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르릉”검은 교룡이 내뿜은 불길은 마치 한 마리의 거대한 용처럼 순식간에 유진우를 집어삼켰다.그 주변의 강바닥은 순식간에 말라 갈라졌고 새까맣게 타버린 흔적이 남았다.끝장이다.이 장면을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저으며 유진우가 살아남을 가능성은 없다고 단정했다.검은 교룡의 불길이 얼마나 강력한지 그들은 똑똑히 보았다.선천 고수조차 저 불길에 휩싸이면 한순간에 재가 되어버릴 것이 분명했다.그런데 유진우는 피하려 하지도 않고 그대로 받아냈으니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닌가?“실력도 안 되면서 쓸데없이 허세만 부리더니 결국 제 무덤을 팠군.”진이수가 속으로 비웃었다.이미 유진우가 불길에 휩싸여 재로 변하는 장면이 눈에 그려지는 듯했다.“끝났어, 진우 씨는 이제 정말 끝장이야!”서지석은 한숨을 크게 내쉬며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유진우의 실력이 뛰어난 건 사실이었다. 엄기준보다도 더 강했으니까.하지만 문제는 상대가 무도 마스터 급의 힘을 지닌 검은 교룡이라는 것. 조 선배님마저 단 한방에 중상을 입었는데 유진우가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었다.“이 정도면 확실히 죽었겠어!”한편 엄기준은 불길 속의 실루엣을 보면서 연신 비웃음을 터뜨렸다.유진우의 손에 패배한 건 그의 인생에서 가장 치욕적인 순간이었다.언제든 복수할 기회를 노렸지만 상대의 실력이 만만치 않은 데다 주위에 도와주는 사람들도 많아 선뜻 나서지 못했다.그런데 마침 손을 쓸 필요도 없이 상대가 스스로 불구덩이에 뛰어들었으니 더할 나위 없었다.“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잘난 척을 하더니 꼴좋게 됐구나.”옆에서 지켜보던 연우혁도 비웃음을 감추지 못했다.그는 애초부터 유진우가 못마땅했기 때문에 이런 최후를 맞는 모습이 속 시원하기까지 했다.“저 녀석...겁도 없네.”간신히 몸을 가누고 일어난 조이준은 두려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방금 유진우가 검은 교룡의 주의를 끌어주지 않았다면 불길에 맞아 죽는 건 자신이었을지도 모른다.검은 교룡
유진우가 검을 뽑자마자, 검은 교룡의 머리가 떨어졌다. 반응할 틈조차 없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그러나 잘려나간 머리마저 이빨을 드러내며 사람을 잡아먹을 듯 으르렁댔다. 아직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 듯했다.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머리가 떨어져 나간 뒤였다.‘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눈앞의 저 하찮은 인간이 어찌 내 목을 벨 수 있었단 말인가?’검은 교룡은 황실에서 신성한 존재로 떠받들어졌고 수백 년을 수련하며 만물의 정점에 올랐던 터라, 세상의 그 어떤 존재도 자신을 막을 수 없고 모든 생명체가 자신의 먹잇감이라고 생각했다.‘내가 어떻게 인간의 손에 죽을 수 있단 말인가!'“쿵!”검은 교룡의 거대한 몸뚱이가 몇 번 꿈틀거리더니 결국 무겁게 땅바닥에 쓰러졌다.그리고 순식간에 흘러나온 피가 수십 미터 반경을 새빨갛게 물들였다.“죽... 죽었어?”목이 잘려 나간 검은 교룡을 바라보던 사람들은 충격에 빠졌다.모두 얼이 빠져 멍하니 서 있었다.유진우가 검은 교룡을 베어버릴 줄은 꿈에서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것도 단 한 번의 검격으로 말이다.‘무려 무도 마스터인 조이준조차 상대할 수 없었던 흉악한 존재 아닌가?’‘듣도 보도 못한 풋내기 같은 놈이 어떻게 이런 실력을 갖췄단 말인가?’“아... 아니야... 이건 말도 안 돼!”진이수는 눈을 부릅뜨고 연신 고개를 저었다. 이건 도무지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그는 애초에 유진우를 시시한 사기꾼 정도로 여겼다.게다가 이청성과 엮이면서 더욱 적대감을 가지게 됐고 지어는 아예 없애버릴 생각까지 했었다.허나 유진우 같은 풋내기가 이렇게 강할 줄은 생각지 못했다. 그의 실력은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내가... 내가 잘못 본 거 아니지? 검은 교룡이 죽었다고? 그것도 유진우한테?”옆에 있던 연우혁도 넋이 나간 표정이었고 목소리마저 떨리고 있었다.그는 검은 교룡의 압도적인 힘을 똑똑히 봤다. 수백, 수천 명이 덤벼도 검은 교룡의 털끝 하나 건드릴 수조차 없었다.심지어 사막의 교룡이라
