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은정은 고개를 돌리고 그를 바라보았다. 어둠속에서 그의 얕은 숨소리가 느껴졌다.그가 아직 자지 않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거죠?”그녀 역시 상상도 하지 못할 테러를 경험한 적 있다.그래서 주변 사람이 그런 일을 당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모두가 그녀처럼 운 좋게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건 아니었다.전동하는 한숨을 내쉬면서도 차갑게 말했다.“그쪽에서는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이모라는 사람은 눈썰미가 아주 뛰어난 자죠. 그렇지 않았으면 홀로 가문을 그렇게 오래 이끌 수 없었을 거예요. 하지만 그래서 아이를 우리 옆에 오래 둘 수 없어요.”마이크는 이제 나이를 먹었고 자신만의 주장이 확고했다.소은정은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아니면 애를 해외로 보내지 않을 수는 없나요?”“지금 마이크가 공부하는 영역은 그가 가장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영역이죠. 오랜 시간과 심혈을 기울이기도 했고요. 유럽에 가장 좋은 선생님이 있으니 그곳에 가야 더 훌륭한 교육을 받을 수 있어요.”전동하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는 많이 지쳐 보였다.“자요. 어차피 성인이 되기 전에는 떠나지 않을 거예요. 성인이 된 후에는 나도 그 아이를 계속 통제할 수는 없어요.”말을 마친 그는 그녀를 품에 끌어안았다.잠시 후, 그의 고른 숨소리가 들려왔다.그렇게 며칠이 지났다.소은정과 전동하는 낮에 집을 비우니 소찬식도 기력이 딸렸기에 사람을 시켜 아이들을 돌보게 했다.다행히 아이들은 마이크를 아주 잘 따랐다. 햇병아리가 어미 닭을 졸졸 따라다니는 모습과 흡사하달까.집사는 고용인들 몇 명을 아이들 노는데 따라가게 했다.마이크는 동생들을 데리고 놀이공원으로 갔다.소지혁도 오랜만에 와서 그런지 흥분한 기색을 보였고 준서는 새봄이의 손을 꼭 잡고 이리저리 뛰어다녔다.마이크는 맏이로서 고용인들을 시켜 설비를 꼼꼼하게 점검하고 안전을 확보한 뒤에 아이들을 올려보냈다.놀이공원을 독단적으로 빌리지는 않았기에 새봄이와 소지혁은 이렇게
그 순간 주변이 조용해졌다.그 아이의 부모님은 충격에 빠진 표정으로 마이크를 바라보았다. 금발에 벽안을 가진 아이는 살기 어린 눈빛으로 상대를 노려보고 있었다.새봄이와 준서는 옆에서 손뼉을 쳤다.박시준도 멍하니 마이크를 바라보았다.잠시 후, 놀이공원 사장이 현장에 도착했다.사장이 직접 나섰기에 일은 조용히 마무리되었다.아이들은 서로 사과하지 않았다.그리고 아이의 부모도 이 일을 끝까지 따지지 않았다. 사장은 그들에게 만족스러운 해결방안을 제시했다. 이번에 놀이공원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전부 면제해 주겠다는 조건이었다.아이 부모는 만족스럽게 아이를 안고 돌아갔다.일을 다 처리한 사장은 식은땀을 훔치며 직원들에게 말했다.“앞으로 저 가족들은 블랙리스트야. 나중에 또 오면 들여보내지 마.”“네.”사장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아이들에게 말했다.“사장실로 좀 가자. 전 대표님께서 기다리고 계셔.”새봄이는 신이 나서 준서의 손을 잡고 달려나갔다.소지혁은 살짝 의아한 표정으로 마이크에게 물었다.“형, 왜 고모부는 현장에 안 나왔을까요?”마이크는 동생을 힐끗 보고는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저런 인간들 처리하는데 아빠가 직접 나설 필요는 없지. 넌 아직 너무 어려서 몰라!”“그래요?”박시준은 그들을 따라가야 할지 주저했다.어차피 자신 때문에 생긴 일이라서 가야 할 것 같은데 전동하가 박시준을 초대하지는 않았다.아이가 머뭇거리는 사이 소지혁이 다가와서 아이의 손을 잡았다.“시준이 너도 같이 가자. 고모부는 아주 친절한 분이셔. 애들을 엄청 좋아하시거든!”박시준은 그 말을 듣고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전동하는 사장 사무실에서 느긋하게 아이들을 기다렸다.그는 사실 저런 시정잡배들을 굳이 직접 상대하기 귀찮았다.하지만 사랑하는 딸이 괴롭힘을 당했는데 가만히 있을 수도 없었다.그래서 직접 놀이공원 사장 사무실을 방문했다.문이 열리고 새봄이가 활짝 웃으며 들어오더니 달려와서 그의 품을 파고들었다.“아빠….”전동하는 저도 모르게 입꼬리
