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으로 나온 배진호는 온지유를 흔들어 깨웠다. 그녀는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왜 그래요?”“대표님이 술을 많이 마셨나 봐요.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않아요.”온지유는 황급히 여이현의 상태를 체크했다. 그는 조금 전의 자세 그대로 앉은 채 곤히 잠들었다.평소에는 한 번도 이런 적 없으니 진짜 술에 취했을지도 모르겠다. 온지유의 기억 속에는 이토록 곤히 잠든 그의 모습이 없었다.어느샌가 집 앞에 도착한 것을 보고 온지유가 말했다.“제가 사람을 불러서 대표님을 부축할게요. 시간이 늦었으니 배 비서님은 얼른 돌아가서 쉬세요.”순간 정신을 차린 온지유는 빠르게 움직였다.“네, 수고하세요.”차에서 내린 온지유는 도우미를 불러 여이현을 부축했다. 그렇게 그를 침대에 눕힌 다음 온지유는 힘이 완전히 빠져나갔다.침대에 옮겨질 때까지 눈 한 번 뜨지 않은 남자를 보고 그녀는 신발에 정장 외투까지 벗겨줬다. 그의 몸에서는 짙은 술 냄새가 나고 있었다.‘정말 많이 마셨나 보네.’이때 여이현이 뒤척이며 무의식적으로 그녀를 끌어안았다. 온지유는 배를 그의 얼굴에 댄 채로 꼼짝 못 하게 되었다.지금 그녀의 무릎에 누워 있는 여이현에게서 평소의 예리함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마치 온기를 탐하는 어린아이와 같았다. 누가 이 아이를 한 회사 대표로 보겠는가?온지유는 손을 올려 그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그녀의 손길을 그의 콧대를 타고 내려갔다.‘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부드러운 미소를 짓는 것도 잠시 그녀는 금방 손을 떼어냈다. 그리고 따듯한 물을 받아와서 그의 몸을 닦아줬다.그녀는 차분하게 셔츠에 바지까지 벗기고, 따듯한 수건으로 몸을 닦아줬다. 하지만 어느 순간 멈춰 서서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어두운 조명을 빌어 그녀는 침대 가에 앉았다. 여이현의 몸에는 흉터가 아주 많았다. 직접적으로 몸을 보는 것은 처음이라 이제야 발견했다.‘전에는 왜 한 번도 볼 생각을 안 했을까. 이현 씨 몸에 흉터가 이렇게 많았다니...’복부에도 흉터가 있는 것을 보
온지유는 부랴부랴 눈물을 닦아냈다. 그리고 그나마 멀쩡한 표정으로 여이현을 바라보며 말했다.“오늘 많이 마셨어요. 얼른 다시 쉬세요.”여이현은 눈살을 찌푸리더니 다시 물었다.“너 방금 울었어?”온지유는 무의식적으로 머리를 숙였다.“눈에 먼지가 들어가서요.”“도대체 왜 울었는데?”온지유는 쉽게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그녀가 눈물을 흘렸다는 것은 아주 심각한 일이라는 뜻이다.여이현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녀는 잠깐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아까 보니까 이현 씨 몸에 상처가 너무 많더라고요. 저는 전혀 몰랐어요.”여이현은 잠깐 멈칫하더니 기분 좋은 듯 말했다.“날 걱정해 준 거야?”여이현의 말에 그녀는 심장이 쿵 내려앉더니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비밀을 들킨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몸에 흉터가 이렇게 많은 건 처음 봐서요. 많이 아팠죠.”그녀는 바늘에 찔려도 한참 낑낑대는 사람이었다. 이 정도 흉터가 남을 상처라면 견디지 못했을 수도 있다.여이현의 눈빛은 물씬 부드러워졌다. 냉정함과 거리감도 보아낼 수 없었다.