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807화

작가: 류한나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10-29 19:42:56
여이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난 멀쩡히 살아 있잖아. 그 사람들에 비하면 난 이미 충분히 잘살고 있어.”

그 말에 온지유는 코끝이 시큰해졌다. 뜨거운 액체가 두 눈에서 흘러나올 것 같았다.

고개를 젖히며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감정이 북받쳐 오르는 느낌이 싫었다.

“그럼 이것만 물을게. 내 독은 어떻게 해독한 거야? 해독제는 어디서 난 거냐고.”

온지유는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여러 명이 열심히 해독제를 찾으러 다녔지만 아무런 수확도 없었다. 그런데 여이현이 무심코 가져와 그녀의 목숨을 살려주었다.

너무도 이상했다.

여이현은 한참 침묵했다.

“그 해독제는 내가 애원해서 받은 거야.”

온지유가 물었다.

“누구한테 애원한 건데?”

“아버지.”

온지유는 다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아버지?”

“응, 네가 아는 내 아버지 아니고 나를 낳아주신 친아버지한테.”

여이현은 냉담하게 말했다.

온지유는 뜻밖이었다.

“친아버지를 찾았어?”

“아니, 아버지가 나를 찾아오셨어.”

온지유는 너무도 뜻밖이었다. 하지만 여이현의 어투에서 여이현이 그다지 친부를 찾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여하간에 살면서 단 한 번도 본 적 없었으니 친부에게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

그러나 그런 친부를 받아들인 건 오로지 그녀의 해독제를 위해서였다.

이런 생각에 온지유는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가 여이현의 발목을 잡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널 힘들게 했네.”

그러나 여이현이 말했다.

“아니, 그런 적 없어. 네 목숨은 나에게 아주 중요한 일이었으니까.”

온지유는 침울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친아버지랑 거래한 거야?”

“응.”

여이현이 답했다.

“난 아버지랑 거래했어. 3개월만 지나면 난 더 이상 여이현이 아니게 될 거야. 내가 가진 모든 건 전부 너한테 줄 생각이야. 네가 나 대신 지켜줘. 그건 전부 할아버지가 나한테 주신 거니까. 나 대신 잘 보관하고 있어. 그거면 남은 생도 걱정 없이 살 수 있을 거야.”

이건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잠긴 챕터
앱에서 이 책을 계속 읽으세요.

관련 챕터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808화

    “해도 돼?”여이현이 잠긴 목소리로 나직하게 말했다.“정말 후회 안 하겠어?”그는 온지유에게 동의를 구하고 있었다.온지유가 충동적인 마음으로 하지 않길 바랐다.“응, 후회 안 해.”온지유는 그를 보았다.“결혼 생활 그래도 꽤 오래 했는데, 적어도 이번엔 진짜 부부로 살아보고 싶어.”그녀는 그에게 별다른 요구가 없었다.여하간에 사랑했던 사람이었고 그의 아내기도 했으니까.비록 두 사람 사이엔 아이도 있었지만.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아쉬웠다. 그와 이렇게 끝을 마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알았어.”여이현은 몸을 구부리더니 온지유의 입술에 키스했다.그의 행동은 아주 조심스럽고 부드러웠다. 온지유를 하늘이 내려준 소중한 선물처럼 말이다.온지유는 그의 손길을 받아들이며 느끼고 있었다. 그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황홀한 기분이 들었고 온몸이 찌릿찌릿했다. 이것이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였다.너무 편안하고 몸을 감싸 안는 손길이 부드러워 그녀는 물속에 있는 것 같았다.가끔 감전된 것처럼 몸이 짜릿짜릿해 그녀는 저도 모르게 야릇한 소리를 내고 말았다.여이현은 거친 숨을 내쉬었다.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그는 최선을 다해 억제하고 있었다. 행여나 그녀가 다칠까 봐 말이다.그러나 피가 뜨거워지며 충동이 머릿속을 지배해 버렸다.시뻘게진 두 눈이 증명하고 있었다. 그가 이미 이성을 잃어버렸음을. 온지유의 팔을 잡은 손에 힘을 세게 주지 않았지만 붉은 손자국을 남기고 말았다.그는 그녀의 몸 곳곳에 흔적을 남겼다.온지유는 흘러나오는 소리를 참으며 고통을 즐기고 있었다.밤새 내내 그에게 시달렸다.가끔은 뜨거운 열기에 몸이 후끈거리기도 했고 부드러운 그의 행동에 편안하기도 했다....이불이 유난히도 푹신했다.온지유가 다시 눈을 떴을 때 온몸이 구름 위에 있는 것처럼 붕 뜬 것 같았다. 심지어 아프기도 했다.눈을 떴을 때 보이는 건 천막이었다.그녀가 살던 집이 아니었다.황홀했던 어젯밤도 꿈이 아니었다.어젯밤 그녀는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809화

