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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03화 유언

박수혁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모두가 그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은진이 가장 궁금한 건 선택을 마쳤을 때 그의 표정이었다.

그가 누구를 선택할지는 생각보다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완벽하고 뛰어난 능력을 과시했던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를 두 번이나 포기하게 되다니! 안진의 입장에서는 생각만 해도 통쾌했다.

결국 그는 사랑한다는 말을 꺼낼 자격조차 없는 사람인 것이다.

그는 소은정을 두 번이나 포기했다. 물론 그 과정은 뼈를 깎는 아픔이었다.

하지만 매번 그는 어쩔 수 없이 가장 이상적인 선택을 강요당했다.

그가 머뭇거릴수록 안진의 표정도 일그러졌다.

“아직도 저 여자를 선택하고 싶어? 이미 한번 포기했던 사람이잖아. 그런데 이번에는 왜 머뭇거려? 나는 그래도 아버지보다는 나아. 최소한 목숨은 살려줄 거니까.”

“뭐가 다른데?”

박수혁이 차갑게 물었다.

“네 아버지랑 네 오빠, 그리고 너, 뭐가 다른데?”

그는 침울해서 얼어붙을 것만 같은 위태로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안진은 입술을 오므리며 눈을 반짝였다.

그의 한마디가 그녀에게는 상처였다.

넌 그들과 다르지 않아.

하지만 안진 입장에서는 소은정을 고문하지도 않았고 소은정은 살아서 여기를 벗어날 것이다. 그런데 뭘 망설이는 걸까?

그만큼 소은정이 중요하다는 건가?

안진은 일그러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면 빨리 결정을 내리는 게 좋을 거야. 날이 어두워지면 선박이 여기를 나갈 수 없을 테니까.”

박수혁의 주변 공기마저 차갑게 식었다.

바람이 불어 돛이 펄럭펄럭 날리는 소리가 났다.

그의 등 뒤에는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넓은 바다가 펼쳐져 있다.

소은정은 그를 보면서 마음속의 불안감과 공포가 서서히 사라졌다.

그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녀는 박수혁을 미워할 수 없었다.

그때 무인도에서 그가 사람을 데리고 그녀를 구하러 왔을 때처럼 그는 언제나 최선을 다한 것이다.

결과가 어떻든 그건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의 망설임과 고통이 그녀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오히려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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