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근이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이렇게 하죠. 제가 가서 그쪽 상황이 어떤지 확인하고 다시 얘기해요.”남유주는 고개를 끄덕였다.“역시 우리 한 지배인은 믿음직하다니까!”한수근이 웃으며 말했다.“제 덕분에 사장 하기 편하죠? 월급이나 올려주세요!”“좋아! 문제없어!”서로 의견을 합친 두 사람은 활짝 미소를 지었다.남유주는 올라가서 옷가지를 챙기고 반신욕까지 마친 뒤, 박수혁의 저택으로 갔다.미리 얘기해 뒀었기에 고용인들이 가져갈 옷을 포장까지 해서 준비해 놓고 있었다.“유주 씨, 최근 들어 작은 도련님이 유주 씨 얘기를 많이 하더라고요!”고용인이 웃으며 그녀에게 인사를 건넸다.남유주는 괜히 죄책감이 들었다. 연락처를 알고도 연락을 하지 않았다는 건 시준이가 두 사람이 헤어진 것을 알고 일부러 연락을 안 했다는 얘기였다.그녀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이따가 운전기사 시켜서 시준이 병원으로 보내요. 수혁 씨도 아들이 보고 싶을 테니까요.”“네, 지금 가서 얘기할게요.”남유주는 옷가지를 챙겨 저택을 나와 디저트 가게로 가서 디저트까지 샀다.병원에 돌아왔는데 1층 분위기가 이상했다.발걸음 소리도 들리지 않고 경호 인력도 두 배로 추가했다.남유주는 뭔가 이상함을 느끼며 천천히 다가갔다.설마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겠지?이런 생각이 들자 가슴이 철렁했다.그녀는 곧장 병실로 달려갔다.문 앞을 지키던 경호원이 그녀를 막았다.못 보는 얼굴이었다.“누구시죠?”박수혁의 사람이 아닌 건 확실했다.아무도 그녀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안에서 노인의 근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남유주 씨죠? 들어오세요.”그제야 경호원들이 길을 비켜주었다.남유주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안으로 들어갔다.안은 여전했는데 박수혁은 싸늘한 표정으로 창가에 앉아 있었다.그는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자 그녀를 향해 손짓했다.“이쪽으로 와.”무덤덤한 목소리였다.그의 앞에는 왜소한 체구의 노인이 앉아 있었다.흰머리에 볼이 푹 패여 있었지만 안색은 나쁘지
백명은 눈도 깜빡이지 않고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입가에는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눈은 싸늘하고 냉정했다.한 사람에게서 전혀 반대의 두 가지 표정이 공존할 수 있다니 놀라웠다.남유주는 피식 웃음을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지금이 어떤 시대라고 그런 걸 신경 써요? 박수혁 씨랑 연애한다고 상대방 아버님에게까지 점수 따야 해요? 저 그런 맘에 없는 일 할 생각 없거든요? 만약 박수혁 씨가 저한테 그런 요구를 제기했다면 바로 등 돌리고 가버렸을 거예요.”백명의 표정은 순식간에 굳었다.더 이상 겉치레용 예의조차도 지킬 필요가 없어진 것 같았다.그는 그녀를 지나쳐 밖으로 향했다.남유주가 웃으며 그의 등 뒤에 대고 말했다.“수혁 씨 경호원 시켜서 짐들을 올려보내세요. 전 가정부도 아니고 짐까지 들고 날라야 할 의무는 없으니까요.”말을 마친 그녀는 위층으로 올라가 버렸다.집사의 심기를 건드리는 건 두렵지 않았다.박수혁과 결혼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다시 사랑을 시작한 이유는 아쉬움과 미련이 남았기 때문이다.하지만 결혼은 전혀 고민해 본 적 없었다.박수혁이 프러포즈를 한다고 해도 받아줄지 고민해 봐야 한다.연애할 때에는 연애 자체에만 집중하면 되는 법이다.지금은 서로가 좋아서 함께하지만 싫어지면 쿨하게 떠나면 된다.절대 쓸데없는 감정 소모로 인생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이게 그녀가 정한 선이었다.백명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남유주는 그에게 인사도 건네지 않고 휑하니 가버렸다.예의라고는 눈 씻고 찾아보려고 해도 없었다.그는 굳은 표정으로 이를 악물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반면 남유주의 표정은 밝았다.박수혁이 지팡이 하나를 짚고 문 앞까지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선글라스까지 끼고 있었지만 전혀 맹인 같지는 않고 그냥 잘생긴 모델 같았다.남유주는 생긋 웃으며 그에게 다가갔다.“왜 나와 있어? 설마 우리가 한 대화 다 들었어?”박수혁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집사가 어떤 성격인지 그
