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아줌마가 아니라 우리 엄마예요.”별이는 화가 나서 유인영의 다리를 주먹으로 때렸고 유인영은 화가 나서 발로 별이를 차서 넘어뜨렸다. 별이는 바닥에 주저앉아 억울하게 유인영을 쳐다보았다.일이 너무 갑작스럽게 벌어져 온지유가 반응하기도 전에 별이는 이미 넘어져 있었다. 온지유는 별이를 품에 안고 다시 일어나 차가운 눈빛으로 유인영을 노려봤다.유인영은 겁에 질려 두 걸음 뒤로 물러서더니 입을 열었다.“뭐 하는 거야? 내가 힘을 준 것도 아니고 아이가 저절로 넘어진 거야. 나랑은 아무 상관도 없어.”“유인영 씨라고 했죠? 기억할게요. 만약 내 아이에게 문제가 생기면 변호사를 통해 연락할 거예요. 그쪽 남편이 대기업 본부장이라면서요? 돈도 많을 텐데, 의료비 같은 걸로 시간 끌지 않길 바랄게요.”온지유는 원래 유인영과 엮이고 싶지 않았지만 상대방이 기어코 나대고 싶다면 맞장구를 쳐주면 그만이다. 하지만 별이를 발로 찬 것은 선을 넘은 일이었다.‘여기서 계속 참으면 내가 온지유가 아니지.’온지유의 차가운 태도에 유인영은 물론 주변의 부모들도 슬금슬금 뒷걸음질 쳤다. 온지유는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를 안고서는 휴식 구역으로 돌아갔다.경기는 계속해서 열띤 분위기 속에 진행되었다. 경기에서 이긴 아이들은 환호했고 진 아이들은 울며 투정을 부렸다. 그렇게 오전 경기가 끝날 무렵 여이현에게서 회사에 급한 상황이 생겨 먼저 회사에 왔다는 내용의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온지유는 전화를 걸어 따지지 않았고 레스토랑에 연락해 점심 식사를 준비해 달라고 했다.굳이 온지유가 직접 요리를 할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선생님이 점심 식사를 유인영에게 맡긴 것만 봐도 딱히 실상에 신경을 쓰는 건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맛있는 식사를 즐기게 해주는 편이 나을 듯했다.오전 경기가 끝났다는 방송이 나오자 부모들은 각자의 휴식 구역으로 돌아갔다. 다른 학급 부모들은 분주히 음식을 준비하는 반면 별이네 반 부모들은 사진을 찍거나 동영상을 보며 그냥 느긋하게 점심
이 소동은 모든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눈이 밝은 사람들은 그들의 제복이 경성에서 가장 유명한 호텔의 제복이라는 것을 눈치채고 학교의 재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교장은 쓴웃음을 지었다. 이런 대단한 셰프를 그가 무슨 수로 불러올 수 있을까. 부모님들 중 누군가가 준비한 서프라이즈인게 분명했다.“사모님, 말씀하신 대로 최고급 뷔페 요리가 다 준비되었습니다. 어디에 차려두면 될까요?”호텔 매니저가 온지유의 앞으로 다가와 말하자 자리에 있던 모두가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유인영은 더구나 얼굴을 붉히며 안절부절못했다.“이 호텔 요리는 일반인이 감당할 수 있는 가격이 아닐 텐데 돈도 얼마 없어 보이는 분이 어떻게 부르셨을까?”“그러게요. 조금 전 학부모 모임 회장이랑 분쟁이 있었나 본데 이런 식으로 고집부리는 걸로밖에 안 보이네요.”누가 뒷담화를 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그 말을 들은 유인영은 한쪽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온지유에게로 다가갔다.온지유의 앞에 도착하기도 전에 유인영은 이미 비아냥거리고 있었다.“정말 최고급 요리인지 제가 한번 확인해봐야겠어요. 아무 요리나 최고급 타이틀을 붙이는 건 용납할 수 없거든요.”보관함을 열자 안의 요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양고기찜이었다.요리의 향긋한 냄새가 퍼져오자 관중들은 감탄을 금치못했다.온지유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유인영 씨, 어떠세요? 이 정도면 최고급 요리라고 불러도 괜찮을까요?”유인영은 모두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고 표정이 일그러졌다.“향은 괜찮네요. 맛은 어떨지 모르겠지만.”“맛이 어떨지는 식사가 시작되면 아시겠죠. 지금 설마 모두가 먹지 못하게 막고 계시는 건 아니겠죠?”온지유는 이 상황이 오기를 기다렸었다. 그녀는 유인영이 절벽 꼭대기까지 올라갔을 때 단번에 밀어내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유인영은 당장 자리에서 비키고 요리가 식탁 위에 올려지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녀는 온지유가 정말 거금을 들여 뷔페를 준비했을까 봐 가슴을 졸였다.최고급 요리가 아니더
