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을 전동하의 큰 손에 파묻은 소은정의 어깨가 슬픔으로 살짝 떨려왔다.만약 운이 나빴다면... 전동하가 마침 그때 와주지 않았다면...다른 가능성을 아무리 생각해 봐도 끔찍한 결과뿐이었다.‘그랬다면 내가 죽든지 두 사람 다 죽든지 둘 중 하나였겠지...’하지만 소은정이 더 두려운 건 두 번째 경우였다.애초에 그녀는 전동하를 진심으로 사랑해서 연애를 시작한 게 아니었다.탐욕스럽게도 그녀는 사랑의 달콤함만 취하고 싶었고 그래서 미래에 대한 그 어떤 약속도 하지 않았다.그만큼 지난 결혼의 상처가 컸기 때문이었다.전동하가 알게 모르게 건네는 말에 담긴 뜻을 뻔히 알고 있었지만 그때마다 소은정은 그저 웃으며 넘겼었다.하지만 점점 더 무거워지는 사랑의 무게에 소은정은 왠지 부담스러웠다.‘나 때문에... 나 때문에 그렇게 죽을 각오까지 할 줄은 몰랐어.’손바닥에 느껴지는 촉촉함에 전동하가 움찔했다.그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려던 그때 구석에 선 채 왠지 모르게 억울한 눈빛을 하고 있는 마이크가 시선에 들어왔다.왠지 소외당했다는 기분에 조금 삐진 것 같은 얼굴이었지만 전동하는 매정하게 아들에게 나가라는 듯 손을 저었다.입을 삐죽거리던 마이크가 결국 병실을 나섰다.‘어떻게 아들을 이렇게 무시할 수가 있어! 아빠 나빠! 난 아빠 때문에 울기까지 했는데! 괜히 울었어!’병실을 나서고도 한참을 씩씩대던 마이크는 결국 한숨을 푹 내쉬었다.‘아니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예쁜 누나라면... 참아줄 수 있지.’한편 병실.전동하는 말없이 소은정의 등을 토닥여주었다.‘울지 말아요... 은정 씨가 이렇게 울면 내 마음이 너무 아프잖아요...’한참 뒤에야 전동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뭐 이것저것 따질 겨를이 없었어요. 은정 씨를 잃는 게 죽는 것보다 훨씬 더 두려웠으니까요.”빨개진 눈으로 고개를 든 소은정의 얼굴은 이미 눈물 범벅이 되어 있었다.손을 뻗어 눈물을 닦아준 전동하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당신이 다치는 것보다 내가 다치는 게 백배
곧이어 전동하가 말을 이어갔다.“그 악마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날 사람취급해 준 게 마이크의 아버지였고 그 마음에 보답한다는 생각으로 지금까지 마이크를 키워오고 있어요. 그게 내 책임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은정 씨는 달라요. 은정 씨를 지키는 건 나한테 본능 같은 거예요. 솔직히 나도... 내 감정이 정말 순수한 건가 고민했었어요. 혹시나 한순간의 끌림을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하고요. 하지만... 은정 씨랑 더 가까워질 수록 그 의심은 확신으로 바뀌었어요. 아, 이건 사랑이 맞구나. 은정 씨한테 다가가는 시간들이 나한테는 너무나 소중했고 그래서 더 가까워지고 싶고 더 이해하고 싶었어요. 은정 씨, 나한테 은정 씨는 정말 소중한 존재예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소중한 사람이라고요.”전동하의 진심어린 목소리에 소은정의 눈동자가 살짝 떨려왔다.금방이라도 울 것만 같은 표정을 짓는 그녀의 모습에 전동하가 다시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정말 위험하긴 했는데... 그 순간에는 두려움 같은 걸 느낄 겨를이 없었어요. 