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청자기잖아?”“청자기를 패션에 녹아낸 건 또 처음 보네? 이렇게 놀라울 수가!”“우리나라의 독특한 원소를 섞어 우리만의 특색을 패션에 녹아 내다니, 놀랍군!”“어쩐지,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다 했더니. 저기 저거 보여요? 희곡 요소까지 섞었네요. 어쩜 이렇게 서로 다른 요소를 적절하게 섞을 수가 있지?”“이게 어떻게 옷입니까? 우리 선조의 전통문화를 선양하는 예술 작품이지. 이런 건 전시회에 전시해야죠.”“...”하연의 디자인을 본 순간 지연은 놀랍다는 단어밖에 생각나지 않았다.HX국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문화를 지연은 생각지도 못했다.하지만 현실을 자각한 순간 낯빛이 새하얗게 질렸다.그도 그럴 게, 지연의 작품은 해외에서 유행하는 요소를 섞어 전통문화는커녕 오히려 외국의 것을 선망하는 느낌을 준다. 심지어 조국 문화와 HX국만의 독특한 스타일은 완전히 소홀히 했다.처음으로 국내에서 주최하는 패션쇼라면 당연히 본국의 문화를 널리 알려야 하는데, 그 하나만 놓고 봐도 지연의 작품은 완전히 주제에서 벗어났다.그 순간, 지연은 자기가 처참하게 패배했다는 걸 인지했다.“안 교수님, 역시 전문가라 그런지 보는 눈이 남다르네요. 어디서 이렇게 훌륭한 인재를 발굴했나요?”“이렇게 대범하고 훌륭한 작품이야말로 우리 국민의 자태를 나타낼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연 양은 이번 패션쇼 메인 디자이너로 손색없는 듯합니다.”“저는 의심할 여지없이 하연 양에게 투표하겠습니다.”“저도 하연 양에게 투표하죠.”“...”군중의 눈은 역시나 맑고 깨끗했다.더 훌륭한 작품을 보자 사람들의 태도는 곧바로 바뀌었다.결국 의심할 여지도 없이 하연은 큰 표 차이로 경합에서 압승했고, 지연은 마음이 아팠지만 패배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교수님, 제가 졌습니다. 최하연 씨, 이번 메인 디자이너는 하연 씨가 더 적합한 것 같네요.”하연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감사합니다.”“최하연 씨, 메인 디자이너가 되었으니 팀 잘 이끌어 이번 패션쇼 멋지게
그때 안형준이 말을 이었다.“내가 볼 때 따로 업체 구할 필요도 없을 것 같던데. 제작과 후속 주문 생산 모두 DS그룹에서 한 번 맡아봐요.”그 말을 듣는 순간 하연의 눈은 반짝 빛났다.이렇게 된다면 DS그룹 실적이 또 증가하는 셈이니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하연은 너무 벅차 연신 감사 인사를 했다.“고맙습니다, 안 교수님.”“나한테 뭐 그렇게 예의를 차려요? 나도 하연 양 같은 인재를 아끼는 마음에 이러는 건데. 하연 양 같은 인재를 썩히기 아까워서 그래요.”말 한마디 한마디 모두 저를 인정해 주는 안형준의 말에 하연은 조금 쑥스러워졌다.“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하하하, 정말 마음에 든다니까!”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사람들은 이내 냄새를 맡았다.무려 2년 전부터 안형준이 마지막 제자를 물색하고 있다는 소식에 디자인계 인재란 인재가 벌 떼처럼 모여들었던 적이 있다. 심지어 B시 수많은 대학의 디자인과 학생들이 안형준의 제자가 되기 위해 수도 없이 방문했었다.하지만 안형준은 누구 하나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지금 보니 그 기호를 하연이 차지한 듯싶다.그걸 본 사람들은 모두 부러움의 눈길을 보내며 좋은 운명을 갖고 태어난 하연을 부러워했다....그 시각, 서준이 병원 안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한 대표님, 오셨어요? 민혜경 씨 이제 무사해요. 방금 병실로 옮겨졌어요.”그 말을 들은 순간 서준은 발걸음을 우뚝 멈추며 비아냥거리듯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방금까지 위독하다더니 이렇게 빨리 괜찮아졌어?”동후도 난감한 기색을 보였다.사실 그도 혜경이 의사와 짜고 일부러 이런 일을 벌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한 대표님, 민혜경 씨 보고 가지 않으세요?”서준은 콧방귀를 뀌며 온기 하나 없는 얼굴로 말했다.“괜찮다면서. 그럼 됐잖아.”말을 마친 서준은 고민도 없이 뒤돌았지만 비서가 앞을 가로막았다.“한 대표님, 그래도 한 번 보고 가세요. 만약 대표님이 민혜경 씨 보고 가지 않으면 또 무슨 짓을 할
