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쌍한 척해서 누구한테 보여주려고? 그 말을 들은 채태현은 한순간 몸이 굳어진 채 발버둥을 멈췄다. 사람들이 보고 있는 가운데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물은 이미 그의 허리까지 찼다. 어색한 공기의 흐름 속에서 사람들은 모두 침묵했다.한순간 호수를 차고 넘쳤던 사람들의 웃고 떠드는 소리와 다급한 비명이 뚝 그쳤다. 소은정은 입술을 깨물더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배에 조용히 앉아 복잡한 눈빛으로 물속에 있는 채태현을 바라보았다. 바보를 보는 듯한 눈빛으로 몇 번 힐끔거리던 그녀는 그제야 가볍게 웃으며 어색한 분위기를 풀었다.“물이 참 옅긴 하네요. 돌아가서 옷을 갈아입지 않을래요?”채태현은 말문이 막혔다. 그저 두려웠을 뿐인데, 겨우 이 정도로 얕을 거로 생각지 못했을 뿐인데, 참 쪽팔리긴 했다. 더욱이 소은정 앞이었으니 더 창피했다.“아... 아니, 됐어요.”박수혁은 차갑게 코웃음 쳤다.“필요 없으면 그냥 물에서 우릴 좀 밀어줘요, 그런 난리를 떨었으니 우리 팀은 진 거나 다름없어요.”남자가 두 명이나 있는 팀이 남자 한 명도 없는 팀에게 지다니. 쪽팔리지 않을 수 없었다. 소은정은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무슨 말을 하려던 순간 머릿속에 뭔가 떠올랐다.“잠깐, 조금 전 채태현 씨의 상앗대가 수혁 씨의 상앗대에 걸리지 않았어요?”박수혁의 표정이 굳어지더니 눈빛이 흔들렸다. 소은정은 다시 한번 따져 물었다.“설마 정말 배 저을 줄 모르는 거 아니에요?”그러니 서툰 솜씨로 채태현의 상앗대를 걸었고 그래서 채태현이 물에 빠진 것이다. 그 순간 박수혁은 입술을 꽉 깨물고 위험하고 예리한 눈빛으로 물속에서 순순히 배를 밀고 있는 채태현을 힐끗 보고는 마른기침을 했다.“할 줄 알아요, 요트도 운전할 줄 아는데요, 뭘.”소은정은 그를 흘겨보며 배를 저을 줄도 모르면서 억지 부린다고 생각했다.한편 채태현은 안간힘을 다해 배를 밀고 있었다. 카메라 감독님까지 배에 탔으니 150kg이 되는 무게였다. 그는 불쌍하게 열심히 밀고 있었다. 열
하지만 채태현은 한순간 생각을 정리하고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러네요, 박 대표님께선 참 자상하시네요. 저도 걸어서 가려고 했어요. 자신에 대한 조그마한 도전이라고 치죠.”말을 마친 그는 그대로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 물길을 헤치며 걸어갔다. 고개도 돌리지 않고 걸어가는 그의 모습은 쓸쓸하면서 확고해 보였다. 소은정은 뭐라 말하려 했으나 배가 적기도 했고 맞은 편에 연락해 다시 배를 가져오라고 하기엔 시간도 걸리기에 입을 다물었다.그녀는 잠시 생각하다가 몸을 돌려 저벅저벅 걸어갔다. 박수혁은 재빨리 따라가 그녀의 손을 잡고 채태현의 손을 잡았던 손가락을 힘껏 문질렀다. 그녀의 손가락이 빨갛게 되도록 문질러 하얗고 여린 손이 더 눈에 띄었다. 소은정은 차갑게 손을 빼더니 담담한 눈빛으로 말했다.“왜 그래요?”박수혁의 눈시울이 언제부터인지 빨갛게 변했고 그는 낮은 소리로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며 대답했다.“당신 앞으로 그 자식이랑 말 섞지 말아요.”소은정은 어이없어 차갑게 웃으며 대답했다.“당신이랑 상관없는 일이예요.”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듯했고 곧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 그랬다. 자신과 상관이 없는 일이다.“당신이 채태현을 촬영에 초대했죠?”그녀가 아니라면 이런 이익적인 연관이 없을 것이다. 소은정은 담담하게 웃으며 대답했다.“맞아요...”화가 나거나 어색하면 알아서 나가면 되는 일이 아닌가! 박수혁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그는 한 걸음 다가가 부드럽게 그녀의 이마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정리해줬다. 