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용각이 눈 깜짝할 사이에 폐허로 변했다. 호용각은 용천산과 그 밑에 숨겨진 용맥과 함께 백준의 칼에 잘렸다.이 검법의 위력에 천하가 뒤흔들렸고 자금성까지 그로 인해 흔들렸다.같은 시각 친제감속.호리호리한 체격의 백발 늙은이가 거대한 나침판 위에 앉아 두 눈을 꼭 감은 채 뭐라 중얼거리며 기도하는 것 같았다.이때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지면이 심하게 흔들렸다. 뒤이어 거대한 나침판이 어딘가로부터 공격을 받은 것처럼 “팍”하고 산산조각이 났다.그 위에 앉아있던 백발의 늙은이는 몸을 움찔하더니 피를 토해냈다. 늙은이의 기력이 쇠약해 보이는 것이 크게 다친 것 같았다.“사부님, 무슨 일이에요?”마침 방안으로 들어오던 이청성이 이 장면을 보고 놀라 허겁지겁 달려가서는 늙은이를 부축해줬다.“하늘의 뜻은 거역할 수 없네요. 이건 운명입니다.”백발의 늙은이는 연신 한숨을 내쉬며 기침을 해댔다.“사부님,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이청성이 물었다.“용맥이 잘려 사라져버렸어요.”백발의 늙은이가 슬픈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제가 전에 점을 쳤던 것이 현실이 되었어요. 용국의 용맥이 누군가에 의해 잘린 뒤로부터 조정이 흔들리고 국운이 점차 약해질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세상이 변할 거에요.”“뭐라고 하셨어요? 용맥이 진짜로 잘렸단 말입니까?”이청성이 소스라치게 놀라 되물었다.미리 마음의 준비를 했었지만 이 나쁜 소식을 실제로 들어보니 너무 가슴이 아팠다.“용맥이 사라졌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천하가 뒤흔들릴 것입니다. 폐하께 소식을 건네 이른 시일 안에 준비를 마쳐 정세를 안정시키도록 하세요.”백발의 늙은이가 방법을 대줬다.“이 일은 제가 이미 아바마마께 전해드렸어요. 하지만 근래 아바마마께서 몸이 안 좋으셔서 방법이 없네요. 여러 오빠는 황위를 빼앗는데 정신이 팔려 다른 일에는 신경을 쓰지 않을 거예요.”이청성이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했다.그녀의 아버지는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정사를 돌보는 바람에 건강이 점점 나빠져서 요즘에는 앓아누우셨다.그
“사부님, 어렵다 하더라도 저는 시도해볼 거예요!”이청성이 굳센 의지를 갖추고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그녀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아바마마께서는 앓아누워계셨고 오빠들은 황위에 눈이 멀어 서로 싸우고 있었으니 지금 이 일을 맡을 사람은 그녀뿐이었다. 용국을 위해서라도 그녀가 나서서 돌이킬 방법을 찾아야 했다.“그래요. 가보세요. 공주님이 이 짐을 짊어질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에요.”백발의 늙은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간곡하게 입을 열었다.“사부님, 부디 건강하세요. 시간이 있으면 찾아뵐게요.”이청성은 백발의 늙은이를 향해 예를 갖추고 그곳을 떠났다. 용맥이 사라진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었기에 서둘러 움직여야 했다.“미래가 어찌 돌아갈지는 모르겠구나. 신하로서 군주를 따라야 하니 이 늙은이도 이젠 떠날 시간이 다 됐구나.”백발의 늙은이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힘들게 몸을 일으켜 향을 피우고 목욕을 마친 뒤 옷을 갈아입고 예배를 했다.모든 일을 끝마친 뒤 그는 자리로 돌아가 천천히 두 눈을 감았다. 얼마 뒤 바람이 일더니 허공에 매달려있던 장명등의 등불을 꺼버렸다.백발의 늙은이는 머리를 숙인 채 하늘나라로 떠나셨다....진산 산꼭대기.온몸의 기운을 모아 마지막으로 검을 휘두른 백준은 머지않아 세상을 떠날 늙은이로 변했다. 그의 몸은 언제든지 부서질 도자기처럼 여기저기 금이 가 있었다.“장혁아...” 백준은 산기슭에 있는 유진우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오랜만이야. 너 키가 너무 많이 커서 아저씨가 못 알아볼 뻔 했어.”“아저씨...”눈시울이 붉어진 유진우는 백준을 바라보며 울먹거렸다. 그는 백준의 생명력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을 느꼈다. 이것은 돌이킬 수 없는 나쁜 결과였다. 백준이 강제로 신선의 경지에 오를 때부터 이미 결정된 운명이었다.“나 백준은 하늘과 땅에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지금까지 떳떳하게 살아왔어. 단지 네 어머니께 큰 빚을 졌지 뭐야. 네 어머니께서 나의 목숨을 살려주셨는데 지금까지 갚지못했어. 오늘 내 목숨으로
