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유라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네 사람? 네 부하가 되라는 소리야?”민하준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이혼하고 나랑 결혼해야 내 사람이지.”몇 번 잔 거로는 부족하다는 얘기였다.한유라는 입을 꾹 다물었다.심강열과 이혼하고 싶지 않았다.그들은 서로 양보하고 노력하며 서로에 대한 신뢰를 쌓았다.그런데 그런 사람을 버리고 민하준과 결혼한다? 절대 그럴 일은 없었다!그녀가 침묵하자 민하준의 표정도 차갑게 식었다.“모든 걸 내걸지 않겠으면 궁금해하지도 마. 난 바보가 아니야. 그 증거 들고 형사 찾아가려고?”한유라는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그녀가 말했다.“진심으로 날 원해서 결혼하자는 건 아니잖아. 내가 심강열과 결혼한 게 괘씸해서 보복하려는 거잖아. 그런데 이런 사람과 내가 왜 결혼해야 하지? 나중에 네가 나 버리면 난 모든 걸 잃게 되는데? 나도 그런 바보는 아니야.”민하준에게 목적을 들키기 싫었기에 그녀는 아무 핑계나 둘러댔다.민하준은 웃으며 그녀의 귀를 살짝 꼬집었다.“역시 어떻게든 손해는 안 보려고 하네.”그는 담배를 비벼 끄고 그녀를 이끌고 아래로 내려갔다.“이제 가자.”한유라는 인상을 확 찌푸렸다.이게 끝이라고?일부러 데리고 나와서 자신이 무슨 사업을 하는지 보여주려고 한 걸까?술집 사장의 배웅을 받으며 나온 한유라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아까 사람들은 다 어디 갔어?”남자와 여자가 그렇게 몰려다니는데 주의를 안 끌었다는 게 신기했다.하지만 그녀가 2층에 있을 때, 아래층에는 다른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왜일까?어떻게 그렇게 빨리 철수할 수 있었을까?민하준은 피식 웃으며 그녀에게 말했다.“정말 눈썰미가 없구나. 이 술집에 문이 몇 개인데? 비상통로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지?”한유라는 모르는 사실이었다.춤 추러 와서 술 마시고 춤 추다가 돌아갔으니 당연히 정문밖에 이용하지 않았다.술집에 비상통로가 있다는 건 예상밖이었다.그래서 가면 쓴 사람들이 그 빠른 시간에 사라졌던 것
민하준은 집요하게 한유라의 눈을 응시했다.그녀의 눈빛에서 과거에 대한 미련 같은 것을 찾으려는 것 같았다.그걸 바라고 자존심 상하는 과거를 털어놓은 것이었다.이렇게까지 해명했는데 조금은 믿어주지 않을까?한유라는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그거 나 안 믿어.”그녀는 손을 빼려고 했지만 민하준은 손아귀에 힘을 꽉 주었다.분노가 그의 머리를 지배하고 정신은 거의 미쳐버릴 것 같았다.하지만 진실이라고 달라질 게 있을까?이 남자 옆에서 같이 타락해야 할까?그녀는 혼란스럽기는 했지만 정신은 멀쩡했다.그녀가 기억하는 건 작년의 마지막 날 밤에 그가 자신의 집으로 침입해서 했던 만행이었다.흔들림?그런 건 없었다.자신의 인생을 망가뜨린 남자에게 굴복하고 싶지도 않았다.과거에 사랑했던 사람일지라도.그녀는 오로지 그를 감방에 처넣고 싶은 생각뿐이었다.민하준의 눈빛이 서서히 어두워졌다. 가슴은 칼에 찔린 것처럼 아프고 숨이 막혔다.하지만 겉으로는 여전히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한유라, 많이 컸네. 이제 잘 속지도 않아.”그는 다시는 자신의 마음을 그녀 앞에서 드러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그녀가 믿지 않아도 곁에 남아 있으면 언젠가는 과거로 돌아갈 것이다.한유라는 억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과거랑 똑 같은 수법이잖아. 하지만 걱정하지 마. 미연이랑 어떤 일이 있었든 다른 여자랑 어쨌든 난 신경 쓰고 싶지 않아.”그녀는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그녀가 꿈꾸는 미래에는 오직 한 사람, 심강열뿐이었다.민하준? 지옥에나 가라지!곽현이 밀크티를 들고 차에 올랐다.“한유라 씨, 이거 맞아요?”한유라는 익숙한 테이크아웃 컵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고마워.”그녀는 컵에 빨대를 꽂고 입에 물고는 만족스러운 한숨을 내쉬었다.그런데 옆에 있던 민하준이 밀크티를 가로채더니 한입 마시고 다시 돌려주었다.“맛없네.”입 안이 온통 쓴맛이었다.한유라는 웃기만 할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차가 출발했다.그녀는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창밖에서 시선을
