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는 민시우와 사이가 틀어진 일로 기분이 언짢아 오랫동안 이진과 연락할 겨를이 없었다.시우가 온갖 사과와 비위를 맞추자 정희도 화해에 동의하였다. 그러나 이때 이진이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근데 이 말투 정말 아픈 사람 맞는 거야?’아마 그 광팬들 때문에 몸살을 앓는 것 같았다.정희는 이진을 애틋하게 여기는 한편 그녀를 재촉하였다.“나인 줄 알면서 빨리 와서 문 안 열어줘? 나 지금 디저트를 들고 너희 집 별장 밖에 있어.”“왔어?”정신을 차린 이진은 뇌보다 몸이 더 빨리 반응하고 재빨리 문 쪽으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언론의 주목을 받는 것을 막기 위해 이진은 별장의 하인들에게 모두 휴가를 주고, 그녀가 직접 음식을 준비하였다.다만 생각지도 못했던 일인데, 정희도 요 며칠 동안 요리를 연구하고 있었고, 가져온 디저트가 바로 그녀가 직접 만든 것이다.이진의 시선은 정교하게 세팅되어 있는 디저트 위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잠시 의심스러운 듯 눈살을 찌푸렸다.“이거 정말 먹을 수 있는 거야?”“그게 무슨 뜻이야?”정희가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나 이진의 좋은 솜씨를 떠올리며 기세가 한풀 꺾였다.“어쨌든 여러 번 해봤으니 먹을 수는 있을 거야…….”‘뭐가 그리 불확신해!’이진의 입꼬리가 살짝 움직였다. 정희를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정희가 그녀에게 너무 깊은 인상을 남겼기 때문이다.그녀가 기억하는 유일한 정희 요리 경험은 그리 아름답지 않았다. 앞에 있는 이 정교한 디저트는 겉만 있고 맛은 아니다.이진은 한숨을 내쉬며 정희의 간절한 시선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억지로 디저트를 집어 들었다.‘어쨌든 정희의 마음이야, 한 입도 맛보지 않을 수 없어.’겨우 한 입에 이진은 먹은 것을 하마터면 내뱉을 뻔했다. 얼굴에는 뭐라고 묘사하기 힘든 표정이다. ‘이게 어디 디저트 맛이야? 디저트라고 해도 며칠 밤을 새운 유통기한이 지난 디저트일 거야!’이진은 억지로 삼켰다. 물 반 컵을 마셔 겨우 넘기고, 손을 정희에 어깨에 닿았다.
다른 사람이면 이 상황에서 아마 참지 못하고 진작에 손을 날렸을 것이다.이진은 정희를 무시하고 얼굴에 남은 밀가루를 두드리며 윤이건을 바라보았다.“밥 먹었어요? 주방이 이렇게 되어서 밥 하기는 무리이고, 아니면 우리 나가서 먹을까요?”“내 생각엔…….”정희는 또 무슨 말을 하려다가 참고 다시 입을 꼭 다물었다.두 사람의 포위 공격과 매서운 시선까지 더해져 정희는 억울함을 감추지 못했다. 정희가 시우를 바라보았다. “시우 씨도 내가 형편없다고 생각해요?”