그러고는 차가운 어투로 말했다.“나 하나로 안돼요? 가짜까지 필요한 거예요?”소은정은 고개를 들고 그를 마주 보았다. 예리한 눈빛은 물러날 생각이 없는 듯해 보였다. 그녀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손을 내밀어 그의 옷깃을 정리해주며 청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남자는요, 한 명 더 많다고 해서 문제 될 게 없어요. 영원한 남자친구가 없을지는 몰라도 나에겐 남자친구가 아주 많아요.”박수혁은 숨이 막혀 오는 것 같았다. 그는 차갑고
두 사람은 한순간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아니... 우리는 그런 뜻이 아니라 생활방식이 다르면 그렇다는 말이지 소은정 씨가 그렇다는 말은 아니에요.”소은정이 담담하게 웃으며 차가운 표정은커녕 오히려 부드럽게 대답했다.“알아요, 다들 악의가 없이 그저 그렇다고 말만 하는 거잖아요. 추하나 씨, 괜히 무섭게 그러지 말아요.”소은정이 정말 화가 난것 같지 않자 그제야 다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녀는 그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편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양예영은 박수혁을 힐끗 보고 나서 마른기침을 했다.“소은정 씨는 좋은 사람이니 앞으로 꼭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예요. 박 대표님도요...”박수혁이 차가운 눈빛으로 그들을 힐끗 보았다. 이혼한 여자들이 무슨 자격으로 소은정을 평가하는 거지? 그때 길하늬가 갑자기 휴대폰을 꺼냈다.“참,우리 카카오톡 친구 해요. 편할 때 연락하면서 지내는 게 어때요? 우린 앞으로 같은 팀이 되는 거예요.”양예영이 기뻐하며 휴대폰을 꺼내 친구 추가했고 추하나와 소은정도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양예영은 휴대폰을 들고 박수혁의 앞에 다가가 웃는 얼굴로 물었다.“박 대표님도 친구추가 하시죠?”얼마나 격동된 순간인가! 연예계의 여자들이 신이라 부르고 있는 그가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으니 말이다. 카카오톡 친구추가만 하면 성공의 첫걸음을 뗀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박수혁은 차갑게 그녀를 바라보다가 턱으로 소은정을 가리키며 말했다.“소은정 씨를 추가하면 돼요.”두 사람 사이가 헤어질 수 없는 사이인 척하는 그의 모습에 양예영이 물었다.“박 대표님, 소은정 씨와 이미 이혼했는데 아직도 소은정 씨가 질투할까 겁나세요? 소은정 씨, 괜찮죠?”소은정은 눈을 치켜뜨고 입가에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당연히 괜찮죠.”박수혁은 자신은 많은 걸 겪었던 사람이고, 생사가 오가는 순간에도 고개를 숙인 적이 없는데 언젠가 소은정 때문에 화가 나 죽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다른 여자가 그의 연락처를 따가는
다른 세 여자는 모두 마른 편이었다. 길하늬는 눈썹을 찌푸리고 불만이 있는 듯했다.“룰을 마음대로 바꿔도 돼요?”“공평하게 가려고 그러는 거잖아요.”박수혁은 안 그래도 심기가 불편했는데 여자들이 조잘대니 더 짜증이 났다. 특히 소은정과 떨어져 앉으라는 말을 듣는 순간 그는 양예영이라는 뚱뚱한 여자를 한기 서린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가 입을 열어 제지하려 할 때 소은정이 갑자기 방향을 바꾸었다.“그럼 양예영 씨가 박 대표님과 한 팀 하세요. 제가 저쪽으로 갈게요.”양예영은 기뻤다. 소은정이 이렇게 쉽게 허락할 줄 몰랐다. 