    아침부터 그들은 전부 호출되었다.온지유에게 천막에서 나올 시간을 준 것이다.용경호의 말에 온지유는 어젯밤 뜨거웠던 열기가 떠올라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그럼에도 그녀는 담담하게 답했다.“네, 아주 잘 잤어요. 그럼 하던 거 계속하세요.”“네, 알겠습니다.”용경호도 이상함을 눈치챘다.비록 어젯밤의 그 일들이 꿈이 아니었지만 여이현이 보이지 않으니 뭔가 전부 꿈처럼 느껴졌다.여이현은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아 온지유는 더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다만 그녀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여이현이 돌아오면 그들이 제일 먼저 그녀에게 알릴 테니 말이다.그녀는 아주머니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갔다. 행여나 약초 말리는 일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도착하자마자 아린의 흥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어머, 왜 이제야 왔어요? 어젯밤도 늦게 잔 거죠? 신무열 선생님이 오셨어요!”신무열을 언급하는 아린은 아주 흥분한 상태로 보러 가려고 했다.“다른 사람들은 이미 나갔어요. 다들 선생님이 어떤 신기한 물건을 가져왔나 구경하러 간 거예요. 우리도 얼른 따라가요! 어서 가요!”신무열이 왔다는 소식에 온지유는 사실 마음이 놓였다.적어도 무사하다는 얘기였으니까.신무열이 떠난 뒤 동맹군이 쳐들어왔기에 행여나 그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까 봐 걱정되었다.온지유는 아린의 뒤를 따라가며 물었다.“신무열 씨는 매번 너희들한테 선물을 사 오는 거야?”“네! 맞아요!”아린은 웃으며 말했다.“신무열 선생님은 아주 멋진 사람이에요. 얼굴도 잘생기고 저희한테도 잘해줘서 마을에 사는 여자들 대부분 선생님을 좋아하고 있어요. 하지만 선생님은 결혼할 생각이 없대요. 전 적당한 나이가 되면 선생님에게 시집가고 싶지만 제가 한참 부족한 사람이라는 거 알고 있어요. 그래도 전 선생님이 좋아요!”온지유는 생각에 잠긴 채 말했다.“그럼 돈도 많겠네.”신무열은 이곳으로 와 글을 가르치는 사람이었다.다른 목적도 없었고 그저 이 마을에 사는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쳤다.돈에도 딱히 관심이 없었다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810화

    그들도 신무열이 걱정되었다.그러나 신무열이 말했다.“날 걱정할 필요는 없어.”온지유는 신무열을 빤히 보았다. 마을이 동맹군에게 무너져도 딱히 별다른 감정이 없어 보였다.이미 알고 있는 것 같았다.신무열은 시선을 돌려 온지유를 보았다.“어때요. 여긴 적응됐어요?”“네, 아주 잘 적응하고 있어요.”온지유가 답했다.“마을 사람들과도 잘 지내고 있고요.”“그럼 다행이네요.”신무열의 눈빛이 살짝 변하더니 또 물었다.“대장님이란 사람이 온지유 씨와 같은 나라에서 온 사람이라면서요. 저도 봤어요. 다들 학교를 다시 지어주고 있는 것을요.”그러더니 미묘한 말을 했다.“화국 사람들은 참 정이 넘치는 사람들인 것 같네요. 아무런 조건도 없이 마을 사람도 구해주고 말이에요. 심지어 원하는 보수도 없잖아요.”그는 다소 비꼬며 말했다. 아마 이런 군인들이 있다는 것을 믿지 못하는 듯했다.게다가 그의 인식을 바꾸어 버렸다.온지유는 한마디 거들어 주었다.“저희 나라에서는 일반인들의 물건을 약탈하라고 군인이 있는 게 아니거든요. 군인들은 당연히 사람들을 지켜줘야 하는 거죠. 이렇게 해야 더 평화롭고 좋은 나라를 만들어 갈 수 있는 거거든요.”그녀는 아주 자신만만하게 말했다.전쟁으로 난장판이 된 이곳을 보며 화국이 얼마나 좋은 나라인지 뼈저리게 느껴졌다.신무열은 그녀의 말에 놀란 듯 살짝 멍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다시 미소를 지었다.“부럽네요. 다들 행복하게 살 수 있잖아요.”다른 나라들보다는 확실히 행복지수가 높았다.“죄송해요. 저한테 넘긴 임무를 제가 잘 수행하지 못했어요.”온지유는 다시 말을 이었다.“마을뿐 아니라 학교도 무너져 내렸거든요. 그래서 아이들한테 공부도 가르치지 못했었어요. 이젠 무열 씨가 돌아왔으니 무열 씨가 직접 해주면 되겠네요.”“네.”신무열이 답했다.“전 내일 야외 수업하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지유 씨도 구경하고 싶으면 와서 구경해도 돼요.”온지유는 고개를 끄덕였다.“참, 이건 네 선물이야.”그는 이내 아린에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811화

