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그냥 내 이름을 요리에 새겨넣지 그래? 미쳤나 봐, 정말!소은정은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아니, 회사 일만으로도 바쁠 텐데 왜 굳이 요리를 하겠다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게다가 아래에 달린 댓글은 더 가관이었다.“요리까지 잘 하면 어쩌라는 거야...”“박 대표님이 하신 요리를 직접 먹을 수 있는 분은 참 좋겠어요...”“완벽하십니다!”하, 행복은 개뿔. 다른 사람 속도 모르면서 함부로 말은...칭찬 연속의 댓글들 중 그나마 친한 강서진이 모두가 가장 궁금한 질문을 했다.“솔직히 말해, 형. 이거 직접 한 거 맞아?”박수혁: “아니, 일단 테스트해 보는 중이야.”심플한 박수혁의 대답에 그제야 사람들은 맹목적인 아부를 멈추었다.늦은 오후, 소은정이 퇴근하려던 그때, 프런트 직원이 그녀를 불러세웠다.“대표님, 누가 대표님 앞으로 보내 온 물건입니다.”열어보니 화려하게 포장된 도시락이었다.도시락에 담긴 음식은 역시나 SNS에서 봤던 그 요리들...내용물을 확인한 소은정의 표정이 확 굳었다.박수혁, 이 미친 자식...소은정은 다시 도시락 뚜껑을 닫은 뒤 이를 직원에게 건넸다.“아직 저녁 전이죠? 집에 가지고 가서 먹도록 해요.”이에 프런트 직원의 눈이 반짝였다.대표님이 직접 주신 도시락이라니... 착하기도 하셔라...“감사합니다, 대표님!”소은정이 건물을 나서고 다시 도시락을 꺼내보려던 직원은 쇼핑백에 쪽지 하나가 있는 걸 발견했다.만년필로 쓴 듯한 정갈한 글씨체, 하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건 쪽지의 내용이었다.“하고 싶은 말이 참 많은데 그 중에서 가장 하고 싶은 말은 이거야. 소은정, 보고 싶어 -박수혁.”쪽지의 내용을 확인한 직원의 표정이 어색하게 굳었다.박수혁 대표가 우리 대표님한테 준 선물이라고? 게다가 이렇게 닭살스러운 멘트까지 날리면서?......한편 집으로 돌아가는 길, 휴대폰이 울리고 소은정은 발신인을 확인하지도 않고 바로 받았다.“여보세요...”“도시락 먹어봤어?”하, 끈질기네
거실로 나온 오한진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대표님 주방 정리 다 끝났습니다.”고개를 끄덕인 박수혁이 대답했다.“아 고장난 전자레인지는 새 걸로 바꿔. 그쪽 브랜드랑은 비즈니스가 힘들겠네. 제품 퀄리티가 이래서야 원...”박수혁의 푸념에 오한진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퀄리티가 아무리 좋아도 그런 식으로 쓰시면 다 고장날 거예요...하지만 보스에게 그렇게 말할 수는 없으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네, 알겠습니다... 아, 오늘 한석이한테서 들었는데 대표님과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라면서 태한그룹으로 직장을 옮기고 싶다고 말하는 여자가 회사로 찾아왔다던데요?”박수혁에게 꼭 언급해 달라고 부탁한 이한석의 말을 떠올린 오한진이 말했다. 하지만 박수혁은 여전히 관심없다는 표정이었다.“여자? 그런 여자 모르는데?”박수혁의 태도에 오한진이 어깨를 으쓱했다.그린 클럽.어느새 쌀쌀해진 날씨에 길거리의 행인들은 두꺼운 옷을 꺼내입었지만 패션은 자고로 날씨와 반대로 흐르는 것이라고 했던가.소은정은 허리 라인과 허벅지가 전부 드러난 드레스를 입은 채 클럽에 나타났다. 언뜻 보면 노출이 너무 심한가 싶다가도 살짝 부풀어 오른 공주풍 소매가 섹시함에 귀여움을 더해주었다.지인의 초대를 받아 파티에 참석한 소은정은 도착하자마자 바로 김하늘의 모습을 발견했다.