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돈을 받았다는 걸 빌미로 또다시 뻔뻔하게 들러붙는 사람들을 막기 위한 수단이었다.고개를 끄덕인 우연준은 존경이 담긴 눈빛으로 소은정을 바라보았다.적절한 타협과 협박으로 30분만에 시위대를 해산시키다니.역시, 대표님이셔!대표 사무실로 돌아온 소은정은 소파에 기대 한숨을 내쉬었다.30분 후, 이건이 헐떡이며 사무실로 돌어왔다.“대표님, 시위로 모인 사람들 전부 자리를 떴습니다.”“그래요? 반응들은 어떻던가요?”이건은 소은정의 묘수에 감탄하며 대답했다.“돈을 챙겨간 사람들은 절반 정도, 취직을 원하는 사람은 6명 정도입니다. 신상 정보는 모두 입력해 뒀고요.”이건의 대답에 소은정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돈을 받지 않고 떠난 사람들도 아마 소은정의 의도를 눈치챘기 때문일 것이다.“시위대를 선동하던 그 남자는요?”“경찰이 연행해 갔습니다. 장일성의 조카라더군요. 역시 이번 시위는 장일성의 게획인 것 같습니다.”커피잔을 만지작거리던 소은정이 당부했다.“프로젝트가 시작되기 전까지 모든 일에 신중 또 신중해야 해요.”이건 역시 이번 프로젝트가 지성그룹이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유일한 계획임을 알고 있었기에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장부 조작에 관해서는 이현도 장일성도 모두 혐의를 인정했습니다만 공사 현장에 있었던 인부 사망사건에 대해서는 모든 혐의를 부인하고 있습니다. 공사업체 대표가 바로 장일성 장인인데 인부들이 사망하고 나서 보상금은 두둑히 챙겨줬는지 유가족들도 증언을 하고 있지 않는 상황이고요. 게다가 장일성의 복수가 두려워 새 공사업체를 찾는 것도 아주 힘들었습니다.”과거형으로 말하는 이건의 말투에 소은정이 고개를 살짝 들었다.“그래서 누가 맡기로 했죠?”“박 대표님이... 소개한 업체입니다.”이건의 대답에 소은정이 멈칫하자 이건이 해명을 이어갔다.“정확히 말하면 이 국장님이 추천한 업체인데 박수혁 대표가 부탁한 거라더군요. 저희가 공사업체를 찾는 데 어려움이 있는 걸 알고 새 업체를 추천해 준거라면서요. 제가
침대에서 일어난 소은정은 창문을 열었다.화려한 네온사인이 비추는 야경을 구경하던 소은정은 불어치는 차가운 겨울바람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꼬르륵...”허기를 느끼던 소은정이 룸 서비스를 시키려던 그때, 건너편 포장마차에서 오뎅을 먹고 있는 행인을 발견한 소은정은 몰래 침을 삼켰다.포장마차... 오랜만이네.결국 5성급 호텔 셰프의 식사 대신 길거리 오뎅을 선택한 소은정은 편하게 코트 하나를 걸치고 휴대폰과 지갑만 챙긴 채 거리로 향했다.워낙 배가 고파서일까? 평소에 길거리 음식을 즐기지 않는 소은정이었지만 오뎅에 떡볶이, 순대까지 야무지게 시키고는 허겁지겁 음식을 먹어치우기 시작했다.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본 소은정은 그제야 주위를 둘러보았다. 러시아워가 끝난 시간, 주위에 차량들도 줄어들고 가로등마저 왠지 더 차갑게 느껴지자 소은정은 자리에서 일어섰다.길을 건너려던 그때, 소은정의 휴대폰이 울렸다.이 팀장이 왜 이 시간에...미간을 찌푸린 소은정이 전화를 받자마자 이건의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대표님, 공사 현장의 CCTV를 전부 확인해 봤는데 이상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포크레인 운전기사인데요... 가끔씩 일용직으로 공사 일을 나왔다고 합니다. 공사판에서는 워낙 이런 일이 흔하긴 하지만... 사고가 날 때마다 그 기사가 모습을 드러냈어요. 이게 정말 우연일까요?”역시, 사고가 아니었어.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고 소은정은 도로를 걸으며 대답했다.“신원은 확인했나요? S시 사람이라면...”바로 그때 굉음이 울리고 고개를 돌린 소은정은 눈부신 불빛에 눈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경찰 측에서 조사를 시작했는데 얼굴에 상처가 있는 남자라고 합니다. 장일성이 고용한 킬러가 아닌가 싶은데...”당황한 소은정의 귓가로 이건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도로의 한편에서 커다란 트럭이 소은정을 향해 질주하고 있었다. 일촉즉발의 순간, 운전기사의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얼굴에 상처가 있는 남자!차량은 속도를 멈출 생각이 없는 듯 질주하