이청성의 경호팀은 빠르게 움직였다. 순식간에 검은 교룡의 가죽을 깔끔하게 벗겨냈고, 내단도 정성스레 옥상자에 담았다.이청성은 검은 교룡의 방어력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했었다. 무조 마스터인 조이준이 전력을 다해 공격해도 흠집 하나 내지 못할 정도였다. 그 단단한 비늘과 갑옷의 견고함을 짐작할 수 있었다.게다가 이렇게 거대한 몸집이라면 적어도 백 벌 이상의 유연한 갑옷을 만들 수 있을 터였다.이렇게 만들어진 갑옷을 이용하면 그녀는 누구도 당해낼 수 없는 강력한 친위대를 양성할 수 있을 것 같았다.이것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귀중한 보물이었다.“자, 이건 진우 씨 전리품이에요. 몸에도 좋은 보약이죠.”이청성은 옥상자에 담긴 검은 교룡 내단을 유진우에게 내밀었다.“이건 저한테 별 도움이 안 됩니다. 청성 씨가 갖고 계시죠.”유진우는 미련 없이 고개를 저었다. 별로 관심이 없어 보였다.검은 교룡의 내단은 무도 마스터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만 이미 대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그에게는 효력이 미미했다.차라리 값싼 친절로 이청성에게 넘겨 유용하게 쓰게 하는 편이 나았다.“이렇게 귀한 걸 정말 안 가질 거예요?”이청성은 의외라는 듯 물었다.“제 생각에는 용원의 기보다 못한 것 같습니다.”유진우는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언젠가 청성 씨가 다섯 줄기의 용원지기를 모으게 되면 그때 저한테 좀 빌려주시길 바라요. 거절은 안 하셨으면 좋겠네요.”용원의 기는 나라의 용맥정수가 깃들어 있는 곳이었다.그 힘만 있다면 그는 최상의 경지인 육지신선경의 문턱을 넘을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었다.그것이 그의 궁극적인 목표였기에 검은 교룡의 내단쯤은 그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좋아요. 그럼 사양하지 않을게요.”이청성은 더 이상의 군말 없이 사람을 시켜 내단을 보관하게 한 뒤 곧바로 명령을 내렸다.“모두 듣거라! 즉시 궁전 내부를 수색한다. 실수는 용납하지 않겠다!”“예!”경호팀은 일제히 대답하며 움직이기 시작했다.그리하여 이청성을 선두로 한 무리는 유구한 세월
엄기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저 자식, 실력은 굉장히 뛰어난데 그 본모습을 감추고 있었군요. 감히 막아서려 접어들었다간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을지도 몰라요.”그는 유진우가 한칼에 검은 교룡을 베어버린 장면을 떠올리자 등골이 서늘해졌다.다행히도 아까는 유진우가 가볍게 넘겨줬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쯤 그는 차가운 시체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우리야 당해낼 재간이 없겠지만 우리에겐 선배님들이 있다는 걸 잊지 마요.”연우혁은 불순한 미소를 지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유진우가 아무리 무도 마스터 급의 실력을 가졌다 해도 결국은 혼자예요. 혼자서 무슨 대단한 일을 해낼 수 있겠어요? 우리 두 파벌이 힘을 합친다면 저 자식 따위야 손쉽게 처리할 수 있을 거예요.”유룡종이나 비설파나 모두 대외적으로는 무도 마스터가 한 명씩 존재했다.게다가 그림자처럼 숨어 있는 고수들도 적지 않았다.더군다나 유룡종과 비설파의 마스터들은 조이준보다 한 수 위였다.이들이 손을 잡는다면 그야말로 막강한 전력이 될 것이 분명했다.유진우가 아무리 강하다 한들 마스터 둘에 반보 마스터 여러 명, 그리고 수많은 선천 고수들을 상대로는 도저히 버틸 수 없을 터였다.“그렇긴 하지만 우리 파벌의 고수들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데 지금 당장에서 어떻게 유진우를 상대한단 말입니까?”엄기준은 턱을 매만지며 고민했다.그도 물론 보물을 쉽게 넘겨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현재 자신의 실력으로는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고 파벌의 지원군도 도착하지 않은 상황이니 그저 바라만 보고 있을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기준 씨, 지금 당장 덤비자는 게 아니에요.”연우혁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우선 유진우 일행이 앞장서서 궁전을 탐색하게 내버려두고 놈들이 보물을 찾아내면 우린 그들을 몰래 따라가면서 길목마다 흔적을 남기는 겁니다. 그리고 지원군이 도착하는 순간 기습을 감행해 보물을 단숨에 차지하면 되지요!”“오?”그 말을 들은 엄기준의 눈빛이 번뜩였다.“역시 우
