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에 엎드린 윤시라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오... 오해예요. 전... 전기섭 대표가 절 억지로, 억지로 안으려 한 거였다고요!”그녀의 변명에 신호민이 다시 뺨을 날렸다.“하, 정말 날 바보로 아는 거야? 네가 그 남자 무릎 위에 앉아있는 꼴을 내 눈으로 똑똑히 봤는데 그딴 걸 지금 변명이라고! 다들 네가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는 거라고 의심할 때도 난 네 편을 들어줬어. 널 진심으로 믿었으니까! 그런데 배은망덕도 유분수지. 내가 어떻게 날 배신해!”신호민의 분노에 찬 따귀에 윤시라는 머리가 울리는 기분이었지만 이대로 신호민까지 잃을 수 없다는 생각에 눈물, 콧물을 쏟아냈다.“아니에요. 제가 회장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시잖아요! 아까는 그 남자가 절 먼저 유혹해서... 순간 실수한 거예요. 여자들도 가끔씩 그런 실수 한다고요! 한 번만,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윤시라의 적반하장에 신호민은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용서? 내 눈으로 그 꼴을 봤는데 용서? 내가 미쳤지. 결혼이고 뭐고 다 없었던 일로 할 거니까 당장 내 눈앞에서 꺼져!”신호민은 끈질기게 자신의 바지가랑이를 잡고 눈물을 흘리는 윤시라를 거칠게 떼어냈다.“지, 지금 파혼하시겠다는 말씀이세요?”윤시라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파혼이라니! 말도 안 돼! 나 좋다는 남자들 다 마다하고 당신한테 간 건데 파혼이라니! 내가 아직도 당신 정부처럼 보여? 천한그룹 회장 천한강이 내 아버지야! 우리 두 사람 결혼은 정략 결혼이라고! 그런데 누구 마음대로 파혼을 해! 절대 안 돼!”나이 들고 이혼 경력까지 있는 신호민에게 차였다는 소문이 퍼진다면 다시는 좋은 남자를 만날 수 없을 것이란 불안감에 윤시라가 마지막 발악을 시작했다.나이 많고 이혼 경험에 짜증 나는 딸까지, 마음에 안 드는 것 투성이었지만 신호민과 결혼만 하면 한해그룹을 가질 수 있다는 일념 하나로 역겨운 관계를 이어왔던 윤시라였다.게다가 그녀를 견제하는 오빠, 언니들 틈에서 아버지의 사랑
유리조각에 베인 상처를 움켜쥔 윤시라가 매서운 눈빛으로 신지연을 노려보았다.“꺼져. 네까짓 게 뭐라고 입을 놀려.”그녀의 태도에 신지연이 피식 웃었다.“사실 엄마 아빠 사이 안 좋은 건 이미 전부터 알고 있었고 아빠가 언젠가 재혼할 거란 것도 알고 있었어. 하지만 너처럼 여우 같은 여자는 안 돼. 쓰레기 같은 X.”어렸을 때부터 할머니에게서 언젠가 새 엄마를 맞이하게 될 거라는 얘기를 들어온 신지연은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해둔 상태였고 친 모녀처럼 막역한 사이는 아니더라도 웬만큼 사이좋게 지낼 마음도 있었다.하지만 넌 안 돼... 너 같은 걸 내 엄마라고 인정할 순 없어.말을 마친 신지연이 돌아서고 룸 앞에서 잔뜩 긴장한 얼굴로 윤시라의 코트를 들고 있는 직원을 발견하고 피식 웃었다.“코트 줄 필요 없어요. 아무 때나 벗어제끼는 여자거든요. 노출증이라고 해야 하나? 아, 손해배상은 천한그룹 쪽에 청구하세요. 저 여자... 천한강 대표 딸이거든요.”말을 마친 신지연은 여유롭게 걸음을 옮기며 소은정에게 문자를 보냈다.“모든 게 완벽했어요. 고마워요, 언니.”문자를 확인한 소은정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그날 밤. 소은정은 친구들의 초대를 받았다.마침 전동하도 일 때문에 바빠 데이트도 없겠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던 소은정이 바로 펍으로 향했다.커다란 룸, 익숙한 얼굴들 사이로 한유라의 모습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소은정의 자리를 비워둔 한유라는 이미 거하게 한 잔 걸쳤는지 눈빛이 조금 풀어진 모습이었다.가슴까지 쿵쿵 대는 음악소리에 한유라가 그녀의 귓가에 대고 소리쳤다.“야, 윤시라 그 여자 파혼당했다면서? 윤시라가 큰 사고 친 것 같은데 뭐 아는 거 있어?”하, 신호민 대표... 생각보다 빨리 움직였네. 하긴, 이 세상 어느 누가 그 꼴을 보고 가만히 있을 수 있겠어. 부처도 안 될 거야...“그래?”소은정이 모르는 척 어깨를 으쓱하고 한유라가 자연스레 그녀의 팔짱을 끼며 고개를 저었다.“사람들은 다 쌤통이라는 태도야.
