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은정의 다리부터 확인하던 추하나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은정 씨, 다리는 좀 괜찮아요?”추하나의 질문에 소은정이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하나 씨가 병원에 왔던 거 알아요. 우리 오빠가 안 들여보냈다면서요. 워낙 고지식한 사람이라 그런 거니까 마음에 담아두지 말아요.”소은호에게서 추하나가 왔었다는 사실을 들었던 소은정이 해명하고 추하나 역시 다행히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아니에요. 이해해요. 환자는 뭐니뭐니 해도 쉬는 게 최고죠.”추하나와 대화를 마친 소은정은 다른 세 연예인과도 짧은 인사를 나누었고 곧 어색한 침묵이 드리웠다.세 여배우 모두 무슨 말로 소은정에게 다가가야 할지 눈치를 보는 느낌에 소은정이 먼저 입을 열었다.다들 요즘 잘 나가는 스타들, 지금 인맥을 쌓아두면 앞으로 신제품 홍보 모델로 채택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조한 씨, 조한 씨가 연기한 작품들 다 재밌게 봤어요. 연기 좋으시던데요?”워낙 털털한 성격의 장조한은 갑작스러운 소은정의 칭찬에 당황한 듯 손을 저었다.“아니에요. 소 대표님이 제 연기를 좋아해 주신다니 저야말로 영광인데요.”긴장한 듯 매력적인 빨간 입술을 살짝 핥던 장조한은 들고 있던 와인잔을 원샷으로 비워냈다.“감사의 의미로 이 와인은 원샷했습니다. 부담 갖지 마세요.”그 모습을 소은정이 멍하니 바라보자 이은영은 자기도 마셔야 하나 망설이며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고 양예영이 피식 웃으며 농담을 건넸다.“언니, 언니 주당인 거 다 아니까 그만해요. 우리 소 대표님 놀라셨잖아. 아직 다리가 다 안 나으셔서 술은 못 마시실 것 같은데?”“그럼요, 그럼요. 강요하는 거 아니니까 편한대로 하세요.”장조한이 또다시 다급하게 손을 내젓고 소은정은 이 상황이 어리둥절할 따름이었다. 분명 두 사람은 초면인데 왠지 그녀를 두려워하는 듯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조한 씨 성격 시원시원하시네요. 이제 다리 다 나으면 같이 한 잔 해요!”짧은 대화가 끝나고 불편해 하는 소은정의 모습에 추하나가 그녀의 손목
갑자기 나타난 사람의 모습에 흠칫 놀란 소은정이 고개를 들었다.역시나 강서진이었다.추하나 역시 강서진의 얼굴을 확인하고 표정이 확 어두워졌다.“여긴 어떻게 들어온 거야?”입술을 달싹이던 강서진이 솔직하게 말하려던 그때 소은정의 매서운 눈초리가 느껴지고 애꿎은 헛기침만 해대던 강서진이 겨우 대답했다.“몰래 들어왔어.”“여기 누가 당신을 반긴다고?”추하나의 질문에 강서진이 차갑게 웃었다.“날 안 반기는 사람은 당신뿐인 것 같은데?”“잘 아네.”가시 돋힌 두 전 부부의 대화에 어색해진 소은정이 자리를 옮기려던 그때 강서진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에 동작을 멈추었다.“그 기생오라비 같은 자식이 뭐가 좋다고? 박씨 집안 재산이 그 자식한테 한푼이라도 돌아갈 것 같아? 그리고 그 자식이 정말 당신을 사랑하는 줄 알아? 그냥 호기심에 한번 놀아보려고 그러는 거 뻔하잖아!”“짝!”강서진의 말에 벌떡 일어선 추하나가 그의 뺨을 날렸다.“가지고 노는 거든 아니든 당신이랑 상관없는 일이니까 꺼져.”추하나의 반응에 강서진의 얼굴이 울그락 푸르락해지고 이를 악물던 강서진이 또 뭔가를 말하려던 그때 박우혁의 차가운 웃음소리가 그의 신경을 자극했다.“강 대표님, 정말 뻔뻔하시네요. 