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유라의 기세에 남자 직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그리고 곧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한 채 조용히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이게 도대체 상전이야, 비서야... 아, 사모님이니까 상전 맞네.’한편 한유라는 불쾌한 기색을 전혀 숨기지 않고 심강열의 사무실 문을 퍽 차버렸다.화상 회의 중이던 심강열은 뜬금없이 잔뜩 화난 얼굴로 사무실에 침입한 한유라를 힐끗 바라보고 다시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모니터로 시선을 옮겼다.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화상 회의가 끝나고.심강열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미간 사이를 꾹꾹 눌렀다.‘아, 기빨려...’하지만 곧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고개를 들어 한유라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쾅!”이때 한유라가 들고 있던 커핏잔을 세게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잔에서 튀어오른 커피 방울이 새하얀 종이를 물들였다.뜬금없는 행패에 심강열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무슨 일 있었어?”“아니.”한유라가 가식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돈 부족해?”“아니, 차고 넘쳐.”“은정 씨랑 쇼핑이라도 하고 싶어?”심강열의 질문에 한유라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아니.”이를 악물고 대답을 뱉어낸 한유라가 생각했다.‘아니, 내가 잉여도 아니고... 겨우 이런 일로 화를 낸다고 생각하는 거야?”“그럼 왜...”“커피 말고 차 마시고 싶다고 했다면서?”그녀의 말에 심강열의 시선이 테이블 위의 커핏잔으로 향했다.“겨우 그것 때문에 그래?”심강열의 목소리에 억울함이 묻어났다.차 한 잔 마시고 싶다고 한 게 그렇게 잘못한 일인가 싶었다.한유라가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면 그것 때문에 화났다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피식 웃은 심강열이 가벼운 목소리로 물었다.“왜? 난 차 마시면 안 돼?”“아니, 커피 마시겠다고 해놓고 왜 갑자기 말을 바꿔? 자기가 뭐 마시고 싶다 그런 거 하나 결정을 못 내려? 비서가 당신 보모야? 하루종일 차나 타는 보모냐고. 잘하면 세숫물까지 떠달라고 하겠다?”한유라가 팔짱을 낀 채 쏘
한유라도 심강열이 좋았다.열렬한 사랑이라고는 말할 수 없었지만 심강열은 충분히 나이스한 남자이자 남편이었고 결혼생활은 정략결혼에 대한 편견을 깨버릴 정도로 행복했다 하지만... 첫 단추를 잘못 꿰서일가? 부부끼리 충분히 할 수 있는 말도 심강열에게만큼은 왠지 조심스러웠다.조금이라도 뭔가를 욕심내면 서로의 이익을 탐하는 이 정략결혼의 민낯이 드러날 것만 같아 두려웠다.한편, 변덕스러운 한유라의 모습에도 심강열은 짜증 하나 내지 않고 오히려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솔직히 이 상황이 꽤 재밌기도 했다.따분하기만 한 회사에서 통통 튀는 한유라의 매력 덕분에 하루하루가 재밌어지기 시작했으니까.잠시 후, 급한 일들을 처리한 심강열이 한유라가 아닌 다른 남자 비서를 호출했다.파일을 덮은 심강열이 어리둥절한 표정의 비서를 향해 물었다.