“아저씨? 아저씨? ”천천히 사라지는 백준의 모습을 바라보는 유진우는 눈시울이 붉어진채 처량한 목소리로 백준을 불렀다.원래부터 심한 상처를 입고 있었던 그는 너무 슬픈나머지 웩하며 피를 토해내더니 그자리에 풀썩 쓰러졌다.의식이 모호해지며 한참동안 정신이 돌아오지 않았다.진실을 알아내고 복수를 하기 위해 그는 이미 많은 것을 잃었다. 지금 또 한 명의 가족이 그의 곁을 떠나니 이젠 그도 자신이 한 일이 정말 맞는지 의심이 되었다.복수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많은 사람이 헛되이 희생하지 않았을 텐데.“이는 검선이 선택한 길이에요. 그분은 아주 기쁘게 세상을 떠났을 거예요.”홍군림이 미세하게 떨리는 용작검을 바라보며 낮은 소리로 말을 이었다.“검선은 찬란한 일생을 지냈어요. 생명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여전히 빛을 발했죠. 혼자의 힘으로 이원무를 베고 호룡각을 멸망시켜 백성들을 구했으니 진정한 검선이고 세계최강이죠!”유진우는 자부심으로 꽉 찬 사람이었다. 그는 모든 사람을 눈여겨 본적이 없었다. 자신의 사부님 백준에게도 눈길을 둔 적이 없었다.하지만 오늘의 전투를 목격한 그는 백준의 선택에 큰 영향을 받고 존경하는 마음이 가슴속으로부터 우르러 나왔다.이것이야말로 모든 이들의 칭송을 받는 진정한 검선이다.“이게 다 나 때문이야. 나를 구하려고 하지 않았더라면 아저씨는 목숨을 잃지 않았을 거야.”바닥에 누워 있는 유진우의 얼굴은 눈물범벅이 되었다.그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만약 복수 때문에 더 많은 가족을 잃어야 한다면 그는 차라리 불효자가 되어 모든 이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남은 인생을 살 것이다.지금 이 순간에야 유진우는 아버지의 선택을 이해할 수 있었다.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손에 권력을 쥐고 있던 아버지께서는 아무런 반항도 하지 않으셨다. 유진우는 아버지가 너무 나약해서 권력과 지위를 잃을까 봐 무서워서 그런 줄로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아버지가 권력과 지위 때문이 아니라 더 많은 가족을 잃고 싶지 않아서 그런 선택을
두 사람은 사촌 사이인 데다가 서로에게 놓고 말해서 오랜만에 만난 강적이었다. 그래서 그가 포기하는 걸 원하지 않았다.마땅한 상대가 없다는 건 얼마나 지루할지 모른다.“진우 형, 앞으로의 길은 스스로 가야 해요.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홍군림은 이렇게 한마디를 남기고 금세 시야에서 사라졌다.검종에서 내린 임무는 유진우를 처치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 오히려 유진우를 구해주었다.돌아가면 그는 뭐라고 해명해야 할지도 모르겠다.“아저씨, 상처는 괜찮으세요?”황은아가 걱정스레 물었다.“괜찮아.”유진우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는 온통 시체로 뒤덮인 전장을 바라보며 말했다.“여기는 오래 있을 곳이 아니다. 빨리 돌아가자.”비록 이원무는 죽었지만 호룡각은 아직 전멸하지 않았다. 만약 호룡각 고수들이 오게 되면 지금 상태로는 도저히 대응할 수 없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빨리 철수하기로 했다.그들은 차를 몰고 연경으로 향했다. 그때 앞쪽에서 대규모 병력이 나타났는데 다들 전투복을 갖춘 군사들이었다.그들은 유진우의 차를 둘러싸기 시작했다.이 광경을 본 황은아의 안색이 변했다. 그녀는 독약을 꺼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무슨 일이죠? 아직도 적이 남아 있다고요?”“아저씨, 차 안에 계세요. 제가 처리하고 오겠습니다!”말을 마친 황은아는 차에서 내려 독을 뿌리려 했다.“기다려 봐! 적이 아니라 우리 쪽 지원군이야.”유진우이 곧바로 말리며 말했다.“네? 지원군이요?”그 말을 들은 황은아가 멈칫했다.그때 맞은편 차에서 누군가 걸어 내려왔다. 온몸에 피를 묻힌 조무진이 급히 뛰어오는 것이었다.“진우 형, 진우 형!”조무진이 급하게 뛰어오며 외쳤다. 유진우의 몸이 온통 피로 얼룩진 것을 보고 그의 안색이 크게 변했다.“형 왜 이렇게 많이 다쳤어요? 빨리, 빨리 치료해 드려!”그는 이렇게 말하며 손을 흔들었다.“괜찮아. 이 정도는 대수롭지도 않아.”유진우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피까지 토하는데 뭐가 괜찮다는
