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쩐지, 평소라면 펄쩍 뛰었을 박수혁이 그렇게 침착한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사건의 자초지종을 전부 알아내고 그녀의 머리 위에서 놀고 있었던 것이다.어차피 다 들켜버린 듯하니 질투심을 유발해 박수혁을 떼어내려는 전략은 실패한 거나 마찬가지고 소은정은 노트북을 덮고 덤덤한 표정으로 대답했다.“그럼 친구가 그런 상황인데 가만히 있어? 어쨌든 고마워. 강희 대신 인사하는 거야.”소은정의 말에 피식 웃던 박수혁의 얼굴에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이 서렸다.“아니야. 성강희 대표 형이 내 전우이기도 하고 성일그룹이 그렇게 무너지는 건 나도 원하지 않아. 성강희 그 자식 제대로 경영 수업부터 받으라고 해. 이사가 이런 짓을 하는 동안 눈치도 못 채고 있었다고? 그 자식 어디 모자란 거 아니야?”맞다. 성강희의 형이 박수혁과 함께 복무했었다고 했었지?“그럼 우리 집에 온 것도...”설마 달랑 USB 하나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고? 굳이?박수혁의 깊은 눈동자에 소은정의 아름다운 얼굴이 비쳤다.“뭐, 핑계지 뭐. 이렇게라도 널 보고 싶으니까.”갑작스러운 고백에 소은정은 당황한 듯 얼굴을 붉혔다. 호수처럼 깊은 눈동자를 멍하니 바라보던 소은정이 다급하게 고개를 돌렸다.“왔으면 밥이나 먹고 가.”박수혁, 저런 멘트는 어디서 배우는 거야? 느끼해...1층으로 내려가니 집사는 식사 준비를 마친 상태였고 소은해는 누군가와 영상 통화를 하고 있었다.목소리를 들어보니 역시나 김하늘이었다.장난기가 발동한 소은해는 카메라를 돌려 나란히 2층에서 내려오는 박수혁, 소은정의 모습을 보여주었다.김하늘의 눈이 동그래지고 소은해는 눈을 찡긋 한 뒤 다시 식탁으로 휴대폰을 흘렸다.“하늘아, 다음에는 너도 우리 집으로 와. 우리 아빠 요즘 맨날 낚시다니잖아. 어차피 처치곤란이라 같이 먹어줄...”이때 나타난 소찬식이 소은해의 엉덩이를 걷어찼다.“네 연애질에 이 애비까지 이용하려는 거야?”아버지의 등장에 영상통화를 부랴부랴 종료한 소은해가 헤실거리며 소찬식의 의자를 당겼다.
위기를 넘긴 후 성강희는 전문 경영인을 초빙했고 자신도 경영 수업을 다시 받기 시작했다.모든 일이 원만히 해결되고 소은정, 성강희의 스캔들도 대중들의 머릿속에서 흐릿해져 가던 그때...또 다시 사건이 터졌다.이른 아침 이건의 전화를 받은 소은정은 부랴부랴 S시로 향했다.지성그룹 건물 앞, 빼곡하게 모인 사람들을 발견한 소은정의 표정이 어두워졌다.이건이 말했던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네...시위를 막기 위해 경찰은 물론 혹시 모를 부상에 대비하기 위해 구급차까지 도착한 상황이었다.소은정이 깊은 한숨을 내쉬고 우연준의 전화에 이건은 마스크에 모자까지 쓴 모습으로 다급하게 달려왔다.부랴부랴 차에 탄 이건이 고개를 숙였다.“대표님...”사건이 터지고 이건이 가장 먼저 떠올린 사람은 바로 소은정이었다. 자신보다 훨씬 더 어린 소은정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스스로가 한심스러웠다.소은정은 덤덤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최선을 다하셨다는 거 알아요. 지금 무슨 상황이죠?”소은정의 말에 이건은 감격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자초지종을 줄줄 읊기 시작했다.“장일성 그 자식이 글쎄... 자기가 부리던 조직원들을 선동한 것 같습니다. 자기들도 정식 직원들처럼 퇴직금을 받아야 한다고 이렇게 버티고 있어요. 