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나타나는 검은 옷을 입은 킬러들에 남궁해수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나타나고부터 상황이 끝나기까지 불과 몇 분 만에 제가 공들여 키운 결사 대원들이 죽임을 당하는 것을 본 남궁해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챙, 챙, 챙-"금속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몇 번 더 나자 남궁해수의 결사 대원들은 전멸의 결과에 이르렀다.그들은 아예 킬러의 상대조차 되지 못했다.결사 대원들을 말끔히 처리한 킬러들은 다시 양옆으로 서서 다음 명령을 기다렸다."뭐야 이게!"제가 오랫동안 심혈을 기울였던 결사 대원들이 전멸하자 남궁해수는 넋이 나가 자리에 굳어져 버렸다.장군 저택이 단번에 결사 대원들을 죽일 수 있는 이런 어마어마한 힘을 가진 거울을 숨기고 있을 거라고는 남궁해수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었다."남궁해수, 넌 널 너무 과대평가했어. 그리고 장군 저택을 너무 무시했지."남궁을용이 남궁해수를 향해 천천히 다가가며 말했다."네가 5년 동안 준비하면 장군 저택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았어? 몇십 년 된 장군 저택이 너 같은 애송이에게 당할 거라고 생각했던 거야?""네 수법, 네가 부리는 잔재주는 그냥 재롱일 뿐이야. 네가 나 몰래 하고 다닌 그 짓들을 정말 내가 몰랐을 거라고 생각하니? 네가 내 옆에 심어둔 그 사람들을 정말 내가 몰랐을까? 네 생각, 꼼수 나는 다 알고 있었어. 그냥 어디까지 할 수 있나 지켜본 것뿐이지. 나는 네가 이제라도 반성하고 개과천선할 수 있게 도와주고 싶어. 아들, 여기서 멈춰. 네가 진심으로 잘못을 뉘우친다면 지난 일은 다 잊어줄게. 너는 아직도 내 아들이고 남궁 가문의 가장 뛰어난 후계자야. 여기서 멈추면 안 되겠니?"말을 하며 남궁해수의 손을 잡아 오는 남궁을용의 얼굴에는 기대와 안타까움이 드러나 있었다.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남궁해수가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질렀다 해도 자식이 잘못을 뉘우치기만 한다면 부모 된 자로서 남궁을용은 언제고 제 아들을 품어줄 준비가 되어있었다."하하하..."하지만 들려오는 건 마치 저
자리해준 손님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몸에 중상을 입은 사람도 있었고 즉사한 사람도 있었다.폭탄의 폭파와 함께 소란스러웠던 연회장은 순식간에 허허벌판이 되어버렸고 곳곳에서는 귀청을 째는 비명이 들려왔고 떨어져 나간 살들이 피를 튀기며 날아다니고 있었다."해수야!"남궁을용은 제 상처를 돌볼 겨를도 없이 폐허 속에서 남궁해수를 찾아 헤맸다.그렇게 한참을 헤매도 그는 남궁해수의 몸에서 떨어져나온 살점밖에 찾을 수가 없었다.아까 폭파될 때 온몸이 찢겨나가 이미 사람의 형체를 하고 있지 않은 시체를 찾는 건 아무래도 무리였다.그나마 온전한 건 절반 짜리 피로 범벅된 머리였다."해수야! 해수야!"남궁을용은 해수의 부서져 버린 몸을 안고 울부짖었다."왜, 왜 그랬어! 왜 이렇게 바보 같은 짓을 했어... 왜..."남궁을용은 이렇게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한 남궁해수를 이해할 수도 없었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복수가 뭐 그렇게 대단하다고 제 목숨까지 저버린단 말인가.남궁을용은 아프고 후회되고 화가 났지만 그보다 더 크게 다가온 건 절망이었다.가장 사랑하는 아들이, 가장 완벽한 후계자가 제 눈앞에서 죽어버렸다.장군 저택의 사람들은 다 죽어 나갔고 후계자마저 잃었다.그리고 이 모든 일의 원인은 5년 전 그 여자의 죽음이었다.이 모든 게 그 여자가 계획한 일들인 것 같았다.절망에 잠긴 남궁을용이 아들의 시체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 그 뒤로 한 인영이 빠르게 다가왔다.소리 없이 빠르게 가까워지는 발걸음에 주위의 시끄러운 비명소리까지 더해지다 보니 남궁을용은 전혀 인기척을 느끼지 못했다."장군님, 조심하세요!"그때 고개를 든 유진우가 그 모습을 보고 다급히 외쳤지만 남궁을용이 그 목소리를 들었을 땐 인영이 이미 남궁을용의 등을 가격한 뒤였다.그 충격에 남궁을용은 피를 토해내며 십 미터 밖으로 날아갔고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가까이에서 일어난 폭파에 이미 중상을 입은 데다가 아들의 죽음에 심적인 절망까지 더해져 경계를 늦춘 탓에 방금 전의