그러더니 이내 다시 말을 이었다.“나 연기한 거 아니야. 이렇게 하지 않으면 서준 씨 못 볼 것 같아서.”“보면 어쩔 건데? 아직도 내 앞에서 가식 떠는 거야?”서준은 눈에 드리운 증오를 조금도 숨기지 않았다.만약 민혜경만 아니었다면 그도 하연과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거다.혜경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손을 내밀어 서준의 팔을 잡으려 했지만 서준은 귀찮다는 듯 쳐냈다.그러자 입가에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왜? 이젠 손도 못 대게 하는 거야? 한씨 가문이 민씨 가문한테 빚졌다는 건 영원히 잊으면 안 돼! 그 빚은 평생 갚아야 한다고!”서준은 말없이 주먹을 그러쥐었다.서준이 그동안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던 것도 이 이유로, 혜경도 이 이유 때문에 서준을 손아귀에 잡고 있었다.“말도 너무 여러 번 하면 효과가 없어.”서준의 차가운 목소리에는 경고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그러자 혜경은 더 이상 길이 없다는 듯 밀어붙였다.“그래서 이번이 마지막이야. 서준 씨, 우리 거래하자.”혜경은 일부러 목소리를 내리깔더니 둘만 들을 수 있는 소리로 낮게 말했다.“서준 씨가 우리 민씨 가문에 빚 갚으려는 거 알아. 그러니까 한꺼번에 갚을 기회를 줄게. 나 여기서 빼내 줘. 나 더 이상 감옥에 있기 싫어. 서준 씨가 내 목숨 살려주면 우리 두 가문 간의 빚은 없는 셈 쳐줄게.”이건 확실히 구미가 당기는 조건이긴 했다.“서준 씨, 잘 생각해. 이건 한씨 가문에 아무 일도 아니잖아. 좋은 변호사 구해서 내 사건 뒤집어 줘, 날 미리 빼내 주기만 하면 되는 거야.”“하, 계속 죄짓고 다닐 거 아는데, 풀어달라고?”서준은 혜경의 요구가 우스웠다.그러나 혜경은 고개를 마구 저었다.“아니야, 나 잘 살 거야. 이번에 나가면 B시도 떠날 거고, 다시 서준 씨 앞에 나타나지 않을게. 최하연과 만나는 거 방해하지 않을게, 두 사람이 어떻게 살든 상관 안 해. 그냥 나 살길만 마련해줘.”하연을 언급하자 서준의 표정은 그제야 미세하게 변했다. 혜경 때문에
혜경은 말하면 말할수록 점점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당장이라도 하연을 갈가갈기 찢고 싶었다.여기까지 들은 서준은 미련도 없이 혜경을 밀어버렸다.혜경이 이렇게 지독한 말을 내뱉은 건 전혀 놀랍지 않았다.하지지만 서준은 더 이상 혜경에게 기회를 주지 않고 미련도 없이 뒤돌아섰다.심지어 등 뒤에서 혜경이 어떻게 소리치든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그렇게 병실을 나서자마자 복도에 있는 민진현과 마주친 서준은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앞으로 걸어갔다.불과 몇 달 사이에 민진현은 전보다 훨씬 늙어 보였다. 귀밑머리에 희끗희끗한 백발이 자라났고, 얼굴은 흙빛이 감돌았다.혜경이 광기를 부린 걸 알 리 없는 민진현은 두 사람이 얘기가 잘 된 줄 알고 싱긋 웃었다.살짝 치켜 올린 눈썹과 말아 올린 입꼬리, 여전히 반짝이는 눈을 보면 마치 방금 본 모습이 허상 같았다.“나도 혜경이 말에 동의하네. 목숨은 목숨으로 갚아야 하지 않겠나? 아주 공평한 거래라고 생각하는데.”서준은 한 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으며 대꾸할 가치도 없다는 듯 말했다.“계산은 그렇게 하면 안 되죠. 민 회장님. 나이도 있으신 분이 젊은 사람들 일에 끼어들어서야 되겠어요?”한창 얘기하던 서준은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재수 없는 말투로 말했다.“참, 잊을 뻔했네요. 민씨 가문이 요즘 일상생활도 어렵다면서요? 그런데 뭐, 괜찮아요. 70이 넘는 나이에 일자리 찾으러 다닌다고 비웃을 사람은 없으니까.”그 말은 민진현의 심기를 세게 긁어버렸다.“한서준... 이 못된 놈!”서준은 민진현의 욕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허리를 곧게 편 채로 미련없이 떠나갔다.차에 앉은 서준은 저도 모르게 창밖을 내다봤다.이제야 혜경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된 서준은 그동안 자기가 얼마나 터무니없는 짓을 했는지 깨달았다.지난 3년 동안, 하연을 무시하고, 혜경 때문에 제 옆에서 밀어낸 걸 생각하니 서준은 저 자신이 한심했다.‘한서준, 너 정말 터무니없이 틀렸어.’이 순간, 서준은 하연이 무척 보고 싶었다. 곧이어
