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은정은 절망감 속에서 마지막 희망을 걸고 다시 숲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비행기에 탑승하기 전 편한 플랫 슈즈로 갈아 신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숲 속의 나무들은 높이는 물론 높았으며 사람 몇 명이 둘러쌀 정도로 굵직하고 우람했다. 난생 처음 보는 품종이었다.터벅터벅 걷는 와중 나뭇가지에 쓸려 피가 맺혔으나 지금은 작은 상처 따위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목숨을 잃을 위기였으니, 당연했다.“소호랑, 근처에 과일이라도 못 찾겠어?”소은정의 목소리는 볼품없이 갈라져 있었다. 이에 소호랑이 실망 가득한 눈빛을 하며 고개를 저었다.무거운 발걸음으로 계속해서 걷자니 온몸이 피곤했다. 빙빙 도는 머리에 그만 발을 헛디뎌 진흙탕 위로 넘어지고 말았다. 안 그래도 어지러운 머리에 심한 충격이 더해져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그런 소은정에 소호랑은 코트 주머니에서 나와 그녀의 주변을 빙빙 돌며 에워쌌다. 그 때, 인기척을 감지한 소호랑이 재빨리 다시 코트 주머니로 몸을 숨겼다.“사람이 있어요…….”소호랑의 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려 했으나 제 몸은 이미 통제불능이었다. 재잘거리는 말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17개 국의 언어를 익힌 그녀였으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대체 어느 나라 사람들 인거지?그러나 상상 속의 구출과는 많이 달랐다.왜 이들은 자신의 사지를 시체 마냥 잡아 끌고 가는 거지?소은정은 예전에 봤던 사진을 떠올렸다. 뚱뚱한 돼지 한 마리가 자신과 같은 모습으로 붙잡혀 그대로 식당에 끌려갔다는….만약 박수혁이 보낸 사람이라면 아무래도 그에게 감사를 전해야 하겠지만, 제 형제가 보낸 사람이라면 바로 컴플레인 넣어야겠다, 고 생각했다. 프로답지 않은 투박한 동작들은 정말 최악이었다….이 굴욕적인 시간이 꽤 오래 흘렀음에도 이들의 걸음은 멈출 생각이 없었다. 정신없이 온 몸이 흔들려 안 그래도 고단하던 소은정은 점차 의식을 잃어갔다.……그리고 다시 몇 천리 밖의 해역.박수혁이 불러들인 헬리콥터와 SC그룹에서 불러들인
박수혁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소은해는 아랑곳 않고 보드카를 두어 모금 더 들이켠 뒤 입을 열었다.“은정이가 유럽으로 유학 갔을 때, 큰 형은 한 달에 서른 번을 찾아가고 싶어 했어. 둘째 형은 연구 장려금을 전부 줬었지. 나도 그 시간 동안은 유럽 촬영만 하겠다고 억지 부려가며 일 했었어…. 그게 우리랑 가장 멀리 떨어진 것이라 생각했는데, 너랑 결혼하고서 3년을 우리랑 연락을 단절했어. 우리보다도 널 중요하게 여긴 거라고. 근데 이런 결과라니,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소은해는 흐르는 눈물을 걷잡을 수가 없었다. 남은 술을 모조리 들이켜는 그였다. 고요한 공기는 오히려 이들의 숨을 옥죄여왔다.박수혁은 누군가 자신의 심장을 갈기갈기 찢는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 이미 찢겨 나가 떨어진 것처럼, 텅 빈 공허감이 느껴졌다.