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없이 한참을 걷던 그때, 소은정이 웃으며 다가갔다.“오빠, 선물 다른 걸로 주면 안 돼?”“뭔데?”“요즘 회사에서 맡은 프로젝트가AI분야에 관한 거거든? 오빠가 좀 도와주면 안 될까?”소은찬은 모든 나라에서 욕심내는 천재 학자, 기업의 연구원으로 있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인물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좋은 인맥을 두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소은찬은 별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근데 휴가를 1달밖에 못 받았는데. 괜찮겠어?”“괜찮지 그럼.”목적을 달성한 소은정은 장난스레 웃으며 카드를 흔들었다.“뭐 이것도 일단 받아둘게. 고마워, 오빠.”한편, 박수혁과 강서진도 누군가를 스카우트하기 위해 공항에 도착한 상태였다.이리저리 고개를 빼들던 강서진은 누군가를 발견하고 박수혁의 옆구리를 찔렀다.“와, 여기서 또 보네. 소은정이잖아?”소은정 옆에는 단정한 이목구비와 차분한 분위기의 또 다른 남자가 있었다. 고개를 든 박수혁의 시야에 소은정의 얼굴이 들어왔다. 길게 늘어트린 머리와 우아한 블랙 원피스, 그녀는 낯선 남자를 향해 애교 섞인 미소를 짓고 있었다.소은정을 발견한 박수혁은 뭔가에 홀린 듯 두 사람의 뒤를 따랐다. 소은정과 소은찬의 대화가 그대로 들려왔다.“그런데 왜 이혼한 거야?”“죽었어.”소은정이 덤덤한 말투로 대답했다.“아, 그래.”소은찬은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소은정의 대답에 박수혁과 강서진은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박수혁은 멀어져 가는 그녀가 다시 돌아봐주길 바라는 마음에 소은정의 뒷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그만 봐. 형은 이미 죽었다잖아.”강서진이 웃으며 박수혁의 어깨를 토닥였다. 이때, 비서가 보낸 사진이 도착하고 박수혁에게 더 중요한 일 얘기를 하려던 순간, 강서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비서가 보낸 사진은 바로 오늘 두 사람이 스카우트하려던 남자의 사진, 그리고 그 사진의 얼굴은 분명 방금 전 소은정의 옆에 있던 그 남자였다.“으악!”깜짝 놀란 강서진이 소리를 지르고 미간
“끝났네. 소은정과 아는 사이일 줄이야. 아주 그냥 베프처럼 보이더구만!”강서진이 혀를 찼다. 소은찬이 귀국했다는 소식은 극비, 거금을 들여 겨우겨우 스케줄을 알아냈는데 눈앞에서 빼앗기다니. 강서진의 말에도 박수혁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한편, 본가에 도착한 소은정과 소은찬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소은해의 비명소리와 소찬식의 분노 어린 고함을 듣고 자리에 멈춰 섰다.멈칫하던 소은찬이 말했다.“집 하나만 얻어줘. 조용한 곳으로. 주위에 다른 사람들이 없으면 더 좋고.”두 눈을 깜박이던 소은정이 장난스레 물었다.“흉가는 어때?”“뭐 상관없어.”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간 순간, 소은해가 소은정에게 안기며 말했다.“드디어 왔네. 나 좀 살려줘.”소은정이 질색하며 오빠를 밀어내려던 순간, 소은찬을 발견한 소은해가 소리쳤다.“형!”소은찬도 보기 드문 미소를 보여주며 대답했다.“꼬마야.”“젠장!”소은찬의 말에 소은해는 바로 미간을 찌푸렸다.“꼬마라고 부르지 말라니까! 내 나이가 몇 살인데!”“누군데?”