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예리는 자신도 모르게 움찔했지만 오늘부터는 박수혁의 방해가 없을 것이기에 더 이상 소은정이 두렵지 않았다.눈앞의 소은정만 없었다면 박예리는 절대 지금처럼 비참한 모습으로 살진 않았을 것이다. 여우 같은 저 여자가 박수혁을 꼬시고 옆에서 부추긴 탓에 그가 자신의 여동생에게 이토록 잔인했던 것이 분명했다.박예리의 모든 원망은 박수혁과 소은정으로부터 시작된 것이기에 저 두 사람은 반드시 죽어야 했다.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박예리가 소은정에게 따지려고 2층으로 향하려던 순간, 소은정 맞은편에 있던 남자를 보게 되자 발걸음을 멈추었다.전동하였다. 그는 싸늘하고 경고의 눈빛으로 박예리를 쳐다보고 있었고 윤재수가 누구에게 패배를 당했는지 잘 알고 있기에 박예리는 덜컥 겁이 났다.박수혁은 단지 윤재수를 죽게 만든 마지막 칼날일 뿐, 진정으로 그 칼을 휘두른 사람은 전동하였다.어차피 앞으로 복수할 기회는 많을 거라고 생각한 박예리는 겨우 마음을 진정시킨 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돌아서서 여유로운 모습으로 카페를 나섰다.하지만 밖에 나서던 순간, 낯선 남자 몇 명이 그녀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박예리 씨, 저희와 같이 갑시다.”“내가 누군지 알면서도 감히 날 건드려? 당신들 누가 보낸 거야?”표정이 확 굳은 박예리의 물음에 남자가 덤덤하게 대답했다.“박 대표님이 보냈습니다. 가시죠.”“우리 오빠… 우리 오빠 사고 난 거 아니었어요?”흠칫 놀란 박예리가 다급하게 물었지만 상대방은 여전히 덤덤한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았다.“박예리 씨, 가시죠.”동공이 심하게 흔들리던 박예리는 이내 차분해졌다. 만약 박수혁이 다치지 않았으면 구급차가 왔을 리가 없었기에 박수혁이 죽기 전에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린 것일 수도 있다.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박예리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다시 의기양양한 얼굴이었으며 이왕 이렇게 된 거 따라가서 박수혁의 죽기 전 비참한 모습이라도 구경하고 싶었다.박예리는 가슴을 쫙 펴고 남자들을 따라갔고 커피숍 2층에서 그녀가 떠나는 모습을
악에 받쳐 소리를 지른 박예리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으며 눈빛에는 오랜 시간 동안 쌓인 원망과 한이 서려 있었고 드디어 오늘 뼛속까지 박혀 있던 원망을 속 시원하게 내뱉은 것이다.그녀의 말에 흠칫 놀란 이한석은 이내 가엽고 할 말 잃은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다가 다시 싸늘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박예리 씨, 당신은 대표님을 이토록 원망하고 그 일들에 한을 품고 있으면서 대표님이 없으면 당신이 어떻게 살았을지 생각해 봤어요? 대표님이 없었다면 박예리 씨가 이렇게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었을 것 같아요? 회사에 박예리 씨보다 어린 여자애들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밤낮없이 일합니다. 대표님이 박예리 씨를 혼낸 것도 박예리 씨가 더 잘 됐으면 하는 마음일 뿐인데 그 마음을 그렇게 원망해요? 당신 뱃속에 있던 아이는 박 씨 가문의 원수의 아이입니다. 