왠지 퉁명스러운 그의 말투에 당황하던 소은정이 대답했다.“그럼요. 편한 신발로 가지고 오라고 부탁하면 되니까?”우 비서님이라면 뭐 다른 방법이 있겠지? 보너스 얼마를 줘도 아깝지 않은 인재니까...남자친구인 그보다 우 비서를 더 신뢰하는 듯한 소은정의 모습에 전동하는 괜히 마음이 무거워졌다.안쓰러운 눈빛으로 다친 발을 바라보던 전동하가 주머니에서 푸른색 손수건을 꺼냈다.딱 봐도 비싸 보이는 실크 손수건이었지만 전동하는 망설임없이 손수건을 절반으로 찢은 뒤 각각 소은정의 양쪽 발목에 묶어주었다.전동하의 따뜻한 손가락이 소은정의 발목에 닿는 순간, 괜히 쑥스러워진 소은정은 온몸을 움찔거렸지만 딱히 그를 막진 않았다.손수건으로 발목을 이쁘게 묶은 전동하가 다시 신발을 신겨주었다. 신발 뒷부분과 닿는 부분을 잘 감싸줌과 동시에 은은한 빛깔의 손수건이 왠지 패션의 일부처럼 보여 전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고마워요.”“응급처치”가 끝나고 싱긋 미소를 지은 소은정이 시험삼아 한 발 내디뎠다.시원한 소재이기도 했고 실크가 발과 신발 사이를 막아주어 고통은 덜 했지만 여전히 욱신거리는 건 마찬가지였다.“더 까지진 않겠지만... 상처는 약 발라야 나을 거예요. 조금만 참아요.”전동하의 말에 신발을 살펴보던 소은정 역시 미소를 지었다.“네. 그래도... 이쁘네요?”그제야 일어선 전동하가 그녀에게 팔을 내주었다.“내 팔 잡고 걸어요.”무게를 힘껏 실었지만 전동하의 탄탄한 팔이 그녀의 몸을 꽉 잡아주어 마음이 든든해지는 소은정이었다.“그럼 계속 가볼까요?”어느새 저 멀리 앞서간 직원들을 따라가려던 그때, 전동하가 소은정의 손목을 확 낚아채더니 미간을 찌푸렸다.“계속 따라갈 거예요?”“그럼요.”“발 아프다면서요!”다시 고개를 숙여 발목을 확인한 소은정이 어깨를 으쓱했다.“견딜만 해요. 이 브랜드 운동화는 다시 쳐다도 보지 말아야지. 어우, 쓰라려라.”그의 걱정을 덜어주려는 듯 괜히 더 가벼운 말투로 장난을 치는 소은정을 가만히 바라보던
속 깊은 전동하의 말에 소은정도 고개를 끄덕였다.“이해해 줘서 고마워요.”동하 씨가 이해해 줘서 다행이야. 다른 건 몰라도 삐진 남자친구 달래는 방법은 안 배웠단 말이야... 솔직히... 이제 동하 씨와의 관계를 숨기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그렇다고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알도록 소문내고 싶지도 않아.마음의 응어리를 푼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예쁜 미소를 짓던 그때, 소은정의 휴대폰이 눈치없이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우연준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우 비서님?”곧이어 우연준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대표님, 어디 계세요. 잠깐 한눈 판 사이에 사라지셔서 깜짝 놀랐습니다.”아까 사람이 갑자기 몰려서 놓친 건가.“아까 우리가 봤던 창고 뒤편에 있어요... 네...”통화를 마친 소은정은 여전히 뚫어져라 그녀를 바라보는 전동하를 향해 고개를 갸웃해 보였다.“우 비서님... 공적인 일 말고 사적인 일까지 도맡는 겁니까?”지나치게 진지한 전동하의 표정에 소은정이 웃음을 터트렸다.“당연하죠. 보통 비서 연봉 3배에 보너스까지 빵빵하게 받아가는데요.”어쩐지... 보통 비서랑 다르게 일상적인 것까지 다 챙겨준다 싶었어. 이건 비서라기보다... 집사에 더 가까운 걸?