민하준이 뒤에서 나지막이 웃었다.‘방이 꽤 가까웠는데 그날 밤의 소리를 들은 게 아닐까?’그 더러운 눈빛은 옹졸하다 못해 혐오감을 자아냈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니 한유라는 속이 메스꺼워졌다.거의 끝자락에 다다르자 마침내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여기 곽현 방이야.”한유라는 잠시 주춤하더니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녀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곽현은 건달 장민과는 다르게 차분하고 침착하며 신비로운 이미지였고, 뭔가 무거운 비밀을 안고 있는 사람 같았다.내부는 깔끔하고 정갈했으며 한눈에 끝까지 볼 수 있는 구조로 아무런 놀라움의 요소도 없었다.민하준이 그녀의 뒤에 서더니 복잡한 어조로 말했다.“왜? 곽현이한테 관심이라도 생겼어?”한유라는 한 발 뒤로 물러서서 문을 닫더니 두 손을 감싸 쥐며 말했다.“안 될 거 뭐 있어? 난 훌륭한 남자한테 늘 관심 있거든?”민하준은 알 수 없는 눈빛으로 그녀의 턱을 잡고는 말했다.“날 화나게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난 네 목적을 알고 있어.”한유라는 눈을 희번덕하더니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말했다.“내가 곽현이 꼬시기라도 할까 봐 걱정돼? 걔를 못 믿는 거야?”“난 널 못 믿는 거야.”두 사람이 주고받는 말은 마치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무언의 전쟁과도 같았고, 누구도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한유라는 피식 웃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끝방에 도착했다.그녀는 여유롭게 걸어가서 방문을 열려고 하자 민하준이 입을 열었다.“여기는 내 방이야.”한유라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왜? 보면 안 될 거라도 있어?”민하준이 그녀를 몇 초 동안 응시하다가 대답했다.“봐도 돼.”하지만 그녀는 바로 방문을 열지 않았고,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곁눈질로 민하준을 보면서 무심하게 물었다.“미연이 방은 어딘데? 저기야?”민하준은 그 말을 듣고는 얼굴색이 굳어졌다.방금 한유라가 모든 방의 문을 열어봤는데도 여자가 살았던 흔적이 없었다는 것을 민하준도 의식했기 때문이다. 그는 미연이 어디에 사는지는 생각해 본 적이
민하준의 말에 장민의 조심스러워하던 표정은 순식간에 굳어졌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그를 바라봤다. 몇 발짝 앞으로 가서 그의 앞에 서서는 당황한 듯 말했다.“형님, 절 버리시려고요? 제가 잘못했어요. 때리셔도 되고 욕하셔도 되니까……”미연도 한 발짝 앞으로 나가더니 말했다,“이 일은 모두 제 잘못입니다. 물건 다 치울게요. 저 때문에 두 분 싸우지 말아요!”말은 마친 그녀는 들어가서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고, 민하준이 어두운 표정으로 소리쳤다.“기다려. 곽현아, 올라와……”곽현은 허겁지겁 달려왔고, 펼쳐진 광경을 보고는 의아해했다. 민하준이 턱을 치켜들며 말했다.“가서 쟤가 물건 챙기는 거 도와줘. 똑똑히 봐. 가져가지 말아야 할 건 가져가선 안 돼.”곽현이 곧장 엄숙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미연의 얼굴은 더욱 창백해졌다. 그녀의 어깨는 김빠진 콜라처럼 축 처져 있었고, 어색한 침묵이 방안을 감돌았다. 민하준은 한 번도 그녀를 자기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이렇게까지 화내는 건 내가 뭘 알까 봐 그러는 건가? 아니면 가져가지 말아야 할 것을 가져갈 까 봐 두려운 걸까?’미연은 오만가지 생각을 하면서 억지로 천천히 물건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곽현이 올라온 순간, 장민은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알아차렸다. 장민은 얼굴이 창백해져서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외딴 여자를 민하준의 방에 들어오게 했으니, 그는 금기를 위반한 것이다. 민하준이 한발 다가가 장민의 어깨를 두드리더니 입을 열었다.“우리가 하는 사업이 정정당당한 거라고 생각해? 여자 몇 명이랑 자는 게 아무 일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냐고. 사람 일은 모르는 거야. 만약 네가 믿고 있던 미연이가 내가 죄를 저지른 증거를 들고 나를 고발한다면 어떡할 건데? 그땐 후회해도 소용없어. 생각이나 해 봤어?”장민은 민하준이 자신의 어깨를 두드리는 그 손이 한없이 무겁게 느껴졌고, 잘못을 제대로 깨달은 그는 안절부절못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이제 민하준과 이 정도 좋은 관계를 유지했으니