"서명 늙은 개인 네가 무슨 수로 나한테 복수를 해?"남궁을용은 꼿꼿이 선 채로 살기 어린 눈을 하고는 말했다."30년 전에 나한테 맞아서 바닥에 떨어진 이빨이나 줍던 거 기억해? 난 지금 널 그렇게 만들어줄 수 있어.""그만해, 추해. 네가 다른 사람을 속일 수 있을진 몰라도 나는 못 속이지. 우린 오랜 친구잖아? 내 눈엔 다 보인다고."서문명오는 한쪽 입꼬리를 올려 웃고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평생 전장을 누빈 네 몸은 이미 늙고 병들었어. 거기에 아까 폭파와 내가 내리꽂은 칼까지, 지금 넌 이미 중상을 입었다고. 일어나기도 힘들지 않아?""뭐 못 믿겠으면 들어와 보든가."남궁을용은 그렇게 자신 있으면 덤벼 보라는 듯 손을 저었다.서문명오는 그런 남궁을용을 아래 우로 훑어보며 바로 덤비지 않고 계속 떠봤다."아들이 죽으니 어때? 마음 아프지? 5년 동안 내가 걔를 키우느라 힘 좀 썼거든, 근데 아직도 너한텐 안 되네.""네가 내 아들을 흔들어 놓은 거였어?"남궁을용은 이를 악물고는 씩씩대며 말했다."나한테 남은 원한을 왜 내 아들한테 풀어? 내가 버젓이 살아있는데 나한테 덤볐어야지!""하하하, 너한테 바로 덤비는 건 좀 무리니까 네 약점을 공략한 거지. 네 막내아들 남궁해수가 네 가장 큰 약점이잖아."서문명오는 입이 째지게 웃어 보였다."아, 맞다. 너한테 얘기 못 한 게 있는데, 남궁해수 아내, 5년 전 장순 저택에 목매달고 죽은 그 아이 사실 내 딸이야.""뭐... 뭐라고?"남궁을용은 몸을 파르르 떨며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어때? 이건 서프라이즈 성공인가?"남궁을용의 놀란 모습을 보자 서문명오는 더 기쁘게 웃었다."너 하나 잡으려고 내가 내 딸을 일부러 네 아들에게 접근시켰어. 그리고 네 아들이 사랑에 빠지게 만들었지. 절대 헤어 나올 수 없을 정도로 사랑하게 됐을 때 내 딸한테 목매달고 죽으라고 했어. 그러면 네 아들은 영원히 널 원망할 테니까. 그리고 널 죽이려고 무슨 짓이든 다 할 테니까.
사실 서문명오가 아까 일부러 남궁을용을 자극한 건 그가 먼저 공격을 하게끔 하여 그의 실력을 보아내려던 수작이었다.그 수작에 당해 버린 남궁을용은 마음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 몸에 이미 반격할 기회도 잃어버렸다.“내가 이길 거고 너는 졌어. 오늘에야말로 내가 너를 죽이는구나!”서문명오는 오랜 복수를 마침내 할 수 있게 됐다는 생각에 호탕하게 웃어댔다.“그래도 죽기 전에 네 자손들이 하나하나 죽어 나가는 건 다 봐야지.”말을 마친 서문명오가 손가락을 튕겨내자 그 소리에 맞춰 살인청부업자들이 곳곳에서 튀어나왔다. 이 살인청부업자들은 서문족이 공들여 키워낸 결사 대원들이었는데 그 실력이 다들 아주 출중했다.그들은 무술뿐만 아니라 암살술에까지 능하여 나타나기만 하면 다른 사람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저놈들 막아!”남궁을용의 분노에 찬 고함에 장군 저택의 검은 옷을 입은 킬러들은 칼을 들고 뛰쳐나갔고 양측은 순식간에 결투에 돌입했다.장군 저택의 킬러들은 사람 수는 적었지만 그만큼 강했기에 혼자서 여럿을 대적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금오국의 살인청부업자들의 수가 너무나도 많아 하나를 죽이면 또 다른 하나가 나타났기에 둘 사이는 그야말로 막상막하였다.“멈춰, 다들 멈추란 말이야! 안 그럼 내가 이년 죽여.”갑자기 들리는 외침에 다들 멈추고 고개를 드니 서문천명이 남궁은설의 목에 칼을 대고 걸어 나오고 있었다.“설아!”그 모습을 본 남궁을용은 순식간에 낯빛이 변했고 남궁 일가 사람들도 다들 깜짝 놀라 욕지거리를 퍼부으며 소란을 피웠다.아까 일어난 폭파 때문에 이미 폐허가 되어버린 연회장에서 다들 제 살길을 찾느라 누구 하나 서문천명을 주의한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서문천명은 그 혼란스러운 틈을 타 남궁은설을 인질로 잡은 것이다.남궁보성의 딸이 인질로 잡혀 버렸으니 킬러들은 공격하려 해도 망설여지기 마련이었다.“서문천명! 네가 감히 내 딸을 인질로 잡아? 당장 놔!”전에는 함께 공공의 적인 유진우를 잡자고
“뭐... 뭐라고 했어요 방금?”남궁은설은 제 귀를 의심하며 물었다.“날 납치한 거라고요? 그니까 날 속였던 거라고요?”“그래, 널 속였어.”서문천명은 태연하게 인정했다.“근데 그건 날 탓할 게 아니라 그렇게까지 눈치가 없는 널 탓해야지. 넌 정말 사람 보는 눈이 없다니까. 내가 몇 마디 했다고 그거에 금방 홀리다니, 너같이 멍청한 애는 처음 봐.”“그니까... 내가 진우 오빠를 오해해서 다치게 한 거라고요?”사실을 알게 된 남궁은설은 밀려오는 죄책감에 두 눈에 눈물을 대롱대롱 매달았다.한없이 착하기만 했던 남궁은설은 사촌오빠가 자신을 속일 거라고는, 가장 좋은 친구라 믿었던 사람이 속일 거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그러고는 무턱대고 유진우부터 의심했다, 사실이 이런 줄도 모르고.서문천명의 말을 들은 남궁은설은 그제야 자신이 그동안 믿었던 것이 모두 가짜였음을 알아차렸다. 