온지유가 준비한 요리는 모두의 마음에 들었다. 이번 일로 그녀는 단번에 학교의 유명인이 되었다. 학부모들 사이에서 그녀는 이미 돈 많은 엄마로 소문이 돌고 있었다. 유인영에 쏠렸던 관심은 줄어들었고 이는 유인영의 반발심을 사게 되었다.오후의 운동회에는 별이가 상한 탓에 점심을 먹고 난 뒤 조퇴해서 집으로 돌아왔다.집에 도착하자 유인영의 그룹 채팅 요청이 와있었다. 반급의 모든 어머니들이 참여하고 있다고 강조하기까지 했다. 목적은 이후 아이들의 교육에 대한 교류라고 하지만 온지유는 참여하지 않았다.유치원의 그룹채팅은 그다지 가치가 있는 곳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별이가 잠들고 온지유는 아래층으로 내려와 여이현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여이현은 이미 통화 중이었다.오늘 운동회에서의 여러 사건들을 떠올린 온지유는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억압 되어있던 화를 어떻게든 분출하고 싶었다.휴대폰이 울려 확인하자 유인영이 전화를 걸어온 것이었다. 온지유는 그녀에게 전혀 호감이 들지 않았다. 바로 끊어버리고 싶었지만 호기심 끝에 온지유는 전화를 받았다.“별이 어머니, 왜 그룹채팅에 안 들어오신 거예요?”“어머, 그 일이라면 전 들어가고 싶지 않아서 안 들어간 거예요. 왜 그러세요? 따로 할 말이 없으시다면 이만 끊을게요. 지금 조금 바빠서요.”온지유는 쓸모없는 대화에 흥미가 없었다.그러나 상대방은 급히 온지유를 말렸다. 몇 번이고 온지유를 불러 멈추고 나서야 한숨을 내쉬었다.“다름 아니라 제가 다른 부모님들이랑 시내 쇼핑몰에서 보기로 했거든요. 어쩌다 아이들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날인데 하루 정도는 재밌게 놀아보면 어떨까 해서요.”“전 사양할게요. 모두 좋은 시간 보내세요.”“그러지 마시고, 별이 엄마도 한 번만 와보세요. 유치원에서 인맥을 쌓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르지만 언젠가는 별이도 초등학교, 중학교로 진학할 거잖아요. 또 보게 될지 누가 알아요.”유인영은 온지유를 불러낼 생각뿐이었다.온지유는 하는수 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일 관련이라면 하는 수 없었다. 온지유는 여이현을 탓하지 않았다. 그저 여이현에게 별이 친구 부모님들과 함께 외출을 했다고 메시지를 보냈다.여이현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을 무렵 차는 이미 번화가를 벗어났다.온지유는 의문을 품었다.“쇼핑을 하러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알다시피 회장이란 여자가 변덕이 심하잖아요. 그렇지 않으면 제가 여기서 기다릴 일도 없었겠지요. 하지만 안심하세요. 그렇게 멀리 가지 않았을 테니까 따라잡을 수 있을 겁니다.”말이 끝나자마자 그는 차를 구석진 길로 돌렸다. 온지유는 그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앞은 사람 인기척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구석진 산길이었다.온지유는 눈살을 찌푸렸다. 남자에게 영문을 물어보려던 찰나 차는 골목에서 벗어 나 큰길로 나왔다. 앞은 주유소였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주유소 사장에게 돈을 지불하러 가고, 온지유는 그 틈을 타 유인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유인영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아가씨.”그때 누군가가 온지유를 불렀다. 고개를 들어보니 그 사람은 법로의 부하였다.온지유는 차에서 내려 인사를 하려 했지만 밖에 나가 있던 남자가 다시 이쪽으로 걸어 오는 모습이 보였다. 하는 수 없이 온지유는 눈짓을 하여 먼저 부하를 떠나보냈다.법로의 부하는 모두 두 명이었다. 그들은 법로의 명령을 받아 몰래 온지유 모자를 지키러 온 것이었다. 본래 온지유에게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았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그럴 수 없었다.남자가 온지유를 데리고 산으로 들어서자 둘은 그들의 뒤를 따라나섰다.얼마나 더 갔을까, 드디어 차가 멈춰서고 산기슭에는 차량 두 대가 이미 세워져 있었다.온지유는 세워진 두 대의 차를 보고 남자에게 물었다.“유인영과 당신의 아내는 모두 저 차 안에 있는 건가요?”“빨리 달렸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늦었네요. 이미 산 위에 올라갔을지도 모르니 같이 가보죠. 위에 올라가면 사찰이 있는데 다들 아이를 위해 소원을 빌러 간다고 했거든요.”이런 곳에 사찰이 있을 줄은 몰랐다.산길은