그 아이를 낳으면 아이는 나중에 어떻게 되고 박 씨 가문은 그 아이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요? 앞으로 영원히 다른 남자 안 만날 거예요? 더군다나 박 씨 어르신은 윤재수 손에 목숨을 잃으셨어요. 어르신이 박예리 씨를 그렇게 사랑해 주고 예뻐했는데 그건 다 잊은 거예요?”이한석의 말이 끝나자마자 박예리가 큰소리로 호통을 쳤다.“그만해요! 할아버지는 지영준 손에 목숨을 잃은 거예요! 그게 윤재수와 무슨 상관이 있나요?”“그때 윤재수와 지영준이 손잡고 저지른 짓이에요…”이한석의 낮게 깔린 목소리에 박예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으며 그녀는 그런 악랄한 거짓말을 전혀 믿지 않았고 윤재수의 말만 믿었다.“그래서 뭐요? 내 뱃속의 아이는 아무 잘못도 없잖아요! 오빠는 안진의 아이마저 받아주면서 왜 제 아이는 지워버린 건가요? 제가 만만하고 눈에 거슬렸기 때문이잖아요!”박예리는 확신에 찬 얼굴로 말하며 사무실 창문 쪽으로 다가가 불어오는 바람에 마음을 진정시키려 했고 숨을 크게 들이마신 뒤, 창밖을 쳐다보며 이한석에게 말을 이어갔다.“이한석 씨, 이런 쓸데없는 얘기 이제 하지 마요. 어차피 오빠는 죽었고 당신에게는 두 가
박수혁은 허리를 쭉 펴고 고개를 들어 창밖의 하늘을 쳐다보았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처럼 그의 마음에도 감정 변화가 없이 잔잔했다.지금 이 순간, 박예리는 진심으로 겁이 났다.박수혁은 돌아서서 이한석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사무실을 나섰고 이한석이 차가운 눈빛으로 박예리를 쳐다보며 말했다.“박예리 씨, 나가주세요.”박수혁이 눈앞의 여동생을 포기하기로 결정했으니 이한석도 더 이상 예의를 갖출 필요는 없었다. 더군다나 박예리는 예전부터 멍청하게 여기저기 사고를 치면서도 박수혁 곁에 있는 이한석을 무시하고 만만하게 여긴다는 걸 이한석도 잘 알고 있기에 그녀를 위해 박수혁을 설득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박예리는 밀려오는 창피함에 온몸을 부르르 떨었고 치마를 아래로 잡아당겼지만 생리 현상으로 젖은 부분은 가려지지 않았다.그녀가 평생 살면서 처음 겪어보는 창피함에 또다시 눈물과 콧물이 줄줄 흘렀고 차가운 표정을 한 이한석이 그녀를 잡아줄 생각도 없어 보이자 더욱 서럽고 짜증이 났다.짧은 몇 분 사이에 그녀의 계획이 전부 물거품이 된 것이며 박수혁이 떠난 지금도 그녀는 온몸을 벌벌 떨었다.겨우 휘청거리며 바닥에서 일어나 옆에 있던 의자에 기댔고 이한석은 그런 박예리를 쳐다보며 역겨운 표정을 짓다가 이내 뭔가 생각난 듯 표정을 숨겼다.“옷을 갈아입고 싶으면 직원한테 탈의실로 안내하라고 할게요.”이한석은 박예리에게 절대 박수혁 사무실에서 옷을 갈아입을 수 없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결벽증이 있는 박수혁은 절대 그걸 참을 수 없을 것이다.“오빠가 저한테 왜 이래요?”박예리가 떨리는 목소리로 묻자 이한석이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대답했다.“대표님은 더 이상 박예리 씨 오빠가 아닙니다. 박예리 씨가 대표님을 죽이려고 계획을 세우던 순간부터 박예리 씨는 오빠가 없게 되었습니다.”“난 그저 잠시 원망에 이성을 잃은 거예요. 저도 잘못을 깨달았다고요. 저희는 친 남매예요. 오빠가 저를 평생 원망하진 않을 거예요.”움찔한 박예리가 다급하게 하는 말에
