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태현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울려퍼졌다. 박수혁은 손수건으로 여유롭게 손을 닦은 뒤 바닥에 툭 던져버렸다.소은정이 방을 떠나고 남은 사람들은 박수혁을 비롯해 다들 채태현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이들이라 그 누구도 박수혁을 말리지 않았다.또 박수혁이 이렇게 나서 양예영의 편을 들어주는 걸 보고 다들 줄을 제대로 섰음에 안도감을 느꼈다.도준호가 형식적인 위로를 건네고 다른 사람들도 하나 둘씩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박수혁은 바닥에서 나뒹구는 채태현을 보며 푸흡 웃음을 터트렸다.네 까짓 게 나한테 덤벼? “박 대표님...”박수혁도 방을 나서려던 그때 양예영이 그를 불러세웠다.“박 대표님 저기...”양예영이 말꼬리를 흐렸다.한편 바닥에 드러누운 채태현은 의아한 눈빛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뭐야? 두 사람 아는 사이었어?박수혁의 포커페이스에 보기 드문 미소가 실렸다.“잘했어요. 하고 싶은 작품 있으면 이 비서한테 말해요.”말을 마친 박수혁은 미련없이 돌아섰다. 두 사람의 대화에 채태현은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고 양예영은 묘한 미소를 지었다.박수혁을 백으로 둔 이상 앞으로 연예게 생활은 탄탄대로일 게 분명했다.박수혁 대신 소은정 주위에 몰려든 똥파리 하나 처리해준 게 단데 이런 헤택을 얻게 되다니. 옷까지 벗고 달려들었다가 모욕만 받은 채 나가떨어진 다른 두 사람의 신세를 생각하니 기분은 더 산뜻해졌다.아직도 바닥에 누워있는 채태현을 바라보던 양예영이 묘한 미소를 지었다.“채태현 씨, 아직 어려서 뭘 잘 모르나봐요. 소은정 대표님 같은 사람 곁에는 아무나 설 수 있는 게 아니랍니다.”양예영의 말에 채태현은 정신이 번쩍 드는 기분이었다.소은정! 그래 이게 다 소은정 때문이야!처음부터 그를 노린 함정이었던 걸까?한편 방으로 돌아온 소은정은 멍청한 채태현 덕분에 화가 머리 끝까지 난 상태였다.이런 멍청한! 소은정이 한참 씩씪대던 그때 우연준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대표님, 대구에서 긴급 회의 열릴 예정인데 직접 가실 건가요
추하나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도준호에게 촬영을 무사히 마칠 것을 부탁한 소은정은 바로 대구로 향했다.이깟 프로그램 촬영보다 야근이 훨씬 더 재미있겠다 싶은 소은정이었다.과연 2시간도 안 돼서 네티즌들의 반응이 들끓기 시작했다.“신인 연예인 갑질!”“유명인 닮은꼴 신인 연예인 인성 폭로!”......현장에 워낙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 보니 소식이 유츨되는 걸 막을 수 없었다.휴, 이건 그냥 도준호에게 맡겨야겠다.어차피 사람들은 냄비 근성이라 다른 화제거리를 던져주면 주의를 돌리기 마련이니까.대구에 도착하고 우연준이 기사에게 연락하는 사이 소은정은 휴대폰을 뒤적거렸다.이때 누군가 다가오고 소은정의 액정 위에 그림자가 드리웠다.고개를 들어보니 전동하였다.“전 대표님?”지금쯤 해외에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소은정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해외 쪽 일이 생각보다 빨리 끝나서요. 마침 오늘 회의도 있다고 해서 들어왔습니다.”