남유주의 애교에 박수혁의 불쾌감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촬영장에 도착하자 손호영의 매니저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박수혁이 차에서 내리자,곽 감독까지 달려왔다.남유주는 조수석에서 내렸기에 두 사람 사이를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이렇게까지 거리를 두는데 오해하는 게 이상했다.박수혁은 곽 감독에게 이끌려 휴게실로 갔다.남유주는 손호영의 매니저를 따라 촬영장으로 향했다.그런데 매니저의 표정이 좀 이상했다.뭔가 할 말이 있는데 난감한 표정이었다.“유주 씨, 호영이는 안에서 메이크업 받고 있어요. 이따가 들어가서 인사라도 나눌래요?”남유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감사해요. 감독님….”“중요하지 않은 씬은 곽 감독님이 굳이 현장을 지휘하지 않아요. 조감독들이 알아서 찍거든요.”남유주는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호영 씨한테 가볼게요.”“저기 안쪽입니다.”매니저는 위치만 알려주고 자리를 떠났다.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손호영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곧 좋아하는 배우를 만난다고 생각하니 괜히 기분이 들뜨고 저절로 콧노래가 나왔다.문은 반쯤 열려 있었는데 안에서 강지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호영 씨, 이런 부탁은 나도 처음이긴 한데… 내 여동생이 연극영화과 출신이거든요. 올해 데뷔하고 싶어 하는데 우리 드라마랑 이미지가 맞는 것 같아서요. 비중 있는 배역은 나도 염치가 있으니 바라지도 않고 엑스트라 배역은 비중도 별로 없으니 내 동생에게 기회를 줬으면 좋겠어요.”남유주는 걸음을 멈추었다.손호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미안해요. 이 배역은 남유주 씨한테 맡기기로 이미 약속이 돼 있었잖아요. 지민 선배도 알고 있었던 거 아닌가요? 감독님도 다 만나고 오늘 촬영 일정까지 잡혔는데 교체하는 건 좀 실례지 않나요? 다음에 또 기회가 오겠죠.”강지민이 웃으며 말했다.“알아요. 하지만 유주 씨는 일반인이잖아요. 연기 쪽은 전문 교육을 받은 제 동생이 더 잘할 것 같아요. 게다가 그 아이는 배우가 되고 싶은 아이이고 호영 씨 팬이기도 하
“게다가 제가 할 말도 다 했고 일방적으로 괴롭힘을 당한 게 아니니 괜찮아요. 아까 강지민 씨 얼굴 붉어진 거 봤어요? 전 손해 본 거 없으니 그냥 이렇게 해요. 안 그래도 가게 운영도 있고 굳이 이런 곳에 정력을 쏟고 싶지도 않아요.”손호영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하지만 이건 너무 불공정하잖아요. 전날에 미리 말했으면 여기까지 안 와도 됐을 텐데.”남유주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그러니까 강지민 씨가 대단하다는 거죠.”일부러 촬영장까지 오게 한 뒤에 수모를 주려는 것이다.그 나이 먹고 아직도 여우짓을 일삼는 걸 보면 젊었을 때는 더했을 것 같았다.그러니 어렸을 때 뜨지 못하고 나이 들어 이혼하고 겨우 인지도를 쌓았지!하지만 네티즌의 동정표는 일시적인 것이고 평생 갈 수는 없었다.손호영은 여배우들 사이의 질투와 시기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이번처럼 역겹게 느껴진 적은 처음이었다.“미안해요, 유주 씨. 내 생각이 짧았어요.”“그런 말 하지 마세요, 호영 씨. 저를 신경 써주셔서 고마운걸요!”손호영의 매니저가 종종걸음으로 달려왔다.“호영아, 메이크업 아티스트분 오셨어.”남유주가 말했다.“그럼, 먼저 가볼게요.”“나중에 식사라도 같이 해요.”“무르기 없기에요!”남유주는 환한 미소를 짓고는 휴게실을 나섰다.손호영 매니저가 다가와서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유주 씨, 상황은 다 아셨죠?”남유주는 고개를 갸웃하며 매니저에게 물었다.“매니저님은 진작에 알고 계셨네요?”매니저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며칠 전에 지나가다가 들었어요. 강지민 매니저가 하는 말로는 진작에 그 배역을 마음에 두고 있었나 봐요. 비록 씬은 하나뿐인데 매력이 넘치잖아요. 그런데 호영이가 미리 유주 씨를 점찍어 둔 거예요. 강지민 씨는 오늘 감독님께 말씀드린 것 같은데 감독님은 호영 씨 기분을 상하지 않는 상황에서 알아서 하라고 하셨다더라고요.”남유주는 그제야 강지민이 골프장에서부터 묘하게 신경을 거슬리게 하던 행동들이 떠올랐다.결국 손호영 때문