“진우 씨! 이렇게 강할 줄은 몰랐어요. 아까 공격으로 날린 검, 정말 너무 멋졌어요!”궁전의 긴 복도를 걸으며 서지석은 여전히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감탄을 연발했다.유진우가 뛰어난 실력을 지녔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그 실력은 사막의 교룡 조이준보다도 한 수 위였다.그야말로 믿기지 않는 경지였다!“맞아요, 진우 씨. 검 하나로 검은 교룡을 벤 것은 서남과 서북의 모든 세력을 압도했어요. 이제부터 진우 씨의 이름은 천하에 널리 퍼질 겁니다!”장은경은 눈부시게 미소 지으며 유진우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은 이유 모를 뜨거움이 담겨있었다.서지석도 나쁘지는 않았으나 그녀에게는 어디까지나 예비 선택지일 뿐이었다.그런데 그의 곁에 유진우라는 천재가 나타났으니 그녀는 자신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검은 교룡의 약점을 우연히 발견한 거죠.”유진우는 담담하게 웃으며 대답했다.“진우 씨,너무 겸손하시네요! 검은 교룡의 방어력을 뚫으려면 무도 마스터 급의 실력이 필요해요. 그런데 진우 씨는 단 한 검으로 그놈의 머리를 날려버렸잖아요. 이런 실력은 듣도 보도 못했어요!”서지석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지석 씨, 너무 그러지 마세요. 그런 말을 들으면 괜히 민망해서 몸 둘 바를 모르겠단 말이에요.”유진우가 태연하게 받아쳤다.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이청성이 못마땅한 듯 눈을 흘겼다.“하하하... 진우 씨 같은 재능과 실력이면 어떤 칭찬이든 당연히 받아 마땅하죠.”서지석이 크게 웃으며 맞장구쳤다.“진우 씨, 저 좀 가르쳐 주시면 안 돼요? 제 원앙도, 아무래도 좀 부족한 것 같아요.”장은경이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깜빡이는 눈에는 은근한 유혹의 기운이 스며 있었다.그러나 유진우는 그녀를 보지도 않은 채 무심히 대답했다.“저는 검을 쓰는 사람입니다. 도법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해요. 그런 부분은 지석 씨와 함께 연습하면 분명 큰 도움이 될 거예요.”“지석 씨도 훌륭하긴 하
혹시 모를 함정을 피하기 위해 속도를 늦췄다.그러나 다행히도 특별한 장치나 함정은 발견되지 않았다.곰곰이 생각해 보니 검은 교룡 같은 흉악한 괴물이 지키고 있는 곳에 굳이 함정을 설치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긴 복도를 지나자 눈앞에 거대한 대전이 펼쳐졌다.그 안에는 금과 은, 옥기와 보석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고 무엇보다도 기묘한 형상의 병마용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그중 절반은 말 위에 올라탄 채 장창을 든 기병용이었다.그들은 돌격 대형을 갖추고 서 있었고 마치 언제라도 돌진할 것처럼 위엄이 넘쳤다.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다양한 괴물 용상이었다.강철 갑옷을 두른 거대한 철갑곰, 불을 내뿜는 현조, 손에 무기를 든 반인마, 날개가 돋아난 백호 등 여러 가지가 있었다.있을 건 다 있는 모습은 실로 기괴하고도 압도적이었다.“세상에! 금은보화잖아! 우리 이제 부자가 되는 거야!”“하하하... 하늘이 내린 은혜야... 이건 신의 축복이라고!”황금빛으로 빛나는 보물을 본 대부분의 사람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이 보물만 가지고 나가면 평생 호화롭게 살 수 있을 터였다.역시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이 틀리지 않았다.그들은 산처럼 쌓인 금은보화들을 보며 지금까지 겪었던 고난과 위험이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청성 씨, 이 보물들을 어떻게 나눌지 결정해 주시지요.”서지석이 환한 미소로 말했다.“원하는 만큼 가져가세요. 저는 상관없어요.”이청성은 무심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무언가를 찾는 듯했다.그녀의 관심은 이 보물 더미에 있지 않았다.“다들 들었죠? 청성 씨께서 마음껏 가져가라고 하셨습니다!”서지석이 밝은 목소리로 웃으며 말했다.“감사합니다!”사람들은 일제히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그들은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고 보물을 긁어모으기 시작했다.다행히 보물의 양이 많아 서로 다툴 일은 없었다.그 가운데 움직이지 않은 사람은 이청성, 유진우 둘 뿐이었다.서경의 세자와 용국의 공주로서 이미 부와 명예를 지닌 그들은
“쾅! 쾅! 쾅!”굉음과 함께 벽화가 산산이 조각났고 부서진 파편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그러나 벽화가 사라진 자리에 드러난 것은 낡고 묵직한 청동문이었다.문의 중앙에는 주먹만 한 크기의 눈이 새겨져 있었다.그 눈알은 어둡고 붉은빛을 띠었으며 마치 거대한 루비를 정교하게 깎아 만든 것처럼 보였다.눈을 중심으로 문은 여덟 개의 부분으로 나뉘어 부채꼴 모양으로 퍼져 있었으며 각 구역에는 기이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게다가 그 위에는 마치 올챙이처럼 기묘하게 비틀린 문자들이 가득했다.“아가씨?”호위대장이 이청성을 돌아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저 붉은빛을 띄는 눈알 보석은 꽤 값이 나가 보였지만 함부로 손을 대기가 망설여졌다.“전부 부숴버려!”이청성은 망설임 없이 단호하게 명령을 내렸다.