그 독한 술을 전부 들이켜고서야 소은해는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그도 이 일이 전부 박수혁의 탓이 아님을 알고 있다. 그 비행기를 박수혁이 사주했다는 것이 아님은 여실히 알고 있었지만, 그가 아니었다면 소은정이 그 비행기를 타지 않았을 것은 명확했다.비행기를 타지 않았더라면, 제 여동생은 마음껏 돈을 쓰고, 여행을 다니며, 저택도 사고, 섬도 사고…. 살아있을 수 있었을 텐데.벌떡 몸을 일으킨 소은해의 옷자락이 찬 바닷바람에 휘날렸다. 그의 손에서 던져진 빈 보드카 병이 바다로 빠져 저 깊이 사라졌다.“박수혁, 그만 가. 용서고 뭐고 다 늦었어. 네 일상으로 돌아가.”“못 가. 만약이라도 살아있으면…….”처참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박수혁에 소은해는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박수혁 넌, 은정이를 전혀 몰라…. 은정이는 수영할 줄 모른다고…….” 만약이란 건, 기대할 수도 없었다. 끝없이 깊은 바다는 진작 그녀를 집어 삼켰을 것이다. 소은해의 말에 박수혁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왔다. 수영을 못하는 사람이 바다에 빠졌다. 끝이 어떨지는 모두의 예상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그는
방금의 사고를, 이들은 박수혁의 고의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대표님…! 괜찮으세요?!”박수혁은 눈을 감은 채 미동없이 의자에 기대 있었다. 이한석은 그가 숨을 쉬는지 확실히 확인 하고서야 안심할 수 있었고, 곧 소은해에게 감사를 전했다.“감사합니다 도련님, 대표님께서 몇 일째 잠을 못 주무셔서…….”소은해는 복잡한 표정을 띈 채 이한석을 흘끗 쳐다보았다.“데리고 돌아가세요. 여기는 남은 사람들이 알아서 할 테니까….”이한석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으나 깨어난 박수혁에게서 어떤 화살이 돌아올지 두려웠다. 소은해는 곧바로 지상에 연락을 취했고 전화를 끊은 뒤 그에게 다시금 질문했다.“…무슨 할 말 있으십니까.”이한석은 생각을 거듭한 끝에 입을 열었다.“방금 하신 말…. 나쁜 뜻으로 하신 말이 아니신 거 압니다. 대표님 스스로 물러서게 하고 싶으셨겠죠….”소은해는 이한석의 말에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었다. 좋은 뜻은 아니었으나, 정말 악심이었던 것도 아니었다.“두 분 혼인 후에 의도치 않은 오해로 아가씨께 상처를 입혔지만…. 만회하려고 많이 노력하셨습니다. 대표님 진심은 거짓이 아니고, 후회도, 감정도 진짜였다는 것 알아주세요….”이한석은 제 발언이 주제 넘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았다. 소은정이 이 말을 들었다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소은해는 몇 초간 침묵을 지켰고, 곧바로 도착한 헬리콥터에 주저 않고 몸을 실었다. 그들과 한참 떨어진 그제서야 하늘을 올려다본 소은해는 생각했다. 너무 많은 일이 벌어졌으나, 소은정와 박수혁이 천생연분이라 말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어찌됐건…. 박수혁이 소은정에게 진심이 있던 없던, 소은정이 돌아올 수 없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스치는 바닷바람이 얼굴을 할퀴는 것만 같았다. 그의 반짝이던 눈동자는 암담함으로 물들어 있었다.……천천히 눈을 뜬 소은정이 처음 눈에 담은 것은 습기 어린 나뭇잎들이었다. 조금씩 정신이 돌아오자 그제야 자신의 온몸이 무언가에 묶여 있음을 알아 차