전동하의 대답에 소은정도 고개를 끄덕였다.아마 그녀와 같은 회의를 참석하러 온 거겠지.“귀국을 환영합니다.”이때 전동하가 길가에 세워둔 차량을 가리켰다.“같이 이동하시죠.”소은정이 살짝 망설이자 전동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어깨를 으쓱했다.“소 대표님에게 여쭤볼 것도 있고 오늘 회의에 제가 발표해야 할 내용이 있는데 아직 준비가 안 돼서요.”그제야 고개를 끄덕인 소은정이 우연준에게 말했다.“우 비서는 기사님과 함께 움직여요. 난 전 대표님과 함께 갈 테니까.”“네.”우연준은 마침 전동하가 온 걸 다행이라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지사 직원들 도대체 일처리를 어떻게 하는 거야? 대표님을 기다리게 만들고...한편 소은정이 차에 타자 전동하가 옆에서 작은 상자를 꺼냈다.“이게 뭐예요?”“선물이에요.”“제 선물이요?”의아한 소은정의 표정에 전동하가 미소를 지었다.“네, 은정 씨 거랑 마이크 선물 좀 사봤어요.”마이크와 그녀를 동등한 존재를 보고 있다는 뜻이 담긴 전동하의 말에 소은정은 왠지 선물이 더 무
전동하는 입꼬리를 실룩거리며 쓴웃음을 지었다.“이런 일에 속다니! 다소 절망스럽네요.”비즈니스 엘리트인 월가의 천재에게 이건 심리적으로 너무 큰 충격이었다.이때, 소은정이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차 안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가벼워졌다. 그녀는 늘 들고 다니던 아이패드를 꺼내더니 이렇게 말했다.“이번 강연 주제를 말씀드릴까요?”이번 회의는 사실 주요하게 시장 연구조사에 관한 비전 교류회였는데, 실제 회의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이 주식 시장을 뒤흔들 만한 거물들이라, 나아가 그들이 주식 시장을 뒤흔들기에 중요한 것이었다.그리고 회의에서는 프로젝트가 하나가 제안될 예정이다. 이 프로젝트는 소 씨 일가도 이미 일정 기간 동안 계획하여 왔기에 매우 기대하고 있었다.전동하는 즉시 진지하게 가르침을 원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그 얼굴은 매우 매혹적이고, 겸손하면서도 부드러웠으며, 기질이 남다르고, 또 존귀하면서도 약간의 차가운 티도 없지 않아 있었다. 몸에서 풍겨져 나오는 상쾌한 향기는 결코 사람에게 거리감을 주지 않았다.그는 박수혁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처음에는 그녀만 얘기하다가 나중에는 전동하도 같이 토론하기 시작했다. 목소리는 너무 높지도 너무 낮지도 않았고, 이 프로젝트에 대한 두 사람의 견해는 모두 긍정적이면서도 어느 정도 의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소은정이 주최 측에서 제의한 무대로 올라가 강연 요청을 거절한 주된 원인은 제작팀에 일들이 너무 많아 화가 났기에 자신의 감정을 주체할 수 없을까 봐서였다.차는 아주 평온하게 가고 있었다. 소은정은 이 도시에 몇 번이고 왔었지만, 매번 일 때문에 바쁘게 다니느라 자세히 둘러볼 시간이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온 것이긴 하나 또 다른 변화가 있는 것 같았다.그녀가 무심하게 차창 밖을 내다보자 전동하가 무심코 한 마디 내던졌다.“마이크는 잘 지내나요?”소은정은 순간 멈칫했다. 그녀는 갑자기 죄책감이 들었다. 그녀는 요 며칠 내내 제작진과 같이 붙어 있느라