이미 문 뒤에 비밀이 감춰져 있음이 확실한 이상 여기서 멈출 이유가 없었다.그깟 보석 하나에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부숴라!”호위대장이 신호를 보냈다.그러자 팀원들은 다시 무기를 들어 청동문을 향해 맹렬히 내려쳤다.문을 내리칠 때마다 충돌음이 요란하게 울려 퍼졌으나 몇 분이 지나도록 청동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굳센 청동문은 그저 무겁고 단단한 산처럼 우뚝 서 있을 뿐이었다.“젠장!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도무지 부술 수가 없잖아!”“대체 뭘로 만들어 진 거야? 내 쇠망치마저 부러졌는데 저 문은 흠집 하나 안 생겼다고? 이게 말이 돼?”꿈적하지도 않는 청동문을 바라보며 팀원들은 당혹스러워했다.그들은 전력을 다해 부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부러진 무기들만 바닥에 널브러졌을 뿐 청동문은 여전히 견고하게 버티고 있었다.“폭약을 써라!”호위대장은 즉시 결단을 내렸다.무기로는 도저히 뚫을 수 없으니 산도 날려버릴 폭약을 사용해 보기로 한 것이다.청동문 따위가 폭약에도 끄떡없을 리는 없다고 그는 확신했다.“모두 물러서십시오! 다치지 않도록 조심하세요!”호위대장의 지시에 따라 폭약이 신속하게 문 주변에 설치되었다.이어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궁전
엄청난 양의 폭약조자 청동문에 상처 하나 내지 못했다. 이것만으로도 그 문이 얼마나 단단한지 충분히 증명되었다.이는 결코 무력으로 부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주변을 잘 살펴봐. 혹시 어떤 장치가 있는지 말이야.”이청성은 미간을 살짝 좁히며 말했다.“예!”호위대장은 즉시 팀원들을 이끌고 사방을 탐색하기 시작했다.그러나 샅샅이 뒤졌음에도 아무런 단서도 발견되지 않았다.“청성 씨, 괜히 힘 뺄 필요 없습니다. 이 문을 여는 방법은 바로 이 청동문 자체에 있습니다.”그때, 진이수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그런가요? 진 대장님께서 이 문에 새겨진 문자를 해독할 수 있다는 건가요?”이청성이 호기심 어린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세상을 떠돌며 쌓아온 경험이 한두 개가 아닙니다. 각종 유적을 연구해 온 덕분에 특수한 문자 정도야 해독할 수 있지요.”진이수는 가슴팍을 내밀며 당당한 걸음으로 나섰다. 그리고 자신만만하게 설명을 이어갔다.“제 추측이 맞다면 이 수중궁전은 천 년 전 종리국의 국왕이 건설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기묘한 올챙이 모양의 문자들은 바로 종리국의 문자죠.”“이렇게 박학다식하실 줄은 몰랐네요! 천 년 전의 문자까지 해독하다니 정말 존경스럽습니다.”서지석은 엄지를 치켜세우며 감탄했다.그는 이런 분야에는 문외한이라 더욱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물론이지요! 우리 대장님께서는 블랙 스콜피온 팀을 만들기 전엔 고고학의 수재였습니다. 역사에 대한 조예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아요.”단발머리 여성이 자랑스럽게 말했다.“아이고, 다 지나간 일이야. 옛날얘기는 그만하자고.”진이수는 손을 가로저으며 겸손한 척했지만 은근한 자부심이 드러났다.이제야 드디어 자신의 진가를 발휘할 기회가 온 것이다.“진 대장님, 종리국 문자를 해독할 수 있다면, 이 문을 열 방법도 알고 있겠지요?”이청성이 조심스럽게 물었다.“물론입니다.”진이수는 청동문 앞으로 다가가 손으로 문자를 더듬으며 설명했다.“여기에 쓰인 것에 의하면 이 문을 여는 핵심은 바
“아니에요?”유장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용호산은 여태껏 무림인의 세계에서 일어난 일에 무관심했는데 이제 와서 갑자기 무림대회를 개최한다는 건 다른 의도가 있는 게 분명해.”서태양이 말했다.인재를 선발해 위상을 높이려고 진무사가 나섰다면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었다.하지만 용호산은 전혀 관계가 없지 않은가?“그럼 무슨 의도인데요?”유장미가 되물었다.“내가 어떻게 알아? 나도 궁금하거든?”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는 서태양은 어깨를 으쓱했다.“보혁 씨는 내막에 훤하니까 화두를 꺼낸 거겠죠?”유이슬이 시선을 돌렸다.“내막까지는 아니지만 주워들은 소식이 몇 가지 있긴 해요.”염보혁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제가 알기로는 용호산 뒷산의 금지구역에 최근 신비로운 보물이 나타났는데 향후 100년 동안 무림인들의 흥망성쇠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나라의 운명과도 관련이 있다고 해요.”“무슨 보물이 그렇게 대단해요?”유장미가 깜짝 놀랐다.유이슬과 서태양도 예상치 못한 듯 충격을 금치 못했다.