“내 흉터를 보고 그런 말을 한 건 네가 처음이야.”그는 입꼬리는 올리며 피식 웃었다. 자신을 향한 비웃음인 것 같았다.온지유는 머리를 들어 그와 눈을 마주쳤다. 왠지 모를 씁쓸함을 보아낸 그녀는 곧바로 말을 이었다.“그럴 리가요. 이현 씨 흉터에 속상해하는 사람 많았을 거예요. 할아버님도 어머님도... 이현 씨를 걱정하는 가족분들이 많잖아요.”온지유는 일을 너무 쉽게 생각했다. 그녀는 여씨 가문의 모두가 그를 아껴준다고 생각했다.애초에 그가 오냐오냐 자랐다면 이런 상처를 입을 일이 없었다. 총알이 남긴 흉터는 그녀 때문이니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흉터는 어떻게 왔단 말인가?온지유는 약간 놀라웠다. 눈빛에도 의혹이 담기기 시작했다.그녀에게 들킨 이상 여이현은 더 이상 숨길 필요가 없었다. 그는 셔츠를 완전히 벗으며 흉터는 다시 드러냈다.그 모습에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았던 온지유는 입술을 깨물었다. 여이현은 미간을
여이현은 자신을 무방비하게 드러냈다. 등에도 험악한 흉터가 잔뜩 남아 있었고 조각 같은 몸매에 색다른 느낌을 줬다.온지유는 그의 등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누가 여씨 가문의 여이현에게 이런 흉터가 있을 줄 알겠는가?그녀는 손을 뻗어 그의 등을 어루만졌다. 그는 잠깐 멈칫하기만 할 뿐 거절하지는 않았다. 그녀의 손길을 가만히 느끼던 그는 걸걸한 목소리로 말했다.“이제 안 아파.”흉터는 온지유의 심장에 거듭 꽂혔다. 그녀는 말없이 주먹을 꽉 쥐었다.여이현이 말하기 싫어하는 걸 봐서 안 좋은 일이 있었던 것이 확실했다. 그녀가 기억하는 것도 좋은 일이 아닐 것이다.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뒤로 물러났다. 너무나도 낯설게 느껴지는 여이현에 그가 바로 기억 속의 ‘석이’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여희영은 여진숙을 대놓고 싫어했다. 심지어 여이현은 자신이 직접 키웠으니, 여진숙이 뭐라고 할 자격 없다고 했다. 여진숙은 어머니로서 여이현에게 별로 관심이 없어 보였다. 이것 또한 이상하지 않은가?어쩌면 여진숙이 여이현에게 무심했고, 그래서 여이현이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만약 여이현이 얼마나 잘났는지는 중년에 가서야 알았다면 최근 갑자기 잘해주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머릿속이 복잡했던 온지유는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이만 씻으러 가요. 술 냄새가 너무 심해요.”“알았어.”여이현은 무덤덤하게 셔츠를 챙겨 들고 샤워하러 갔다. 밖에서 온지유는 그의 잠옷을 챙겨서 욕실 앞에 내려놓았다.온지유는 그를 챙겨주는 데 익숙했고, 여이현도 그녀에게 챙김을 받는 데 익숙했다. 때로는 그녀가 이혼하고 떠난 다음 여이현이 적적해하지는 않을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만약 그를 완벽하게 챙겨줄 수 있는 다른 여자가 나타난다면 그녀 따위는 금방 잊을지도 모른다. 지구는 어느 한 사람 때문에 돌지 않고, 여이현도 그녀 없이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온지유도 이만 잠옷을 들고 다른 욕실에서 씻고 돌아왔다. 그녀가 침대에 누워서 눈을 감았을 때 여이현이 샤워를 끝내
