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연은 뭐가 잘못됐는지 눈치채지 못했다. 그저 안형준이 저 대신 하연을 선택하는 순간부터 스승과 제자의 감정에 금이 갔다고만 생각했다.이에 지연은 입을 삐죽거리며 불만 섞인 태도로 밀어붙였다.“교수님이 눈여겨보시던 인재도 별거 없네요.”그 말을 듣는 순간 안형준의 얼굴은 잿빛이 되었다.그리고 그와 동시, 하연도 결정을 내렸다.“엄지연 씨, 경합 받아들이겠습니다.”지연은 고개를 끄덕였다.“배짱 하나는 칭찬할 만하네요. 하지만 제 말 고깝게 듣지는 말아줘요. 전 절대 봐주지 않을 테니까 마음의 준비 단단히 해야 할 거예요.”지연은 자기 실력에 매우 자신했다.그 말에 하연은 느긋하게 대답했다.“기대할게요. 하지만 지연 씨는 스승님에 대한 존중을 다시 배워야 할 것 같네요.”지연의 낯빛은 순식간에 변했다.“그쪽이 무슨 자격으로 날 가르치죠?”하연 역시 물러서지 않고 맞받아쳤다.“자격까지는 아니고, 그저 좋은 마음에 경고하는 겁니다.”방금 하연의 말에 체면이 깎인 지연은 이내 안형준을 바라봤다.“교수님, 저...”하지만 안형준은 손을 휘휘 저으며 대범한 태도를 보였다.“됐어. 이젠 우리도 늙었으니 젊은이들한테 무대를 넘겨줘야 할 때도 됐지. 그러니까 실력 제대로 보여줘. 사람들도 공정한 눈을 갖고 있으니 승부는 반드시 갈라질 테니까.’지연은 그 말을 들은 순간 눈빛이 어두워지며 아차 싶었다.‘매번 이 승부욕이 문제네. 하지만 뭐, 이기면 되는 거니까. 내가 반드시 이길 거야.’“최하연 씨, 우리 실력으로 승부 봐요. 사흘 뒤, 어떤 작품 내놓는지 두고 볼게요. 저한테도 하연 씨 실력 한번 보여 줘봐요.”“그래요. 작품으로 승부 봐요.”하연 역시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서로를 마주 보는 두 쌍의 눈에는 한 치의 양보도 없었다.그리고 얼마 뒤, 지연은 뒤돌아 자리를 떠났다.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이미 별의별 상황을 접한 적 있고 익숙해진 터라,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두 사람을 보자 오히려 재밌는 구경거리가 생겼다고 좋아했다.심
회사로 돌아온 하연은 최근 급하지 않은 일정을 모두 뒤로 미루거나 유미한테 맡기고는 이번 패션쇼와 관련된 자료를 열심히 공부했다.밖은 어느덧 어둠이 드리웠지만 DS그룹 맨 꼭대기 사무실은 여전히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서류 한 뭉치를 안고 온 상혁은 유리 창 너머에서 저만의 세상에 빠져 있는 하연을 다정한 눈빛으로 바라봤다.이윽고 노크를 하더니 안으로 들어갔다.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보인 건 바닥에 널브러진 디자인 원고였다. 상혁이 허리를 숙여 한 장 한 장 열심히 줍는 동안, 하연은 펜 끝을 입에 물고 수심에 잠겨 있었다.그러다 상혁을 발견한 순간 모든 방어선이 와르르 무너진 듯 투덜댔다.“상혁 오빠, 어떡해요? 저 아이디어가 안 떠올라요.”상혁은 원고를 모두 정리해 하연에게 다가갔다.“떠오르지 않으면 잠깐 휴식해. 자기를 너무 몰아붙이지 마.”하연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그런데 벌써 하루가 지나갔어요. 이제 이틀밖에 안 남았는데 어떻게 그래요.”상혁은 손을 뻗어 하연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그녀가 손에 쥐고 있던 펜을 빼앗으며 일으켜 세웠다.