곧이어 지연은 하연을 망가트려야 한다는 충동에 저도 모르게 엑셀을 밟았다.이 순간, 지연의 머릿속에는 하연만 세상에서 사라지만 수석 디자이너 자리도, 교수님의 제자 자리도 자기 것이라는 생각뿐이었다.‘그래, 그렇게만 되면 이제 아무도 내 자리 못 넘봐.’지연은 핸들을 꽉 잡으며 계획을 세웠다.그때, 벤틀리 한 대가 갑자기 하연의 앞을 갈고 막았고, 그와 동시 지연의 동작도 그대로 멈췄다.동후를 시켜 하연의 위치를 파악한 서준은 거의 폭주하듯 여기까지 달려왔다.그러고 나서 차를 멈춰 세우고는 다급하게 차 문에서 내렸다.그걸 본 하연은 눈살을 찌푸렸다.‘껌딱지야 뭐야? 왜 자꾸만 따라다녀?’“최하연!”하연을 본 순간 팽팽하게 당겨졌던 서준의 마음은 순간 무너졌다.이 순간 서준은 하연에게 모든 걸 되갚아주고, 자기가 했던 실수를 만회하고 싶었다.“한 대표님, 할 일이 그렇게 없어요?”하연은 서준과 말을 섞기도 싫은 듯 대충 물었다.그러자 서준이 입을 꾹 다물더니 이내 말을 꺼냈다.“최하연, 지난 일은 이미 다 지났으니 나랑 친구로 지낼 수는 없어?”하연은 심지어 자기가 잘못 들은 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었다.‘지금 장난하는 건가? 나랑 한서준과 친구?’“한 대표님, 술 취했어요? 아니면 머리가 어떻게 됐나?”서준은 아랑곳하지 않고 하연을 그윽하게 바라봤다.“최하연, 내 말 끝까지 들어. 전에 민혜경 때문에 우리 사이 너무 많은 오해가 쌓였어. 이제 민혜경도 벌을 받았고, 나와 민혜경도 아무 사이 아니야. 그러니 너와 다시 시작하고 싶어. 친구부터...”“하.”하연은 가볍게 웃었다.“뭔가 착각하는 것 같은데. 나 친구 많아. 그리고 내가 친구 사귀는 기준이 많이 까다롭거든. 아무하고나 친구 안 해.”서준은 하연의 신랄한 풍자와 명확한 거절의 뜻을 바로 이해했다.그런데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그 잘못을 만회하려고 친구로 지내자는 건데, 그것조차 허락되지 않는다는 게 억울했다.“설마 내가 한서준 씨 미워하는 게 민혜경 때문
그 자리에 뻣뻣하게 굳어버린 서준은 몸이 점점 차가워졌다.‘이래서 기회조차 안 주는 거였어?’서준은 이제야 상황이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번져, 하연을 영영 잡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처음 느껴보는 이런 감각에 서준은 당황하기만 했다.그런데 그때.지연의 차가 갑자기 서준의 옆을 쌩하고 지났다.언짢은 듯 눈살을 찌푸리고 돌아본 서준은 하연이 떠나간 방향으로 뒤쫓는 차량을 보며 왠지 모르게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곧이어 서준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 뒤를 쫓았다.그 시각, 하연은 운전을 하면서 예나와 통화하는 중이었다.“내 디자인이 뽑혔어. 올해 B시에서 진행하는 패션쇼 수석 디자이너 자리도 따냈어.”그 소식에 예나는 제 일처럼 기뻐했다.“어머! 너무 잘됐다! 오늘 저녁 축하 파티 어때?”하연이 다급히 대답했다.“나 저녁에 상혁 오빠랑 약속 잡았어.”“오? 뭐야, 뭐야? 당장 사실대로 말해.”하연은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무슨 생각 하는 거야? 우리 친남매 같은 사이야. 쓸데없는 생각하지 마.”하지만 그걸 믿을 예나가 아니었다.“쯧쯧, 이런 건 원래 당사자가 모르는 거야! 그런데 상혁 오빠라면 네 그 전남편보다 백배는 낫지 않아? 너 눈은 제대로 달렸냐? 그런 남자 만나더니, 이번에 이렇게 좋은 남자 놓쳐봐, 앞으로 평생 노처녀로 살아야 할 거야.”“그럼 노처녀로 평생 살지 뭐.”하연의 농담에 예나는 다급하게 말했다.“야! 최하연, 너 솔직히 말해. 설마 아직도 한서준 그 자식 마음에 두고 있는 거 아니지?”“아니야.”“그럼 왜 이러는데?”하연은 입을 꾹 다물고 멀리 내다봤다. 이제 서준에 대한 마음을 정리한 건 확실했지만, 3년이란 세월을 허비하고 그렇게 험난한 결혼 생활을 하고 나니 더 이상 사랑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야, 말해 봐!”“됐어. 감정은 순리에 따르는 거야. 지금은 그냥 내 회사 실적 올리고, 이번 패션쇼 성공적으로 이끄는 게 목표야. 다른 건 나중에 생각하려고.”말이 끝나자마자 하연의
“한서준!”하연이 목청이 쉬어라 소리쳤지만 서준은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한편, 운전석에 앉아 있던 지연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멍해졌다.그도 그럴 게, 중도에 갑자기 다른 차가 뛰어들어 하연을 구해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으니까.하지만 더 이상 현장에 남아 있으면 안 된다는 판단하에 지연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망가진 차를 끌고 쏜살같이 현장에서 도망쳤다.“여보세요? 구급 센터죠? 여기 교통사고가 났어요. 빈강로 3단...”하연은 애써 진정하며 구급차를 불렀지만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서준을 보자 두 손이 떨렸다.다행히 구급차는 곧바로 도착했고, 서준은 제때 병원으로 이송되었다.병원 복도에 도착하자 하연은 점차 진정을 되찾고 태훈에게 전화했다.“정비서, 나 교통사고 났어.”전화 건너편에 있던 태훈은 그 말에 벌떡 일어났다.