집착도 정도껏 하셔야죠.”추하나의 동태를 살피다 강서진의 등장에 한달음에 다가온 박우혁이 비아냥거렸다.새파랗게 어린 자식이 건방지기까지 하니 강서진은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었다.“내가 내 전 와이프랑 말 좀 하겠다는데 무슨 상관이지?”강서진의 대답에 박우혁의 매력적인 눈이 조각달처럼 휘어졌다.“강 대표님도 잘 아시네요. 하나는 대표님 전 와이프죠. 그리고 지금은 제 여자친구고요. 그러니까 이 정도는 할 수 있는 거잖아요?”두 사람의 팽팽한 기싸움이 시작되었다.껄렁하긴 해도 강서진은 한 기업을 이끄는 어엿한 대표, 포스는 강서진이 우위였으나 박우혁은 추하나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박우혁의 압승이었다.강서진은 거의 눈이 돌아간 채 소리쳤다.“박우혁, 너 네가
서로를 바라보는 박우혁과 추하나의 눈빛을 확인한 소은정은 말없이 탄산수를 한모금 마셨다.누가 봐도 서로를 뜨겁게 사랑하는 연인의 눈빛. 진지하게 만나는 거라면 반대할 이유도 반대할 자격도 그녀에게는 없는 거니까.그래, 가벼운 연애도 나쁘지 않지. 게다가 추하나 씨처럼 강서진 같은 나쁜 남자한테 데인 여자라면 더더욱. 박우혁, 어린애 같긴 해도 속은 깊은 자식이니까 잘해낼 거야.분노로 부들거리던 강서진이 손을 들자 박우혁이 추하나의 앞을 막아섰다.“하나야, 강 대표님은 널 지키지 못했지만 난 아니야. 네가 조금이라도 슬퍼지는 건 싫어. 네가 조금이라도 다치는 것도 싫어.”박우혁의 당돌한 말투에 소은정은 박우혁의 뛰어난 연기에 기립박수라도 치고 싶은 심정이었다.호오, 저 자식, 아침 드라마 남자주인공 역할로 딱인데?얼마 전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의 남주인공이 말했던 “사랑이 죄는 아니잖아!”라는 대사를 넘어서는 기막힘이었다.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추하나는 그 닭살스럽고 기막힌 박우혁의 말에 감동을 받았는지 눈물을 글썽였다.누가 봐도 박우혁, 추하나는 서로 죽고 못 사는 다정한 커플, 강서진은 남여주인공의 사랑을 방해하는 악역이 되어버린 분위기에 강서진의 표정은 벌레라도 씹은 듯 일그러졌다.그 모습을 바라보던 소은정이 여유롭게 탄산수를 마시려던 그때, 팔목의 핏줄까지 세우며 부들거리던 강서진이 손을 들어 소은정을 가리켰다.“추하나, 저 기생오라비 같은 자식 전에는 소은정 좋아했던 거 알아? 수혁이 형한테 겁 먹고 떨어지고 다시 너한테 들러붙는 거 봐. 쟤 이혼녀 패티시 같은 거 있다고! 정신 좀 차려!”강서진의 핵폭탄급 발언에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집중되었다. 하마터면 입에 머금고 있던 탄산수를 그대로 내뿜을 뻔한 소은정이 고개를 들어 강서진을 노려보았다.하, 잠깐이라도 저딴 자식을 불쌍하게 생각한 내가 불쌍하지. 평생 혼자 홀애비로 살아라, 이 못난 자식아!”“헛소리!”강서진의 말에 소은정, 박우혁이 동시에 소리쳤다.박우혁이 잠깐 그녀에게
사람들은 항상 부드러운 미소를 짓는 전동하를 허허실실 착하기만 한 사람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전동하에게 미소는 또 다른 포커페이스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의 포커페이스를 흔들 수 있는 사람은 소은정뿐이었다.전동하의 두둔에 소은정 역시 마음이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녀는 고마움의 인사 대신 전동하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주위의 사람들의 시선이 모이고 전동하의 말에 강서진은 창피함이 밀려들었다.