“아까 밖에서 무슨 일 있었습니까?”비서가 고개를 저었다.‘한 비서님이 대표님 흉을 보긴 했지만 그 얘긴 굳이 할 필요 없겠지.’“조 비서가 승진하고 한유라 씨가 수석 비서로 승진했죠. 그래도 아직 부족한 게 많을 겁니다. 여러분들이 많이 도와주세요. 혹시라도 무슨 일 생기면 바로 나한테 보고하고요.”“아닙니다, 대표님. 한 비서님, 굉장히 능력이 출중하신 것 같습니다. 업무적으로 어려운 점도 없고요.”‘참나. 내가 바본 줄 아나. 지금 나더러 대표 앞에서 사모 흉을 보라는 거야? 그건 안 될 일이지.’하지만 나름 신경 써서 한 대답에도 심강열의 표정은 여전히 어딘가 차가웠다.잠시 후, 뭔가 이상함을 눈치챈 비서가 조심스레 물었다.“대표님, 도대체...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는지?”‘두 사람 부부 아니야? 궁금한 거 있으면 직접 물으면 되잖아. 왜 엄한 나를 잡고 그러신대...’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던 심강열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이런 질문... 유치하다는 거 아는데 어쩔 수 없네요. 혹시 한 비서를 괴롭힌다거나 왕따 시킨다거나 그런 일은 없었습니까? 기분이 안 좋아 보여서요.”이에 비서가 다급하게
그 뒤로 오후내내 심강열은 일에 집중했다.저녁에 근사한 레스토랑까지 예약해 둔 터라 그전에 어떻게든 밀린 업무를 끝내야 했기 때문이었다.한번 기지개를 켠 뒤 한결 가벼운 기분으로 사무실을 나선 심강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대표 사무실을 제외하고 텅텅 빈 사무실.단 한 명의 직원도 보이지 않는 모습에 당황스러웠다.‘이런 적은 처음인데...’심강열이 미간을 찌푸렸다.솔직히 그렇게 늦은 시간도 아니고 게다가 다른 직원들은 몰라도 비서실 직원들까지 약속이라도 한 듯 먼저 퇴근을?‘이상해... 뭔가 이상해...’심강열이 잔뜩 굳은 표정으로 한유라에게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딱딱한 연결음만이 울려퍼질 뿐.짜증스레 전화를 끊은 심강열이 다른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대표님?”“다들 어디 간 겁니까?”“아, 그게...”당황한 듯한 비서가 대답했다.“한 비서님이 오늘은 회식이라고 하셔서... 지금 노래방인데요?”‘하, 기가 막혀서.’심강열이 코웃음을 쳤다.“그래서... 지금 다들 노래나 부르고 있다 이 말입니까? 거기가 어딥니까?”“여기가...”통화를 마친 심강열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비서가 알려준 곳은 한유라가 평소 자주 가는 곳.럭셔리한 시설에 방음 시설까지 완벽한 룸 덕분에 재벌 2세들 사이에서 꽤 인기 있는 곳이었다.‘직원들 다 끌고 거길 갔단 말이지.’물론 심해그룹도 회식을 안 하는 건 아니었다. 프로젝트 하나를 무사히 끝낼 때면 식사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하지만 그때마다 심강열은 그저 잠깐 얼굴만 비추고 계산만 하고 사라지곤 했었는데...동료들과 팀워크를 다지기 위해 함께 시간을 보내는 건 나쁘지 않았지만 어딘가 마음이 불편했다.‘직원들 다 불렀으면서 난 쏙 빼놓고 가셨다? 도대체 무슨 일로 골이 났길래 이렇게 엇나가는 걸까?’깊은 한숨을 내쉰 심강열이 비서가 말한 장소로 향했다.“대표님, 혹시 예약하셨나요?”그의 얼굴을 알아본 매니저가 바로 다가왔다.“아, 아닙니다. 일행 있어요. 저 혼자 올라가겠습니다.”대답