무림인들의 흥망성쇠와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만약 제 추측이 맞는다면 용원의 기와 관련된 보물일 거예요.”염보혁이 목소리를 낮추었다.순간, 유진우는 눈썹을 추켜세웠지만 이내 포커페이스로 돌아왔다.“용원의 기? 그게 뭔데요?”유장미가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용맥의 정수이기도 하죠.”유이슬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며칠 전 호룡각이 와해하면서 지하 용맥이 다섯 개의 용원의 기로 변해 세상에 뿔뿔이 흩어졌어. 소문에 의하면 용원의 기를 얻는 자는 천하무적이 되어 승승장구한다고 해.”호룡각이 무너지고 용맥이 파괴된 일이 워낙 큰 이슈였기에 자연스럽게 그녀의 귀에도 흘러 들어갔다.“진짜요? 그렇게 대단한 물건이 있어요?”유장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고서에서 관련된 기록을 본 적이 있는데 용원의 기를 얻은 자들은 세상을 주름잡는 수장이거나 천하를 다스리는 왕이었어.”유이슬이 한마디 보탰다.“맞아요.”염보혁이 대
유진우는 옆에 있는 염보혁을 흘깃 쳐다보았고, 속으로 상대방이 아무리 예뻐도 남자를 좋아할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쿨럭!”염보혁은 사레가 들린 나머지 연신 기침하며 쓴웃음을 지었다.“이슬 씨, 지금 절 칭찬하는 건지 비꼬는 건지 모르겠네요.”“당연히 칭찬하는 거죠. 그런 얼굴을 보고도 어떤 남자가 마음이 흔들리지 않겠어요?”유이슬이 정색하며 말했다.“네?”염보혁은 말문이 막혔다.설령 사실일지언정 어찌 면전에서 대놓고 말할 수 있지?왠지 모르게 기분이 이상했다.“정 믿기 어려우면 태양한테 물어봐요.”유이슬이 문득 말했다.한편, 서태양은 염보혁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이름이 언급되는 순간 흠칫 놀라더니 서둘러 시선을 돌렸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은 도둑이 제 발 저린 듯싶었다.“제가요?”서태양은 난감한 얼굴로 대답했다.“선배, 장난하지 마세요. 저랑 무슨 상관이죠?”“뭔가 냄새가 나는데요?”유장미가 눈썹을 까딱하더니 눈알을 굴리며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설마 보혁 씨한테 진짜 반한 건 아니죠?”“이... 계집애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서태양이 펄쩍 뛰면서 얼굴이 벌게진 채 고래고래 외쳤다.“남자끼리 엮일 리가 없잖아.”“침착해요. 단지 농담했을 뿐이에요.”유장미가 키득거리며 말했다.“게다가 남남 커플이 진짜 사랑이죠. 어차피 안 될 건 없잖아요. 만약 사귈 생각이 있다면 진심으로 축복해줄게요. 하하하!”“입만 열면 헛소리 하네.”서태양은 짐짓 화가 난 듯 혼내려는 액션을 취했다.유장미는 잽싸게 유이슬의 등 뒤로 숨어 웃음을 터뜨렸다.갑자기 산으로 흘러가는 대화에 당사자인 염보혁은 말문을 잃었다.더욱이 유장미와 투닥거리는 와중에도 그를 흘끔거리는 서태양 때문에 어이가 없었다.단순히 농담으로 치부할 수 있었지만 몰래 훔쳐보는 탓에 괜히 기분이 세했다.“진우 씨, 이슬 씨, 다들 용호산은 처음이죠? 제가 구경 좀 시켜드릴까요? 주변에 뭐 있는지 소개해줄게요.”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염
술이 몇 잔 오가자 서서히 편하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이슬 씨, 방금 검종의 제자라고 하시던데 무림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용호산에 오른 건가요?”염보혁이 넌지시 물었다.“그런 셈이죠.”유이슬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성격이 무심한 편이라 말주변이 딱히 없었다.“사실 저희는 스승님의 명을 받고 찾아왔어요.”상대적으로 외향적인 유장미가 웃으며 말을 보탰다.“노천사가 용호산에서 무림대회를 개최한다는 소식에 세상이 발칵 뒤집혔거든요. 검종 뿐만 아니라 천하회, 주술교를 포함한 파벌에서 최정예 제자들을 파견해 출전할 예정이에요.”“그럼 검종에서는 세 분이 참석하는 건가요?”염보혁이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아니요.”유장미가 고개를 저었다.“저희는 단지 구경하러 왔을 뿐,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는 따로 있어요.”그녀와 서태양은 선천 후기에 속했고, 유이슬은 실력이 뛰어나긴 했으나 반보 마스터에 불과했다.어찌 됐든 천교에 비하면 열세에 처하는지라 검종을 대표해서 출전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따로 있다니? 설마 홍군림이에요?”염보혁의 눈썹이 까닥했다.“그건 저도 잘 몰라요.”유장미가 생긋 웃었다.“워낙 제멋대로에 신출귀몰하는 사람이라 이번 무림대회에 참가할지 아무도 몰라요. 만약 홍 선배가 진짜 출전한다면 우승은 우리 검종이 차지할 거예요.”홍군림은 천교 랭킹의 1위에 올랐을뿐더러 어린 나이에 경천 랭킹에 진입한 검종의 천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다만 성격이 까칠하고 독불장군이라 종주를 제외하고 아무도 안중에 두지 않았다.“장미야, 그건 네 생각이고.”이때 유이슬이 입을 열었다.“홍 선배가 실력이 뛰어나고 검종의 천재로서 일반 무사들이 함부로 넘볼 수 없는 존재인 건 사실이지만 너도 알다시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능력자가 한 명 더 있잖아.”“누구요?”유장미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유장혁.”유이슬이 무덤덤하게 말했다.“그 사람이 홍 선배보다 실력이 더 뛰어나요?”유장미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막상막하야. 천교
