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커플 식당은 강서진의 가게 위층에 개업하였다. 강서진은 박수혁을 끌고 와서 시찰을 온 것이었다. 종업원은 그들에게 여기는 커플 식당이라고 세 번이나 얘기했지만, 강서진은 박수혁의 팔짱을 끼면서 종업원에게 말했다. “저희 커플처럼 안 보여요?”“박대표님과 강대표님… 행복하세요…”그들의 눈앞에 한 쌍의 커플이 다가왔다. 이씨 그룹의 도련님 이태성이었다. 옆에 있는 여자는 요즘 핫한 인플루언서였다. 그녀의 턱은 칼처럼 날카로웠고 소처럼 커다란 눈을 한 여자는 이태성의 팔짱을 끼고 착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강서진은 놀란 어투로 물었다. “여긴 어쩐 일이야?”“세리가 여기 새로 생긴 곳인데 괜찮다고 해서 와 봤어. 근데 여기 커플 식당이라고 하지 않았나?”이태성은 다 이해한다는 듯이 몰래 웃음을 지었다. 어릴 적부터 봐왔던 사이인지라 재밌다는 듯 그들을 보았고 박수혁은 화난 눈빛으로 강서진을 째려보았다. 이태성은 박수혁과 합석하였다. 박수혁은 맞은편에 앉은 세리를 보았다. 칼처럼 날카롭게 떨어지는 턱을 보고 있자니 입맛이 돌지 않았지만, 이태성의 앞 인지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소은정 저 여자 진짜 여우 아니야?”이태성이 턱을 만지작거리면서 소은정을 보며 말했다. 음악 소리가 점점 커지자 성강희는 소은정의 손을 끌고 무대로 나갔다. “여기까지 왔는데 춤 실력 한 번 보여줘야지? 스테이지가 어떤지도 한번 체험해보고.”소은정이 대답하기도 전에 음악이 흘러나오고 이 자리에서 성강희를 거절한다면 대표님의 체면도 있기에 마지못해 춤을 추기 시작하였다. 음악 소리가 신나게 울려 퍼지기 시작하였고 둘은 잠시 스텝을 맞추더니 이내 합이 맞았고 스테이지의 센터로 가 둘만의 무대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모습에 주위 사람들도 멈춰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노래가 끝날 때쯤 성강희가 갑자기 소은정을 자신의 품속으로 끌어들였고 소은정은 스텝이 꼬여져 성강희의 품속에 폭 안겨버렸다. 성강희가 고개를 내려 소은정을 바라보았고 뒤편에 있는 사람들이 보
그 말을 듣고 하얗게 질린 이태승을 놔둔 채 박수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식당을 나섰다. 강서진이 부랴부랴 박수혁을 뒤쫓아 갔다. 분명히 소은정 탓일 것이다. “안색이 왜 이렇게 안 좋아? 이태승이 좀 직설적인 편이잖아. 너도 너무 마음에 두지 마.”박수혁도 자신이 예민하게 반응 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자신의 마음을 컨트롤 할 수가 없는 것에 대해 더욱더 화가 났다. 이혼 후 부쩍 결혼생활에서 알았어야 했던 소은정에 관한 일들이 박수혁의 귀에 들어오고 있었다. 소은정이 자신을 미워하고 이혼까지 다다른 것이 이런 원인 때문이었을까?박수혁의 마음이 꽉 막힌 듯 불편하였다. 밖에 나가 찬바람을 맞으니 머리가 조금이나마 정리가 되는 듯하였다. 담배를 꺼내 들어 불을 붙이면서 말했다. “알고 있어. 들어가서 전해줘, 이태승에게 화난 것이 아니라고.”박수혁은 자기 자신에게 화난 것이다. 강서진은 다행이라는 듯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그래. 근데 너 지금 혹시 소은정을 못 잊은 거야?”박수혁은 그를 한번 째려보더니 차갑게 눈길을 돌렸다. 굳이 대답할 필요가 없었다고 생각했다. “너네 식당이랑 비교도 안 되던데, 가게 문 닫지, 그래?”강서진의 얼굴색이 변하더니 말했다.“형, 진짜 너무 한다!”……..거성 그룹의 창립 주년 파티. 사회 각층의 거물들과 정치인사들이 귀족같은 느낌을 풍기며 파티장으로 모였다. 