, 알고 싶었다. 어머니가 어떻게...'"알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자세요, 나중에 보여 드릴게요. " 팔짱을 끼더니 분명히 나를 얼버무리고 있는 것이다. 배현우가 그 장면을 내게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밤이 깊었고, 비까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꼼짝도 하지 않은 채 배현우의품에 안겨 점점 잠이 들었다. 아침이 밝았다. 날씨는 여전히 흐렸다. 배현우는 이미 곁에 없었고, 손을 뻗어 그가 누워 있던 곳을 만졌다. 이미 차가운 걸 보니 배현우는 일찍 침대에서 일어났나 보다.'무슨 소식이라도 왔나?'이
"할머니가 이번 사건을 피할 수 있었던 건 당시 큰 병을 앓은 것에 대해 감사해야 했어요. 제 생각에는 반은 꽤병인것 같아요. 직접 사표를 쓰고 나서도 서둘러 호주를 떠나지 않았다는 게 참 슬기로운 선택이었어요.""네?"너무 놀라서 몸 둘바를 몰랐다.배현우는 인정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는 호주를 떠나지 않으셨어요. 그곳에 머물면서 배씨 저택의 인기척을 살피다가 배씨 저택의 요상한 소문들이 완전히 자취를 감춘 뒤에야 조용히 호주를 떠나셨어요."나도 모르게 할머니의 메커니즘에 감탄했다."저도 그때 상황을 잘 몰라서, 할머니도 몸이 허약했고 내 행방을 알아 볼 길이 없어 그 비밀을 계속 지켜왔었나봐요. 부하들이 할머니를 찾고 나서도 여전히 어리석은 척을 하고 있었지 뭐에요."배현우는 그제야 미소를 지었다."할머니께서 저를 두눈으로 직접 보고서야 그걸 꺼냈어요."배현우의 말을 듣고 나니 할머니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러던 중 배현우가 나를 쳐다보더니 나의 지친 모습을 보고서야 손을 들어 대문을 열어 장벽들이 천천히 열리는 걸 볼 수 있었다.차는 왔던 길을 따라 경원으로 다시 돌아갔다. 벌써 자정이 되어 우리 둘은 차를 세우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층으로 올라가 방에 돌아왔다.'우리를 배신한 소인이 두 집안을 풍비박산 시켰다니. 오늘 밤 일어난 모든 일들은 듣고도 믿기지 않았다.'간단히 씻고 걱정 가득채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태어나서 얼굴도 한번 못 본 아버지가 어디 있는지, 밥은 먹고 다니는지를 걱정해 발 뻗고 자지 못했다. '한강인이랑 한걸은 이미 잡혔는데, 우리 아버지는? 그의 처지는 어떤지.''한씨 부자가 그저 아버지를 인질로 삼아 그들의 안전을 확보하려 했다면 왜 배현우는 그곳의 환경이 복잡하다고 했을가.''이유는 간단하다. 누군가 아버지를 미끼로 삼으려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누구를 보고 싶으려는 걸가?''배현우? 아니면 배유정?'생각할수록 더욱 걱정이 됬다.아버지의 이번생은 이미 충분히 힘들다.어머니랑 서로
나는 걱정스레 배현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배현우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계속 말했다.“후에 목격자 어르신을 찾고서 한강인을 자세히 조사하니 한강인은 이 모든 것이 일어난 뒤에야 천우 그룹을 떠난 거였어요. 지아 씨도 알잖아요. 그때 당시 천우 그룹은 아직 배유정 손에 있었어요.”“현우 씨의 말은 한강인은 배유정 과도 사이가 틀어졌단 말인가요?”나는 추측하며 물었다.“우리가 조사할 때 이상한 단서 하나가 나왔어요. 한동안 배유정도 한강인을 찾았고 심지어 한강인에 대한 추살령도 내렸어요! 참 이상해요. 배유정은 왜 한강인을 죽이라고 지령을 내린 걸까요?”“이유는 하나뿐이죠. 즉 한강인이 분명 무엇을 알아냈거나? 아니면 어떤 일에 참여하였거나?”나는 대답했다.배현우는 고개를 끄덕이었다.“진백이 죽임을 당했듯이 이 안에는 분명 남들한테 들키면 안 되는 비밀이 있는 거겠죠. 우리는 이 단서를 따라 계속 추적해 보니 한강인의 혐의가 점점 더 드러나더군요. 그리고 그의 아들 한결도 같이 도망쳤어요.”“그러고 보니 이 안에는 분명히 또 다른 요소가 있겠네요!”나는 사색에 잠겼다.“그래서 우리는 추측했죠. 한강인은 확실히 이 사건이랑 연관이 있고 둘이 도주하는 과정에 서로 연락하는 빈도를 보아서 부자 둘은 서로 다른 곳에 있는 것으로 판단했어요.”“그리고 한강인이 도망 다니는 그 시기에 그의 모친이랑 누나 모두 영문도 모른 채 실종되었어요. 지금 보니 그분들은 아마 이미 이 세상을 떠난 것 같네요. 이 때문에 한강인은 고두리에 놀란 새가 돼서 끊임없이 도망치며, 이 또한 한강인이 지금의 상태로 되게 한 원인인 것 같아요. 사실 한강인은 원래 지금의 모양이 아니거든요.”배현우의 말을 듣자 나는 저도 모르게 아까 보았던 한강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한강인은 극도의 공포 속에서 엄청 정신적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아니면 다른 기타 방식으로 정신을 잃지 않게 버티고 있거나. 그렇지 않으면 사람이 저렇게 말라죽을 정도일 리가 없다.“그리고 한 가