    “진심에서 나오는 미소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김명무가 율을 달랬다.그러나 율의 눈빛은 차갑게 가라앉았다.“그럼 뭐가 진심인데요? 아빠도 날 딸로 받아들였는데 왜 날 동생으로 받아주지 않는 건데요? 어릴 때 사이가 그렇게 좋았으면서 왜 지금은 변한 거냐고요!”“어쩌면 아가씨가 돌아온 게 아직 적응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김명무가 계속 말을 이었다.“도련님께선 그동안 계속 아가씨만 찾고 계셨으니까요.”율은 차갑게 코웃음을 폈다.“아니요. 오빠는 그냥 날 동생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거예요!”김명무는 설명하려고 했다.“그건 아닐 겁니다...”“그런 게 아니면 왜 다른 여자한테는 저렇게 잘해주는 건데요? 심지어 선물도 챙겨주고 말이에요! 나도 없는 선물을 저 여자가 받고 있잖아요!”율의 눈빛이 사나워지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왜 그런 거냐고요! 당장 저 여자를 죽여요. 저 여자가 죽고 나면 누구한테 잘해주는지 지켜볼 거예요. 내가 갖지 못한 걸 다른 사람도 가질 수 없어야 해요!”“네, 알겠습니다!”율은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원망과 증오의 감정이 흘러넘쳤다. 지금 그녀의 모습은 꼭 사냥감을 노리는 독사의 모습 같았다.신무열은 자기 할 일 하러 갔다.선물을 받은 온지유는 이곳에 남아 아이들과 놀아주고 있었다.아이들은 당연히 온지유를 받아들였고 아주 좋아했다. 호기심이 가득했던 아이들은 궁금한 것을 전부 물어보았다.어쩌면 아이의 엄마가 될 뻔했던지라 온지유는 아이들에게 인내심이 아주 컸다.온지유는 아이들에게 이것저것 가르치고 나니 피곤해졌다.어젯밤 푹 쉬지 못했던 터라 옆에 있던 테이블에 엎드려 조금 눈을 붙이려 했다.그녀가 깨어났을 때 해는 이미 저물었다.아이들은 돌아간 지 오래였다.“어머.”온지유는 시간이 이렇게 빨리 흘러갈 줄은 전혀 몰랐다.몸을 일으키는 순간 자신의 몸 위로 셔츠가 덮여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셔츠엔 은은한 우디향이 났다.옷을 끌어당겨 확인했다. 셔츠는 신무열의 것이었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812화

    화살은 단단한 나무에 제대로 박혔다.그러나 온지유는 여전히 갑자기 날아온 화살에 놀란 상태였다.한참 지나도 진정할 수 없었다.신무열은 미간을 찌푸린 채 나무가 무성한 깊은 곳을 보았다. 숨어 있던 사람은 계획이 실패했음을 알게 된 후 바로 자리를 떴다.그럼에도 신무열에게 들키고 말았다.“괜찮아요?”신무열은 쫓아가지 않고 오히려 온지유부터 걱정했다.온지유의 두 눈은 휘둥그렜다. 갑자기 날아온 화살에 정말이지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마을에 사람이 많았던지라 안전하다고 생각했다.그런데 그녀의 목숨을 노리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그녀는 대체 누구의 미움을 산 것일까?꼭 이미 누군가의 눈엣가시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기분이었다.“지유 씨.”신무열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온지유의 모습에 다시 불렀다.온지유는 그제야 정신이 들어 화살이 날아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은 캄캄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마 범인은 이미 도망쳤을 것이다.“전 괜찮아요.”온지유가 말했다.신무열은 그제야 온지유를 놓아주었다.그녀는 화살이 박힌 나무를 보더니 다가가 화살을 빼냈다.아주 평범한 화살이었다.그랬기에 누구의 화살인지 알 수 없었다.“방금 뭔가 눈치챈 거죠?”온지유는 고개를 돌려 신무열을 보았다. 방금 그가 한 말이 꼭 그녀에게 알려주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신무열이 말했다.“그냥 느낌이 이상했어요. 다치지 않아 다행이네요.”온지유는 화살을 꽉 들고 신무열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그녀는 생각에 잠겼다.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몰라 망설이고 있었다.신무열은 그런 그녀를 눈치챘다.“저한테 할 말이 있어요?”온지유가 말했다.“제가 왜 이곳으로 왔는지 알고 있어요?”그녀는 어느새 진지한 어투로 말하고 있었다. 신무열도 진지하게 대답했다.“저한테 말씀하지 않은 거로 알고 있는데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전 친구를 찾으러 온 거예요. 저에 대한 비밀을 알고 싶었거든요.”심각한 얼굴로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 심무열의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813화

    신무열이 눈치챈 순간 알게 되었다.“너무 많은 걸 알고 있어도 좋지 않아요.”신무열이 일침을 날렸다.“다만 지유 씨가 다치게 된 건 제 책임도 있으니까 두 번 다시 다치게 하지 않을 거예요.”그는 온지유의 생활을 방해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온지유는 곰곰이 생각했다.“괜찮아요. 전 여기서 쉽게 죽을 운명이 아니거든요.”“가죠.”신무열은 계속 그녀를 데려다주려고 했다.그녀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법로에 관한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보아하니 대답하고 싶지 않은 듯했다.어쩌면 신무열이 여전히 그녀를 믿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게다가 법로를 언급했을 때 신무열은 딱히 별다른 반응이 없는 것을 보아 어쩌면 정말로 법로와 연관이 없는 사람일 수도 있고, 또 어쩌면 그녀에게 말해주고 싶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그녀는 신무열이 돌파구라고 생각했다.일단 그를 좀 더 지켜본 후에 다시 물어보기로 했다. 괜히 나섰다가 일을 망칠 수 있으니 말이다.“지유 씨 돌아왔어요!”온지유와 신무열이 마을로 돌아오자 누군가 바로 소리를 지르며 알렸다.그녀가 학교로 간 후로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았기에 그들이 걱정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마침 나타난 여이현이 함께 나란히 서 있는 온지유와 신무열의 모습을 보았다.그는 시선을 돌려 신무열을 훑어보더니 다가오며 물었다.“왜 이렇게 늦었어? 마침 너 찾으러 가려던 참이었어.”온지유가 말했다.“잠깐 눈 감고 쉬고 있다는 게 깜빡 졸아버리고 말았어. 참, 내가 소개해줄게. 이분은 신무열 씨.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야.”“무열 씨, 이분은 여이현이라고 해요.”신무열은 미소를 지으며 여이현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안녕하세요. 마을 사람들에게 들었어요. 마을 사람들을 구해주었다면서요.”“네.”여이현은 원래부터 무뚝뚝한 사람이었고 경계심도 많은 사람이었지만 예의상 그가 내민 손을 잡았다.“저도 신무열 씨에 대해 많이 들었어요. 마을 사람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선생님이라면서요. 그런데 마을 주민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814화

