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망할 섬에서 소은정은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만 싶었다. 그러나 별 다른 꼼수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덩치가 제일 큰 야인이 무어라 동작으로 지시하기 시작했다. 손가락으로 불을 가리키더니 곧이어 자신의 입가에 음식을 먹는 손짓을 해 보였다.통역 따위가 필요한가? 저들은 자신을 잡아먹으려는 것이 틀림없었다. 정말, 이보다 더 재수없는 죽음이 있을까?소은정은 제 앞에 바짝 다가선 야인의 눈을 바라보며 우는 얼굴보다도 못생긴 미소를 지어보였다.“먼저 실례 좀 할게요…. 그럼 안녕히…….”남은 힘을 쥐어짜내 벌떡 일어선 소은정은 냅다 뜀박질을 시작했으나 우스꽝스럽게도 이리저리 엮인 나무줄기에 걸려 넘어져 버리고 말았다. 어지러움과 미미했던 열은 잠을 자니 그나마 괜찮았는데, 또 이렇게 크게 넘어지니 정말이지 머리가 핑핑 돌았다.그렇게 한참을 엎어져 있던 소은정에게로 다른 야인이 접근해왔다. 그는 자신 옆에 있던 신발을 신은 또 다른 야인에게 말을 걸며 대화를 이어갔다.근데…. 잠깐, 제 시선 끝에 닿는 야인들의 신발은 흙으로 싸여 희미했으나 분명 신발끈이었다. 순간 소은정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어디서 난 힘인지 잽싸게 야인의 신발을 잡아 당겨댔다. 이 큰 덩치를 흔들 힘이 어디서 난 것인지 의문이었다.기어이 신발의 상표를 알아내는 것에 성공했다. 라스포티바의 운동화였다. 아웃도어 스포츠 장비로 세계에서 알아주는 브랜드였다.정말 자신과 같은 처지의 누군가가 이 섬에 있는 것일까?소은정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야인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탁하긴 커녕 빛나는 눈동자를 지닌 야인은 그녀에게 윙크까지 해 보였다.“당신……!”야인이 아니였어!그녀가 무어라 말을 끝 마치기도 전에 누군가가 제 팔을 세게 잡아당기며 불구덩이 쪽으로 이끌었다. 소은정은 자신이 박물관 표본에 있어야할 야만인들에게 잡아 먹혀 생을 마감할 것이라고는 꿈에서도 몰랐다.“그, 그만…. 살려주세요 제발…….”점점 더 많은 야인들이 그녀를 둘러쌌고, 방금 저에게
소은정은 입과 코를 틀어막고 금방이라도 피를 쏟을 듯 기침을 해댔다. 그제야 죽은 척 주머니에서 나오지 않던 소호랑이 그녀의 옷자락을 살살 긁어왔다.“엄마. 제 기록에는 지금 이게 일종의 제사라고 검색되는데요…!”그 소리에 덜컹, 하고 심장이 내려앉았다.나 정말 이미 죽은 거야?“소호랑, 넌 호랑이잖아…. 이 사람들 덮칠 수 없겠어?”소호랑은 몇 초 간 입을 꾹 다물더니 겨우 입을 열었다.“암묵적으로 20% 정도 공격성은 필수로 탑재되어 있다 했지만…. 난 새로 개조됐어요. 내 공격성은 제로예요! 직접 뛰어들어보세요…….”“…….”이 조그만 호랑이에게 된통 당한 소은정이었다.다시금 소호랑에게 무어라 말을 하려는데 제 주변에서 시끌거리던 이들의 움직임이 한 순간에 멎어 들었다. 표정 역시 단번에 엄숙 해졌다.삽시간에 조용해진 주변에 소은정은 소호랑에게 한 마디도 전할 수가 없었다. 소호랑의 존재를 저들에게 알려서는 안 됐다. 자신에게 남은 유일한 대화 상대였……. 는데, 이 호랑이가 없어졌다.