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은정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치아로 짓눌린 입술이 빨갛게 변하고 그녀의 의도와 다르게 어딘지 모를 매혹스러움이 추가되었다.할말을 잃은 소은정이 홱 돌아선 순간, 전동하가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쑥스러움으로 물든 소은정의 얼굴을 바라보니 전동하의 마음이 설렘으로 살랑였다.화난 그녀의 마음을 풀어주려는 듯 전동하는 한결 누그러든 목소리로 말했다.“아, 내가 너무 성급했나요? 너무 변태 같았나? 그런데... 아무 소원이나 상관없다면서요. 원하는 소원 같은 거 있으면 미리 언질이라도 주지 그랬어요. 난 이렇게 화낼 줄 몰랐죠.”“하!”소은정이 코웃음을 지었다.‘지금 은근슬쩍 내 탓으로 돌리는 거야?’힘껏 팔을 휘둘러 전동하의 손을 떨쳐낸 소은정이 그를 흘겨보았다.“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요?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도...”소은정이 격앙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가려던 그때, 전동하의 낯빛이 창백해지더니 자신의 가슴을 움켜쥐었다.이에 소은정 역시 깜짝 놀란 얼굴로 다가갔다.“왜 그래요? 상처가 벌어진 거예요? 잠깐만요. 바로 의사선생님 불러올게요!”순식간에 소은정의 작은 손이 식은땀으로 젖었다.소은정이 호출벨을 누르려던 그때, 전동하가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은정 씨가 화 풀면 바로 나을 것 같은데...’그의 말에 두 눈을 껌벅이던 소은정이 또 당했음을 인지하고 발을 동동 굴렀다.“장난치는 게 그렇게 재밌어요!”그렇게 깨어나길 바랐는데 정신 차리자마자 하는 짓이 장난질뿐이라니.전동하를 밀어내려던 소은정은 아무리 장난이라 해도 창백한 안색만은 연기가 불가능하다는 걸 인지하곤 훨씬 풀어진 힘으로 그의 어깨를 툭 건드렸다.하지만 여전히 차가운 얼굴로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이렇게 장난치는 거 보니까 다 나았네. 약 안 먹어도 되겠어요.”이에 전동하가 생긋 웃으며 소은정의 눈치를 살폈다.“정말 화났어요? 내가 이렇게 사과할게요. 화 풀어요, 네?”하지만 그의 애교에도 소은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내가 그 동안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그냥 목이 너무 많이 말라서 그런 거 아닐까요?”물컵을 내려놓은 소은정이 수척해진 전동하의 얼굴을 발견하고 안쓰럽다는 표정을 지었다.“집사 아저씨가 지금 집에서 영양식으로 준비하고 있어요. 원장님 말로는 내일쯤에 검사 한번 더 받고 별일 없으면 일반식으로 먹어도 된대요. 뭐 먹고 싶은 거 있어요? 뭐든 말해요.”재잘거리던 소은정이 뭔가 생각난 듯 물었다.“아, 아직 회사 사람들은 동하 씨가 깨어난 거 모르죠? 비서님들한테 전화라도 하는 게 좋지 않겠어요?”비록 베이스는 미국이라지만 전동하의 한국 지사도 빠른 성장을 거두고 있는 상황, 구멍가게도 주인이 하루 없으면 엉망이 되는 판에 기업은 오죽할까.하지만 전동하는 미간을 찌푸렸다.“아니에요. 윤 비서가 알아서 잘 처리할 거예요.”이에 소은정이 눈썹을 치켜세웠다.