“진우 오빠, 어쩌다 이렇게 다치셨어요? 누가 그런 거예요? 제가 가서 죽여버릴 거예요!”조홍연은 황급히 앞으로 달려 나왔고 유진우가 온몸에 피범벅인 것을 보고 심각해지더니 분노를 참지 못했다.예쁜 두 눈에는 살기가 넘실댔다.유진우가 위험하다는 것을 듣고 그녀는 얼른 병사를 거느리고 달려왔다.오는 길에 방해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녀는 쉽게 처치해버렸지만, 시간을 지체하게 되었다.그녀는 이미 준비를 마쳤다. 유진우를 다치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숨통을 끊어버릴 것이다. 그 나라와 적이 된다고 해도 상관이 없었다.“난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 그리고 나를 다치게 한 사람은 이미 죽었어.”유진우는 억지로 웃어 보였다.“진우 오빠, 일단 누워서 쉬고 계세요. 바로 병원으로 모셔다드릴게요.”조홍연은 여전히 마음이 놓이질 않았다.“홍연아, 그럴 필요 없어. 나는 괜찮아. 그것보다 네가 신경 써야 할 더 중요한 일이 있어.”유진우는 화제를 돌렸다.“무슨 일이요?”조홍연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얼마 전에 그 칼부림 너희들도 봤지?”유진우가 물었다.“봤어요.”조홍연은 표정이 엄숙해졌다.“그 칼부림은 정말 무시무시했어요. 제가 생각했던 모든 것을 벗어나는 것이었어요. 저는 세상에 그렇게 대단한 실력을 갖춘 사람이 존재하리라고 생각지도 못했어요.”“그건 백준 아저씨가 죽기 전에 날린 것이야.”유진우는 복잡한 표정으로 말했다.“이변이 없는 한 용국의 용맥은 이미 망가졌어. 황권의 머리 위에 있는 호룡각도 타격을 받았을 거야. 앞으로는 연경 전체가 혼란스럽고 불안해 질 거니까 너희 조씨 가문에서는 미리 준비하고 있어야 해.”“뭐라고요? 백준 아저씨가 죽었다고요?”조홍연은 표정이 변했다.“누가 그런 거예요? 아저씨를 죽일 수 있는 사람 누구예요?”그녀는 유진우와 함께 검술을 훈련했고 예전에 백준의 가르침도 받았다. 그녀는 하늘 아래에 백준의 검술을 이길 수 있는 자가 없다고 여겼었다. 이렇게 대단한 강자가 어떻게 죽을 수 있는가
“대단하므로 호룡각이 망가지면 그 영향은 엄청나게 크게 될 거라는 거야.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이 있을지는 아무도 몰라. 나는 우리가 이 소용돌이에 빠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야.”유진우가 말했다.“연경에 있으면서 4대 왕족인데 어떻게 제 몸만 사릴 수 있겠어? 이 풍파는 피할 수 없게 됐어.”조무진은 고개를 저었다.호룡각이 그렇게나 큰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데 무너진다면 세상은 큰 혼란을 일으킬 것이다.강력한 우두머리가 없는 상황에서 각 세력과 군벌들은 서로 우두머리가 되려고 세력다툼을 하게 될 것이다.그때가 되면 왕족인 조씨 가문은 당연히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가 없다.“세상 이치가 그렇잖아요. 분열이 오래되면 반드시 결합이 이뤄질 것이고 통일이 오래되면 반드시 분열이 이뤄지는 거죠. 호룡각이 오랫동안 왕 노릇을 했는데 얼마나 많은 신하의 불만을 샀는지 몰라요. 명령을 듣지 않거나 자신에게 위협이 되는 세력이 생기면 뿌리를 뽑아버렸죠. 오늘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은 다 하늘의 뜻이에요!”조홍연이 쌀쌀하게 말했다.그해 자금성 변고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던가? 그중에는 유진우의 어머니 진소연도 포함되었다.조홍연에게 진소연은 아주 선량하고 부드러운 여인이었다. 평소에도 남을 돕는 것을 즐겨 얼마나 많은 사람을 구했는지 모른다. 거지한테도 진소연은 예의를 갖추어 상대했다.그런데 이렇게 좋은 사람이 호룡각의 음모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 그녀와 함께 목숨을 잃은 사람 중에는 나라를 위해 온 힘을 다했던 충신들도 있었다.이런 조직은 언제가 됐든 반드시 멸망하게 될 것이다.“호룡각은 무너졌다고 해도 잔여세력이 꼭 있을 거야. 그 사람들은 여전히 무시하면 안 될 세력이지. 나는 계속해서 추적할 거야.”유진우가 엄숙하게 말했다.이원무가 죽었고 호룡각의 절반이나 되는 중요한 인물들이 백준의 칼에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부자는 망해도 삼 년 먹을 것이 있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호룡각의 세력은 뿌리가 깊어 짧은 시간 안에 완전히 멸망시키는 것은 불가
어둠이 내려앉고 유진우는 드디어 연경 남부의 별장으로 돌아왔다.조홍연, 조무진과 황은아 등 사람들도 모두 돌아갔고 앞으로 일어날 혼란에 대비할 준비를 했다. 오늘 진산으로의 여정에서 많은 일이 발생했다.진실을 알게 되고 호룡각도 무너뜨렸지만, 백준의 죽음은 그의 마음을 힘들게 했다.지금의 그는 몸이고 마음이고 깊은 피로감에 휩싸였다.유진우는 잠을 푹 자고 싶었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깰 때까지 쭉 숙면하고 싶었다. 어쩌면 내일이면 더 나아질지도 모른다.차는 별장 앞에 멈췄고 유진우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차에서 내렸다.대문을 열자마자 거실에 새하얀 옷을 입고 모자를 쓰고는 얼굴에 흰 망사를 두른 여자가 보였다.여자는 몸매가 아주 아름다웠고 특별한 향을 가졌다.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부드러운 느낌을 주고 있었다. “이청성 씨?”