“잠깐만 휴식해. 나랑 어디 같이 좀 다녀오자.”“네? 어디 가는데요?”하연이 어리둥절해서 물었지만 상혁은 뭔가 숨기기라도 하는 듯 아무 말 없이 하연을 끌고 밖으로 나갔다.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1층에 도착하자 상혁은 말없이 하연을 조수석에 태웠다. 그러자 참지 못한 하연이 끝내 물었다.“상혁 오빠, 어디 가는데요?”“가면 알아.”상혁은 여전히 뜸을 들이더니 시동을 걸었다.창밖으로 언뜻언뜻 지나가는 건물을 보며 살살 부는 밤바람을 쐬니 복잡했던 마음은 어느새 조금씩 차분해졌다.그렇게 한참 달리니 차는 도시를 지나 웬 고풍스러운 거리에 이르렀다.상혁이 주차 구역을 찾아 차를 세우는 사이, 하연은 놀란 눈으로 주위를 둘러봤다.“시립문화전당? 여긴 왜 왔어요?”상혁은 시동을 끄고 차 키를 뽑았다.“가자, 영감 찾으러.”하연은 의아한 눈빛으로 상혁을 봤지만 끝내 순순히 그의 뒤를 따라
상혁은 싱긋 웃었다.“응, 다른 거 더 볼래?”하연은 의아한 듯 물었다.“이것보다 더 재밌는 것도 있어요?”상혁은 또 뜸 들였다.“이따가 보면 알아.”곧이어 상혁은 하연을 데리고 반대편 거리로 향했다. 그곳에는 경극 공연이 한창이었다.”하연은 상혁과 함께 자수공방에 들러 여러 가지 자수 작품을 보며 고전 문화를 느꼈다.그러다 맨 마지막에 도자기 공방에 들러 진열된 청자기를 보던 중, 하연은 눈이 번쩍이더니 무의식적으로 말했다.“나 이제 오빠가 왜 여기 데려왔는지 알 것 같아요.”청자기를 구경하던 하연은 저녁에 봤던 각종 공연과 하루 중일 연구했던 패션쇼 자료를 떠올리며 대략적인 아이디어를 구상했다.“펜, 빨리 펜 줘요!”상혁은 다급히 주머니 속에 넣고 있던 만년필을 꺼내 하연에게 넘겨주었다. 하지만 그림을 그릴 종이가 없자 하연은 애가 탔다.“어떡해요? 나 갑자기 아이디어가 떠올랐는데, 그릴 데가 없어요!”하연은 말하면서 다시 도자기 공방으로 뛰어 들어가 안에 있던 티슈를 꺼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공방 주인은 그 상황을 보자 이내 눈살을 찌푸리며 화를 냈다.“지금 뭐 하는 거죠?”그때 상혁이 지갑에서 현금 한 움큼을 꺼내 건네자 주인은 이내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는 조용히 자리를 비켜주었다.하연은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진지하게 머릿속 아이디어를 그림으로 그려냈고, 상혁은 옆에서 조용히 함께 있어 주었다.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원고 하나가 뚝딱 완성되자 하연은 그걸 들고 자랑하듯 상혁 앞에 대고 흔들었다.“자요! 청자기를 주제로 한 옷이에요. 어때요?”워낙 그림 솜씨가 좋은 데다, 청자기라는 독특한 원소가 섞이니 유니크 하면서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작품이 탄생하여 눈이 번쩍 뜨이는 기분이었다.“아주 좋아!”하연은 활짝 웃었다.“이번 패션쇼는 우리나라뿐마 아니라 해외 패션계에서도 과심을 갖고 있대요. 그러니까 이건 분명 좋은 기회가 될 거예요. 이 기회에 우리나라 전통문화를 패션에 섞으면 아