민하준은 한유라의 턱을 잡고 서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렇게 잘지내는 거 보니까 자꾸 네가 예전에 했던 말이 생각나더라고. 그런데 계속 이해할 수 없는 게 있어. 우린 분명 서로 사랑했는데 왜 갑자기 마음이 변한 거지? 왜 나한테 기회조차 주지 않은 거야? 한유라, 도대체 나한테 왜 그랬어?”한유라는 숨 넘어갈 듯이 울었다. 평소의 깔끔하고 화려한 인상은 온데간데없었다.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초라한 몰골이었다.홀로 안연시에 갔을 때도 이처럼 무섭지는 않았다.심강열의 생사는 확인할 길이 없고 그녀 자신도 살아서 내일의 태양을 볼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과거의 그녀는 여러 남자를 만났지만 만날 때마다 그래도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다.특히나 민하준에게는 각별한 감정을 주었다.그런데 정작 민하준 본인은 그녀가 이별을 고한 게 괘씸하고 그 자체에 굴욕감을 느낄 줄은 몰랐다.그는 그때 느낀 수치심 때문에 복수하러 온 것이다!한유라는 벌받는 느낌이 들었다.그녀는 울다 지쳐 대답할 기력조차 없었지만 민하준은 그녀에게 많은 시간을 주지 않았다.절망한 그녀의 모습이 민하준의 흥분을 더 자극했다.민하준은 성난 늑대처럼 그녀의 옷을 찢고 위에 올라탔다. 한유라는 힘껏 몸부림쳤지만 그의 손아귀를 벗어날 수 없었다.민하준은 취한 듯, 그녀의 숨결을 들이마셨다.그는 한 손으로 한유라의 목덜미를 꽉 잡고 으르렁거렸다.“남편 살리고 싶으면 가만히 있어, 한유라.”그러자 한유라의 몸부림이 멈추었다.머리 위에서 벼락이 내리치는 느낌이 들었다.이미 미쳐버린 민하준을 상대로 설득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그는 과격한 행위로 그녀의 인생을 망치려 하고 있었다.그는 사실 아파트 아래에서 한참을 대기했다.그리고 심강열이 그녀의 집을 드나드는 모습을 지켜보았다.아무도 그의 아픔에 관심을 주지 않았다.가슴이 찢기는 것 같은 고통은 오로지 그의 몫이었다.그녀는 심강열을 위해 반항을 포기하고 인형처럼 축 늘어졌다.하지만 그녀가 얼마나 정열적인 여자인지
심강열은 거의 생기도 없이 미약한 숨만 내쉬고 있는 상태였다.얼굴은 멍으로 뒤덮이고 몸에도 여러군데 찢어져 피가 흐르고 있었다.참혹한 장면이었다.한유라는 온몸에 한기가 느껴지면서 고통스럽게 그의 이름만 불렀다.하지만 그에게서는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그녀는 처음으로 영혼이 이탈될 것 같은 느낌을 경험했다.그녀는 심강열과 같이 죽고만 싶었다.살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절망감이었다.그녀의 세상이 순식간에 무너졌다.민하준은 절망한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약간 양심이 찔리기도 했다.하지만 걱정되거나 두려운 감정은 아니었다.그는 부하들을 둘러보았다. 침실에 들어가 있는 사이 그들이 폭행을 계속했던 걸까?부하들은 고개를 흔들며 아니라고 변명했다.“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저 인간이 나약해서 몇 번 걷어차기만 했는데 정신을 잃더라고요. 그래도 숨은 붙어 있어요. 어떻게 할까요, 형님?”그들은 이런 일에 아주 익숙했다.그들은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생각하는 자들이었다.민하준은 한유라를 힐끗 바라보았다. 그들의 대화를 들은 한유라의 얼굴이 한층 더 하얗게 질렸다.그녀는 심강열의 머리를 끌어안고 증오에 찬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민하준은 시간을 확인하고 주저없이 다가가서 그녀를 일으켰다.“가자. 곧 새 해의 종이 칠 거야. 여기서 낭비할 시간 없어.”한유라는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위태롭던 끈나시 한쪽이 흘러내렸다.그 모습을 본 부하는 곧장 고개를 돌렸다.민하준은 굳은 표정으로 자신의 외투를 벗어 그녀에게 던졌다.“이거 입고 나랑 가자.”남편이 다 죽어가는데 더 이상 이들과 타협할 필요가 있을까?그녀는 옷을 바닥에 던지고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꺼져. 이런 거 필요 없으니까 당장 내 집에서 꺼져. 민하준, 너 벌받을 거야. 차라리 날 죽여. 귀신이 되어서라도 너 죽이러 찾아갈 테니까!”그녀는 다시는 물러서지 않기로 다짐했다.명절 밤에 집에 쳐들어와서 자신의 모든 것을 앗아간 민하준이 증