배현우는 나를 한눈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었다.“맞아요. 제 씨 어머니가 얼마나 총명한지 그 누구도 생각지 못했어요. 제 씨 어머니는 책 속에 카메라를 숨겨두고 만약 사고가 난다면 여기에 있는 이 물건을 숨겨두었다가 훗날 믿음직스러운 사람에게 주라고 할머니한테만 똑똑히 당부해 두셨어요!”나는 코가 찡긋거리더니 눈에는 눈물이 핑 돌았다.“보아하니 제 씨 어머니는 분명 위험이 닥칠 거라는 것을 미리 예감했던 거네요!”배현우는 안색이 조금 어두워지더니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갑자기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제 씨 어머니는 만약 자신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할머니더러 애들을 데리고 허씨 가문으로 가라고 할머니한테 당부하셨어요.”나는 끝내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고 코를 훌쩍이었다.배현우는 자기 손을 꽉 움켜쥐며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참 생각지도 못한 게 모든 것이 제 씨 어머니의 예상대로 일어났고 감춰둔 카메라에 모든 것이 담겼어요! 근데 할머니는 제 씨 어머니의 뜻대로 우리 둘을 순리롭게 허씨 가문으로 데려가지 못했어요.”“급한 나머지 할머니는 고씨 가문에만 소식을 전했고 그마저도 나쁜 놈들보다 동작이 빠르지 못해 그들이 지아 씨를 데려간 후였어요. 그래서 저만 고씨 가문에서 데려갔어요.”나는 눈물을 닦아내면서 그때 당시의 내가 얼마나 힘없고 무력했을지 상상조차 할 수가 없었다. 갑작스럽게 어머니가 돌아가신 데다가 배현우와 억지로 갈라지게 되었다.배현우는 내 손을 꽉 잡으며 손에 힘을 주었다.나도 배현우 지금의 심정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날 배현우는 눈앞에서 억지로 끌려 나가는 나를 보기만 하고 반항할 수도 없는 그런 무능력함은 아마 배현우한테 평생 잊지 못할 아픔이 되었을 것이다.차 안은 갑자기 조용해졌고 자동차가 앞으로 가는 소리밖에 안 들렸다.한참 뒤에야, 배현우의 잠긴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이런 것들을 찾은 후에야 비행기 추락 사고가 떠올랐고 이로써 모든 것들이 비로소 한강인을 추측하게 했으며 그 이후에 우리는 한강인
이 소식은 그야말로 나를 입이 떡 벌어지게 했다. ‘나를 데려간 게 어떻게 그 사람이지?’“맞아요. 우리는 유일한 목격자를 찾았어요. 그 당시 그쪽 산에서 약재를 캐는 어르신이신데 그때는 중년인이셨어요. 하늘의 뜻인지, 우리가 수년을 찾아 헤맨 끝에야 비로소 이 참극의 전부를 직접 목격한 증인을 찾아냈어요.”“그 어르신 정말로 전체 과정을 모두 목격하셨나요?”나는 믿어지지가 않았다. 배현우 얘네가 얼마나 큰 공을 들여야 바다에서 바늘 건지는 것 같은 일을, 그것도 몇 년이 지났는데도 당시의 목격자를 찾아낸 걸까.“어르신의 말로는, 당시 자기는 산 위에서 내려오는 도중에 잠시 계단에서 쉬고 있었는데 그러다가 아래 도로에서 일어나는 광경을 목격했다고 해요. 알다시피 외국에서는 약재를 캐는 일은 엄청 드물어요.”배현우는 엄청 뿌듯한 말투로 말했다.“우리 형제들이 엄청나게 고생 많았어요. 십수 년을 하루같이 귀찮음을 마다하고 사건 지역을 탐방하러 다니면서 일말의 흔적도 소홀히 하지 않았어요.”나도 믿어지지 않아 입을 열었다.“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어요. 참 노고가 많았어요.”“어르신이 말씀하기를 당시의 장면은 엄청 아슬아슬했대요. 부딪힌 차는 거의 굴러떨어지기에 일보 직전이었는데 후에 폭발했대요. 어르신은 우리의 차가 폭발한 뒤 키 크고 마른 한 남자가 차에서 내리는 걸 똑똑히 봤다고 해요. 그리고 그 남자는 길 왼쪽의 언덕 아래로 달려가 무언가를 찾았대요.”배현우는 그때 당시의 장면을 묘사하였다. 나는 머릿속으로 그때 당시의 상황을 필사적으로 상상해 내려고 하니 머리가 또 아파 났지만, 배현우가 말을 멈출까 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당시에 일어난 이 모든 것, 전부 나한테는 엄청난 매력이었다. 나는 지금 내가 찾아낸 산산조각 난 퍼즐들을 하루빨리 제 위치에 맞춰서 하나의 완전한 그림을 만들어 내고 싶었으며 그때 당시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을 되찾고 싶었다.그 뒤로 난 어떻게 Z 국의 만덕동에서 떠돌게 되었고 또 어떻게 지금의 한지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