소은정이 알아 본 바에 의하면 거성그룹은 창립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뿌리가 깊지 않았다. 지난 몇 년 사이에 이 정도 규모를 갖춘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었다. 거성 그룹의 핵심은 “과학과 인공지능과 생활” 이였고 코어 기술도 다른 나라들을 앞선 상태였다. 만약 인공지능 프로젝트를 SC그룹이 따낸다면 SC그룹의 발전에 새로운 길을 열어 줄 것이다.소은정도 만반의 준비를 하고 파티장으로 떠났다. 파티장안에서 저마다 얼굴을 트느라 바쁜 와중에 파티장으로 나타난 한 명의 여자와 한 명의 남자에게 시선이 쏠렸다. 남자는 SC그룹의 대표 소은
박예리의 어두운 안색을 본 친구들은 입을 닫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연회장 2층은 그나마 조용한 분위기였다. 2층에서 젊고 최고급 원단의 검은 셔츠를 입은 남자가 의자에서 일어나 소은호와 소은정을 반겼다. 두 사람은 가볍게 악수를 한 후 소은호가 웃으면서 말했다. “오랜만이에요. 임대표님.”임춘식은 입꼬리를 슥 올리면서 말했다. “오랜만입니다. 소대표님.”소은호가 소은정을 소개하기도 전에 임춘식은 소은정에게 눈길을 돌려 칭찬하기 시작했다. “소은정씨 정말 아름다우시네요. 이미 능력이 좋다고 소문이 자자하던데 제가 식사 자리를 미루고 연회에 초대한 것을 용서해주세요. “소은정은 웃으면서 말했다. “아니에요. 거성그룹 창립 5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앞으로의 매 해마다 저희와 쭉 함께했으면 좋겠어요. 임춘식은 웃으면서 말했다.“소대표님, 소은정씨와 잠시 따로 얘기를 나눠도 될까요? 우리 회사 계약 담당자는 어차피 소은정씨 아니겠습니까.”“그러세요.”소은호는 예상했었던 일이었다. 괜찮다는 눈빛을 소은정에게 보낸 후 몸을 돌려 1층 연회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2층의 난간에 선 임춘식과 소은정은 서로 마주 보면서 서있었고 환한 조명이 그들의 외모를 더욱더 빛냈다. “소은정씨가 왜 이렇게 저희 회사와의 계약에 자신만만한지 궁금한데요?”소은정은 여유롭게 술잔을 들어 빙글빙글 돌리고 있었다. “임대표님, 저희는 최고의 조건을 거성그룹에 제시했습니다. 대표님도 이미 보셨을 거라 믿겠습니다. 많은 투자자들이 있지만 SC그룹이 제일 알맞은 그룹일 겁니다. 대표님은 기술이 있으시고 저는 돈이 있으니깐요.SC그룹은 거성그룹이 5년 안에 이윤이 생기는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닌 장원한 저희의 관계에 투자하는 겁니다. 10년 이후면 전 세계에서 제일 발전한 인공지능 기술은 저희한테 달려있어요.”더 큰 투자액을 제시한 그룹은 소은정보다 적은 이익을 제기하고 이익을 많이 양도하는 회사는 투자액이 적었다. 임춘식은 사업가이지만 기술 연구원이기도 하여 제
박수혁이 이미 거성그룹의 주주까지 되었다니! 박수혁이 이미 인공지능 업계에 투자하고 있었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다. 임춘식이 아니라면 그가 투자했다는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 임춘식이 태한그룹과의 비즈니스를 말한 이상 그도 SC그룹과 계약을 맺고 싶었던 것일 것이다. 박수혁의 동참이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공과 사는 분간해야 하니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소은정은 쓴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태한그룹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계약을 할 수 있으면서 왜 굳이 제3의 회사까지 끌어들이시는 거죠?”