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연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뭐 이젠 그냥 워커홀릭 그 자체지만요...”지나가다 마침 그녀의 말을 들은 소찬식이 바로 거들었다.“걔가 글쎄 그렇다니까. 이제 결혼하면 가정도 좀 돌보고 그래야 할 텐데. 내가 참 걱정이 많다 많아. 시연이 네가 좀 뭐라고 해 봐.”“아버님, 이 디저트 좀 드셔보세요. 이제 겨우 아침이에요. 나리 씨 부모님이 오시려면 아직 한참도 더 걸릴 거예요.”“아니 난 아직 배가 안...”“꼬르륵...”배가 안 고프다는 말과 달리 배에서는 우렁찬 소리가 울리고 소찬식은 머쓱한 미소를 지었다.그제야 한시연이 준비한 디저트 하나를 챙겨든 소찬식이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이렇게 이쁜데 먹어도 되려나?”혈당 때문에 너무 단 건 안 되는데...이런 생각을 하며 디저트를 한 입 베어문 순간, 너무 달지 않으면서도 폭신한 촉감에 소찬식은 게 눈 감추 듯 하나를 전부 해치우고 말았다.그리고 멍하니 이 광경을 바라보는 소은정에게 괜한 화풀이가 시작되었다.“너도 좀 배워!”하, 아빠는 왜 나한테 그러신대...이때 한시연이 웃으며 소은정의 편을 들어주었다.“그래요. 아가씨도 같이 배워요. 남자친구한테 해주면 좋아할 것 같은데요.”그 말에 흠칫하던 소찬식이 괜히 툴툴거렸다.“됐어. 여자애라고 무조건 요리를 잘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너 좋아하는 거 해. 아니다. 그룹 일만으로도 바쁜데 이런 거 배울 시간이 어디 있겠어! 뭐니 뭐니해도 머니야. 돈이나 많이 벌어.”말을 마친 소찬식이 다시 집안 정리를 하러 거실로 나가고 한시연이 소은정을 향해 눈을 깜박였다.방금 전까지 왜 뜬금없이 전동하를 언급하나 싶었던 소은정은 그제야 모든 걸 이해하고 웃음을 터트렸다.세상에... 우리 새언니... 눈치 되게 빠르네.잠시 후, 소은호와 소은찬이 선후로 저택에 도착했다.이미 집에 와있는 한시연을 발견하고 흠칫하던 소은호가 두 팔을 벌리고 한시연도 자연스레 그 품에 안겼다.옆사람은 아예 투명인간 취급을 하는 두 사람의 애정행각에 소은정
잠시 후, 손님이 도착했다는 집사의 말과 동시에 차량 한 대가 천천히 정원에 들어섰다.어느새 문 앞으로 마중 나간 소찬식은 화창한 하늘을 올려다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좋아. 오늘은 날씨도 도와주는군.집사가 차문을 열자 뒷좌석에서 남녀가, 조수석에서 신나리가 내렸다.미중년인 남자는 조선시대였으면 사대부 집안 선비라 해도 믿을 정도로 얌전한 분위기였는데 신나리와 비슷한 눈빛을 가지고 있었고 여자 쪽은 우아한 기품이 흘러넘쳤지만 호화로운 저택을 훑어보는 눈빛에서 조금의 긴장감이 느껴졌다.물론 순식간에 무덤덤한 표정으로 되돌아 왔지만 말이다.한편, 신나리는 문 앞에 온가족이 다 나와있는 걸 보고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하다 엄마, 아빠의 팔짱을 낀 채 다가갔다.“아버님, 안녕하세요. 이쪽은 저희 부모님이세요.”서로 간단한 자기소개가 이어지고 소찬식은 긴장했는지 어딘가 굳은 표정으로 모두를 저택으로 안내했다.한편, 신나리의 아버지 신수학은 소은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긴장한 듯 식은땀을 훔쳤다.소 씨 일가 사람들은 재벌 2세의 고정 이미지와 달리 친절하고 온화한 성품으로 보였으나 소은호에게서만큼은 왠지 모를 압박감이 느껴졌다.한시연을 돌아볼 때마다 꿀이 뚝뚝 떨어지는 눈빛과 미소를 띠긴 했지만 그것도 잠시뿐, 다시 고개를 돌리면 방금 전 봤던 모습이 착각인가 싶을 정도로 다시 굳은 얼굴이었다.