    여이현은 심기가 아주 불편해 보였다.“대체 무슨 일이기에 저 사람이랑 온 오후 함께 있은 거지?”온지유가 말했다.“말했잖아. 깜박 잠들었다고.”여이현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졸리면 돌아와서 자도 되잖아. 남녀가 유별한데 왜 꼭 같이 있어야 했던 거지? 괜히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게 말이야.”그의 말에 온지유도 기분이 다소 나빠졌다.“남녀가 유별하다고? 아이들도 있었어. 그리고 나랑 신무열 씨는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 그런데 누가 헛소리를 하겠어? 지금 사람들은 옛날처럼 고리타분하지 않아. 그러니까 이현 씨도 이젠 꽉 막힌 사람처럼 굴지 말아줘.”그녀가 말을 마치자 여이현은 입술을 틀어 물며 표정을 굳혔다.“그리고 아침부터 사라진 건 이현 씨잖아. 코빼기도 안 보이던데. 그러니까 나도 내 할 일을 하러 간 거잖아. 대체 뭐가 문제야?”“됐어. 그만해. 싸우고 싶지 않아.”온지유는 더는 말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대화를 이어가 봤자 서로의 기분만 상할 테니 말이다.그러자 여이현이 말했다.“난 너랑 싸울 생각 없었어.”그는 부드럽고 다정한 어투로 말했다. 온지유가 화내는 것을 원치 않았다.웃는 얼굴에 침을 못 뱉는다고 부드러운 미소를 짓는 여이현에 온지유는 화가 사그라들었다. 여이현은 적당히 꼬리를 내렸던지라 온지유도 기분이 풀렸다.“아린이랑 같이 갔어. 신무열 씨가 마을 떠나기 전에 나더러 남은 아이들 공부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었거든. 나도 어찌 보면 선생님이니까 같이 가준 거야. 아무 일도 없었어.”“알았어.”여이현이 말했다.“돌아가서 쉬어.”온지유는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 그는 아주 평온한 얼굴이었고 더는 그녀와 신무열에 관해 신경 쓰지 않기로 한 것 같았다.그녀에게 돌아가라고 한 건 그녀의 천막으로 돌아가라는 의미였다.그러니까 그녀와 함께 있고 싶지 않다는 얘기였다.어젯밤 일로 그녀는 여이현이 더욱 자신과 함께 잠을 자길 원할 줄 알았다.지금 보니 전부 착각이었다.어젯밤 그가 그녀에게 얼마나 거칠게 굴었는지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815화

    “모든 사람들이 인정했어. 다들 내가 잃어버린 오빠 여동생이라고 했다고!”율은 소리를 질렀다.신무열이 말했다.“그래, 오랫동안 잃어버렸으니 누군가 내 동생 신분을 사칭하고 돌아온 것일 수도 있지. 만약 고생하면서 살고 싶지 않은 거라면 더 이상 내 사생활에 관여하지 마!”율은 주먹을 꽉 쥐었다.돌아온 지 오래되었지만 신무열이 이렇듯 화를 내는 목소리는 처음 들어보았다.그는 지금 그녀를 의심하고 있다.그랬기에 그녀는 긴장해졌다.신무열은 그런 그녀를 신경 쓰지 않았고 자신의 사생활에도 간섭하는 걸 원치 않았다.특별히 마을로 돌아가는 횟수를 줄이며 온지유와의 만남도 자제했다. 괜히 자주 만나면 율의 눈에 거슬리게 될까 봐 말이다.그런데 율은 그런 그의 마음마저 몰랐다.신무열은 떠나 버렸다.덩그러니 남겨진 율은 얼굴을 한껏 찌푸리고 있었고 손톱이 손바닥에 박힐 정도로 주먹을 꽉 쥐었다.“아가씨, 도련님이 하신 말씀을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마...”“입 닥쳐요!”온지유는 김명무를 보며 바로 욕설을 내뱉었다.“전부 그쪽 때문에 일어난 일이잖아요. 그쪽이 내가 시킨 대로 온지유를 죽였으면 이런 일이 있었겠어요? 시킨 일도 제대로 못 해내고 나만 오빠한테 혼나고 말이에요! 정말 쓸모없는 사람이네요!”김명무는 고개를 푹 숙이며 그녀의 욕설을 듣는 수밖에 없었다.“온지유!”율은 이를 빠득 갈며 온지유의 이름을 불렀다.“왜 자꾸 내 앞에 나타나 내 일을 방해하는 건데!”“이번엔 내가 시키는 대로 해요!”그녀는 순간 좋은 방법이 떠올랐다. 이번엔 직접 온지유를 죽일 생각이다.괜히 뒤탈이 생기지 않게 말이다.김명무는 눈빛이 음험해진 그녀를 보며 입을 열었다.“도련님께서 만약 아시게 된다면 분명 아가씨를 가만두지 않으실 겁니다...”“내가 하라면 하라는 대로 해요!”율은 목소리에 힘을 주며 말했다.“흥, 오빠가 아무리 날 가만두지 않는다고 해도 아빠 말씀까지 거역할 수 있겠어요?”결국 김명무는 하는 수 없이 움직여야 했다....온