유진우는 단번에 소파에 있는 여자를 알아보았다. 이 차림새, 이 분위기, 그리고 독특한 향까지 기억에서 잊히기는 어려웠다.“진우 형님, 돌아오셨어요?”왕현은 차를 내려서 테이블에 놓고 유진우의 앞에 서서 말했다.“이청성 씨가 또 형님을 찾으러 왔어요. 이번에는 중요한 일이 있다면서요. 근데 매번 신비롭게 하고 오니 조심하는 게 좋겠습니다.”“걱정하지 말아요. 제가 알아서 할 테니 먼저 들어가 쉬세요.”유진우는 고개를 끄덕이고 왕현에게 방으로 돌아가라고 한 뒤 곁에 있는 소파에 앉아 담담하게 말했다.“청성 씨, 이렇게 늦은 밤에 무슨 일이십니까?”“오늘 진산에서 발생한 일에 대해 이미 다 알고 있습니다.”이청성이 갑자기 말을 꺼냈다.“그래서요?”유진우는 전혀 의외가 아니라는 듯 평온한 얼굴이었다.이청성은 보통 사람이 아닌 게 분명했다. 큰 확률로 황실의 사람일 수 있는데 오늘의 일에 대해서 안다고 해도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그리고 그녀는 친제감의 제자여서 점을 치는 것에 능하니 당연히 황실의 다른 제자들보다 많은 것들을 알고 있을 것이다.“백준이 용맥을 끊은 것은 용국의 국운에 큰 영
“대단한 인물이요? 누구요?”유진우가 되물었다.“지금의 천자요!”이청성은 깜짝 놀랄만한 말을 했다.“네?”유진우는 살짝 미간을 찌푸리고 의아해했다.‘지금 폐하는 중병에 들어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지금 자신을 만나고 싶어 한다고? 호룡각의 일 때문인가? 아니면 용맥의 일 때문인가? 이렇게 따라가면 위험하지 않을까? 자금성 안에 매복해있는 사람들이 있지는 않을까?’“허튼 생각하지 말아요.”뭔가 눈치를 챈 듯 이청성이 담담하게 말했다.“천자가 당신을 해치고 싶다면 저를 보내서 데리고 오라고 할 게 아니라 고수거나 금위군을 보냈겠죠. 지금 당신의 몸 상태로는 반항할 수 있을까요?”이 말을 들은 유진우는 살짝 긴장을 풀었다. 이청성의 말이 일리가 있었다. 만약 천자가 정말 자신을 해치려고 한다면 여자 한 명만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그리고 지금의 형세로 보면 천자가 멍청하지 않은 이상 불난 집에 부채질은 하지 않을 것이다.아무래도 호룡각이 무너졌으니 지금 황실에 제일 중요한 것은 집권하는 일이다. 만약 그가 연경에서 무슨 일이 생긴다면 모순을 격화하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서경의 군대들이 쳐들어올 것이고 황실을 놓고 말할 때 이는 치명적인 타격이 될 것이다.물론 이러한 이치가 맞긴 하지만 경계하는 마음이 없어서는 안 되니 상황을 잘 물어봐야 했다.“이청성 씨, 폐하께서 무슨 일로 이 밤에 저를 부르는 것입니까?”유진우가 떠보듯이 물었다.“잘 모르겠습니다. 중요한 일이 있다고만 하셨습니다.이청성은 아주 모호하게 대답했다.“아무 말도 하지 않으신다면 저도 가지 않겠습니다.상대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려 하자 유진우는 아예 고집을 부릴 생각이다.“당신...”이청성은 화가 난 듯했지만, 상황을 고려해서 성질을 죽이고 대답했다.“구체적인 상황은 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아마도 진우 씨랑 나랏일에 관해서 얘기하려는 듯합니다. 황권의 교체라든지, 변방의 안정이라든지 같은 것들 말이에요.”“그렇군요.”유진우는 생각에 잠긴
“아니에요?”유장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용호산은 여태껏 무림인의 세계에서 일어난 일에 무관심했는데 이제 와서 갑자기 무림대회를 개최한다는 건 다른 의도가 있는 게 분명해.”서태양이 말했다.인재를 선발해 위상을 높이려고 진무사가 나섰다면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었다.하지만 용호산은 전혀 관계가 없지 않은가?“그럼 무슨 의도인데요?”유장미가 되물었다.“내가 어떻게 알아? 나도 궁금하거든?”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는 서태양은 어깨를 으쓱했다.“보혁 씨는 내막에 훤하니까 화두를 꺼낸 거겠죠?”유이슬이 시선을 돌렸다.“내막까지는 아니지만 주워들은 소식이 몇 가지 있긴 해요.”염보혁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제가 알기로는 용호산 뒷산의 금지구역에 최근 신비로운 보물이 나타났는데 향후 100년 동안 무림인들의 흥망성쇠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나라의 운명과도 관련이 있다고 해요.”“무슨 보물이 그렇게 대단해요?”유장미가 깜짝 놀랐다.유이슬과 서태양도 예상치 못한 듯 충격을 금치 못했다.무림인들의 흥망성쇠와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만약 제 추측이 맞는다면 용원의 기와 관련된 보물일 거예요.”염보혁이 목소리를 낮추었다.순간, 유진우는 눈썹을 추켜세웠지만 이내 포커페이스로 돌아왔다.“용원의 기? 그게 뭔데요?”유장미가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용맥의 정수이기도 하죠.”유이슬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며칠 전 호룡각이 와해하면서 지하 용맥이 다섯 개의 용원의 기로 변해 세상에 뿔뿔이 흩어졌어. 소문에 의하면 용원의 기를 얻는 자는 천하무적이 되어 승승장구한다고 해.”호룡각이 무너지고 용맥이 파괴된 일이 워낙 큰 이슈였기에 자연스럽게 그녀의 귀에도 흘러 들어갔다.“진짜요? 그렇게 대단한 물건이 있어요?”유장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고서에서 관련된 기록을 본 적이 있는데 용원의 기를 얻은 자들은 세상을 주름잡는 수장이거나 천하를 다스리는 왕이었어.”유이슬이 한마디 보탰다.“맞아요.”염보혁이 대
