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생각에 길하늬는 요염한 눈빛으로 박수혁을 아래위로 훑으며 말했다.“전 결혼이 사람의 자유를 속박한다고 생각해요. 사랑하는 사람끼리 함께 하면서 왜 그런 명분을 따지는 거죠? 서로 사랑한다면 결혼하지 않아도 평생 함께할 것이고 사랑하지 않는다면 결혼해도 결국에는 이혼하게 돼요.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는데 한 사람한테만 목을 맬 필요는 없죠. 이 세상에 재미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요!”양예영은 숨을 들이쉬며 박수혁의 눈치를 몰래 살폈다.아니나 다를까 눈빛이 날카로운 게 당장이라도 사람을 칠 기세였다!다행히 그녀는 그런 그를 말렸다.길하늬의 얘기가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소은정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더러 계속 얘기하라고 했다.길하늬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다들 그녀의 말에 동의하자 저도 모르게 자신감이 생겼다.“전 예영 언니랑 생각이 달라요. 우린 지금 찍을 작품이 있고 자원이 있고 인맥이 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돈이 있잖아요. 우리처럼 돈이 많은 여자들이 결혼의 득실을 굳이 따져야 해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원없이 사랑하고 만나지 못하면 자신의 인생을 살면 되죠!”소은정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하늬 씨 말이 일리가 있어요.”추하나마저도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양예영은 몰래 피식 웃었다.우쭐하기는. 수혁 씨 싸늘한 눈빛 못 봤어?길하늬는 “난 당신의 애인이 되고 싶어요”라는 말을 박수혁에게 할 기세였다.추하나는 머릿속을 정리하며 끝에 앉은 유한슬을 쳐다보았다.“유한슬 씨는 어떻게 생각하세요?”유한슬은 순간 화들짝 놀랐다. 그러고는 쑥스러운지 대충 별거 아닌 얘기만 몇 마디 했다.곧이어 채태현이 흥분한 얼굴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이 자리에 계신 아름다운 여성분들, 결혼하셨든 이혼하셨든 전 다들 행복했으면 좋겠어요.”소은정은 입을 삐죽거렸다. 채태현의 행동을 보며 의아해했다.옆에 있던 양예영이 술잔을 들고 그와 건배했다.“고마워요, 채태현 씨. 채태현 씨처럼 다정하고 잘생긴 남자를 만난다면 저
길하늬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어졌고 두려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하지만 양예영은 우쭐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박수혁이 쉽게 넘어올 사람이었으면 그녀가 먼저 잡았을 것이고 길하늬가 끼어들 기회조차 없었을 것이다.그러나 다행히 그녀는 영리하게 계획을 바꾸었다!소은정은 무덤덤한 얼굴로 박수혁을 쳐다보며 싸늘하게 말했다.“결혼에 대한 생각을 얘기하라고 했지, 다른 사람의 생각을 평가하라고는 하지 않았어.”박수혁은 무서운 눈빛을 거두어들이고 몸을 옆으로 돌린 후 팔짱을 꼈다.“우리 결혼은 실패하지 않았어. 다만 나의 잘못으로 인해 잠깐 멈췄을 뿐이야. 네가 원한다면 우리 결혼 생활이 가장 완벽하다고 증명할 수 있어.”박수혁이 많은 사람 앞에서 진정성 있는 발언을 할 거라고는 다들 생각지 못했다.소은정은 차가운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무심하게 박수혁을 보았다.“호언장담하기는.”완벽하긴 개뿔?그녀는 이미 문어귀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길쭉길쭉한 뒷모습이 너무도 예뻤다.그런데 갑자기 박수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호언장담 아니야!”