”어떡하죠? 대표님이 이 사실을 아시면 저는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입니다...”병실 앞, 이건이 불안한 표정으로 서성댔다.“이 팀장님은 경찰 측과 연락을 유지하세요. 대표님이 사고를 당하셨다는 소식은 회장님과 은해 도련님에게 알렸으니 곧 도착하실 겁니다. 지금 중요한 건 용의자의 증거를 찾는 거예요.”의연한 표정으로 대답하던 우연준이 떨리는 주먹을 꽉 쥐었다.그의 실책이다.아무리 업무가 급해도 출장 중에는 대표님 곁을 지켰어야 했는데...하지만 반성은 모든 일을 해결하고 나서 해도 늦지 않으니 일단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는 게 먼저였다.한편, 병실 안.눈을 뜬 소은정은 새하얀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어두운 밤, 눈부신 불빛, 그리고 그녀를 향해 달려들던 트럭과 증오로 가득하던 남자의 얼굴까지...사고 당시의 기억들이 떠오르고 소은정은 한숨을 내쉬었다.다시 병실로 들어온 우연준은 소은정이 정신을 차린 걸 발견하고 부랴부랴 달려갔다.“대표님...”울먹이는 우연준의 목소리에 소은정이 애써 미소를 지었다.“범인은 잡았어요?”소은정이 쉰 목소리로 힘겹게 묻자 우연준은 다급하게 따뜻한 물을 컵에 따른 뒤 빨대를 꽂아 소은정에게 건넸다.물을 마시고 나서야 살아있다는 게 실감나는 소은정이었다.“네. 트럭은 도로의 나무에 부딪혔고 범인도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었습니다. 지금은 의식을 회복하고 경찰 조사를 받는 중이고요. 공사 현장에서 나타난 남자와 동일인입니다”우연준의 깔끔한 설명에 소은정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쓰러지기 전에... 전동하 대표를 본 것 같은데...”우연준이 고개를 끄덕였다.“마침 전동하 대표님이 S시로 출장을 오셨거든요. 대표님에게 도시락을 드리고 싶다면서 호텔 주소를 물으시기에...”“지금 어디 있어요?”소은정의 질문에 우연준이 고개를 숙였다.“대표님께서 워낙 희귀 혈액형이라 수혈양이 부족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전동하 대표님의 혈액형이 대표님과 동일한 덕분에 수혈을 할 수 있었고요.”우연준의 설명에 소은정의
사실 전동하는 단 한 번도 대놓고 자신의 감정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거절당하는 게 두려우면서도 자신의 마음을 전할 수 없을까 항상 조심스럽게 다가오던 남자였다.그런데 그 바보 같은 남자가 그녀를 위해 수혈을 해줬다는 말에 소은정은 가슴이 욱신거렸다.어쨌든 또 누군가에게 목숨을 빚지고 말았다는 생각에 소은정은 마음이 무거워졌다.“의사 말로는 고비는 넘겼지만 오른쪽 다리가 골절이라 한동안 깁스를 하고 계셔야 한다는군요. 서산시 대학병원에 연락해 뒀으니 지금 돌아가시죠...”의료시설도 서산시가 더 훌륭한데다 가족들이 곁에 있으니 회복이 더 빠를 거란 생각에 내린 결정이었다.잠깐 망설이던 소은정이 대답했다.“전 대표가 깨어나면 함께 돌아가죠.”그제야 소은정은 부러졌다는 오른쪽 다리를 바라보았다. 마취제가 들어가서인지 별다른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그래도 이 정도로 끝나서 다행이야...안도의 한숨을 내쉰 소은정의 얼굴이 다시 어두워졌다.구치소에 있으면서도 밖에 있는 킬러를 움직이다니 그녀가 장일성의 세력을 과소평가한 탓에 일어난 사고였다.가시 같이 거슬리는 존재를 어떻게든 제거해야 한다는 생각에 소은정은 몰래 주먹을 쥐었다.한편, 역시 소은정이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입수한 박수혁은 미팅이 늦은 시간에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밤새 직접 운전을 해 S시로 달려왔다.허겁지겁 병원으로 달려온 병실 앞에 멈춰 선 채 쿵쾅대는 심장을 잠재웠다.소은정을 잃을 뻔했다는 공포와 불안감에 휩싸이면서도 누군가 감히 그녀를 죽이려 했다는 생각을 하면 가슴은 복수의 불길로 다시 뜨거워졌다.겨우 마음을 다잡고 병실로 들어가려던 그때, 문틈으로 흘러나오는 우연준의 말에 박수혁은 다시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전동하 대표가 은정이랑 같은 혈액형이라고?수혈이라는 단어에 박수혁도 잊고 싶었던 과거를 다시 떠올렸다.애초에 서민영에게 수혈을 해주기 위해 소은정과 결혼을 했었고 결혼 생활 내내 소은정을 혈액고 취급이나 했었지...그리고 이번 사고에서도 그녀를 구한 것도 헌혈을
