콰직.뼈가 어긋나는 소리가 울리고 방금 전까지 술기운으로 빨갛던 전기섭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네가 감히...”하지만 전기섭이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소은정은 거칠게 뺨을 날렸다.전기섭의 하얀 뺨에 손바닥 자국이 선명하게 남았고 소은정이 몰래 돌려놓은 반지에 달린 다이아몬드가 그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며 긴 상처를 남겼다.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과 함께 뺨을 만지던 전기섭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감히... 감히 날 때려?”비록 팔 하나가 부러지긴 했지만 전기섭은 전혀 겁 먹지 않은 듯한 표정이었다.난 남자야. 저깟 연약한 여자 하나 못 제압할까 봐?하지만 어느새 뒤로 물러선 소은정은 팔짱을 낀 채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왜요? 오늘 여기로 온 거 누구도 모른다면서요? 내가 쥐도 새도 모르게 당신을 죽여도 괜찮다는 말 아닌가요?”말을 마친 소은정은 방금 전 소파에 버려둔 스카프를 돌려 밧줄처럼 꼬았다.그 순간 전기섭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보통 이 정도 협박을 하면 꼬리를 내리는 게 당연한데... 저 여자는 도대체 뭘 믿고 저렇게 당당한 걸까?미지에 대한 두려움에 점점 마음이 불안해진 전기섭이 뒷걸음질쳤지만 곧 소파에 움직임을 가로 막히고 말았다.그리고 다음 순간, 소은정은 그의 가슴을 거세게 걷어찼다.순간 전기섭은 붕 뜨는 느낌과 함께 옆에 놓인 캐비닛에 거칠게 부딪힌 뒤 그대로 꼬꾸라졌다.대충 만력으로 제압할 수 있을 거란 전기섭의 착각이 완전히 엇나가는 순간이었다.바로 그때 문 밖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대표님... 안에 계십니까?”“대표님 괜찮으시죠? 문 좀 열어주세요.”사람들의 다급한 목소리에 전기섭과 소은정 두 사람 모두 꽤 놀란 듯한 표정이었다.동하 씨가 부른 건가...하지만 소은정은 아직 문을 열어줄 생각이 없다는 듯 하이힐로 전기섭의 어깨를 꽉 밟아눌렀다. 견갑골이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전기섭은 결국 짐승 같은 비명소리를 터트렸다.밖에서 안절부절 못하던 사람들은 소은정에게 무슨 일이라도
전기섭은 마치 도살 직전의 짐승처럼 힘없이 소은정의 손에 끌려갈 뿐이었다.정말 죽을 수도 있겠어...전동하가 그를 가두었을 때도 이런 기분은 느껴본 적 없는 전기섭이었다.전동하는 어디까지나 그의 자존심을 짓밟고 모욕을 주고 싶었던 것뿐이었다면 소은정은 정말 그를 죽이려는 듯한 기세로 달려들고 있었다.이 여자... 전동하보다 훨씬 더 독종이잖아?숨 쉬기가 점점 더 힘들어지고 얼굴색은 붉은기를 넘어 파랗게 질리기 시작했지만 소은정은 여기서 물려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베란다 물이 열리고 차가운 겨울 바람이 거침없이 불어왔다.뼈를 깎는 듯한 한기가 상반신은 이미 나체인 전기섭의 몸을 그대로 침식했다.잠시 후, 호텔 방문이 열리고 다급하게 호텔방으로 들어온 우연준 일행은 참혹한 상황에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그리고 다음 순간, 소은정은 망설임 없이 전기섭을 차버리고 종이장처럼 나풀거리며 떨어졌지만 스카프로 만들어진 고리가 베란다 난간에 걸려 다행히 추락은 막을 수 있었다.아니. 다행이라고 할 수 있을까?스카프 고리에 목이 묶인 전기섭은 더 강력한 질식감에 휩싸이고 말았다.