회의 도중, 소은정은 몇 통의 전화와 문자를 받았다. 전부 채태현한테서 온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한 통도 답장하지 않았다.그렇게 문자가 연달아 날아왔다.“은정 씨, 제발 믿어주세요. 이 모든 건 박 사장님과 양예영이 판 함정이에요. 그들이 모함한 거라고요.”“은정 씨, 당신을 매우 존경하고 좋아해요. 처음 봤을 때부터 은정 씨가 좋아졌어요. 그래서 매우 존경하고 성스러운 마음으로 은정 씨에게 다가갔어요. 정말 은정 씨에 대한 저의 마음은 하늘보다도 더 크답니다...”“은정 씨, 제발 좀 살려주세요. 정말 이렇게 끝내고 싶지 않아요. 제 인생은 아직 긴데...”...문자 내용을 힐끗 쳐다보던 소은정은 금세 목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속이 메스꺼워 났다.‘내가 정말 눈이 멀었었네. 이렇게 찌질한 사람을 추어줬다니!’그녀는 망설임 없이 그의 번호를 차단했다. 그리고 도준호에게 문자를 보냈다.“채태현 꺼지라고 해. 당장!”그녀는 더 이상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 돈줄이 글쎄 썩은 나무가 되다니! 그야말로 인생의 걸림돌이 따로 없었다.…회의 중, 갑자기 박수가 터졌다.“자! 다음 분 모시겠습니다.”전동하는 웃으며 일어서더니 그녀를 내려다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제가 나설 차례인데 좀 아니다 싶은 내용이 있으면 나중에 말씀해주세요.”소은정은 주먹을 쥐고 “파이팅!”의 자세를 취했다.전동하는 빙그레 웃으며 무대 위로 걸어 올라갔다. 순식간에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아 안았고, 장내는 금세 다시 조용해졌다.훤칠한 키에 일거수일투족에 귀티가 팍팍 나는 차분한 분위기, 그리고 예리함과 겸허함을 갖춘 눈빛은 타인에게 온화하면서도 지적인 느낌을 주었다. 다만 가끔씩 무심코 바라보는 시선으로부터 은연중에 그의 마음속 깊숙한 곳에 있는 냉혹함이 드러나기도 했다.“안녕하세요. 우선 이 자리에 서게 되어 영광입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지켜보았다. 그의 강연 내용은 앞 사람에 비해 더 대중적이고 실용적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회사를 소개하기는
순간 부장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리고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회의실 분위기도 순식간에 무겁게 가라앉고 다른 부장들은 행여나 불똥이 튈까 숨소리조차 크게 내지 못했다.아니 분명 방금 전까지 실적이 좋지 않은 부장을 위로까지 해주는 등 기분이 좋아보이더니 갑자기 왜 저러시나 의아할 따름이었다.감정기복이 거의 사춘기 소년 수준이었다.박수혁의 곁에 서 있던 이한석은 괜히 쓸데없는 말을 해 스스로 무덤을 판 부장을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그냥 운명이라 생각하세요...박수혁은 서슬 퍼런 눈빛으로 부장을 노려보다 입을 열었다.“퇴근 전까지 정확한 보고서로 올리도록 해요. 1분이라도 늦으면 회사 그만두는 걸로 알겠습니다.”말을 마친 박수혁은 바로 회의실을 나섰다.박수혁이 책상에 던진 휴대폰을 챙긴 이한석이 쪼르르 그 뒤를 따랐다.“대표님...”이한석이 건넨 휴대폰을 받은 박수혁이 이한석을 노려보았다.“내가 은정이 지켜보라고 했을 텐데? 왜 전동하 대표와 함께 회의에 참석한 건 모르는 거지?”박수혁의 말에 이한석이 멈칫하더니 대답했다.“소은정 대표님이 주최하신 회의는 대구에서 열렸습니다. 박 대표님도 초대했는데 딱히 중요한 회의가 아니라 참석하지 않겠다고 대표님께서 말씀하셨고요. 