그날 밤, 깊은 잠에 빠진 하연은 다음날 해가 중천에 떠서야 느릿느릿 잠에서 깨어났다.똑똑-그때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오자 하연은 이내 몸을 일으켜 침대에서 내렸고, 몸을 덮고 있던 이불이 그 동작 때문에 스르륵 흘러. 그제야 하연은 어젯밤 사무실에서 잠들었다는 걸 발견했다.“들어와요.”하연은 옷을 정리하고 난 뒤 문을 향해 말했다.말이 떨어지자마자 태훈이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하연을 향해 깍듯하게 인사했다.“최 대표님, 잘 주무셨어요?”“어, 그래.”하연이 짤막한 대답과 함께 의아한 눈빛을 보내오자 태훈은 얼른 설명했다.“이건 부 대표님이 저더러 준비하라고 한 거예요. 부 대표님 정말 세심한 분인 것 같아요. 대표님한테도 유독 신경 쓰는 것 같고요.”그 말에 얼굴이 붉어진 하연은 얼른 어색함을 숨기며 테이블 쪽으로 걸어갔다. 그랬더니 메모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하연아, 잘 잤어? 내가 정 비서더러 아침 준비하라고 했으니까 꼭 먹어.]그 말끝에는 웃는 얼굴이 귀엽게 그려져 있었다.그걸 본 하연은 끝내 웃음을 참지 못했다.‘정말 가끔 보면 소녀 같다니까?’그 덕에 기분이 좋아진 하연은 눈썹을 치켜 올렸다.아침 식사를 마친 하연은 디테일을 손보기 시작했다.그렇게 하루 종일 일만 하다가 퇴근 시간이 되자, 하연은 디자인 원고를 들고 회사를 떠났다. 하연이 운전한 포르쉐가 회사를 떠나자마자 구석진 골목에 세워져 있던 벤틀리도 따라 시동을 걸었다.한창 운전하다가 주요 도로에 접어들 때, 하연은 무심코 제 뒤를 따라붙은 차 한 대를 발견했다.그 차 번호가 너무나 익숙한 번호라는 걸 발견한 하연은 운전대를 꽉 쥐고는 엑셀을 밟았다.그러자 뒤따르던 서준도 엑셀을 밟으며 하연과 여전히 일정한 간격을 유지했다.뒤 차가 끝까지 따라붙자 하연은 끝내 핸들을 꺾어 길가에 차를 세웠다.아니나 다를까, 그 차도 얼마 떨어진 곳에 그대로 멈춰 섰다.하연은 이내 차에서 내려 잔뜩 화가 난 모습으로 걸어와 그 차의 유리를 똑똑 두드렸다.곧이어
서준도 질투했다는 걸 인정한다.심지어 부럽기까지 했다.“혹시 그 자식 좋아해?”서준은 하연의 두 눈을 빤히 바라보며 가장 묻고 싶었던 질문을 내뱉었다.“이건 내 개인적인 일이라 한서준 씨랑 상관없잖아.”“그래?”서준은 하연의 손목을 낚아채더니 하연을 점점 차 쪽으로 밀어붙였다. 그러자 하연은 이내 버둥대며 반항했다.“한서준, 이거 놔!”“말해. 부상혁 좋아하냐고.”“진짜 머리가 어떻게 된 거야? 내가 누구를 좋아하든 그건 내 자유야!”하연은 분노가 폭발했다.“말해! 최하연, 네 대답 듣고 싶어.”“좋아해. 아주 좋아해. 좋아서 미치겠어. 됐어?”하연은 끊임없이 발버둥 치며 마구 소리쳤다.그 말을 들은 순간, 시뻘겋게 충혈된 서준의 눈에 일순 절망이 스쳐 지났고, 심장은 마치 칼로 도려낸 듯 아파 났다.그 사이를 틈타, 하연은 서준한테서 벗어나 뒤로 물러서더니 경계 가득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내가 누구를 좋아하든 그게 한서준 씨랑 무슨 상관이지? 부상혁이 없다면 이상혁이 있을 거고, 이상혁이 없으면 장상혁이 있을 거야. 그게 누가 됐든 넌 절대 한서준 씨는 아닐 거야. 알겠어?”하연은 말하면서 눈물이 글썽해졌다.오랫동안 꾹꾹 눌러온 감정이 한순간 폭발했다.서준은 그 대답에 자조적인 미소를 짓더니 주먹으로 차 유리를 세게 내리쳤다. 그 순간 유리가 깨지며 바닥에 우수수 떨어졌고, 서준의 손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하지만 하연은 보는 체도 하지 않고 뒤돌아 제 차에 올라 안전벨트를 맸다.하연은 백미러로 서준을 봤지만 결국 고민도 없이 엑셀을 밟고 떠나버렸다.그때,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지만 서준은 떠나가는 차를 바라보느라 완전히 무시했다.하지만 상대는 끈질기게 여러 번이나 전화를 걸어오자 결국 귀찮은 듯 발신자를 확인하고는 수신 버튼을 눌렀다.“무슨 일이야?”“한 대표님, 민혜경 씨가 또 자살했다고 합니다.”‘또야?’서준은 입가에 비아냥 섞인 미소를 지었다.“좀 새로운 방법은 없대?”“아니, 이번에는 엄청