한유라는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저도 모르게 정신을 잃었다.모든 게 걱정되었지만 아무것도 알아낼 방법이 없었다.그녀가 다시 의식을 차렸을 때는 완전히 낯선 방에 있었다.어젯밤 있었던 일들이 머릿속에 생생하게 떠올랐다.그녀는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낯선 환경이 더 큰 불안감을 조성했다.그녀는 침대를 내리려다가 뭔가에 걸려 바닥에 넘어졌다.고개를 숙이고 보니 발목이 하얀 끈으로 묶인 상태였다.그녀는 끝을 알 수 없는 어둠으로 끌려가고 있는 심정이었다.오싹한 공포가 그녀의 온몸을 휘감았다.손에 닿는 것 중에 뾰족하거나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희망을 잃은 그녀는 냅다 비명을 질렀다.드디어 누군가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검은색 정장을 입은 민하준이 냉소를 띄며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깼어? 이따가 아침 가져다줄게.”“지금 뭐 하자는 거야? 돈도 다 가져갔잖아? 금고도 다 털었고. 나한테 다른 적금이 있는데 그것도 다 줄게. 그러니 나 좀 풀어줘!”한유라는 축 가라앉은 목소리로 그에게 애원했다.민하준의 부하들이 금고를 열었을 때 번뜩이던 눈빛을 그녀는 기억하고 있었다.그래서 그들이 돈을 위해 왔다고 판단했다.하지만 민하준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그 자리에 있었다.그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더니 가소롭다는 듯이 그녀에게 말했다.“돈? 그런 거 필요 없어. 나한테 필요한 건 너야, 한유라.”또다시 절망감이 음습했다.“왜지? 내가 그렇게 미웠어?”한유라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그를 바라보았다.서투르게 끝냈던 사랑이 이렇게 심각한 결말을 가져올 거라 예상하지 못했다.민하준은 그녀를 빤히 바라보다가 천천히 다가왔다.그는 그녀의 턱을 잡고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에게 말했다.“밉지. 너 잘사는 거 보고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어. 넌 모르겠지만 헤어지고 네 행방을 계속 쫓았어. 하지만 넌 무슨 쓰레기 내치듯이 날 밀어내고 무시하더라고. 한유라,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어? 우린 같은 세상을 사는
그 순간, 민하준의 표정이 음침하게 굳더니 고개를 번쩍 들었다.옆에 있던 사람들도 뭔가 심상치 않음을 감지하고 말실수한 자의 헤드락을 걸며 장난을 쳤다.“너 요즘 긴장 좀 풀렸다? 저 여자 네가 만난 업소녀들이랑 달라. 그렇게 마음대로 가지고 놀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고. 큰형님이 알아서 하실 거니까 넌 관심 꺼!”그자도 그제야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어색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냥 장난 좀 친 거죠. 곱게 자란 재벌이라 좀 신선하기도 하고… 큰형님, 걱정하지 마세요. 형님이 싫증 나서 버리지 않는 이상 절대 건드리지 않을게요!”민하준은 그제야 표정을 풀고 비웃음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쫄기는. 출신이 뭐가 그렇게 대단해? 어차피 지금은 포로 신세잖아? 오늘은 다 같이 업소 한번 가자. 거기 예쁜 애들 더 많아.”그제야 부하들도 표정을 풀고 함박웃음을 지었다.“고맙습니다, 형님!”민하준은 핸드폰을 확인하며 말했다.“난 나가봐야 하니까 이따가 저 여자 감시할 사람이 올 거야.”옆에 있던 부하가 말했다.“미연이 부르려고요? 걔가 말을 좀 잘 듣기는 하죠. 한유라 잘 설득할 것 같기도 하네요.”민하준은 말없이 차키를 건넸다.“걔 연락하고 이따가 직접 가서 데려와. 난 일이 있어서 좀 나가야겠어.”“네.”민하준이 밖으로 나가자 아까 한유라에게 욕심을 부렸던 부하가 입맛을 다시며 일어섰다.옆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그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큰형님이 싫다고 하잖아. 관심 꺼!”“그냥 어떻게 지내나 한번 보고 싶었을 뿐이라고. 너도 아까 들쳐메고 올 때 몰래 만졌잖아?”“이상한 소리 지껄이지 마!”한편, 한유라가 있는 방은 아주 고요했다.마치 세상과 동떨어진 느낌마저 들었다.한유라는 멍한 상태로 방안을 둘러보았다.뾰족한 무언가를 찾으려고 했지만 방에는 아무것도 없었다.핸드폰은 당연히 없었다.밖에서 차가 시동을 거는 소리가 들려왔다.그녀는 흠칫하며 정신을 차렸다.민하준에게 유린당하느라 옷은 거의 안 입는 것보다 못한 상태