남유주는 그대로 그의 팔짱을 끼고 곽 감독을 향해 도발적인 시선을 보냈다.그 모습을 본 곽 감독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눈앞이 새카매졌다.이렇게 되면 모든 게 헛수고였다!“잠깐만요, 대표님. 다시 의논해 보시죠. 강지민 씨 동생을 돌려보내겠습니다. 원래 남유주 씨가 맡기로 했던 배역이니 당연히 유주 씨가 맡아야지요.”그는 다급히 달려가서 박수혁의 앞을 가로막았다.박수혁이 싸늘한 미소를 짓더니 아무런 감정도 담기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내 돈을 어디에 투자할지는 내가 결정해. 곽 감독, 솔직히 말해 난 당신 작품에 별로 기대를 걸지 않았어. 어차피 이 드라마로 벌어들인 돈으로 내 여자에게 옷 한 벌 사줄 돈도 안 되니까. 그럼에도 투자를 결정했던 건 내 사람이 당신 작품에 출연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야. 내가 한가해서 여기까지 온 줄 알았어?”곽 감독의 체면은 안중에도 없는 말이었다.남유주마저 그 말을 듣고 당황했다.박수혁이 외부인 앞에서 당당하게 그들의 관계를 인정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그는 남유주의 손을 꽉 잡고는 싸늘하게 말했다.“배역을 교체했으니 투자할 가치를 못 느낀 거지. 좋은 감독, 좋은 작품은 널렸어. 굳이 여기가 아니라도 상관없었다고.”남유주는 그의 말투에서 거대한 분노를 느낄 수 있었다.“대표님, 저는 두 분 관계를 몰랐어요. 그냥 손호영 씨가 친한 팬이라고 소개하기에 그런 줄로만 알았죠. 남유주 씨는 두 분이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 했거든요.”곽 감독이 억울한 표명으로 해명했지만 남유주는 점점 짜증이 치밀었다.박수혁이 그녀의 팔을 잡아당기며 말했다.“가자.”그는 곽 감독의 해명을 들어줄 이유가 없었다.이 멍청한 인간은 그까짓 여배우 체면 세워주려다가 큰돈을 잃은 격이었다.남유주도 여기서 더 실랑이를 벌이고 싶지 않았다. 곽 감독의 뻔뻔함은 지난번에도 경험했기에 다시 경험하고 싶지도 않았다.그녀는 박수혁을 따라 차에 올랐다. 곽 감독이 뒤따라오며 뭐라고 지껄였지만, 경호원이 나서서 그를 멀리 밀쳐버렸다.
그녀는 비록 연극영화과 출신이었지만 기교에만 능하고 감정이 실리지 않았다. 표정이나 동작도 어딘가 어색하고 가장 중요한 건 얼굴이 매력적이지 않았다.일반인들 틈에 섞여 있어도 눈에 띄지 않을 외모였다.실력이 없으면 겸손할 법도 한데 그녀는 성격도 까칠하기까지 했다.언니인 강지민을 등에 업고 조감독에게도 불손한 태도를 보였다.세 번째 NG가 났을 때 조감독이 한 번만 더 가자고 하자 여자는 갑자기 사람들 앞에서 조감독이 신인을 괴롭힌다며 울음을 터트렸다.조감독은 너무 황당해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옆에서 지켜보던 강지민이 동생을 달래고는 조감독에게 말했다.“아직도 멀었나요? 한 씬일 뿐인데 대충 하고 넘기죠? 너무 잘 나와서 여자주인공보다 더 튀면 안 좋잖아요!”그녀가 이렇게까지 얘기하는데 조감독이 더 뭐라고 할 수 있을까?이번 씬은 패배작으로 기억될 것이다.원래는 남자 주인공의 마음에 남아 있는 첫사랑에 대한 기억인데 카메라를 한번 쳐다보고 뒤돌아서면 끝이었다.짧은 시간에 관객들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해야 하는데 강지민 동생의 연기로는 눈을 감기게 할것 같았다.조감독은 한숨을 쉬며 잠깐 쉬었다 다시 가자고 했다.강지민은 동생을 데리고 옆으로 가서 쉬기로 했다.어려서부터 사랑만 받고 자라서 철이 없는 건지, 아니면 언니가 강지민이라 기고만장한 건지, 동생의 화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많이 힘들어?”“아니, 힘들지는 않아. 아까 스텝들 얘기 들어 보니까 남유주 그 여자 박수혁 대표랑 같은 차를 타고 왔다던데? 둘이 무슨 사이는 아니겠지?”이 나이대의 어린 여자들은 수다를 좋아했다.강지민이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 박 대표 눈에 그런 애가 들어오겠어? 지금 거기서 가정부로 일하고 있는 것 같은데 운전기사랑 같이 조수석을 타고 왔대. 내가 배역 교체되었다고 나가라고 하니까 찍소리 못하고 나가는 것 좀 봐.”동생이 웃으며 말했다.“고마워, 언니.”“고맙기는.”두 사람이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곽