그날 그곳에서 내가 살고 은정 씨가 죽었다면 난 남은 생 동안 평생 지옥에서 살아갔을 거예요.”콧물을 훔치며 소은정은 봄날 얼어붙은 땅을 뚫고 나오려는 새싹같은 감정을 억지로 밀어냈다.‘동하 씨도 나한테 소중한 사람이에요. 동하 씨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요.’이때 피식 웃던 소은정이 괜히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그날 진짜 빠르게 달리던데. 비결이 뭐예요?”“은정 씨가 혼자서 얼마나 무서울까라는 생각을 하니까 저도 모르게 그렇게 빨리 달리게 되던데요?”그의 대답에 고개를 푹 숙인 소은정이 환한 미소와 함께 머리를 들었다.“뭐 어쨌든 우리 둘 다 무사하니까 다행이네요. 정말 운이 좋았어요.”“은정 씨가 워낙 운이 좋은 사람이잖아요. 그 덕에 나도 이렇게 무사한 게 아닐까요?”“뭐... 받고 싶은 거 있어요?”“왜요? 보답이라도 하려고요?”전동하가 미간을 찌푸렸다.“아빠가 물어보라고
소은정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치아로 짓눌린 입술이 빨갛게 변하고 그녀의 의도와 다르게 어딘지 모를 매혹스러움이 추가되었다.할말을 잃은 소은정이 홱 돌아선 순간, 전동하가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쑥스러움으로 물든 소은정의 얼굴을 바라보니 전동하의 마음이 설렘으로 살랑였다.화난 그녀의 마음을 풀어주려는 듯 전동하는 한결 누그러든 목소리로 말했다.“아, 내가 너무 성급했나요? 너무 변태 같았나? 그런데... 아무 소원이나 상관없다면서요. 원하는 소원 같은 거 있으면 미리 언질이라도 주지 그랬어요. 난 이렇게 화낼 줄 몰랐죠.”“하!”소은정이 코웃음을 지었다.‘지금 은근슬쩍 내 탓으로 돌리는 거야?’힘껏 팔을 휘둘러 전동하의 손을 떨쳐낸 소은정이 그를 흘겨보았다.“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요?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도...”소은정이 격앙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가려던 그때, 전동하의 낯빛이 창백해지더니 자신의 가슴을 움켜쥐었다.이에 소은정 역시 깜짝 놀란 얼굴로 다가갔다.“왜 그래요? 상처가 벌어진 거예요? 잠깐만요. 바로 의사선생님 불러올게요!”순식간에 소은정의 작은 손이 식은땀으로 젖었다.소은정이 호출벨을 누르려던 그때, 전동하가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은정 씨가 화 풀면 바로 나을 것 같은데...’그의 말에 두 눈을 껌벅이던 소은정이 또 당했음을 인지하고 발을 동동 굴렀다.“장난치는 게 그렇게 재밌어요!”그렇게 깨어나길 바랐는데 정신 차리자마자 하는 짓이 장난질뿐이라니.전동하를 밀어내려던 소은정은 아무리 장난이라 해도 창백한 안색만은 연기가 불가능하다는 걸 인지하곤 훨씬 풀어진 힘으로 그의 어깨를 툭 건드렸다.하지만 여전히 차가운 얼굴로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이렇게 장난치는 거 보니까 다 나았네. 약 안 먹어도 되겠어요.”이에 전동하가 생긋 웃으며 소은정의 눈치를 살폈다.“정말 화났어요? 내가 이렇게 사과할게요. 화 풀어요, 네?”하지만 그의 애교에도 소은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내가 그 동안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그냥 목이 너무 많이 말라서 그런 거 아닐까요?”물컵을 내려놓은 소은정이 수척해진 전동하의 얼굴을 발견하고 안쓰럽다는 표정을 지었다.