직원들은 너도나도 말을 보태며 이한석을 둘러쌌지만 이한석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궁금해요?”당연히 궁금할 수밖에 없는 직원들이 연신 고개를 끄덕이자 이한석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궁금하면 대표님께 직접 물어봐요! 근무 시간에 일과 전혀 상관이 없는 수다를 떨기나 하고! 여기 있는 모든 직원들, 오늘 근무 시간 두 시간 연장입니다. 수다 떤만큼 보충하고 가세요.”자리에 있던 직원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이 대표님은 박 대표님보다 더 박 씨 가문 사람 같네!”한편, 소 씨 가문 저택에서.문지웅은 회사를 전문적인 사람에게 맡기긴 했지만 어쨌든 그의 가족이 아니었기에 왠지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매달 정기적으로 시간을 내서 회사로 찾아갔다.문준서는 소찬식 곁에 남았다. 새봄이 어린이가 요즘 울트라맨에 빠져 있기에 문준서는 매일 울트라맨 분장을 해서 새봄이를 즐겁게 해줬지만 언젠가부터 울트라맨으로는 만족되지 않았다.새봄이는 문준서를 한 방에 쓰러트릴 수 있었고 주먹을 휘두르기만 하면 문준서를 울릴 수도 있었으며 울고 난 문준서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새봄이에게 사과까지 했다.그래서 그런지 새봄이는 이토록 약한 울트라맨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문준서에게 괴물 역할을 시키기에는 또 자격 미달인 것 같았다.하루 종일 힐을 신은 소은정은 집에 들어오자마자 힐을 여기저기 벗어던졌고 뒤따라 들어온 전동하도 피곤해 보였지만 그래도 표정은 밝았다.소찬식은 같이 들어오는 두 사람을 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두 사람 놀러 나간 거 아니었어?”“네, 그런데 거기서 아는 사람을 만나는 바람에 또 일 얘기를 했거든요. 은정 씨가 기분이 안 좋아져서 일찍 들어오게 됐어요.”전동하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어차피 두 사람만의 시간을 보낼 만큼 보냈기에 놀든 안 놀든 중요하진 않았다.전동하는 손에 들고 있던 크고 작은 쇼핑백들을 옆에 내려놓았고 힘이 풀린 소은정은 소파에 누워 일어날 수가 없었다. 새봄이는 소은정을 보자마자 들뜬 표정으로 달려와 그녀의
새봄이의 이마가 빨개졌다. 물론 아이가 조심하지 않아서 부딪친 거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어린 아이를 탓할 수는 없기에 박수혁은 아이의 부모에게 인사를 하면서 슬쩍 아이 교육을 제대로 하라고 말할 생각이었다.물론 사과의 표시로 돈을 지불할 생각도 있었다.“그럼 네 아빠가 누구야? 이름이 뭔데?”“우리 아빠는 울트라 아버지! 빛의 나라의 국왕이야!”새봄이가 자랑스럽게 고개를 들고 당당하게 소리를 지르자 박수혁은 할 말을 잃었으며 이 아이의 머리에 뭐가 든 건지 궁금해졌다.하지만 아이의 말투도 그렇고 표정도 왠지 눈에 익은 듯한 느낌에 마음이 살짝 움찔했다.그러던 중, 옆방에서 나온 이한석은 한 여자아이를 안고 있는 박수혁을 보며 깜짝 놀란 표정이었다.“대표님, 오셨네요… 전새봄 양?”이한석은 경악에 찬 눈빛으로 두 사람을 쳐다보았으며 박수혁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아는 애야?”이 바닥에서 전 씨 성을 가진 사람이 많지 않았기에 전새봄이라면 소은정과 전동하의 딸일 것이다.박수혁은 착잡한 표정으로 품에 안은 아이를 쳐다보았으며 왜 자꾸 낯이 익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지 그제야 알 것 같았다.이 아이는 모든 면에서 소은정과 똑 닮아 있었다. 이한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복잡한 표정으로 박수혁을 쳐다보았고 박수혁이 소은정을 여태껏 잊지 못하고 있기에 그녀 주변 사람들의 소식조차도 알고 싶지 않았다.