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그저 입술을 살짝 깨물며 모든 걱정거리와 떨리는 기분을 감추었다. 그의 진짜 심정은 밖으로 티 나지 않았다.그는 박수혁의 사람을 빼앗을 자신이 없었다."다른 감정은 무슨, 유주 씨와 하늘 씨가 친구니까, 특별히 신경 써달라고 한 거예요."그의 목소리는 나른했고 느렸다. 불편한 기색을 살짝 띠며 고개를 숙여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무심하게 대답하는 그의 모습에 스태프는 덩달아 고개를 끄덕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미안해요, 제가 쓸데없는 생각을 했어요. 김 대표님 때문이었군요, 다행이에요, 호영 씨도 얼른 연애해야 할 텐데, 매니저가 그러는데 호영 씨는 일상생활이 짜인 계획대로 움직이는 로봇 같다고 하던데요."손호영은 미소를 지으며 기지개를 켜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대답했다."됐어요, 결혼 한 번으로 충분해요, 이젠 사람을 만나는 게 두려워요, 흥미도 없고요."말을 마친 손호영은 수면 안대를 찾아 눈을 가린 뒤 등을 기댔다. 스태프는 멋쩍은 듯 미소를 지으며 더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손호영이 남유주에게 다른 감정을 품은 게 아니어서 다행이라 여겼다. 어쨌든 박수혁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인내심으로 참고 있었다.강지민 같은 연예인도 망하게 할 수 있는 게 연예계였다. 오늘의 스타가 내일의 스타라고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다. 손호영은 연예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행동에 조심해야 했다. 남유주는 병실에서 물건을 정리했다.바깥바람을 맛본 박수혁은 병원에 더는 머물고 싶지 않았다. 그는 내일 당장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남유주는 집으로 돌아가는 편이 이곳에 있는 것보다 나을 거 같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래서 흔쾌히 동의하고 고용인과 함께 물건을 정리하기 시작했다.박수혁은 선글라스를 끼고 조용히 이한석이 보고하는 회사 업무를 듣고 있었다.휴대폰을 찾기 위해 남유주는 사방을 둘러보았다."내 휴대폰 못 봤어요?"박수혁은 휴대폰을 옷 주머니에서 꺼냈다. "이거?"남유주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거기 있었네요
작은 불빛은 은하수가 바다에 쏟아지는 것 같았다. 샹들리에조차 화려하고 정교해서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박수혁이 나타나자 많은 사람이 그에게 다가가 인사를 했다. 서로의 손을 꼭 잡은 둘의 모습에 그들은 의미심장하게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대표님, 얼마 전에 사고가 나셨다고 해서 걱정이 되어 문병하러 가려고 했는데, 여기서 이렇게 보게 될 줄 몰랐네요! 무사하셔서 참으로 다행입니다!""그러니까요. 눈치 없는 여자가 일부러 쳤다고 하던데, 맞습니까? 그런 여자들은 혼쭐이 나 봐야 정신을 차립니다. 남자의 시선을 끌기 위해 별짓을 다 하는 사람들은 상종할 인간이 안 됩니다.""그러게요, 여자라고 조용히 넘어가면 안 됩니다.""이번 기회에 정신을 차리게 해야 합니다!"사람들은 박수혁을 위해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덕분에 옆에 서 있던 남유주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그들은 아마도 그 여자가 그녀라는 것을 모르는 듯했다. 못마땅했지만 그렇다고 그들에게 진실을 말할 수도 없었기에 남유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박수혁은 그들에게 몇 마디 인사를 건넨 뒤 대화 주제를 전환했다.그가 원형 테이블에 앉자, 적지 않은 회사 총수들이 박수혁에게 사업 제안을 하려는 듯 눈치를 보고 있었다.남유주도 그것을 눈치채고 이 기회에 밖에 나가 한숨을 돌릴 생각이었다. 박수혁은 살짝 고개를 돌려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뭐 좀 먹고 있어, 간만에 가서 바람도 쐬고, 늦지 않게 돌아와."그녀는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에서 일어섰다. 지켜보던 사람들은 그녀를 향한 박수혁의 마음을 알 수 없었기에 가벼운 농담도 하지 않았다.그녀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누군가 먼저 입을 열었다."박 대표님 옆에 언제부터 저런 절세미인이 계셨습니까? 연예인인 줄 알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본 기억이 없어서요!""그러게요, 대표님 혹시 신인인가요? 대표님이 대스타로 밀어주시려고요?"그들은 전부 업계의 큰손이었고 박수혁이 데려온 여자의 정체에 대