“몸은 어때요? 지금 어딘데요? 제가 바로 갈게요.”“괜찮아.”하연은 눈을 들어 굳게 닫힌 응급실 문을 보며 조금 전 교통사고의 장면을 떠올렸다.그 폭스바겐은 분명 하연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만약 서준이 갑자기 나타나 그 차를 막지 않았다면 지금 누워있는 건 아마 하연이 되었을 거다.하연은 어두운 눈으로 말을 이었다.“사고 낸 차량이 폭스바겐이야. 당장 그 차주 개인정보부터 알아봐 줘. 바로 뺑소니쳤는데 이거 단순한 사고가 아니야.”“알았어요. 바로 알아볼게요.”전화를 끊고 벽에 기대 기다리고 있던 하연은 뭔가 결심한 듯 핸드폰을 꽉 쥐었다.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씨 집안 사람들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맨 앞에서 달려오던 이수애는 하연을 보자 바로 폭발했다.“최하연! 이 여우 같은 년! 내 아들 교통사고 난 게 너 때문이지? 넌 역시 우리 집이랑 안 맞아. 이혼도 한 마당에 아직도 서준 옆에 계속 붙어 있었던 거였어? 우리 아들이 너 때문에 죽어야 그만할 거야?”“...”조용하던 복도에 온통 이수애의 욕설이 울려 퍼졌다.옆에 있는 서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죽일 듯한 눈빛으로 하연을 노려
“환자분 머리가 유리에 긁힌 외상이 존재하지만 이미 봉합하여 괜찮습니다. 그리고 가벼운 뇌진탕 증세를 보이고 있으나 그 외에는 큰 문제가 없습니다.”의사의 말에 하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래도 서준이 괜찮다니 그나마 다행이었다.“감사합니다, 선생님. 괜찮다니 다행이네요.”이수애도 그제야 안도한 듯 연신 고마움을 전했다.“환자분 이미 깨어났습니다. 곧 병실로 옮겨질 겁니다.”“아휴, 정말 다행이네요.”의사가 떠나간 뒤 간호사 몇 명이 곧 서준을 밀고 나왔다머리에 거즈를 두르고 얼굴 이곳저곳에 혈흔이 묻어 있는 서준은 예전의 멋진 모습 그대로가 아니었다.수애는 서준을 보자마자 달려가 흐느꼈다.“아들, 괜찮아?”옆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던 서영도 얼른 관심 섞인 말투로 물었다.“오빠, 우리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괜찮으니 망정이지.”“괜찮아, 걱정하지 마.”서준은 두 사람을 보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하지만 이수애는 여전히 걱정을 떨쳐내지 못했다.“어떻게 걱정하지 않을 수가 있어? 이게 어디 보통 일이야? 너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엄마는 어떻게 살라고?”이에 서준은 눈살을 찌푸리며 시선을 하연에게 돌렸다.눈이 서로 마주쳤지만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서준은 하연이 분명 앞에 서 있지만 왠지 멀리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최하연.”“괜찮다니 됐어.”서준의 부름에 하연은 가볍게 대답했다.서준은 뭔가 더 말하고 싶었지만 간호사가 그럴 기회도 주지 않은 채 서준을 병실로 옮겼다. 그동안 서준의 시선은 여전히 하연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병실에 도착한 서준은 하연이 따라오지 않아 급한 마음에 일어서려 했지만 간호사가 막아 나섰다.“아직 상태가 호전되지 않았는데 일어나시면 안 됩니다. 안정을 취하세요.”“괜찮아요.”서준은 상관없다는 듯 말하며 침대에서 내리려 했지만 이제 막 병실에 들어온 이수애가 깜짝 놀란 듯 달려왔다.“아들, 지금 뭐 하는 거야? 얼른 누워.”“최하연은 어디 있어요?”서준의 고집스러운 모습에
하연은 고집스럽게 말했다. “국내든 해외든, 저도 차를 좋아하지 않아요. 너무 쓰잖아요.” 상혁은 시선을 이현에게 옮기며 담담하게 말했다. “여기서는 제가 주인이라, 한 상무님께 차를 대접하는 건 좀 그렇죠.”그는 슬기에게 술 한 잔을 따라주라는 신호를 보내며 말했다. “제가 먼저 한 상무님께 한 잔 올립니다.”독한 술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지만, 상혁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하연은 손에 힘을 주어 옷자락을 꽉 쥐었고, 마음속은 점점 더 초조해졌다. “그렇다면 저도 주인 중 한 사람인 셈이니, 비록 처음 만난 건 아니지만, 한 상무님과 최 사장님이 함께 있는 걸 보는 건 처음이니까 저도 한잔 해야겠군요.” 슬기는 예의 바르게 웃으며 말했지만, 그녀가 상혁 옆에 있는 모습은 마치 오랜 부부처럼 자연스러웠다. 이현은 슬기의 말을 듣고 나서 기분이 좋아지며 또 잔을 받아들이고, 결국 두 잔을 기꺼이 마셨다. 그러나 슬기는 계속해서 말했다. “최 사장님은 차도 술도 안 마시나요?” “하연이는 안 마십니다.” 