저 애가 장남이라고 했던가... 그에 비하면 은찬이가 낫긴 하네.반면, 신나리의 엄마 윤혜정은 소은정을 본 순간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미소와 함께 먼저 손을 내밀었다.“안녕하세요. 나리 엄마 윤혜정이라고 해요. 은정 씨 맞죠?”“네, 어머님. 말씀 편하게 하세요.”신나리의 성격이 누구한테서 유전되었는지 한눈에 알 수 있을 정도로 쾌활한 목소리에 소은정도 밝은 미소로 화답했다.“어머 그래도 돼나? 내가 은정 씨 팬이야. 그런데 정말 연기할 생각 없나? 데뷔만 하면 내가 팬클럽 회장 할 생각도 있는데.”윤혜정의 말에 소은정은 물론이고 다른 가족들도
“회장님께서 이렇게 깨어있는 분이신 줄 몰랐습니다...”신수학의 말에 소찬식이 손사래를 쳤다.“솔직히 저희 때야 다 어렵게 자랐죠. 날 때부터 재벌인 사람이 몇이나 있었습니까? 저도 정말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SC그룹을 설립했었죠. 그리고 회장님이 뭡니까. 사돈이라고 부르세요. 아, 저희가 준비한 예단에 대해서 먼저 얘기해 볼까요?”호칭에서 바로 예단으로 화제가 넘어가니 신수학도 윤혜정도 얼떨떨할 따름이었다.“일단 현금 30억에 신혼집은 양평에 있는 300평짜리 별장으로 하죠. 아, 평소 출퇴근할 때 지낼 빌라도 100평 정도로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액세서리로는...”잔뜩 신난 소찬식이 말을 이어가려던 그때, 신수학이 어색한 기침이 들려왔다.“회장님, 벌써 이런 얘기를 하는 건 너무 이르지 않을까요?”“별말씀을요. 이런 건 미리미리 정해 둬야 하는 겁니다. 그리고 저희 가족들 모두 진심으로 나리가 마음에 들거든요.”소찬식이 인자한 미소로 신나리를 돌아보고 신나리는 쑥스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소찬식의 진심어린 칭찬에 신수학과 윤혜정의 묘하게 실려있던 긴장감이 자취를 감추었다.솔직히 올 때까지만 해도 소 씨 일가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거만하게 나온다면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날 생각이었지만 생각보다 더 화려한 저택 규모에 조금 압도당한 상태였다.하지만 소찬식을 비롯한 가족들의 열정은 그들의 상상을 훨씬 초월했고 오히려 그런 마음을 지닌 채 이곳을 찾은 자신들이 옹졸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오는 칭찬이 있으면 가는 칭찬도 있어야 하는 법.신수학이 입을 열었다.“은찬이도 훌륭한걸요. 우리 나리랑 같은 분야에서 일하는 것도 마음에 들고요. 아, 물론 아드님이 훨씬 더 대단한 과학자지만 말입니다. 해마다 내는 논문에 받는 상만 세어봐도... 웬만한 학자들이 평생을 노력해도 닿지 못할 수준입니다. 저희 나리도 그 동안 아드님을 롤모델로 생각해 왔고요. 솔직히 아드님 같은 남자를 또 어디서 만나겠습니까.”아들 칭찬에 소찬식이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