전동하, 네가 뭔데 나한테 지적질이야.강서진은 어디까지나 박수혁의 편, 가뜩이나 박수혁의 라이벌인 전동하가 고깝던 차에 그에게까지 지적질을 하는 모습에 더 화가 치밀었다.홱 돌아선 강서진이 전동하에게 욕설을 내뱉으려던 찰나, 소은정의 차가운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친 강서진은 억지로 모든 말을 삼켜버릴 수밖에 없었다.참, 소은정한테 아직 내 누드 사진이 있었지. 저 심기를 건드렸다가 정말 그 사진을 인터넷에 유출이라도 하면...순간 강서진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게다가 상대는 소은정, 한다면 정말 하는 성격의 무서운 여자였다.전동하와 소은정을 번갈아 바라보던 강서진은 결국 시선을 거둘 수박에 없었다.다들 강서진이 또 한번 난동을 부리겠구나 생각하던 그때, 강서진은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소은정을 향해 미소를 짓는 건 물론 고개까지 숙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제가 말실수를 했네요. 죄송합니다.”어딘가 비굴하기까지 한 강서진의 모습에 사람들의 입이 떡 벌어졌다. 아무리 평소 껄렁거리는 다혈질이라지만 강서진도 엄연한 한 그룹의 대표, 아무리 그 규모가 SC그룹보다 떨어진다 해도 어딜 가나 대표님 소리를 들으며 대접받는 인물이다.게다가 박수혁과 절친한 사이라 그 누구도 먼저 건드리지 않는 존재가 바로 강서진인데 소은정에게 고개까지 숙이며 사과를 하다니. 사람들이 충격을 받을만 했다.하지만 소은정은 이 모든 상황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차분한 얼굴로 강서진의 얼굴을 훑어보았다.하, 강서진 생각보다 똑똑한데? 더 나대면 정말 사진 뿌려버릴까 했는데.몇 초간 침묵
하지만 소은정은 바로 포커페이스로 표정을 바꾸었다.“나 안 웃었는데?”이때 전동하가 소은정 곁으로 다가왔다.“앉아도 돼요?”소은정 곁에 있고 싶었지만 괜히 그가 들으면 안 되는 사적인 이야기를 듣게 될까, 눈치없이 앉아있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되어 한 질문이었다.전동하의 젠틀함에 추하나가 손을 내저었다.“그럼요. 당연히 괜찮죠. 전 대표님 덕분에 한 고비 넘겼네요.”추하나 역시 부드러운 분위기속에 날카로운 비수를 숨기고 있는 전동하를 눈 여겨 보기 시작했다.이때 전동하와 소은정을 번갈아 바라보던 박우혁이 한숨을 내쉬었다.“고맙다고 말할 필요없어. 우리가 아니라 은정이 누나 때문에 나서준 거니까.”박우혁의 눈치없는 발언에 그의 옆구리를 쿡 찌른 소은정이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이번 프로그램 최고의 위너는 역시 하나 씨네요?”프로그램에서 대화도 거의 하지 않던 두 사람이 사귀게 될 거라곤 소은정도 예상치 못한 일이라 여전히 놀라울 따름이었다.추하나가 쑥스러운 미소를 짓자 박우혁이 대신 대답했다.“우리 하나는 워낙 훌륭하니까 뭐. 아, 누나 채태현 그 자식 때문에 하차한 거라면서?”하, 하필 채태현 그 자식 얘기를...입술을 깨물던 소은정이 차가운 눈동자로 박우혁을 노려보았다.함께 조난당했던 정을 봐서 참는다.“하, 내가 얼마나 바쁜데. 그룹 대표가 쉬운 줄 알아?”소은정의 변명에 박우혁이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젓고 망설이던 추하나도 입을 열었다.“사실 저희가 사귀는 건... 시간이 좀 더 지나면 발표하려고 했어요. 아직 사귄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니까...”한번 결혼에 실패한 여자라면 새로운 사랑 앞에서 신중해지기 마련, 소은정도 충분히 그녀의 마음이 이해가 갔다.하지만 박우혁은 평소와 달리 진지한 표정으로 추하나의 손을 잡았다.“난 너랑 사귀는 첫날부터 온 세상 사람들한테 다 말하고 싶었는데? 걱정하지 마.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 두 사람이면 헤쳐나갈 수 있을 거야.”뜨거운 눈빛으로