장작이 타는 탁탁 소리만 울려 퍼질 뿐 음산함이 가득했다. 이 때, 가장 두목으로 보이는 자가 몇 걸음 뒤로 물러섰고 동그랗게 몰려 있던 인파가 길을 텄다.길 한 가운데로 얼굴이 주름으로 가득한 연로한 여인이 나뭇잎을 손바닥에 올린 채 그녀에게로 다가왔다. 곧 여인은 소은정의 눈을 바라보며 무어라 말을 내뱉었으나, 알아들었으리가 만무하였다.그런 소은정의 속마음을 알아차린 것인지 여인은 땅 위의 도구를 한 번 가리키더니 자신의 입을 한 번 가리켰다. 음식 이라는 뜻이겠지….곧 여인은 나무 줄기로 꽉 묶였던 소은정의 손목을 풀어 주고는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여인이 자리를 뜨자 다시금 소은정을 둥글게 에워쌌다.소은정이 고개를 숙여 바라본 곳에는 여인이 두고 간 나뭇잎 위 고기와 말린 생선, 과일 몇가지들이 있었다. 몇일 간 쫄쫄 굶은 소은정은 꿀꺽 침을 삼킨 뒤 위생 따위는 잊은 채 음식을 입에 쑤셔 넣었다.약이
소은정은 그를 의식하자마자 왜 인지 안도의 한숨이 푸욱 나왔다.큰 비가 밤하늘을 쓸어내려 어두침침한 바다는 차갑기까지 했다. 오들오들 떨 수밖에 없었다. 뼛속까지 시려웠다.뜀박질을 멈추고 숨을 좀 돌리려나 싶었는데, 뒤에서 수많은 발자국 소리가 쫓아왔다. 새카만 어둠 속 선명한 소리에 소은정과 가짜 야인이 번뜩 눈을 마주하였다. 이내 둘은 약속이라도 한 듯 또 다시 내달리기 시작했다.차가운 비 바람이 얼굴에 몰아치니 칼날처럼 너무나 따가웠다. 이 환경에서 뛰고 구르고 기어 다니고 있다니….야인들은 끝까지 그들을 쫓으며 누군가는 소은정에게 나뭇가지 등을 던지기도 하였다. 이미 여러 번 맞은 소은정은 이를 악 물고 달리기를 멈출 수 없었다. 나뭇가지과 가시덤불에 손이 몇 번이고 긁혔으나 무감각해진 듯 아픈 줄도 몰랐다.제 옆의 가짜 야인은 동작이 매우 재빠르고 민첩했다. 그런 그를 필사적으로 따라붙으며 달렸다. 야인 무리의 소리는 점점 가까워져 왔다. 잡히면 죽는다는 생각으로 무작정 뛰었다.그 때, 주변을 살필 수 없던 소은정이 굵고 튼튼한 나무 줄기에 걸려 크게 넘어지고 말았다. 땅바닥에 온몸으로 넘어진 그녀가 참지 못하고 얕은 비명을 질렀다.“괜찮……!”사는 게 우선이었으니, 다시 도망치기 위해 몸을 일으켜 한걸음 내딛는 순간이었다. 몸이 순식간에 쑥 하고 땅 아래로 빨려 들어갔다. 함정이었다.떨어지는 순간에도 필사적으로 무언가를 꽉 잡았고, 튼튼한 나무 줄기를 잡은 덕에 함정에 완전히 빠져 들어가지는 않았다. 날카로운 나무 껍질이 그녀의 손을 마구잡이로 찔러왔다.나무 줄기 덕에 즉사는 면했으나, 발소리들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가짜 야인은 그녀의 팔을 잡아당겨 구덩이 속에서 끌어 올렸다. 쉴 새 없이 도망가야 했으나 이 둘은 함정을 안 돌아볼 수가 없었다. 완전히 빠졌다면 어떻게 됐을지…. 소름이 돋았다.빳빳이 굳어 있던 그들의 침묵은 가짜 야인의 한 마디로 깨져 버렸다.“어서 달려…….”소은정은 비인지 눈