최신 챕터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028화

    김혜연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도련님, 저랑 보내는 시간 동안 즐겁지 않으셨어요?”그녀는 이내 신무열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신무열보다 키가 크지 않았기에 신무열의 얼굴을 보려면 고개를 젖혀야 했다.신무열의 선명한 이목구비가 그녀의 시야에 들어왔다. 마치 신이 조각한 것처럼 완벽한 이목구비였고 그녀가 푹 빠진 얼굴이었다.그는 입술을 짓이겼다. 머릿속에 김혜연과 같이 보낸 시간들이 떠올랐다.확실히 즐거웠다.김혜연은 고집을 부린 적 없었고 오히려 그를 배려해 주었다.다만 그가 짊어지고 있는 책임이 너무도 무거웠다. 그는 Y 국 국민을 위해,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Y 국에 써야 했다.그렇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김혜연에게 마음의 빚을 지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김혜연, 한 달이라고 했으니까 약속 꼭 지켜.”신무열은 느긋하게 입을 열며 김혜연에게 약속을 지키라면서 다른 마음을 품지 못하게 했다.김혜연은 순간 목구멍이 막힌 기분이었고 가슴이 미어졌다.함께 있는 시간이 많을수록 정이 생기기 마련이라고 했으나 신무열은 그녀의 진심을 알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차갑고 확고했다.그녀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도련님, 저도 알아요. 도련님이 Y 국을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요. Y 국을 위해 최선을 다하려는 건 알겠지만 도련님도 도련님만의 시간이 필요해요. 그렇다고 해서 Y 국을 위한답시고 평생 결혼도 하지 말아야 하는 건 아니라고요.”맞는 말이었다.하지만 법로가 그의 어머니에게 진 빚을 전부 똑똑히 보고 자랐기에 신무열은 법로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Y 국은 이미 그가 책임지고 있었기에 자신이 희생한다고 해서 문제가 될 건 없다고 생각했다.“그래. 하지만 난 그런 것에 신경 쓸 여유도 없어. 김혜연, 한 달은 내가 들어줄 수 있는 유일한 네 요구야. 그러니까 그만 포기하고...”“싫어요.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어떻게든 도련님 마음을 얻을 거예요! 도련님이 하신 말씀들은 전 신경 안 써요. 전 도련님을 이해하거든요. 미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027화

    게다가 별이가 나타나기 전, 그러니까 별이가 친아들이라는 것을 몰랐을 때도 온지유는 별이를 데려다가 키우려고 했었다.심지어!인명진이 그녀의 심성이 착함에 제일 좋은 증인이었다.“이왕 경성에 온 김에 경성에서 즐거운 추억을 만들고 가세요.”온경준은 법로가 진심으로 온지유를 위한다는 것을 보아내고 있었다.그들은 전부 온지유가 잘 살기를 바랐으니 당연히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더구나 법로는 온지유의 친부가 아니던가.법로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도 그럴 생각이었다. 별이의 곁에 남아서, 딸의 곁에 남아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오늘 결혼식엔 필요한 과정은 전부 순차적으로 진행했다.결혼식 피로연에서의 게임도 말이다...지석훈과 최주하는 분위기를 띄우고 있었다. 여이현은 원래 이런 이벤트를 취소하려고 생각했지만 이런 이벤트가 없다면 완벽한 결혼식이 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그들은 게임으로 여이현과 온지유에게 장난을 쳤다.하지만 대부분 여이현을 툭 밀면서 온지유와 붙어있게 해주었고 게임 벌칙도 두 사람이 이마 맞대기, 서로의 볼에 뽀뽀하기 등 시키면서 놀려대기 바빴다.피로연에서 빠질 수 없는 건 술이었던지라 두 사람은 러브샷도 했다.게임은 새벽 2시까지 이어졌다. 그 후엔 다들 알아서 헤어졌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 최주하는 여이현을 향해 눈썹을 튕겼다.“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아주 귀하니까 있을 때 잘해.”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도 돌아왔다. 방 안에 두 사람뿐이었던지라 여이현은 자연스럽게 온지유의 손을 잡았고 다른 한 손으로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오늘 결혼식에서 벌어진 일은 다 내 잘못이야. 미안해. 원래는...”“그래도 날 사랑하는 건 여전하잖아. 안 그래?”온지유는 실소를 터뜨렸다.강서현의 등장으로 모든 사람들이 두 사람의 결혼식을 잊지 못할 것이고 온지유의 얼굴과 두 사람이 부부가 되었다는 것도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그거랑은 달라. 나는 원래 우리가 알콩달콩한 모습만 보여주고 싶었다고.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026화