"뭐? 박 대표님? 강지민,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매니저는 화가 나서 그녀에게 물었다.박수혁에게 미운털이 박히는 순간, 강지민의 연예계 생활도 끝날 것이기 때문이다.강지민은 당황한 듯 인상을 구겼다.옆에서 듣고 있던 곽 감독이 냉소를 금치 못했다."그래, 이제야 알 것 같네, 지민 씨가 무슨 짓을 하든 여기에 출연하지 못할 것 같은데, 그만 여기서 나가주는 게 어때?"곽 감독은 노발대발 화를 내며 밖으로 나가버렸고 상황을 지켜보던 옆 사람들은 서로 눈치를 보았다.조감독은 화가 단단히 난 곽 감독에게 다가갔다."감독님, 이제 어떡하죠?""어떡하긴 뭘 어떡해! 짐 싸서 집 가야지, 돈이 없는데 무슨 수로 촬영을 해?"곽 감독의 안색이 파랗게 변했다.현장에 있던 스태프들이 주섬주섬 짐을 싸기 시작했다.화를 참지 못한 감독은 발 앞에 놓인 철판을 발로 뻥 찼다. 그의 커리어에 오점이 난 것과 같았다.이 소식을 들은 손호영 역시 자기 스태프들을 데리고 짐을 챙겼다.떠날 채비를 하는 손호영에게 감독은 잽싸게 달려가 조심스럽게 미소를 지었다."호영 씨, 뭐가 그렇게 급해요, 우리 촬영팀과 제작진들 운명이 호영 씨 손에 달려 있어요."손호영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담담하게 말했다."감독님, 이 일은 저도 어쩔 수 없어요."곽 감독은 당황했다."그러지 말고요~ 애초에 유주 씨를 추천한 것도 호영 씨잖아요. 호영 씨는 우리한테 두 분의 관계에 관해 얘기하지 않아 지금 이 사달이 난 건데, 어떻게 보면 호영 씨 책임도 있다고요!"손호영은 어이가 없었지만, 미소를 유지하며 해명했다."죄송합니다, 근데 저도 방금 알았어요. 감독님보다 더 늦게 알았고, 제가 유주 씨를 카메오 출연으로 추천한 것은 김하늘 감독님의 영화에서 그분 연기력이 뛰어나서, 이 촬영도 무리 없이 할 것 같아서 추천한 거예요. 다른 뜻은 없었으니 오해하지 말아 주세요."그는 가볍게 인사를 한 뒤 걸음을 옮겼다.곽 감독은 손호영이라는 마지막 지푸라기를 놓치려 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입술을 살짝 깨물며 모든 걱정거리와 떨리는 기분을 감추었다. 그의 진짜 심정은 밖으로 티 나지 않았다.그는 박수혁의 사람을 빼앗을 자신이 없었다."다른 감정은 무슨, 유주 씨와 하늘 씨가 친구니까, 특별히 신경 써달라고 한 거예요."그의 목소리는 나른했고 느렸다. 불편한 기색을 살짝 띠며 고개를 숙여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무심하게 대답하는 그의 모습에 스태프는 덩달아 고개를 끄덕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미안해요, 제가 쓸데없는 생각을 했어요. 김 대표님 때문이었군요, 다행이에요, 호영 씨도 얼른 연애해야 할 텐데, 매니저가 그러는데 호영 씨는 일상생활이 짜인 계획대로 움직이는 로봇 같다고 하던데요."손호영은 미소를 지으며 기지개를 켜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대답했다."됐어요, 결혼 한 번으로 충분해요, 이젠 사람을 만나는 게 두려워요, 흥미도 없고요."말을 마친 손호영은 수면 안대를 찾아 눈을 가린 뒤 등을 기댔다. 스태프는 멋쩍은 듯 미소를 지으며 더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손호영이 남유주에게 다른 감정을 품은 게 아니어서 다행이라 여겼다. 어쨌든 박수혁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인내심으로 참고 있었다.강지민 같은 연예인도 망하게 할 수 있는 게 연예계였다. 오늘의 스타가 내일의 스타라고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다. 손호영은 연예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행동에 조심해야 했다. 남유주는 병실에서 물건을 정리했다.바깥바람을 맛본 박수혁은 병원에 더는 머물고 싶지 않았다. 그는 내일 당장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남유주는 집으로 돌아가는 편이 이곳에 있는 것보다 나을 거 같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래서 흔쾌히 동의하고 고용인과 함께 물건을 정리하기 시작했다.박수혁은 선글라스를 끼고 조용히 이한석이 보고하는 회사 업무를 듣고 있었다.휴대폰을 찾기 위해 남유주는 사방을 둘러보았다."내 휴대폰 못 봤어요?"박수혁은 휴대폰을 옷 주머니에서 꺼냈다. "이거?"남유주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거기 있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