남궁진혁이 그녀를 속인 것이고 친구라 믿었던 서문천명도 거짓말을 한 것이고 오직 유진우만이 진심으로 남궁은설을 도와주고 구해주려 했던 것이다.그런데도 남궁은설은 그 진심을 알아보지 못하고 유진우를 내쫓으려고만 했다.고작 거짓말 몇 마디에 자신을 정말 아끼고 사랑해 준 사람을 상처받게 만들었다. 도대체 그동안 뭘 한 걸까, 어쩜 그렇게 멍청할 수 있었던 걸까...“왜, 왜 나를 속였어요?”남궁은설은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한솔과 유연지 그리고 친구들이라 믿었던 사람들을 돌아보며 물었다.“...”남궁은설의 시선을 느낀 그들은 서둘러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지 못했다.그들도 서문천명이 다들 보는 앞에서 이 사실을 까발릴 줄은 몰랐었기에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못했다.“진우 오빠, 미안해요... 내가 미안해요...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남궁은설은 사람들 틈에 섞여 있는 유진우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너무나도 미안했고 사실을 이제야 안 제 자신이 원망스러워 가슴이 아파왔다.남궁은설은 은혜를 원수로 갚는 사람을 가장 싫어했는데 자신이 그런 사람이 되어버
서문천명 곁에는 살인청부업자 고수들이 수두룩했다. 그건 강군 저택의 최강 킬러팀이 와도 쉽게 뚫을 수 있는 자들이 아니었다.아무리 유진우의 실력이 비범하다고 해도 단번에 이 많은 사람을 처리하기는 쉽지 않았다.“잔말 마시고 당신 딸한테 무슨 일 생기는 걸 원하지 않으면 빨리 와서 도와주세요!”유진우는 재촉하며 말했다.“내가 도와줄게!”도란영이 제일 먼저 반응을 보이며 얼른 달려와서 같이 결박령을 풀었다.결박령은 엄청나게 꽉 묶여 있어서 힘으로는 절대 풀 수 없었다. 그저 한층 한층 풀 수밖에 없었다.“하나…”이때, 서문천명은 잔인한 웃음을 지으며 그의 마지막 말소리가 떨어졌다.“당신들이 무기를 내려놓지 않는 이상, 내가 마음이 독하다고 탓하지 마세요!”말을 마치고 바로 손에 든 칼을 남궁은설의 어깨를 향해 내리 휘둘렀다.“멈춰!”남궁보성은 노성을 지르고 몸의 아픔을 꾹 참으며 서문천명 쪽을 향해 덤벼들었다. 하지만 그쪽에 채 다가가기도 전에 이미 금오국의 살인청부업자들한테 가로막혔다.위급한 고비에서 한 개의 은침이 ‘슉!’ 하고 나와서 서문천명의 칼을 정확히 명중하였다.“쟁쟁!”두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서문천명의 칼은 은침을 맞고 손에서 벗어나 공중에서 두 바퀴 돌고 나서 ‘쟁그랑!'하고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와 동시에 바닥에 부딪히면서 불꽃이 튀겼다.“누구야?”서문천명은 놀라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 그는 얼른 남궁은설의 몸 뒤로 숨고는 또 자기가 기습당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손을 저어 살인청부업자들이 자기 앞을 막게 했다.“서문천명, 오늘이 당신 제삿날이야. 빨리 무릎 꿇고 빌면 시체만큼은 남겨 줄게.”유진우는 느슨해진 결박령을 천천히 풀고는 다시 몸을 은밀하게 숨겼다.‘이런 보물은 참 만나기 힘든 귀한 템인데 앞으로 쓸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당신이었군요!”서문천명은 남궁은설의 어깨 옆으로 고개를 반쯤 내밀고 웃으며 말했다.“유 선생님, 남궁 가문에서 여러모로 선생님을 그렇게 괴롭히고
머리가 터진 서문천명을 보고 현장은 갑자기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남궁보성의 고함소리가 뚝 그쳤다.유연지, 한솔 등 일행도 이 광경에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모든 것이 너무 순식간에 일어나 그들은 반응할 겨를조차 없었다.서문천명은 인질을 방패로 삼았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살인청부업자의 보호도 있었다.이런 상황에서 유진우가 한방에 서문천명을 필살했다는 게 정말 소스라치게 믿어지지 않았다!“쿵!”서문천명의 머리 없는 시체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우진우는 어안이 벙벙한 남궁은설의 어깨를 잡고 그녀를 포위에서 남궁 가문의 진영 쪽으로 던졌다. 이로써 위기를 모면한 셈이었다.“천명아!”서문명오는 손자의 시체를 보고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순간 노발대발하며 말했다.“이런 개자식! 네가 감히 내 손자를 죽여? 난 너를 갈기갈기 찢어놓을 거야! 죽여라! 반드시 저놈을 죽여라!”서문명오의 명령과 함께 수많은 살인청부업자 고수가 벌 떼처럼 몰려들었다.각종 암기, 독이든 표창, 그리고 손에 든 검들이 다 끊임없이 뿜어져 나왔다.