어? 하늘이도 왔네?“이 계집애. 요즘 왜 그렇게 바빠? 자꾸 그렇게 튕기면 너희 집으로 쳐들어가는 수가 있다?”역시 그녀를 발견하고 다가온 김하늘이 소은정의 팔짱을 끼더니 장난스레 말했다.“우리 집? 난 그냥 핑계고 오빠 만나러 오는 건 아니고?”소은정의 능청스러운 대답에 김하늘이 소은정의 팔을 살짝 꼬집었다.“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오호라, 하늘이 반응을 보아하니 오빠가 싫지는 않나 본데?소은정은 더 환하게 웃으며 김하늘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왜? 난 이미 널 올케로 맞이할 마음의 준비 끝났다고. 시누이 노릇 제대로 할 거니까 각오해!”소은정의 말에 역시 꺄르르 웃던 김하늘은 순간 뭔
잠시 망설이던 김하늘이 대답했다.“은정아, 솔직히 나도 은해 오빠 좋아. 하지만... 너무 불안해. 또 다시 누군가에게 버림받을 바에야 처음부터 소유하지 않는 게 나을 것 같아...”윤지섭과 사귈 때 김하늘은 나름 경계심과 이성을 가진 상태였지만 소은해는 왠지 다르게 느껴지는 김하늘이었다.이게 진짜 사랑의 감정인가 싶다가도 바람둥이처럼 보이는 소은해가, 톱스타인 소은해가 영원히 그녀를 사랑해 줄 수 있을까 불안함이 앞섰다.소은정도 그런 그녀의 마음을 이해하기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사랑이, 결혼이 한 사람의 인생에 얼마나 중요한지, 불행한 결혼이 얼마나 큰 상처로 남는지 소은정이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으니까.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밖으로 나가 깊이 숨을 들이쉰 소은정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어쨌든 난 영원히 네 편이야, 하늘아. 뭘 하든 네 맘이 원하는대로 해. 절대 다른 사람들의 말에 흔들리지 마. 네 인생이잖아.”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짓던 김하늘의 미소가 어색하게 굳었다.“박 대표님?” 완벽한 수트핏에 고급스러운 분위기까지... 박수혁은 사람들 사이에서 눈길이 갈 수밖에 없는 남자였다.소은정이 고개를 돌리고 박수혁과 시선을 마주쳤다.“이런 우연이 있나?”성큼성큼 다가온 박수혁이 미소를 지었다.우연은 개뿔!좁고 좁은 이 바닥에서 초대장을 돌리는 사람들이라고 해야 손에 꼽을 정도였다. 오며가며 파티에서 마주친 게 처음도 아니고 왜 호들갑인가 싶었다.“그러게.”소은정이 대충 고개를 저었다.“우리가 인연이긴 한가 봐. 이렇게 자주 마주치는 걸 보면.”진지한 박수혁의 표정과 말투에 소은정의 미소는 어색하게 굳고 김하늘은 결국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박수혁 이 남자, 정말 은정이가 좋긴 한가 봐.한편 소은정은 박수혁의 말을 깔끔하게 무시한 채 김하늘의 팔을 잡아끌었다.“저쪽으로 가서 인사나 하고 오자.”그 모습에 살짝 실망한 듯 고개를 숙인 박수혁은 또다시 아무 일 없다는 듯 고개를 들어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과 형식적인