남유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장소에서 날카롭게 굴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천우명은 손을 내밀며 눈을 가늘게 떴다."유주 씨는 듣던 대로 미인이시네요. 스크린으로 볼 때보다 훨씬 아름다우세요. 그 영화 저도 봤어요, 아주 돋보이던데요, 천상 연예인이세요. 제가 최근에 영화 언터테이먼트 준비하고 있는데 우리 회사랑 계약하는 건 어때요? 여주인공 시켜 드릴 수 있어요."남유주는 눈웃음을 지으며 그와 손을 가볍게 맞잡은 뒤 바로 손을 놓았다.그녀가 천우명의 소속 배우가 된다면 자기가 먼저 지쳐 죽을지도 모른다고 여겼다.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완곡하게 거절했다. "저는 연기에 관심이 없어서요."천우명은 그녀의 거절에 눈빛이 흔들렸지만 단념하지 않고 그녀에게 말했다."연기가 얼마나 재밌는데요, 얼마나 화려한 직업인데요, 설마 이런 생활에 관심이 없는 거예요? 작품 몇 개만 하면 바로 상 받을 수 있어요.그럼, 예술가가 되는 거죠."남유주는 웃음을 참을 수 없어 고개를 떨구었다."글쎄요, 제안은 감사하지만 전 정말 관심이 없어요."천우명이 상을 돈으로 산 이유는 연예계에서 지위를 차지하기 위해서였다. 예술가 따위는 헛소리에 불과했다. 하이힐 소리가 들려왔다."우명아."천우명은 인기척이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익숙한 얼굴이 남유주의 어깨를 살짝 두드렸다."유주 씨, 소개할게요. 여긴 내 친구 지민이에요."남유주는 나른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강지민을 한 번 쳐다본 뒤 다시 시선을 돌렸다. 그녀와 인사할 의향이 없었다. 여기에서 강지민과 천우명을 만난 게 이상했다.사업가들의 파티에 연예인이 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자기도 박수혁을 따라 여기에 온 것으로 보아, 저 둘도 그럴 거라고 여겼다. 천우명은 잠시 멈칫하더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둘 사이에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지민이가 이번 기회에 특별히 화해하려고 여기를 찾아온 거에요. 큰일도 아닌데 이번 기회에 둘이 화해하는 건 어때요?"남유주는 하품이 나오는 것을 참
천우명은 강지민의 일을 알게 된 후 바로 그녀를 돕기 위해 찾아왔다.배우 일을 하던 초창기 돈을 주고 주연배우 자리를 꿰차려고 하자 여주로 지정되었던 여자가 그만두는 사건이 있었다.이 일은 그에게 상처로 남았다. 이 일을 알게 된 강지민은 선뜻 나서서 대신 여주를 자청했고 덕분에 그는 난처한 상황을 피할 수 있었다.두 사람은 좋은 의남매였고 좋은 친구가 되었다. 강지민이 어디서 괴롭힘을 당하면 그가 나서서 도왔다. 남유주가 강지민을 괴롭히는 듯하자, 그는 참을 수 없었다.친해진 것 같아서 그녀에게 몇 마디 조언을 해줬을 뿐인데, 남유주가 그 조언을 거부하자 천우명은 화가 났다. 강지민은 천우명의 팔을 살짝 잡아당겼다."우명아, 진정해. 네가 이러면 유주 씨가 놀라잖아.""뭐가 두렵다고 이렇게 해? 박 대표님이 이 자리에 계신더고 하더라도 우리 가문한테는 절대 어쩌지 못해. 지민아, 겁먹지 마, 널 가만히 두지 않으면 내가 준비하는 회사로 와, 그럼 주인공 자리도 전부 너한테 몰아줄게, 박수혁이 하는 지원, 나라고 못할 것 같아?"강지민은 감격에 겨워 천우명을 바라보며 살짝 울억였다."고마워, 우명아."천우명이 뭐라고 대답하기 전에 남유주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이런 목적으로 접근한 줄 알았으면 진작에 협조했을 텐데요. 그냥 이 일을 감당할 억울한 사람을 찾고 싶었던 거잖아요? 지민 씨한테는 안타까운 일이겠지만, 지민 씨는 애초에 나한테 사과하려고 찾아온 게 아니잖아요? 대신 사과해 줄 사람을 데리고 왔네요."남유주는 강지민의 속셈을 알아차리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강지민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천우명은 남유주의 허튼소리를 믿지 않았다."이간질 좀 그만 해요. 박수혁 대표가 당신의 그 뱀 같은 혀에 홀려서 정신을 못 차리나 본데, 당신이 안쓰러워서 알려주는 거예요. 박 대표가 오늘 여기에 왜 온 줄 알아요?" 천우명의 얼굴에 자신감이 차올랐다.비웃음을 조금도 숨기지 않았다. 남유주의 거짓 껍데기를 벗겨 내고