여이현의 전화는 또다시 연결되지 않았고 온지유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때마침 여희영에게서 전화가 걸려 오고 온지유는 화가 난 김에 오늘 있었던 일과 자신의 계획을 모두 여희영에게 털어놓았다.여희영은 온지유에게 교외의 한 바에서 만나자고 했다. 온지유가 있는 곳에서 걸어서 불과 몇 분 거리였다. 온지유에게 지금 차가 없는 것을 고려한 듯했다. 바에 걸어가 잠시 기다리자 곧 그들이 도착했다.“지유 씨, 누군가를 조사하고 싶다고 들었어요.”차에서 내린 이태훈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온지유는 고개를 끄덕이며 유인영의 사진을 그에게 건넸다.“유인영의 남편이 어떤 회사의 매니저라 들었어요. 어느 회사에 다니는지 찾아주세요. 유인영이 감히 나를 죽이려 한다면 나도 똑같이 그 집안을 박살 낼 거예요.”먼저 다른 사람을 해치는 일은 하지 않지만 받은 건 천 배로 갚아 주지 않으면 분이 풀리지 않았다.그 점에 이태훈은 전혀 놀라지 않았다. 그는 온지유와 여희영을 위한 방을 따로 잡아준 후 바로 조사를 시작했다.10분도 채 되지 않아 이태훈은 다시 방으로 돌아와 온지유에게 한 장의 자료를 건넸다.유인영의 남편 안건휘는 여진 그룹 산하의 한 호텔에서 구매부 매니저로 일하고 있었다. 꽤 괜찮은 자리라고 할 수 있는 위치였다. 자료에는 또 다른 핵심 인물이 나와 있었다. 바로 안건휘의 연인 황미미였다.황미미는 이미 임신한 상태였고, 현재 교외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태교에 전념하고 있었다. 웃긴 건 안건휘의 친어머니가 그녀를 돌보고 있다는 점이었다.“불쌍하게도 저런 남자를 만나서는.”여희영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온지유는 차갑게 말했다.“고모님은 불쌍하다고 하지만 만약 제가 평범한 여자였다면 오늘 불쌍한 건 유인영이 아니라 제가 됐을 거예요.”말을 마친 후 온지유는 이태훈을 바라보며 말했다.“태훈 씨, 부탁을 하나 들어줄 수 있을까요? 유인영에게 황미미의 존재를 알게 하고 싶어요. 하지만 이 일은 제가 직접 나설 순 없어요.”이태훈은 그녀의 요청에 흥미를
여이현은 온지유에게 정말 무슨 일이 생겼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감히 상상도 하기 싫었다. 생각만으로도 등골이 서늘해졌다.여이현의 심장은 빠르게 뛰고 있었다. 온지유는 그가 진심으로 자신을 걱정하고 있음을 알고 화가 사그라들었다. 그렇게 온지유는 여이현을 용서하기로 했다.그녀는 손을 뻗어 여이현을 안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위로했다.“난 괜찮아. 당신도 내 실력을 알고 있잖아. 웬만한 사람은 상대가 되지 못해.”“그래도 난 여보한테 정말 무슨 일이 있을까 봐 안심 못 하겠어. 앞으로는 꼭 곁에 있을게. 아무리 바빠도 곁에서 떠나지 않을게.”“됐어, 난 지금 이렇게 멀쩡하잖아.”온지유는 그래도 여이현의 얼굴빛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화제를 돌리려 입을 삐죽이며 투정을 부렸다.“나 너무 배고파. 오늘 점심에 준비한 뷔페도 제대로 먹지 못했거든. 모두 수다 떨며 사진 찍느라 그 사이에서 마음 놓고 먹을 수 없었어.”사실 충분히 잘 먹었지만 여이현에게 그 전의 일을 잊도록 만들고 싶었다. 이미 지나 간 일에 매달리는 것은 의미가 없으니까.여이현은 그녀를 들어 올려 밖으로 걸어 나가며 말했다.“그럼 내가 맛있는 거 사줄게. 뭐 먹고 싶어?”“아직 못 정했어.”온지유는 그의 품속에 얼굴을 묻으며 키득거렸다.그녀를 내려놓으면서 여이현은 길고 깊은 키스를 남겼다.도착한 마라 샤브샤브집에서 여이현은 눈앞의 새빨간 국물을 보며 난감한 미소를 지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목숨도 내놓겠지만 매운 음식은 정말 각오가 필요한 일이었다.온지유는 일부러 얄밉게 말했다.“못 먹겠으면 다른 데 가도 돼.”“아냐, 이걸로 할게.”여이현은 자존심을 부리며 대답했다. 그는 고집스럽게 소고기를 한 점 집어 작게 한입 베어 물었고 곧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괜찮네. 이번엔 이것도 먹어봐.”온지유는 여이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릇에 덜어주며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었다.“대표님이 안 먹어주면 나 아주 서운할 것 같은데.”여이현은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억지로 웃음을
온지유는 병원에서 여이현과 함께 하룻밤을 보냈다. 이튿날 아침, 아침을 사러 내려간 그녀는 유인영이 급하게 입원 병동으로 향하는 모습을 발견했다.온지유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갈 길을 갔다.“지유 씨.”하지만 뜻밖에도 유인영이 그녀를 발견하고 곧바로 다가와 온지유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제가 멀쩡한 게 그렇게 놀라울 일이에요?”둘 사이의 거리가 좁아지자 온지유는 유인영의 얼굴에 붉은 자국이 있는 것을 알아챘다. 누군가에게 맞은 듯한 흔적이었다.그녀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뭐가 웃긴데요? 당신이 황미미의 일을 내게 알린 거죠? 우리 가정을 망치려는 속셈이에요?”온지유는 유인영의 말에 잠시 멈칫했다. 유인영이 이렇게 빠르게 눈치챌 줄은 몰랐다.온지유는 담담히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했다.“맞아요, 내가 했어요. 하지만 당신이 한 일에 비하면 이 정도는 별일도 아니지 않나요?”