“네?”염보혁의 한 마디에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한참 동안 넋을 잃었다.특히 잘 보이기 급급했던 서태양은 굳은 얼굴로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허공에 손을 들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이럴 수가?방금 목숨 걸고 구하려던 사람이 남자였다니?“남자...? 농담이죠?”붉은 옷 소녀가 염보혁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경국지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미인이 대체 어디를 봐서 남자란 말인가?푸른 옷 여인은 입만 벙긋했을 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흡혈파 망나니들이 여자가 아닌 남자한테 집적거렸다니?취향 한번 독특했다.“아니요. 진짜 남자예요.”염보혁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밖에 나가면 여자로 오해받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하지만 아무리 봐도...”붉은 옷 소녀가 말을 아꼈다.“외모 때문에 어쩔 수 없어요.”염보혁이 어깨를 으쓱하며 해탈한 듯 말했다.“아쉽네요.”붉은 옷 소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본인이 이렇게 예쁜 얼굴을 가졌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선배? 왜 그래요? 괜찮아요?”그녀는 아직도 넋을 잃은 서태양을 발견하고 손을 뻗어 어깨를 툭 쳤다.“응? 아, 괜찮아. 단지 조금 놀랐을 뿐이야.”서태양은 꿈에서 깨어난 듯 금세 정신을 차렸다.다만 눈빛만큼은 남자한테서 떠나지 않았다.이렇게 요염한 얼굴이 사내란 사실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그야말로 재능 낭비이지 않은가?“저는 염보혁입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염보혁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유이슬이에요.”푸른 옷 여인이 대답했다.“저는 유장미라고 해요.”붉은 옷 소녀가 활짝 웃었다.비록 남자이지만 미모에 저절로 눈이 갔다.“서태양입니다.”서태양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방금 일어난 일에 대해 찝찝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다 같이 술이나 한잔 하시죠?”염보혁은 손을 내밀더니 소개를 이어갔다.“이쪽은 유진우 씨, 그리고 두 분은 호위무사인...”“춘화와 추월이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수염 난 사내의 몸에 피투성이 상처가 생겼다.눈 깜짝할 사이에 연신 검에 찔린 탓에 저항할 힘조차 없었다.비록 수염 난 사내가 힘은 더 셌지만 기교에서는 한참 못 미쳤다.여자의 화려한 검술은 감탄을 자아냈고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악!”수염 난 사내가 처참한 비명을 질렀다.사지가 부러진 채 바닥에 널브러진 모습은 마치 좀비를 연상케 했다.온몸은 피가 흥건했고 상처로 가득했다. 비록 목숨에 지장은 없지만 이미 만신창이가 되었다.“형님!”패배한 우두머리를 보자 흡혈파 제자들이 충격과 분노를 금치 못했다.항상 위풍당당하고 기세등등했던 수장이 이런 몰골을 보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젠장! 감히 우리 형님을 다치게 해? 죽고 싶어 환장했어?”“저년을 없애버려!”흡혈파 제자들이 고래고래 외치며 검을 빼 들고 무시무시한 기세로 여자를 덮쳤다.“무용지물이야.”푸른 옷 여인은 콧방귀를 뀌더니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사람들 틈으로 뛰어들었다.얼마 안 되어 흡혈파 제자들은 하나같이 처참한 비명과 함께 바닥에 나뒹굴었다.팔이나 다리가 부러진 채 선혈이 낭자했다.“역시 대단하세요!”눈앞의 광경에 붉은 옷 소녀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망나니 따위가 감히 검종에게 대들다니? 제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서태양이 바닥에 침을 뱉었다.