이 망할 섬에서 소은정은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만 싶었다. 그러나 별 다른 꼼수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덩치가 제일 큰 야인이 무어라 동작으로 지시하기 시작했다. 손가락으로 불을 가리키더니 곧이어 자신의 입가에 음식을 먹는 손짓을 해 보였다.통역 따위가 필요한가? 저들은 자신을 잡아먹으려는 것이 틀림없었다. 정말, 이보다 더 재수없는 죽음이 있을까?소은정은 제 앞에 바짝 다가선 야인의 눈을 바라보며 우는 얼굴보다도 못생긴 미소를 지어보였다.“먼저 실례 좀 할게요…. 그럼 안녕히…….”남은 힘을 쥐어짜내 벌떡 일어선 소은정은 냅다 뜀박질을 시작했으나 우스꽝스럽게도 이리저리 엮인 나무줄기에 걸려 넘어져 버리고 말았다. 어지러움과 미미했던 열은 잠을 자니 그나마 괜찮았는데, 또 이렇게 크게 넘어지니 정말이지 머리가 핑핑 돌았다.그렇게 한참을 엎어져 있던 소은정에게로 다른 야인이 접근해왔다. 그는 자신 옆에 있던 신발을 신은 또 다른 야인에게 말을 걸며 대화를 이어갔다.근데…. 잠깐, 제 시선 끝에 닿는 야인들의 신발은 흙으로 싸여 희미했으나 분명 신발끈이었다. 순간 소은정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어디서 난 힘인지 잽싸게 야인의 신발을 잡아 당겨댔다. 이 큰 덩치를 흔들 힘이 어디서 난 것인지 의문이었다.기어이 신발의 상표를 알아내는 것에 성공했다. 라스포티바의 운동화였다. 아웃도어 스포츠 장비로 세계에서 알아주는 브랜드였다.정말 자신과 같은 처지의 누군가가 이 섬에 있는 것일까?소은정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야인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탁하긴 커녕 빛나는 눈동자를 지닌 야인은 그녀에게 윙크까지 해 보였다.“당신……!”야인이 아니였어!그녀가 무어라 말을 끝 마치기도 전에 누군가가 제 팔을 세게 잡아당기며 불구덩이 쪽으로 이끌었다. 소은정은 자신이 박물관 표본에 있어야할 야만인들에게 잡아 먹혀 생을 마감할 것이라고는 꿈에서도 몰랐다.“그, 그만…. 살려주세요 제발…….”점점 더 많은 야인들이 그녀를 둘러쌌고, 방금 저에게
소은정은 입과 코를 틀어막고 금방이라도 피를 쏟을 듯 기침을 해댔다. 그제야 죽은 척 주머니에서 나오지 않던 소호랑이 그녀의 옷자락을 살살 긁어왔다.“엄마. 제 기록에는 지금 이게 일종의 제사라고 검색되는데요…!”그 소리에 덜컹, 하고 심장이 내려앉았다.나 정말 이미 죽은 거야?“소호랑, 넌 호랑이잖아…. 이 사람들 덮칠 수 없겠어?”소호랑은 몇 초 간 입을 꾹 다물더니 겨우 입을 열었다.“암묵적으로 20% 정도 공격성은 필수로 탑재되어 있다 했지만…. 난 새로 개조됐어요. 내 공격성은 제로예요! 직접 뛰어들어보세요…….”“…….”이 조그만 호랑이에게 된통 당한 소은정이었다.다시금 소호랑에게 무어라 말을 하려는데 제 주변에서 시끌거리던 이들의 움직임이 한 순간에 멎어 들었다. 표정 역시 단번에 엄숙 해졌다.삽시간에 조용해진 주변에 소은정은 소호랑에게 한 마디도 전할 수가 없었다. 소호랑의 존재를 저들에게 알려서는 안 됐다. 자신에게 남은 유일한 대화 상대였……. 는데, 이 호랑이가 없어졌다.