“오늘 여기 계신 모든 분들께 투표권이 있으니, 표를 적게 받으면 바로 탈락이에요.”하연은 싱긋 미소 지었다. 지연과 경합하기로 결정했으니, 이런 룰은 당연히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원래부터 하연의 이런 태연하고 여유로운 느낌을 마음에 들어 하던 안형준은 만족하는 눈빛을 보냈다.지연은 하연을 오만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턱을 빳빳이 쳐들더니 자신 있게 제 디자인 원고를 꺼내 들었다.“최하연 씨도 도착했으니 모두 우리의 디자인을 봐주세요.”그 말에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자 지연은 승권을 쥐고 있다는 듯 자신만만하게 제 원고를 꺼내 들었다.지연이 자기의 디자인 원고를 빠짐없이 사람들 앞에 보여주자, 사람들은 하나같이 찬사를 보냈다.지연의 디자인 실력은 확실히 인정할만했다.디자인을 오래 한 게 작품에 한눈에 보이고, 디테일과 라인, 색상 처리 모두 우수했다.“역시 안 교수님 제자 답네. 이런 실력은 10년 정도 갈고 닦지 않으면 안 나오는 건데. 지연 양, 정말 놀랍네요.”“트렌드에도 부합되고 최근 젊은 층에서 유행하는 스타일인 데다 산듯하기까지 하니 지금 계절에 딱이네.”“흠잡을 데가 없는 디자인이야. 난 90점!”“...”지연은 사람들의 칭찬을 들으며 어깨가 으쓱했다. 지연이 디자인한 옷은 모두 이번 패션쇼 주제와 부합되는 데다, 한 달 전부터 공을 들여 준비한 작품이다.때문에 사람들의 칭찬도 당연하게 느껴졌다.“교수님 생각은 어때요?”지연은 안형준한테 질문을 던졌다.지연의 디자인을 한번 훑은 안형준은 이미 마음속으로 점수를 매긴 상태다.물론 놀라울 정도로 뛰어난 실력은 아니지만, 그래도 최고의 기량을 발휘한 건 인정할 만했다.“아주 훌륭해. 사상도 진보적이고 스타일도 독특하고 기성복으로 만들면 시장 반응이 좋을 것 같아.”안형준의 평가를 듣자마자 사람들은 너도나도 앞다투어 말했다.“그럼 저는 지연 양한테 투표하겠습니다.”“저도 지연 양한테 투표할게요.”“지연 양은 이 표를 가질 자격이 충분해요.”“...”눈 깜짝할 사
“이건... 청자기잖아?”“청자기를 패션에 녹아낸 건 또 처음 보네? 이렇게 놀라울 수가!”“우리나라의 독특한 원소를 섞어 우리만의 특색을 패션에 녹아 내다니, 놀랍군!”“어쩐지,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다 했더니. 저기 저거 보여요? 희곡 요소까지 섞었네요. 어쩜 이렇게 서로 다른 요소를 적절하게 섞을 수가 있지?”“이게 어떻게 옷입니까? 우리 선조의 전통문화를 선양하는 예술 작품이지. 이런 건 전시회에 전시해야죠.”“...”하연의 디자인을 본 순간 지연은 놀랍다는 단어밖에 생각나지 않았다.HX국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문화를 지연은 생각지도 못했다.하지만 현실을 자각한 순간 낯빛이 새하얗게 질렸다.그도 그럴 게, 지연의 작품은 해외에서 유행하는 요소를 섞어 전통문화는커녕 오히려 외국의 것을 선망하는 느낌을 준다. 심지어 조국 문화와 HX국만의 독특한 스타일은 완전히 소홀히 했다.처음으로 국내에서 주최하는 패션쇼라면 당연히 본국의 문화를 널리 알려야 하는데, 그 하나만 놓고 봐도 지연의 작품은 완전히 주제에서 벗어났다.