바글바글한 무기들은 마치 폭풍우의 빗방울처럼 하늘에서 급작스럽게 쏟아져 내려 사람들에게 반응할 시간도 안 주었다.그리고 암기들이 분사되는 동시에 살인청부업자들도 각자 자기의 수단들을 드러냈다. 어떤 이들은 높이 뛰어올라 철사 망을 냅다 뿌렸고 어떤 이들은 땅 아래서 튀어 올라오며 습격을 발동했다.순식간에, 유진우는 마치 뭇사람들의 비난 대상으로 된 것처럼 천지사방으로부터 포위공격을 당했다.“다들 얼른 가서 저 사람을 지원해! 금오국의 살인청부업자들을 다 죽여!”남궁을용은 바로 명령을 내렸다.장군 저택에서 정성껏 기른 킬러 팀은 바로 뒤질세라 분분히 적들에게 돌격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양쪽은 다시금 혼전이 폭발하였다.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아까랑 완전히 달랐다.장군 저택의 킬러팀은 원래 실력이 뛰어난 데다가 유진우의 도움이 있으니 더 호랑이에게 날개를 단 격이었다. 잠깐의 틈이 지나, 그들은 금오국의 살인청
이 말을 하면서 덥석 남궁은설의 손목을 잡고 강제적으로, 밖으로 끌고 갔다.“싫어요! 나 안 가요! 놔주세요!”남궁은설은 미친 듯이 발버둥 쳤다.그녀는 이미 유진우에게 빚을 한 번 졌는데 이렇게 또 한 번 빚을 지고 싶지 않았다.안 그럼 남궁은설은 평생 마음 편히 지낼 수 없었다.“은설아. 네 아버지 말이 맞아. 시간이 긴박하니 일단 빨리 가자!”“그래, 은설아! 지금 사람 목숨이 달렸는데 그만 고집을 부려.”“유진우가 죽으면 죽었지, 우리만 목숨을 부지하면 되잖아. 그리고 장군 저택을 위해 희생하면 그건 그 사람 평생의 영광이 될 거야!”이때, 한솔과 유연지 등 사람들은 분분히 남궁은설을 설득했다.만약 유진우의 목숨으로 이 사람들의 안전을 맞바꾼다면 그런 어마어마하게 버는 장사였다.“가려면 당신들이나 가세요. 저는 절대로 안 갈 거예요!”남궁은설은 전혀 권고를 듣지 않았다.“이런 뻔뻔한 년!”남궁보성은 화가 난 나머지 딸의 뺨을 내리치며 욕했다.“지금 네가 떼를 쓸 때가 아니야! 오늘은 반드시 내 말을 들어야 해! 여봐라! 얘를 끌고 가!”남궁은설은 뺨을 맞고 얼떨떨해서 얼굴을 감싸 쥔 채 어찌할 바를 몰랐다.한솔과 유연지는 서로를 한번 바라보고는 동시에 남궁은설의 팔을 잡고 그녀를 질질 끌며 밖으로 나갔다.이 시각, 폐허 위에서 쌍방 세력은 아직도 싸우고 있었다. 양쪽 모두 병마 손실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시체는 하나하나 쓰러졌고 전황은 매우 처참했다.“다 비켜! 너희는 저 사람의 상대가 아니야. 내가 저자를 상대할게!”장군 저택의 킬러 팀 사람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서문명오에게 들이받는 것을 보고 유진우는 조금 마음이 아파서 급히 소리 내 그들을 제지했다.장군 저택의 사람들은 비록 다들 본투비 레벨 고수였지만 상대편의 무도 마스터인 서문명오에게는 그래도 아무런 저항력이 없었다.하지만 양쪽 사람들이 섞여 난투극을 벌이다 보니, 실수로 무고한 사람들을 해칠까 봐 유진우도 제대로 실력을 다 발휘할 수 없었다.그래서 차라리
“유장혁?”그 소리에 주변이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한때 유씨 가문의 천재는 이름을 널리 떨쳤었다. 그런데 10년 전 자금성의 난이 터진 후 완전히 종적을 감추었고 현재까지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그런 그의 이름을 갑자기 들으니 놀랄 만도 했다.“도련님, 지금 농담하시는 거죠? 세자 전하의 생사도 불투명한 데다가 어디 있는지도 아무도 몰라요. 그런 분한테 서경왕의 자리를 맡긴다는 건 너무 터무니없는 소리 아닌가요?”조군영은 어이가 없다는 듯 두 손까지 펼쳐 보였다.“그러게요, 도련님. 제발 현실을 잘 알고 말씀하세요. 세자 전하께 기댈 바엔 차라리 대장군님께 기대는 게 더 낫죠.”고원도 나서서 맞장구를 쳤다.유천우가 자기 자신을 얘기할 줄 알았는데 실종된 지 10년이나 된 사람을 얘기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정말 이보다 더 터무니없는 얘기는 없었다.“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형도 꼭 돌아올 겁니다. 그때 가서 형이 왕위를 이어받아도 문제없죠.”유천우가 싸늘하게 말했다.“도련님, 제가 하는 말이 거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만약 세자 전하께서 이미 돌아가셨으면 어떡해요? 서경왕의 자리를 계속 비워둘 작정인가요?”조군영이 비꼬는 말투로 말했다.“형님 죽지 않았고 멀쩡하게 살아있어요. 그러니까 조 장군님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유천우가 말했다.“살아있다면 지금 어디 계시는 거죠? 왜 나타나지 않는 겁니까?”조군영은 일부러 주변을 두리번거렸다.“형님한테 소식을 전했으니 꼭 올 겁니다.”