이렇게 된 이상 숨기는 것도 의미가 없겠다 싶어 소은정은 모든 자초지종을 설명해 주었고 한유라가 잔뜩 흥분한 얼굴로 소은정의 어깨를 마구 두드렸다.“와, 진짜 재밌었겠다. 그 자리에 내가 있었어야 했는데. 좋은 구경 놓쳤네.”그리고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전기섭을 힐끗 바라보았다.윤시라가 유혹하려던 남자가 전기섭이었다니... 이 바닥도 참 좁다니까. 천한강 대표만 난처하게 됐네... 이번 일로 전인그룹과 척을 지게 된 꼴이 되었으니.한편, 다른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며 환하게 웃는 소은정의 모습을 힐끗 바라보던 전기섭의 가슴이 살짝 설레였다.동하가 그렇게 비굴하게 쫓아다니는 이유가 있었네...사실 처음 봤을 때는 그저 예쁘장한 여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하지만 시간이 흐를 수록 그녀가 있는 곳이면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꽂히는 걸 발견했다.눈을 뗄 수 없는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그녀의 모습에 전기섭의 마음도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그리고 무엇보다 박수혁, 전동하도 완전히 가지지 못한 소은정을 소유하게 되었을 때 느껴질 쾌감에 온몸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였다.뚫어져라 소은정을 바라보는 전기섭의 모습을 발견한 남자 한 명이 웃으며 말을 걸었다.“전 대표님도 소은정 대표가 마음에 드시나 봐요.”전기섭은 대답 대신 눈썹을 씰룩거렸다.“뭐 남자라면 소은정 대표에게 빠질 수밖에 없죠. 저희는 뭐 감히 바라보지도 못하지만 전 대표님은 다르시잖아요? 게다가 소은정 대표는 이혼 경력도 있고 오히려 저쪽이 땡잡은 거죠. 두 분 잘 어울리시는데 잘해 보세요.”다른 사람들도 바로 거들었다.“그럼요. 전동하 대표가 꾸준하게 대시하는 눈치긴 하지만... 우리 전기섭 대표님이랑은 상대가 안 되죠.”평소였다면 이렇게 전동하를 비하하는 말을 감히 내뱉지 못했겠지만 전기섭이 실종되고 전인국이 입국하며 전씨 일가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이 바닥에서 그런 화제는 물어뜯기 딱 좋은 가십거리이니 소문은 순식간에 퍼져나갔고
소은정의 거절에 전기섭이 미간을 찌푸렸다.이 정도 들이댔으면 대충 넘어와야 하는 게 정상이거늘 여전히 도도한 소은정의 표정이 그를 더 미치게 만들었다.소유욕을 넘어 오기가 생기기 시작한 전기섭이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손 부끄럽게 정말 이럴 거예요? 우리도 나름 구면인데 술 한 잔 정도는 마실 수 있는 것 아닙니까?”묘한 분위기에 시끄럽게 떠들던 사람들이 숨을 죽이고 두 사람을 바라보기 시작했다.도도하게 팔짱을 낀 소은정이 차가운 눈동자로 전기섭을 빤히 바라보았다.그녀의 침묵에 전기섭도 꽤 창피했지만 이제 와서 돌아서면 그것이야말로 쪽 팔리는 일이니 일단 버티고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어색한 대치가 이어지고 전기섭이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아, 설마 동하 때문에 그래요? 하, 그깟 더러운 사생아가 뭐가 좋아요?”사생아...