“윤 비서님을 그렇게 신뢰해요?”“겨우 보름 정도 자리 비웠다고 망가질 회사라면 계속 운영해 나가야 할 의미가 없잖아요.”그의 말에 소은정은 전동하의 박력에 다시 감탄하는 수밖에 없었다.“뭐, 동하 씨가 그렇다면야. 그 동안 푹 쉬어요.”전동하의 곁에 자리를 잡은 소은정은 두 손으로 턱을 괸 채 전동하를 바라보았다.비록 머릿속에는 엉큼한 생각들뿐이고 하는 말도 장난뿐이었지만 이렇게 서로 농담 따먹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벅차올랐다.전동하도 평소보다 훨씬 더 들뜬 말투였다.“그 동안 나 걱정 많이 했죠? 소은호 대표님이 우리를 데리고 온 거예요?”“네. 몰래 귀국했죠.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아마 우리가 죽은 줄 알걸요? 거기서 뛰어내렸는데... 살아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하겠죠.”“정말 천운이네요.”전동하가 고개를 숙인 채 웃었다.미처 생각할 겨를 없이 눈에 보이는 창문으로 뛰어내렸던 것인데 그게 나름 신의 한수가 되었다.“도혁 그 자식이랑 같이 있으면서... 많이 무서웠죠? 박수혁 대표가 제안을 거절했다면서요. 화가 많이 났을 것 같은데.”전동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박수혁이 도혁의 제안을 거절했다는 정보를 입수
경찰이 나름 제작용을 하는 대한민국과 달리 동남아의 일부 나라에서는 사람 목숨이 파리보다 더 가볍게 여겨지기도 했다.전동하가 안쓰럽다는 눈으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이제 괜찮아요. 앞으로 다시 그럴 일 없을 거예요. 걱정말아요.”전동하의 곁에 기댄 소은정의 목소리는 여전히 무겁기만 했다.“내가 그곳에서 봤던 것들 아마 영원히 잊지 못할 거예요.”그런 그녀의 이마에 살짝 입을 맞춘 전동하가 어색하게 화제를 돌렸다.“그럼 도움을 준 사람은 없었어요?”“도움이요?”멈칫하던 소은정은 도혁의 애인을 떠올렸다.흉측한 모습의 부하들 중에서 그녀는 유일한 위로였으니까.“있었죠. 좋은 사람이었어요. 비록 대놓고 도와주진 않았지만 은근슬쩍 많이 챙겨줬었죠. 그 방에서 날 빼내주기도 했고요. 뭐 아쉬운 게 있다면... 도혁 그 쓰레기 같은 자식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거지만.”처음엔 혹시 누군가 꽂아둔 스파이가 아닐까 싶기도 했지만 도혁을 바라보는 여자의 눈을 본 순간 그 추측은 접는 수밖에 없었다.도혁을 바라보는 그 눈동자, 그것은 소은정이 너무나 익숙한 모습, 누가 봐도 사랑에 빠진 여인의 모습이었다.말로는 그저 수많은 섹파일 뿐이라고 돈과 명예를 위해 도혁의 곁에 있는 것뿐이라고 했지만 도혁이 위험에 빠진 순간에도 여자는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정말 그저 속물적인 욕심 때문이었다면 도혁이 위기에 빠진 순간 혼자 살겠다고 도망쳤을 테니까.전동하가 미간을 찌푸렸다.“도혁 주위에 여자가 많았다는 정보는 들었어요. 여자가 자주 바뀐다고.”“맞아요. 나도 그렇게 들었어요.”소은정이 고개를 끄덕였다.도혁은 놀라울 정도로 차갑고 이성적인 사람이었고 여색에는 딱히 관심이 없는 남자였다.뭐 그 덕분에 그 집에서 무사히 있을 수 있었던 거였지만.“그 여자... 한국에서 동남아로 팔려간 거죠?”“그건 어떻게 알아요?”여자의 과거에 대해 묻는 순간, 확 굳어버린 표정 때문에 차마 묻지 못한 이야기기도 했다.“가족 중에 조폭에게 미움을 산 사람이 있