민하준은 고개를 살짝 내려 담배 한 개비에 불을 붙였다. 타들어 가는 담배를 손에 쥔 채 어두운 눈동자로 앞으로의 일들을 계획했다. 그는 남들 몰래 세력을 키워왔다. 어르신의 뒷배만 누군지 알게 된다면 모든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 것이다.항상 어르신을 위해 일 처리를 맡아왔지만 까놓고 말해 그에게 믿고 맡길 수 있었던“수하”에 그치지 않았다. 민하준은 이런 지위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그의 모든 것을 그 영감이 망쳐놓았다. 자신의 영역에 끌어들인다고 하여 순순히 말을 들을 민하준이 아니었다.민하준이 눈을 살며시 감았다. 마치 눈앞에서 한유라가 자신에게 걸어오는 듯했다. 그의 목젖이 떨리고 손에 쥐고 있던 담배를 바닥에 지졌다. 한유라가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알고 있지만 민하준은 죽도록 그녀를 원하고 있었다. 잠시 생각을 마친 민하준은 그 자리에 일어났다. 복잡했던 머리가 정리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눈앞에 있던 그녀도 사라졌다. ‘그녀가 여기에 올 리가 없잖아.’설령 그녀를 일 년 반 동안 가둬놓더라고 그녀 성격상 여기를 찾아오지는 않을 것이다. 민하준은 간질거리는 마음에 크게 한숨을 몰아쉬었다. 고개를 돌려 옆에 있던 책장의 서랍을 열었다. 안에는 많은 약들과 주사기가 있었다. 익숙한 듯 약에 손을 뻗으려던 그때 갑자기 무언가 생각이 난 민하준은 재빨리 서랍을 닫았다. 다시는 이런 것에 의존하지 않아! 그는 더 이상 약 없이도 버틸 수 있었다. 약을 끊는 독한 의지가 없었더라면 어르신의 눈에도 들지 못했을 것이다. 이틀 사이에 있었던 일을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그가 추락했던 어제와 오늘. 그가 그토록 원했던 여자가 다른 사람과 결혼했던 날. 그의 사업이 잇따라 충격을 받은 날. 그의 인생에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죽도록 노력해서 얻으려고 했던 것들이 하루아침에 거품이 된 채 사라졌다. 이때 운명적으로 교통사고가 난 어르신을 구했고 그가 민하준의 인생을 새롭게 변하게 했다. 민하준은 어르신 대신 차에
한유라가 엄마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민하준에게 한유라란 항상 철없는 아이 같은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영원히 철부지 소녀일 줄 알았다. 항상 그가 생각지 못한 일을 터트리곤 했으니... 그녀가 아이를? 생각도 하기 싫다. 그가 간신히 붙잡고 있던 정신 줄이 끊어졌다. 둘이 이렇게 가까운 사이였었다니... 그가 없는 세상에서 그녀는 이미 아이의 엄마가 될 준비를 하고 있다니... 그녀의 미래에는 민하준이 없었다. 민하준의 눈이 서늘해졌다. 생각보다 더 큰 아픔과 시련이 몰려왔다. 민하준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는 손을 내뻗어 그녀를 확 끌어당겼다. “멀리도 생각했네, 한유라. 만약 내가 널 찾으러 가지 않는다면 평생 날 찾지도 않았겠어.”민하준은 그녀의 턱을 붙잡고 차가운 눈빛으로 이미 알고 있는 답을 한유라에게 물었다.“그렇지?”한유라는 그의 힘에 눌려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그에 대한 분노로 이를 깨물었다. 하지만 심강열의 안위를 생각한 한유라는 자신이 성급했음을 후회했다. 지금의 민하준은 미친놈이다. 자신이 원하는 답이 나오지 못한다면 온갖 방법으로 그녀를 괴롭힐 것이다. 한유라는 천천히 살짝 웃으면서 말했다.“아니야, 전에는 널 사랑했었어.”민하준의 눈빛이 살짝 돌아왔다. 그는 눈을 깜빡이면서 한유라의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 고민하고 있었다. 칠흑같은 어두운 밤. 그의 굳었던 몸이 살며시 풀어지고 한유라에게 입을 맞추려던 순간 감정을 억제하지 못한 한유라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역시. 거짓말이었군. 한유라가 해석할 겨를도 없이 민하준은 폭우처럼 그녀에게 휘몰아쳤다. 그는 자신의 소유욕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한유라의 얼굴을 잡아 자신을 보게 하였다. 둘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민하준은 점점 더 세게 그녀에게 깊이 파고들었다. 한바탕 끝난 후 한유라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샤워하러 가려고 했다. 민하준이 그런 그녀를 잡았다.“어디가?”민하준의 목소리는 낮고 걸