“달칵!”이때 형광등 불빛이 룸의 어둠을 찢어삼켰다.“...”숨 막힐 듯한 정적, 환해진 세상에 다들 순식간에 현실 세계로 돌아온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아직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입구 쪽을 바라보던 직원들의 표정이 묘하게 굳고... 모두들 로봇처럼 어색한 무빙으로 한유라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이게 다 꿈이었으면...’방금 전 대표를 향한 화려한 디스랩을 펼쳤는데 그 주인공이 눈앞에 떡하니 나타나다니.이보다 더 난처한 상황이 있을까?‘내가 미쳤지. 술 몇 잔 마셨다고 그런 랩에 좋다고 호응을 하냐...’노래방이라곤 믿기지 않는 적막, 모두들 머리가 백지장처럼 변해버리고 한유라 역시 목석처럼 굳어버리고 말았다.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미처 머리를 굴리기도 전에 얼굴로 차가운 바람이 스치더니 심강열이 성큼성큼 그녀를 향해 다가왔다.‘아, 이 상황을 어떻게 수습하면 좋으려나...’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그때, 누군가 뒤에서 그녀의 등을 살짝 밀고 한유라는 뭐에 홀린 듯 심강열의 손에 이끌려 노래방을 나섰다.지하주차장.먼저 차에 탄 심강열이 어딘가 복잡미묘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지금 이 차를 타는 게 맞나 짧은 고민을 하던 그때, 심강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타.”‘타라는 걸 보니까 화 많이 안 났나 보다.’순간 안도의 한숨을 내쉰 한유라가 쪼르르 조수석에 몸을 실었다.평소 안락함이 특히 마음에 들었던 심강열의 차.그런데 오늘만큼은 시트에 바늘이라도 꽂아둔 듯 엉덩이가 욱신거렸다.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심강열의 눈치를 살피는 한유라는 누가 봐도 잘못을 저지른 어린애의 모습이었다.그렇게 대화 한 마디 없는 드라이브가 이어지고 어느새 아파트 지하주차장.시동을 끈 심강열이 꿈쩍도 하지 않자 한유라도 가만히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다.뒷담화를 하다 걸리면 이런 기분일까?‘시트콤에서 일어날만한 일이 왜 나한테... 전생에 나라라도 팔아먹었나. 운이 안 좋아도 이렇게 안 좋을 수가 있나...’한편, 안
또 뭘 잘못한 게 있을까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다른 건 생각나지 않아 한유라가 골치가 아플 무렵.심강열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오늘 퇴근할 때 뭐 까먹은 거 없어?”까먹은 거?한유라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난 아무것도 몰라요라는 표정에 심강열이 작은 힌트를 주었다.“퇴근할 때 말이야...”“회식 나오기 전에 급한 일은 다 처리했는데?”눈을 깜박이던 그녀가 단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톡톡.”“회식에 왜 난 안 불렀어? 회사 직원들 다 초대했으면서 왜 나한텐 아무 말도 안 했냐고. 게다가 내 카드로 계산한 거잖아.”결국 스스로 삐친 이유를 말한 심강열은 순간 현타가 오는 기분이었다.‘아, 내가 생각해도 진짜 치사하다.’심강열의 대답에 한유라가 미간을 찌푸렸다.‘아니, 왜 직원들 회식에 끼려고 해. 대표가 끼면 제대로 흉도 못 볼 거 아니야. 그럼 그게 회식이냐. 그냥 일이지...’하지만 대놓고 널 까려고 자리를 만든 거다라고 말할 순 없으니 좀 더 유연한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당신은 매일 야근하느라 바쁘잖아. 직원들 여가 활동까지 신경 쓸 여유 없는 거 내가 아니까 특별히 신경 쓴 거지.”은근슬쩍 책임을 심강열에게로 미는 게 느껴지자 심강열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핸들을 잡고 있던 큰 손이 한유라의 두 볼을 꾹 눌렀다.