장작이 타는 탁탁 소리만 울려 퍼질 뿐 음산함이 가득했다. 이 때, 가장 두목으로 보이는 자가 몇 걸음 뒤로 물러섰고 동그랗게 몰려 있던 인파가 길을 텄다.길 한 가운데로 얼굴이 주름으로 가득한 연로한 여인이 나뭇잎을 손바닥에 올린 채 그녀에게로 다가왔다. 곧 여인은 소은정의 눈을 바라보며 무어라 말을 내뱉었으나, 알아들었으리가 만무하였다.그런 소은정의 속마음을 알아차린 것인지 여인은 땅 위의 도구를 한 번 가리키더니 자신의 입을 한 번 가리켰다. 음식 이라는 뜻이겠지….곧 여인은 나무 줄기로 꽉 묶였던 소은정의 손목을 풀어 주고는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여인이 자리를 뜨자 다시금 소은정을 둥글게 에워쌌다.소은정이 고개를 숙여 바라본 곳에는 여인이 두고 간 나뭇잎 위 고기와 말린 생선, 과일 몇가지들이 있었다. 몇일 간 쫄쫄 굶은 소은정은 꿀꺽 침을 삼킨 뒤 위생 따위는 잊은 채 음식을 입에 쑤셔 넣었다.약이
소은정은 그를 의식하자마자 왜 인지 안도의 한숨이 푸욱 나왔다.큰 비가 밤하늘을 쓸어내려 어두침침한 바다는 차갑기까지 했다. 오들오들 떨 수밖에 없었다. 뼛속까지 시려웠다.뜀박질을 멈추고 숨을 좀 돌리려나 싶었는데, 뒤에서 수많은 발자국 소리가 쫓아왔다. 새카만 어둠 속 선명한 소리에 소은정과 가짜 야인이 번뜩 눈을 마주하였다. 이내 둘은 약속이라도 한 듯 또 다시 내달리기 시작했다.차가운 비 바람이 얼굴에 몰아치니 칼날처럼 너무나 따가웠다. 이 환경에서 뛰고 구르고 기어 다니고 있다니….야인들은 끝까지 그들을 쫓으며 누군가는 소은정에게 나뭇가지 등을 던지기도 하였다. 이미 여러 번 맞은 소은정은 이를 악 물고 달리기를 멈출 수 없었다. 나뭇가지과 가시덤불에 손이 몇 번이고 긁혔으나 무감각해진 듯 아픈 줄도 몰랐다.제 옆의 가짜 야인은 동작이 매우 재빠르고 민첩했다. 그런 그를 필사적으로 따라붙으며 달렸다. 야인 무리의 소리는 점점 가까워져 왔다. 잡히면 죽는다는 생각으로 무작정 뛰었다.그 때, 주변을 살필 수 없던 소은정이 굵고 튼튼한 나무 줄기에 걸려 크게 넘어지고 말았다. 땅바닥에 온몸으로 넘어진 그녀가 참지 못하고 얕은 비명을 질렀다.“괜찮……!”사는 게 우선이었으니, 다시 도망치기 위해 몸을 일으켜 한걸음 내딛는 순간이었다. 몸이 순식간에 쑥 하고 땅 아래로 빨려 들어갔다. 함정이었다.떨어지는 순간에도 필사적으로 무언가를 꽉 잡았고, 튼튼한 나무 줄기를 잡은 덕에 함정에 완전히 빠져 들어가지는 않았다. 날카로운 나무 껍질이 그녀의 손을 마구잡이로 찔러왔다.나무 줄기 덕에 즉사는 면했으나, 발소리들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가짜 야인은 그녀의 팔을 잡아당겨 구덩이 속에서 끌어 올렸다. 쉴 새 없이 도망가야 했으나 이 둘은 함정을 안 돌아볼 수가 없었다. 완전히 빠졌다면 어떻게 됐을지…. 소름이 돋았다.빳빳이 굳어 있던 그들의 침묵은 가짜 야인의 한 마디로 깨져 버렸다.“어서 달려…….”소은정은 비인지 눈
그 남자는 웃음을 빵 터트렸다. 목소리가 너무나 맑았다.그러나 이내 교활한 눈빛을 해 보였다.“안 알려 줄 건데?”“…….”어쨌거나, 긴장감에 빳빳하던 마음이 한결 나아졌다.소은정은 눈앞의 유일한 제 동료를 빤히 바라보았다. 역시, 무언가 알 수 없는 친근감이 느껴 진단 말이야…. 그녀는 다 벗은 상반신을 한 그의 팔뚝을 쿡쿡 건드리며 그를 따라 걸었다.“추우면 내 코트 줄까요?”정말 그가 얼어 죽을까 걱정되었다. 그러나 코트를 벗으려는 손짓은 그에 의해 저지 당하였다.“괜찮아. 난 안 추워.”소은정은 더 이상 권유하지 않았다. 