다시 백그라운드로 돌아가자 임만만은 핸드폰을 꼭 껴안고 황급히 이진에게 달려왔다.“대표님, 누가 디자인을 유출했는지는 모르나 인터넷에 누군가가 우리보다 먼저 이 주얼리를 공개해서 지금 우리 디자인이 표절한 거라고 난리도 아닙니다.”이 일에 관한 뉴스가 이미 검색어에 올랐다.지난번과 달리 상대방의 발표 시간은 AMC의 기자회견 전이였다. 이진의 디자인을 좋아하는 팬들도 표절이라고 인정하고, 댓글에는 온통 네티즌들이 그녀에 대한 실망감을 호소하며 떠들썩했다.이진은 침묵하고 얼굴은 굳어 있었다. 아무런 감정도 보이지 않았다.“대표님, 제가 바로 사람을 보내서 회사를 철저히 조사할까요?”디자인을 유출할 수 있는 사람은 단지 손을 거친 회사 내부자들일 뿐이다.정말 조사하자면 결코 작은 규모의 조사가 아니다.여론이 그들에게 남긴 시간은 결코 그렇게 많지 않다. 만약 대중들에게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면 파문이 AMC의 전체 주식시장에 영향을 미칠 것이고, 시간이 오래 지날수록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모르는 것이다.지금은 가능한 한 회사의 손실을 최소화하는 것이 맞다.이진은 다시 핸드폰을 임만만에게 건네주었다.“일단 공장에 작업을 멈추라고 지시하고 나머지는 내가 해결할게.”“알겠습니다, 대표님.”임만만은 분부대로 진행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어쨌든 대표님 말을 믿고 따르는 거야. 대표님이 방법이 있다고 하니 문제는 해결될 수 있어.’임만만이 떠난 다음 이진의 전화가 이어 울렸다.예상대로 정민우 전화이다.“이진 대표님, 인터넷 기사는 또 어떻게 된 겁니까? 해명이 필요한 것 같네요.”표절 파문이 가라앉은 지 며칠 지나지 않아 또 디자인 도용이라는 오명이 붙었다. 설령 정민우가 이진을 믿는다 해도 이렇게 몇 번은 너무 무리이다.“제 말 좀 들어보세요, 디자인은 누가 흘렸는지 모르지만 결코 남의 아이디어를 도용한 건 아닙니다…….”“이진 대표님, 내가 듣고 싶은 건 당신 해명이 아닙니다, 아시겠나요?”말이 끝나기도 전에 정민우가 먼저 말을
디자인 유출의 근원을 밝혀냈으니 이어진 조사는 어렵지 않았다. CCTV를 통해 정말 한사람을 잡았다. 디자인 원고 인수인계 당일, 창고에 몰래 나타난 여직원이 있었는데 떠나기 전 그녀의 손에는 분명 몇 장의 그림이 쥐어져 있었다.뿐만 아니라 여직원 개인 계좌에 갑자기 정체불명의 큰 돈이 들어왔다. 여직원의 행동이 얼마나 의심스러운지 지금 보유한 증거만으로도 충분히 해명이 되었다.원래 원한을 품고 있던 이기태는 할 말이 없었다. 체면이 말이 아니었는지 심문까지 이진에게 맡겼다.이진의 사무실로 압송된 여직원은 손발을 함께 쓰며 발버둥쳤다. 거의 울 지경이었다.“대표님, 저 아니에요! 디자인 훔친 거 저 정말 아닙니다!”“그런 가요?”CCTV에 증거가 남아있기에 이진도 여직원의 말을 믿지 않았다.이진은 입술을 꼬이고 앞에 놓인 핸드폰을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가진 게 아니라면서, 그럼 이건 뭔가요?”CCTV에는 이날 여직원의 일거수일투족이 선명하게 담겨 있었다.“대표님.”여직원은 이진의 손에 CCTV가 남아있다는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순간 여직원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입술까지 떨었다. 그녀는 한 걸음 나아가서 변명하려고 애썼다.“이진 대표님, 제 말 좀 들어보세요…….”“지금 이 상황에 무슨 변명이 필요한가요?”이진은 냉소했다. 묘하게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조롱조로 덧붙였다.“내가 기억한 바로는 회사는 직원이 승인 없이 창고에 들어갈 수 없다고 명시했는데요, 회사의 규정을 먼저 어긴 건 그쪽이예요, 그 외에 당신의 행동이 회사에 얼마나 큰 손실을 입혔는지 아시나요?”이진의 본심은 여직원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게 아니었다. 표정이 굳어지자 이진은 눈을 가늘게 떴다“한 마디만 물을게요. 누가 시켰나요?”“누가 시킨 건 아닙니다.”억울하고 겁에 질린 여직원은 흐느껴 울었다.“제가 회사 디자인을 가져다 돈 바꾼 거 인정하지만 기자회견 때 그 디자인은 아닙니다, 저도 바보 아니에요, AMC에 불리한 짓을 하면 저를 해치는 것