민하준의 출현에 미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미연은 조용히 자리를 비켰다.그를 바라보는 미연의 시선이 조금 복잡했다.그녀가 경외하고 존경하는 사람.한유라는 초라한 모습으로 겁에 질려 뒷걸음쳤다.그녀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그에게 말했다.“민하준, 도대체 원하는 게 뭐야? 내가 너 버린 게 그렇게 미웠으면 그냥 나 죽여. 왜 이렇게 사람 괴롭히는 거야?”“괴롭혀? 이게 뭐가 괴롭히는 거야? 진짜 지옥이 뭔지도 모르면서.”민하준은 약 올리듯이 그녀를 바라보며 반박했다.“심강열이 살았는지 궁금해? 그 놈 운도 좋더라. 응급수술해서 살아났대. 그런데 갈비뼈가 두 개나 부러져서 아직 의식은 회복하지 못했나 봐.”그 말을 들은 한유라는 조금은 안도했으나 이 상황을 기뻐해야 할지 아니면 슬퍼해야 할지 분간할 수 없었다.할 수만 있다면 병원에 가서 그를 보고 싶었다.애달픈 그녀의 표정을 보고 있자니 민하준은 가슴이 쓰렸다.“죽지 않은 것만으로도 천만다행이지. 계속 말 안 들으면 영원히 깨어나지 못하게 할 수도 있어.”한유라는 고개를 번쩍 들고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왜 뭐든 네 멋대로야? 네 안중에 법은 없어?”민하준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그래. 난 하고 싶은 대로 할 거고 너도 눈치라는 게 있으면 말 잘 들어. 말 안 듣는 인간은 내가 잘 조련하니까!”그는 그녀의 턱을 꽉 잡고 애완동물을 보는 시선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그가 조금만 힘을 줘서 비틀어도 턱이 깨질 것 같았다.말을 마친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미연을 바라보며 말했다.“말 안 들으면 저녁 주지 마. 문단속만 잘하고 넌 쉬어.”미연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민하준이 이미 떠난 뒤에도 그녀의 시선은 그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한유라는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지만 간신히 버텨냈다.심강열이 살아 있는 것만으로 일단 만족해야 했다.살아야 희망이 있다.이곳만 벗어나면 심강열을 만날 수 있다.한유라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길게 심호흡했다.다시 고개를 든 그녀는 문을 잠그고
미연은 그가 약에 당했을 때, 어쩔 수 없이 그의 침대로 보내진 여자였다.그 일이 있은 뒤, 민하준은 그녀의 빚을 갚아주고 번듯한 직장도 소개해 주었다. 그 뒤로 두 사람 사이에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하지만 그의 부하들, 특히나 장민은 어쨌든 같이 잠을 잤으니 민하준이 미연에게 어느 정도 호감은 있다고 생각했다.그에 비하면 한유라는 결혼 전부터 스캔들도 많았고 결혼 뒤에도 딱히 얌전하게 살지는 않았다.그래서 그들은 그냥 문란하게 사는 재벌2세라고만 생각했다.그에 비해 미연은 순수한 대학생이고 비교도 되지 않았다.그래서 장민은 과감하게 한유라를 희롱하면서도 미연은 존중해 주었다.민하준의 말에 장민은 눈빛이 흔들리며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형님, 제 말은 그 말이 아니잖아요. 미연이가 물건도 아니고 뭘 저한테 준다는 거예요?”미연은 옆에서 입술에 피가 나도록 질끈 깨물었다.민하준은 장민의 말을 무시하고 미연에게 시선을 돌렸다.“넌 어떻게 생각해?”질문이였지만 미연의 의사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이건 협상이 아니라는 걸 미연도 알고 있었다.그녀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침묵만 지키고 있었다.옆에 있던 곽현이 분위기가 이상한 것을 느끼고 장민을 걷어찼다.장민은 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곽현이 웃으며 말했다.“얘가 요즘 여자가 많이 그리웠나 봐요. 자꾸 헛소리만 지껄이고 군기가 싹 빠졌네요. 형님, 이번 작전은 그냥 장민이 보내죠.”장민은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고 곽현을 바라보았다.“야 곽현, 너….”곽현이 눈을 확 부릅뜨자 장민은 다시 입을 다물었다.그들은 민하준의 눈치를 살폈다.민하준은 온기라고는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눈빛으로 그들을 노려보더니 말했다.“영감님 쪽에 아직 연락이 없어. 그건 나중에 얘기하자.”곽현은 그대로 화제를 돌렸다.“형님, 영감님도 이제 형님을 신뢰하는 것 같은데 윗분들을 만나는 자리에는 절대 형님 데려가지 않네요? 이건 왜 그런 걸까요?”장민도 뭔가 대화에 끼려고 했으나 민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