그 소식을 들은 다른 직원들도 뭐라도 떨어질까 싶어 우르르 몰려든 거고요.”잠시 침묵하던 소은정이 물었다.“협상은 안 해보셨나요?”“사람 욕심에 끝이 있나요. 저 자식들 어떻게든 회사 돈을 뽑아먹으려는 속셈인 것 같습니다. 협상은 결국 결렬됐고요.”“며칠 뒤면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되고 기자회견도 열 예정이에요. 그 전에 해결하지 않으면 회사 이미지는 바닥까지 떨어질 겁니다.”한 회사에게 가장 중요한 건 결국 이미지다. 대부분 대중들 역시 월급을 받는 평범한 직장인들이니 무조건 시위대 편을 들 게 분명하고 이 사실이 매체에까지 알려지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번질지도 모른다.잠시 고민하던 소은정이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우 비서님, 지금 당장 2억
소은정의 돌발 행동에 주위가 조용해졌다.“그래요, 제가 소은정입니다. 전 장일성도 이현도 아니에요. 여러분들께 그 어떤 금전적인 약속도 한 적이 없죠. 국가의 실업급여를 받으면서도 지성그룹에 출근하고 있다는 사실 전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이에 여러분들께 밀린 월급은 전부 지급했죠. 적어도 자기 살겠다고 여러분들을 나몰라라하고 도망친 장일성, 이현보다는 훨씬 더 양심적으로 행동했다고 생각합니다.”소은정의 강력한 포스와 차분한 말투에 자리에 모인 사람들 중 대부분은 조용히 그녀의 목소리에 빠져들기 시작했다.하지만 그때 시위대 일원이 소리를 질렀다.“월급은 애초에 줘야 하는 거고 우리도 그 10명처럼 퇴직금을 원합니다. 똑같은 지성그룹 직원인데 왜 우리는 그 돈을 못 받는 겁니까!”“그러니까! 지금 사람 무시하는 겁니까!”“이 정도 돈으로 무마하려는 겁니까!”하지만 소은정은 그들의 기세에 전혀 밀리지 않았다. 차가운 눈빛으로 사람들을 선동하는 시위대 일원들을 노려보던 소은정이 말을 이어갔다.“여러분들은 장일성의 개인적인 조직원들입니다. 지성그룹과는 그 어떤 계약도 체결하지 않았어요. 제가 SC그룹의 대표인 것도 재벌 2세인 것도 사실이지만 여러분들의 무리한 요구를 일일이 들어줄 수는 없습니다. 이런 대우에 불만을 느끼신다면 절 고소하셔도 불만은 없습니다.”소은정의 냉정한 말에 시위대는 다시 들끓기 시작했다. 불만섞인 목소리가 치솟던 그때 소은정은 한껏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하지만 여러분들의 힘든 사정은 저도 이해합니다. 그래서 이 현금을 준비한 거예요. 50분 정도 모이신 것 같으니 일인당 200만원은 챙길 수 있을 겁니다. 지금 바로 주민등록증 번호를 등록하고 돈 받아가세요.”소은정의 말에 사람들이 눈을 반짝였다. 시위 2일만에 200만원이라니 횡재가 아닐 수 없었다.“하지만 오늘 이 자리에서 명확히 말씀드립니다. 또 다시 이런 식으로 불법 시위를 감행한다면 오늘 같은 자비는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
오늘 돈을 받았다는 걸 빌미로 또다시 뻔뻔하게 들러붙는 사람들을 막기 위한 수단이었다.고개를 끄덕인 우연준은 존경이 담긴 눈빛으로 소은정을 바라보았다.적절한 타협과 협박으로 30분만에 시위대를 해산시키다니.역시, 대표님이셔!대표 사무실로 돌아온 소은정은 소파에 기대 한숨을 내쉬었다.30분 후, 이건이 헐떡이며 사무실로 돌어왔다.“대표님, 시위로 모인 사람들 전부 자리를 떴습니다.”“그래요? 반응들은 어떻던가요?”이건은 소은정의 묘수에 감탄하며 대답했다.“돈을 챙겨간 사람들은 절반 정도, 취직을 원하는 사람은 6명 정도입니다. 신상 정보는 모두 입력해 뒀고요.”