유천우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도련님, 설마 지금 일부러 시간을 끌고 있는 건 아니죠?”조군영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위왕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퍼지면 서경 전체가 크게 흔들릴 거예요. 기다릴 시간이 많지 않다고요. 지금 당장 그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을 뽑아야 합니다.”“맞아요, 도련님. 대국을 생각하셔야죠!”고원도 나서서 유천우를 설득했다.“형한테 자리를 물려주는 건 아버지의 유언이에요. 지금 명령을 거역하겠단 겁니까?”
사람들이 뒤돌아보니 거친 삼베옷을 입고 상복 모자를 쓴 젊은 남자가 차가운 얼굴로 걸어오고 있었다.남자는 위엄이 넘쳤고 온몸에 살기를 내뿜고 있었다. 오랜 시간 전장을 누빈 조군영과 고원마저도 그를 보자마자 눈살을 살짝 찌푸리더니 표정이 진지해졌다.그 남자는 다름 아닌 유만수의 작은 아들 유천우였다.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유천우는 온 집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다. 하여 예전에는 황당하기 그지없는 일도 많이 저질렀었고 서경의 사고뭉치라 불리기도 했다.그런데 최근 2년 동안 유천우는 갑자기 다른 사람으로 변한 듯 더는 빈둥빈둥 놀지 않고 군에 들어가 열심히 살기 시작했다.처음에 사람들은 유천우가 군대에서 3일도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쨌거나 어릴 적부터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산 도련님이 군대의 혹독한 훈련을 버틴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그런데 뜻밖에도 유천우는 군대에서 자리를 잡았고 공까지 세웠다.짧은 2년 사이에 병사에서 흑용군의 부장으로 성장했다. 든든한 배경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무척이나 놀라운 성과였다.사람들은 그제야 유천우가 응석받이로 자란 도련님이 아니라 군사 천재라는 걸 알게 되었다.“천우야, 드디어 온 거야?”아들을 보자마자 이의진의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겨우 가라앉았던 슬픔이 다시 저도 모르게 밀려왔다.“어머니, 소식 다 들었어요. 제가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유천우는 어머니에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군영과 고원에게 시선을 옮겼다.“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이렇게 몰아붙이는 겁니까?”“그게...”조군영은 고원의 눈치를 슬쩍 봤다가 어쩔 수 없이 말했다.“도련님, 오해하지 마세요. 저희도 대국을 위해서 이러는 겁니다. 현재 서경왕부에 리더가 없어서 누군가 나서서 이끌어가야 합니다. 안 그러면 많은 문제가 생길 거예요.”“맞아요, 도련님. 대국을 생각하셔야죠.”고원은 충성을 다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대국?”유천우는 코웃음을 치고는 더는 두 사람을 거들떠보지 않
“서경 대원수의 직위는 매우 중요합니다. 내부 투표를 거칠 뿐만 아니라 폐하께 보고하여 최종적으로는 폐하의 결정을 받아야 해요. 우리가 마음대로 결정할 수는 없어요.” 이의진의 눈빛이 경계로 가득했다.유태범이 왔을 때 그녀는 처음에는 형제 간의 정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조군영과 고원의 몇 마디 말에 그녀는 갑자기 깨달았다. 일이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유태범은 흑용군에서 유만수 다음가는 위망을 가지고 있었다.표기대장군으로서 그는 많은 심복 장수들을 거느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절반의 병권도 장악하고 있었다.왕이 세상을 떠난 후 가장 큰 이득을 보는 사람은 유태범이 분명했다.가장 중요한 것은 유태범이 지금 이미 자신의 야심을 드러냈다는 점이다.왕이 돌아가신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권력을 탈취하려 하다니, 그녀는 그의 불순한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심지어 유만수의 죽음이 이 자들과 호룡각 잔당들이 암묵적으로 결탁한 결과일지도 모른다!만약 유태범이 병권을 완전히 장악하게 되면 그 결과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무시무시할 것이다.“마마, 급할 때는 권력이 필요하다고 하지 않습니까. 