그녀는 박수혁을 한 번 째려보면서 말했다. “새로운 업계인지라… 태한 그룹 혼자서 리스크를 감당할 필요는 없죠.”남자의 저음의 목소리로 말했다. “거성그룹을 선택하신다면 SC그룹도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박수혁은 섬섬옥수 같은 손으로 술잔을 들어 임춘식의 잔에 부딪힌 후 소은정을 보았다.별다른 방도가 없었던 소은정은 쓸쓸한 웃음을 짓더니 입술을 깨물고 천천히 손을 내뻗어 유리잔을 부딪쳤다. 기분이 상해도 어쩔 수가 없었다. 마음속에 풀리지 않은 응어리가 맺힌 느낌이었다. 임춘식은 다행이라는 듯 한숨을 쉬었고 두 사람의 서먹한 분위기를 풀려고 노력했다. “두 분이 저희 프로젝트 참여 기념으로 함께 춤이나 추시죠?”박수혁은 미간을 찌푸렸고 소은정은 머리를 귀 뒤로 넘기면서 웃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춤을 못 춰서요.”말을 마친 그녀는 하이힐을 또각거리며 몸을 돌려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임춘식은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했다. “그냥 춤 한번 추라고 하는 건데 저렇게 거절해 버리다니. 이후 저희의 계약이 쉽지는 않겠군요. 이혼하고 이런 대접을 받는 사람은 박수혁 당신뿐일 거에요.”박수혁의 낯빛이 어두워졌고 뒤돌아 가는 소은정의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춤을 추지 못한다고?아 성강희와 식당에서 추었던 춤은? 내가 장님이라도 된 건가?식당의 일을 생각하고 헛웃음을 짓던 찰나에 마침 이태성이 했던 말이 생각이 났고 점차 화가 수그러들고 마음이
자신의 이름을 들은 소은정은 놀래서 그 자리에 멈춰 있었다. 박수혁과 춤을 추기가 죽기보다 싫었지만 모든 사람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쏠려져 있었다. 이혼 후 두 사람이 다시 한 화면에 담긴다는 자체만으로도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임춘식이 이런 일을 시키리라는 것은 박수혁도 생각지 못했다. 소은정이 자리에서 머뭇거릴 때 박수혁은 소은정 앞에 다가왔고 허리를 숙여 소은정에게 함께 출 것을 요청했다. 거절을 할 수 없었던 소은정은 파트너십에 나쁜 영향을 끼치지 않기 위하여 어쩔 수 없이 함께 무대로 나섰다. 소은호는 마음 아픈 눈길로 자기 여동생을 보았다. 소은정은 그를 향해 웃어 보였고 손을 내뻗어 박수혁의 손 위에 올렸다. 주위 사람들은 그 둘을 위해 양옆으로 길을 터주었고 소은정은 자신의 드레스를 살짝 올리고 고개를 들어 무대 앞으로 걸었다. 박수혁은 결혼 3년 동안 결혼식도 올리지 않았고 소은정의 손을 잡아본 적이 없다는 것이 떠올라 마음이 아파졌다. 순간 소은정의 손가락이 눈에 들어왔고 가느다란 손가락과 하얀 손은 하나의 예술 작품이 그의 마음속에 깊이 들어왔다. 밴드가 연주를 시작하고 신나는 음악이 파티장에 울려 퍼졌다. 소은정은 손을 박수혁의 어깨에 올려놓는 순간 둘의 눈이 마주쳤고 박수혁은 그윽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고 손으로 가느다란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소은정은 순간 놀래서 멈칫했다. 그의 손이 자신의 몸에 닿는 것이 몹시나 어색했다. 결혼 3년간 아무런 스킨십이 없었던 둘은 이혼 후 이런 일이 생겨날 줄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소은정은 몇 초간 머뭇거리더니 이내 덤덤함을 유지하고 얼굴에는 자본주의 미소를 머금었다. 당당하고 익숙한 춤사위는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았고 밴드의 큰 음악 소리가 그들의 목소리를 가렸다. “춤을 못 춘다고?”남자는 서늘하고 낮은 목소리로 비꼬듯이 말했다. 소은정은 눈썹을 찡그리더니 말했다. “사람에 따라 못 춰.”소은정은 싸늘하게 박수혁을 대했다. 박수혁의 눈동자가 알아