여이현이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던 온지유는 깜짝 놀란 표정이었다. 부드러운 키스는 소유욕으로 인해 점점 거칠어졌다.온지유는 막연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여이현이 그녀의 옷을 벗기는 순간 후딱 정신 차리고 아랫배를 감쌌다. 다른 한 손은 있는 힘껏 그를 밀어냈다.“안 돼요!”한창 빠져있던 여이현도 밀려나면서 정신을 차렸다. 온지유는 두려운 눈빛으로 옷을 꽉 잡고 있었다. 그와 관계 맺는 것을 진심으로 싫어하는 모습이었다.욕망으로 불타오르던 마음은 차갑게 식었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너 지금 이러는 거 나 대표 때문이야? 석이라는 자식 때문이야?”여이현은 그녀가 당연히 다른 남자 때문에 자신을 거절한다고 생각했다.반대로 온지유는 말없이 아랫배를 매만졌다. 임신한 이상 충동적으로 행동해서는 안 된다. 자칫 한 생명이 위험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여이현이 아무리 싸늘한 표정을 짓는다고 해도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술에 취했고, 이성적이지 못한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아이 역시 술에 취한 상태에서 생긴 것이었다. 그녀와 아이 모두 무사히 살아남기 위해서는 밀어내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다.그녀는 머리를 숙이며 아무런 변명이나 했다.“몸이 불편해서... 지금은 안 돼요.”이런 변명이 여이현에게 통할 리가 없었다. 그도 당연히 변명이라는 것을 알았다.눈빛에 담긴 불쾌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분위기도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그는 바로 침대에서 일어나더니 차갑게 말했다.“다른 남자를 위해 날 밀어낼 정도면 같이 잘 것도 없겠네. 난 서재에 가서 잘게.”말을 마친 여이현은 머리도 돌리지 않고 멀어져갔다. 쾅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온지유는 옷매무시를 정리하고 침대에 앉았다. 그는 자신의 배를 바라보며 천천히 쓰다듬었다. 아이를 위로하는 것 같기도 하고, 자기 자신을 위로하는 것 같기도 했다.“아가야, 아빠가 화를 낸 건 네 존재를 몰라서야. 엄마가 아직 용기 내서 말해주지 못했어. 대신 엄마가 배로 사랑해 줄게.”여이현이 아무리
온지유는 마지막 한 입까지 먹고 젓가락을 내려놓았다.여진숙이 자신에게 불만이 있다는 것은 진작 알고 있었다. 여이현이 그녀를 감싸줄 때마다 쌓여갔던 불만이기 때문이다.온지유는 몸을 일으키며 여진숙을 똑바로 바라봤다.“어머님은 제가 임신하는 걸 원하지 않으시죠?”예상치 못한 화제에 여진숙은 잠깐 멈칫했다.“그건 왜 갑자기 묻는 거니?”“하긴, 어머님은 노승아 씨를 좋아하니 당연히 제가 임신하는 걸 원하지 않겠죠. 이현 씨도 마찬가지예요. 저한테 임신하지 못하게 하는 약을 먹이고는 하루 종일 듣기 싫은 말만 해요.”온지유가 먼저 말을 꺼내는 것을 보고 여진숙도 더 이상 연기하지 않았다.“알면 됐다. 우리 집안에 네 피를 끌어들일 수는 없어.”이렇게 말하며 약간 득의양양해진 여진숙은 자리에 앉으면서 오만하게 말했다.“우리 이현이 좋아하는 사람은 승아야. 그런데 어떻게 널 건드릴 수 있겠니? 아버지가 미쳤지, 너 같은 애를 집안에 들이다니. 너만 아니었어도 승아가 진작 우리 집안에 들어왔을 거다.”“맞아요. 저도 다 아니까 이제 약은 주지 마세요. 줘도 안 먹을 거니까요.”차갑게 말하고 난 온지유는 가방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그녀의 오만한 모습에 화가 치밀어 올랐던 여진숙은 뒤에서 큰 소리로 외쳤다.“아무리 잔머리를 굴려 봤자 넌 우리 집안 애를 낳지 못해! 너한테 그럴 능력도 없겠지만 말이야! 오만하게 굴지 마. 이 집안을 떠날 때 넌 무릎 꿇고 나한테 빌게 될 테니까.”