사람들 목소리에 역시 현관으로 나온 소찬식도 소은찬을 발견하고 기뻐하며 달려갔다.“은찬아...”뒤를 따라온 소은호도 다시 모인 가족들을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오랜만에 돌아온 도련님의 모습에 집사도 기뻐하며 직원들에게 음식들을 준비하고 도련님이 지내실 방을 정리하라고 분부했다.3년 만에 돌아온 소은찬은 엉망이 된 집안을 둘러보며 미간을 찌푸렸다.“뭐 전쟁이라도 났어요?”방금 전까지 상봉의 기쁨에 활짝 웃고 있던 소찬식이 바로 미간을 찌푸렸다.“은해 이 자식이 글쎄 요리를 하겠다더니 그 귀한 능지 버섯을 아주 다 망가트렸어! 안 되겠다. 너 오늘 좀 맞자!”소찬식은 자연스레 골프채를 들고 소은해를 향해 달려갔다.쫓고 쫓기는 소찬식과 소은해를 뒤로하고 소은호는 여유롭게 소파에 앉았다.“아예 들어오기로 한 거야?”소찬식은 집사가 건넨 탄산수를 한 모금 마시고 대답했다.“한신연구원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어. 거기서
“신나리 씨, 오빠를 정말 좋아하는 것 같더라. 그래서 호랑이도 오빠가 마음에 든 건 가봐. 참, 신나리 씨도 거성그룹 연구팀에 있어. 오늘 곧 만나게 될 거야.”소은찬은 어깨를 으쓱한 뒤 소호랑을 다시 소은정에게 넘겨주었다.“호랑아, 우리 나리 씨 만나러 갈 거야...”“엄마, 나 잘생긴 삼촌한테 안기면 안 돼요?”소호랑이 소은정 품에 안긴 채 애교를 부렸다.“오빠...”소호랑의 부탁에 소은정도 소호랑의 표정을 따라 하며 소은찬을 바라보았다.세계 최고의 물리학자인 소은찬에게 소호랑은 그에게 소호랑은 그저 로봇 작품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지만 동생의 부탁에 말없이 소호랑을 한 손으로 받아들었다.잠시 후, 거성그룹, 직원들은 바로 소호랑 주위에 몰려들었다.“배신자, 우리 보고 싶지 않았어?”하지만 소호랑은 고개를 홱 돌리더니 대답했다.“누구세요?”도도한 소호랑의 모습에 소은정이 어색하게 웃던 그때, 연구팀 직원과 임춘식이 다가왔다. 두 사람은 임춘식의 안내를 받아 프로젝트가 진행될 장소로 도착했다.소은찬을 눈여겨보던 임춘식이 말했다.“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요...”소은정이 소개를 하기 전에 소은찬이 먼저 대답했다.“글쎄요. sunner이라고 합니다.”조금은 무례하게 여길 법도 하지만 임춘식은 싱긋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어려 보이는데 갓 졸업한 학생인가 봐요? 뭐, 소 대표님이 추천하신 분이니 안심하겠습니다.”여기서 소은찬의 신분을 밝힌다면 인재를 소중하게 여기는 임춘식이 바로 거성그룹으로 스카우트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거성그룹의 핵심 기술을 손쉽게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어차피 소은정이 원하는 건 이번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끝내는 것뿐, 임춘식이 소은찬의 정체에 대해 모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 생각해 별말 하지 않았다.프로젝트 사무실 앞에 도착하자, 사람들이 그들을 맞이했다. 그 선두에 선 사람은 바로 박수혁이었다. 소은정이 미간을 찌푸리자 임춘식이 미간을 찌푸렸다.“태한그룹 쪽에서는 박수혁