우연준이 오길 기다리며 두 사람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그때, 소은정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저 사람... 왜 저렇게 두리번대는 거지? 오늘 기자회견 때문에 온 기자처럼은 안 보이는데... 수상해.소은정이 경계심을 잔뜩 곤두세우고 역시 수상함을 느낀 전동하가 안심하라는 듯 소은정의 손을 토닥였다.“내가 가볼게요.”이쯤 되면 우 비서님도 곧 도착할 테니까... 잠깐 자리를 비워도 괜찮겠지.“네, 조심해요.”자리에서 일어선 전동하는 마지막으로 소은정을 향해 미소를 지은 뒤 구석쪽으로 모습을 감추었다....5분쯤 지났을까?이상하게 가슴이 콩닥거리고 도저히 가만히 앉아있을 수 없었던 소은정이 벌떡 일어섰다.“윽...”여전히 마찰로 인해 발뒤꿈치의 상처가 욱신거리고 아예 신발을
우연준의 외침에 경비원들은 물론 기자들까지 몰려들기 시작했다.그 덕에 인질로 잡힌 소은정의 모습이 바로 전파를 타고 전국으로 퍼졌다.하, 소은정 대표를 인질로 삼아? 저 남자...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건가?“기자처럼 보이는데?”“지금 저게 무슨 짓이야? 소은정 대표를 인질로 잡아? 미친 거 아니야?”“거기요. 일단 진정하고 그 칼부터 내려놔요.”“세상에나...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가장 앞에 선 우연준도 어느새 이성을 되찾고 기자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말했다.“당신이 지금 인질로 잡은 사람이 누군지 알긴 합니까? 원하는 게 뭐예요? 당신이 원하는 건 모두 들어줄 수 있는 분입니다. 그러니끼 진정하고 그 칼 내려놔요.”하지만 기자는 차가운 미소와 함께 잡고 있는 비수에 더 힘을 주었다.소은정의 눈치를 살피던 우연준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 침착한 말투로 말을 이어갔다.“당신도 누군가의 사주를 받아 어쩔 수 없이 그런 짓을 저지른 거잖아요. 우리가 찾고 있는 건 배후의 범인입니다. 당신이 아니라요.”“내가 올린 영상 때문에... SC그룹이 입은 손해만 몇백 억이라며? 그래서? 나한테 복수라도 할 거야? 날 감옥에라도 처넣을 건가?”흥분한 기자의 목소리가 점점 더 높아졌지만 소은정은 침착한 얼굴로 대답했다.“우리 쪽 조사에 협조만 해주면 법적 책임은 묻지 않을게요.”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말에 조금 멈칫하던 기자는 예상외로 더 흥분하기 시작했다.“거짓말. 지금 그딴 말을 내가 믿을 것 같아? 저쪽에서 이미 꼬리 자르기를 시작했는데?”지금 이 모습을 실시간으로 찍어대는 카메라를 바라보던 소은정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그러니까... 당신이 누군가의 사주를 받고 일부러 SC그룹을 모함한 게 맞다는 거네요?”소은정이 날카롭게 허점을 짚어내고 당황하던 기자가 입을 벙긋거렸다.“아... 아니야... 내... 내가 혼자 한 거야.”“누가 사주한 겁니까? 솔직하게 말해요. 지금 우리 모습 찍고 있는 기자들 보이죠? 저 카
소은정이 뭔가 말하려던 그때, 우연준이 그녀를 엄호하며 밖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가만히 있으면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 것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선택이기도 했다.한편 최성문은 기자의 목덜미를 낚아채더니 무자비한 주먹을 날리기 시작했다.잠시 후, 차에 타자마자 우연준은 소독약을 꺼냈다.“대표님, 조금만 참으십시오. 금방 끝납니다.”