유인영은 격분하며 소리쳤다.“당신은 죽어봐야 정신 차릴 거야!”그리고 온지유를 향해 덤벼들었다. 온지유는 황급히 몸을 피했다.유인영은 허공을 치고 곧장 데스크에 부딪혔다. 위에 있던 물건들이 모두 바닥에 떨어지고 이를 목격한 간호사들이 몰려들었다.간호사 한 명이 유인영을 붙잡았고 또 다른 간호사가 온지유 쪽으로 다가왔다.“온지유 씨, 괜찮으세요?”온지유는 고개를 저으며 유인영 앞으로 다가가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나한테 따지러 올 게 아니라 오히려 고마워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고맙긴 개뿔! 당신 탓에 남편 바람난 걸 알게 됐고, 집까지 찾아가 대판 싸워서 내가 버림받은 거잖아. 당신 때문에 난 이혼까지 했다고. 내가 꼭 죽여버릴 거야!”“사람 참 웃기네요. 저는 선의로 한 건데 이런 대접을 받게 될 줄이야.”온지유는 간호사들이 유인영을 붙잡아 줄 것을 알고 있었기에 콧노래를 부르며 병원을 떠났다. 그녀는 떠나는 내내 유인영이 난리를 치는 모습을 뒤로 한 채 미소를 지었다.이후 온지유는 소문을 통해 유인영이 다투는 도중 황미미를 밀쳐 그녀가 병원에서
“너희들...! 전 이 사람들 몰라요. 그냥 지나가려던 참이었어요.”유인영은 관계를 부정하려 했지만 온지유는 이미 골목 끝에서 경찰에게 신고를 해둔 상태였다. 두 남자의 발언은 이미 증거로 확보되었기에 경찰은 그녀의 해명을 듣지 않고 그대로 차에 태웠다.“여진 그룹의 사모님, 괜찮으십니까?”경찰관이 다가와 물었다. 유인영은 여진 그룹이라는 말을 듣고 깜짝 놀라며 얼어붙었다.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온지유를 바라보며 말했다.“당신, 여이현의 아내였어?”온지유는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안 그래 보여요?”유인영은 울고 싶었지만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처음부터 제대로 된 상대임을 알았다면 이런 일을 벌이지 않았을 것이다. 상대는 여진 그룹 대표의 부인이고 자신은 그저 평범한 인물일 뿐이었다.유인영의 문제가 해결되자 온지유는 한층 더 기분이 좋아졌다. 특별히 큰 케이크를 주문했고 여이현이 이유를 묻자 그냥 먹고 싶어서라고 답했다.여이현은 그녀의 거짓말을 굳이 밝히지 않았다. 서에서 이미 연락이 왔기 때문이었다. 유인영과 그 일당은 법에 따라 처리될 예정이었다.저녁 식사를 마친 후 온지유는 과일을 손질해 서재로 가져갔다.서재에 들어가자마자 장중건의 계약서를 발견하고 의아해하며 물었다.“이 사람과는 협력하지 않기로 했잖아? 왜 생각을 바꾼 거야?”“이태훈이 장중건이 이전에 바꿔치기한 약재들이 아직 행방이 묘연하다고 했어. 그래서 접근해 조사하려고.”여이현은 온지유에게 자료를 건네며 계속 말했다.“생각해 보니, 그 시기가 너희 아버지가 습격당했던 때와 아주 근접해. 그때 상대 인원이 갑자기 많아졌던 걸 떠올려보면...”“그 약재들이 그 사람들에게 팔렸을 가능성이 있다는 거지?”여이현은 고개를 끄덕였고 온지유는 놀라서 두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그렇다면 장중건에게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해야겠어.”“아버지에게는 말했어?”온지유는 아직 아버지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 법로의 성격으로는 무조건 장중건을 잡아들이고 강압적으로 심문하려 들 게
남태건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동안 그는 권다솔의 손도 제대로 잡아보지 못했기에 당연히 사이즈를 알 리가 없었다.“크기 조절 가능한 팔찌는 없어요?”“있긴 한데요. 디자인이 몇 개뿐이라서요. 인기 많은 제품들은 전부 사이즈가 정해져 있어요.”직원은 그를 힐끗보다가 속으로 중얼거렸다.‘예비 신부한테 관심이 없다고 하기엔 예물을 전부 최고급을 골랐잖아. 그렇다고 해서 또 예비 신부한테 잘해준다고 하기엔 애매해. 어떻게 여자친구 팔목 사이즈도 모를 수가 있는 거지?'‘꼭 결혼까지 앞뒀는데 동거는커녕 손도 한번 못 잡아본 것 같네. 서로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을 것 같네.'“괜찮아요. 그걸로 주세요.”남태건은 제일 무거운 팔찌를 골라 쟁반에 올려두었다.“그리고 이거, 봉황이 있는 금목걸이도 주세요.”남씨 가문에 남아도는 것이 돈이었다. 권다솔의 부모님 앞에서 자신의 성의를 보여주기 위해서라면 얼마가 되었든 상관없었다.그가 가게에서 나왔을 때 직원의 입은 귀에 걸려 있었다. 남태건 덕분에 한 달 업적을 하루 만에 달성했기 때문이다.곧이어 남태건은 권용민이 좋아할 만한 비싼 술과 담배를 산 후 권씨 가문 본가로 운전했다. 쇼핑백을 바리바리 들고 오는 남태건의 모습에 김영은은 어안이 벙벙했다.“태건아, 우리 집으로 오는 게 처음도 아니고 이게 다 뭐니? 그냥 내 집이다 생각하면서 오면 되는 건데 뭘 이렇게 많이 사 왔어?”“아버님, 어머님. 전 오늘 손님으로 찾아온 게 아니에요. 다솔이랑 결혼하고 싶어서 온 거예요. 이건 제가 드리는 선물이에요.”남태건은 자신이 사 온 것을 하나씩 열어 보여주었다.그는 물건만 사 온 것이 아니었다. 한 가방의 현금과 예물까지 준비해왔다.창문으로 비쳐 들어오는 햇볕에 금붙이들은 반짝반짝 빛났다.권용민과 김영은은 서로 마주 보았다. 두 사람은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남태건은 아주 신경 써서 선물을 준비해온 것이 그들의 눈에도 보였다. 정말로 권다솔을 좋아하고 있는 것 같았고 앞으로 두 사람이