잠시 후, 소은정이 입을 삐죽 내민 채 툴툴거렸다.“그런데 안 졸려요? 방금 전에 깨어난 환자 맞냐고요!”소은정의 말에 전동하가 웃음을 터트렸다.“은정 씨가 곁에 있는데 내가 잠이 올 리가 없잖아요.”망설이던 전동하가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여기 누워요.”“싫거든요.”소은정이 미간을 찌푸렸다.이에 전동하가 그녀의 팔을 잡아끌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설득을 이어갔다.“은정 씨가 옆에 누우면 잠이 잘 올 것 같단 말이에요.”하지만 소은정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아무리 봐도 바로 잠들 건 같진 않은데...’그럼에도 속는 셈 치고 천천히 침대 위로 올라갔다.VIP 병실이라 그런지 두 사람이 누워도 공간은 널널했다.전동하 때문에 잔뜩 곤두세웠던 신경이 풀린 탓일까? 베개에 머리를 댄 소은정은 잠이 솔솔 밀려오기 시작했다.‘안 돼! 자지 마! 동하 씨 자면 집에 가야지.’소은정이 억지로 눈을 뜨며 말했다.“잠들 것 같으면 말해 줘야 해요?”이에 전동하가 그녀의 어깨를 토닥였다.“네. 일단 잠깐 눈 붙여요. 잠 들 것 같으면 깨워줄 테니까.”조용한 병실, 나른한 전동하의 목소리까지... 소은정의 눈꺼풀은 결국 내려앉았다.그런 그녀를 전동하는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이 순간이 평생 이어져도 나쁘지 않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행복도 잠시.전동하의 표정이 의미심장하게 굳었다.‘은정 씨를 구하러 갔을 때... 모든 인맥을 동원해서 도혁의 라이벌이라는 독사와 접선했었지. 박수혁 대표도 독사를 이용한 걸까? 그렇다면...’전동하의 눈이 서늘하게 변했다.소은정이 납치를 당한 건 어디까지나 박수혁 때문, 그런데도 인질의 안전이 아닌 그룹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는 박수혁의 모습에 전동하는 실망스러우면서도 치가 떨렸다.‘은정 씨는 아무렇지 않게 넘어갈 수 있을지 몰라도 난 아니야... 난 그렇게 너그러운 사람이 아니라서 말이야. 박수혁 씨, 앞으로 조금 번거로워질지도 몰라. 내 작은 복수라고 생각해줘.’다음 날, 회진을
아침부터 아주 다이나믹한 표정을 보여주는 소은정의 모습을 전동하는 흥미롭다는 듯 바라보았다.한편 소은정은 불만 가득한 눈빛으로 전동하를 바라보고 있었다.무심결에 팔을 움직이던 전동하는 밤샘 팔베개 때문에 저릿한 느낌에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아침부터 왜 화를 내고 그래요.”후다닥 침대에서 내려온 소은정은 바로 병실을 나서려고 했다.이에 전동하가 그녀를 불러세웠다.“한 원장님 지금 회진 도는 중이에요. 지금 나가면 바로 마주칠지도 모르는데. 조금 있다가 가는 게 어때요?”그 목소리에 소은정의 뒷모습이 살짝 움찔거렸다.‘하, 여기서 잔 것도 모자라서 다른 사람한테 들키기까지 했다고?’창피함과 분노가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용솟음쳤다.“어제 말했잖아요. 잠 들 것 같으면 얘기하라고. 그런데 왜 안 깨웠어요? 내가 우스워지는 게 좋아요?”환자라는 신분 때문에 어떻게든 화를 눌러보려 했지만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한다 싶었다.