소은정의 눈빛이 더 날카로워졌다.전기섭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소은정이 피식 웃었다.“사생아라... 말끝마다 더러운 사생아, 사생아. 제 귀에 딱지다 다 앉을 지경이네요. 그런데 말이에요... 그 대단한 전씨 집안에 사생아가 정말 동하 씨 한 명뿐인가요?”소은정의 질문에 전기섭의 미소가 차갑게 굳었다.“전 한 명이 아닌 걸로 알고 있는데... 제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전 대표님 스스로가 더 잘 알고 계시겠죠?”방금 전까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던 전기섭의 표정이 어두워졌다.“그게 지금 무슨 말이죠?”여유롭게 일어선 소은정이 턱을 살짝 치켜세웠다.“글쎄요? 무슨 뜻일까요?”전기섭... 그 비밀이 언제까지 지켜질 것 같아? 동하 씨 엄마는 정부라는 명분이라도 있었지... 천륜까지 져버린 더러운 사이에서 태어난 주제에... 어디서 감히 더럽다는 단어를 입에 올려?”하지만 핵폭탄은 터지지 않을 때 가장 위협적이고 비밀은 터트리지 않았을 때 가장 위험한 법.이런 자리에서 쉽게 밝힐 수야 없지...소파에서 일어선 소은정이 전기섭을 스쳐지나다 다시 고개를 돌렸다.술잔을 바라보던 소은정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어차피 이 자리에서 밝힐 생각은 없었지만 칼자루는 그녀가 쥐고 있으니 두려울 게 없었다.점점 더 험악해지는 분위기에 사람들이 바로 상황을 수습하기 시작했다.“아이고, 전 대표님 많이 취하셨네. 우리 나가서 바람이라도 좀 쐴까요?”“은정아, 너 화장실 간다면서. 내가 같이 가줄까?”“대표님, 너무 화내지 마세요. 그냥 하는 말일 거예요. 술은 저희랑 마시시죠.”누군가 또다시 술 얘기를 꺼내고 전기섭이 어금니를 까득 깨물었다.다시 테이블에 놓인 술잔을 든 전기섭이 소은정을 향해 걸어갔다.“좋습니다. 이 술 다 마시면 아까 있었던 일은 없었던 걸로 하죠...”하, 뭐야? 이 봐준다는 듯한 말투는... 주제도 모르고.소은정은 헛웃음을 짓더니 팔짱을 끼고 전기섭의 이글거리는 눈동자를 마주했다.커다란 룸이 다시 침묵에 잠긴 그때.술에 취해 꾸벅꾸벅 졸고 있던 한유라가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눈을 번쩍 떴다.미간을 찌푸린 그녀가 사람들을 밀치며 소은정에게 다가갔다.“은정아, 너 성격 많이 죽었다? 저런 협박에 겁 먹은 건 아니지?”한유라의 말에 사람들의 얼굴에 두려움이 서렸다.SC그룹의 위상이 대단한 것도 있었지만 아직 경영수업 중인 대부분 재벌 2세들과 달리 소은정은 제대로 된 대표이자 최대 주주였다.전기섭 주위에 섰던 남자들마저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술에 취해 졸고 있다 이제야 다가온 한유라를 흘겨본 소은정이 말했다.“뭐 기본적인 예의는 지켜야지.”“그래서? 더 지킬 의미가 있는 것 같아?”“아니.”옆사람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한 두 사람의 대화에 전기섭은 불안한 예감에 휩싸였다.오늘 점심 윤시라에게 거침없이 물을 끼얹던 소은정의 모습이 떠올랐다.어차피 윤시라 정도야 이 바닥에서 아무것도 아니었으니 별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었지만 어느새 그에게서 멀어지는 사람들의 모습에 전기섭의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무슨 짓을 하...전기섭이 생각을 마치기도 전에 잔을 들고 있던 손이 가벼워지고 위스키가 그의 얼굴을 타고 흘러내