분위기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다행히 박수혁도 이 말을 끝으로 능숙하게 화제를 다른 쪽으로 돌렸다. 1시간 정도 진행된 회의가 끝나고 밖으로 나오니 하늘에서는 보슬보슬 비가 내리고 있었다.Manolo Blahnik 하이힐을 신은 소은정은 물이 고인 계단을 바라보며 한참을 망설였다. 문 어귀에 놓인 우산통에 작은 우산 하나만 남은 걸 발견한 소은찬은 자연스럽게 소은정에게 씌워주며 말했다.“가자.”소은정은 신발을 바라보다 아쉽다는 듯 말했다.“에이, 이 신발, 물에 닿으면 안 되는데.”소은정의 말에 소찬식은 동생을 훑어보았다. 치마를 입은 그녀를 안을 수도 없는 노릇, 소은찬은 정장 재킷을 벗어 계단에 펼친 뒤 소은정을 향해 손을 뻗었다.“옷 젖겠다. 어서 내려와.”“그래.”소은정이 자연스레 소은찬의 손을 잡고 롤스로이스 차량으로 쏙 들어갔다.뒤에서 이 모든 걸 바라보고 있던 임춘식이 감탄했다.“두 사람 참 잘 어울리네요.”임춘식을 살짝 노려보던 박수혁이 이를 악 물었다. 소은찬은 천재 물리학자로서 웬만한 거물급 정치가들도 예의를 갖추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소은정을 보살피는 모습이 아주 눈에 거슬렸다.친구? 친구 사이는 넘어선 것 같은데...“언니!”이때, 신나리가 소호랑을 안은 채 소은정을 향해 손을 흔들더니 어린아이처럼 달려왔다.흠칫하던 소은정이 웃으며 소은찬에게 소개했다.“이쪽이 바로 신나리 씨예요.”자신의 연락처를 가지고 간 여자라는 말에 소은찬은 그녀를 유심히 훑어보았다. 반갑게 소은정을 안으려던 신나리는 그 옆에 있는 소은찬을 보더니 바로 입을 틀어막았다.“하! 어떡해!”신나리는 바로 소호랑을 내팽개치고 소은찬을 와락 끌어안았다. 소은정을 제외하고 이성과의 스킨십은 처음인 그는 당황스럽고 쑥스러운 얼굴로 신나리를 밀어냈다.“자중하시죠.”자신의 롤 모델을 직접 보았는데 누가 자중할 수 있을까? 신나리는 불쾌하다는 듯한 소은찬의 말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눈빛을 반짝였다.“신나리라고 합니다. 정말
이때, 임찬식과 박수혁이 다가왔다.“나리야, 아까 소 대표 옆에 있는 남자 아는 사람이야?”임춘식이 물었다.한편, 소찬식이 지극정성으로 소은정을 챙기는 모습을 다시 떠올렸다. 두 사람 참 잘 어울렸었지. 부럽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신나리는 고개를 끄덕이다 곧 다시 고개를 저었다.“아니!”소은정이 비밀로 해달라고 했으니 절대 말할 수 없었다.박수혁은 눈을 가늘게 뜨고 신나리를 훑어보았고 신나리는 소찬식이 버리고 간 정장 재킷과 우산을 챙기고 후다닥 건물로 뛰어들어갔다.한편, 혼자 남겨진 소호랑이 스마트 시스템으로 소은정에게 전화를 걸려던 그때, 누군가 그를 번쩍 들어 올렸다.박수혁은 소호랑을 이리저리 훑어보다 물었다.“나 기억하지?”거친 박수혁의 손길에 소호랑은 네 발을 버둥거렸다.“나 엄마한테 갈 거야. 이 나쁜 자식아, 이거 놔!”나쁜 자식?전에 박수혁이라면 졸졸 따라다니던 소호랑인데 못 본 사이 나쁜 자식이라니. 임춘식도 깜짝 놀라 눈이 커다래졌다.“야, 너 전에는 아빠라고 불렀잖아.”임춘식의 말에 소호랑은 고개를 홱 돌렸다.“아빠는 무슨, 엄마는 더 좋은 사람이랑 결혼해야 해!”그를 거둔 소은정이 박수혁을 싫어한다는 걸 알고 있는 소호랑이었기에 역시 박수혁에 대해 나쁜 감정이 생긴 것이다.이때, 이한석이 우산을 챙겨 부랴부랴 박수혁을 향해 달려왔다. 거친 숨을 몰아쉬던 그때, 소호랑이 갑자기 말했다.“아빠, 사랑해...”아빠라니? 이한석은 경악스러운 얼굴로 말하는 호랑이를 바라보았다. 박수혁이 고개를 돌리더니 차가운 눈빛으로 “새아빠”의 얼굴을 훑어보았다.“그게...”이한석이 더듬거리며 손을 저었다.“아빠!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멋져!”“풉!”웃지 못할 상황에 임춘식이 웃음을 터트렸다.어색한 분위기 속, 방금 전, 회사를 나섰던 차량이 다시 돌아왔다. 차에서 내린 소찬식이 박수혁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호랑이 돌려주시죠.”박수혁은 콧방귀를 뀌더니 소호랑을 홱 던져버렸다. 밀려오는 짜증을 억누르며 차