어두운 밤, 잠깐 동안 이어진 죽음의 침묵은 전기섭의 짐승 같은 울부짖음에 의해 파괴되었다.그나마 먼저 정신을 차린 우연준이 베란다로 달려갔지만 소은정은 여전히 무표정일 뿐이었다.“대표님...”마른 침을 꿀꺽 삼킨 우연준이 말끝을 흐렸다.방금 전 다급해진 전동하는 바로 우연준과 미국에 있는 자신의 경호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수십 명의 사람을 모집했다.하지만 그의 명령에 따라 호텔에 모인 사람들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도대체 누가 약자란 말인가.한편, 베란다에 대롱대롱 묶인 전기섭은 여전히 마지막 발악을 하고 있었다.스카프를 푼다면 19층 빌딩에서 추락해 죽겠지만 깔끔하게 죽을 수 있을 테고 그게 아니라면 숨이 끊어질 때까지 이곳에 매달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목이 졸려 죽을 것이냐 아니면 추락해서 죽을 것이냐.내 선택은 이 두 가지 중 하나뿐인 것인가...의식이
잠시 후, 경호원들과 다시 올라온 우연준은 엉망이 된 소은정의 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청소가 끝나고 혹시나 소은정에게 트라우마라도 남았으나 어쩌나 싶어 우연준이 먼저 물었다.“아, 여기서 지내는 게 불편하시면 다른 방으로 바꾸시는 게 어떠시겠습니까? 아니면 아예 다른 호텔로 옮기시는 것도 괜찮고요.”하지만 소파에서 일어 선 소은정은 여유로운 미소로 응했다.“아니에요. 오늘은 대충 여기서 묵고 내일 아침 바로 여길 뜨죠.”“도망치시는 겁니까?”무의식적으로 질문을 내뱉은 우연준은 혀라도 깨물고 싶은 심정이었다.그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으면 어떡해.하지만 소은정은 화 대신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네. 당연히 도망쳐야죠.”전기섭의 내뱉은 여러 가지 개소리 중 굳이 한 가지 정확한 말을 고르자면 미국은 확실히 전인그룹의 영역이었다.마지막으로 살아있는 걸 확인하긴 했지만 혹시나 전기섭이 그 사이에 죽기라도 한다면 일이 더 복잡해질 터.그쪽에서 소은정이 한 짓임을 알아내기 전에 먼저 이곳을 뜨는 게 어떻게 보나 현명한 선택이었다.소은정이 화를 내지 않자 우연준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바로 비행기 티켓을 예약하기 시작했다.그리고 소은정도 측과 세미에게 촬영 장소를 변경하는 게 어떻겠냐 제안했다. 물론 모든 비용은 그녀가 지불하는 조건으로 말이다.소은정이 제안한 새 촬영 장소가 더 끌리는 곳이기도 했고 모든 비용도 소은정이 부담하겠다고 했으니 양쪽 모두 별 이견 없이 그녀의 제안에 응했다.통화를 마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 소은정은 그제야 전동하에게서 총 89개의 부재중 전화가 도착해 있음을 발견했다.아, 걱정 많이 하고 있겠네.그녀가 전동하에게 전화를 다시 걸려던 그때, 휴대폰 액정이 다시 반짝였다.“여보세요?”“하... 드디어 받았네요. 괜찮은 거죠? 전기섭 그 개자식은요? 경호원들은 도착했어요?” 전동하의 다급한 목소리에서 초조함이 고스란이 느껴졌다.그 목소리에 방금 전까지 그녀를 예민하게 만들던 날카로운 얼음가시가 사르르