남유주는 천우명에게 원수 같은 사람이었다, 전혀 호감이 가지 않는 인물이었다."도대체 어떻게 할 거에요? 내가 이 일에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는가 본데, 난 당신처럼 도덕이 없는 사람은 처음이라고요!"남유주는 냉소했다."누가 남인지 진짜 모르는 것 같네요, 그쪽 누나야말로 남이에요. 이런 말을 하는 걸 보니 가정 교육이 어느 정도인지 알 것 같네요. 당신들과 할 말이 없네요, 수혁 씨와 가족이 되길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바란다니 할 말이 없네요, 직접 찾아가 봐요. 난 자애로운 사람으로 더 이상 할 마음이 없으니까요."그녀는 말을 마친 뒤 강지민을 힐끗 쳐다보았다. 강지민의 얼굴이 약간 굳어졌다. 강지민은 천우명을 힐끗 쳐다보았다. 남유주가 다시 입을 열었다.그리고 내가 당신들처럼 사모님이 되길 바라는 것 같아요? 그 사람이 나한테 간절하게 부탁하지 않는 이상, 설령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청혼하더라도 난 허락하지 않을 거예요! 나한테 달라붙는 건 그 사람이라고요!"연애만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천우명의 얼굴은 보기 좋게 굳어졌다."정말 염치를 모르는 사람이군요. 우리 누나가 시집간 뒤에도 당신이 박 대표와 함께 있다면 그때는 당신을 정리해버릴..."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막대기가 난간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박수혁의 냉랭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정리하다니? 누굴 정리한다는 거지?"차분한 박수혁의 목소리에서 그가 화를 억누르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천우명은 멍한 얼굴로 선글라스를 낀 채 계단에서 올라오는 박수혁을 바라보았다. 천우명의 얼굴이 구겨졌다, 쉽게 다가갈 수 없는 분위기였다.그는 박수혁이 이렇게 갑자기 나타날 줄 생각하지 못했다. 순간 자기 눈을 의심하지 않을수 없었다.박수혁이 이 층까지 올라오는 것은 무리라고 여겼다.천우명은 순간 겁이 났다. 옆에 있던 강지민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가만히 서 있었다.남유주는 이 상황에 웃음을 터트리며 다가가 그의 팔을 잡았다."당
“수혁 씨, 한쪽 말만 들으시면 안 돼요. 속에 없는 소리로 속이려는 거일 수도 있어요. 그 여자의 목적은 결국 당신의 돈이에요.방금 유주 씨도 그랬잖아요. 지금 당신이 여기서 무릎을 꿇고 청혼한다고 해도 그 여자는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을 거예요. 그 여자가 원하는건 당신의 사랑이 아니라 돈이라고요!”강지민은 박수혁이 정신 차리기를 바랬다.다른 사람이 듣든지 말든지 신경 쓰지 않았다.하지만 그녀의 말이 끝난 뒤,현장 분위기는 싸늘해졌다.박수혁의 표정도 어두워졌다.선글라스를 끼고 있어 표정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는데도 느낄 수 있었다.부드러운 얼굴선은 다소 경직되어 날카로워 보였고, 몸에는 힘이 들어갔다.남유주는 그와 가까이 있었다. 그녀는 그의 주변 기운이 점점 차가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그녀를 잡고 있던 그의 손에도 갑자기 힘이 들어갔다.손을 매우 세게 움켜쥐었다.남유주는 고통스러웠다.아래층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가 2층의 적막과는 상반되었다.그 순간.웨이터가 천유희의 아버지와 천유희를 데리고 왔다.천유희는 자진해서 그를 따라온 거였다.무슨 일인지 천우명이 박수혁을 화나게 해 천유희의 아버지께서 사과를 하라고 한 것이다.“박 대표님, 내려가서 놀지 않으십니까? 무슨 일 있으신가요?”천유희의 아버지께서 다가왔고, 박수혁과 그의 옆에 꼭 붙어 있는 여자를 보았다. 두 사람은 서로 바짝 붙어 손을 잡고 있었다.그리고 천우명은 험상궂은 표정으로 반대편에 서 있었고, 그 옆에는 나이 많은 여자가 서 있었다.이 상황이 본 천유희의 아버지는 몹시 당황스러워 했다.그는 특히 딸이 이 장면을 보지 않았으면 했다.하지만 너무 늦었다. 천유희는 모든 것을 보았고 두 사람이 손을 꼭 잡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또한 남유주가 약간 짜증 난 듯한 눈빛으로 남자를 쳐다보고 있는 걸 보았다. 남자의 손에 힘을너무 줘서 아파하는 것처럼 보였다.그런 애매한 분위기에, 제 3자가 낄 자리는 없어 보였다.마치 연회가 끝난 뒤 입구 앞에서 박수혁이