그리고 지금은 이미 바닥까지 추락한 자존심을 다시 되찾는 게 중요했다.거칠게 문이 닫히는 소리에 소은정이 고개를 돌리려던 그때 거대한 힘이 그녀를 뒤로 잡아당겼다.벽에 제압당한 소은정이 미간을 찌푸렸다.전기섭이 숨을 쉴 때마다 느껴지는 술 내음에 속이 울렁거렸다.“네가 뭔데 그딴 표정으로 날 바라봐. 사과해. 사과 안 하면 여기서 한 발자국도 못 나갈 줄 알아.”하, 이젠 협박까지? 제대로 막 나가네. 망나니 같은 자식.소은정은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야, 너 그거 안 놔!”한유라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다음 순간, 소은정이 전기섭의 팔을 잡아 뒤로 비틀었다.뚝!관절이 어긋나는 소리와 함께 소은정이 하이힐로 전기섭의 배를 걷어찼다.벽에 등을 부딪힌 전기섭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순식간에 상황이 뒤집히고 또각또각 걸어간 소은정이 비아냥거렸다.“난 또... 다짜고짜 덤비길래 뭐라도 되는 줄 알았네.”마지막 일격을 날리려던 그때, 맞은 편 룸 문이 벌컥 열렸다.그리고 그곳에서 나오는 사람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소은정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동하 씨?”오늘 저녁 약속 있다고 했었잖아? 설마 약속 장소가 여기였어?전동하 역시 소은정이 여기 있을 줄은 모르고 그저 소란스러워 문을 연 것뿐이었다.하지만 놀람도 잠시 바로 걱정스러운 얼굴로 다가온 그가 소은정의 이곳저곳을 살폈다.“괜찮아요? 어디 다친 건 아니죠?”소은정이 고개를 젓고 다시 고개를 돌린 전동하의 얼굴이 순식간에 차갑게 굳었다.“전기섭?”전동하, 전기섭 두 사람 사이에서 풍기는 묘한 화학 냄새에 소은정도 왠지 긴장되기 시작했다.워낙 전동하를 싫어하긴 했지만 시궁창 같은 곳에서 며칠 동안이나 갇혀있었던 전기섭의 증오는 이미 한계치를 넘어선 상태였다.당장이라도 뼈까지 씹어먹고 싶었지만 더 이상 한국에서 사고를 치지 말라는 전인국의 분부가 있었기에 겨우 참고 있었는데 이런 곳에서 만나다니.그것도 이렇게 비참한 꼴로...전기섭이 고통을 무릅쓰고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비명소리와 신음소리 욕설과 고통에 몸부림치는 소리가 한데 어우러지며 옆 사람들이 보기에 잔인하다 느껴질 정도의 폭력이 이어졌다.처음에는 흥미진진한 표정을 짓던 한유라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뭐야. 저 남자 더럽게 못 싸우네. 그런데 뭘 믿고 그렇게 나댄 거래?”이 바닥에서 재벌 2세들은 어렸을 때 납치 등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다 보니 어느 정도 스스로 몸을 지킬 수 있게 태권도나 유도 같은 무술을 배우는 게 국룰이나 마찬가지였다.“전기섭은 어렸을 때부터 전문 경호원이 밀착 경호를 했거든. 그래서 필요없었던 거겠지.”“아... 그래서 지금 저렇게 맞기만 하는구나?”한유라가 피식 웃었다. 한편 소은정은 전기섭의 몸을 가로탄 채 주먹을 날리는 전동하를 가만히 지켜보았다.평소 부드럽고 젠틀하던 모습은 온데 간데 없고 마치 오랫 동안 몸을 웅크리고 있던 맹수가 사냥감을 유린하 듯 포악했다.