흠칫하던 경호원은 몇 초간 침묵하다 전동하의 질문에 대답했다.“그게... 저희가 호텔방으로 들어갔을 땐 전기섭 대표는 스카프에 목이 묶인 채 베란다에 매달려 있었습니다...”경호원은 다시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트렸다.전기섭 같은 사람 10명 정도가 덤벼도 꿈쩍 없을 것 같은 소은정을 지키라고 한밤중에 수십 명의 경호원을 부르다니... 굳이?실전 경험은 부족해 보였지만 여러 움직임을 보아할 때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게 분명했다. 평생 곱게 자란 전기섭 하나 정도 처리하는 거야 식은 죽 먹기일 텐데.사랑에 빠지면 바보가 된다더니 그게 사실이구나 싶은 생각이 드는 남자였다.팀장의 말에 전동하도 당황한 듯 입만 벙긋거렸다.맞아. 은정 씨... 싸움 잘했었지... 그때 펍에서 날 구해 준 적도 있었고. 내가 너무 당황해서 제대로 된 판단을 못 했었나 봐. 다시 생각해 보면 은정 씨는 처음부터 끝까지 차분한 목소리였어. 전기섭 따위는 두렵지 않다는 듯...그녀와의 대화를 떠올린 전동하가 웃음을 터트렸다.“그래서요?”그래서? 전기섭은... 죽은 건가?“소 대표님께서 전기섭 대표를 저택 문 앞에 버려두고 가라고 하셔서 말씀대로 했습니다. 도착할 때까지는 숨이 붙어있었는데 지금은 모르겠군요. 절대 전기섭 대표에게 손 대지 말라고 하셔서 명령대로 움직였습니다.”은정 씨... 전기섭을 그렇게 만든 게 나라고 오해할까 봐 그렇게 분부한 건가?“알겠어요. 마지막까지 수고해 줘요.”짧게 대답한 전동하는 전화를 끊었다.마지막 순간까지 그의 입장을 먼저 생각해 준 소은정의 자상함에 전동하의 마음 한 구석이 따뜻해졌다.전동하의 차량은 어두운 밤거리를 달려 공항으로 향했다....한편, 밤중의 소동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소은정은 그 어느 때보다 달콤한 숙면을 즐겼다.이른 아침.우연준의 부름 소리에 부스스 눈을 뜬 소은정이 문을 열어주고 다급하게 방으로 들어온 우 비서는 그녀의 짐을 정리하며 왠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대표
소은정의 날카로운 질문에 어색하게 시선을 피한 우연준이 대답했다.“그게... 이런 상황은 처음이라... 어차피 언젠가 밝혀질 일이기도 하고 대표님이 걱정돼서요...”말문이 막힌 소은정은 우연준을 흘겨본 뒤 발걸음을 옮겼다.어휴, 돌아가면 은호 오빠한테 한 소리 듣겠는데?이제야 발걸음을 재촉하는 소은정의 모습에 우연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한편, 이른 아침. 전인국 저택.잔뜩 굳은 표정의 전인국이 화려한 거실 중간에 서 있다.밤새 한 숨도 못 잔 건지 유난히 지쳐보이는 그의 앞으로 의사가 다가왔다.“회장님.”“어때?”“긍정적인 상황은 아닙니다. 오랜 시간 질식된 것 같은데... 뇌는 5분만 산소가 차단되어도 손상이 시작되는 민감한 부위라... 후유증이 남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일단 대표님께서 의식을 회복할 때까지 기다리는 게 좋을 것 같군요...”의사의 브리핑에 전인국의 표정은 점점 더 굳어져갔다.“그래서 결론이 뭐야!”전인국의 호통에 움찔하던 의사는 결국 최악의 경우를 말하고 만다.“최악의 경우 하반신 마비로 이어질 수도 있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시는 게 좋을 것 같군요.”사형 통보와 같은 의사의 설명에 다리에 힘이 풀린 전인국이 비틀거리고 그의 뒤를 지키던 직원들이 그를 부축했다.“회장님, 진정하세요!”“진정? 내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누가 감히 내... 동생에게!”“아들”이라는 단어가 목구멍까지 튀어올랐지만 그를 바라보는 직원들의 시선에 결국 억지로 삼켜버리는 전인국이었다.하지만 워낙 평소 전기섭을 아껴왔던 전인국이었기에 직원들도 딱히 이상하다는 느낌 없이 너도나도 위로를 건넸다.“어젯밤 도련님이 만났던 사람들을 조사하는 중입니다. 그런데 어제 하필 CCTV에 문제가 생겨서 누가 도련님을 문 앞에 두고 갔는지 알아낼 방법이...”집사가 말끝을 흐리고 전인국은 눈을 질끈 감았다.처음 전기섭을 발견했을 때 그 비참했던 모습이 다시 떠오르며 전인국은 숨이 턱 막혀왔다.선명하게 남은 목 졸린 흔적과 살아있다고 믿