“집사 아저씨가 지금 집에서 영양식으로 준비하고 있어요. 원장님 말로는 내일쯤에 검사 한번 더 받고 별일 없으면 일반식으로 먹어도 된대요. 뭐 먹고 싶은 거 있어요? 뭐든 말해요.”재잘거리던 소은정이 뭔가 생각난 듯 물었다.“아, 아직 회사 사람들은 동하 씨가 깨어난 거 모르죠? 비서님들한테 전화라도 하는 게 좋지 않겠어요?”비록 베이스는 미국이라지만 전동하의 한국 지사도 빠른 성장을 거두고 있는 상황, 구멍가게도 주인이 하루 없으면 엉망이 되는 판에 기업은 오죽할까.하지만 전동하는 미간을 찌푸렸다.“아니에요. 윤 비서가 알아서 잘 처리할 거예요.”이에 소은정이 눈썹을 치켜세웠다.“윤 비서님을 그렇게 신뢰해요?”“겨우 보름 정도 자리 비웠다고 망가질 회사라면 계속 운영해 나가야 할 의미가 없잖아요.”그의 말에 소은정은 전동하의 박력에 다시 감탄하는 수밖에 없었다.“뭐, 동하 씨가 그렇다면야. 그 동안 푹 쉬어요.”전동하의 곁에 자리를 잡은 소은정은 두 손으로 턱을 괸 채 전동하를 바라보았다.비록 머릿속에는 엉큼한 생각들뿐이고 하는 말도 장난뿐이었지만 이렇게 서로 농담 따먹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벅차올랐다.전동하도 평소보다 훨씬 더 들뜬 말투였다.“그 동안 나 걱정 많이 했죠? 소은호 대표님이 우리를 데리고 온 거예요?”“네. 몰래 귀국했죠.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아마 우리가 죽은 줄 알걸요? 거기서 뛰어내렸는데... 살아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하겠죠.”“정말 천운이네요.”전동하가 고개를 숙인 채 웃었다.미처 생각할 겨를 없이 눈에 보이는 창문으로 뛰어내렸던 것인데 그게 나름 신의 한수가 되었다.“도혁 그 자식이랑 같이 있으면서... 많이 무서웠죠? 박수혁 대표가 제안을 거절했다면서요. 화가 많이 났을 것 같은데.”전동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박수혁이 도혁의 제안을 거절했다는 정보를 입수
경찰이 나름 제작용을 하는 대한민국과 달리 동남아의 일부 나라에서는 사람 목숨이 파리보다 더 가볍게 여겨지기도 했다.전동하가 안쓰럽다는 눈으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이제 괜찮아요. 앞으로 다시 그럴 일 없을 거예요. 걱정말아요.”전동하의 곁에 기댄 소은정의 목소리는 여전히 무겁기만 했다.“내가 그곳에서 봤던 것들 아마 영원히 잊지 못할 거예요.”그런 그녀의 이마에 살짝 입을 맞춘 전동하가 어색하게 화제를 돌렸다.“그럼 도움을 준 사람은 없었어요?”“도움이요?”멈칫하던 소은정은 도혁의 애인을 떠올렸다.흉측한 모습의 부하들 중에서 그녀는 유일한 위로였으니까.“있었죠. 좋은 사람이었어요. 비록 대놓고 도와주진 않았지만 은근슬쩍 많이 챙겨줬었죠. 그 방에서 날 빼내주기도 했고요. 뭐 아쉬운 게 있다면... 도혁 그 쓰레기 같은 자식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거지만.”처음엔 혹시 누군가 꽂아둔 스파이가 아닐까 싶기도 했지만 도혁을 바라보는 여자의 눈을 본 순간 그 추측은 접는 수밖에 없었다.도혁을 바라보는 그 눈동자, 그것은 소은정이 너무나 익숙한 모습, 누가 봐도 사랑에 빠진 여인의 모습이었다.말로는 그저 수많은 섹파일 뿐이라고 돈과 명예를 위해 도혁의 곁에 있는 것뿐이라고 했지만 도혁이 위험에 빠진 순간에도 여자는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정말 그저 속물적인 욕심 때문이었다면 도혁이 위기에 빠진 순간 혼자 살겠다고 도망쳤을 테니까.전동하가 미간을 찌푸렸다.“도혁 주위에 여자가 많았다는 정보는 들었어요. 여자가 자주 바뀐다고.”“맞아요. 나도 그렇게 들었어요.”소은정이 고개를 끄덕였다.도혁은 놀라울 정도로 차갑고 이성적인 사람이었고 여색에는 딱히 관심이 없는 남자였다.뭐 그 덕분에 그 집에서 무사히 있을 수 있었던 거였지만.“그 여자... 한국에서 동남아로 팔려간 거죠?”“그건 어떻게 알아요?”여자의 과거에 대해 묻는 순간, 확 굳어버린 표정 때문에 차마 묻지 못한 이야기기도 했다.“가족 중에 조폭에게 미움을 산 사람이 있