“그래서? 야근하느라 너랑 제대로 안 놀아줬다고 시위하는 거야?”차라리 그런 거라면 오늘 하루 이상하리만치 틱틱대던 그녀의 모습이 이해가 될 것만 같았다.제멋대로 한유라의 반항을 너무 바쁜 남편을 향한 투정으로 이해한 심강열은 어느새 화가 다 풀리고 말았다.‘나랑 그렇게 같이 있고 싶었어?’한편, 얼굴을 꾹 잡힌 한유라는 어이가 없을 따름이었다.‘아니! 그런 생각은 해본 적도 없다고! 난 차라리 당신이 매일매일 야근했으면 좋겠어! 돈을 많이 벌어야 내가 더 펑펑 쓸 거 아니야!’하지만 한유라도 지금 이 상황에서 그런 말은 하면 안 된다는 눈치 정도는 있었기에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한유라의 얼
뜨거운 키스가 조금 더 깊은 스킨십으로 이어지려던 그때, 한유라가 살짝 달아오른 얼굴로 그를 밀어냈다.“여기 주차장이야.”하지만 그녀의 손목을 잡은 심강열의 입술은 한유라의 얼굴과 목선을 가볍게 훑어지났다.“괜찮아...”뜨거운 욕망을 꾹꾹 참는 듯한 무겁게 잠긴 목소리에 한유라의 손에 힘이 스르륵 풀렸다.‘그래... 가끔은 색다른 것도... 나쁘진 않네.’...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피곤함과 취기의 더블 콤보에 한유라가 시트에 축 늘어졌다.아슬아슬 잠이 들려던 그때, 누군가 그녀를 번쩍 안아들었고 잠시 후, 따뜻한 물이 그녀의 온몸을 휘감았다.‘아, 따뜻하다.’눈앞에 휴가지의 바다가 펼쳐지는 듯해 한유라의 다리가 물장구를 치기 시작하고...이때 그녀의 귓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으이그, 좀 가만히 있지?”그리고 또 누군가 그녀를 번쩍 안아들어 몸을 깨끗하게 닦아준 뒤 산뜻함이 느껴지는 폭신한 곳에 뉘였다.‘음, 기분 좋아. 여긴 어디지? 모래사장인가?’이미 비몽사몽인 한유라가 제멋대로 침대 위를 굴러다니고 심강열의 탄탄한 팔이 아슬아슬하게 떨어지려는 한유라의 허리를 덥썩 잡았다.그리고 곧 따뜻한 품에 안긴 한유라가 따뜻한 느낌의 바디워시 향을 만끽했다.‘하, 그냥 재우려고 했는데. 자꾸 유혹을 해온다 이거지?’미간을 찌푸리고 있던 심강열이 반격을 시작했다.뜨거운 입술이 한유라의 몸 곳곳을 누비고 한유라가 무거운 눈꺼풀을 겨우 들었다.‘아, 누구지? 아... 깡이구나. 아, 맞다. 나 이 사람이랑 결혼했었지...’그녀의 눈동자에 들어온 심강열의 눈동자는 이미 거친 욕망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한유라가 손을 뻗어 심강열의 탄탄한 가슴을 만졌다.‘마음에 들어...’두 사람이 시선을 마주치고... 심강열이 피식 웃었다.“깼어? 네가 먼저 나 건드린 거야. 내일 뭐라고 하기 없기다?”그리고 한유라의 대답 따윈 필요없다는 듯 숨 막힐 듯한 키스가 이어졌다....잠시 후, 땀범벅이 된 두 사람이 침대에 축 늘어지고
한유라는 그런 말을 한 것을 후회했다. 심강열의 체력을 너무 과소평가했던 게 문제였다. 남자는 자극하는 게 아니라고 했다. 평소였다면 자정 전에는 잠에 들었을 텐데 오늘 밤 그녀는 눈을 감을 여유조차 없었다. 그들은 새벽이 올 때까지 서로의 거칠게 뛰는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한편, 소은정은 꽤 한가한 나날을 보냈다. 전동하와 소찬식이 번갈아 가면서 그녀를 케어했고 출장이나 긴 회의 같은 일은 전부 소은해가 부담하게 되었다.집에서 너무 갑갑하다고 그녀가 항의해서 매일 3시간은 회사에 근무할 수 있게 되었다.소은해에게는 거절할 자유가 없었다. 임시로 회사 운영을 맡게 되었지만 너무 많은 업무와 일정이 쌓여서 감당이 안 될 때도 많았다.어느 날, 그는 초대장 한 장을 들고 소은정의 사무실을 찾았다.“오후에 와인바에서 미팅이 하나 잡혔어. 새 프로젝트 관련 기업들이 모여서 하는 미팅인데 회사 고위 인원 중 한 명은 무조건 참석해야 해. 