자연스레 윤혜정의 팔짱을 끼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던 소은정은 윤혜정이 정원에 핀 꽃에 관심을 가지는 걸 보고 멈춰 섰다.정원 중간에 배치된 그네에 차를 마실 수 있는 의자와 탁자.꽃향기를 맡으며 즐기는 티타임이라... 생각만 해도 로맨틱해.소녀처럼 신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는 윤혜정을 바라보던 한시연이 싱긋 미소를 지었다.“어머님, 저 그네도 굉장히 편하답니다... 한 번 앉아보세요.”앉아보라는 말만 기다리고 있었던 윤혜정은 마다하지 않고 바로 착석했다.최근 이렇게 마음이 편한 적이 있었던가?여유롭게 정원 경치를 즐기는 윤혜정의 모습에 소은정과 한시연도 안심하고 옆에 배치된 의자에 앉았고 집사가 눈치껏 꽃차와 디저트를 내왔다.“아가씨, 이 꽃차는 올해 저희 정원에서 딴 꽃으로 만든 겁니다. 한 번 드셔보세요.”소찬식을 비롯한 가족들이 워낙 친절하게 대해 주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너무 오랫동안 이 집에서 일해서일까?집사는 어느새 이곳을 정말 자기 집처럼 생각하고 가꾸고 있었다.“고맙습니다, 아저씨. 어머님도 같이 드세요.”소은정이 조심스럽게 세 잔에 차를 따랐다.가장 먼저 한 모금 마신 한시연이 고개를 끄덕였다.“향이 너무 좋네요. 끝맛도 달달하고요.”한시연의 칭찬에 집사가 자랑스러운 듯 호탕하게 웃었다.“첨가제, 방부제 하나 없이 일일이 다 제 손 거쳐서 만든 겁니다. 그러니 맛이 좋을 수밖에요.”소은정도 거들었다.“집사 아저씨가 워낙 부지런하시거든요. 이 정원의 꽃들도 농약 한 번 안 쳤는데 이렇게 벌레 한 번 안 나오고 이렇게 예쁘게 자란다니까요. 새언니, 어머님, 이따 가실 때 제가 따로 포장해 드릴게요.”“어머, 이렇게 귀한 걸. 고마워.”한시연도 고개를 끄덕였다.잠시 후 그네놀이를 즐긴 윤혜정이 정원 주위를 찬찬히 훑어보았다.“어쩜 집에 이렇게 예쁜 정원이 있을까? 아버님이 은정 씨 위해서 만든 거겠지?”설마 무뚝뚝한 세 아들을 위해 만든 건 아닐 테고...윤혜정의 질문에 살짝 표정이 굳은 소은정의 입가에 곧
“나리 씨도 이쁘잖아요. 은찬 도련님이랑 결혼해서 낳은 아이는 분명 더 귀여울 거예요. 이렇게 좋은 유전자 대가 끊어지면 너무 아깝잖아요. 게다가 두 사람을 닮으면 머리는 또 얼마나 좋겠어요.”한시연의 장난어린 목소리에 윤혜정도 장단을 맞추며 손뼉을 쳤다.“어머, 듣고 보니 그러네. 나 그럼 이제 할머니 소리 들어야 되는 거야? 어우, 그건 좀 싫은데...”“하하하...”그렇게 세 여자는 한동안 웃음꽃을 피웠다.시간은 빠르게 흐르고.두 가족이 점심 식사를 마쳤을 쯤, 더 이상 두 사람의 얼굴에서는 처음 왔을 때의 긴장감과 어색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심지어 신수학은 소은호와의 바둑 대결에서 연속 몇 판이나 이긴 뒤로 그를 바라보는 시선에도 인자함으로 가득했다.처음 봤을 때 무섭게만 느껴졌던 첫인상은 이미 까맣게 잊혀진지 오래였다.늦은 오후쯤, 문을 나서는 두 사람을 위해 집사가 차문을 열어주고 그제야 특별한 상견례는 무사히 막을 내릴 수 있었다.마지막까지 미소를 잃지 않는 소은찬을 보며 소은정은 혀를 찼다.장인, 장모가 무섭긴 한가 보네. 일 년에 세 번 웃을까 말까 한 사람이 어쩌면 하루종일 웃고 있냐? 입꼬리에 경련나겠다...하지만 잠시 후, 배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소은찬이 뜬금없이 말했다.“아빠.”“왜.”하루종일 잔뜩 경직되어 있던 근육을 풀기 위해 안마의자에 몸을 맡긴 소찬식이 눈을 감은 채 대답했다.“저 나리랑 바로 혼인신고 하려고요.”단호한 소은찬의 목소리에 순간 집안 분위기가 싸해졌다.방금 전까지 휴식을 즐기던 소찬식이 벌떡 일어섰다.“사돈들이 널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다만은... 일단 약혼식부터 올리는 게 어떻겠냐는 말에는 완곡히 거절하시더라. 나리랑 몇 년 좀 더 함께 지내고 싶으시다고. 그런데 혼인신고라니. 너 혼자 너무 앞서가는 거 아니니?”하지만 소은찬의 표정은 단호했다.“일단 혼인신고부터 하고 약혼식을 올리든 결혼식을 올리든 하려고.”“야, 너 이거 사기결혼인 거 알아? 사돈들이 이 사실을