잠시 후, 소은정이 입을 삐죽 내민 채 툴툴거렸다.“그런데 안 졸려요? 방금 전에 깨어난 환자 맞냐고요!”소은정의 말에 전동하가 웃음을 터트렸다.“은정 씨가 곁에 있는데 내가 잠이 올 리가 없잖아요.”망설이던 전동하가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여기 누워요.”“싫거든요.”소은정이 미간을 찌푸렸다.이에 전동하가 그녀의 팔을 잡아끌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설득을 이어갔다.“은정 씨가 옆에 누우면 잠이 잘 올 것 같단 말이에요.”하지만 소은정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아무리 봐도 바로 잠들 건 같진 않은데...’그럼에도 속는 셈 치고 천천히 침대 위로 올라갔다.VIP 병실이라 그런지 두 사람이 누워도 공간은 널널했다.전동하 때문에 잔뜩 곤두세웠던 신경이 풀린 탓일까? 베개에 머리를 댄 소은정은 잠이 솔솔 밀려오기 시작했다.‘안 돼! 자지 마! 동하 씨 자면 집에 가야지.’소은정이 억지로 눈을 뜨며 말했다.“잠들 것 같으면 말해 줘야 해요?”이에 전동하가 그녀의 어깨를 토닥였다.“네. 일단 잠깐 눈 붙여요. 잠 들 것 같으면 깨워줄 테니까.”조용한 병실, 나른한 전동하의 목소리까지... 소은정의 눈꺼풀은 결국 내려앉았다.그런 그녀를 전동하는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이 순간이 평생 이어져도 나쁘지 않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행복도 잠시.전동하의 표정이 의미심장하게 굳었다.‘은정 씨를 구하러 갔을 때... 모든 인맥을 동원해서 도혁의 라이벌이라는 독사와 접선했었지. 박수혁 대표도 독사를 이용한 걸까? 그렇다면...’전동하의 눈이 서늘하게 변했다.소은정이 납치를 당한 건 어디까지나 박수혁 때문, 그런데도 인질의 안전이 아닌 그룹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는 박수혁의 모습에 전동하는 실망스러우면서도 치가 떨렸다.‘은정 씨는 아무렇지 않게 넘어갈 수 있을지 몰라도 난 아니야... 난 그렇게 너그러운 사람이 아니라서 말이야. 박수혁 씨, 앞으로 조금 번거로워질지도 몰라. 내 작은 복수라고 생각해줘.’다음 날, 회진을
아침부터 아주 다이나믹한 표정을 보여주는 소은정의 모습을 전동하는 흥미롭다는 듯 바라보았다.한편 소은정은 불만 가득한 눈빛으로 전동하를 바라보고 있었다.무심결에 팔을 움직이던 전동하는 밤샘 팔베개 때문에 저릿한 느낌에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아침부터 왜 화를 내고 그래요.”후다닥 침대에서 내려온 소은정은 바로 병실을 나서려고 했다.이에 전동하가 그녀를 불러세웠다.“한 원장님 지금 회진 도는 중이에요. 지금 나가면 바로 마주칠지도 모르는데. 조금 있다가 가는 게 어때요?”그 목소리에 소은정의 뒷모습이 살짝 움찔거렸다.‘하, 여기서 잔 것도 모자라서 다른 사람한테 들키기까지 했다고?’창피함과 분노가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용솟음쳤다.“어제 말했잖아요. 잠 들 것 같으면 얘기하라고. 그런데 왜 안 깨웠어요? 