소독약이 상처에 닿고 짜릿한 느낌에 소은정이 미간을 찌푸렸다.“아까 그 기자 도망치지 않게 제대로 지켜봐요.”이에 우연준이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십시오. 일단 몇 대 때리고요. 이대로 경찰한테 바로 넘기는 건 너무 쉽잖아요.”하긴, 이곳은 S시, 그녀의 힘으로 직접 알아내지 못하는 일들을 기회를 잡은 김에 최대한 많은 정보를 얻어내야 했다.다행히 상처는 별로 깊지 않아 피도 곧 멈추었지만 여전히 욱신거렸다.오늘 하루가 유난히 길게 느껴진 소은정은 좌석에 기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그런데 뭔가 허전한 것 같은데...뭔가 생각난 소은정이 벌떡 일어섰다.“동하 씨는요?”그녀의 질문에 우연준이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했다.“전 대표님은... 계속 대표님과 함께 계신 거 아니었나요?”“그랬죠. 그런데...”의아한 듯 눈을 깜박이던 소은정은 뭔가 이상함을 눈치챘다.아까 무슨 일인지 보고 오겠다고 하고는 감쪽같이 사라졌지. 그리고 다음 순간 기자가 갑자기 나타났고.동하 씨가 계속 옆에 있어주지 않았다면 최 팀장이 방심하는 일도 없었을 거야.다행히 난 무사한데... 그럼 동하 씨는...?방금 전 상황을 돌이켜보던 소은정의 얼굴이 창백해졌다.“지금 당장 사람들 풀어서 주위를 샅샅이 둘러봐요. 분명 근처에 있을 거예요.”소은정의 다급한 표정에 뭔가 눈치챈 우연준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방금 전 대표님이 위험하신데도 나타나지 않으신 걸 보면 분명... 무슨 일이 생긴 걸 겁니다.”초조한 마음에 소은정은 병원이 아닌 호텔로 향했다.의사가 도착해 상처를 다시 드레싱하는 동안 소은정은 계속 전동하에게 전화
뭔가 꾸미고 있는 게 분명한 목소리에 소은정이 미간을 찌푸렸다.“그쪽이 꾸민 짓인가요?”“에이, 설마요. 제가 무슨 수로 이렇게 큰 판을 짜겠어요. 전 그냥 구경꾼일 뿐이에요. 은정 씨가 너무 헤매고 있는 것 같아서 힌트를 주려는 것뿐이라고요.”이 말을 마지막으로 박수아는 전화를 끊어버렸다.소은정이 이미 어두워진 액정을 멍하니 바라보던 그때, 우연준이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대표님, 기자가 폭로 영상의 진실에 대해 해명하겠다고 말했답니다.”“대중들 앞에 설 기회를 주면 안 돼요. 기자가 인정한 사실 전부 경찰한테 알려주고 경찰이 직접 입장 발표를 하게 해요. 그리고 오늘 일... 무슨 일이 있어도 배후에 숨은 범인까지 알아내야겠어요.”얼음장처럼 차가운 목소리에 우연준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하긴, 대놓고 협박을 당하신데다 다치시기까지 했으니 당연한 거지.“대표님, 최 팀장 혼자서 경찰 측과 소통하기엔 어려움이 있을 겁니다. 제가 직접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그렇게 해요. 그 기자도 최 팀장이 옆에 있으면 거짓말을 못 할 테고... 두 사람이 같이 가는 게 좋겠어요.”“대표님, 오늘 많이 놀라셨을 텐데 일찍 쉬십시오. 전 대표님은... 새로운 소식 들어오면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고개를 끄덕인 소은정은 바로 침실로 향했다.한편, 호텔방을 나서려던 우연준이 발걸음을 멈추었다.뭔가 이상한데...하지만 소은정이 침대에 눕는 모습까지 확인한 그는 그저 너무 예민한 거겠지라는 생각과 함께 결국 방문을 나섰다.어차피 호텔 주위는 경호원들이 빈틈없이 지키고 있으니 파리 한 마리도 들어오지 못할 것이다.역시... 불안한 예감이 틀린 적이 없다고 했던가?우연준이 나가자마자 침대에서 벌떡 일어난 소은정은 차키와 휴대폰을 챙기고 호텔방을 나섰다.경호원들의 경비가 삼엄하긴 했지만 그 정도 감시를 따돌리는 건 소은정에겐 식은 죽 먹기, 은밀하게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간 소은정은 창고를 향해 엑셀을 밟았다.잠시 후. 창고의 창문을 통해 미약한 불빛이