그 말을 들은 소은찬은 자신의 말실수를 깨닫고 후회하는 눈빛으로 소은호를 바라보았다. 소은호는 차가운 눈빛으로 소은찬을 바라보았다. 소은호의 그런 표정이 소은찬에게는 처음이었다. 그의 한마디가 한시연에게 슬픈 기억을 떠올리게 했을 것이다. 소은찬은 입술을 꽉 깨물고 한시연을 복잡한 심경으로 바라보았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었다. 한시연은 괜찮다는 듯 웃으면서 해석했다. “나리 씨의 가족분들도 은찬 씨와의 관계에 대해 중시하고 있으니 더 정중히 대해야 해요. 만약 몰래 혼인 신고를 했다가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오히려 은찬 씨 점수가 깎일 거예요. 나리 씨 입장이 중간에서 난처해질 수 있어요!”한시연의 말을 들은 소은찬이 깊은 고민에 빠졌다. 정말 소은찬이 계획했던 일이 틀린 것일까?소은찬은 어차피 해야 할 혼인 신고, 그저 시간문제 아니냐고 생각했었다.하지만 한시연의 말을 들은 소은찬은 자기 행동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다 생각했다. 잠시 생각하던 소은찬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알겠어요, 그럼, 잠시 미룰게요. 감사합니다, 형수님.”한시연이 웃더니 아니라고 했다. 소은찬은 계단을 올라가다 잠시 멈칫하더니 고개를 돌려 말했다.“형수님한테 가족이 왜 없어요? 저희 모두 형수님 가족이에요.”소은찬은 연구실에서 실험하는 것과 같이 정중한 모습으로 말했다. 그의 말에 한시연이 멈칫하더니 눈시울이 붉어진 채 고개를 끄덕이었다.말을 마친 소은찬은 자기 방으로 올라갔다. 소은호는 한시연의 손을 잡고 낮지만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은찬이가 어릴 적부터 대인관계에 서툴렀어, 너무 속상해하지 마. 만약 마지막 한마디가 아니였다면 내가 주민등록증을 숨겨서라도 평생 혼인 신고 못 하게 했을 거야.”아무도 한시연을 건드릴 수 없다.한시연이 웃으면서 그의 손을 다독였다.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그 모습이 눈꼴이 셨던 소은정은 짧은 탄식과 함께 자기 방으로 올라갔다. 공기가 차가워지고 며칠간 비가 계속되었다.소은정도
누가 이 늦은 시간에 찾아와서 귀찮게 하는 거야?고개를 든 소은정 앞에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서 있었다. 깔끔한 정장과 큰 키에 잘생긴 얼굴, 옅은 미소를 입가에 머금은 그는 청순하고 다정해 보였다. “저도 안 만나주는 건가요?”다정하고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소은정도 역시 그가 보고 싶었다. 서로 매일 통화를 하긴 했지만 두 사람 모두 너무 바빴던 터라 간단하게 안부만 묻고 끊어버렸었다. 게다가 시차 때문에 연락을 주고받기 더더욱 힘들었다. 강산이 변하는 동안 서로를 보지 못한 느낌이었다. 평소에 말은 하지 않아도 서로를 무척 그리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잘 알기에 만나려고 하거나 집착하지 않았다. 소은정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우연준이 헛기침하더니 조심스럽게 소은정에게 물었다.“대표님, 만나시겠습니까?”소은정을 놀리고 싶었던 우연준이 알면서도 물었다. 만약 전동하가 찾아왔다는 것을 알았다면 바로 올라오라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연준이 소은정에게 물어봤을 때 마침 전동하가 뒤에 있어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소은정이 우연준을 째려보더니 말했다.