때문에 새봄이 얼굴도 몇 번 본 적이 없었고 이렇게 만나도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새봄 양이 몰래 도망 나온 것 같은데 제가 데려다줄까요?”이한석이 손을 뻗으며 말했지만 박수혁은 아이를 품에 꼭 안은 채 새봄이를 빤히 쳐다보았다.“넌 나를…”잠시 머뭇거리던 박수혁은 마음이 씁쓸했으며 만약 그때 모든 게 순조로웠다면 이 아이는 그의 딸이었을 것이고 그는 전동하보다 이 아이에게 더 잘해줄 자신이 있었으며 아이가 이 세상을 갖고 싶다고 하면 그는 두말없이 이 세상을 아이 손에 쥐여줄 것이다.안타깝게도 새봄이는 그에게 그런 기회조차 주지 않은 채 통통
문지웅은 저택 근처에 고가의 별장을 하나 샀고 주변 환경도 너무 좋았으며 평생 소 씨 가문 사람들과 이웃으로 살 생각이었다.문준서도 얼마 전부터 이 별장으로 이사를 왔고 학교까지 정해 놓은 상태였기에 새봄이는 이제 홀로 남게 되었으며 소은정은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보낼 수 있는 학교를 찾아 나섰다.소지혁이 다니는 학교는 새봄이에게 맞지 않았기에 그 학교를 피해서 다른 곳으로 알아봤고 오랜 수소문 끝에 소지혁이 다니는 학교와 500미터 정도 떨어진 학교를 찾아냈다.이는 지금까지 본 학교 중에서 제일 괜찮은 학교였고 새해가 지나면 아이를 여기로 보낼 생각이었다. 연말이 다가오고 소지혁도 방학을 해 문준서와 함께 새봄이와 놀아줄 수 있기에 그렇게 급하게 학교에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한편, 전동하가 시간을 쪼개서 소은정의 곁을 지켜 소은정도 회사 업무 처리에 더 많은 시간을 낼 수 있었다. 두 사람은 거의 매일 똑같은 시간에 퇴근했으며 전동하는 소은정을 데리러 회사에 갔다가 저녁을 먹고 집으로 들어갔다.이날, 퇴근한 소은정이 전동하가 데리러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가 데스크 직원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게 되었다.“소 대표님, 대표님 앞으로 택배가 배달됐는데 지금 올려드릴까요?”그 말에 소은정은 눈살을 찌푸리며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뭘 샀던 기억은 없었기에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사람 보낼게요.”소은정은 우연준에게 택배를 가져오라고 부탁했고 5분 뒤 우연준이 힘들게 택배 박스를 안고 나타났다.“대표님, 안에 뭐가 들었길래 이렇게 무거워요?”“저도 몰라요. 이게 뭐죠?”소은정이 눈살을 찌푸리자 우연준이 박스를 그녀 앞에 올려놓으며 말했다.“검사해 봤는데 위험 물질은 없었어요. 금속이 들어있다고 하던데 대표님 혹시 액세서리를 사셨어요?”우연준의 말에 소은정은 더욱 어안이 벙벙했다. 액세서리를 샀다고 해도 이렇게 허술하게 배송하지는 않을 것인데?“됐어요. 여기에 놔두세요. 동하 씨가 산 걸 수도 있어요.”고개를 끄덕인 우연준이 돌아서서 사무
결국 마이크는 예쁜 누나의 품에 안기지 못했다. 하지만 예쁜 누나는 더 이상 예전에 봤던 그 누나의 모습이 아니었다. 예전의 소은정은 차갑고 도도한 커리어 우먼이었으며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예뻤다. 물론 지금도 너무 예쁘지만 그녀에게는 이제 다정하고 상냥한 부드러움이 더 많아 보였기에 아무래도 전동하가 그녀를 잘 보살 핀 것 같았다.마이크는 억지웃음을 지으며 전동하에게 안겼으며 옆에 있던 소은정은 배를 끌어안고 웃었다.이때, 새봄이와 문준서가 잔뜩 긴장하고 기대에 찬 얼굴로 다가와 고개를 든 채 말했다.“아빠, 나도 안아 볼래요…”새봄이가 팔을 뻗자 전동하는 마음이 녹아내리기 시작했으며 역시 아들보다는 딸이 낫다고 생각하며 마이크에게서 손을 떼고 새봄이를 안으려고 했다.