한편 추하나는 자신의 감정에 대해 아주 냉정하게 분석을 마친 상태였다. 그녀는 자신보다 1살 어린 박우혁을 사랑하게 됐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의미없는 줄다리기는 그만두고 박우혁의 마음을 받아주었다.어쩌면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충동적인 선택 중 하나였지만 적어도 지금은 후회스럽지 않았다.박우혁과 평생을 함께 하고 싶은 만큼, 가장 충동적이었지만 어쩌면 가장 정확한 선택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그와 함께 있는 게 행복했으니까.서로를 바라보는 박우혁과 추하나의 눈빛을 바라보던 소은정은 강서진에게 더 이상 기회란 없다는 걸 깨달았다.아무리 노력해도 저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 수는 없겠지.추하나의 말을 끝까지 듣고 있던 소은정은 소녀처럼 두 손을 꼭 모았다.“진짜 로맨틱하네요. 두 사람 영원히 행복하길 바랄게요.”조금은 성급하게 사귀어 뜨거운 사랑을 하는 두 사람, 곧 열애의 콩깍지가 벗겨지고 유언비어나 현실과 마주해야 할지도 모르지만 저 사랑만 지켜나간다면 충분히 헤쳐나갈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박우혁, 추하나 두 사람의 애정행각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왠지 부럽기도 하고 마음이 불편해져 소은정은 어색한 미소와 함께 대충 핑계를 대고 자리에서 일어섰다.전동하도 그런 그녀의 뒤를 따랐다.파티장을 나서고 기사에게 전화를 걸려던 그때, 추하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긴 드레스 자락을 들고 달려오던 추하나가 소은정의 귓가에 속삭였다.“은정 씨, 은정 씨랑 단둘이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요.”추하나의 말에 소은정이 눈썹을 치켜세웠다. 뭐야? 정말 강서진 그 개자식 말을 믿는 건 아니겠지? 설마 해명이라도 해야 하나? 박우혁이랑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 해명한다 해도 추하나가 믿어줄까?이런저런 고민을 하던 그때 전동하가 다가왔다.“차에서 얘기하죠. 여긴 듣는 귀가 많잖아요.”고개를 끄덕인 소은정, 추하나가 차에 타고 기사는 눈치껏 차에서 내려주었다.차에 두 사람만 남고 살짝 망설이던 소은정이 먼저 입을 열었다.“사실 나랑 우혁이 정말 아무 사이도 아니에
그런 소은정의 표정을 눈치챘는지 전동하가 미소를 지었다.“당분간 미국에 다시 들어가지 않으려고요. 호텔에서 지내는 것도 이제 질려서 집 하나 장만했어요.”혹시 그녀와 정식으로 잘해 보고 싶어서 한국에 집을 산 건가 싶어 소은정의 얼굴이 살짝 달아올랐다. SY 빌라로 가는 내내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어색한 분위기에 기사는 부드러운 음악까지 틀었지만 분위기는 여전히 침묵 그뿐이었다.“도착했습니다. 외부 차량은 진입이 안 돼서요.”