이런 일에는 네가 나서야지! 은정아, 부탁할게!”소은정은 미팅 장소를 확인하고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한유라도 오늘 이 와인바에 간다고 했는데 마침 그녀를 만날 기회였다.“알았어. 내가 가지 뭐.”소은해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유분방한 귀공자에서 요즘 따라 무척 진지해진 그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소은정은 조금 안쓰러운 마음도 들었었다.오늘 따라 그가 예전 모습으로 돌아간 것 같아서 조금 웃음이 나왔다.오후가 되자 소은정은 준비를 마치고 우연준과 함께 약속장소로 향했다.사실 소은정은 술을 많이 마셔야 하는 미팅은 별로 선호하지 않았기에 예전이었다면 이런 일은 거의 소은호 몫이었다. 그래도 그녀에게 너무 낯선 곳이 아니라 다행이었다.미팅 장소인 더블레인 와인바는 오늘 미팅 인원 외에 다른 손님을 받지 않기로 되어 있었다. 외제차들이 주차장에 육속 도착했고 안으로 들어서자 호화로운 인테리어가 눈에 띄었다.소은정은 담담한 표정으로 와인바에 들어섰다. 좌석에는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앉아 있었는데 전부
소은정은 재치 있게 곤란한 질문을 피해갔다.물론 사람들도 그녀의 성격을 알기에 개인 스케줄에 대해 꼬치꼬치 캐묻지는 않았다.전동하는 그녀의 외투를 받아 들고는 한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감쌌다. 이런 배려가 고마웠지만 소은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는 고개를 들고 그의 눈치를 잠시 살피다가 말했다.“동하 씨가 여기 나오는 줄은 몰랐어요.”전동하가 웃으며 대답했다.“내가 미리 얘기 안 했으니 내 잘못이죠.”소은정은 웃으면서 좌석으로 다가갔고 전동하는 자연스럽게 그녀를 위해 의자를 빼주며 말했다.“한유라 씨는 저쪽에 있어요. 술은 절대 마시면 안 돼요.”그가 가리키는 쪽에 한유라가 여자들과 함께 포카를 치고 있었다. 들어오는 것을 봤을 텐데 포카에 정신이 팔려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게 분명했다.그녀가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들자 소은정도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그래요. 이쪽은 동하 씨한테 맡길게요. 난 유라한테 좀 가볼게요.”사실 이 자리에 참석한 인원들 중에 유부남이면서 아내 대신 다른 여자를 파트너로 데려온 사람도 많았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해주는 게 이 업계의 암묵적인 룰이었다.어차피 다른 사람의 사생활에는 관심도 없고 기자도 아닌데 그런 일에 관심 가질 필요도 없었다.전동하는 부드럽게 웃으며 그녀의 손을 잡고 그쪽으로 갔다. 한유라의 옆에 앉았던 여자가 일어나며 자리를 비켜주었다.“은정 씨 빨리 와서 앉아요. 한유라 씨가 여기서 돈을 쓸어담고 있어요. 저는 감당이 안 되니까 은정 씨가 여기서 대신 게임 좀 해요. 저는 바람 좀 쐬러 나갔다 올게요.”소은정에게 자리를 비켜준 여자는 눈치가 빠른 사람이었다.머릿수나 채우려고 참석한 자리였고 지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재벌 사모님들과는 다른 세상 사람이라고 할 수 있었다.어차피 소은정이 도착했으니 누가 뭐라고 하기 전에 빨리 자리를 내주는 게 그녀에게는 옳은 선택이었다.소은정은 웃으며 대범하게 자리에 앉았다.“좋아요. 돈 따면 우리 반반씩 나눠가져요.”여자는 생긋 웃으며 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