그 순간, 지연은 자기가 처참하게 패배했다는 걸 인지했다.“안 교수님, 역시 전문가라 그런지 보는 눈이 남다르네요. 어디서 이렇게 훌륭한 인재를 발굴했나요?”“이렇게 대범하고 훌륭한 작품이야말로 우리 국민의 자태를 나타낼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연 양은 이번 패션쇼 메인 디자이너로 손색없는 듯합니다.”“저는 의심할 여지없이 하연 양에게 투표하겠습니다.”“저도 하연 양에게 투표하죠.”“...”군중의 눈은 역시나 맑고 깨끗했다.더 훌륭한 작품을 보자 사람들의 태도는 곧바로 바뀌었다.결국 의심할 여지도 없이 하연은 큰 표 차이로 경합에서 압승했고, 지연은 마음이 아팠지만 패배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교수님, 제가 졌습니다. 최하연 씨, 이번 메인 디자이너는 하연 씨가 더 적합한 것 같네요.”하연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감사합니다.”“최하연 씨, 메인 디자이너가 되었으니 팀 잘 이끌어 이번 패션쇼 멋지게
그때 안형준이 말을 이었다.“내가 볼 때 따로 업체 구할 필요도 없을 것 같던데. 제작과 후속 주문 생산 모두 DS그룹에서 한 번 맡아봐요.”그 말을 듣는 순간 하연의 눈은 반짝 빛났다.이렇게 된다면 DS그룹 실적이 또 증가하는 셈이니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하연은 너무 벅차 연신 감사 인사를 했다.“고맙습니다, 안 교수님.”“나한테 뭐 그렇게 예의를 차려요? 나도 하연 양 같은 인재를 아끼는 마음에 이러는 건데. 하연 양 같은 인재를 썩히기 아까워서 그래요.”말 한마디 한마디 모두 저를 인정해 주는 안형준의 말에 하연은 조금 쑥스러워졌다.“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하하하, 정말 마음에 든다니까!”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사람들은 이내 냄새를 맡았다.무려 2년 전부터 안형준이 마지막 제자를 물색하고 있다는 소식에 디자인계 인재란 인재가 벌 떼처럼 모여들었던 적이 있다. 심지어 B시 수많은 대학의 디자인과 학생들이 안형준의 제자가 되기 위해 수도 없이 방문했었다.하지만 안형준은 누구 하나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지금 보니 그 기호를 하연이 차지한 듯싶다.그걸 본 사람들은 모두 부러움의 눈길을 보내며 좋은 운명을 갖고 태어난 하연을 부러워했다....그 시각, 서준이 병원 안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한 대표님, 오셨어요? 민혜경 씨 이제 무사해요. 방금 병실로 옮겨졌어요.”그 말을 들은 순간 서준은 발걸음을 우뚝 멈추며 비아냥거리듯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방금까지 위독하다더니 이렇게 빨리 괜찮아졌어?”동후도 난감한 기색을 보였다.사실 그도 혜경이 의사와 짜고 일부러 이런 일을 벌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한 대표님, 민혜경 씨 보고 가지 않으세요?”서준은 콧방귀를 뀌며 온기 하나 없는 얼굴로 말했다.“괜찮다면서. 그럼 됐잖아.”말을 마친 서준은 고민도 없이 뒤돌았지만 비서가 앞을 가로막았다.“한 대표님, 그래도 한 번 보고 가세요. 만약 대표님이 민혜경 씨 보고 가지 않으면 또 무슨 짓을 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