“다솔아... 너 정말로 나한테 아무런 감정이 없는 거야?”남태건은 여전히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조금이라도, 단 한 번이라도 나한테 설렌 적 없어?”그는 그동안 아주 많은 노력을 했었다. 할 수 있는 건 전부 했다. 그러나 여전히 권다솔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게다가 우린 함께 밤까지 보냈잖아. 난 정말로 진심으로 널 책임지고 싶어. 그냥 잠만 자고 버리는 나쁜 놈이 되고 싶지 않다고. 다솔아, 다시 한번 생각해줘. 우린 이미 밤까지 보냈다고!”“지금이 어떤 시대인데요. 전 태건 씨를 이해할 수 없네요.”권다솔은 머리가 지끈거렸다.그가 질척이면 질척일수록 그녀의 생각은 점점 더 확고해졌다. 앞으로 친구로도 지낼 수 없겠다고 말이다.그녀는 인내심 있게 마지막으로 말했다.“그날 밤 일은 이미 지나간 일이니까 더는 제 앞에서 언급하지 말아요. 만약 태건 씨의 말대로 함께 한번 잤다고 해서 무조건 함께 살아야 한다는 거라면, 이미 아이까지 한 번 있었던 저와 진호 씨는 영원히 떨어지지 말고 함께 살아야 하는 거겠네요?”남태건은 주먹을 꽉 쥐었다. 저도 모르게 이도 빠득 달았다.“권다솔, 그딴 말로 날 자극하지 마.”두 사람이 다시 잘 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니 남태건은 기분이 불쾌해졌다.권다솔은 말을 이었다.“전 태건 씨를 자극할 생각은 없었어요. 그냥 예시를 들어 알려준 거죠. 그러니까 나가요. 앞으로 더는 찾아와 문도 두드리지 말고요. 방금 같은 일 또 일어나기를 바라지 않으니까.”“다솔아! 네가 나한테 어떻게 매정할 수가 있어! 차 한잔도 내어주지 않고 지금 날 쫓아내는 거야? 적어도 물 한 잔 마시게는 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내가 밖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서 있었는데. 나 힘들어 죽겠다고.”남태건은 꼬리를 내렸다.물 한잔쯤 대접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권다솔은 그에게 희망 고문하고 싶지 않았다.그녀가 예의상 했던 행동이 남태건에겐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게다가 이번 한 번 타협한다면 두 번째도 있을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이웃은 더 큰 목소리로 욕을 해댔다.“안에 사람이 있는데도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는 건 네가 꼴도 보기 싫다는 소리잖아! 핸드폰은 장식이냐? 문자 보낼 줄 몰라? 굳이 그렇게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려야겠어? 여기 너만 사냐? 이웃 배려할 줄 몰라?!”밖에서 싸우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자 권다솔은 결국 문을 열어주는 수밖에 없었다.그녀는 남태건이 문 앞에 서 있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이웃 주민들에게 계속 민폐를 끼칠 수 없었다.빠르게 현관으로 가서 문을 연 그녀는 결국 이웃에게 사과했다.“죄송해요. 제가 방금 너무 푹 잔 탓에 못 들었네요. 폐를 끼쳐져 정말 죄송해요.”“됐어. 커플인 것 같은데 싸울 거면 문 닫고 싸워. 괜히 우리까지 사정 알게 하지 말고!”이웃의 어투는 조금 누그러지긴 했지만, 표정은 여전히 사나웠다. 권다솔의 진심 어린 사과에 더는 심한 말을 하지 않았다.이웃이 문을 닫은 후 권다솔도 문을 닫으려고 했다. 그러나 남태건이 빠르게 잡아버렸다.그는 권다솔에게 애원했다.“나 좀 들어가게 해줘. 안에서 얘기하자, 응? 내가 계속 이렇게 밖에 서 있으면 이웃 주민들이 날 신고할지도 몰라.”“방금 그 행동은 확실히 신고할 만한 행동이죠. 그러니 폐를 끼치지 말고 그만 가세요.”권다솔은 있는 힘껏 문을 당겼다.남태건도 순순히 물러서지 않았다. 문을 꽉 잡은 채 놓아주지 않았다.시간이 1분 1초 흘러갔다. 권다솔은 갑자기 손을 놓더니 몸을 돌려 집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사이에 두고 버티는 게 무의미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다솔아, 그럼 나 들어가도 되는 거지?”남태건은 얼른 그녀를 따라갔다.집 안으로 들어온 뒤 그는 문을 닫았다. 그리고 권다솔의 옆에 서서 또 지난번과 비슷한 말을 해댔다. 여하간에 이미 밤을 보냈으니 결혼하자는 뉘앙스였다.“남태건 씨, 그날 집으로 오고 나서 지금까지 생각해 봤어요. 앞으로 어떻게 지낼지를 말이에요. 그리고 이미 생각을 끝냈어요.”권다솔은 그를 보았다.