전에는 그녀가 아무리 괴롭혀도 말대꾸 한 번 안 하던 온지유였다. 하지만 이제는 여이현을 믿고 그러는 것인지 부쩍 나대기 시작했다.‘두고 봐. 내가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까.’여진숙은 피식 웃더니 노승아와 함께 매니큐어 받으러 갔다. 반대로 온지유는 클럽 매니저를 만나러 갔다.“왔어요, 지유 씨.”환하게 인사하는 것도 잠시 매니저는 난감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저 지유 씨한테 할 말이 있어요.”“저도 할 말이 있어요.”“지유 씨 먼저 말해요.”“지난번의 여
이 말을 듣고 여이현은 우뚝 멈춰 서며 몸을 돌렸다.“무슨 여자?”중간에서 말을 전하는 사람으로서 배진호는 목에 칼이 닿은 것만 같았다. 도대체 부부 생활을 어떻게 했기에 아내가 남편에게 다른 여자를 찾아주는지 의아할 따름이다.더군다나 남편이라는 작자는 아내에게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이고 결혼 사실도 밝히지 않았다. 중간에 끼인 배진호만 죽어 나가는 상황이었다.“그게... 그날 밤 대표님과 같이 있었던 여자 말입니다.”이 말을 듣자마자 여이현은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어제 온지유에게 밀려났던 일이 다시 떠올랐던 것이다.‘이렇게 다른 여자를 끌어들이고 싶었나? 도대체 얼마나 날 싫어하는 거야.’여이현의 얼굴에는 얼음이 내려앉은 것만 같았다. 그런데도 그는 여전한 목소리로 말했다.“알았어요. 잠깐 기다리라고 해요.”온지유가 출근해서 가방을 내려놓기 바쁘게 배진호가 걸어왔다.“온 비서님, 대표님께서 손님과 함께 휴게실에서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네?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온지유가 못 알아챈 것을 보고 여이현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보탰다.“온 비서님이 그 여자를 데려온 거 아니에요?”온지유는 추측 가는 바가 있었지만 감히 확신하지 못했다. 그녀는 휴게실을 힐끗 보더니 부리나케 달려갔다.주소영은 가만히 휴게실에 앉아 있었다. 오늘따라 색다른 느낌을 주는 모습이었다.검은색 머리카락과 흔히 보이는 출근룩, 어딘가 불쌍해 보이는 모습은 보호 본능을 이끌었다.이런 곳에 처음 오는 주소영은 약간 불편해 보였다. 그녀는 시골 출신이다. 그리고 어릴 적부터 도시의 높은 건물을 꿈꿔왔다. 지금 그 높은 건물에 들어와서 도시를 내려보고 있다니, 이보다 더 짜릿할 수도 없었다.그녀는 두리번거리다가 문 가에 서 있는 온지유를 발견하고 먼저 인사했다.“안녕하세요, 지유 씨.”“여기는 어떻게 왔어요?”주소영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되물었다.“지유 씨 여기에서 일해요?”밖에 아직 사람이 있었기에 온지유는 안으로 들어가면서 문을 닫았다.“네.”주소
온지유는 머리를 돌려 주소영을 바라봤다. 주소영의 당당한 모습에 그녀마저 속을 것만 같았다.지금은 일단 할 일이 있어서 그녀는 말없이 나갔다. 그렇게 3시간이 지난 다음에도 돌아가지 못했다.이때 회의실 문이 열리고 회의를 끝낸 여이현이 밖으로 나왔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배진호는 가까이 다가가 말했다.“대표님, 휴게실에 가보셔야 합니다.”여이현은 차가운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손목시계를 힐끗 확인한 그는 싸늘하게 웃었다.그가 휴게실에 들어갔을 때 안에는 주소영밖에 없었다. 기다리다 지친 그녀는 소파에 누워 있었다.여이현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온지유부터 찾았다. 