소은정은 잠깐 움찔하더니 속으로 그를 욕하고는 발걸음을 재촉했다.젠장, 제 정신이 아니네!방안의 분위기가 갑자기 어색해졌다. 하지만 박수혁이 난감해할까 봐 사람들은 저마다 고개를 숙여 못 들은 것처럼 자기 일을 했다!녹화 한번 하기 힘드네!도준호가 짠 내용에 따르면 내일 추하나의 법률 사무소가 첫 번째 사건을 의뢰 받게 된다. 미리 내용을 파악하긴 했지만 객관적으로 존재한 사건이긴 했다.하여 저녁에 제작진 모두가 태한그룹 산하의 5성급 호텔에 묵으면서 수정하게 된 것이다.그리고 이 호텔에 묵는 이유는 광고주의 요구가 그러했기 때문이다.유일한 광고주로서 씀씀이가 호탕한 박수혁은 자신이 투자한 돈으로 다른 호텔에 묵게 내버려 둘 수 없었다.그들을 잘 모시기 위하여 호텔 측에서는 미리 방을 비워두었다. 사장과 이한석이 상의를 거친 결과 박수혁은 여전히 로얄 스위트룸에, 다른 사람들은 그 아래층인 VIP 룸에 묵게하기
소은정은 시선을 아래로 내리뜨리며 몸을 옆으로 돌렸다. 팔을 구부린 채 옆으로 내민 그 모습은 고귀하면서도 나른해보였다. 박수혁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화를 내는 소은정의 모습이 그의 눈에는 너무도 귀여웠다!그는 재빨리 방 키를 갖다댔다. “띡”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소은정은 방 안으로 들어가 대충 훑어보고는 몰래 웃음을 지었다.태한그룹 산하의 이 호텔은 본 도시에서 그래도 대표적인 호텔이다. 정계와 상업계에서 진행하는 각종 행사도 이 호텔에서 하는데 개진할 점이 뭐가 있겠는가?SC그룹에서 인수하면 참 좋을 텐데!소은정은 자리에 선 채 아쉬움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아쉽군...미간을 찌푸리며 소은정의 반응을 살핀 박수혁은 살짝 의아했다.“마음에... 안 들어?”그는 손을 들어 비싼 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지금 가까운 옆도시의 국빈을 모시는 호텔로 가도 시간이 되나?소은정은 멈칫하더니 머리를 넘기며 말했다.“괜찮아.”그러고는 밖에 있는 자신의 짐을 들고 들어갔다.박수혁은 그녀의 안색을 자세히 살폈다. 그녀가 더 이상 불만족하는 기색이 보이지 않자 그제야 몰래 시름을 놓았다.평소 혼자 이곳에 머무를 때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보니 정말로 그저 그러한 호텔방 같았다!소은정이 방을 한 바퀴 다 둘러본 후에도 박수혁은 여전히 문앞에 서 있었다.순간 그녀의 얼굴이 차갑게 변했다.“왜? 여기서 쉬려고?”박수혁은 눈썹을 치켜세웠다. 온종일 바삐 돌아친 바람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벽에 기댄 채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래도 돼?”소은정은 여전히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그래.”그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가 좋아라 하기도 전에 그녀가 계속 말을 이었다.“네가 함께 자고 싶은 그 여자 연예인 셋을 불러줄까?”분위기가 순식간에 싸늘해졌다.박수혁의 낯빛도 차가워졌다. 그녀가 농담하는 것 같지 않자 매섭게 그녀를 노려보았다.그녀를 확 덮쳐버리고 싶었지만 결국 그러지 못했다!그녀와 싸우면 단 한
박수혁을 찾는다는 말에 도준호의 표정이 그제야 부드러워졌다.하긴, 여기서 지금 가장 높은 보스는 박수혁이니까 이혼한 여자 연예인들에게 치명적인 끌림이 있겠지.하하...아무래도 내가 생각이 많았네!도준호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카운터에 가서 물어보면 되잖아요?”그런데 길하늬의 표정이 어딘가 어색해보였다. 아무래도 카운터에 가봤는데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하고 돌아온 게 분명했다.“물어봤었는데 다들 박 사장님의 방에 대해서는 입을 꾹 다물더라고요.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도 사장님한테 물어본 거예요. 