“뭐... 뭐라고? 너희들이 검종 제자였어?”흡혈파 제자들은 안색이 돌변하더니 두려운 기색이 역력했다.검종은 무림인들의 세계에서 3대 문파 중 하나로 천하회와 주술교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비록 제자들이 많지 않았지만 뛰어난 인재들밖에 없다.특히 검종의 홍군림은 어린 나이에 천교 랭킹 1위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경천 랭킹에 진입하여 세계 10위의 강자가 되었다.경천 랭킹 10위권에 검종 제자가 무려 2명이나 있는데 압도적인 실력으로 3대 파벌의 수장 자리를 거머쥐었다.여기서 검종의 제자들을 만나게 될 줄은 예상치도 못했다.이럴 줄 알았더라면 애초에 무모한 짓을 벌이지 않았을 텐데.“이제야
“윽!”서태양은 이를 악물고 이마에 핏줄이 튀어나온 채 낮은 신음을 내뱉었다.이내 양손으로 검을 쥐고 온 힘을 다해 어깨를 짓누른 흡혈검을 떼어내려고 했다.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상대방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오히려 힘이 점점 더 가해졌고 무릎이 닿은 바닥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고작 이런 실력으로 감히 우리 흡혈파한테 덤비다니? 제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수염 난 사내가 냉소를 지었다.“형님! 멋져요.”“역시 대단하세요.”부하들이 질세라 감탄했다.북쪽에서 흡혈파라고 하면 꽤 이름 있는 큰 파벌인지라 애송이 같은 놈이 도발할 만한 게 아니었다.“감히 내 앞에서 영웅 행세해? 넌 오늘 인생에서 가장 잘못된 결정을 내린 거야. 교훈 삼아 사지를 부러뜨려줄게!”수염 난 사내가 비열한 미소를 짓더니 흡혈검을 들어 올려 서태양의 손목을 향해 휘둘렀다.챙!검이 닿기 직전 청색 보검이 불쑥 나타나 허공에서 공격을 막아냈다.“응?”수염 난 사내가 눈살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푸른 옷 여인이 보검을 들고 싸늘한 눈빛을 보냈다.“선배?”서태양의 표정이 밝아지더니 그제야 한숨 돌렸다.조금만 늦었더라도 오른손을 잃어버렸을 텐데 그나마 선배가 제때 도움을 줘서 천만다행이었다.“괜히 참견하지 마.”수염 난 사내가 음흉하게 웃었다.“우리 후배한테 손을 대는 순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여자가 싸늘하게 말했다.“맞아! 너희들 같은 망나니는 벌을 받아 마땅하지.”이때, 붉은 옷 소녀가 검을 빼 들고 낭랑한 목소리로 외쳤다.“언니, 제가 도와줄게요.”“아니야. 넌 태양이랑 지켜보고 있어. 이런 놈들은 나 혼자서도 충분하니까.”푸른 옷 여인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어디서 나온 자신감이지?”수염 난 사내가 히죽 웃었다.“그런 왜소한 몸으로 오빠의 검을 어찌 막으려고? 차라리 무기는 내려놓고 침대에서 겨뤄보는 건 어때?”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부하들이 폭소를 터뜨렸다.곧이어 음흉한 시선으로 여자를 훑으며 멋대로 평가하
서태양이 움직이자 수염 난 사내의 뒤에서 덩치가 산만 한 남자 두 명이 튀어나왔다.두 사람은 무기로 길쭉한 검을 들고 있었다.몸체는 강한 피비린내와 함께 은은한 살기가 감돌았다. 이는 칼날이 오랫동안 선혈에 노출된 결과였다.무림인들의 세계에서는 흡혈검이라고 불렀다.다만 아쉽게도 그들이 지닌 검은 아직 미성숙 단계였고 기세가 한창 부족했다.챙! 챙!서태양이 먼저 검을 빼 들고 혼자서 두 명의 사내와 대결을 벌였다.그들은 기세등등하게 맞서 싸웠지만 힘만 강했을 뿐 행동이 굼뜬 편이었다.공격할 때마다 동작이 다소 어설펐다.반면, 서태양은 누가 봐도 고수의 가르침을 받았고 실전 경험도 풍부했다.스피드, 힘, 기술 등 모든 면에서 높은 수준에 도달했으며 어느 하나 뒤처진 데 없었다.세 사람이 공격을 주고받는 순간 실력 차이가 현저했고, 서태양은 눈 깜짝할 사이에 두 사내를 쓰러뜨렸다.그리고 응징할 겸 각자의 다리에 검을 관통했다.“흥! 고작 이런 실력으로 우쭐거려? 제 주제도 모르고.”서태양은 장검을 비스듬히 겨누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죽기 싫으면 당장 꺼져.”“좋아! 잘했어!”승리를 거머쥔 서태양을 보자 구경하던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비록 나서서 싸울 용기는 없었지만 응원의 박수를 보내는 것쯤은 충분히 가능했다.“그래도 실력은 꽤 있나 보네? 어쩐지 참견하더라니.”수염 난 사내가 눈을 가늘게 뜬 채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천천히 뽑아 들고 음침한 목소리로 협박했다.“하지만 오늘 임자를 만났지. 흡혈파를 마주친 이상 살아남을 방법은 없어.”“흡혈파는 무슨, 들어보지도 못했구먼.”서태양의 표정은 기고만장했다.“하! 괜찮아. 네 피를 전부 흡수하고 나면 우리가 왜 흡혈파라고 불리는지 알 거야.”수염 난 사내가 이죽거리더니 두말없이 공격을 개시했다.그가 발을 내딛자마자 맹렬한 기세가 솟구쳤고, 손에 든 흡혈검은 핏빛을 뿜어내며 곧장 서태양을 덮쳤다.앞서 상대했던 부하들과 달리 수염 난 사내의 흡혈검은 살기로 가득했다