불빛이 반짝이는 밤, 소은정은 와인잔을 가볍게 흔들며 2층 난간에서 섰다. 그녀의 시야에 가식적인 얼굴로 형식적인 안부를 주고받는 사람들의 얼굴들이 들어왔다.이때 저쪽에서 걸어오던 박수혁이 순간 고개를 돌려 소은정의 차가운 눈빛과 마주쳤다. 소은정은 불편함을 억지로 억누르며 시선을 피했다.방금 전, 두 사람이 무대에서 키스를 할 뻔한 순간, 모든 사람들은 큰 충격에 빠졌었다. 누가 먼저 스텝이 흩트려졌는지는 상관없었다. 그저 과거 부부사이었던 두 사람 사이의 친밀한 스킨십에 관심을 가질 뿐이었다.두 사람이 무슨 반응을 보였어도 사람들의 수군거림은 피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소은정은 고개를 살짝 돌렸다. 마침 음악이 멈추고 그녀는 바로 그의 품에서 벗어나 박수혁을 차가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무런 미련 없이 돌아섰다...한편, 강서진은 옆에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 겨우 그들을 따돌린 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박수혁을 힐끗 바라보았다. 차갑지만 아름다운 박수혁의 얼굴을 본 순간, 강서진 방금 전 상황을 떠올리며 물었다.“아까 춤출 때, 형 일부러 그런 거지?”박수혁은 어려서부터 엘리트 교육을 완벽하게 받으며 자랐다. 사교계에서 춤 수업은 기본인데 스탭이 흐트러질 리가.설마 일부러 그런 건가?강서진의 질문에 박수혁은 그저 차갑게 한 마디 던졌다.“아니야.”“그럼 다행이고. 그 여자한테 관심 가지지 마. 형이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면 그 여자가 일부러 그런 거겠지. 역시 보통이 아니라니까!”박수혁의 말이라면 무조건 신뢰하는 강서진은 방금 전까지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던 의심을 전부 지워버렸다.파티장 2층.소은호는 다른 곳에서 사람들을 상대하고 있고 소은정은 지루한 얼굴로 여기저기 훑어보고 있었다. 이때, 문 어귀에서 누군가 그녀를 향해 손을 저었다. 그녀도 미소를 지으며 손을 저었다. 성강희가 그녀를 향해 다가왔다.“강희 왔어?”성강희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나간에 기댔다.“뭐 네가 왔다고 하니까 온 거지 뭐. 난
박예리의 말에 깜짝 놀란 성강희도 흠칫 놀랐지만 일단은 이 여자를 따돌리는 게 먼저니 바로 반박했다.“네 오빠와 키스? 그쪽이야말로 꿈 깨시지? 은정이가 바보도 아니고 그딴 찌질이한테 두 번이나 빠질까 봐?”“지금 내가 거짓말을 한다는 거야? 사람들한테 물어봐. 다들 두 눈으로 똑똑히 봤으니까.”박예리가 변명했다. 그녀 뒤에 서 있던 친구들이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성강희는 개의치 않는다는 어깨를 으쓱했다.“사람들 누구? 그쪽이 데려온 이 친구들 말하는 건가? 짜고 치는 수작일지 내가 알게 뭐야?”이에 박예리는 얼굴이 울그락 푸르락해지더니 소리쳤다.“어쨌든 내 말은 진짜야. 소은정, 너도 인정해. 우리 오빠가 좋아하는 건 민영 언니야. 우리 집안에서 넌 가정부자 혈액 창고였다고. 그래. 너 같은 건 또 어떻게든 남자한테 빌붙어 살아가겠지. 하지만 우리 집안은 안 돼. 그러니까 다른 데 알아보도록 해.”박예리는 서민영이 소은정에게 어떤 존재인지 잘 알고 있었기에 일부러 언급해 소은정을 자극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예상과 달리 소은정은 여전히 여유만만인 모습이었다. 소은정은 입꼬리를 씨익 올리더니 뒤에 있는 친구들을 바라보며 말했다.