소은찬은 휴대폰을 꺼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곧 정성스레 신나리가 보낸 공식을 하나하나 수정하기 시작했다.소은찬이 지낼 집을 찾기 위해 소은정은 한유라를 불러 함께 근처의 부동산으로 향했다.“왜 굳이 부동산까지 와서 집을 구해? 너희 집 소유의 빌딩만 몇 채인데.”한유라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물었다.“안 돼. 거긴 너무 북적인단 말이야. 은찬 오빠는 시끄러운 건 질색이라.”소은정이 고개를 저었다.빌딩 내부의 고풍스러운 인테리어를 둘러보던 그때,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여긴 태한그룹 산하 부동산을 판매하는 곳입니다. 잘못 오신 게 아닐까요?”고개를 돌린 소은정은 흠칫 놀랐다.하, 임상희?소은정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받아쳤다.“뭐, 상관없어요.”“여기가 어디라고 와. 얼른 꺼져!”밑도 끝도 없이 욕설부터 내뱉는 임상희의 모습에 다른 직원들도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소은정만 아니었다면 SC그룹의 차기 본부장에서 부동산 판매원으로 전락할 일은 없을 것이다.게다가 그녀가 저지른 악행은 업계에 소문이 쫙 퍼져 태한그룹에서의 직장 생활도 순탄치 않았다.옆에서 듣고 있던 한유라가 피식 웃었다.“뭐야. 고객한테 꺼지라니. 여긴 직원 교육을 어떻게 시키는 거야?”“당신들한테 서비스 제공할 생각 없으니까 꺼지라고!”임상희의 건방진 모습에 소은정은 침착하게 휴대폰을 꺼내 통화를 시작했다.건물에 소란이 일자 매니저가 달려왔다. 그녀도 소은정의 얼굴을 보고 흠칫 놀라고 말았다. SC그룹의 소은정 대표가 왜 여기에?”“죄송합니다. 무슨 일인지 여쭤봐도 될까요?”하지만 매니저는 곧 프로답게 표정을 고치고 침착하게 물어봤다.한유라가 턱으로 임상희를 가리키며 물었다.“저 사람 여기 직원인가요?”매니저는 임상희를 힐끗 바라보더니 해명했다.“네, 맞습니다. 해외 로스쿨을 졸업하고 저희 회사에 입사했습니다. 그동안 실적도 좋은 직원인데 무슨 실수라도 한 건가요?”매니저의 소개에 소은정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임상희를 바라보
태한그룹 사무실, 바늘이 떨어지는 소리마저 들릴 정도로 실내는 조용했다.손가락으로 책상을 톡톡 두드리던 박수혁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집을 보러 왔었다고?”잔뜩 긴장한 얼굴로 서 있던 이한석이 대답했다.“네. 직원들의 증언도 있었고 CCTV도 확인했습니다. 한유라 씨와 함께 방문했습니다. 지금도 계시고요.”미간을 찌푸린 채 잠깐 고민하던 박수혁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가지.”무슨 목적으로 태한그룹 산하의 부동산을 방문한 건지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네.”고분고분 그 뒤를 따르던 이한석은 고개를 갸웃했다. 최근 따라 소은정과 관련된 일에 대해 박수혁의 행동은 항상 그의 예상을 깨트렸다. 오랫동안 모셔온 박수혁 대표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매니저는 여러 부동산을 소개하며 조심스레 물었다.“대표님, 이런 스타일은 어떠세요? 대표님께서 지내실 집인가요?”소은정은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다른 사람이 살 거예요. 금방 귀국한 남자가 살 집이에요. 아파트에 기본 옵션으로 제공되는 가구나 가전제품은 전부 스위스 브랜드로 교체해 주세요. 