살기로 번뜩이는 눈동자에서는 그 어떤 감정의 동요도 느껴지지 않았다.이러한 전동하의 모습은 낯설면서도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분명 같은 집에서 자랐는데 온실의 화초처럼 연약한 전기섭과 별다른 초식이 없는 말 그대로 길바닥 스타일의 싸움을 보여주고 있는 전동하...무엇이 저 두 사람의 차이를 만들어냈는지 알고 있기에 가슴이 저려왔다.짜증 나... 동하 씨가 이기고 있는데도...얼마 지나지 않아 전기섭은 반항할 힘도 없는지 바닥에 축 늘어졌지만 전동하는 기계적인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그만해요...”조용히 다가간 그녀의 목소리에 전동하가 드디어 행동을 멈추었다.고개를 든 전동하의 새카만 눈동자에 점차 빛이 들어왔다.그의 주먹을 잡아 어루만지던 소은정의 눈에 눈물빛이 서렸다.“됐어요. 이제 그만 가요.”자리에서 일어난 전동하가 조심스레 그녀의 표정을 살폈다.“놀랐어요?”이 와중에 그녀를 걱정하는 전동하를 향해 소은정은 최선을 다해 웃어주었다.“아니요. 손 아프죠? 집 가서 내가 약 발라줄게요.”그제야 전동하의 입가에 늘 보이던 익숙한
”주위에 지키는 사람 하나 없는데 미련하게 거기 갇혀있어? 대문은 잠겼어도 2층 창문에서 뛰어내리면 되잖아. 사내 새끼가 그것도 못 뛰어내려? 아무리 곱게 자랐어도 그렇지.”돌아온 그를 바라보던 전인권이 처음으로 한 말이었다.도망칠 기회가 수없이 있었음에도 고집스럽게 곰팡이 핀 빵을 먹으며 구조를 기다렸다니...한심하다는 듯한 전인권의 눈빛에 전기섭이 느낀 건 끝없는 치욕이었다.주위에 보디가드를 둘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을 전동하의 오만함이 그를 미치게 만들었다.전인권은 동네 창피하다며 복수는 생각도 하지 말라 했지만...바닥에 엎드린 전기섭이 몰래 주먹을 쥐었다.언젠가... 내 바지가랑이를 잡고 차라리 죽여달라 애원하게 만들어주겠어, 전동하...한편, 오피스텔 앞에서 전동하와 소은정은 누가 먼저 돌아서냐로 한동안 실랑이를 벌였다.이걸로 한참 동안 고민할 일인가 싶어 두 사람 모두 웃음을 터트렸다.결국 전동하가 먼저 그녀의 등을 들이밀었다.“얼른 가요. 오늘은 푹 쉬어요.”“알겠어요. 내가 먼저 들어갈게요. 오피스텔 안에서 동하 씨가 가는 거 보면 되잖아요.”소은정의 고집에 피식 웃던 전동하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그냥 같이 올라갈래요?”“됐어요.”소은정이 손을 쏙 빼냈다.싱긋 미소 짓던 전동하가 다시 소은정의 손을 만지작거리다 손목을 확 당겨 그녀를 품에 안았다.두 팔로 허리를 안으니 전동하의 따뜻한 체온이 그대로 느껴지고 소은정도 왠지 마음이 착 가라앉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언제면... 동하 씨가 상처를 모두 지워낼 수 있을까? 나와의 즐거운 추억으로 그 힘들었던 시간들이 흔적도 없이 덮였으면 좋겠다...한참 뒤에야 전동하는 품에서 그녀를 풀어주었다.“들어가요.”안겨있던 그녀도 왠지 달라진 전동하의 신체 변화를 느끼고 도망치듯 오피스텔 안으로 사라졌다.문에 기댄 소은정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솔직히 어른 대 어른으로 사귀는 마당에 너무 내숭을 버리는 것도 웃기고 소은정도 어느 정도 다음 단계 스킨쉽에 대해 마음의 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