그 남자는 웃음을 빵 터트렸다. 목소리가 너무나 맑았다.그러나 이내 교활한 눈빛을 해 보였다.“안 알려 줄 건데?”“…….”어쨌거나, 긴장감에 빳빳하던 마음이 한결 나아졌다.소은정은 눈앞의 유일한 제 동료를 빤히 바라보았다. 역시, 무언가 알 수 없는 친근감이 느껴 진단 말이야…. 그녀는 다 벗은 상반신을 한 그의 팔뚝을 쿡쿡 건드리며 그를 따라 걸었다.“추우면 내 코트 줄까요?”정말 그가 얼어 죽을까 걱정되었다. 그러나 코트를 벗으려는 손짓은 그에 의해 저지 당하였다.“괜찮아. 난 안 추워.”소은정은 더 이상 권유하지 않았다. 제 주머니 속 소호랑의 존재도 문득 떠올랐다.“전 소은정이에요. 당신은요?”이름을 들은 그는 살짝 동요하더니 그녀에게 반문했다.“소은해… 동생?”그에게서 들려오는 제 오빠의 이름에 눈이 번뜩 뜨였다.“우리 오빠를 알아요? 아는 사람이에요?”“아….”“….”“아니, 그동안 실검에 자주 떴잖아….”그의 대답은 또 다른 놀라움을 가져다주었다.“…여기 온 지 얼마 안 된 거에요?”실검으로 난리가 난 일이라면, 한달 남짓 된 일이었다.그는 미소를 띄운 채 나무를 계속해서 베어 댔다.“한 달쯤… 됐겠네.”한 달 만에 이렇게 야인 중의 일원이 된 거야?신발이 아니었다면 소은정은 그를 전혀 알아차릴 수 없었을 것이다.제 동료를 찾은 것에 기쁨도 잠시, 소은정은 그가 한 달 째 표류 되어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무거워졌다. 한 달이 지나도 아무 구조나 소식이 없었단 얘기와 다를 게 없었다. 이 망할 곳을 자신은 언제가 되어야 떠날 수 있다는 거지?“그쪽 이름이 뭐에요? 알려줘요.””…박우혁.”“…막 지어낸 거 아니에요?”“박우혁이라니까?”“…혹시 박수혁 알아요? 박수혁이랑 무슨 관계 있는 건 아니죠?”그는 소은정의 말에 잠시 침묵하더니 대답했다.“내가 그 부잣집 도련님이랑 무슨 관계? 난 탐험 유튜버야…. 이걸로 먹고 살아.”하긴…. 소은
사방을 둘러본 박수혁은 눈에 들어오는 낯익은 진열품들에 깜짝 놀라며 벌떡 몸을 일으켰다. 큰 움직임에 링거 바늘이 살을 찢기 일보 직전이었다.“어딜 가려고 그러니…!”당장이라도 떠날 채비를 하는 박수혁에 박대한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관리인과 하인 모두가 나서 박수혁을 막아섰다.“소은정…. 소은정을 찾으러 가야 돼…….”“이미 죽었다는 거 너도 알잖니….”그의 말은 청천벽력처럼 박수혁을 덮쳐왔다. 가장 듣기 싫던 그 말이었다. 궁지에 몰린 것만 같았다. 팽팽하던 이성의 끈이 탁, 하고 끊어졌다.“아니…. 안 죽었어! 그럴 리 없다고!”그의 목소리는 단단했다. 결코 소은정을 바다에 두고 올 수 없었다. 어떤 형태의 그녀를 찾게 되던, 그는 그녀를 집에 데려다 주어야만 했다.당장 뛰쳐나가려는 그의 모습에 박대한은 그의 하인에게 눈짓을 하였으며, 그의 하인들은 힘이 빠진 박수혁을 다시금 침대에 강제로 앉혔다.“대표님, 휴식을 취하셔야….”“당장 비켜!”자신의 뜻대로 행동하지 않는 박수혁의 모습에 박대한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우리가 그 아이에게 빚졌다는 거 안다. 그 애가 살아 있다면 네가 나가서 뭘 하든 막지 않겠지만, 그 애는 죽지 않았니! 우리가 나서서 장례라도 치뤄 주길 바라는 것이냐? 네가 그 애를 찾아다닌다고 나가 있던 동안 우리 회사 상황은 어땠는지 알기나 하는 거냐!”“뭐가 됐든 찾으러 갈 겁니다. 내가 꼭 찾아야만 해요!”자신에게 소은정이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직접 말할 것이다.반드시 사과와 애정을 정중히 표할 것이다.소은정의 사고 소식을 들었을 때, 칼에 찔린 것만 같은 고통을 느꼈던 그의 마음을 누가 알까.제 눈 앞에서 난동을 부리는 손자는, 훌륭하고 결단력 있는 모습으로 조만간 포브스에 이름을 올릴 예정이었다.그런 아이가 계집애 하나 때문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니.“이 방에서 절대 못 나가게 문 잘 단속해!”박대한은 그 말을 끝으로 몸을 돌려 떠나려 하였다.아