온지유는 들고 있던 식칼을 내려놓고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그러자 여이현이 그녀를 불러세웠다.“여보는 손도 씻어야 하니까 귀찮게 그러지 말고 내가 가서 꺼내서 줄게.”“내 핸드백 안에 있어. 지퍼 열면 바로 보일 거야.”온지유도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켕길만한 일을 한 적 없었으니 여이현이 가방을 열어보아도 딱히 걱정되지 않았다.여이현은 주방에서 나와 별이와 함께 현관 쪽으로 갔고 대화를 하며 가방을 열려고 했다.“아들, 아빠한테 오늘 노래 대회 어땠는지 말해주면 안 돼?”“당연히 돼요! 오늘 엄마는 엄청 멋졌어요! 친구들 부모님들도 엄마한테 박수를 쳐줬어요!”별이는 입에 모터가 달린 것처럼 바로 낮에 있었던 일을 말해주었다.온지유는 얼굴이 예뻤을 뿐만 아니라 온화하기까지 했다. 친구들은 집에서 엄마한테 혼난 적이 있다고 했지만 별이는 혼난 적이 없었다.여이현의 입꼬리가 저도 모르게 올랐다.온지유의 가방을 열자 바로 칭찬 스티커가 보였다.그는 그것을 꺼내 별이에게 준 뒤 가방을 원래 위치에 가져다 놓았다. 그러던 중 별이가 실수로 옆에 있던 신발을 밟게 되었고 넘어질 뻔했다.여이현은 얼른 별이를 부축해주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온지유의 가방을 바닥에 떨구게 되었는데 안에서 무언가가 쏟아져 나왔다.소리를 들은 김명자가 얼른 별이를 안고 먼저 거실로 갔고 여이현은 허리를 굽혀 바닥에 떨어진 것을 줍다가 우연히 립스틱 옆에 있는 쪽지를 발견하게 되었다.그는 온지유의 물건을 함부로 볼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쪽지는 열린 상태였고 그가 손을 뻗었을 때 마침 안에 쓰인 글씨를 보게 되었다.내용을 본 여이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위에는 협박하는 내용이 적혀 있었고 마지막 줄엔 커다랗게 미스터리 조직 이름을 적어두었다.이건 도발이었다.그는 어떻게든 빨리 배후를 찾아내야 한다. 그래야만 아이들과 온지유를 지킬 수 있었다.“저녁 준비 다 됐어. 얼른 와서 먹어.”바로 이때 온지유가 음식을 들고나오며 말했다.별이는 즐거운 얼굴로 달려간 뒤 자리
온지유는 속 좁은 사람이 아니었다.“우리 여보가 날 이해해줄 줄 알았어. 우리 여보랑 같이 살 수 있는 건 내 생애 최고의 행운이야.”여이현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그러던 중 별이가 거실에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우리 아들은? 방에서 자고 있는 건가.”“아니야. 지금 숙제하는 중이야.'여이현은 숙제하고 있다는 말에 만감이 교차했다.“우리 아들이 다 컸네. 막 태어났을 땐 아주 자그마했는데. 지금은 숙제도 할 줄 알고. 시간이 좀 더 흐르면 혼자 등하교도 할 수 있겠네.”“이건 좋은 일이야. 별이가 엄청 열심히 숙제하더라니까. 게다가 혼자 문제를 풀더라고.”온지유는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됐어. 그만해. 그냥 숙제만 하는 것뿐이잖아. 아직 장가가기엔 한참 멀었어. 뭘 그렇게 감동하고 그래?”온하윤은 작은 손을 뻗어 여이현의 턱을 만졌다. 그러더니 품에 안고 있던 장난감을 건넸다.그것은 온하윤이 아주 좋아하는 장난감이었다.하지만 온하윤은 장난감보다 아빠를 더 좋아했기에 장난감을 건네며 아빠랑 같이 놀자는 의미로 건넸다.여이현은 딸의 작은 손에서 장난감을 받은 후 눌렀다. 폭신폭신한 촉감이었지만 여전히 마음은 서글펐다.“하윤이도 지금은 이렇게 내 품에 쏙 안기겠지만 빠르게 크겠지. 나중에 남자친구를 데리고 오면서 결혼하겠다고 하고 아이까지 낳을 생각 하니 뭔가 자꾸 아쉬운 마음이 드네.”온지유는 그의 말에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만약 온하윤이 지금 성인이 되어 남자친구까지 사귀었다면 그녀도 확실히 그런 감회가 들 것 같았다.“하지만 하윤이는 아직 한 살도 안 되었잖아. 시집가기엔 한참이나 멀었는걸. 아직 한 살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그런 걱정을 하는 거야? 얼른 가서 저녁이나 차려줘. 별이도 숙제 거의 다 했을 테니까 내가 가서 보면 돼.”온지유는 걸음을 옮겼다.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보니 여이현은 출산하기 전날 고통스러워하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부자이든 아니든, 설령 세계에서 실력이 제일 좋은 산부인과라고 해도 출산할 때