창고에는 불에 취약한 건축자재들이 가득 쌓여있다. 지금 성급하게 문을 열었다간 창틈에 뿌려진 휘발유를 타고 불꽃이 흘러들어와 순식간에 창고 전체가 타버릴 게 분명했다.여기서 통구이가 될 순 없어.소은정은 불길을 피해 창문과 최대한 먼 곳으로 도망쳤지만 창고 내부의 온도는 점점 더 높아지기 시작했다.유독연기와 점점 희박해지는 산소...창고가 찜통처럼 느껴지며 소은정은 천천히 정신을 잃어가기 시작했다.한편, 전동하 시점.깨질 듯이 지끈거리는 머리를 어루만지며 눈을 뜬 전동하는 낯선 주위의 풍경에 당황하기 시작했다.은정 씨가 묵고 있는 호텔 근처에 있는 곳인 것 같은데... 내가 왜 여기 있는 거지?천천히 기억을 더듬던 전동하의 머릿속에 정신을 잃기 전 마지막 모습을 떠올렸다.수상한 남자를 따라가던 그때 갑자기 다른 누군가의 기습으로 정신을 잃었었다.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게 틀림없는 깔끔하고 잔인한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했었지... 그럼 은정 씨는...!겨우 정신을 차린 전동하가 벌떡 일어나 방문을 연 순간, 예상치 못한 얼굴이 그를 맞이했다.소파에 앉아있던 박수아가 환하게 웃으며 그를 훑어보았다.“깼어요? 배 안 고파요? 음식 준비해 줄까요?”그리고 그녀의 옆에는 확연히 야윈 전인국이 앉아있었다.미국에 있어야 할 아버지가 왜 여기에...! 입국했다는 소리는 전혀 못 들었는데.불안한 예감이 밀려오고 전동하는 얼굴을 들이미는 박수아를 힘껏 밀어냈다.“그쪽이 꾸민 짓입니까?”박수아와 전인국을 번갈아 바라보던 전동하는 S시 프로젝트와 관련된 루머 뒤에 뭔가 더 큰 음모가 숨겨져 있음을 눈치챘다.내가 너무 안일했어. 전기섭이 다친 걸 알면 아버지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는데...은정 씨는 지금 자기가 얼마나 위험한지도 모르고 있을 거 아니야.한편, 말없이 소파에 앉아있던 전인국이 드디어 고개를 들었다.잔뜩 굳은 얼굴로 그를 훑어보던 전인국이 입을 열었다.“그쪽? 이제 아버지라고 부르지도 않는 거냐? 네가 내 아들로 태어난 걸 고맙게
하지만 전동하는 눈을 가늘게 뜬 채 아버지의 표정을 살필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집으로 다시 돌아와 그룹 경영을 맡으라고...?복권 1등 100장보다 더 갚진 기회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이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게다가 정말 그렇게 좋은 마음으로 온 거라면 이렇게 납치하 듯 불러들이지도 않았을 터...“그건 아버지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제 인생 어떻게 살지는 제가 알아서 결정합니다. 제 일에 신경 끄세요.”말을 마친 전동하는 미련없이 돌아섰다.그에겐 소은정이 전인그룹 경영권보다 훨씬 더 소중했으니까.지금쯤이면 그가 사라졌다는 걸 눈치챘을 텐데 얼마나 걱정하고 있을까...하지만 총총 달려온 박수아가 다급하게 그를 불러세웠다.“전 대표님. 아직 좀 더 쉬셔야 해요. 그리고 아버님이랑 오랜만에 만나는 걸 텐데 식사라도 하고 가시지 그래요?”그녀의 목소리에 전동하가 발걸음을 멈추었다.