20여분을 넘게 걸으니 소은정은 다리가 저리고 물집이 생겼는지 여기저기가 따끔거려 왔다. 그를 따라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는 다행히 폭우가 그친 뒤였다.숲을 벗어나 멀리 걸어오니 질퍽해진 땅에 발도 쉽게 들 수 없었다. 그러나 제 앞의 남자는 그렇게 오래 걷고 뛰었는데도 힘든 기색 하나 없었다. 이런 환경에 익숙해진 것일까….연이은 암초들과 산비탈을 지나 도착한 곳에서 박우혁은 사람 반 크기의 커다란 돌을 치웠다. 그러자 웬 동굴이 나타났다.단군신화인가?소은정은 군말없이 그를 따라 들어갔으나 공간은 매우 협소했다. 성인 둘로 꽉 차는 공간에 바닷물이 스멀스멀 비집고 들어왔다.박우혁은 이랑곳 않고 벽에 뚫린 40센티 가량의 틈으로 들어갔고, 틈을 통과한 그가 안에서 소은정에게 손짓했다. 내키지 않았으나 그녀는 몸을 돌려 틈으로 비집고 들어섰고, 이내 펼쳐진 광경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틈 너머 공간은 넓게 뚫려 있었으며, 건조하고 깨끗한 나뭇잎이 깔려 있어 조금 습한 것 빼고는 바깥보다 10배는 좋았다. 게다가 등불도 있었다.박우혁은 배낭을 꺼내 들었고, 소은정은 익숙한 라스포티바 브랜드에 웃음이 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배낭에서 남성용 바람막이 재킷을 꺼내 입었고, 같은 종류의 바지도 꺼내 입으려 허리를 굽혔으나 이내 소은정의 시선에 행동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소은정은 또 어느 틈으로 그가 사라질까 그를 바라보고 있었고, 그런 그녀에 박우혁이 말을 건넸다.“계속 쳐다볼 건가?”소은정은 어리둥절하다 이내 그의 뜻을 깨닫고 황급히 몸을 돌렸다. 얼굴이 뜨거웠다.“목마를 텐데, 옆에 도구 있으니까 물 좀 담아오면 증류해서 마시자고.”그는 어색함을 풀어보려 일부러 말을 건넸다.“아, 좋아요.”소은정은 맑은 물이 너무나도 그리웠다. 나뭇잎 몇 개를 엮은 ‘도구’에 잠시 머뭇거렸지만 여기서 무얼 더 가리겠는가.소은정은 울적한 얼굴로 나가 옆 바위 틈에서 그나마 깨끗한 물을 그릇에 담았다. 박우혁은 어느새 옷을 갖춰 입고
남극?그의 친구라는 자가 저 야인들 속에서 구해 줄 수 있지 않을까? 망상을 멈출 수가 없었다.그래. 이제 반나절 지났는 걸?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박우혁은 자상하게도 준비했던 라이터로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그럼…. 외부에 연락할 뭐라도 없어요?”박우혁은 그녀를 올려다보며 자비없이 말했다.“없어.”“여길 나갈 생각 안 해봤어요?”“해봤어. 소재 찾을 것도 다 찾았고…. 나 같은 바보가 여기 또 떨어지면 그 사람한테 빌붙어서 같이 나가려고 했지.”“…….”그 바보가 자신이었다.박우혁은 능숙한 동작으로 바닷물을 증류하였고, 자신이 먼저 맛을 본 뒤에 나머지를 모두 소은정에게 건네 주었다.“마셔. 물 한 모금도 못 마셨지?”“응. 한 모금도…….”그녀가 마지막으로 마신 것은 비행기에서 마신 장미 향의 샴페인이었다.깨끗하게 마셔 없앤 소은정이 박우혁을 처연히 바라보았다.