전동하가 머쓱한 미소를 지었다.“솔직히 나도 그냥 스르륵 잠들었어요. 은정 씨 깨울 겨를도 없이요. 그러니까 화내지 말아요. 그리고 다른 사람이 보면 뭐 또 어때요. 옷도 다 제대로 챙겨입고 있고... 지금 내 컨디션에 뭐 다른 짓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저분들은 의사니까 과학적으로 그런 게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지 않을까요?”소은정은 전동하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화가 조금 풀리긴 했지만 얼굴은 점점 더 화끈 달아올랐다.“두고봐요!”그런 전동하를 날카로운 눈으로 노려봐 준 소은정이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겼다.괜히 옷매무시를 정리한 소은정이 병실 문을 빼꼼 열었다.‘휴, 다행이다. 아무도 없네.’병실로 돌아가 보니 어느새 도착한 소은해가 아침을 먹고 있었다.그녀의 등장에 소은해가 눈썹을 치켜세웠다.“오, 전 대표는 깼어? 아빠가 아침 챙겨주셨어. 깼으면 가져다 주게.”고개를 그덕인 소은정이 텅 빈 배를 어루만지며 소은해의 맞은편에 앉았다.식사에 열중하던 그때, 포크를 내려놓은 소은해가 진지하게 물었다.“이제
성강희의 질타에 입을 벙긋거리던 한유라는 결국 변명을 포기했다.이때 소은정이 결국 나섰다.“유라 탓하기 전에 너 스스로부터 돌아보시지? 네 입이 워낙 가벼워야 말이지. 실수로 다른 사람들한테 말하기라도 하면 계획이 엉망이 되버리잖아.”이에 놀랍게도 성강희는 눈시울을 붉히기 시작했다.“내가 그렇게 생각없는 사람으로 보여? 네 안전과 직결된 일인데! 진작 알았으면 내가 먼저 가서 널 구했을 거야!”금방이라도 눈물을 떨어트릴 것 같은 모습에 소은정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전동하의 얼굴도 질투심으로 조금 어두워졌다.하지만 곧 아무렇지 않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강희 씨가 알았으면 죽기내기로 달려들었을 거잖아요. 그럼 소은호 대표님의 계획이 물거품이 되는 거니까요.”‘하, 내가 다혈질인 건 어떻게 알았대?’정곡을 찔린 성강희가 고개를 홱 돌렸다.‘하긴 내가 갔다간... 괜히 사망자만 한 명 더 늘어나겠지. 인질이 한 명 더 늘어나거나.’이때 다가온 한유라가 성강희의 뒤통수를 살짝 때렸다.“너 아직도 은정이한테 이상한 마음 품고 있는 거 아니지? 야, 너 요즘 연애한다면서. 해외 유학파 출신의 여비서라고 그랬나? 언제 소개해 줄 거야?”한유라의 자연스러운 화제 전환에 소은정도 김하늘도 눈이 동그래졌다.납치당해 있었던 소은정은 물론이고 요즘 드라마 제작 때문에 바쁘게 보낸 김하늘 역시 성강희의 열애 사실에 대해서는 새까맣게 모르고 잇는 상태였다.하지만 역시 가장 당황한 건 성강희.한유라의 질문에 성강희는 말까지 더듬거렸다.“너... 너 그건 도대체 어디서 들었어?”‘아니, 아직 사귀는 것도 아니고 겨우 썸 정도인데 어떻게 안 거래?’“우리 남편이 말해줬어.”한유라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그 뒤로 이어진 세 여자의 압박 심문에 성강희는 결국 모든 진실을 실토하는 수밖에 없었다.“아, 그냥 조금 알아가는 중이야. 좋은 직원이기도 하고 해서 눈여겨 본 것뿐이라고. 아직 아무 사이도 아니니까 괜한 소문 퍼트리지 마.”