밤을 새운 탓인지 박수혁의 목소리는 살짝 잠겨있었다.정신을 차리기 위해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는 박수혁을 바라보던 이한석은 말없이 돌아섰다.어제 소은정을 만난 뒤로 어딘가 이상해지셨단 말이야...한 시간 뒤, 누군가 차창을 두드리고 잠깐 눈을 붙이던 박수혁이 눈을 번쩍 떴다.“HY 투자 정하겸 회장 아들 정인규입니다. 전에 파티에서 한 번 뵀었습니다.”파티에서 박수혁과 어떻게든 말이라도 걸어보려는 사람이 수두룩한데 그들을 일일이 다 기억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어쩌면 못 알아보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이한석의 소개에 박수혁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귀찮긴 하지만 HY 투자와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있으니 일단 상대해 주는 게 좋겠어...먼저 차에서 내린 이한석이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정 대표님 오랜만입니다. 여기서 다 뵙네요.”정인규는 재벌 2세 특유의 거만한 표정으로 대답했다.“어제 여기서 파티가 있었는데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아예 하룻밤 묵었거든요. 난 내가 잘못 본 줄 알았는데 정말 박 대표님이시네요?”이에 이한석이 뒷좌석 문을 열어주었다.“지금 손님 기다리는 중이시거든요. 이런 우연이 다 있네요.”정인규와 눈이 마주친 박수혁이 고개를 끄덕였다.“정 대표님, 오랜만이네요.”“그러게요. 그런데 누굴 기다리시는 겁니까? 제가 아는 사람일 수도 있잖아요.”어떻게든 태한그룹 박수혁과 친해져야 한다는 아버지의 말을 떠올리며 정인규는 최대한 적극적인 표정을 지어보였다.“친구 기다리는 중입니다.”“남자분? 아니면 여자친구?”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 정인규를 바라보는 박수혁의 표정이 차갑게 굳고 이한석이 바로 대신 해명했다.“아, 한국 친구분이라 정 대표님은 잘 모르실 거예요.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한국이요?”잠깐 멈칫하던 정인규가 피식 웃었다.“아, 아쉽네요.”하지만 잠시 후, 뭔가 생각하던 정인규가 고개를 들더니 말을 이어갔다.“그러고 보니 어젯밤 아주 재밌는 일이 있었다는군요. 한국에서 온 여자라는데 무슨 싸움
이한석의 질문에 정인규는 묘한 미소를 지었다.“뭐가 그렇게 급해요? 뭐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아마 괜찮을 거예요. 야밤에 경호원 수십 명을 대동할 수 있는 여자가 어디 보통 사람이겠어요?”하지만 정인규의 답에도 마음이 놓이지 않은 이한석의 시선이 천천히 박수혁에게로 향했다.왠지 그의 주위만 더 춥게 느껴질 정도로 어마무시한 냉기를 내뿜던 박수혁이 최대한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이 비서, 당장 가서 알아봐. 어젯밤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단 하나도 빼놓지 말고 당장!”이한석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네.”그리고 정인규를 향해 고개를 돌린 이한석이 입을 열었다.“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게 저희 대표님은 따로 볼일이 있으셔서...”이에 정인규도 눈치껏 고개를 끄덕였다.“아, 제가 대표님 시간을 너무 많이 뺏었네요. 