그러니 두 사람은 이제 화해할 희망이 없을 것이고 자신한테 기회가 찾아왔다고 생각했다.소은정은 다른 배에 올라탔고 박수혁은 어두운 눈빛으로 양예영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손을 내밀어 그에게 부축해달라고 했고 박수혁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힐끗 보더니 몸을 돌려 아는 체도 하지 않았다.카메라에 어떻게 비추든 그가 상관할 바 아니었다. 일반 남자 배우였더라면 악의적인 편집으로 꼬투리를 잡을 게 뻔했지만 박수혁이기 때문에 아무도 감히 건드리지 못했다. 악의적인 편집 따윈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양예영은 눈썹을 씰룩거리며 포기하지 않으려 했다. 차가운 대표님이니 이런 성깔쯤은 받아줄 수 있었다.“박 대표님,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잘할게요.”박수혁은 뱃머리에 서서 다른 배에 올라탄 소은정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쪽에서 기분이 아주 좋은 것 같았다. 그런 모습에 그는 마음이 답답했다. 양예영은 그의 시선을 끌려다가 넘어질 뻔했다.“상앗대가 왜 이렇지? 박 대표님, 이걸 좀 봐주실래요?”박수혁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노 저을 줄 모르면 내려가서 밀어요.”어쨌거나 그는 꼼짝도 하지 않을 것이다. 소은정이 아닌 다른 여자에게 힘을 쓰는 일 따윈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양예영은 말문이 막혔고 혹시 농담하는 건 아닐까 의심했다. 그녀는 억울한 듯 눈을 깜박였다. 이미 나이를 어느 정도 먹은 그녀였지만 여전히 자
박수혁은 음침한 얼굴로 그가 옆에 없는 소은정의 행복한 표정을 바라보았다. 특히 강서진의 전처와 함께 있는 걸 보니 마음이 더 괴로웠다.한편은 노랫소리가 울려 퍼지고 다른 한편은 먹장구름으로 뒤덮여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는 이렇게 앉아서 기다리기만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휴대폰을 꺼내 소은정에게 문자를 보냈다.“자기 노랫소리가 참 듣기 좋아요. 세상에서 노래를 가장 잘하는 사람인 것 같아요.”소은정은 문자 알람을 듣고 업무에 급한 일이라도 생긴 줄 알고 다급히 꺼내 보았는데 내용이... 그녀는 휴대폰을 물에 던져버리고 싶었다. 화가 나 얼굴이 파랗게 질린 채 개자식이라고 속으로 욕하고 아예 음성으로 회답했다.“병이 있으면 치료해요.”박수혁은 그녀가 이렇게 빨리 회답한 것을 보고 참 행운답다고 생각하고 표정이 밝아졌다. 하지만 카카오톡 소리가 들리는 순간 배에 있던 양예영과 카메라 감독이 멍해졌다. 조금 전 분명 카카오톡을 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박수혁은 아무렇지 않은 척 듣기 버튼을 눌렀다. 그녀가 말하고 있었다,“병이 있으면 치료해요.”이렇게 직설적으로 욕을 하다니. 박수혁은 눈썹을 씰룩거리며 웃었다. 그리고 녹음 버튼을 누르고 그녀의 노랫소리를 녹음했다.양예영은 억울한 듯 뭔가를 말하려고 입을 벌리다가 도로 삼켰다. 말해봤자 굴욕만 자초할 뿐이었다. 이 남자가 조금 전 했던 경고로 족했으니 알아서 입을 다물어야 했다.소은정은 휴대폰을 꺼놓고 기분을 조절한 뒤 계속 노를 저었다. 곧 여자들이 탄 배가 두 사람과 멀어져갔지만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번 촬영은 좋은 장면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처음 양예영과 한편이었던 길하늬는 양예영이 너무 눈에 튀게 박수혁에게 꼬리치 는 것도 모자라 혼자 박시준을 독점하려는 걸 보고 양예영에게 안좋은 인상이 들었다.양예영과 박수혁을 곁눈질해 보니 한 명은 뱃머리에 있고 다른 한 명은 배 뒷부분에 있었으며 박수혁은 고귀한 손을 내밀어 도울 뜻도 없어 보였다. 그 모습에 다들 마음을