한유라의 말에 깜짝 놀란 전동하가 자연스레 소은정을 바라보았다.아무 생각없이 김하늘과 웃고 있는 소은정의 모습에 전동하 역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우리가 결혼을 할 수 있을까? 우린 신혼여행 어디로 가면 좋을까...’시간은 조용히 흐르고 소은정의 친구들은 점심 때가 되어서야 병원을 나섰다.보름 내내 병원에만 있었던 소은정은 슬슬 몸이 쑤시기 시작했지만 전동하를 혼자 남겨두는 게 도저히 마음에 놓이지 않았다.오후쯤, 재활운동을 하고 돌아온 전동하는 소은정과 함께 태블릿으로 기사를 보기 시작했다.연예면 뉴스에서 시선을 못 떼는 소은정을 힐끗 바라보던 전동하가 웃었다.“그러게 재밌어요? 솔직히 이런 스캔들... 사실무근인 경우가 더 많지 않아요?”그러자 소은정이 그를 흘겨보았다.“일단 여기서 일차적으로 필터링하고 관심가는 기사는 오빠나 도준호 대표한테 물어보면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 수 있잖아요.”소은정의 설명에도 전동하는 딱히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받아들이기로 하고 아무런 불평 없이 조용히 소은정의 곁을 지켰다.솔직히 전동하 본인 역시 몸 상태가 거의 다 회복되었다는 걸 알고 있었고 조금 답답하기도 했지만 의사가 퇴원하라고 할 때까지 시간을 꽉꽉 채울 생각이었다.소은정의 케어를 아무나 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니까.전동하의 눈꺼풀이 점점 내려오려던 그때, 소은정의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다.“오빠?”“은정아, 나 오늘 항공편이었는데 기상 악화로 비행기가 못 뜨고 있어. 3시간 뒤면 SC그룹 발표회거든. 내가 못 가면 너라도 가야 할 것 같아. 어차피 우 비서가 다 준비했고 넌 그냥 얼굴만 비추면 돼.”전화를 받자마자 속사포처럼 말을 뱉어내던 소은호가 어딘지 무거운 목소리로 한 마디 덧붙였다.“굉장히 중요한 발표회야. 무조건 대표가 참석해야 해.”잠깐 고민하던 소은정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우 비서님한테 병원으로 와달라고 해줘.”“그래, 그럼 부탁할게.”통화를 마친 소은정이 전동하를 돌아보았다.‘동하 씨만 두고 가도 정말 괜찮
이에 우연준이 웃음을 터트렸다.“아부하는 거 아닙니다. 진심으로 드리는 말씀이에요.”잠시 후 두 사람이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고 우연준의 에스코트를 받아 뒷좌석에 앉으려던 소은정이 최성문을 발견하고 흠칫했다.최성문은 말없이 그녀를 향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은호 대표님이 특별히 부탁하셨습니다. 앞으로 공식적인 장소에는 최 팀장님이 항상 동행하는 걸로요. 그 자체로도 위압감을 줄 수 있으니까요.”우연준의 설명에 소은정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워낙 큰일이 있기도 했고... 최 팀장이 곁에 있으면 나도 안심이 되긴 해. 구사일생으로 살아돌아온 지 한 달도 안 지났어. 여기서 또 무슨 일 생기면... 하, 진짜 부적이라도 써야 하나.’발표회는 애프터는티 같은 비교적 가벼운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전체적인 기획은 은호 대표님께서 다 준비해 두셨습니다. 이제 남은 건 계약 체결뿐이에요. 상대 고객이 워낙 시끌벅적한 걸 좋아하셔서 이런 파티가 열리게 된 거고요.”“아, 클라이언트의 요구였구나.”소은정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그렇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시끌벅적한 걸 좋아하면 사람도 꽤 많이 초대했겠네요.”“네. 저희 그룹과 좋은 인연을 유지하고 있는 대표님들과 재원들, 그리고 기자들도 참석할 예정입니다. 대표님께서는 그저 잠깐 얼굴만 비춰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우연준의 설명에 소은정이 고개를 끄덕였다.“뭐, 그런 건 제 주특기죠.”잠시 후, 소은정을 태운 차량이 파티장에 도착했다.소은호는 이번 파티를 위해 호텔 펜트하우스 전체를 대관했는데 아름다운 조명과 우아한 인테리어와 어우러져 왠지 비현실적인 모습을 연출하고 있었다.소은정의 등장에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쏠렸다.“정말 소은정 대표네. 저 드레스... 내가 사고 싶었는데... 우리 나라에 딱 한벌 들어온 걸 저분이 사셨구나... 이쁘다.”“역시 미모 하나는 끝내준다니까.”“게다가 능력도 출중하고...”...우아한 미소를 장착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