“가요...”천유희의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박수혁을 보며 차분하게 미소를 지었다. 마지막으로 남유주에게 시선을 돌렸다.“그럼, 저희는 가보겠습니다. 박 대표님, 유주 씨, 두 분의 행복을 빕니다.”이것이 박수혁의 최종 목표였다.남유주를 모두의 앞으로 데려와 그들의 관계에 대해 알리는 것.천유희의 아버지를 고개 숙여 사죄하게 만들고 굴욕적인 모습을 보이게 함으로써 그들의 결혼 욕심을 사라지게 했다.봐라, 그의 멍청한 딸은 말 몇 마디에 계약하지 않겠다고 하지 않나.이 모든 것이 박수혁의 목적이었다.천유희의 아버지는 그래도 협력을 원했다.왜냐면 그는 천유희가 그에게 시집가고 싶어 해도 그가 거절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그가 오늘 이 자리에 온 것도 그를 떠보기 위함이었다.결과는 이미 나왔다.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남유주도 조금 너무 했다고 생각했다. 천유희의 아버지는 천우명과는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그는 매우 예의 있고 경우가 있는 사람이었다.그가 이렇게 사과하니, 남유주는 약간 미안함을 느꼈다.그가 말을 마치고 떠나자, 남유주는 참지 못하고 말했다.“천 회장은 정직한 분이세요. 사실 저는 그 사람 말을 별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하지만 천종환 씨도 자신을 믿고 말썽 일으키지 말라고 경고를 주긴 해야 해요.저와 천 회장님은 한 번도 얼굴을 붉힌 적이 없어요. 제대로 된 상황 파악도 안 하고 항상 자식들을 감싸주셨는데, 자식들은 결국 일을 크게 벌여 그 뒤처리를 가족들에게 떠넘겼죠. 그 사람들은 그 뒤에 숨어서 아무 말도 안 했어요.아직도 자신의 잘못을 모른다면, 이 정도 대가는 치러야 한다고 생각해요.”남유주가 말을 마쳤다.천종환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천우명을 보았다.천우명은 불안해하며 곧장 강지민을 바라보았다. 강지민은 당황하여 고개를 저으며 해명했다.“저, 저는 아니에요…”천종환은 오히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남유주를 보곤 웃으며 고개를 숙인 뒤 자식들을 데리고 사라졌다.강지
남유주는 두 사람의 기분을 망칠까 봐 돌아가지 않으려고 했다.그녀는 그의 손을 뿌리치며 얘기했다. “대답하고 싶지 않아.”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엘리베이터 문이 천천히 열렸다.밖에 이미 기다리고 있던 직원이 예의 있게 안내했다:“박 대표님, 이쪽으로 오시죠, 박대한님이 뵙자고 하십니다.”박수혁은 놀라지 않았다.그는 박봉원이 마음에 들어 하는 천씨 집안을 내쫓아으니, 화가 나 있는 상태일 것이다!하지만 그렇다고 뭘 할 수 있겠는가?박수혁은 입술을 깨물며, 남유주의 팔을 꼬집으며 말했다:“일단 잠깐 앉아, 곧 돌아올 테니까. 아까 얘기는 집에 가서 다시 해.”어쩌면 그녀의 속마음을 캐묻지 않아야 했을지도 모른다.하지만 이걸 확실히 하지 않으면, 그의 마음에 계속 걸렸다.남유주는 아무 일도 없는 듯 웃었지만 밝지는 않았다.그녀는 돌아서서 선실로 가버렸다.큰 연회장에는 한 사람도 없었다.모두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하지만 탁자의 옆에 두 사람이 한 명은 앉아있고 한 명은 서 있었다.앉아있는 사람은 약간 통통한 몸에 어딘가 장애가 있는 듯 보였으나 옷으로 가리고 있었다.겉보기에는 정상적으로 보였으며, 젊었을 때는 분명 잘생겼을 것이다.다만 현재는 나이가 있어 조금 차분하고 음침한 느낌이 들기까지 했다.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박수혁과 비슷한 이목구비가 뚜렷한 스타일이었다.서 있는 사람은 한두 번 본 적이 있는 백발의 노인, 백명이였다.백명이 소리 없이 와서 박봉원에게 귓속말을 했다.무표정으로 있던 박봉원은 듣자마자 천천히 두 눈을 크게 떴다.그의 눈동자는 어두우면서 밝았고, 사업을 하는 사람의 총명함과 계산적인 것이 느껴지는 한마디로 속을 알 수 없는 신비함까지 느껴졌다.“유주씨, 앉으시죠.”박봉원이 낮게 목소리를 깔았으며, 눈은 피로감에 지쳐 보였다.남유주는 입술을 깨물며 다가가 밝게 이야기했다:“일부러 박수혁을 미끼로 쓰신 건가요? 사람을 시켜 데려오게 하고는 진짜 만나려고 하는 사람은 제가 아니였나요?”“유주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