    여이현은 입술을 틀어 물었다. 다시 말을 하려던 때 온지유가 다가왔다.“아빠, 이현 씨한테 약혼녀가 있다는 거 알고 있었어요. 이현 씨 친아버지가 정해준 약혼녀예요. 이현 씨는 처음부터 끝까지 거절했었어요.”온경준은 미간을 찌푸렸다.“정말로 이놈 편을 들어주려고?”온지유는 처음부터 여이현을 감쌌다. 예전에는 여이현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을 뿐 아니라 결혼식도 올린 적 없었다.하지만 여이현은 조금 전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여씨 가문 사람이 아니라고 분명하게 밝히면서 온지유만을 사랑하고 있다고 말했다.설령 사람들의 입에 오르락내리락하게 되어도 그는 온지유가 상처받는 걸 원치 않았다.이번 결혼식은 성대하고도 화려해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았다.온지유는 미소를 지었다.“아빠, 저랑 이현 씨는 그간 많은 일을 겪었어요. 지금 아이도 있고 다시 재혼했으니 우린 한 몸이 된 거나 마찬가지죠.”부부는 서로 도우면서 살아야지 않겠는가?“여이현, 경고하는 데 전처럼 우리 지유한테 상처를 준다면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온경준은 미간을 확 구기며 날카로운 시선으로 여이현을 보았다.여이현은 바로 온지유의 허리에 팔을 감으며 끌어당겼다.“장인어른, 걱정하지 마세요. 지유한테 백 배, 천 배로 잘할 거예요!”여이현은 그의 앞에서 맹세했다.그 말에 법로는 가슴이 저릿했다.분명 평범한 맹세였고 마음마저 따스해지는 장면이었지만 그는 이상하게도 가슴이 저릿했다.여이현이 온경준을 ‘장인어른'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다.그는 알고 있었다. 온경준 덕에 온지유가 건강하게 잘 클 수 있었다고. 그리고 그와 다시 만날 수 있었다고.하지만 여전히 서운하고 속상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그는 칼이라도 삼킨 것처럼 아프고 괴로웠다.여이현이 온지유의 허리를 감싸며 떠나자 그제야 법로는 온경준 앞으로 다가갔다.그는 온경준에게 은행 카드를 내밀었다.“이 안에 200억이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 지유를 정성스럽게 잘 키워줘서 고맙습니다.”법로는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025화

    “전에 노승아를 감싸주었던 건 노승아가 제 목숨을 구해준 적이 있었기 때문이죠. 생명의 은인을 모른 척할 수가 없잖아요. 설명을 하지 않은 건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고 굳이 다른 사람에게 알릴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지금은 전 진심으로 온지유를 사랑하고 평생을 같이하고 싶기에 다른 사람이 끼어들어 지유를 헐뜯고 상처를 주는 꼴 구경하고 싶지 않네요.”“저 여자는 저를 낳아주신 아버지가 멋대로 정해준 약혼자이에요. 전 처음부터 분명하게 말했었죠. 좋아하지도 않으니 절대 결혼할 리도 없다고요.”“강서현, 네가 나와 지유의 결혼식에 와줘서 참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쫓아낼 생각도 없고. 하지만 만약 다른 마음을 품고 온 거라면 나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거야.”“전 설명할 건 다 설명했습니다. 다른 일은 저와 상관없는 일이니 더는 설명하지 않겠습니다.”말을 마치자마자 배진호가 보안 요원을 데리고 강서현에게 다가갔다.강서현이 준비했다던 선물도 뜯겼다.그녀가 준비해온 것은 시한폭탄이었다.다만 용경호와 성재민에겐 아무런 위협도 되지 못했다. 두 사람은 여전히 군부대 생활을 했었고 강서현이 준비한 폭탄보다 더 큰 폭탄을 많이 봤기 때문이다.폭탄을 해체할 줄 아는 건 만약의 상황을 위해 필수로 배웠기 때문이다.강서현이 준비한 폭탄은 아주 손쉽게 해체되었다.다만 하객들은 진정하지 못했다.이 문제는 배진호가 해결했다.어차피 돈에 환장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았기 때문이다.이런 소란에 여이현은 더욱 온지유에게 미안함을 느꼈다. 온지유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행복한 결혼식을 해주고 싶었다. 이런 일이 생겼으니 확실히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온경준과 정미리도 어두워진 안색으로 그를 불러냈다.온경준의 표정은 보기 흉하게 일그러졌다. 그는 아주 싸늘한 눈빛으로 여이현을 보았다.“전에 자네가 우리 지유한테 어떤 짓을 했는데. 결혼식으로 그 잘못을 만회해보겠다고 떵떵 소리치더니 또 상처를 줘?! 여이현, 지유를 달라고 한 이유가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024화