그럼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네.”박수혁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감정을 억누르고 있는 탓인지 살짝 쉰 듯한 목소리는 감출 수 없었다.바로 차문을 닫은 이한석이 정인규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안녕히 가십시오, 정 대표님.”“네, 이 비서님도요.”잠시 후, 차에 탄 이한석은 바로 호텔 지배인에게 전화부터 걸었다.20분 뒤.통화를 마친 이한석이 한결 가벼워진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대표님, 호텔 CCTV 확인 결과 전기섭 대표가 술을 마시고 소 대표님 방으로 찾아간 것 같습니다. 그 뒤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우 비서와 경호원들이 방으로 들어가고 얼마 후 전기섭이 사람들에게 들린 채 나왔다고 합니다. 정신을 잃은 상태로요.”이한석의 설명에도 박수혁의 표정은 조금도 풀리지 않았다.선팅된 창문으로 비추는 햇살이 박수혁의 얼굴을 더 어둡게 만들어주었다.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른다고? 은정이는 괜찮은 걸까? 혹시 다치진 않았을까?“지금 어디 있대?”옷매무새를 정리한 박수혁이 손잡이에 손을 올린 순간.이한석이 다급하게 말을 이어갔다.“아, 대표님. 소 대표님은 오늘 아침 일
그녀를 꼭 안은 전동하의 미소는 더 밝아졌다.포옹은 꽤 긴 시간 동안 이어졌고 왠지 콧등이 시큰해지는 기분과 함께 소은정이 입을 열었다.“겨우 하루 못 본 건데... 보고 싶었어요.”소은정을 안은 전동하의 팔에 더 힘이 들어가고 부드러운 손놀림으로 소은정의 등과 머리를 쓰다듬었다.“나도요.”한편, 두 사람의 애정행각을 가만히 보고 있던 누군가가 결국 참지 못하고 헛기침을 내뱉었다.“크흠.”예상치 못한 인기척에 부랴부랴 전동하의 품에서 벗어난 소은정은 차가운 표정의 소은호를 발견하고 흠칫했다.“오빠?”소은호의 옆에 서 있던 한시연이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손을 저었다.“아가씨.”“하, 소은정, 이 오빠는 보이지도 안 나봐?”소은호가 눈을 흘기며 불평을 내뱉자 한시연이 푸흡 웃음을 터트렸다.미간을 찌푸린 채 전동하를 돌아본 소은정이 구시렁댔다.“난... 동하 씨 혼자서 온 줄 알았는데...”오빠랑 새언니랑 다 같이 온 거야? 그럼 아까 모습도 다 봤다는 거 아니야. 윽... 민망해. 쪽팔려!잔뜩 굳은 표정의 소은호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출국한 지 하루만에 해외에서 그 큰 사고를 쳤으면 바로 돌아올 것이지 그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고 와? 겁이 없는 건지 상황 파악이 안 되는 건지...”오빠의 꾸지람에 소은정이 메롱 표정을 지어보였다.“괜찮을 거라고 예상하고 잔 거야. 오빠는 내가 바보인 줄 알아?”이때 다가온 한시연이 설명을 이어갔다.“괜찮아 보여서 다행이에요. 오빠 말은 이렇게 해도 어제 잠 한숨 못 잤어요. 미국까지 직접 찾아가려다가 괜히 시선만 끌 것 같아서 겨우 참았다니까요.”“우리 오빠도 새언니처럼 말 좀 이쁘게 하면 얼마나 좋을까?”이에 혀를 한 번 찬 소은호가 손가락으로 소은정의 이마를 살짝 밀었다.“지금 네가 내 태도로 뭐라고 할 상황이야? 시연이도 너 때문에 잠 한 숨 못 잤어. 새벽까지 미국 형사법을 들여봤다고.”소은호의 말에 흠칫하던 소은정은 그제야 한시연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았다.하얀 한시연의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