양예영은 조심스럽게 눈치를 보고 있다가 박수혁이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자 소은정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고 낌새를 알아차렸다. 그녀는 웃으면서 다가가 손을 의자에 걸친 채 채태현에게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어머, 이렇게 정교한 디저트를 누가 준비했어요?”옆에 있던 채태현이 황급히 일어나 신사답게 양예영에게 의자를 빼주었다. 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를 마주 보았다.양예영:눈치는 좀 있네.채태현:이 여자가 날 좋아하는군!하지만 곧 커다란 그림자가 소은정의 빈 옆자리에 나타났다. 그는 갑자기 발로 의자를 걷어찼는데 기세가 아주 사나웠다. 굉음이 울려 퍼졌고 방안은 한순간 조용해졌으며 남자의 압박감이 느껴졌다.가장 가까운 곳에 앉아 있던 소은정은 여전히 담담한 표정을 지은 채 조금도 당황한 기색이 없었다. 한순간 사람들은 소은정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아마 다리가 후들거렸을 것이다.“미안, 발이 미끌었네.”그의 차가운 목소리엔 미안한 기색이 조금도 없었고 다른 해석 따윈 찾아볼 수 없었다.핑계를 위한 미안하다는 말을 누가 믿겠는가? 하지만 그가 그렇게 말하면 믿어야 했다. 소은정은 고개를 들고 차갑게 그를 바라보다가 조곤조곤한 어투로 말했다.“이 의자들은 세트예요. 하나가 부러지면 다 바꿔야 하니 물어줘요.”박수혁은 앉으려다가 주춤한 채 믿기 어렵다는 듯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가 이 의자에 관심을 보인다고? 다른 사람들도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세상에, 이것이 바로 대표님과 대표님 사이의 대화란 말인가? 뭐가 달라도 다르다 생각했다.박수혁은 음침한 표정으로 웃으며 뒤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도준호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침을 꿀꺽 삼키고 소은정을 바라보며 대답했다“알았어요. 물어줄게요, 당신이 좋아하는 브랜드로 골라봐요.”소은정은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도준호를 힐끗 보았다. 도준호는 곧 그녀의 뜻을 알아차렸다. 예의를 갖추지 말고 마음껏 고르라는 뜻이다.첫 방송이니만큼 화젯거리가 필요했던지라 도준호는 조심스럽게 소은정과 박수
그와 동시에 주변 환경이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사람들의 얼굴에도 각기 다른 변화가 생겼고 저마다 생각에 잠겼다.소은정은 피하지 않았다. 마치 기자 회견이라도 하는 것처럼 어두운 얼굴로 집중하고 있었다.“저와 박 사장님이 결혼했을 당시 본의 아니게 떠들썩하게 화제가 되었었어요. 결혼 생활의 가장 추한 모습을 사람들에게 알린다는 건 자신의 체면을 깎는 일이긴 하나 상의를 거쳐 다시 친구로, 파트너로 지내기로 했어요. 이는 절대 후회될만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소은정이 질문에 답할 때 박수혁이 화가 나서 부들부들 떨고 있다는 걸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다. 두 주먹을 어찌나 꽉 쥐었는지 힘줄이 다 보일 정도였다.그녀는 두세 마디 말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그리고 늘 기고만장하던 남자가 한 순간에 무너진 모습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는 슬픔이 담긴 눈빛으로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는데 안색이 말이 아니게 어두웠다.