온지유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그녀가 누워 있는 소파 앞으로 가서 멈춰 섰다.피곤했던 주소영은 눈을 감고 있었다. 물론 큰일을 망칠까 봐 잠들지는 못했다. 약간의 인기척이 느껴져서 눈을 뜨자 눈앞에는 싸늘한 표정으로 그녀를 훑어보고 있는 거대한 몸집이 보였다.그녀는 잠깐 멈칫하다가 화들짝 놀라며 일어났다. 상대가 여이현이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사과부터 했다.“죄송해요...”그녀는 부랴부랴 옷매무시를 정리했다. 여이현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 말도 안 했다.그녀의 습관은 온지유와 아주 비슷했다. 온지유도 잘못을 하면 일단 사과부터 했다. 그게 누구 잘못인지 따지지도 않고서 말이다.여이현이 하도 말이 없어서 주소영은 안절부절못하며 그의 구두만 바라봤다. 그러다가도 약간 궁금해서 조심스레 고개를 들었다.분위기를 풀어줄 온지유가 아직도 나타나지 않은 것을 보고는 다시 화들짝 고개를 숙였다가 조심스레 물었다.“왜 아무 말도 안 하세요? 지, 지유 씨는 같이 안 왔나요?”여이현은 무표정한 얼굴로 차갑게 되물었다.“온 비서가 데려온 여자가 그쪽이야?”나지막한 목소리에 주소영은 단번에 홀렸다. 그녀는 천천히 시선을 올리더니 여이현의 깊은 눈동자와 마주했다.몸을 흠칫 떤 그녀는 남자의 이목구비에 완전히 빠져서 한참이나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녀는 여이현이 미간을 찌푸린
주소영은 잔뜩 굳은 얼굴로 주먹을 쥐었다. 그녀가 아무 말도 안 하는 것을 보고 여이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그렇게 어려운 질문인가?”이때 온지유는 마침 부랴부랴 달려오면서 여이현의 질문을 들었다. 한발 늦은 그녀는 문손잡이를 잡았다가 다시 놓았다.주소영은 한참이나 침묵에 잠겼다. 강압적인 분위기 때문에 스트레스도 급격히 상승했다.그는 힘들게 고개를 들어서 여이현을 바라봤다. 자칫하면 무시무시한 일이 일어나리라는 직감이 들었다.“그 호텔에... 부... 부자가 많다고 들어서요. 돈 많은 남자라도 꼬셔서 팔자 바꿀 생각으로 갔었어요.”여이현은 미간을 찌푸렸다. 주소영을 바라보는 눈빛도 완전히 변했다.그녀의 말은 돈 받고 몸을 판다는 말과 다름없었다. 이 사회에 그런 사람이 실제로 많기도 했다.눈치 보다가 문을 연 온지유의 손에는 커피잔이 들려 있었다. 그녀는 여이현의 앞에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커피 드세요.”주소영의 몫도 그녀의 앞에 내려놓았다. 그녀는 머리를 들며 인사했다.“고마워요.”여이현은 더 이상 주소영과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낯선 사람을 쉽게 믿을 수도 없으니 말이다.그는 말없이 앞에 놓여 있던 자료를 펼쳐봤다. 그 속에는 CCTV 화면을 캡처 한 사진이 들어 있었다.사진 속의 여자는 주소영과 똑같이 생겼다. 그녀가 걸어가는 방향도 스위트룸이 틀림없었다. 심지어 정리되지 않은 옷가지도 그가 기억하는 것과 같았다.자료에는 그녀에 대한 소개도 있었다. 그녀에게는 남동생 두 명이 있는 데다가 어머니가 투병 중이었는데, 남동생의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급하게 돈이 필요했다.주소영은 어린 나이에 집안의 가장이 되었다. 그녀는 성인이 되기 바쁘게 학교에서 자퇴하고 일하기 시작했다.전에는 어머니를 보살펴주기 위해 고향 근처에서 일했다. 하지만 돈이 점점 많이 필요하면서는 큰 도시로 올라오게 되었다. 그러다가 여이현과도 만나게 되었을 것이다.여이현은 자료를 내려놓더니 주소영을 바라보며 물었다.“돈이 필요해?”“네,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