물론 최고 레벨로요. 돈은 얼마가 들어도 상관없어요.”둘째 오빠에게서 항상 받게만 하던 그녀다. 어쩌다 그녀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생겼으니 모두 최고급으로 해주고 싶었다.“네, 알겠습니다.”사무실로 들어오던 박수혁은 마침 그 말을 듣고 제자리에 멈춰 섰다.해외에서 귀국한 남자? sunner인가?그날 오후, 누군가 소은정의 모습을 찍어 인터넷에 올리자 사람들은 또다시 흥분하기 시작했다.“굳이 태한그룹 부동산으로 간 이유가 뭘까? 새 남친한테 사주는 걸까? 일부러 박수혁의 심기를 건드리려고?”“하하하, 최고의 복수네.”“박수혁 대표도 속이 말이 아니겠는데?”......소은정은 아파트를 둘러보지도 않고 바로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가장 마음에 든 건 도심과 떨어져 있어 조용하다는 점이었다. 인테리어나 가구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교체하면 되는 거니까.계약서에 사인한 뒤 소은정은 손목을 들어 Jae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지만 과거형으로 말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마음이 살짝 불편했다.“어느 집으로 계약했어?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박수혁은 share 패션쇼장에서 요트를 사달라며 소은해에게 애교를 부리던 소은정의 모습을 떠올렸다. 지금까지 제대로 된 선물도 해주지 못했다. 이 기회에 작은 집이라도 한 채 받는다면 그의 마음을 무겁게 만드는 죄책감을 덜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하지만 소은정은 재밌는 농담이라도 들은 듯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다시 고개를 든 그녀의 얼굴에서는 그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선물? 이렇게 호탕한 사람인 줄 몰랐네. 엑스 와이프한테 이렇게 큰 선물을 다 주고.”소은정의 가시 박힌 말에 미간을 찌푸리던 박수혁이 뭔가 말하려던 순간, 소은정은 말을 이어갔다.“당신 말대로 난 와이프였던 사람이야. 지금은 아무 사이도 아니라는 거지. 당신 선물 받을 이유도 받고 싶은 마음도 없어. 당신 가족들이 알아봐. 이혼까지 하고 아직도 당신 등골을 빼먹는다고 욕하겠지.”말을 마친 소은정은 매니저를 돌아보았다.“바로 계산할게요. 디스카운트 없이요.”이 정도 푼돈에 박수혁의 눈치를 보고 싶은 마음도, 그 가족들의 비난을 받고 싶지 않았다. 두 사람의 팽팽한 기싸움에 매니저는 조용히 박수혁을 바라보았다. 이번 계약을 성공시켜 실적을 챙기고 싶은 생각은 굴뚝같았지만 대표님이 허락하실까?이때 박수혁 뒤에 있던 이한석이 눈치를 주자 매니저는 바로 사무실을 나섰다.박수혁이 다시 입을 열려던 순간,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다. 전화를 받은 순간, 급박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형, 민영이 교통사고 났대. 출혈이 심해서 지금 응급실로 이송됐어.”바로 옆에 서 있던 소은정도 그 말을 듣고 미간을 찌푸렸다. 아직도 서민영의 이름만 들으면 온몸에 힘이 들어가는 걸 막을 수 없었다.교통사고? 하필 지금...미간을 찌푸리던 박수혁이 대답했다.“알겠어. 지금 바로 갈게.전화를 끊은 박수혁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바라보았다.“민영이.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