유진우는 옆에 있는 염보혁을 흘깃 쳐다보았고, 속으로 상대방이 아무리 예뻐도 남자를 좋아할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쿨럭!”염보혁은 사레가 들린 나머지 연신 기침하며 쓴웃음을 지었다.“이슬 씨, 지금 절 칭찬하는 건지 비꼬는 건지 모르겠네요.”“당연히 칭찬하는 거죠. 그런 얼굴을 보고도 어떤 남자가 마음이 흔들리지 않겠어요?”유이슬이 정색하며 말했다.“네?”염보혁은 말문이 막혔다.설령 사실일지언정 어찌 면전에서 대놓고 말할 수 있지?왠지 모르게 기분이 이상했다.“정 믿기 어려우면 태양한테 물어봐요.”유이슬이 문득 말했다.한편, 서태양은 염보혁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이름이 언급되는 순간 흠칫 놀라더니 서둘러 시선을 돌렸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은 도둑이 제 발 저린 듯싶었다.“제가요?”서태양은 난감한 얼굴로 대답했다.“선배, 장난하지 마세요. 저랑 무슨 상관이죠?”“뭔가 냄새가 나는데요?”유장미가 눈썹을 까딱하더니 눈알을 굴리며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설마 보혁 씨한테 진짜 반한 건 아니죠?”“이... 계집애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서태양이 펄쩍 뛰면서 얼굴이 벌게진 채 고래고래 외쳤다.“남자끼리 엮일 리가 없잖아.”“침착해요. 단지 농담했을 뿐이에요.”유장미가 키득거리며 말했다.“게다가 남남 커플이 진짜 사랑이죠. 어차피 안 될 건 없잖아요. 만약 사귈 생각이 있다면 진심으로 축복해줄게요. 하하하!”“입만 열면 헛소리 하네.”서태양은 짐짓 화가 난 듯 혼내려는 액션을 취했다.유장미는 잽싸게 유이슬의 등 뒤로 숨어 웃음을 터뜨렸다.갑자기 산으로 흘러가는 대화에 당사자인 염보혁은 말문을 잃었다.더욱이 유장미와 투닥거리는 와중에도 그를 흘끔거리는 서태양 때문에 어이가 없었다.단순히 농담으로 치부할 수 있었지만 몰래 훔쳐보는 탓에 괜히 기분이 세했다.“진우 씨, 이슬 씨, 다들 용호산은 처음이죠? 제가 구경 좀 시켜드릴까요? 주변에 뭐 있는지 소개해줄게요.”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염
술이 몇 잔 오가자 서서히 편하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이슬 씨, 방금 검종의 제자라고 하시던데 무림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용호산에 오른 건가요?”염보혁이 넌지시 물었다.“그런 셈이죠.”유이슬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성격이 무심한 편이라 말주변이 딱히 없었다.“사실 저희는 스승님의 명을 받고 찾아왔어요.”상대적으로 외향적인 유장미가 웃으며 말을 보탰다.“노천사가 용호산에서 무림대회를 개최한다는 소식에 세상이 발칵 뒤집혔거든요. 검종 뿐만 아니라 천하회, 주술교를 포함한 파벌에서 최정예 제자들을 파견해 출전할 예정이에요.”“그럼 검종에서는 세 분이 참석하는 건가요?”염보혁이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아니요.”유장미가 고개를 저었다.“저희는 단지 구경하러 왔을 뿐,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는 따로 있어요.”그녀와 서태양은 선천 후기에 속했고, 유이슬은 실력이 뛰어나긴 했으나 반보 마스터에 불과했다.어찌 됐든 천교에 비하면 열세에 처하는지라 검종을 대표해서 출전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따로 있다니? 설마 홍군림이에요?”염보혁의 눈썹이 까닥했다.“그건 저도 잘 몰라요.”유장미가 생긋 웃었다.“워낙 제멋대로에 신출귀몰하는 사람이라 이번 무림대회에 참가할지 아무도 몰라요. 만약 홍 선배가 진짜 출전한다면 우승은 우리 검종이 차지할 거예요.”홍군림은 천교 랭킹의 1위에 올랐을뿐더러 어린 나이에 경천 랭킹에 진입한 검종의 천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다만 성격이 까칠하고 독불장군이라 종주를 제외하고 아무도 안중에 두지 않았다.“장미야, 그건 네 생각이고.”이때 유이슬이 입을 열었다.“홍 선배가 실력이 뛰어나고 검종의 천재로서 일반 무사들이 함부로 넘볼 수 없는 존재인 건 사실이지만 너도 알다시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능력자가 한 명 더 있잖아.”“누구요?”유장미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유장혁.”유이슬이 무덤덤하게 말했다.“그 사람이 홍 선배보다 실력이 더 뛰어나요?”유장미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막상막하야. 천교