이현은 하연을 보호하듯 그녀를 뒤로 숨기며 말했다. “제가 대신 마시죠.” 결국 그는 총 네 잔을 마셨다. 하연은 분명 보았다. 상혁이 무심히 탁자에 올려놓은 손등에 핏줄이 선명하게 부풀어 올랐고, 그건 상혁이 점점 위험해지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그것은 그가 곧 자신의 감정에 따라 충동적으로 행동할 전조였다. “훌륭한 주량이군요. 이렇게 된 이상, 한 상무님과 기회가 닿으면 한 번 취하도록 달려보겠네요.” 상혁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곧바로 술병을 집어 들고 병뚜껑을 따며 말했다. “몇 년 전에는 한 상무님과 직접 대면할 기회가 없었는데, 오늘에서야 기회를 잡았으니, 이것도 인연이겠죠.” 이현은 상혁이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알았다. 그것은 오랜 세월 쌓인 불만과 질투였다. 단순히 이현의 신분이 아닌, 하연의 마음을 흔들었던 ‘한명준’의 존재에 대한 것이었다. 하연을 어릴 때부터 지켜온 상
슬기는 몇 가지 요리를 더 주문하고는 웃으며 고개를 들어 말했다. “또 만났네요, 최 사장님.” 하연은 너무나 어색해서 순간 뒤로 물러서고 싶었다. ‘이 두 사람이 저녁을 같이 먹고 있어?!’ 상혁은 아무런 설명도 없이 술을 따라 잔을 들어 올리며 이현에게 권했다. “한 상무님, 한잔하시죠.” 이현은 여유로운 태도로 하연에게 말했다. “부 대표님께서 이렇게 성의를 보이시는데, 시간도 아직 여유롭고, 함께 하시죠.” 하연은 도망칠 길이 없었다. “지난번 만남은 소울 칵테일에서였죠. 그때 이후로 참 오랜만이네요. 그 가게 주인이 이제 한 회사의 상무님으로 변신하셨다니.” 상혁은 얄미운 미소를 지으며, 이현에게 술잔을 건넸다. “그때 부 대표님의 배려 덕분에 제가 오늘 이 자리에 설 수 있었습니다.” 이현은 잔을 들어 올리며 상혁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이 술잔, 그때의 감사함을 표하는 겁니다.” “잠깐!! 술을 마시면 안 돼요!!” 하연은 상혁이 잔을 드는 순간 본능적으로 외쳤다. 순간 모든 이들의 시선이 하연에게 쏠렸다. “제 말은...” 하연은 사람들 앞에서 어쩔 수 없이 해명했다. “비서가 일찍 퇴근했다고 하니까... 직접 운전해야 하니 술은 피하는 게 좋겠어요.”이현은 하연의 이 말이 자신을 위한 것이라 생각하며 은근히 기뻐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도 한 잔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요? 부대표님께서도 저를 너무 어렵게 하시진 않을 거라 믿습니다.”상혁은 여전히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그 안에 담긴 차가운 기운은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잔에 든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 “최 사장님께서 한 상무님을 정말 많이 신경 쓰시나 봐요. 오늘 뉴스도 봤는데, 두 분이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며 함께 걸어가는 모습이 참 낭만적이고, 큰 그림을 그리고 계시더라고요.”슬기는 미소를 지으며 한 마디를 더했다.“이 잔은 제가 최 사장님께 바칩니다.”하연은 슬기를 무시하고 오직 상혁만을 바라봤다. 상혁
상혁의 눈 속에 ‘짙게 깔린 먹구름’은 더욱 깊어졌다. 그는 몸을 뒤로 기대면서 슬기가 내민 후추가 들어가 있는 국을 건드리지 않았다. 의사가 당부했듯이, 그의 위장은 매운 음식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특히 후추 같은 자극적인 음식은 더더욱 피해야 했다.이미 30분이 지나갔지만, 옆 방에서는 아직도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상혁은 셔츠의 단추를 하나 더 풀었다.옆 방에서는, 양국성은 무언가를 눈치챈 듯,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방 안에는 하연과 이현, 두 사람만이 남았는데, 숨소리조차 들릴 정도로 고요했다.하연은 자리에 앉아 말을 들은 뒤, 오랜 침묵 끝에 입을 열었다. “저도 이미 한명준 씨에 대해 조사했어요. 전에 한명준 씨가 팀 내에서 누군가의 모함을 받았다는 것도 알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조금 전 말한 그 내용은 잘 알고 있었어요.”이현도 놀라지 않은 채 말했다. “하연 씨, 여전히 저를 신경 쓰고 있잖아요.”그의 직설적인 말에 하연은 당황했다. “전 그저 진실을 알고 싶었을 뿐이에요. 한명준 씨와 전혀 상관없었어요.”“B시에서 재판이 열리던 날, 저는 한서준을 만나러 갔어요. 그때의 상황에 관해 묻자, 한서준은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어요. 