혼이 반쯤 나간 채 돌아온 강서진의 모습에 박수혁이 고개를 저었다.방금 전까지 자신만만하던 애가 무슨 말을 듣고 왔길래 저러는 거야? 하여간 소은정... 대단하다니까.“아이고, 박 대표님...”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그때 또 누군가 박수혁에게 인사를 건네고 와인잔을 부딪히려하자 누군가 허둥지둥 달려오더니 박수혁과 정면으로 부딪혔다.잔에 담긴 와인이 전부 쏟아지고 박수혁이 질색하며 와인을 털어내려던 그때, 박수혁과 부딪힌 여자는 아예 그의 품을 향해 파고 들기 시작했다.하, 뭐야?박수혁은 차가운 표정으로 몸을 다른 방향으로 틀었다.뭔가 의도를 가지고 달려드는 것 같은 모습인데다 소은정이 보고 있는데 다른 여자와 스킨십을 할 수는 없었다.“악!!”그대로 바닥에 넘어진 여자의 처참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지고 파티장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바닥에 넘어진 여자의 정체는 바로 임선, 비록 위치와 각도까지 전부 계산해 달려든 건데 이렇게 넘어질 줄이야.그 사이에 피한 거야? 이게 무슨 망신이야...갑작스러운 소란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유니폼을 입고 있는 걸 보면 여기 직원인 것 같은데요?”“그러니까요. 여긴 직원 교육을 어떻게 시키는 거야...”“그러니까. 매니저 불러야 하는 거 아니에요?”...얼마 전 임선은 박수혁을 만나기 위해 태한그룹으로 직접 찾아갔었지만 돌아온 건 임선 같은 사람은 모른다는 냉랭한 대답뿐이었다.SC그룹에서 해고당한 뒤 졸지에 백수 신세가 된 임선의 다음 타깃은 태한그룹이었다.해외 유학파인 그녀가 아무 회사에나 입사할 수는 없으니까!박수혁, 분명 나랑 만난 적 있으면서... 왜 모른다고 하는 거야!결국 마음이 급해진 임선은 수소문 끝에 박수혁이 오늘 파티에 참여한다는 소식을 알아냈고 알바생으로 취직한 것이었다. 어떻게든 박수혁과 만날 수만 있다면 분명 그녀를 알아볼 것이라 확신했으니까.그런데 넘어지는 그녀를 잡아주는 매너는커녕 피해 버리다니...주위의 다른 직원들이 임선을 부축하고 어느새 달려온 매니저가 고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매니저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소은정 대표의 사촌동생이라고? 재벌집 아가씨가 왜 이런 곳에서 알바를 하는 거야? 설마 서민 체험 같은 건가?한편, 박수혁은 덤덤한 표정으로 임선 옆에 서 있는 매니저에게 더러워진 재킷을 건네며 말했다.“이 여자더러 보상하라고 해요.”사실 재수 없었다 치고 대충 넘어가려고 했지만 소은정의 사촌동생이라는 말에 생각이 바뀌었다. 이러면 소은정과 단둘이 만날 기회가 생길지도 모르니까...박수혁이 자신의 “꾀”에 의기양양하던 그때 매니저는 흠칫하다 조심스레 재킷을 받아들었다.세계 최고의 장인이 수제작으로 만든 재킷, 어림 잡아도 억대일 텐데... 아니지. 재벌집 아가씨라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겠지...한편 박수혁의 말을 들은 임선은 충격을 받은 얼굴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백수인 그녀가 억대의 재킷을 보상할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박 대표님...”임선은 가련한 표정으로 박수혁의 이름을 불렀지만 남자는 흔들리지 않는 표정이었다.일부러 그를 향해 달려든 것이라는 걸 박수혁을 비롯해 파티의 다른 사람들도 이미 대충 눈치챈 상태였다. 이런 식으로 억지로 로맨스를 만들어내고 싶어 하는 여자들은 이 바닥에 널리고 널렸으니까.박수혁이 왜 굳이 이런 재킷 하나에 집착하는지 의아해하던 사람들은 곧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이걸 빌미로 소은정 대표와 만나려는 거구만... 하여간 남자들이란...“임선 씨, 박 대표님 말대로 하세요.”소은정의 사촌동생이라면 충분히 보상이 가능할 거란 생각에 매니저는 재킷을 임선에게 건넸다.“그게...”창백해진 얼굴로 주먹을 꽉 쥐던 임선은 붉어진 눈시울로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한편, 소은정과 김하늘은 2층에서 이 모든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겨우 이 정도야? 와인 쏟기라니... 진부하기도 하지...한참을 두리번거리던 임선은 드디어 소은정을 발견하고 두 눈을 반짝였다.“언니...”박수혁의 대본대로 흘러가는 시나리오에 다들 감탄을 금치 못했다.하