“네?”염보혁의 한 마디에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한참 동안 넋을 잃었다.특히 잘 보이기 급급했던 서태양은 굳은 얼굴로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허공에 손을 들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이럴 수가?방금 목숨 걸고 구하려던 사람이 남자였다니?“남자...? 농담이죠?”붉은 옷 소녀가 염보혁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경국지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미인이 대체 어디를 봐서 남자란 말인가?푸른 옷 여인은 입만 벙긋했을 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흡혈파 망나니들이 여자가 아닌 남자한테 집적거렸다니?취향 한번 독특했다.“아니요. 진짜 남자예요.”염보혁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밖에 나가면 여자로 오해받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하지만 아무리 봐도...”붉은 옷 소녀가 말을 아꼈다.“외모 때문에 어쩔 수 없어요.”염보혁이 어깨를 으쓱하며 해탈한 듯 말했다.“아쉽네요.”붉은 옷 소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본인이 이렇게 예쁜 얼굴을 가졌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선배? 왜 그래요? 괜찮아요?”그녀는 아직도 넋을 잃은 서태양을 발견하고 손을 뻗어 어깨를 툭 쳤다.“응? 아, 괜찮아. 단지 조금 놀랐을 뿐이야.”서태양은 꿈에서 깨어난 듯 금세 정신을 차렸다.다만 눈빛만큼은 남자한테서 떠나지 않았다.이렇게 요염한 얼굴이 사내란 사실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그야말로 재능 낭비이지 않은가?“저는 염보혁입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염보혁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유이슬이에요.”푸른 옷 여인이 대답했다.“저는 유장미라고 해요.”붉은 옷 소녀가 활짝 웃었다.비록 남자이지만 미모에 저절로 눈이 갔다.“서태양입니다.”서태양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방금 일어난 일에 대해 찝찝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다 같이 술이나 한잔 하시죠?”염보혁은 손을 내밀더니 소개를 이어갔다.“이쪽은 유진우 씨, 그리고 두 분은 호위무사인...”“춘화와 추월이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수염 난 사내의 몸에 피투성이 상처가 생겼다.눈 깜짝할 사이에 연신 검에 찔린 탓에 저항할 힘조차 없었다.비록 수염 난 사내가 힘은 더 셌지만 기교에서는 한참 못 미쳤다.여자의 화려한 검술은 감탄을 자아냈고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악!”수염 난 사내가 처참한 비명을 질렀다.사지가 부러진 채 바닥에 널브러진 모습은 마치 좀비를 연상케 했다.온몸은 피가 흥건했고 상처로 가득했다. 비록 목숨에 지장은 없지만 이미 만신창이가 되었다.“형님!”패배한 우두머리를 보자 흡혈파 제자들이 충격과 분노를 금치 못했다.항상 위풍당당하고 기세등등했던 수장이 이런 몰골을 보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젠장! 감히 우리 형님을 다치게 해? 죽고 싶어 환장했어?”“저년을 없애버려!”흡혈파 제자들이 고래고래 외치며 검을 빼 들고 무시무시한 기세로 여자를 덮쳤다.“무용지물이야.”푸른 옷 여인은 콧방귀를 뀌더니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사람들 틈으로 뛰어들었다.얼마 안 되어 흡혈파 제자들은 하나같이 처참한 비명과 함께 바닥에 나뒹굴었다.팔이나 다리가 부러진 채 선혈이 낭자했다.“역시 대단하세요!”눈앞의 광경에 붉은 옷 소녀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망나니 따위가 감히 검종에게 대들다니? 제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서태양이 바닥에 침을 뱉었다.“뭐... 뭐라고? 너희들이 검종 제자였어?”흡혈파 제자들은 안색이 돌변하더니 두려운 기색이 역력했다.검종은 무림인들의 세계에서 3대 문파 중 하나로 천하회와 주술교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비록 제자들이 많지 않았지만 뛰어난 인재들밖에 없다.특히 검종의 홍군림은 어린 나이에 천교 랭킹 1위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경천 랭킹에 진입하여 세계 10위의 강자가 되었다.경천 랭킹 10위권에 검종 제자가 무려 2명이나 있는데 압도적인 실력으로 3대 파벌의 수장 자리를 거머쥐었다.여기서 검종의 제자들을 만나게 될 줄은 예상치도 못했다.이럴 줄 알았더라면 애초에 무모한 짓을 벌이지 않았을 텐데.“이제야