제 주머니 속 소호랑의 존재도 문득 떠올랐다.“전 소은정이에요. 당신은요?”이름을 들은 그는 살짝 동요하더니 그녀에게 반문했다.“소은해… 동생?”그에게서 들려오는 제 오빠의 이름에 눈이 번뜩 뜨였다.“우리 오빠를 알아요? 아는 사람이에요?”“아….”“….”“아니, 그동안 실검에 자주 떴잖아….”그의 대답은 또 다른 놀라움을 가져다주었다.“…여기 온 지 얼마 안 된 거에요?”실검으로 난리가 난 일이라면, 한달 남짓 된 일이었다.그는 미소를 띄운 채 나무를 계속해서 베어 댔다.“한 달쯤… 됐겠네.”한 달 만에 이렇게 야인 중의 일원이 된 거야?신발이 아니었다면 소은정은 그를 전혀 알아차릴 수 없었을 것이다.제 동료를 찾은 것에 기쁨도 잠시, 소은정은 그가 한 달 째 표류 되어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무거워졌다. 한 달이 지나도 아무 구조나 소식이 없었단 얘기와 다를 게 없었다. 이 망할 곳을 자신은 언제가 되어야 떠날 수 있다는 거지?“그쪽 이름이 뭐에요? 알려줘요.””…박우혁.”“…막 지어낸 거 아니에요?”“박우혁이라니까?”“…혹시 박수혁 알아요? 박수혁이랑 무슨 관계 있는 건 아니죠?”그는 소은정의 말에 잠시 침묵하더니 대답했다.“내가 그 부잣집 도련님이랑 무슨 관계? 난 탐험 유튜버야…. 이걸로 먹고 살아.”하긴…. 소은
사방을 둘러본 박수혁은 눈에 들어오는 낯익은 진열품들에 깜짝 놀라며 벌떡 몸을 일으켰다. 큰 움직임에 링거 바늘이 살을 찢기 일보 직전이었다.“어딜 가려고 그러니…!”당장이라도 떠날 채비를 하는 박수혁에 박대한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관리인과 하인 모두가 나서 박수혁을 막아섰다.“소은정…. 소은정을 찾으러 가야 돼…….”“이미 죽었다는 거 너도 알잖니….”그의 말은 청천벽력처럼 박수혁을 덮쳐왔다. 가장 듣기 싫던 그 말이었다. 궁지에 몰린 것만 같았다. 팽팽하던 이성의 끈이 탁, 하고 끊어졌다.“아니…. 안 죽었어! 그럴 리 없다고!”그의 목소리는 단단했다. 결코 소은정을 바다에 두고 올 수 없었다. 어떤 형태의 그녀를 찾게 되던, 그는 그녀를 집에 데려다 주어야만 했다.당장 뛰쳐나가려는 그의 모습에 박대한은 그의 하인에게 눈짓을 하였으며, 그의 하인들은 힘이 빠진 박수혁을 다시금 침대에 강제로 앉혔다.“대표님, 휴식을 취하셔야….”“당장 비켜!”자신의 뜻대로 행동하지 않는 박수혁의 모습에 박대한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우리가 그 아이에게 빚졌다는 거 안다. 그 애가 살아 있다면 네가 나가서 뭘 하든 막지 않겠지만, 그 애는 죽지 않았니! 우리가 나서서 장례라도 치뤄 주길 바라는 것이냐? 네가 그 애를 찾아다닌다고 나가 있던 동안 우리 회사 상황은 어땠는지 알기나 하는 거냐!”“뭐가 됐든 찾으러 갈 겁니다. 내가 꼭 찾아야만 해요!”자신에게 소은정이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직접 말할 것이다.반드시 사과와 애정을 정중히 표할 것이다.소은정의 사고 소식을 들었을 때, 칼에 찔린 것만 같은 고통을 느꼈던 그의 마음을 누가 알까.제 눈 앞에서 난동을 부리는 손자는, 훌륭하고 결단력 있는 모습으로 조만간 포브스에 이름을 올릴 예정이었다.그런 아이가 계집애 하나 때문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니.“이 방에서 절대 못 나가게 문 잘 단속해!”박대한은 그 말을 끝으로 몸을 돌려 떠나려 하였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