이번 사고는 장일성이 사주한 게 분명했지만 킬러와의 연관성을 증명할 수 있는 증거가 부족했다.“경찰쪽에서 최선을 다해 수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운전기사가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말도 안 하는 모양입니다...”소은호가 차가운 표정으로 대답했다.“경찰만 믿고 있을 수는 없어. 그 운전기사란 사람에 관한 정보 전부 찾아. 가족이든 뭐든 좋으니까. 운전기사도... 장일성도... 이 세상에 태어난 걸 후회하게 만들어줄 거니까...”소은정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는 소은호였다. SC그룹을 맡기긴 했지만 그룹 일 때문에 소은정이 다치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반면 길거리를 떠돌던 날라리에서 지금의 진중한 우 비서가 될 때까지 곁에서 소은호를 모셨던 우연준은 겉보기에는 젠틀해 보이지만 소은호도 박수혁과 잔인한 면이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그들의 소중한 것을 건드린 이에게는 잔혹할 정도로 냉정해지는 게 두 사람이었다.장일성이 아무리 조직원들을 거느리고 있다고 해도 SC그룹과는 비교할 수가 없을 터, 얼마 지나지 않아 장일성은 진짜 몰락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네, 바로 알아보겠습니다.”잠이 들었다 다시 부스스 눈을 뜬 소은정의 시야에 소은해의 얼굴이 들어왔다.소은정이 깨어난 걸 발견한 소은해가 환하게 웃으며 그녀의 다리를 가리켰다.“은정아, 내가 여기에 사인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비싼 깁스라고 볼 수 있지!”사인에 알록달록한 낙서로 얼룩진 깁스를 확인한 소은정이 구시렁댔다.“하, 100원에 팔 거야. 갖고 싶으면 갖든가.”소은해가 바로 반박하려던 그때, 소찬식이 눈물을 글썽인 채 다가왔다.“은정아, 괜찮아? 아프진 않고? 이만하길 천만다행이긴 한데...”하마터면 가족들과 영원히 헤어질 뻔했다는 생각에 소은정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두 부녀의 뜨거운 눈물을 바라보던 소은해가 어깨를 으쓱했다.아니, 골절이라면서... 이렇게까지 해야 해?몇년 전, 촬영장에서 추락 사고로 부상을 입어 허리를 크게 다쳤을 때 눈물 한 방울도
딸의 목숨을 구해준 생명의 은인이란 생각에 소찬식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전 대표, 푹 쉬지 왜 여기까지 왔어?”깁스를 하고 있는 소은정을 발견한 전동하의 미소가 순식간에 굳어버렸다.“그냥 부러진 거예요. 이번 일은... 정말 고마워요...”형식적인 인사가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온 감사의 말이었다.그 순간 전동하가 아니었다면 소은정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테니까.소은정의 씩씩한 모습에 전동하의 창백한 얼굴에 다시 미소가 걸렸다.“괜찮은 모습 보니까 마음이 놓이네요.”두 사람을 묘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소은해가 헤실헤실 웃으며 말했다.“두 사람끼리 대화 좀 하게 방해꾼들은 나가죠.”전동하가 감격스러운 눈빛으로 소은해를 바라보던 그때, 소찬식이 소은해의 뒤통수를 때렸다.“헛소리! 아플 때일수록 옆에 가족들이 있어야 하는 법이야. 전 대표는 가족들이 곁에 없으니 우리가 가족이나 마찬가지고! 두 사람 중에 또 누가 쓰러지기라도 하면 어쩌려고!”아버지의 말에 소은해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역... 역시 아버지세요.”“흥!”소은해를 흘겨본 소찬식은 전동하를 부축했다.“전 대표, 서산 대학병원에 연락해 뒀으니까 일단 돌아가는 게 좋겠어. 그리고 회장님이 뭐야. 편하게 아버님이라고 불러.”전동하와 소은정이 같은 혈액형이라는 말을 들은 뒤로 그를 바라보는 눈빛 자체가 달라진 소찬식이었다.전동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소찬식의 부축을 받아 의자에 앉고 소은정은 묘한 눈빛으로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소은정을 좋다고 하는 남자들에게 항상 형식적인 친절함만 보여주던 아버지다. 박수혁조차도 아직 회장님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아버님이라고 부르라니...소은정이 전동하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우리 아버지가 워낙 정이 많으셔서 그래요. 편하게 지내세요.”친절? 전동하가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그럼 신세 좀 지겠습니다. 아버님.”“아니야, 아니야!”소찬식이 부른 기사가 롤스로이스를 운전한 채 나타나고 소은호, 전동하가 한 차량