어린이집에서 나와 차로 돌아온 후에야 온지유는 자신의 가방이 열려있다는 것을 발견했다.그녀는 열린 지퍼를 잠그며 말했다.“별아, 이대로 집으로 갈래, 아니면 다른 데 구경하러 갈래?”“집으로 가요, 엄마. 조금 졸려요. 별이는 집에 가서 쉬고 싶어요. 내일도 어린이집 가야 하는걸요.”별이는 알아서 척척 안전벨트를 했다.온지유는 당연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별이와 대화를 나누었다. 운전기사가 앞에서 부드럽게 운전해준 덕에 편하게 집까지 도착했다.집 안으로 들어간 별이는 평소처럼 거실에 앉아 놀지 않았다. 겉옷을 벗고 실내화로 갈아신은 뒤 온지유의 앞으로 달려갔다.“엄마, 전 방에서 숙제하고 있을게요. 아마 저녁 식사 전까지 완성할 수 있을 것 같아요.”“숙제하겠다고?”온지유는 숙제라는 단어가 생소하게 느껴졌다.별이는 아직 어렸던지라 어린이집을 다니고 있었다. 초등학생도 아닌데 벌써 숙제가 있다니.물론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위해 숙제를 냈을 거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조금 빠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네, 선생님이 저희한테 지금부터 숙제하는 좋은 습관을 길러야 한다고 했어요. 안 그러면 초등학생이 되면 힘들다고 하셨어요. 어려운 숙제를 내주신 게 아니니 저는 빨리 완성할 수 있어요.”별이는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비록 아이가 이렇게 말하긴 했지만 온지유는 아이를 따라 방으로 들어가 어떤 숙제를 낸 것인지 확인하려고 했다.두 사람은 계단을 올라갔다. 방으로 돌아온 뒤 별이는 가방에서 어린이집에서 나눠줬다는 연습장을 꺼내 온지유에게 보여주었다.“엄마, 선생님께선 저희에게 숙제를 두 개 내주셨어요. 하나는 글씨 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크기를 비교하는 것이에요.”온지유는 책을 넘기며 대충 훑어보았다. 책에는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간단한 단어가 있었다. 아이들이 쓰기에도 쉬운 단어였다. 수학책에는 1부터 20의 숫자가 있었고 어떤 숫자가 더 큰지 적어넣는 문제가 있었다. 별이처럼 어린아이들에게 그렇게 어려운 숙제는
온지유는 당연히 잘 불러야 했다. 1등을 차지해 별이에게 멋진 엄마가 되어주고 싶었으니까.어린이집으로 가는 길에 온지유는 이어폰을 꽂고 어젯밤 생각해둔 노래를 반복해서 들었다.차는 어린이집 앞에 멈춰 섰다. 그녀는 별이의 손을 잡고 천천히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별이의 반은 3층에 있었다. 다른 어린이들과 학부모들도 거의 도착해 있었다. 온지유가 안으로 들어가자 대부분 사람들이 고개를 들어 그녀를 보았다.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한 무리 학부모 중 온지유가 유난히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오늘의 그녀는 검은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걸음걸이마다 우아함이 돋보이며 굴곡진 몸매에 기품도 느껴졌다.이때 어린이 한 명이 별이의 곁으로 쪼르르 달려가 작게 물었다.“별이 엄마 진짜 예쁘다. 우리 엄마도 별이 네 엄마처럼 이뻤으면 좋겠다.”“우리 엄마들은 다 예뻐.”별이는 친구의 말을 바로잡아주었다.물론 별이의 마음속에 온지유는 세상에서 제일 예쁜 사람이었다.선생님들은 이미 학부모들이 앉을 의자를 준비해 주었다. 아직 어린아이들이 모여있는 반이었던지라 학생이 많지 않았을뿐더러 교실도 꽤나 컸기에 의자를 몇 개 더 가져다 놓는다고 해서 비좁은 느낌은 없었다.온지유는 자리에 앉았다. 별이는 그런 온지유 옆에 곧은 자세로 서 있었다.“별이 엄마, 몸매가 아주 좋으시네요. 평소에 운동하시는 거예요? 저도 몸매 유지하는 비결 좀 알려주시면 안 될까요?”옆자리에 앉은 학부모가 먼저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전 평소에 식사량이 많지 않은데도 뱃살은 빠지지 않더라고요.”여자들의 관심사는 전부 비슷했다. 그들은 미용이거나 몸매 관리에 관심이 아주 많았다.온지유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말해준 뒤 핸드폰을 꺼내 저장해둔 영상을 몇 개 보여주었다.“전 집에서 요가를 하거든요. 이 영상들을 따라 해봤는데 효과가 꽤 있었어요. 평소에 적게 드신다면 살은 당연히 빠지겠지만 뱃살을 없애고 싶은 거라면 제 생각엔 운동은 필수인 것 같네요.”“저희 연락처 교환해요. 이 영상들을