하연 씨는 그날, 학교에서 저를 만나지 못한 것에 화가 나서 B시까지 찾아왔고, 마침 저와 비슷하게 생긴 한서준을 보고 저라고 착각했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수년 동안 한서준에게 저라고 믿으며 굽신거리며 살아왔다는 거였어요.”이 이야기를 할 때, 한서준은 분노에 찬 눈으로 피가 맺히듯 붉어진 눈을 하고 난간을 붙들고 고함을 질렀다.“이 말을 듣고 네가 만족했냐? 기뻤냐?”이현은 차분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 몇 년 동안, 하연 씨 마음속에 정말 저에 대한 사랑은 없었던 거예요?”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고, 하연은 부정할 수 없었다. 그녀는 한서준을 사랑하지 않았고, 한서준에게 느낀 감정은 단지, 그를 옛날의 한명준으로 착각했기 때문이었다.서빙하는 직원은 방 안의 이상한 분위기를 모
하연이 예상했던 답과 똑같았다.하연은 입술을 꾹 누르고 일어나 문을 열었다. 사람들이 오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그러니까, 하연 씨는 진작부터 제 정체를 알고 있었던 거죠? 그 사실을 뒤늦게 안 게 아니고요.”“저는 왕씨 가문의 삶이 싫어해요.” “그런데 이제는 왕씨 가문으로 돌아갔잖아요.” 하연은 몸을 옆으로 돌려 정확하게 지적했다.이현은 자리에 앉아 술기운에 머리가 띵했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문 밖을 보았다. 남녀 한 쌍이 지나가는 게 보였고, 남자의 시선이 잠시 이현에게 떨어졌다가 이내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그 남자는 바로 부상혁이었다.이현은 시선을 거두며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제가 한명준으로 돌아가려면 왕씨 가문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어요.” “하연 씨, 지금 저에게 원망을 가지고 있다는 건 알지만, 괜찮아요.”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하연 앞에 서서 아슬아슬한 거리로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부씨 가문의 부남준이 권력을 잡으려는 걸 들었어요. 누가 끝까지 웃을지 아직 몰라요. 하연 씨도 신중하게 선택했으면 좋겠어요.”“부 대표님, 이쪽입니다.” 반대편에서 주슬기가 웃으며 손짓했다.그 순간, 들어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상혁이 본 것은 바로 하연과 ‘한명준’의 다정한 모습이었다.하연은 즉시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창가 쪽으로 가서 가방을 집어 들었다. “한 상무님, 제가 먼저 가야 할 것 같아요. 한 상무님은 정말 마음이 있다면 양 국장님에게 말씀을 좀 잘 드리세요. 한 상무님의 능력이라면 문제없이 처리할 수 있을 거예요.”“제가 그때 일부러 우리 약속했던 장소에 안 나온 게 아니에요. 누군가의 모함을 당한 거였어요.” 이현은 하연의 퇴장을 막으려는 듯 무겁게 말을 꺼냈다.하연의 등이 순간 경직되었다.“뭐라고요?” ...아무리 고급스러운 여자라도, 아름다운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어 하는 마음은 참을 수 없었다.슬기는 수사 해당화 아래에서 사진을 몇 장 찍은 후,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제가
전용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해 문이 천천히 열리자마자 주슬기가 눈에 들어왔다.“부 대표님.” 슬기는 공손하게 인사하며 미소를 띠고 다가갔다. “우연히 지나가는 길에 들러봤는데, 이렇게 마주치다니 운이 좋네요.”상혁은 코트를 들고 약간 무심한 태도로 말했다. “무슨 일이 있나요?”“원래는 없었는데요... 지금은 저녁 식사나 함께할까 해서요. 몇 가지 상의할 일이 있거든요.” 슬기는 재빠르게 대답하면서도 적절한 거리를 유지했다.상혁은 본능적으로 거절하려다가 잠시 생각한 뒤, 뜻밖에도 승낙했다.“좋아요, 장소는 제가 정하죠.”슬기는 의아했지만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네, 좋아요.”곧 원신민이 급하게 와서 상혁의 지시를 받았다. “오늘 당장 시내에서 가장 큰 식당에 방을 예약해.”그곳의 방은 최소한 3일 전에 예약해야 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기에, 원신민은 바쁘게 움직였다. 슬기는 이 상황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의할 게 큰일은 아닌데, 이렇게 정식으로 예약할 필요는 없을 텐데요.”