“그쪽 오빠와 서민영이 불륜 관계였다는 건 이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이에요. 굳이 여기서 다시 확인시켜줄 필요는 없어요. 아무리 멍청해도 그 잘난 집안 얼굴에 먹칠하는 일은 하지 않는 게 좋지 않겠어요?”소은정의 조롱에 박예리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이성을 잃은 박예리가 소은정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비난을 이어갔다.“이 여자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지? 얘가 입는 거 먹는 거, 다 몸 팔아서 사는 거야. 뭐 창녀가 별건가? 남자한테 빌붙어서 돈을 뜯어내면 그게 창녀야.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 되나? 그렇게 입으면 정말 네가 재벌집 아가씨라도 될 줄 알았어?”그녀의 말에 분위기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박예리의 목소리에 사람들이 하나둘씩 의아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소은정은 살짝 미간
박수혁은 소은정의 얼굴을 차마 쳐다볼 수 없었다. 그는 바로 박예리에게 다가갔다.“네가 한 말 전부 다 사실이야?”어찌나 화가 났는지 얼굴의 핏줄이 터져 나올 듯 팽창한 모습이었다. 이렇게 화가 난 박수혁의 모습을 처음 보는 박예리는 그저 입술을 꽉 깨물며 침묵할 뿐이었다.그녀는 어려서부터 부모님과 함께 자랐지만 박수혁은 어린 나이에 해외로 유학을 떠났기에 두 사람은 남매임에도 조금 어색한 사이였다. 그리고 귀국한 뒤 바로 뛰어난 사업수단으로 태한 그룹의 시가를 몇 배나 성장시킨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박예리는 그런 오빠가 부러우면서도 무서웠다.“말하라고!”망설이는 박예리의 모습에 박수혁은 바로 다그치기 시작했다.이때, 청량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소리의 정체는 바로 소은정이었다.“다 진짜야.”본인이 인정하자 그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빛도 뭔가 묘해졌다. 이렇게 화려한 그녀가 그런 비참한 과거를 가지고 있다니.박예리의 폭로에 불륜으로 인한 이혼이라며 인터넷에서 떠돌던 찌라시도 어느 정도 사실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누군가는 역시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 일이 없다며 수군댔다.재벌가의 며느리로 사는 것도 참 어려운 일이구나...한편, 소은정이 담담한 표정으로 인정한 순간, 박수혁은 둔기로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의 친구뿐만이 아니었다. 가족들까지 그녀를 무시하고 괴롭혔었는데 남편이라는 작자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니.3년 동안의 결혼 생활 중, 박수혁이 신혼집을 찾았던 일은 손에 꼽을 지경이었고 그마저도 서민영의 상태에 대해 말해주기 위한 게 전부였다. 얼굴이라도 보며 말하면 더 고분고분 헌혈을 해주지 않아서 싶어서였다.그때마다 그는 친절하게 용돈은 부족하지 않냐고 물으며 카드를 쥐여주고는 자신이 나름 괜찮은 남편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 모든 건 그의 착각이자 오만이었다.속상함, 미안함, 죄책감... 수많은 감정들이 밀려오며 더 이상 소은정의 얼굴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그는 뻣뻣하게 굳은 상태로 한참을 가만히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