온지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노래를 잘 부르는 것은 아니나 음치는 아니었다.별이는 기쁜 얼굴로 손뼉을 쳤다.“너무 좋아요. 아빠, 엄마, 내일 어린이집에서 가족 이벤트를 한다고 했어요. 노래 대회라고 했는데 별이랑 같이 참가해줄 거죠?”내일은 주말이었다. 어린이집에서 주말에 이런 이벤트를 계획한 것도 평일 출근할 학부모를 고려해서였다.만약 여이현에게 다른 일정이 없다면 당연히 아내와 함께 별이의 어린이집으로 갈 것이었지만 하필이면 새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다.배진호는 권다솔의 마음을 되돌리느라 시간이 없으니 그가 해야 했다.“여보, 여보가 별이랑 같이 가줘. 난 그날 거래처 만나봐야 하거든.”신호를 기다리는 틈을 타 여이현이 온지유에게 말했다.온지유는 당연히 고개를 끄덕였다.아이의 일에 부모 모두 책임을 져야 했지만 두 사람은 부부였던지라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도 필요했다.여이현이 바쁘게 일하는 것도 더 유복하고 행복한 가정을 만들기 위함이라는 것을 온지유도 잘 알고 있었다.별이는 더욱 배려심이 깊은 아이였다. 고집을 부리지도 않고 온지유의 팔을 꼬옥 잡아 기대며 말했다.“그럼 아빠는 일하러 가세요. 별이는 엄마만 있어도 괜찮아요. 선생님도 두 분 중 한 명만 있어도 된다고 했어요. 물론 두 분이 같이 가면 더 환영한댔어요.”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세 사람은 웃고 떠들다 보니 어느새 집에 도착했다.세 사람이 돌아왔다는 것을 눈치채기라도 한 것인지 자고 있던 온하윤도 눈을 떴다. 작은 입을 벌리며 하품했다.옆에 있던 김명자는 얼른 주방으로 가서 분유를 탄 뒤 온하윤의 입에 물려주었다. 향긋한 분유 냄새를 맡은 온하윤은 꿀꺽꿀꺽 젖병을 빨아 먹었다.세 사람이 집 안으로 들어왔을 때 마침 이 모습을 보게 되었다. 너무도 행복했다.“오늘 저녁은 내가 할게. 별이가 먹고 싶다는 햄버거를 만들고 있을 테니까 당신은 아이들이랑 놀아줘.”온지유는 여이현에게 뽀뽀한 뒤 앞치마를 두르곤 주방으로 들어갔다.거실에선 웃고 떠드는 소리가 울
권다솔은 이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바로 결혼할 수 없었다.게다가 남태건과 평생 묶여 살고 싶지도 않았다.설령 어젯밤 이상한 약물 탓에 그와 밤을 보내게 되었다고 해도 그녀의 마음속엔 온통 배진호뿐이었다. 오늘 아침 눈을 떴을 때 그녀의 온몸이 남태건의 터치를 거부하고 있었다. 설령 그저 손을 잡는 것일 뿐이라고 해도 말이다.남태건은 잔뜩 실망한 기색이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그래, 일단 생각은 해봐. 다솔아, 급하게 답을 주지 않아도 돼.”그녀가 계속 거절한다면 그녀의 부모님을 찾아가 설득하면 그만이었다.권다솔의 부모님은 그를 아주 좋아했다. 어떻게든 그녀와 이어주려고 했으니 그들과 손을 잡는다면 권다솔과 결혼할 수 있을 것이다.권다솔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설령 오랫동안 생각을 해본다고 해도 남태건을 받아줄 리가 없었다....한편 온지유 쪽.권다솔이 떠난 후 두 사람은 서로 연락하지 않았다.그동안 여이현은 배진호를 찾아간 적 있었다. 기획하고 있던 프로젝트를 넘겨주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배진호는 집안일로 상태가 아주 좋지 못했다. 지금까지 혼자 회사를 운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힘들어 보였으며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을 기력은 없었다.배진호는 여이현의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 솔직하게 말했다.그가 솔직하게 말하니 여이현도 강요하지 않았다.“일단 집안일부터 처리하세요.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고요. 집안일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 나한테 다시 찾아와도 돼요. 그때 또 새로운 일을 줄 테니까요.”여하간에 여진 그룹은 대기업이었기에 프로젝트는 언제든지 있었다.한번 기회를 놓친다고 해서 문제가 될 건 없었다.배진호는 그런 여이현이 너무도 고마웠다. 이미 충분히 그를 도와주고 있었다.하지만 감정이라는 건 결국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는 법이었다. 물을 마셔도 뜨거운 것인지 차가운 것인지 본인만 아는 것처럼 말이다. 너무 많은 사람이 끼어들면 때로는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킬 때도 있었다.그는 권다솔과 다시 함께 살고 싶었지만, 전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