지금 이런 상황에서 어찌 폐하의 결정을 기다릴 시간이 있겠습니까? 우리는 반드시 빨리 국면을 안정시켜야 합니다.” 조군영이 계속해서 말했다.“맞습니다!”고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장수가 밖에 있으면 군령도 받지 않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폐하는 상황을 전혀 모르니 결정을 내릴 수 없습니다. 반드시 우리가 스스로 결정해야 하며 그래야만 소인배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을 수 있습니다.”“폐하에게 보고하지 않더라도 반드시 내부 투표를 거쳐야 합니다. 그래야만 모두가 승복할 수 있어요.” 이의진이 다시 말했다.“투표라니요? 이게 투표할 일입니까? 전 서경을 둘러봐도 대장군님보다 원수 자리에 더 적합한 분이 누가 있습니까?” 조군영이 말했다.“그렇습니다, 왕비마마! 공적으로 보나, 위망으로 보나, 경력으로 보나, 무공으로 보나 어르신을 제외하고는
고원이 갑자기 큰 소리로 외치며 바로 땅에 무릎을 꿇고 세 번 크게 머리를 조아렸다.그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혔고 가까운 사람을 잃은 듯한 모습이었다.비록 똑같이 연기였지만 조군영보다는 훨씬 진실되어 보였다.“표기대장군 도착하셨습니다!”이때 문밖에서 우렁찬 외침이 울렸다.곧이어 금빛 갑옷을 입고 기상이 비범한 중년 남자가 급하게 걸어 들어왔다.이 사람이 바로 일품 표기대장군 유태범이었다!유태범은 표기대장군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유만수의 사촌 동생이기도 했다.유태범은 어릴 때부터 문무를 겸비하고 천부적 재능이 있어 모든 면에서 매우 뛰어났다.만약 유만수가 없었다면 분명 유씨 가문의 가장 빛나는 천재였을 것이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유만수라는 세상에 둘도 없는 영웅 앞에서는 아무리 대단한 천재라도 빛이 바랠 수밖에 없었다.“대장군께 인사드립니다!”유태범을 보자 조군영과 고원은 즉시 가식적인 표정을 거두고 공손히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그들 둘은 모두 유태범을 지지하는 사람들로 진정한 측근 장수들이었다.마치 유만수와 석태혁의 관계처럼 영광도 함께 하고 손실도 함께했다.“형님!”유태범은 두 심복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영당에 들어서자마자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땅에 무릎을 꿇었다.그의 두 눈은 붉게 충혈되었고 입술은 떨리며 얼굴에는 비통함과 분노의 빛이 어려 있었다.“어찌 이럴 수가? 우리 형님이 어찌 돌아가실 수가 있단 말입니까? 도대체 누가 한 짓입니까?!”유태범이 붉은 눈으로 연달아 분노의 외침을 터뜨렸다.“호룡각의 잔당들입니다. 그들이 자객을 부내에 잠입시켜 어젯밤 어르신을 암살했습니다.” 이의진의 얼굴이 흐리멍덩했다.“호룡각?”유태범이 이를 갈며 분노에 차 있다가 즉시 고함쳤다. “누구 없느냐! 즉시 군대를 집결시켜 전 성을 수색하라. 반드시 범인을 체포해야 한다!”“잠깐만요!”이의진이 갑자기 나서서 제지했다.“태범 씨, 매우 비통한 것을 알지만 지금은 아직 일을 크게 만들 수 없습니다.”“형님이 이미 돌아가셨는데 무
이 말이 나오자 조군영과 고원의 안색이 순간 변했다.두 사람이 오늘 온 것은 본래 기세를 과시하려는 것이었는데 뜻밖에도 이의진이 이렇게 강경한 태도를 보일 줄은 몰랐다.입을 열자마자 반역이라는 죄명을 들이대다니.이런 죄가 뒤집어씌워진다면 그들은 아마 왕부의 대문을 살아서 나가지 못할 것이다.“마마, 농담 마십시오. 반역은 사형감입니다. 저희가 아무리 대범하다 해도 그런 일은 감히 못 하지요!” 고원이 연달아 해명했다.“맞습니다. 저희는 왕께 항상 충성을 다해왔는데 어찌 이런 짓을 저지를 수 있겠습니까?” 조군영도 따라서 부인했다.비록 두 사람 모두 그런 야심이 조금은 있었지만 명백히 겉으로 드러낼 수는 없었다.적어도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반역할 생각이 없다면 어째서 갑옷을 입고 부내에 들어오시는 것입니까? 규칙도 모르십니까?” 이의진이 조금도 봐주지 않고 꾸짖었다.그저 이품 장군일 뿐인데 군권이 조금 있다고 감히 왕부 안에서 눈깔을 찌푸리고 있다니.유만수가 살아있을 때 이 둘은 감히 이러지 못했다.“아이고! 제 정신 좀 보세요, 왕부의 규칙을 잊었네요. 마마께서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조군영이 헛웃음을 지었다.이어서 갑옷을 벗고 차고 있던 칼을 내려 왕부의 경비에게 건넸다.“저희가 급히 오느라 깊이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의도치 않은 행동이었으니 개의치마시지요.” 고원이 웃으며 말했고 즉시 갑옷과 칼을 벗었다.이 광경을 보고 이의진의 안색이 비로소 조금 누그러졌지만 어조는 여전히 차가웠다. “갑자기 찾아오신 이유가 무엇입니까?”“왕께서 자객의 습격을 받아 위험한 상황이라는 소식을 듣고 저희 둘이 특별히 문안드리러 왔습니다.”고원이 가식적으로 말했다.“소식통이 꽤나 빠르군요. 하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이의진이 차갑게 말했다.“늦었다니요? 무슨 뜻입니까?” 두 사람이 의아한 척했다.이의진은 설명할 가치도 느끼지 못하고 몸을 돌려 영당으로 향했다.왕부 밖은 비록 동정이 없었지만 왕부 안에는 이미 흰 만장이 가득