흠칫하던 민하준이 곧 아무렇지 않다는 듯 샌드위치 하나를 집어들었다.“괜찮아.”그리고 잠깐 고민하던 민하준은 샌드위치 대신 우유와 정교한 비주얼의 디저트를 집어 쟁반에 올린 뒤 2층으로 올라갔다.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방혁재가 고개를 저었다.“형님은 왜 인질한테 저렇게 잘해 주는 거지?”“전 여친이거든.”이에 곽현이 아무 감정 없는 목소리로 툭 대꾸했다.문을 열고 들어간 방 안에는 샤워를 마치고 창가에 앉아있는 한유라의 모습이 보였다.마치 인형처럼 눈 한 번 깜박하지 않는 한유라의 머릿결에서 샴푸의 산뜻한 향기가 풍겨왔다.쟁반을 테이블에 내려놓은 민하준이 물었다.“깼으면 내려오지 그랬어. 셰프 한 명을 새로 구했는데 솜씨가 꽤 좋더라고.”어차피 대답을 바라고 한 말이 아니었다. 아직도 화가 잔뜩 난 상태일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그의 예상과 달리 고개를 돌린 한유라는 미소마저 짓고 있었다.“입맛이 없어서.”예상과 다른 반응에 민하준이 어떠한 리액션도 하지 못하던 그때, 한유라의 말이 이어졌다.“나, 토스트 먹고 싶어.”그리고 다음 순간, 민하준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가만히 있을 땐 고독한 늑대 같은 차가운 인상이지만 미소를 지을 때면 날카로운 이목구비가 전부 가려질 정도로 찬란한 웃음을 가진 남자, 한때 한유라가 가장 사랑했던 모습이기도 했다.적어도 무언가를 요구했다는 건 어제 일에 대한 책임을 더 묻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생각한 민하준은 고개를 끄덕인 뒤 다시 1층으로 내려갔다.올라갈 때와 그대로인 쟁반을 바라보던 노경우가 미간을 찌푸렸다.“안 드신답니까?”“토스트가 먹고 싶다네.”“예?”그리고 민하준은 대답 대신 소매를 걷은 채 주방으로 향했다.“내가 직접 만들 거야.”‘세상에나...’노경우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입을 떡 벌렸다.음식 냄새라면 질색하는 사람이 직접 요리라니.힐끗 곽현을 바라보니 역시 적잖게 놀란 표정이다.다행히 식자재와 주방도구들을 두루 갖춘 덕에 한참을 뚝딱대던 민하준은 곧 꽤
민하준은 살짝 긴장한 표정으로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하지만 한유라의 표정으로 보아 크게 의심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그냥 정말 궁금해서 던진 질문인 것 같았다.그는 그제야 표정을 풀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너 말고 다른 여자가 들어올 일은 없어. 어젯밤에 창문을 제대로 닫지 않았나 봐. 바람도 세더라.”그는 능청스럽게 화제를 돌렸지만 그 순간 한유라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어젯밤은 바람 한점 없는 고요한 날씨였다.“형님, 이분이 한유라 씨인가요?”주방에서 나온 방혁재가 반가운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한유라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거실을 둘러보았다. 재수 없는 멸치남이 보이지 않아서 기분이 조금은 좋아졌다.방혁재는 수더분하고 넉살 좋은 사람으로 보였다.하지만 민하준 신변의 사람을 믿을 수는 없었다.민하준은 기분이 좋은지 한유라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이쪽은 방혁재, 한때는 잘나가는 쉐프였으니까 앞으로 먹고 싶은 게 있으면 혁재한테 얘기하면 돼.”방혁재는 민하준의 은근한 칭찬에 싱글벙글 웃었다.“유라 씨, 드시고 싶은 게 있으면 언제든 얘기해요. 제가 모르는 메뉴라도 인터넷 치면 레시피는 다 나오니까요.”재수 없는 인간들이 사라지고 그나마 인상 좋아 보이는 사람이 들어왔다.여전히 감금된 상태이지만 전에 비하면 덜 숨이 막혔다.한유라도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민하준이 그녀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자 뒤에서 곽현이 따라왔다.그는 여전히 운전기사 역할을 수행했다. 민하준이 차 문을 열어주자 한유라는 대범하게 뒷좌석에 올라탔다. 뒤이어 차에 오른 민하준은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쇼핑하러 가자. 새 옷도 좀 장만해야지.”한유라는 놀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바람 쐬러 나온다고 했을 때는 지난번 경험이 있었기에 별로 기대도 하지 않았던 그녀였다.그런데 쇼핑을 간다고?사람이 많은 백화점에?한유라는 애써 흥분을 가라앉혀야 했다.뭔가 좀 이상했다.민하준은 재밌다는 듯이 그녀를 바라보며 웃었다.“왜? 쇼핑하러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