“여기까지 왔는데 어떻게 보내요?”그녀의 목소리가 걸걸해졌다.“우리 회사에 제일 중요한 비즈니스 파트너잖아요!”우연준은 웃음을 애써 참았다. 이런 변명거리를 만들다니. 역시 소은정이다. “네, 그럼, 얘기들 나누세요.”말을 마친 우연준이 대표실을 빠져나갔다. 전동하는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면서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는 짧은 한숨을 쉬면서 다정한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는 밤하늘의 별을 수놓은 것처럼 반짝였다. 그는 팔을 벌려 그녀에게 천천히 다가갔다.참을 수 없었던 소은정은 그에게 달려가 폭 안겼다.익숙한 살냄새가 그녀의 코끝을 자극하고 집에 온 것처럼 포근하고 익숙했다. 그녀는 힘을 주어 전동하를 안았다. 며칠 보지 못한 것뿐인데 몇 년간 그리워하던 사람을 만나는 것 같았다. 소은정은 몇 번이고 자신에게 물었었다. 처음 전동하를
차가운 그의 손길에 소은정의 몸이 굳어버리고 입가에는 신음이 새어 나왔다. 그녀의 소리는 부드럽고 야했다. 그녀조차 자기 입에서 이런 소리가 나올 줄 몰랐다. 자신의 신음에 그녀가 번쩍 정신을 차렸다. 남자는 그녀의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신음소리를 들은 그는 피가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만 같았고 자신의 목숨을 눈앞의 여자에게 바치고 싶은 마음이었다.그의 손길은 점점 거칠어졌고 가만히 있는 그녀를 점점 더 만지고 싶은 욕구가 솟구쳤다. 손끝에서 짜릿함이 전달되고 모든 신경이 그의 손끝에 몰린 느낌이었다. 소은정의 몸에 자석처럼 이끌렸다. 남자의 손바닥이 점점 더 뜨거워졌다. 소은정은 만약 지금 거절하지 않는다면 제어할 수 없음을 느꼈다.하지만 눈앞의 전동하를 보고 차마 밀어낼 수가 없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소은정을 전동하가 번쩍 들어 소파에 눕혔다. 그의 눈에는 선홍빛의 핏줄이 선명하게 졌고 두 눈동자는 까맣게 빛나고 있었다. 그의 두 눈에서 강렬한 욕망이 보였다.한눈에 소은정을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소은정은 처음 보는 전동하의 모습에 심장이 빨리 뛰고 긴장했다. 입술을 깨물며 소은정이 말했다.“동하 씨…”살짝 벌린 그녀의 입술은 강렬했던 입맞춤 탓에 빨갛게 부어올랐고 반짝이었다. 전동하는 그런 그녀의 입술을 더욱더 탐하고 싶었다. 소은정의 입을 전동하가 손가락으로 살짝 막았다. 그는 자기 몸으로 소은정을 살며시 짓누르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소은정은 그의 기세에 얼어버린 채 숨을 쉴 수조차 없었다. 그러던 전동하가 갑자기 고개를 숙이더니 코끝을 소은정의 코끝에 가볍게 비비적거렸다. 두 사람의 호흡이 섞이고 전동하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눈에 있던 핏줄이 사라지고 표정도 편안해 보였다. 전동하는 천천히 그녀의 위에서 일어났다. 그녀를 소파에 바로 앉히고 정성스레 그녀의 옷과 머리를 정리해 주었다. 소은정이 그런 전동하를 그윽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분명히 참지 못한 듯 보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