상혁은 태연하게 말했다. “업무 관련된 일이라면 허술하게 할 수 없죠.”상혁은 대수롭지 않게 밖으로 나갔고, 그가 탄 엘리베이터와는 다른 엘리베이터가 마침 내려오고 있었다.“부 대표님의 비서가 낯이 익어요. 어디서 본 적 있죠?” 슬기가 호기심을 보였다.이 업계에서, 특히 이사급의 비서라면 결코 평범한 사람이 아닐 것이다. 원신민은 과거에 이씨 가문의 장남을 도와주면서 정계와 조직폭력배 쪽 모두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준 인물이었다. 방을 예약하는 것은 그에게 쉬운 일이었다.그 식당의 매니저가 직접 나와 원신민을 맞이했다. “원 비서님, 이렇게 갑자기 방문해 주셔서 정말 영광입니다. 방을 예약하신다고요? 1층과 2층은 이미 만석이지만, 최상층에 있는 방은 아직 비어있습니다. 그곳을 부 대표님께 해 드리면 좋을 것 같습니다.”원신민은 상혁이 슬기와의 식사에 그렇게 화려한 공간이 필요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 손으로 테
이현의 말을 듣고 옆에 있던 양국성도 조금 의외였다.경쟁이 격해지는 상황은 많이 봐왔지만, 이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양국성은 이현의 제안에 맞장구를 치며 웃으며 말했다.“그래요, 오늘은 제가 한턱 낼게요.”사실 이현의 정체에 대해서는 이미 소문이 퍼져 있었고, 양국성도 ‘한명준’에 대해 들은 바가 있었다.게다가 이번에 오기 전, 정태산에게도 은밀히 말을 들은 터라, 양국성은 자신의 권한 내에서 최대한 ‘한명준’을 도우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현의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양국성도 이미 자신을 설득하기 시작했으니 하연은 살짝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이현을 한 번 쳐다보고 나서 대답했다. “좋습니다.” 차 안에서, 정태훈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분명히 가기 싫어하셨잖아요.” 하연이 대답했다. “한명준이 이 사업을 맡게 된 건 예측했지만, 남산을 선택할 줄은 몰랐어. 만약 내가 그때 남산 땅을 받아들였더라면, 이 사람이 어디를 선택했을지 궁금해.” 하연은 곰곰이 생각하며 말했다. “이건 혹시 속내를 감추기 위한 선전술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차에서 내리자마자, 하연이도 이현과 마주치게 되었다. 그녀는 하이힐을 신고 계단을 오르고 있었고, 이현은 손을 뒤로 살짝 뻗어 그녀를 가볍게 받쳐주었다. “이모가 이번 사업을 저한테 맡기면서, 사업하는 법을 배우게 하려는 거예요. 이제 저도 더 이상 가게만 운영하던 ‘손이현’이 아니에요.” 하연은 앞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건 이미 알고 있어요. 다시 상기시킬 필요는 없어요.” 이현은 깊은 눈빛으로 하연을 바라보며 말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하연 씨가 기억하는 손이현은 더 이상 없어요. 이제부터 돌아온 건 과거의 한명준만 있어요.” 그제야 하연이 그를 흘깃 쳐다보며 쏘아붙였다. “과거의 한명준은 의기양양하고 당당한 청년이었죠. 지금 당신의 모습이 그 당당한 청년과 닮은 게 뭐가 있어요?” 그녀가 기분이 나쁘면 말이
하연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원 비서한테 우유로 바꾸라고 했어용!” 상혁의 얼굴은 조금 어두워졌지만, 하연은 능숙하게 일어섰다. “나도 오후에 회의가 있어서 먼저 가야 해요. 커피는 더 이상 마시면 안 돼요. 저녁에 또 올게요.” 상혁은 여전히 자리에 앉아 있었다. “저녁이면 이미 퇴근했을 텐데.” “그럴 리가 있나요? 나 원 비서한테 물어봤는데... 당신은 요즘 새벽까지 매일 야근한다면서?” 하연이 문가에 서서 농담처럼 말했다. “부 대표님, 총책임자가 하는 일 정말 쉽지 않죠?” 상혁은 얼굴을 돌리며 미소를 숨겼다. “내일 당장 원신민 해고해야겠군.” ‘원 비서 감히 이렇게 빨리 날 배신했더니...’하연은 오늘도 신에너지와 관련된 회의를 준비하고 있었고, 이번에는 B시에서 온 조사팀과의 회의였다. 제대로 된 홍보팀이 없는 상황이라, 하연은 CS그룹의 몇몇 직원을 빌려와 회의를 진행했다. 그 결과, 저녁 만찬에서 성공적으로 계약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국장님,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오늘 낮잠은 잘 주무셨나요? 방은 만족하셨는지요? 만약 문제가 있었다면 제가 바로 시정하겠습니다.” 하연 웃으며 인사하며 방으로 들어섰다. 양국성은 친근하게 하연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정말 만족스러웠습니다. 