“윽!”서태양은 이를 악물고 이마에 핏줄이 튀어나온 채 낮은 신음을 내뱉었다.이내 양손으로 검을 쥐고 온 힘을 다해 어깨를 짓누른 흡혈검을 떼어내려고 했다.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상대방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오히려 힘이 점점 더 가해졌고 무릎이 닿은 바닥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고작 이런 실력으로 감히 우리 흡혈파한테 덤비다니? 제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수염 난 사내가 냉소를 지었다.“형님! 멋져요.”“역시 대단하세요.”부하들이 질세라 감탄했다.북쪽에서 흡혈파라고 하면 꽤 이름 있는 큰 파벌인지라 애송이 같은 놈이 도발할 만한 게 아니었다.“감히 내 앞에서 영웅 행세해? 넌 오늘 인생에서 가장 잘못된 결정을 내린 거야. 교훈 삼아 사지를 부러뜨려줄게!”수염 난 사내가 비열한 미소를 짓더니 흡혈검을 들어 올려 서태양의 손목을 향해 휘둘렀다.챙!검이 닿기 직전 청색 보검이 불쑥 나타나 허공에서 공격을 막아냈다.“응?”수염 난 사내가 눈살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푸른 옷 여인이 보검을 들고 싸늘한 눈빛을 보냈다.“선배?”서태양의 표정이 밝아지더니 그제야 한숨 돌렸다.조금만 늦었더라도 오른손을 잃어버렸을 텐데 그나마 선배가 제때 도움을 줘서 천만다행이었다.“괜히 참견하지 마.”수염 난 사내가 음흉하게 웃었다.“우리 후배한테 손을 대는 순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여자가 싸늘하게 말했다.“맞아! 너희들 같은 망나니는 벌을 받아 마땅하지.”이때, 붉은 옷 소녀가 검을 빼 들고 낭랑한 목소리로 외쳤다.“언니, 제가 도와줄게요.”“아니야. 넌 태양이랑 지켜보고 있어. 이런 놈들은 나 혼자서도 충분하니까.”푸른 옷 여인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어디서 나온 자신감이지?”수염 난 사내가 히죽 웃었다.“그런 왜소한 몸으로 오빠의 검을 어찌 막으려고? 차라리 무기는 내려놓고 침대에서 겨뤄보는 건 어때?”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부하들이 폭소를 터뜨렸다.곧이어 음흉한 시선으로 여자를 훑으며 멋대로 평가하
서태양이 움직이자 수염 난 사내의 뒤에서 덩치가 산만 한 남자 두 명이 튀어나왔다.두 사람은 무기로 길쭉한 검을 들고 있었다.몸체는 강한 피비린내와 함께 은은한 살기가 감돌았다. 이는 칼날이 오랫동안 선혈에 노출된 결과였다.무림인들의 세계에서는 흡혈검이라고 불렀다.다만 아쉽게도 그들이 지닌 검은 아직 미성숙 단계였고 기세가 한창 부족했다.챙! 챙!서태양이 먼저 검을 빼 들고 혼자서 두 명의 사내와 대결을 벌였다.그들은 기세등등하게 맞서 싸웠지만 힘만 강했을 뿐 행동이 굼뜬 편이었다.공격할 때마다 동작이 다소 어설펐다.반면, 서태양은 누가 봐도 고수의 가르침을 받았고 실전 경험도 풍부했다.스피드, 힘, 기술 등 모든 면에서 높은 수준에 도달했으며 어느 하나 뒤처진 데 없었다.세 사람이 공격을 주고받는 순간 실력 차이가 현저했고, 서태양은 눈 깜짝할 사이에 두 사내를 쓰러뜨렸다.그리고 응징할 겸 각자의 다리에 검을 관통했다.“흥! 고작 이런 실력으로 우쭐거려? 제 주제도 모르고.”서태양은 장검을 비스듬히 겨누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죽기 싫으면 당장 꺼져.”“좋아! 잘했어!”승리를 거머쥔 서태양을 보자 구경하던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비록 나서서 싸울 용기는 없었지만 응원의 박수를 보내는 것쯤은 충분히 가능했다.“그래도 실력은 꽤 있나 보네? 어쩐지 참견하더라니.”수염 난 사내가 눈을 가늘게 뜬 채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천천히 뽑아 들고 음침한 목소리로 협박했다.“하지만 오늘 임자를 만났지. 흡혈파를 마주친 이상 살아남을 방법은 없어.”“흡혈파는 무슨, 들어보지도 못했구먼.”서태양의 표정은 기고만장했다.“하! 괜찮아. 네 피를 전부 흡수하고 나면 우리가 왜 흡혈파라고 불리는지 알 거야.”수염 난 사내가 이죽거리더니 두말없이 공격을 개시했다.그가 발을 내딛자마자 맹렬한 기세가 솟구쳤고, 손에 든 흡혈검은 핏빛을 뿜어내며 곧장 서태양을 덮쳤다.앞서 상대했던 부하들과 달리 수염 난 사내의 흡혈검은 살기로 가득했다