매번 그녀가 이런 말을 할 때마다 그의 마음은 마치 칼로 도려내듯 아팠고 심지어 숨 쉬기도 힘들었다.그녀는 후회하지 않았다.하지만 그는 어떠한가?이 실패한 결혼을 다시 돌이키기 위하여 노력하는 사람은 그뿐이었다. 너무도 지치고 힘들었지만 포기할 수가 없었다.혹시라도 그가 먼저 손을 놓으면 그녀가 더 멀리 갈까 봐, 혹은 그의 인생에서 영영 사라질까 봐 두려웠다.그 모습을 본 양예영은 지금이야말로 박수혁을 도울 가장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그녀는 예쁘장한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전에도 이 매혹적인 얼굴로 한무리의 남자 중에서 감독과 결혼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람기 있는 남자의 마음을 잡지 못해 결국에는 언론에 공개되고 말았는데 자신의 체면 때문에 이혼으로 종지부를 찍었다.그녀는 헛기침하며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은정 씨 저희와 신분이 다르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너무 젊어요. 연인은 다 친구나 파트너에서 시작하는 거 아닌가요? 비록 지금 이혼하여 원래의 신분으로 돌아가긴 했지만 다시 만나지 않을 거라는 보장은 없잖아요.
그 생각에 길하늬는 요염한 눈빛으로 박수혁을 아래위로 훑으며 말했다.“전 결혼이 사람의 자유를 속박한다고 생각해요. 사랑하는 사람끼리 함께 하면서 왜 그런 명분을 따지는 거죠? 서로 사랑한다면 결혼하지 않아도 평생 함께할 것이고 사랑하지 않는다면 결혼해도 결국에는 이혼하게 돼요.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는데 한 사람한테만 목을 맬 필요는 없죠. 이 세상에 재미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요!”양예영은 숨을 들이쉬며 박수혁의 눈치를 몰래 살폈다.아니나 다를까 눈빛이 날카로운 게 당장이라도 사람을 칠 기세였다!다행히 그녀는 그런 그를 말렸다.길하늬의 얘기가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소은정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더러 계속 얘기하라고 했다.길하늬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다들 그녀의 말에 동의하자 저도 모르게 자신감이 생겼다.“전 예영 언니랑 생각이 달라요. 우린 지금 찍을 작품이 있고 자원이 있고 인맥이 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돈이 있잖아요. 우리처럼 돈이 많은 여자들이 결혼의 득실을 굳이 따져야 해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원없이 사랑하고 만나지 못하면 자신의 인생을 살면 되죠!”소은정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하늬 씨 말이 일리가 있어요.”추하나마저도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양예영은 몰래 피식 웃었다.우쭐하기는. 수혁 씨 싸늘한 눈빛 못 봤어?길하늬는 “난 당신의 애인이 되고 싶어요”라는 말을 박수혁에게 할 기세였다.추하나는 머릿속을 정리하며 끝에 앉은 유한슬을 쳐다보았다.“유한슬 씨는 어떻게 생각하세요?”유한슬은 순간 화들짝 놀랐다. 그러고는 쑥스러운지 대충 별거 아닌 얘기만 몇 마디 했다.곧이어 채태현이 흥분한 얼굴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이 자리에 계신 아름다운 여성분들, 결혼하셨든 이혼하셨든 전 다들 행복했으면 좋겠어요.”소은정은 입을 삐죽거렸다. 채태현의 행동을 보며 의아해했다.옆에 있던 양예영이 술잔을 들고 그와 건배했다.“고마워요, 채태현 씨. 채태현 씨처럼 다정하고 잘생긴 남자를 만난다면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