이건의 대답에 소은정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돈을 받지 않고 떠난 사람들도 아마 소은정의 의도를 눈치챘기 때문일 것이다.“시위대를 선동하던 그 남자는요?”“경찰이 연행해 갔습니다. 장일성의 조카라더군요. 역시 이번 시위는 장일성의 게획인 것 같습니다.”커피잔을 만지작거리던 소은정이 당부했다.“프로젝트가 시작되기 전까지 모든 일에 신중 또 신중해야 해요.”이건 역시 이번 프로젝트가 지성그룹이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유일한 계획임을 알고 있었기에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장부 조작에 관해서는 이현도 장일성도 모두 혐의를 인정했습니다만 공사 현장에 있었던 인부 사망사건에 대해서는 모든 혐의를 부인하고 있습니다. 공사업체 대표가 바로 장일성 장인인데 인부들이 사망하고 나서 보상금은 두둑히 챙겨줬는지 유가족들도 증언을 하고 있지 않는 상황이고요. 게다가 장일성의 복수가 두려워 새 공사업체를 찾는 것도 아주 힘들었습니다.”과거형으로 말하는 이건의 말투에 소은정이 고개를 살짝 들었다.“그래서 누가 맡기로 했죠?”“박 대표님이... 소개한 업체입니다.”이건의 대답에 소은정이 멈칫하자 이건이 해명을 이어갔다.“정확히 말하면 이 국장님이 추천한 업체인데 박수혁 대표가 부탁한 거라더군요. 저희가 공사업체를 찾는 데 어려움이 있는 걸 알고 새 업체를 추천해 준거라면서요. 제가
침대에서 일어난 소은정은 창문을 열었다.화려한 네온사인이 비추는 야경을 구경하던 소은정은 불어치는 차가운 겨울바람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꼬르륵...”허기를 느끼던 소은정이 룸 서비스를 시키려던 그때, 건너편 포장마차에서 오뎅을 먹고 있는 행인을 발견한 소은정은 몰래 침을 삼켰다.포장마차... 오랜만이네.결국 5성급 호텔 셰프의 식사 대신 길거리 오뎅을 선택한 소은정은 편하게 코트 하나를 걸치고 휴대폰과 지갑만 챙긴 채 거리로 향했다.워낙 배가 고파서일까? 평소에 길거리 음식을 즐기지 않는 소은정이었지만 오뎅에 떡볶이, 순대까지 야무지게 시키고는 허겁지겁 음식을 먹어치우기 시작했다.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본 소은정은 그제야 주위를 둘러보았다. 러시아워가 끝난 시간, 주위에 차량들도 줄어들고 가로등마저 왠지 더 차갑게 느껴지자 소은정은 자리에서 일어섰다.길을 건너려던 그때, 소은정의 휴대폰이 울렸다.이 팀장이 왜 이 시간에...미간을 찌푸린 소은정이 전화를 받자마자 이건의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대표님, 공사 현장의 CCTV를 전부 확인해 봤는데 이상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포크레인 운전기사인데요... 가끔씩 일용직으로 공사 일을 나왔다고 합니다. 공사판에서는 워낙 이런 일이 흔하긴 하지만... 사고가 날 때마다 그 기사가 모습을 드러냈어요. 이게 정말 우연일까요?”역시, 사고가 아니었어.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고 소은정은 도로를 걸으며 대답했다.“신원은 확인했나요? S시 사람이라면...”바로 그때 굉음이 울리고 고개를 돌린 소은정은 눈부신 불빛에 눈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경찰 측에서 조사를 시작했는데 얼굴에 상처가 있는 남자라고 합니다. 장일성이 고용한 킬러가 아닌가 싶은데...”당황한 소은정의 귓가로 이건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도로의 한편에서 커다란 트럭이 소은정을 향해 질주하고 있었다. 일촉즉발의 순간, 운전기사의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얼굴에 상처가 있는 남자!차량은 속도를 멈출 생각이 없는 듯 질주하