최 사장님께서 세심하게 신경 써주신 덕분에 일이 아주 순조로웠어요. 그리고 정태산 지사님께서도 최 사장님께 안부 꼭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그가 한 마지막 말은 하연에게 작게 속삭였다. 하연의 얼굴에 잠시 어두운 기색이 스쳤고, 정태산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대충 짐작이 갔다. “지사님께 제 안부 전해주시고, 부상혁 대표님께서도 잘 지낸다고 말씀드려주세요.” “부상혁 대표님이요?” 양국성이 놀라며 물었다. “아, 최 사장님께서 오해하신 것 같네요. 그날 제가 보고하러 갔을 때 한 검사장님도 계셨거든요. 그분이 최 사장님에 대해 언급하셨습니다.” ‘한창명? 의외의 인물이었
하연은 말한 대로 다음 날 아침, 집에서 일하는 요리사에게 부탁해 위장에 좋은 닭죽을 끓였다. 요리사는 하연이가 이렇게 식단에 신경 쓰는 걸 처음 본 듯 의아해하며 물었다. “아가씨, 이걸 회사에 가져가실 건가요?” 하연은 조금 머쓱해하며 말했다. “내가 먹는 게 아니에요.” 요리사는 놀란 듯 물었다. “아가씨, 남에게 주는 거면, 직접 요리해 보시는 게 어때요? 남자가 감동할 거예요.” 하연 웃으며 대답했다. “그거 알아요. 근데, 시간이 좀 필요해요.” 그녀는 쑥스러워하면서도, 손에 들린 수프 냄비를 들고 바로 DL그룹으로 향했다. 마치 비밀 작전을 수행하듯, 하연은 원신민에게 말했다. “다른 사람한테 들키지 않게 해줘요.” 원신민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긁적이며 말했다. “최 사장님, 부 대표님은 아직 회의 중이신데요.” “언제 끝나요?” “아마도 두 시간은 더 걸릴 것 같습니다.” 하연 시계를 보며 말했다. “이제 점심시간이 다 됐잖아요. 이렇게 직원들까지 압박하는 거 아니에요?” 원신민은 고개를 저으며 미소를 지었다. “회사 일이니까요.” 하연 한참을 생각하다가 손짓하며 말했다. “내가 너희 대표님은 밥을 먹게 할 방법이 있는데, 들어볼래요?” 원신민은 귀를 기울였다.5분 후, 비서가 회의실로 들어와서 말했다. “대표님, 문제가 생겼습니다.” 상혁은 불쾌해하며 말했다. “바로 말해.” “대표님 책상 위에 있는 백란화에 뱀이 말려들었습니다...” 회의실은 갑자기 소란스러워졌고, 몇몇이 외쳤다. “그런 건 부하 직원들이 처리하면 되지 않나? 굳이 부 대표님께서 나설 일은 아니지 않나?” 하지만 상혁의 안색은 오히려 좋지 않았다. 부동건은 난초를 매우 사랑했고, 그 백란화는 상혁이 부동건에게 물려받은 소중한 것이었다. 백란화를 돌보는 일은 상혁이 DL그룹을 물려받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었다. 머리가 아파져 오던 상혁은 잠시 쉬기로 결심하며
하연은 잠깐 당황했지만 곧바로 상혁의 귀에 속삭이듯 다가가며 말했다. “아직도 반응이 있네, 부 대표님은 아무나 거절하지 않는 건가요? 오늘 만약 다른 여자가 여기 앉아 있었다면...” 그녀의 농담과 향기가 귀를 간지럽히자, 상혁은 잠시 고개를 돌려 미묘하게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다른 사람은 없을 거야.” “그럼 나만?” 하연의 말에 상혁은 약간 무너지는 듯했지만 이내 그녀를 밀어내며 대꾸했다. “나의 의미는, 너도 아니야.” 하연의 얼굴에 순간 실망이 떠올랐다. 그녀는 입술을 내밀며 차 안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상혁은 잠시 침묵하며 그가 느끼던 생리적 반응이 가라앉길 기다린 후 차분히 말했다. “내려.” “당신은 의사한테 가는데, 내가 왜 내려야 해요?” “다시 붕대 싸매.” 상혁은 이 말을 던지며 차에서 내렸다. 하연도 그제야 그 의미를 깨닫고는 피식 웃으며 따라나섰다.F국에 돌아온 후 상혁의 위장병이 계속 재발하고 있었다. 불규칙한 생활과 식사가 병을 악화시켰고, 의사는 그의 상태를 보고 좋지 않은 얼굴을 했다. “부 대표님, 몸이 재산입니다. 이렇게 무리하다가는 일이 끝나기도 전에 몸이 망가집니다.” 하연은 밖에서 간호사가 다시 붕대를 감아주는 동안 그 말을 들었다. 상혁은 숨을 고르며 가볍게 대답했다. “제 몸 상태는 제가 잘 알아요. 약만 먹으면 돼요.” 의사는 고개를 저으며 계속 잔소리를 했다. “위장은 쉬게 해야 하는데, 아플 때 약을 먹는 건 이미 늦은 겁니다. 평소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혹시 비서도 없으십니까?” 상혁도 많은 비서가 있긴 했지만, 바쁜 스케줄 때문에 제대로 된 식사를 거의 하지 못했다. 비서가 가져다준 음식은 몇 시간 동안 방치되곤 했다. 오늘도 병원에 온 것은 원신민의 강력한 요구 때문이었다.의사가 잔소리를 멈추자, 상혁은 미세하게 당황하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의사는 밖을 힐끗 보며 한마디 더 덧붙였다.“밖에 계신 아가씨는 대표님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