전 대표님도 일정대로라면 3일 뒤에 돌아오셔야 하는데 왜 그쪽으로 가셨는지...”전동하가 미리 돌아올 줄은 몰랐던 이한석이었다.월가를 뒤집어 놓을 만큼 큰 기업을 운영하면서도 오랫 동안 신비주의를 유지했던 전동하였다. 평소에도 굉장히 은밀하게 움직이다 보니 스케줄을 완벽하게 파악하는 게 쉽지 않았다.굳은 표정으로 사무실로 들어가던 박수혁이 물었다.“회의는 언제쯤 끝날 예정이지?”“회의 일정은 오후라 소은정 대표님은 아마 저녁쯤에 돌아올 것 같습니다...”박수혁은 이한석의 불확실한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박수혁의 언짢은 표정에 이한석이 한 마디 덧붙였다.“어차피 지금 가셔도 회의 일정은 못 맞추실 겁니다.”게다가 오후에
소은정은 그녀를 노린 사람들인 줄 알고 바로 경계태세를 갖추었지만 다행히 모두 그녀를 스쳐지나 다른 곳으로 달려갔다.아, 아니었네. 다행이다.또 한참을 걸은 소은정은 한 쇼핑몰의 전시 구역에 피아노 한 대가 놓여있는 걸 발견했다.피아노 앞에 앉아본 지도 꽤 된 것 같네.소은정은 마치 뭐에 홀린 듯이 피아노 앞에 앉았다. 소은정의 손가락이 건반 위에서 움직이고 산뜻한 분위기의 이 흘러나왔다.오랜만에 여유를 즐기는 가벼운 그녀의 마음과 어울리는 선곡이었다.이때 누군가 다가와 그녀의 옆에 앉았지만 소은정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눈을 감은 채 연주에 심취했다.다음 순간, 남자의 기다란 손가락 또한 건반 위를 움직이며 소은정의 연주와 어우러지고 그제야 소은정은 고개를 돌렸다.전동하의 완벽한 옆선이 소은정의 시야로 들어오고 역시 소은정의 시선을 느낀 전동하는 그녀를 향해 싱긋 미소 지었다.처음 해보는 합주임에도 두 사람의 음악은 마치 수천, 수만 번 호흡을 맞춰본 듯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음악에 대한, 피아노에 대한 전동하의 진심을 느낀 소은정의 입가에도 미소가 피어올랐다.따스한 해살이 내리쬐는 여름날, 푸르른 들판을 거니는 듯한 분위기의 곡 속에서 소은정은 그녀의 삶에서 가장 즐거웠던 추억들을 하나, 둘씩 떠올렸다.마지막 음표와 함께 곡이 끝나고 소은정은 거친 숨을 내쉬었다.이렇게 순수하게 즐거웠던 때가 언제였더라? 마치 전생의 기억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박수혁을 사랑하게 된 순간부터 그녀의 삶은 롤러코스터를 탄 듯 막장으로 치닫기 시작했다.박수혁, 정말 지긋지긋한 남자야.소은정은 고개를 돌려 전동하의 손가락을 바라보았다. 뚜렷한 골격감이 아니었다면 여자 손이라고 해도 믿길 정도로 희고 긴 손가락, 피아노에 가장 어울리는 손이었다.“부족한 실력이라 부끄럽네요.”전동하가 먼저 입을 열었다.“그럴 리가요. 저보다 훨씬 더 잘하시던데요? 오히려 제가 부끄러웠어요.”말은 그렇게 해도 사전 연습 한 번 없이 이렇게 완벽한 연
쇼핑몰 담장자는 잔뜩 들뜬 말투로 말했지만 전동하, 소은정 두 사람은 아무런 리액션도 보이지 않았다.하지만 담당자는 머쓱한 기색 하나 없이 설명을 시작했다.“두 분께서는 오늘 행운의 커플로 선정되셨습니다. 오늘이 바로 저희 쇼핑몰 이벤트 마지막날이거든요. 이 피아노로 합주를 한 커플들 중 가장 훌륭한 연주를 보여준 커플분들께 드리는 상인데 두 분의 연주는 아주 감동적이었어.”쇼핑몰 담당자가 두 눈을 반짝였다. 두 사람 모두 외모와 분위기를 봐도 보통 사람은 아닌 것으로 보였다.특히 남자가 손목에 착용한 시계는 웬만한 아파트 한 채는 살 수 있을 정도였고 여자쪽은 옷차림은 수수하지만 들고 있는 백은 에르메스 한정판이었다.이렇게 좋은 고객을 놓칠 수야 없지.