갑자기 나타난 박수혁의 모습에 소은정과 김하늘 모두 꽤 놀란 눈치였다.“아까 간 거 아니었어?”소은정이 미간을 찌푸렸다.“너 기다렸는데?”“왜?”이 추운 날 왜 기다린 거지? 소은정의 의아한 표정에 박수혁도 솔직하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네 사촌동생이란 사람이 내 옷에 와인을 쏟았잖아...”“그래도 괜찮아”라고 말하려던 그때 소은정이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그 여자 내 사촌동생 아니야. 재킷 값 받고 싶으면 그 여자한테 직접 연락해. 내가 모르는 사람 돈까지 내줘야 해?”임선의 추잡한 술수를 떠올린 소은정의 눈동자에는 혐오로 가득했다.예상밖의 반응에 당황스러운 건 박수혁이었다. 소은정의 본가에서 그 여자를 만나지 않았다면 그도 믿지 않았을 것이다. 외모부터 총기까지 소은정과는 하늘과 땅 차이였으니까.박수혁이 당황하든 말든 소은정은 그를 지나쳐 차에 타고 김하늘도 의미심장한 미소와 함께 그녀의 뒤를 따랐다.차에 탄 김하늘은 고개를 살짝 돌려 박수혁의 표정을 확인하더니 결국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꽤 많이 실망한 것 같네?”“그렇게 비싼 재킷을 버리게 생겼으니 실망스럽겠지.”소은정이 어깨를 으쓱했다.잠시 후, 소은정과 김하늘은 사운드 클럽에 도착했다. 두 사람을 알아본 매니저가 다가왔다.“성 대표님 만나러 오신 거죠? 안쪽에 계십니다.”매니저의 말에 소은정과 김하늘은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강희도 왔다고?잠시 후, 성강희가 있다는 룸 앞에 도착해 문을 열려던 소은정과 김하늘은 다시 멈칫했다. 문틈 사이로 성강희의 울음소리가 흘러나왔기 때문이었다.나라 잃은 백성처럼 오열하는 소리에 소은정이 속삭였다.“강희 요즘 무슨 일 있어?”소은정의 질문에 김하늘은 고개를 저었다.며칠 전까지만 해도 오로라를 보러 갈 거라는둥 잔뜩 들뜬 눈치던데 왜 저런대...“똑똑...”노크소리에 아무런 반응도 없자 소은정은 바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그 순간, 술병이 소은정의 머리결을 스치고 지나갔다.“내가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했지
성강희의 말에 소은정과 김하늘은 눈이 휘둥그레졌다.한참 뒤에야 소은정이 물었다.“너희 집안 어른들은 개방적인 분들이셨잖아. 갑자기 정략결혼이라니 이게 무슨 소리야?”성강희의 형이 사고로 세상을 뜬 뒤로 성태수는 두 쌍둥이 형제를 금이야 옥이야 키워왔었다. 잘못을 저질러도 차마 화도 못 내던 사람이 왜 갑자기...성강희는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요즘 그룹 내부 상황이 별로 안 좋아. 할아버지가 건강이 악화되기 시작하고 주주들간에 지분 경쟁이 시작됐는데... 대주주들 중 한 명이 다른 이사들 지분까지 전부 인수해서는 그집 딸이랑 결혼 안 하면 우리 그룹을 먹어버리겠다고 협박까지 하잖아...”성강희의 말에 소은정은 충격을 받은 듯 멍하니 서 있었다. 성일그룹 상황에 대해 잘 아는 건 아니었지만 지분 경쟁이 그렇게까지 번질 동안 눈치를 못 챌 수 있는 건가 싶었다.