“도대체 아버지한테서 뭘 받기로 했길래 여기서 이짓거리를 하고 있는 겁니까?”뼛속까지 시릴 정도로 차가운 시선에 박수아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그 자리에 굳어버린 박수아가 전인국의 눈치를 살폈다.“수아양은 기섭이 학교 후배야. 명문대 출신이기도 하고 전인그룹 경영팀 팀장으로 스카우트 할 생각이다. 두 사람 같이 미국으로 들어와.”역시... 아버님, 믿고 있었다고요!박수아가 두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돌렸지만 그녀를 맞이하는 건 전동하의 차가운 미소뿐이었다.“경영팀 팀장? 하, 두 사람 꽤 큰 거래를 하신 모양이에요? 그런 자리에 이제 학교를 졸업한 초짜를 덜컥 앉힐 정도면.”속셈을 들킨 박수아가 발끈했다.“동하 씨,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나 나름 아이비리그 대학교 출신에 능력있는 여자예요. 내가 은정 씨랑 사이가 안 좋은 건 맞지만 동하 씨랑은 아무 일도 없었잖아요? 내 능력까지 비하하지 말아줘요.”“은정 씨랑 사이가 안 좋은 게 어떻게 나랑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죠?”박수아를 훑어보던 전동하가 픽 헛웃음을 흘렸다.매정한 그의 모습
지나친 정보량에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던 박수아의 눈이 동그래졌다.전기섭이 하반신 마비 판정을 받아? 그리고 동하 씨가 전인그룹 후계자가 될 거라고? 게다가... 전기섭을 그렇게 만든 게 진짜 소은정이란 말이야?무지막지한 비밀을 알게 되었단 생각에 콩닥거리는 가슴을 억누르며 박수아는 다시 전동하의 모습을 살펴보았다.평소에 봤던 전동하는 태양신의 가호를 받기라도 하듯 항상 밝고 따뜻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비록 전인그룹과의 연결고리는 끊어졌지만 혼자 힘으로 훌륭한 사업체를 키워낸 그는 항상 당당하고 멋진 모습이었다.하지만 지금 그녀 앞에 서 있는 전동하는 전에 보았던 따뜻한 미소가 전부 거짓이었나 싶을 정도로 날카롭고 매서웠다.한편, 이 상황이 마땅치 않은 건 전인국도 마찬가지였다.기섭이만 멀쩡했었어도 전인그룹을 저 사생아 자식한테 물려줄 일은 없었을 텐데... 전동하, 너한테도 절호의 기회라는 걸 잘 알고 있을 거야. 그러니까 내 개가 돼. 널 내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다면 그것도 나름 나쁘지 않겠지.하지만 전동하는 그의 가식적인 호의를 받아들일 생각이 전혀 없었다.“큭큭큭...”한참을 고개 숙여 웃던 전동하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하, 이제 와서 아들 취급이라도 해주시려는 겁니까? 그냥 하던대로 삼촌 뒷바라지나 하세요. 아니, 삼촌이 아니라... 형인가?”담담한 목소리로 내뱉은 충격적인 말에 전인국의 흐릿한 눈동자가 급격히 흔들렸다.충격이 컸는지 살짝 휘청이던 그는 의자 등받이를 손으로 잡아 겨우 중심을 잡았다.“너... 너 지금 뭐라고 했어?”전동하의 말에 충격을 받은 건 박수아도 마찬가지였다.내가 지금... 도대체 뭘 듣고 있는 거야? 막장인 걸로 치자면 우리 집안도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인데... 이 집안은 진짜 콩가루잖아?한편, 전인국은 이 상황이 재밌다는 듯 입꼬리를 올리는 아들이 이 순간만큼은 악마처럼 느껴졌다.당혹스러움 때문인지 분노 때문인지 전인국의 눈동자가 천천히 붉게 물들였다.“왜요? 평생 숨기고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