“알겠습니다. 제가 경비병 신분을 마련해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들어가시기 전에 먼저 변장을 하셔야 합니다.” 손도운이 결국 타협했다.비록 위험이 있긴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았다....정오 무렵, 서경 왕부 안.비록 유만수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봉쇄되었지만 여전히 적지 않은 관리들이 소식을 듣고 찾아왔다.어떤 이들은 비통한 마음으로 조문을 왔고 또 어떤 이들은 다른 목적을 품고 있었다.“보국대장군 도착!”“운미대장군 도착!”왕부 문 앞에서 두 번의 외침이 들렸다.곧이어 갑옷을 입은 체격이 우람한 중년 남자 둘이 각각 친병들을 대동하고 걸어 들어왔다.이 친병들은 모두 허리에 장도를 차고 있었고 보기에도 험상궂었다.온 이들은 바로 이품 관직인 보국대장군 조군영과 운미대장군 고원이었다.“두 분, 왕부에 들어오시기 전에는 반드시 갑옷과 무기를 해제하셔야 합니다.”한 왕부 친위가 조군영과 고원을 막아서며 동시에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흥! 난 밖에 나올 때 갑옷을 벗지 않아. 꺼져!” 조군영이 노하여 꾸짖었다.“조 장군, 이건 왕부의 규칙입니다. 따라주시기 바랍니다.”왕부 친위가 말했다.“규칙? 나한테 감히 규칙을 운운한 건가?”조군영이 왕부 친위의 얼굴을 때리며 소리쳤다. “네가 무슨 자격으로 감히 규칙을 들먹이며 나를 압박하느냐? 죽고 싶나?”“조 장군, 소인도 명령을 받들어 행하는 것뿐입니다.” 왕부 친위는 동요하지 않았다.“헛소리 작작 하고 비켜. 그렇지 않으면 네 목을 벨 것이다!”조군영이 갑자기 칼을 뽑아 왕부 친위의 목에 겨누었고 그의 모습은 매우 포악하고 극도로 횡포했다.“제 머리를 베신다 해도 규칙은 지켜야 합니다.” 왕부 친위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이 개자식! 관짝을 보기 전에는 정신을 못 차리겠구나!”조군영은 마침내 화를 내며 칼을 거세게 들어 왕부 친위의 팔을 향해 내리쳤다.“멈추세요!”이때 한 소리의 여성의 호통이 울렸다.삼베 흰옷을 입은 이의진이 석태혁 일행을 데
이 순간 유진우의 눈이 피를 뿜을 듯 분노로 가득 차 있었고 살기가 솟구쳤다.비록 예전에 아버지와 약간의 거리감이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는 점차 아버지의 선택을 이해하게 되었다. 특히 아버지가 중병에 걸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소식을 들은 후에는 그동안 품었던 그 작은 분노마저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그는 단지 호룡각의 일을 완전히 해결한 후 아버지의 마지막 시간에 효도를 제대로 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뜻밖에도 둘이 만나기도 전에 아버지가 암살당해 돌아가셨다. 이 충격은 그에게 너무나도 큰 것이었다.“창공!” 유진우가 갑자기 분노에 찬 고함을 지르며 손을 뻗어 창공보검을 불러들이고는 밖으로 달려 나가려 했다. 아버지를 죽인 원수와는 하늘을 함께 이고 살 수 없었다. 그는 반드시 호룡각의 잔당들을 모조리 섬멸해야만 했다!“전하! 제발 진정하십시오!” 유진우가 이성을 잃을 것 같은 모습을 보고 손도운이 급히 그를 막아서며 침착하게 조언했다. “호룡각은 준비를 하고 온 것입니다. 만약 전하께서 이렇게 무모하게 뛰쳐나가신다면 복수는커녕 오히려 자신까지 위험에 빠뜨리실 수 있습니다!”“비키세요!” 유진우의 눈이 붉게 충혈된 채 창공검의 칼날을 손도운의 목에 바로 겨누었다. 예리한 기운이 피부를 스치며 상처를 내자 피가 천천히 배어 나왔다.“전하! 저를 죽이시더라도 전 전하를 막아야만 합니다. 제가 어찌 전하께서 죽으러 가시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있겠습니까!”“왕께서는 이미 돌아가셨습니다. 전하께 더 이상의 불상사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될 것입니다!”손도운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대로 유진우 앞을 가로막은 채 죽음도 불사하는 자세를 취했다.유진우는 이를 악물었고 그의 손에 든 검이 미세하게 떨렸다. 몇 초간의 대치 끝에 그는 깊은 숨을 내쉬고 마침내 검을 내렸다.손도운의 말이 맞았다. 그는 지금 냉정해져야만 했다. 유만수가 죽었으니 왕부가 분명 큰 혼란에 빠졌을 것이고 이때