담장자의 설명에 소은정은 눈썹을 치켜세웠다.이벤트에 당첨되었으니 사은품을 받을 수 있을 게 분명했지만 커플 이벤트라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전동하와 커플이라니... 말도 안 돼.소은정이 거절하려던 그때 쇼핑몰 담당자가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한 마디 덧붙였다.“저희는 태한그룹 산하 쇼핑몰이랍니다. 그 품격에 맞게 이번 이벤트의 사은품도 아주 굉장하죠.”태한그룹? 굉장한 사은품?흠칫하던 소은정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하, 그렇다면 받아야지.“그래요. 사은품이 뭐죠?”박수혁 돈이라면 무조건 써줘야지.“오늘 두 분께서 저희 쇼핑몰에서 구매한 제품들 모두 무료로 드리겠습니다. 어때요? 흔들리시죠?”사실 담당자는 두 남녀 모두 쇼핑백 하나 들지 않은 걸 발견하고 이렇게 말한 것이었다. 이렇게 말함으로써 아쉬움을 심어주어 다시 쇼핑몰을 찾게 만드려는 게 담당자의 계획이었다.전동하는 담담한 미소를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소은정은 짐짓 두 눈을 커다랗게 떠보였다.“전부요?”“네! 그런데 아쉽지만 오늘은 저희 쇼핑몰에서 아무것도 구매하지 않은 것 같네요...”말을 마친 쇼핑몰 담당자가 작은 선물을 주려던 그때, 소은정이 기다란 카드 영수증뭉치를 담당자에게 건넸다.“자요.”영수증을
왜 굳이 가려는 사람을 잡아서 쓸데없는 말을 해서는!당장이라도 자신의 입을 꿰매고 싶은 담당자였다.한참을 망설이던 담당자가 바싹 마른 입술을 달싹거리다 입을 열었다.“30... 30억... 작은 금액은 아니니 상부에 보고를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충격이 컸는지 목소리까지 쉬어버린 모습이었다.담당자의 말에 소은정은 일부러 순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쇼핑몰 담당자시라면서 이 정도도 결정 못하시는 건가요? 아니면 제가 직접 여쭤봐 드릴까요?”소은정이 핸드백에서 휴대폰을 꺼내려 하자 담당자가 다급하게 손을 저었다.“잠, 잠깐만요! 물론 제 권한으로 결정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시죠. 계좌번호와 이름을 남겨주시면 저희 쇼핑몰 측에서 바로 입금해 드리겠습니다.”제멋대로 이런 사은품을 약속했다는 게 박수혁의 귀에 들어간다면 그때는 정말 돌이킬 수 없을지도 모른다.담당자의 제안에 소은정은 싱긋 미소 짓더니 휴대폰을 다시 백에 넣고 자신의 연락처와 계좌번호를 남겼다.“감사합니다. 제 인생 최고의 이벤트였어요.”말을 마친 소은정과 전동하는 절망스러운 표정의 담당자를 남겨둔 채 쇼핑몰을 나섰다.다시는 이런 이벤트 하나 봐라! 쇼핑몰 담당자가 입술을 깨물었다.쇼핑몰을 나선 후 전동하가 기분이 꽤 좋아 보이는 소은정을 향해 물었다.“쇼핑한 물건들은 호텔로 보내셨나 봐요?”회의가 끝난 지 이제 겨우 3시간이다. 3시간 모두를 쇼핑에 쏟았다 해도 30억이라니.소은정의 화끈한 구매욕에 전동하도 꽤 놀란 눈치였다.“지금쯤 이미 호텔에 도착했을 걸요?”소은정이 어깨를 으쓱했다.“박 대표님이 아시면 배 좀 아프시겠는데요?”“저쪽에서 먼저 제안한 건데요 뭐.”잠깐 멈칫하던 소은정이 말을 이어갔다.“저런 사람이 태한그룹 산하 쇼핑몰 담당자라니. 인사팀 직원들 실력이 의심되는데요?”“그런데 왜 집으로 안 가고 대구에 묵기로 하신 거예요?”전동하가 물었다.“가고 싶지 않아서요.”소은정이 시계를 확인하며 대답했다.7시 58분, 2분 남았네.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