기사의 말에 싱긋 미소 짓던 전동하가 소은정을 바라보았다.“왜요? 나랑 말하기 싫어요?”전동하의 말에 흠칫하던 소은정이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그럴 리가요.”“집 구경 해볼래요?”가벼운 말투로 묻던 전동하는 소은정이 거절할 거라 생각했는지 바로 한 마디 덧붙였다.“마이크가 은정 씨 준다고 선물을 챙겨줬거든요. 온김에 가지고 가요.”“무슨 선물인데요?”보석이면 됐다는 말이 목구멍을 맴돌았다.“마이크가 직접 만든 거예요. 뭐 얼마 안 하지만 돈 주고도 못 사는 선물이죠.”사실 소은정에게 정말 그 선물을 전달할 생각은 없었지만 지금 소은정을 그의 집으로 초대할 핑계는 이게 전부였다.역시나, 그제야 소은정이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마이크가 직접 만든 거라고? 귀여워...전동하가 경비원에게 양해를 구하고 차량은 타운 안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아, 마이크 학교에서 친구랑 싸웠다고 하지 않았어요?”소은정의 말에 전동하가 어깨를 으쓱했다.“요즘 청소년 과학대회에 참여했는데 까불다가 자기보다 5살이나 많은 애랑 싸웠다네요. 뭐, 결과는 흠씬 얻어맞았고요.”전동하의 설명에 소은정의 눈동자가 안쓰러움으로 반짝였다.“분명 마이크가 너무 똑똑해서 질투나서 그런 걸 거예요.”소은정의 말에 전동하가 웃음을 터트렸다.“마이크도 형들한테 은정 씨랑 똑같게 말했다가 맞은 거랍니다.”“많이 다쳤어요?”“아니요. 저한테 좀 많이 혼났죠 뭐.”“마이크가 틀린 말 한 것도 아니고... 부모님까지 호출할 정
그녀와 가까이 살고 싶어서 여기로 정한 거라는 뜻이 적나라하게 담긴 전동하의 말에 순간 흠칫하던 소은정이 싱긋 미소를 지었다.“그 집... 은해 오빠가 받은 첫 출연료로 사준 거예요. 그 뒤로 집값이 많이 오르긴 했죠. 앞으로 더 오를 거라고 생각해서 절대 쉽게 안 팔 거예요. 그쪽에 사는 사람들 전부 돈이 부족한 사람들도 아니고. 급전이 필요하지 않은 이상 팔 리가 없죠.”부동산 얘기가 나오자 소은정은 저도 모르게 S시 프로젝트를 떠올렸다. 이번 프로젝트를 계기로 S시 부동산 업계가 다시 되살아날 거라 확신하는 소은정이었다.한편, 그런 소은정의 모습에 전동하는 고개를 저었다.이 여자 내 마음을 정말 모르는 걸까 아니면 모르는 척하는 걸까?“역시 부동산 상황에 대해 아주 잘 알고 계시네요.”전동하의 감탄 어린 눈빛에 소은정이 미소를 지었다.“돈 되는 일에는 항상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편이랍니다.”지문으로 문을 연 전동하가 그녀를 안내했다.“자, 들어가시죠.”전동하의 취향이 그대로 담긴 집이었다. 웬만한 가구는 AI 기능을 사용해 왠지 SF 영화에 나오는 미래지향 드라마처럼 느껴지기도 했다.주인을 인식한 인공지능이 바로 인사를 건넸다.“집으로 돌아오신 걸 환영합니다.”동시에 현관문이 열리고 안에 들어있던 슬리퍼가 드러났다.타이트한 드레스에 두터운 코트를 입고 있는 소은정은 허리를 숙여 슬리퍼를 갈아신을 생각에 왠지 귀찮아져 현관에서 내부를 힐끔힐끔 바라보았다.그런데 이때 전동하가 허리를 숙이더니 부드러운 손길로 소은정의 부츠를 벗기고 슬리퍼를 신겨주었다.어렸을 때부터 아버지, 세 오빠에게 이런 대접을 항상 받아오긴 했지만 그 상대가 전동하라는 생각에 왠지 마음이 불편해졌다.“자, 안으로 들어와 봐요.”그래. 전동하 대표가 이상한 짓을 할 사람도 아니고. 밖에 기사도 있으니까 여차하면 소리 지르지 뭐.그제야 소은정은 깊은 숨을 내쉰 뒤 안으로 들어갔다.깔끔한 화이트 톤 가구와 정연하게 배치된 물건들이 그녀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