도 사장님, 박 사장님이랑 은정 씨는 다시 합칠 희망이 없어요. 우리 예능에 새로운 커플이 탄생하면 올해 가장 핫한 예능이 바로 우리 이 예능이 아니겠어요?”길하늬는 조심스럽게 도준호의 눈치를 살폈다. 자신의 프로그램이 핫해지는 걸 싫어하는 제작자가 어디 있겠는가?아니나 다를까 도준호의 두 눈이 반짝이더니 웃음도 점점 짙어졌다. 그는 별로 뜸들이지 않고 바로 입을 열었다.“박 사장님은 맨 꼭대기층 로얄 스위트룸에 계세요!”길하늬는 방긋 웃는 얼굴로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는 냉큼 뛰어올라갔다.그녀가 간 후 도준호가 문을 닫았다.그러자 뒤에 있던 감독이 이렇게 말했다.“이건 좀 아니지 않나요? 만약 박 사장님께서 아시면 가만두지 않을 것 같은데요?”하지만 도준호는 전혀 개의치 않은 표정이었다.“길하늬 씨가 박 사장님 방에 들어가면 제 손에 장을 지지겠어요!”박수혁이 어떤 사람인지 길하늬가 아직 잘 모르는 것 같으니 이참에 경험해보는 것도 나쁠 게 없다고 생각했다.그런데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누군가 또 문을 두드렸다.도준호와 감독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길하늬처럼 포기를 모르는 여자가 더 있나 보다.그는 몸매가 가장 섹시한 양예영일 것이라 생각했다!도준호는 옷매무시를 다듬고 문을 열었다. 그런데 문앞에 서 있는 사람을 확인한 순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바로 유한슬이었다!이건 좀 의외였다.유한슬도 길하늬처럼 섹시한 잠옷을 입고 있었
그러나 은정은 문을 열자마자 길하늬가 섹시한 블랙 잠옷 치마를 입고 넓은 어깨를 드러낸 것을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두 사람은 눈길이 마주치자 서로 깜짝 놀랐다. 특히 길하늬는 얼굴색이 새하얗고 정교한 화장으로도 당황하고 난감한 것을 감출 수 없었다. 어쨌든 그가 꼬신 것이 소은정의 전 남편이었기에 심리적으로는 여전히 본처를 본 것처럼 불안했던 것이다. 소은정은 순간에 평정을 되찾았다. 옷차림새를 보면 그녀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아래위를 훑어보는 그녀의 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웠고 길하늬는 땅에 난 틈이라도 찾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소... 소 사장님, 죄송합니다. 당신도 계시는 줄은 몰랐습니다.”소은정은 입술을 오므리고 옅은 미소를 짓더니 곧 문을 열었다. "박수혁은 이 방이 아닙니다. 여기는 내 방이에요. 들어오시겠어요?" 길하늬는 연신 고개를 저으며 뒤로 물러섰다. 물론 들어가지 않는다. 그녀는 지금 이미 현장에서 간통을 당했다는 느낌으로 부끄러움을 느꼈다. 만약 어느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더라도 그가 이렇게 두려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눈앞의 사람이 바로 소은정이다. SC 그룹을 전부 소유한 어린 공주님이다. 그녀를 대하는 도준호의 조심스럽고 알량스러운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일부러 사람을 찾아온 것도 아니고 녹화 도중 박 사장님이 기분을 잡치게 해서...”그는 소은정이 믿지 못할 가봐 횡설수설하며 설명하였다. 이 순간 그녀는 사실 놀라서 혼이 나갔다. 소은정은 그녀가 이렇게 애써 설명하는 것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이런 말을 해야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는 관심도 없다. 질투할까 봐 그런가? 그녀는 잠시 생각하더니 친절하게 휴대폰을 꺼냈다:"내가 박 사장에게 연락드릴게요. 직접 말씀하세요.”"제발..." 길하늬가 격동하여 말렸다. 얼굴이 창백해졌다. "갑자기... 내일 말해도 마찬가지예요. 소 사장님에게 폐를 끼쳤어요. 안녕히 주무세요."