”어떡하죠? 대표님이 이 사실을 아시면 저는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입니다...”병실 앞, 이건이 불안한 표정으로 서성댔다.“이 팀장님은 경찰 측과 연락을 유지하세요. 대표님이 사고를 당하셨다는 소식은 회장님과 은해 도련님에게 알렸으니 곧 도착하실 겁니다. 지금 중요한 건 용의자의 증거를 찾는 거예요.”의연한 표정으로 대답하던 우연준이 떨리는 주먹을 꽉 쥐었다.그의 실책이다.아무리 업무가 급해도 출장 중에는 대표님 곁을 지켰어야 했는데...하지만 반성은 모든 일을 해결하고 나서 해도 늦지 않으니 일단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는 게 먼저였다.한편, 병실 안.눈을 뜬 소은정은 새하얀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어두운 밤, 눈부신 불빛, 그리고 그녀를 향해 달려들던 트럭과 증오로 가득하던 남자의 얼굴까지...사고 당시의 기억들이 떠오르고 소은정은 한숨을 내쉬었다.다시 병실로 들어온 우연준은 소은정이 정신을 차린 걸 발견하고 부랴부랴 달려갔다.“대표님...”울먹이는 우연준의 목소리에 소은정이 애써 미소를 지었다.“범인은 잡았어요?”소은정이 쉰 목소리로 힘겹게 묻자 우연준은 다급하게 따뜻한 물을 컵에 따른 뒤 빨대를 꽂아 소은정에게 건넸다.물을 마시고 나서야 살아있다는 게 실감나는 소은정이었다.“네. 트럭은 도로의 나무에 부딪혔고 범인도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었습니다. 지금은 의식을 회복하고 경찰 조사를 받는 중이고요. 공사 현장에서 나타난 남자와 동일인입니다”우연준의 깔끔한 설명에 소은정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쓰러지기 전에... 전동하 대표를 본 것 같은데...”우연준이 고개를 끄덕였다.“마침 전동하 대표님이 S시로 출장을 오셨거든요. 대표님에게 도시락을 드리고 싶다면서 호텔 주소를 물으시기에...”“지금 어디 있어요?”소은정의 질문에 우연준이 고개를 숙였다.“대표님께서 워낙 희귀 혈액형이라 수혈양이 부족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전동하 대표님의 혈액형이 대표님과 동일한 덕분에 수혈을 할 수 있었고요.”우연준의 설명에 소은정의
사실 전동하는 단 한 번도 대놓고 자신의 감정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거절당하는 게 두려우면서도 자신의 마음을 전할 수 없을까 항상 조심스럽게 다가오던 남자였다.그런데 그 바보 같은 남자가 그녀를 위해 수혈을 해줬다는 말에 소은정은 가슴이 욱신거렸다.어쨌든 또 누군가에게 목숨을 빚지고 말았다는 생각에 소은정은 마음이 무거워졌다.“의사 말로는 고비는 넘겼지만 오른쪽 다리가 골절이라 한동안 깁스를 하고 계셔야 한다는군요. 서산시 대학병원에 연락해 뒀으니 지금 돌아가시죠...”의료시설도 서산시가 더 훌륭한데다 가족들이 곁에 있으니 회복이 더 빠를 거란 생각에 내린 결정이었다.잠깐 망설이던 소은정이 대답했다.“전 대표가 깨어나면 함께 돌아가죠.”그제야 소은정은 부러졌다는 오른쪽 다리를 바라보았다. 마취제가 들어가서인지 별다른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그래도 이 정도로 끝나서 다행이야...안도의 한숨을 내쉰 소은정의 얼굴이 다시 어두워졌다.구치소에 있으면서도 밖에 있는 킬러를 움직이다니 그녀가 장일성의 세력을 과소평가한 탓에 일어난 사고였다.