“어쩌다 상황이 그렇게 된 거야?”“난 회사일에 별로 관심없는 거 알지? 회사 주주들 전부 할아버지 오른팔들이었는데 그 자식들이 글쎄 배신을 때리는 바람에... 어쩌냐... 할아버지한테는 얘기도 못 드렸어... 충격받아서 정말 쓰러지실까 봐...”시무룩한 성강희의 표정에 소은정과 김하늘은 성강희의 등을 토닥여줬다.위로를 받으니 서러움이 더 북받치는지 성강희는 다시 오열하기 시작했다.김하늘은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젓고 소은정은 조심스레 물었다.“정략 결혼 상대는 누군데? 이... 이뻐?”일단 급한 불부터 끄는 게 맞으니 일단 결혼부터 하고 다시 지분을 되찾는 게 나을 거란 생각에 물은 말이었다.“나보다 1살 더 많아... 게다가 이혼녀래...”아이고... 불쌍한 강희... 강희 성격에 절대 고분고분 결혼은 안 하겠네.잠깐 고민하던 김하늘이 입을 열었다.“사실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야...”소은정, 성강희 두 사람이 고개를 번쩍 들자 김하늘이 싱긋 미소 지었다.“더 대단한 집안 여자랑 결혼하면 되잖아. 그럼 저쪽에서도 함부로 움직이지 못 할테고 시간은 벌었으
”아, 아빠. 아마 오늘이나 내일쯤 저에 관한 스캔들 기사가 뜰 거예요. 그룹 주가에는 영향이 가지 않을 테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소은정이 싱긋 미소 지었다.“그게 무슨 말이야?”소찬식이 의아한 표정에 잠시 고민하던 소은정은 결국 솔직하게 모든 걸 털어놓았다.소은정의 설명을 듣고 한참 침묵하던 소찬식이 한숨을 내쉬었다.“휴, 그 어르신 가장 아끼는 손주를 잃고 회사고 뭐고 나몰라라 한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이 정도로 심각할 줄은 몰랐네... 그래, 너랑 강희가 보통 사이도 아니고 도울 수 있는 거면 뭐든 도와. 은해, 너도.”아버지의 말에 소은정과 소은해가 고개를 끄덕였다.SC그룹, 차에서 내려 건물로 들어가려던 소은정은 프런트 직원에게 가로막힌 성강희를 발견했다.어제 오열했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오늘은 멀끔하게 꾸민 모습이었다. 게다가 커다란 꽃다발까지...하지만 어딘지 껄렁해 보이는 모습과 의심스러운 꽃다발까지 들고 있으니 직원들은 그의 앞을 막아 설 수박에 없었다.소은정의 등장에 드디어 안도의 한숨을 내쉰 성강희가 두 팔을 벌렸다.“자기야, 너무 보고 싶었어...”그 모습에 프런트 직원은 바로 경비원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감히 우리 대표님을!하지만 다음 순간, 번호를 누르려던 직원의 손이 어색하게 굳고 말았다. 소은정이 환한 미소와 함께 성강희의 품에 안겼기 때문이었다.뭐야? 내가 잘못 본 건가? 항상 침착하고 차가운 냉미녀 우리 소 대표님이 저렇게 웃을 줄도 아는 분이셨나?건물 로비에서 사람들의 시선 따윈 상관없다는 듯 뜨거운 포옹을 나누는 두 사람의 모습에 오고 가는 직원들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다.이쯤이면 볼 사람들은 다 봤겠다 싶을 때에야 두 사람은 포옹을 멈추고 손을 꼭 잡은 채 대표 전용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기자들한테는 연락 돌렸어?”한숨을 내쉰 소은정의 질문에 성강희가 휴대폰을 꺼냈다.“걱정하지 마. 제대로 찍혔으니까.”15분 뒤, 성강희가 그룹을 떠나고 오전이 채 지나기도 전에 각 포털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