다른 처녀들도 모두 이마를 바닥에 찧으며 진심 어린 간청을 했다.이 광경을 본 유진우는 넋이 나갔다.노란 옷 처녀의 말은 그의 귀를 때리는 듯했다.지옥 같은 일을 겪고도 이 아이들이 자신이 아닌 천하의 모든 약자들을 생각하다니... 상상도 못 했다.이런 원대한 뜻과 깨달음은 그조차도 이루지 못할 것이었다.이청성이 말했듯, 이들은 어둠 속에 있으면서도 빛을 향하는 처녀들이었다.귀하고 감탄할 만한 일이었다.누가 여자가 남자만 못하다 했는가?진정한 대의 앞에서 이 여자들이야말로 하늘의 절반을 떠받치고 있었다.이런 의로운 용사들이 있는데 어찌 서경이 부흥하지 않을까? 어찌 천하가 평안하지 않을까?“오빠, 결정해요. 받아주지 않으면 저 애들은 살아갈 희망조차 잃을 거예요.” 이청성이 진지하게 말했다.“이 선택을 후회하지 않겠어요?” 유진우가 엄숙하게 물었다.“절대 후회하지 않겠습니다!”모든 소녀들이 한목소리로 대답했다.“좋아요! 허락하죠!”유진우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오늘부터 특별 훈련을 시작할 거예요. 견뎌낼 수 있다면 여러분들의 원대한 뜻을 이루도록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하지만 견디지 못한다면 편한 곳에서 평안히 살도록 해요.”“은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노란 옷의 소녀가 힘찬 목소리로 말했다.“은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나머지 소녀들도 따라 외쳤다.유진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이청성을 바라보았다. “당분간 네가 돌봐. 내일 저애들의 거처를 정하도록 해.”“알겠어요.”이청성이 살짝 미소 지으며 소녀들을 데리고 떠났다.일행이 막 나가자 손도운이 급하게 달려 들어왔다.그의 표정이 매우 당황스러워 보였고 큰일이라도 난 듯했다.“전하! 큰일 났습니다!”유진우를 보자마자 손도운은 ‘쿵’하고 무릎을 꿇고 충혈된 눈으로 말했다. “왕부에 변고가 생겼습니다. 왕께서 자객의 암살로 돌아가셨습니다!”“뭐라고요?”이 말을 듣자 유진우는 벼락을 맞은 듯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잠시 후 정신을 차린 유
“오빠, 급한 건 알지만 내 말 좀 끝까지 들어봐요.” 이청성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 아가씨들은 지금 오빠만 믿고 있고 목숨의 은인으로 여기고 있어요. 받아들이면 좋은 점이 많을 거예요. 예를 들어, 오빠가 외로울 때...”“농담하지 말고 요점이나 말해요!” 유진우가 짜증스럽게 말했다.“알았어요, 그럼 솔직히 말할게요.”이청성이 웃음을 거두고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장혁 씨, 사실 이 처녀들은 보기 드문 인재예요. 제가 이미 선별했는데 모두 영리하고 의지가 강해요. 조금만 가르치면 반드시 큰 인물이 될 거예요.”“무슨 뜻이에요?” 유진우가 눈을 가늘게 떴다.“밀사의 중요성은 잘 아실 거예요. 특히 여자 밀사는 어떤 면에서 타고난 장점이 있죠. 이 처녀들을 밀사로 키우면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이청성이 말했다.“말은 쉽지, 밀사 하나 키우는 데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해요. 전 지금 제 몸 하나도 챙기기 힘든데 그럴 여유가 어디 있어요?” 유진우가 고개를 저었다.솔직히 그는 이 처녀들이 평온하게 살기를 바랐지, 이용당하거나 장기말이 되는 걸 원치 않았다.“밀사에게 가장 중요한 건 충성심인데 그들은 이미 그걸 가지고 있어요. 장혁 씨가 그들을 구해줬고 장혁 씨의 빛이 그들의 어두운 세상을 비춰줬죠. 저애들은 장혁 씨를 신처럼 여기고 있어요.”“시간과 노력은 걱정하지 마요. 장혁 씨가 직접 가르칠 필요 없이 좋은 스승만 찾아주면 돼요. 장혁 씨 곁의 손도운이라면 아주 적합할 것 같은데요.” 이청성이 살짝 미소 지었다.“그건 청성 씨 생각이고 저 애들한테는 물어봤어요?” 유진우가 물었다.“당연히 물어봤죠. 모두 하겠대요. 필요하다면 목숨도 바칠 수 있다고요.” 이청성이 말했다.“불쌍한 사람들인데 그럴 필요까지야...” 유진우가 눈썹을 찌푸렸다.“장혁 씨, 어둠 속에 있어도 빛을 향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직접 물어보는 게 어때요? 그들의 생각을 들어보세요.” 이청성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제발 저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