아름다운 얼굴은 쉽게 화를 부르는 법이다.염보혁은 남자였지만 여자보다도 더 아름다운 요염한 얼굴을 지녔다.길을 나서면 사람들의 시선을 피할 도리가 없었고 지금처럼 깡패 무리와 마주할 때면 번번이 시비에 휘말리기 일쑤였다.유진우는 모른 척하며 조용히 술잔을 기울였다.“어이, 이쁜이. 저런 나약한 놈이랑 술 마셔서 뭐 하겠어? 차라리 우리랑 한잔하지, 아주 즐겁게 해줄 테니 말이야!”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사내가 염보혁의 턱을 손가락으로 건드리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이 손 치우는 게 좋을 거야. 아니면 후회하게 될 테니까.”염보혁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차가운 눈빛을 보냈다.어여쁜 외모 탓에 남녀를 불문하고 다가오는 사람이 많았지만 이처럼 대놓고 희롱하는 경우는 드물었다.“오, 이쁜이가 화를 내네?”수염 난 사내는 턱을 문지르며 비웃었다.“솔직히 말해서 화난 얼굴이 더 매력적인데?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더욱 감탄스럽군.”그의 말에 뒤따르던 무리들이 일제히 폭소를 터뜨렸다.유진우는 피식 웃으며 술잔을 내려놓았다. 눈앞의 이 사내는 제법 능숙하게 수작을 부렸다.염보혁이 남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셋을 센다. 그 안에 사라지지 않으면 내가 직접 손봐주지.”염보혁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손 본다고? 하하하!”수염 난 사내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이거 제법 앙칼진데? 좋아, 그럼 이렇게 하자. 위층으로 올라가서 천천히 우리를 손 봐줘, 어때?”“맞아, 맞아! 방도 넉넉하니 차례대로 너랑 놀아줄 수 있다고!”그의 동료들도 시시덕거리며 말을 보탰다.“셋.”염보혁은 더 이상 말을 섞을 필요도 없다는 듯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이쁜이, 괜히 버티지 말고 그냥 올라가자. 내가 아주 다정하게 대해줄 테니 말이야.”수염 난 사내는 입을 커다랗게 벌려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낄낄댔다.“둘.”염보혁은 여전히 냉랭한 표정을 유지했다.“싫다면 어쩔 수 없지. 내가 직접 안아 올라가는 수밖에.”그가 손을
유진우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보혁 씨가 이렇게까지 많은 걸 알고 있을 줄은 몰랐군요. 제 생각엔 장일청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는 것 같은데요.”용호산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염보혁이 이렇게나 많이 알고 있다니, 이건 그가 평범한 인물이 아님을 증명하는 셈이었다.“진우 씨께서 과찬해 주시는군요. 저는 그저 사람들 사이에 끼어 듣는 걸 좋아해서 호기심에 이런저런 소문을 알아본 것뿐입니다. 사실 별다른 능력은 없어요.”염보혁은 겸손하게 웃으며 덧붙였다.“하지만 만약 진우 씨께서 무림대회에 참가하신다면 전 온 힘을 다해 진우 씨가 우승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보혁 씨, 저를 너무 과대평가하시는군요.”유진우는 담담하게 말했다.“전 그저 세상 구경이나 해볼 겸 참가하는 것뿐입니다. 우승 같은 건 감히 꿈도 꾸지 않아요. 애초에 제 실력으로 어떻게 그 내로라하는 강자들과 겨룰 수 있겠습니까?”“진우 씨는 너무 겸손하시군요. 저는 사람을 보는 눈이 정확합니다.”염보혁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진우 씨는 외모도 준수하고 기품 또한 비범하시죠. 멀리서 봐도 강렬한 기세가 느껴졌습니다. 비록 진우 씨의 신분은 알 수 없지만 이것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진우 씨는 절대 범상한 인물이 아닙니다!”“보혁 씨께서 저를 이렇게까지 칭찬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유진우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저는 평범한 출신에 보잘것없는 실력을 갖췄을 뿐입니다. 아마 실망할 겁니다.”“하하, 괜찮습니다. 커다란 황금 잉어가 어찌 작은 연못에서만 머물겠습니까? 바람과 구름을 만나면 반드시 용이 되어 날아오를 것입니다. 지금 진우 씨의 명성이 미미할지라도 저는 믿습니다. 언젠가 반드시 하늘 높이 날아오를 날이 올 거라고!”염보혁은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말했다. 그 눈빛은 절대적인 믿음을 담고 있는 듯했다.유진우는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이 사람, 도대체 뭐지? 분명 오늘 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