내가 우스워지는 게 좋아요?”환자라는 신분 때문에 어떻게든 화를 눌러보려 했지만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한다 싶었다.전동하가 머쓱한 미소를 지었다.“솔직히 나도 그냥 스르륵 잠들었어요. 은정 씨 깨울 겨를도 없이요. 그러니까 화내지 말아요. 그리고 다른 사람이 보면 뭐 또 어때요. 옷도 다 제대로 챙겨입고 있고... 지금 내 컨디션에 뭐 다른 짓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저분들은 의사니까 과학적으로 그런 게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지 않을까요?”소은정은 전동하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화가 조금 풀리긴 했지만 얼굴은 점점 더 화끈 달아올랐다.“두고봐요!”그런 전동하를 날카로운 눈으로 노려봐 준 소은정이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겼다.괜히 옷매무시를 정리한 소은정이 병실 문을 빼꼼 열었다.‘휴, 다행이다. 아무도 없네.’병실로 돌아가 보니 어느새 도착한 소은해가 아침을 먹고 있었다.그녀의 등장에 소은해가 눈썹을 치켜세웠다.“오, 전 대표는 깼어? 아빠가 아침 챙겨주셨어. 깼으면 가져다 주게.”고개를 그덕인 소은정이 텅 빈 배를 어루만지며 소은해의 맞은편에 앉았다.식사에 열중하던 그때, 포크를 내려놓은 소은해가 진지하게 물었다.“이제
성강희의 질타에 입을 벙긋거리던 한유라는 결국 변명을 포기했다.이때 소은정이 결국 나섰다.“유라 탓하기 전에 너 스스로부터 돌아보시지? 네 입이 워낙 가벼워야 말이지. 실수로 다른 사람들한테 말하기라도 하면 계획이 엉망이 되버리잖아.”이에 놀랍게도 성강희는 눈시울을 붉히기 시작했다.“내가 그렇게 생각없는 사람으로 보여? 네 안전과 직결된 일인데! 진작 알았으면 내가 먼저 가서 널 구했을 거야!”금방이라도 눈물을 떨어트릴 것 같은 모습에 소은정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전동하의 얼굴도 질투심으로 조금 어두워졌다.하지만 곧 아무렇지 않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강희 씨가 알았으면 죽기내기로 달려들었을 거잖아요. 그럼 소은호 대표님의 계획이 물거품이 되는 거니까요.”‘하, 내가 다혈질인 건 어떻게 알았대?’정곡을 찔린 성강희가 고개를 홱 돌렸다.‘하긴 내가 갔다간... 괜히 사망자만 한 명 더 늘어나겠지. 인질이 한 명 더 늘어나거나.’이때 다가온 한유라가 성강희의 뒤통수를 살짝 때렸다.“너 아직도 은정이한테 이상한 마음 품고 있는 거 아니지? 야, 너 요즘 연애한다면서. 해외 유학파 출신의 여비서라고 그랬나? 언제 소개해 줄 거야?”한유라의 자연스러운 화제 전환에 소은정도 김하늘도 눈이 동그래졌다.납치당해 있었던 소은정은 물론이고 요즘 드라마 제작 때문에 바쁘게 보낸 김하늘 역시 성강희의 열애 사실에 대해서는 새까맣게 모르고 잇는 상태였다.하지만 역시 가장 당황한 건 성강희.한유라의 질문에 성강희는 말까지 더듬거렸다.“너... 너 그건 도대체 어디서 들었어?”‘아니, 아직 사귀는 것도 아니고 겨우 썸 정도인데 어떻게 안 거래?’“우리 남편이 말해줬어.”한유라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그 뒤로 이어진 세 여자의 압박 심문에 성강희는 결국 모든 진실을 실토하는 수밖에 없었다.“아, 그냥 조금 알아가는 중이야. 좋은 직원이기도 하고 해서 눈여겨 본 것뿐이라고. 아직 아무 사이도 아니니까 괜한 소문 퍼트리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