구현이 정말 무엇을 했다고 해도, 절대로 이진의 앞에서 인정하진 않을 것이다.구현은 내키는 것이 있는 것처럼 헛기침을 하고는 입을 열었다.“대표님, 제 딸이 곧 하교할 시간이라 이만 가봐야 될 것 같아요. 만약 다른 일이 없으시다면 전 이만 돌아가 볼게요.”“어차피 다른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에요.”이진은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곧 경직된 표정을 지은 구현을 무시한 채 계속 말했다.“구현 씨가 말씀하시지 않는다면, 사람을 안배해 조사해 볼 수밖에 없겠네요.” 구현은 이진의 말에 허허 웃고는 몸을 돌렸는데, 곧 두려움에 가득 찬 표정을 지었다.‘이 대표님은 분명 알고 계시면서, 날 가지고 노시는 거야! 그렇다면 나도 가만히 있을 수 없어!’이어 이진이 이진이 여직원을 해고하는 행동에 구현은 이런 생각을 더욱 굳혔다.하지만 아직 모든 것이 시작되지도 않았다는 걸 구현은 모르고 있었다.이진은 여직원을 해고시키는 명령을 내렸을 동시에, 루트더러 몰래 구현의 행동을 지켜보라고 했다.결국 구현이 디자인부에 심어 놓은 스파이와 연락하자마자 그 소식이 이진의 귀에 전해졌다.보고하러 온 루트는 울분에 차 말했다.“대표님, 이 오래된 직원들의 행동은 정말 하나같이 악랄해요. 차라리 이 증거들을 가지고 모두 해고해버리는 게 낫겠어요!”“조급해할 필요 없어.”이진은 입꼬리를 올리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분명 누가 뒤에서 몰래 사태를 조종하고 있을 거야. 그리고 아마 내가 아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아.’이튿날 아침, 이진은 회의 시간에 특별히 디자인부의 직원들을 회의실로 불렀다. 이번 시즌의 신제품을 다시 설계한다는 명의로, 이진은 그들더러 가장 짧은 시간 내에 신제품을 만들어 놓으라고 지시 내렸다.이로 인해 디자인부 직원들은 하루 종일 쉴 새 없이 바빴다.이어 발생한 일은 이진의 예상대로였다.이날 저녁, 구현과 이야기를 마친 디자이너가 회사에 나타나 컴퓨터 앞에서 바삐 돌아쳤다.미리 감시실에 매복해 있던 이진은 이 장면에 웃음을 터뜨렸다.이진
헬렌을 해결한 후, 또 다른 일이 이진을 기다리고 있었다.디자인 원고가 유출된 일을 조사하는 과정에, 이진은 이기태가 AMC와의 협력관계를 이용해, AMC의 명의로 사적인 일을 맡았다는 것을 발견하였다.애초에 GN그룹과 협력하기로 결정했을 때, 이기태가 AMC의 명성을 손상시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이진은 계약 조항들을 섬세히 작성하였다. 이진은 이기태가 적어도 계약 조항은 고려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결국 이기태를 과대평가한 것이다.그날 저녁, 이진은 별장으로 돌아와 이건과 함께 화목한 밤을 보냈다.이튿날 이진은 빠르게 컨디션을 회복하고는,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회사에 출근했다.이진은 곧 프로젝트부에 지시를 내려 이기태와의 협력을 중지했다.이 소식을 들은 이기태는 벼락을 맞은 것만 같았다.곧 정신을 차린 이기태는 차를 몰고 가장 빠른 속도로 AMC로 달려갔다.차량이 가득한 거리를 지나감에 따라, 이기태의 분노는 점점 더 커졌다.스포츠카가 AMC의 건물 아래에 멈춰 서더니, 이기태가 운전석에서 내렸다.이기태는 주위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건물로 뛰어들었다.하지만 현재 두 회사는 협력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데스크 직원은 당연히 그를 안으로 들이지 않았다.“이기태 씨!”이기태가 안으로 들어온 것을 발견한 데스크 직원은, 재빠르게 달려들어 이기태를 막았다.“이기태 씨, 죄송하지만 대표님의 허가 없이는 들어가실 수 없으세요.”“웃기시네! 난 이진의 동업자인데 왜 못 들어가?”이기태는 안 그래도 화가 나 있었는데, 데스크 직원의 말을 듣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이기태는 정말 미치지 못해 환장할 노릇이었다.“내가 경고하는데, 당장 비키는 게 좋을 거야!”“이기태 씨!”그 직원은 이기태가 멋대로 뛰쳐들어갈까 봐, 데스크를 지키고 있던 직원에게 눈짓을 보냈다.그러자 그 직원은 핸드폰을 들어 어딘가에 전화를 걸려고 했다.마침 이때 엘리베이터가 열리더니 만만이 안에서 걸어 나왔다.이진은 협력을 취소하면 이기태가 분명 찾아와