아름다운 얼굴은 쉽게 화를 부르는 법이다.염보혁은 남자였지만 여자보다도 더 아름다운 요염한 얼굴을 지녔다.길을 나서면 사람들의 시선을 피할 도리가 없었고 지금처럼 깡패 무리와 마주할 때면 번번이 시비에 휘말리기 일쑤였다.유진우는 모른 척하며 조용히 술잔을 기울였다.“어이, 이쁜이. 저런 나약한 놈이랑 술 마셔서 뭐 하겠어? 차라리 우리랑 한잔하지, 아주 즐겁게 해줄 테니 말이야!”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사내가 염보혁의 턱을 손가락으로 건드리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이 손 치우는 게 좋을 거야. 아니면 후회하게 될 테니까.”염보혁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차가운 눈빛을 보냈다.어여쁜 외모 탓에 남녀를 불문하고 다가오는 사람이 많았지만 이처럼 대놓고 희롱하는 경우는 드물었다.“오, 이쁜이가 화를 내네?”수염 난 사내는 턱을 문지르며 비웃었다.“솔직히 말해서 화난 얼굴이 더 매력적인데?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더욱 감탄스럽군.”그의 말에 뒤따르던 무리들이 일제히 폭소를 터뜨렸다.유진우는 피식 웃으며 술잔을 내려놓았다. 눈앞의 이 사내는 제법 능숙하게 수작을 부렸다.염보혁이 남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셋을 센다. 그 안에 사라지지 않으면 내가 직접 손봐주지.”염보혁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손 본다고? 하하하!”수염 난 사내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이거 제법 앙칼진데? 좋아, 그럼 이렇게 하자. 위층으로 올라가서 천천히 우리를 손 봐줘, 어때?”“맞아, 맞아! 방도 넉넉하니 차례대로 너랑 놀아줄 수 있다고!”그의 동료들도 시시덕거리며 말을 보탰다.“셋.”염보혁은 더 이상 말을 섞을 필요도 없다는 듯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이쁜이, 괜히 버티지 말고 그냥 올라가자. 내가 아주 다정하게 대해줄 테니 말이야.”수염 난 사내는 입을 커다랗게 벌려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낄낄댔다.“둘.”염보혁은 여전히 냉랭한 표정을 유지했다.“싫다면 어쩔 수 없지. 내가 직접 안아 올라가는 수밖에.”그가 손을
유진우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보혁 씨가 이렇게까지 많은 걸 알고 있을 줄은 몰랐군요. 제 생각엔 장일청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는 것 같은데요.”용호산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염보혁이 이렇게나 많이 알고 있다니, 이건 그가 평범한 인물이 아님을 증명하는 셈이었다.“진우 씨께서 과찬해 주시는군요. 저는 그저 사람들 사이에 끼어 듣는 걸 좋아해서 호기심에 이런저런 소문을 알아본 것뿐입니다. 사실 별다른 능력은 없어요.”염보혁은 겸손하게 웃으며 덧붙였다.“하지만 만약 진우 씨께서 무림대회에 참가하신다면 전 온 힘을 다해 진우 씨가 우승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보혁 씨, 저를 너무 과대평가하시는군요.”유진우는 담담하게 말했다.“전 그저 세상 구경이나 해볼 겸 참가하는 것뿐입니다. 우승 같은 건 감히 꿈도 꾸지 않아요. 애초에 제 실력으로 어떻게 그 내로라하는 강자들과 겨룰 수 있겠습니까?”“진우 씨는 너무 겸손하시군요. 저는 사람을 보는 눈이 정확합니다.”염보혁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진우 씨는 외모도 준수하고 기품 또한 비범하시죠. 멀리서 봐도 강렬한 기세가 느껴졌습니다. 비록 진우 씨의 신분은 알 수 없지만 이것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진우 씨는 절대 범상한 인물이 아닙니다!”“보혁 씨께서 저를 이렇게까지 칭찬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유진우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저는 평범한 출신에 보잘것없는 실력을 갖췄을 뿐입니다. 아마 실망할 겁니다.”“하하, 괜찮습니다. 커다란 황금 잉어가 어찌 작은 연못에서만 머물겠습니까? 바람과 구름을 만나면 반드시 용이 되어 날아오를 것입니다. 지금 진우 씨의 명성이 미미할지라도 저는 믿습니다. 언젠가 반드시 하늘 높이 날아오를 날이 올 거라고!”염보혁은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말했다. 그 눈빛은 절대적인 믿음을 담고 있는 듯했다.유진우는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이 사람, 도대체 뭐지? 분명 오늘 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