“은정 씨...”소은정이 바로 해명했다.“여긴 제 방이에요. 못 믿겠으면 들어와서 확인해 보시든가요.”유한슬은 애써 미소로 실망감을 감추며 말했다.“아... 아니에요. 전...”지금 이 시간에 왜 외간 남자를 만나러 왔는지 핑계가 생각나지 않아서였다. 게다가 그 남자는 소은정의 전 남편이지 않는가!어색함과 긴장감에 유한슬은 얼굴이 빨개지고 애꿎은 입술만 깨물 뿐이었다.묘한 침묵이 이어지고 소은정은 유한슬을 힐끗 바라보았다.그래, 길하늬만 챙길 수는 없지.“박 대표님한테 연락드릴게요. 하실 말씀 있으면 직접 하세요.”전 와이프로서 전 남편의 연애 사업에 이토록 적극적이라니. 소은정 스스로도 자신의 너그러움에 감탄이 나올 지경이었다.하지만 소은정이 휴대폰을 꺼내려하자 유한슬은 더 당황하며 뒤로 물러섰다.“아, 아니에요. 아, 생각해 보니 아직 대사 숙지가 다 안 끝났네요.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안녕히 주무세요.”말을 마치고 돌아선 유한슬은 들고 있던 술병을 소은정에게 건넸다.“이 술... 저희 가문 비법대로 제가 직접 빚은 거예요. 맛 좀 보세요.”그렇게 술잔과 술병을 안겨주곤 유한슬은 도망치 듯 자리를 떴다.술병과 술잔을 번갈아 바라보던 소은정은 웃음을 터트렸다.박수혁, 돌싱이지만 여전히 잘 나가나 봐. 여자들이 끊이지 않네. 이혼 전에는 인기가 더 좋았겠지?이런저런 생각을 하든 소은정은 거세게 고개를 저었다.과거에 인기가 얼마나 많았든 지금 인기가 얼마나 많든 어차피 그녀와는 상관없는 일이다.방으로 들어간 소은정은 유한슬이 주고 간 술을 따라 한 모금 마셔보았다. 깊은 향이 목구멍을 타고 온몸으로 퍼졌다. 달콤함과 알코올의 쓴맛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술이었다.온갖 좋은 술들을 다 마셔본 소은정이지만 독특한 풍미에 고개를 끄덕였다.유한슬, 이 정도면 박수혁을 꼬실 수 있다고 생각한 거야?이때 소파에 올려둔 아이패드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뭐야? 갔어? 다들 박수혁이랑 뭐라도 해보려고 온 여자들이지? 쯧쯧, 남자 보
한유라의 전화를 받은 박수혁은 머리도 말리지 못하고 부랴부랴 방을 나섰다.하지만 벨을 눌러도 노크를 해봐도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그 소리를 전부 듣고 있던 한유라가 소리쳤다.“박수혁 씨 바보죠? 일어나서 문이라도 열 수 있는 정도면 제가 그쪽한테 전화를 했겠어요? 얼른 가서 스페이스 카드나 찾아요!”한유라의 퉁명스러운 말투에 박수혁은 왠지 울컥했지만 소은정을 구하는 게 먼저니 일단 꾹 참기로 했다.그리고 주머니에서 카드를 꺼낸 박수혁이 바로 방문을 열었다.“삐리릭.”한편, 수화기 저쪽에 있는 한유라는 미간을 찌푸렸다.스페이스 카드는 적어도 호텔 담당자한테 연락해야 하는 거 아닌가? 어떻게 1초만에 바로 문을 딴 거지? 이상하네...호텔 방문을 여니 묘한 술 냄새가 박수혁의 코끝을 자극했다.잔뜩 취한 채 소파 위에 쓰러진 소은정을 미간을 찌푸리고 바라보던 박수혁이 그녀의 어깨를 살짝 흔들었다.“은정아...”아이패드로 박수혁의 모습을 확인한 한유라는 아예 원격으로 박수혁을 조종하기 시작했다.“이게 다 박수혁 씨 때문인 거 알죠! 그 술 여자들이 박수혁 그쪽한테 먹이려는 거였다고요. 안에 뭘 탔는지 참. 