오히려 이기태는 이득을 보았을 뿐만 아니라, AMC의 고정 협력사를 조종하려 했다.이진은 목을 가볍게 들고 되물었다.“이기태 씨, 먼저 본인 걱정이나 하시는 게 어때요? AMC와 협력을 취소한 후 당신에게 뭐가 남기라도 해요?”이 말을 들은 이기태는 화가 나다 못해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계속 이곳에 남아있는다면 나만 손해야.’이기태는 험상궂은 얼굴을 하며 AMC를 떠나 GN그룹으로 돌아왔다.사무실로 돌아온 이기태는 책상 위의 서류들을 모두 바닥에 내던졌다.하지만 이 정도로는 그의 분노를 가라앉히지 못했다.이기태는 책상 위의 꽃병과 진열품들을 모두 바닥에 내던졌다.한바탕 소란이 일어난 후, 소식을 듣고 달려온 백윤정은 사건의 경과를 모두 알게 되었다.“이기태, 내가 진작에 이진을 믿지 말라고 말했었잖아. 이것 봐, 결국 또 당하고 말았잖아.”“입 다물어!”안 그래도 화가 잔뜩 난 이기태는, 백윤정의 말을 듣고는 또 하나의 꽃병을 바닥에 내던졌다.“당신이 뭔데 끼어들어? 여자 주제에 사업이 뭔지 알기나 해?”꽃병이 땅에 떨어지자 산산조각이 났고, 그 조각들은 사방으로 튀었다.백윤정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선 후, 마음속의 분노를 가라앉히고는 이기태를 노려보았다.“내가 모르긴 해도, 당신이 만족할 만한 협력자는 얼마든지 찾아줄 수 있어! 지금 물건들을 집어던진다고 뭐가 달라지기라도 해?”이기태가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을 보내자, 백윤정은 호흡을 가라앉히고 말을 이어갔다.“당신이 GN그룹의 주식을 나한테 준다면, 새로운 협력자를 찾아줄게.”언뜻 들으면 쌍방이 모두 밑지지 않을 장사다.하지만 이기태는 방금 이진에게서 큰 손해를 보았기에, 백윤정이 자신의 손에서 뭔가를 가져가려 하자 이성을 유지할 수 없었다.이기태는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윤정아, 우리는 어쨌든 부부야. 부부 사이에 그렇게 따질 필요는 없지 않아? 게다가 당신이 그 주식들을 가지고 뭘 할 수 있기나 해? 그리고 당신이 말한 협력 측이 정말 GN그룹에 도움이 될
백윤정의 주선을 통해 이루어진 식사 자리에서, 두 사람은 매우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다.협력에 관한 일은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식으로 성사되었다.백윤정이 홍진구라는 큰 인물을 소개해 주었기에, 이기태는 GN그룹의 주식을 흔쾌히 백윤정에게 나누어 주었다.어쨌든 그 주식들은 이영에게 넘겨줄 것이다. 게다가 이영이 아무리 철이 없다고 해도 자신의 친딸이니 손해 볼 장사는 아니었다.AMC쪽은 그들의 화기애애한 분위기와 사뭇 달랐다. GN그룹과 협력을 종료한 것이 부정적인 영향을 초래하진 않았지만, 갑작스럽게 내린 결정이라 불편한 점이 좀 많았다.이진은 새로운 협력사를 찾는 데다가, 디자인에도 참여하였기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던 이건은 마음이 아팠다.이건은 곧 이진의 어깨를 잡고 그윽하게 그녀를 응시하였다.“이진아, 며칠 동안 회사 일 때문에 고생한 거 알아. 그래도 일이라는 건 쉬면서 해야 돼. 참, 내가 회사 직원들을 조직해 캠핑을 가려고 하는데, 자기 회사 직원들도 데리고 함께 가지 않을래?”“캠핑이요?”이진은 재밌는 이야기라도 들은 듯이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들었다.최근 회사 일 때문에 바삐 보냈던 것은 이진뿐이 아니었다.그녀와 함께 야근을 해온 직원들도 장시간의 업무로 피곤함에 지쳐 있었다.캠핑으로 직원들의 쌓인 스트레스를 풀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함께 모여 업무에 대해 토론할 수도 있으니 꽤나 좋은 제안이었다.‘이 기회를 통해 회사 직원들과 가까워질 수도 있을 거야.’이진은 잠시 생각을 하더니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좋아요.”“장소는 내가 정할 게.”이진이 캠핑에 참여할 인원을 집계한 후, 이건은 모두의 비행기 티켓은 물론 모든 비용을 도맡았다. 캠핑 겸 여행이기도 했다.다른 일정이 있었던 몇 명을 제외하고, 대부분 인원들은 이번 활동에 참여하였다.이튿날, 이건은 두 회사의 직원들을 위해 비행기 한 대를 전세 냈다.도중에 YS그룹의 직원들은 이건을 칭찬하며 이진을 부러워했다.그 말을 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