    마침 온지유와 여이현이 반지를 서로에게 끼워주던 상황이었다.찾아온 불청객은 강서현이었다.강서현은 찾아와 소리를 질렀다.“잠깐만요! 제가 준비한 선물도 드리지 못했는데 벌써 결혼식 시작한 거예요?”그녀가 등장하자 하객들은 서로 시선을 주고받았다.그녀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표정을 구겼다.법로는 신무열에게 눈짓을 했다. 그러자 신무열은 성큼성큼 걸어 나와 강서현의 앞으로 왔다.“그런 건 결혼식이 끝난 후에 다시 줘도 되지 않나요?”실무열 뿐 아니라 김혜연도 그녀의 앞으로 다가갔다.지금 이 순간 그녀는 그들의 추종자이자 수호자였다.그러자 강서현이 픽 웃었다.“전 분명히 말했어요. 전 축하하러 온 거라고요. 그런데 왜들 이렇게 긴장하고 있는 거죠? 게다가 전 혼자인데 말이죠. 설마... 제가 이 결혼식을 엎기라도 하겠어요?”강서현은 확실히 혼자였다.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방심해서는 안 된다. 브람이 여이현에게 맺어주려고 한 약혼자였으니까. 게다가 제일 중요한 것은 강서현은 아직도 여이현을 포기하지 못했다.행여나 무슨 일을 저지를까 봐 걱정되었다.신무열은 강서현의 손목을 확 잡았다.“결혼식을 엎을 수나 있겠는지는 모르겠지만 초대하지 않았는데 굳이 왜 온 거죠?”김혜연은 강서현의 허리를 잡았다.강서현은 눈치채고 있었으나 그녀의 행동은 김혜연보다 빠르지 못했다. 김혜연은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김혜연은 신무열과 온지유를 지켜줘야 했다.김혜연은 온지유의 결혼식에 문제가 생길까 봐 걱정되었다. 거기에다 신무열과 함께 경성으로 오면서 그녀는 특별히 무기도 챙겨왔다.그랬기에 총이 강서현의 허리에 닿을 때 강서현은 순간 당황하게 된 것이다. 강서현은 이내 입꼬리를 씩 올리며 비꼬았다.“그래도 한때 약혼까지 하려던 사이였는데 말이죠. 절 버린 것에 관해서도 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이런 식으로 반겨줄 줄은 몰랐네요.”강서현은 높은 소리로 말하면서 여이현을 보았다. 일부러 모든 책임을 여이현에게 돌렸다.그러자 현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023화

    온지유는 고개를 숙였다. 나이는 이미 서른이었지만 여전히 그녀는 부끄럼을 탔다.그녀는 고개를 들어 여희영을 똑바로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여이현이 말했다.“일부러 앞에서 염장을 지른 건 아니에요. 제가 그동안 지유한테 못 해준 게 많아서 그래요. 지유만 원한다면 제 능력껏... 전부 해줄 거예요.”능력이 닿지 않는 것이라고 해도 그는 어떻게든 구해서 온지유에게 줄 것이다.“그래, 그래. 나한테 그런 말 할 필요 없어. 너희들만 좋으면 되니까.”여희영은 얼른 손을 저었다. 더는 닭살이 돋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녀는 별이를 아주 좋아했기에 본가에 남아 있었다.두 사람의 결혼식에 관해 여이현은 정성을 쏟아부었고 자그마한 디테일도 놓치지 않았다.결혼식 당일, 최주하와 지석훈, 그리고 나도현과 백지희도 참석했다. 물론 강윤희도 왔다.강태규는 고령에도 직접 결혼식에 참석에 여이현을 축하해주었다. 강태규뿐 아니라 법로롸 신무열, 김혜연도 왔다.홍혜주와 용경호도 참석했다.두 사람은 원래 올해에 결혼할 계획을 세웠으나 용경호에게 처리해야 할 일이 있었던지라 계속 미루고 있었다. 그런데 온지유와 여이현이 두 사람보다 먼저 결혼할 줄은 몰랐다.물론 그들은 온지유와 여이현의 곁에 오래 있은 사람들이었던지라 두 사람이 그간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하고 힘든 시간을 보냈는지 알고 있었기에 진심으로 축복하고 기뻐하였다.두 사람의 결혼식에 당연히 인명진도 빠질 수 없었다.온지유와 여이현은 돈도 어떠한 물건도 부족하지 않았다.인명진은 온지유에게 핑크빛 다이아몬드가 걸린 목걸이를 결혼 축하의 선물로 주었다. 그리고 직접 만든 약을 건넸다.그는 온지유에게 직접 건네며 꼼꼼하게 당부했다.“이 약은 내가 고서를 읽으면서 만든 거야. 그러니까 가지고 있어. 언젠가 만약 목숨이 위험한 때가 온다면 이게 도움이 되어줄 거야.”약의 수량은 온지유와 여이현, 별이를 고려해 만들었다. 심지어... 그는 만약에 태어날 둘째의 것도 준비해 주었다.온지유는 마음이 무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022화

    강윤희는 조금 민망해졌다.“제 남자친구는 아마 못 올 것 같아요.”“뭐?”온지유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이내 빠르게 다시 본론으로 돌아왔다.“이런 중요한 날에 바람맞히다니. 내가 보기엔 앞으로도... 이 사람은 안 될 것 같아. 다시 신중하게 생각해 보기를 바랄게.”“네, 고마워요. 지유 언니.”강윤희는 감사 인사를 했다.여이현은 강윤희를 보며 물었다.“도움이 필요해?”강윤희는 강태규의 손녀였던지라 이런 상황을 알게 되고도 그냥 무시할 수가 없었다.그녀가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감사하지만 괜찮아요. 이 일은 제가 해결할 수 있어요.”결혼 상대가 바람을 맞혔으니 두 사람이 도와줘봤자 그저 그를 찾아내 주고 혼낸 뒤 합의금만 낼 뿐이다.그렇게 된다면 그녀는 더는 결혼하지 않을 것이다.그러니 이 일은 그녀가 직접 처리하는 것이 맞았다.여이현은 온지유의 어깨를 감쌌다.“도움이 필요하면 전화해.”“네.”그렇게 여이현은 온지유를 데리고 구청에서 나왔다.강윤희는 여전히 구청에 혼자 남아 있었다. 다만 눈빛은 확고해지고 싸늘해졌다.여이현과 온지유는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결혼식이 생각난 여이현이 물었다.“들러리로 누굴 부를 생각이야?”여이현은 이미 생각해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아는 사람들을 전부 부를 생각이다.“부를 사람이 있겠어?”그녀에게 유일한 친구는 백지희였다. 그러니 불러도 백지희를 부를 것이다.“결혼식은 사흘 뒤야. 지금 친구들이나 지인에게 알려야 해.”여이현은 얼른 온지유에게 성대하고 화려한 결혼식을 올려주고 싶었다.그때가 되면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그와 온지유가 부부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사흘 뒤라고? 그렇게나 빨라?”온지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여이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아주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안 빨라. 우리가 결혼식을 몇 년 동안이나 미루고 있었잖아. 이제야 돌아왔는데 얼른 해야지.”만약 더 미뤄두다가 중간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겠는가.“이미 준비도 다 한 것 같은데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021화