“다 마셨어요…….”“지금은 끝, 다음에.”누가 이렇게 조금 떠오라고 한 건지, 몇 모금 마시지 싹 사라져버렸다.“그쪽은 좀 마셨어요?”소은정은 분명 그가 얼마 마시지 않은 것을 보았다.박우혁은 웃음을 띈 채 대답했다.“우리 같은 탐험가들은 이런 도구 없는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어.”사람이 극한 상황이라면 소변이라도 마시며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그러나 제 눈 앞의 곱게 자란 것처럼 보이는 소은정은 죽을지 언정 그것으로 목숨을 부지할 것 같진 않아 보였다.“그래서, 여태까지 이렇게 야인 분장을 하고 지낸 거예요?”소은정은 참지 못하고 물었다. 자신은 통구이로 만들려 했으면서, 왜 박우혁은 가만히 냅두었는가?그는 그녀의 생각을 알아차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적이 되지 않으려면, 동반자가 되는 수밖에. 지능이 그렇게 높지 않으니, 이방인이라 알아보지도 못하던걸.”소은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를 조금 더 일찍 만났더라면 좋았을 텐데. 박우혁이 아니었다면 자신은 지금쯤 재가 되었을 것이다.“그
그의 다정한 말에 코 끝이 시큰해져왔다.“다들 분명 내가 죽은 줄 알겠지…. 아빠랑 오빠들이 얼마나 고생하고 있을까…….”박우혁은 절망에 빠진 그녀를 차마 볼 수가 없었다.“…그래도 희망을 가져야 해.”마주친 그의 눈동자는 달빛이 비춘 밤 바다와 같았다.“역사상에도 바다를 헤엄쳐서 횡단했다는 기록이 많아.”“입 좀 다물래요?”“그럴까?”소은정은 얼마만의 편안한 잠자리인지, 자신도 모르게 잠에 빠져 들어버렸다.소호랑은 주변에 위험이 없다는 것을 감지하고서야 코트 주머니에서 비적비적 걸어 나왔다. 홀로 동굴 안을 구경하는 소호랑을 단숨에 집어 올린 박우혁이 말했다.“애완견을 데리고 다니나 보네…….”새끼 호랑이의 네 다리가 공중에서 마구 휘날렸다.“이거 놔. 난 호랑이야! 애완견 아니야!”박우혁의 눈이 반짝 빛났다.“오, 말하는 가짜 호랑이?”“난 진짜야!”박우혁은 처음 보는 신기한 생명체에 이번에는 꼬리를 마치 쥐를 들 듯 쥐며 흔들거렸다. 소호랑은 큰 소리로 소은정을 불렀다.“이 사람이 날 죽이려고 해요!”박우혁은 순간 소호랑의 입을 틀어 막았다. 큰 소리에 찡그리던 소은정의 얼굴이 다시금 평온을 되찾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쓰읍. 큰 소리내면 안 돼.”그가 손을 놓자 소호랑은 재빨리 높은 돌 위로 튀어 올라 그를 내려다보았다. 당당한 눈빛이었으나 온몸이 지저분 해져 이전의 깨끗하고 귀여운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난 당신 알아요! 1인 미디어인으로 탐험 다큐멘터리 5회 연속 국제대상을 수상했고, 전 세계에 수많은 팬을 보유하고 계시죠. 박대한 회장님의 외손자 분이시죠!”다른 것도 놀라웠지만 마지막 한 마디에는 정말 눈을 번쩍 뜨며 놀랄 수밖에 없었다.“잘 알고 있네…….”“그럼요. 인터넷에 모든 소식은 다 알고 있거든요!”박우혁은 방긋 웃으며 작은 호랑이를 가볍게 안아 들었다.“박수혁은 내 삼촌 쪽이지. 네 주인에겐 비밀이다. 그렇지 않으면……. 흠, 그 야인들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