전동하의 대답에 흠칫하던 소은호가 물었다.“혹시... 은정이 좋아하세요?”창백한 전동하의 얼굴에 다시 미소가 피어올랐다.“네. 제가 쫓아다니는 중입니다.”SC그룹을 세계 일류 그룹으로 만든 소은호에게 거짓말이 통할 리가 만무했고 일이 잘 풀리면 형님이 될지도 모르니 솔직하게 말하는 게 맞다는 생각에 전동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역시나 소은호는 예상대로라는 듯 피식 웃었다.“은정 씨가 마음을 열 것 같으세요?”전동하가 눈동자를 반짝였다. 알게 모르게 전동하를 밀어내는 소은정의 모습에 소은호에게서라도 자신감을 얻고 싶은 전동하였다.소은호에게 좋은 이미지를 남기면 언젠가 소은정에게 자기 칭찬 한 마디라도 더 해줄지도 모르니 말이다.전동하의 질문에 소은호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전 대표님, 마음은 알겠지만 저희 집안에서 은정이 고집을 꺾을 수 있는 사람도, 은정이를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답니다.”3년 전, 다짜고짜 박수혁과 결혼을 하겠다는 그녀를 말리려 했지만 소은정과 결국 가족들과 의절하는 걸 선택했다. 그 뒤로 가족들 모두 감히 소은정의 연애 문제에 조언을 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 되버리고 말았다.그저 한번 결혼에 실패한 소은정의 다음 사랑은 좋은 결실을 맺길 바랄 뿐이었다.씁쓸한 미소를 짓는 소은호의 모습에 전동하도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차량은 달리고 달려 곧 서산에 도착했다.서산 대학병원 원장과 친한 사이인 소찬식 덕분에 소은정, 전동하는 VIP 병실에서 지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가격은 어마무시하지만 말이다.병원에 도착한 소은정은 다시 검진을 받았다. 워낙 다리가 심하게 부러진 탓에 간호사가 끄는 휠체어에 이끌려 이리저리 다니다 보니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지나고 말았다.간호사의 안내를 받아 병실 앞에 도착한 소은정은 그녀의 병실에 앉아있는 전동하를 발견했다. 아직도 머리가 어지러운지 이마를 짚고 있는 모습에 전동하는 왠지 마음이 복잡해졌다.그녀에게 수혈을 해줬다는 얘기를 들은 뒤로 전동하를 볼 때
하긴, 이 세상에 소중하지 않은 생명이 있을 리가.“참, S시에는 왜 오신 거예요? 저 때문에 일정도 다 못 마치신 건 아니죠?”“은정 씨 만나려고 갔던 거예요.”전동하의 눈빛이 너무 뜨거워서일까. 소은정은 차마 그의 눈을 바라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그리고 다시 고개를 든 소은정은 최대한 덤덤한 표정을 지어보였다.“왜요? 저한테 무슨 볼일이라도 있으셨어요?”은하수를 담은 듯 눈부시게 반짝이는 전동하의 눈동자가 소은정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은정 씨를 좋아하니까.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만나러 가고 싶은 거죠.”전동하가 이렇게 대놓고 호감을 표시한 건 처음이라 소은정도 흠칫하고 말았다.어... 이걸 어떻게 반응해야 하나...소은정의 난처함을 눈치챘는지 전동하가 다시 미소를 지었다.“너무 감동한 건 아니죠? 그럼...”“한 원장, 우리 딸 잘 부탁해. 퇴원할 때는 예전처럼 폴짝폴짝 잘 뛰게 만들어줘야 해.”소찬식의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두 사람의 대화는 자연스레 중단되었다.“걱정하지 마. 은정양 괜찮아. 남자친구를 잘 둔 덕분이지 뭐. 어쩌다 같은 혈액형을 가진 남자를 찾았대? 천생연분이야!”뒤이어 중년 남자의 목소리가 들리고 병실문이 열렸다.네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며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소은정이 중년 남자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한 원장님, 오랜만이에요.”어렸을 때부터 아플 때면 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던 터라 소은정도 한 원장과 잘 아는 사이였다.“은정아, 너희 아버지가 너 잘 모시라고 아주 난리다. 이번 기회에 푹 쉬어!”“네, 담당 의사선생님도 몇 달 푹 쉬면 괜찮을 거라 하시던 걸요.”한 원장이 고개를 끄덕이고 소찬식이 싱글벙글 웃으며 소은정의 곁으로 다가갔다.“그래, 이제 우리 딸 좀 쉬게 자네는 좀 나가 봐!”한 원장이 병실을 나서고 전동하가 입을 열었다.“아버님, 제가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 다시 회사로 들어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오후쯤에 제 비서가 데리러 올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