가시 같이 거슬리는 존재를 어떻게든 제거해야 한다는 생각에 소은정은 몰래 주먹을 쥐었다.한편, 역시 소은정이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입수한 박수혁은 미팅이 늦은 시간에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밤새 직접 운전을 해 S시로 달려왔다.허겁지겁 병원으로 달려온 병실 앞에 멈춰 선 채 쿵쾅대는 심장을 잠재웠다.소은정을 잃을 뻔했다는 공포와 불안감에 휩싸이면서도 누군가 감히 그녀를 죽이려 했다는 생각을 하면 가슴은 복수의 불길로 다시 뜨거워졌다.겨우 마음을 다잡고 병실로 들어가려던 그때, 문틈으로 흘러나오는 우연준의 말에 박수혁은 다시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전동하 대표가 은정이랑 같은 혈액형이라고?수혈이라는 단어에 박수혁도 잊고 싶었던 과거를 다시 떠올렸다.애초에 서민영에게 수혈을 해주기 위해 소은정과 결혼을 했었고 결혼 생활 내내 소은정을 혈액고 취급이나 했었지...그리고 이번 사고에서도 그녀를 구한 것도 헌혈을
이번 사고는 장일성이 사주한 게 분명했지만 킬러와의 연관성을 증명할 수 있는 증거가 부족했다.“경찰쪽에서 최선을 다해 수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운전기사가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말도 안 하는 모양입니다...”소은호가 차가운 표정으로 대답했다.“경찰만 믿고 있을 수는 없어. 그 운전기사란 사람에 관한 정보 전부 찾아. 가족이든 뭐든 좋으니까. 운전기사도... 장일성도... 이 세상에 태어난 걸 후회하게 만들어줄 거니까...”소은정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는 소은호였다. SC그룹을 맡기긴 했지만 그룹 일 때문에 소은정이 다치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반면 길거리를 떠돌던 날라리에서 지금의 진중한 우 비서가 될 때까지 곁에서 소은호를 모셨던 우연준은 겉보기에는 젠틀해 보이지만 소은호도 박수혁과 잔인한 면이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그들의 소중한 것을 건드린 이에게는 잔혹할 정도로 냉정해지는 게 두 사람이었다.장일성이 아무리 조직원들을 거느리고 있다고 해도 SC그룹과는 비교할 수가 없을 터, 얼마 지나지 않아 장일성은 진짜 몰락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네, 바로 알아보겠습니다.”잠이 들었다 다시 부스스 눈을 뜬 소은정의 시야에 소은해의 얼굴이 들어왔다.소은정이 깨어난 걸 발견한 소은해가 환하게 웃으며 그녀의 다리를 가리켰다.“은정아, 내가 여기에 사인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비싼 깁스라고 볼 수 있지!”사인에 알록달록한 낙서로 얼룩진 깁스를 확인한 소은정이 구시렁댔다.“하, 100원에 팔 거야. 갖고 싶으면 갖든가.”소은해가 바로 반박하려던 그때, 소찬식이 눈물을 글썽인 채 다가왔다.“은정아, 괜찮아? 아프진 않고? 이만하길 천만다행이긴 한데...”하마터면 가족들과 영원히 헤어질 뻔했다는 생각에 소은정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두 부녀의 뜨거운 눈물을 바라보던 소은해가 어깨를 으쓱했다.아니, 골절이라면서... 이렇게까지 해야 해?몇년 전, 촬영장에서 추락 사고로 부상을 입어 허리를 크게 다쳤을 때 눈물 한 방울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