우리 은정이 주량이 얼마나 좋은 줄 알아요? 이렇게 몇 잔에 쓰러질 애가 아니라고요!”한유라가 박수혁을 노려보며 소리쳤다.“약이요?”한유라의 말에 박수혁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박수혁이 관심을 보이자 한유라는 방금 전 일어났던 자초지종을 전부 설명하기 시작했다.너 때문에 우리 은정이가 무슨 꼴을 당했는지 알아!“그 여자들 아예 다 벗다시피 하고 박수혁 당신을 만나러 왔다고요! 뭘 착각했는지 은정이 방으로 오긴 했지만. 그쪽이랑 뭐 어떻게 해 볼 생각으로 술에 약도 탄 거 아니겠어요?”이 기회에 제대로 자빠뜨리려는 계획이었겠지.한유라의 설명에 박수혁의 숨이 가빠지고 검은 눈동자가 일렁거리기 시작했다.“일단 얼른 마신 술부터 다 토하게 하고 의사라도 불러요. 그리고 그 여자들도 혼내주고요. 아, 그렇다고 은정이 몸에
박수혁은 마구 움직이는 그녀의 손을 지그시 누르고 계속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소은정... 자기야... 아가야..." 소은정은 짜증스레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머릿속에는 줄곧 파리 소리가 맴돌아 그야말로 죽을 지경이었다. 그녀는 단지 자고 싶을 뿐이다! 소호랑도 다른 사람의 잠을 방해하는 것은 하늘에서 벼락을 맞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데 어째 눈앞에 파리들은 뻔뻔스럽게 마구 날아다니며 짖고 있는가? 그녀의 기상 후 내는 짜증은 얼마나 심한가! 소은정은 더는 참을 수 없어 애써 무거운 눈꺼풀을 쳐들었다. 정말 평생 최대의 힘을 다 썼다!흐릿한 가운데 그 영준하고 완벽한 이목구비가 눈이 익었다. 누구세요? 박수혁인가? 아니면 채태현인가? 의식이 흐리멍덩한 그녀는 독경처럼 띄엄띄엄 들려오는 그의 소리를 듣고 있자니 짜증이 날 지경이었다. 그녀는 갑자기 손을 들어 힘껏 긁더니 입을 닥쳐라고 말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사람은 긁힌 후에 입을 다물고 말았다. 박수혁은 안색이 어두워졌는데, 눈빛은 그녀를 바라보았는데, 술을 마셨는데도 이토록 화를 내었단 말인가? 감히 손까지 대니? 그는 자신의 목에 난 상처를 쓰다듬어 줄 틈도 없이 따끔따끔한 고통만 느꼈다. 됐어, 참자! 그녀가 토하려는 기색이나 열이 나거나 하는 등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그는 다시 그녀를 안아 침실 침대에 눕혔다. 그러나 박수혁은 소홀히 대하지 못하고 즉시 이한석을 보내 그 술병과 술잔을 가지고 밤새도록 화학실험을 하게 하였다. 결과를 얻지 못하면 그는 시종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또 호텔 안의 의사를 불러와서 자세히 검사하게 했다. 의사는 대충대충 하지 못하고 진지하게 검사를 마친 후에야 박수혁에게 회답하였다. "소 아가씨가 과음한 것 같습니다. 특별한 건 없습니다. 꿀물을 먹이면 됩니다." 박수혁은 미간을 찌푸리며 "알았소, 나가 보게 …"라고 하였다.의사가 떠나자 박수혁은 말없이 한쪽에 앉아서 침대에서 혼수상태에 빠진 소은정을 바라보았다. 이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