하지만 전동하가 허리를 굽히던 순간, 새봄이가 홱 돌아서서 마이크에게 와락 안겼다.“오빠 안아줘요…”마이크가 새봄이를 가볍게 품에 안았고 새봄이는 그제야 이까지 보이면서 환하게 웃었으며 곁에서 지켜보던 전동하는 할 말을 잃었다.이 광경을 지켜보던 소은정은 조금 전보다 더 큰소리로 웃었고 이때, 문준서도 팔을 뻗으며 새봄이 흉내를 냈다.“형아, 안아줘요…”마이크가 눈살을 찌푸리며 아이를 쳐다보자 소은정이 마이크에게 소개를 해주었다.“이 아이는 문준서라고 해. 잠시 이곳에서 살고 있고 너보다 여섯 살 어려.”문준서는 새봄이보다 두 살 많았지만 새봄이보다 더 말랐다.마이크는 그제야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문준서의 머리를 톡톡 쳤다.“남자아이는 안아달라고 하는 거 아니야.”마이크의 말에 문준서가 실망한 얼굴로 팔을 내렸고 마이크가 새봄이를 내려놓자마자 문준서가 달려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새봄이를 꽉 껴안았다.전동하는 이를 보며 또다시 할 말을 잃었다. 마이크가 안아주지 않는다고 그의 딸에게 달려가 저렇게 꽉 껴안다니. 새봄이는 문준서에게 보호 의식이 강했기에 문준서의 손을 잡고 마이크에게 다가가 한 번만 안아달라고 부탁했고 마이크는 전동하의 강압적인 눈빛에 눌려
소은정은 고개를 돌리고 그를 바라보았다. 어둠속에서 그의 얕은 숨소리가 느껴졌다.그가 아직 자지 않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거죠?”그녀 역시 상상도 하지 못할 테러를 경험한 적 있다.그래서 주변 사람이 그런 일을 당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모두가 그녀처럼 운 좋게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건 아니었다.전동하는 한숨을 내쉬면서도 차갑게 말했다.“그쪽에서는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이모라는 사람은 눈썰미가 아주 뛰어난 자죠. 그렇지 않았으면 홀로 가문을 그렇게 오래 이끌 수 없었을 거예요. 하지만 그래서 아이를 우리 옆에 오래 둘 수 없어요.”마이크는 이제 나이를 먹었고 자신만의 주장이 확고했다.소은정은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아니면 애를 해외로 보내지 않을 수는 없나요?”“지금 마이크가 공부하는 영역은 그가 가장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영역이죠. 오랜 시간과 심혈을 기울이기도 했고요. 유럽에 가장 좋은 선생님이 있으니 그곳에 가야 더 훌륭한 교육을 받을 수 있어요.”전동하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는 많이 지쳐 보였다.“자요. 어차피 성인이 되기 전에는 떠나지 않을 거예요. 성인이 된 후에는 나도 그 아이를 계속 통제할 수는 없어요.”말을 마친 그는 그녀를 품에 끌어안았다.잠시 후, 그의 고른 숨소리가 들려왔다.그렇게 며칠이 지났다.소은정과 전동하는 낮에 집을 비우니 소찬식도 기력이 딸렸기에 사람을 시켜 아이들을 돌보게 했다.다행히 아이들은 마이크를 아주 잘 따랐다. 햇병아리가 어미 닭을 졸졸 따라다니는 모습과 흡사하달까.집사는 고용인들 몇 명을 아이들 노는데 따라가게 했다.마이크는 동생들을 데리고 놀이공원으로 갔다.소지혁도 오랜만에 와서 그런지 흥분한 기색을 보였고 준서는 새봄이의 손을 꼭 잡고 이리저리 뛰어다녔다.마이크는 맏이로서 고용인들을 시켜 설비를 꼼꼼하게 점검하고 안전을 확보한 뒤에 아이들을 올려보냈다.놀이공원을 독단적으로 빌리지는 않았기에 새봄이와 소지혁은 이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