    아이가 먹고 있는 것은 베리나인의 디저트였다.여이현이 얼마나 아이를 아끼는지 알 수 있다.별이는 여희영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비록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별이는 여희영을 빤히 보고 있었다.여희영은 젊어 보였을 뿐 아니라 이쁘기도 했다.특히 여희영의 목소리는 아주 부드럽고 온화했다.“누... 구... 세... 요...”별이는 천천히 말했다.비록 그동안 별이의 곁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더는 혼자가 아니었지만 별이는 여전히 별로 말을 하지 않았다. 설령 말을 한다고 해도 아주 느리게 말했다.여희영은 바로 눈앞에 있는 아이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지 눈치챘다. 말을 이상하리만큼 천천히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녀는 별이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나는 네 아빠의 고모야. 그러니까 별이는 나를 고모할머니라고 부르면 돼.”“고모할머니랑 같이 놀러갈까?”별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검은 보석 같은 두 눈동자가 눈에 띄게 흔들리더니 바로 고개를 저었다.“전... 엄마... 를... 기... 다... 릴... 거... 예... 요...”현재 별이는 ‘엄마'라는 단어만 완벽하게 말할 수 있었다. 별이가 원치 않자 여희영도 강요하지 않았다.그녀는 별이와 함께 여이현과 온지유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그러나 여이현과 온지유는 구청에 도착하자마자 강윤희와 마주치게 될 줄은 몰랐다.강윤희는 두 사람을 보더니 놀란 표정을 지으며 입을 벙긋거렸다.“두, 두 사람...”심지어 강윤희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의심하며 남몰래 허벅지를 꼬집어 보았다. 너무 아팠다.그녀는 환각이 아니라 정말로 두 눈으로 여이현과 온지유를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다.“이현 씨는 죽지 않았어. 그리고 나도 종군 기자는 그만뒀고.”온지유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그녀의 입꼬리는 눈에 띄게 올라가 있었다.“정말 잘 됐어요! 그런데 여기는 왜...”여이현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강태규와 강윤희는 아주 슬퍼했다. 하지만 더 안타까웠던 것은 온지유에게 아무 도움도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020화

    만약 결혼식과 아이 중에 하나만 선택하라고 한다면 온지유는 당연히 아이를 선택할 것이다.“지금 별이는...”“그동안 우리가 함께 해보지 못한 거 나랑 해보고 싶지 않은 거야?”여이현이 말허리를 자르며 물었다.못해 본 것을 한다니... 온지유는 여이현을 오랫동안 사랑했다. 그녀는 여이현보다 더 못해본 것을 그와 함께 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전과 달리 나이를 먹었다.별이도 학교 갈 나이가 되었다. 만약 못했던 결혼식을 한다면 사람들이 유난이라고 말하지 않을까 생각했다.“오늘 일단 혼인 신고하러 가자.”여이현은 온지유에게 다가가 손을 잡은 뒤 꽃다발을 쥐여주었다. 그리고 맛있는 것은 별이에게 건넸다.지금까지 별이도 여이현과 온지유의 사이가 나아지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 눈치 백단인 별이는 바로 음식을 들고 자리를 피해주었다. 거실엔 여이현과 온지유만 남았다.“혼인 신고하러 가는 거라면 오늘 가도 돼요. 하지만 결혼식은...”“대체 뭘 걱정하고 있는 거야. 팔순이 넘은 할아버지 할머니도 결혼식을 해. 그런데 우린 고작 마흔일 뿐인데 왜 결혼식을 다시 올리면 안 된다는 거야?”여이현은 말허리를 자르며 확고한 눈빛으로 그녀를 보았다.그는 법로 앞에서 약속했었고 브람의 앞에서도 확고한 모습을 보였다. 5년이나 떨어져 지내서야 오늘을 맞이할 수 있었다.온지유에게 그간 못 해준 것을 해주지 못한다면 평생 한으로 남을 것 같았다.“나는 두려워...”“대체 뭐가 두려운 거야? 결혼식은 우리 둘이서 하는 거야. 돈도 우리 돈을 쓰고 앞으로도 너랑 나랑 별이 셋이서 같이 살 건데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뭐가 중요해. 지유야, 두려워할 거 없어.”여이현은 온지유의 손을 꼬옥 잡으며 확고하게 말했다.결혼식에 대해서 그는 이미 계획을 세워두었다.모든 사람에게 알릴 생각이다. 그와 온지유가 결혼한다고. 그리고 결혼식장에 온지유의 손을 꼭 잡고 등장한 후 둘이서 행복한 여생을 보낼 것이다.아니, 이젠 세 명이었다. 그는 온지유와 별이와 함께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