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님.”만만은 묻고 싶었던 것이 가득했으나, 결국 빙빙 돌려서 말했다.“대표님의 상태가 너무 안 좋아 보여서 걱정이에요. 요 며칠 동안 제대로 쉬지 못하신 거예요? 그리고 그 디자인은.”‘설마 정말 대표님이 직접 설계한 건가? 아니면 대표님이 이렇게 피곤한 모습으로 나타날 리가 없잖아.’이진은 만만이 하려는 말을 대충 짐작하였는지, 만만을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요 며칠 동안 제대로 쉬지 못하긴 했어. 조금이라도 빨리 디자인을 완성하기 위해, 디자이너와 밤새 고민을 했었거든. 안 그러면 아직도 디자인을 완성하지 못했을 거야.”만만이 진짜 묻고자 했던 것은 이게 아니었다.“또 할 얘기가 있는 거야?”이진은 만만에게 계속 입을 열 기회를 전혀 주지 않았다.이진의 피곤함이 가득 찬 얼굴을 보자, 만만은 차마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보석 디자이너가 대표님이든 말든, 완벽한 디자인을 가져오신 건 정말 대단하신 거야. 게다가 대표님이 진짜 디자이너라 할지라도, 말하지 않으시는 건 분명 따로 이유가 있으실 거야. 난 비서로서 대표님의 명령에 따르기만 하면 돼. 대표님께서 말씀하실 생각이 있으시다면 언젠간 나한테 말해주실 거야.’만만은 이런 생각에 회의실에서 나와 이진에게 빈 공간을 남겨주었다.이진이 겨우 지탱하던 몸은 만만이 떠나자마자 무너지고 말았다.며칠째 불규칙한 식사에 일에 몰두한 것도 모자라, 수면 부족까지 겹쳐 이진의 몸이 더 이상 견디지 못했던 것이다.이진은 머리가 어지러워 미간을 비비며 얼른 차를 몰고 병원으로 달려갔다.사실이 증명하다시피 몸을 맘대로 써버리면 대가를 치러야 했다.한바탕 검사를 마친 후, 의사는 이진이 과로로 인한 저혈당이라고 말해주었다. 의사는 이진이 안도하는 표정을 보고 부드럽게 말했다.“너무 걱정하실 필요는 없어요. 저혈당이 큰 문제는 아니라, 제가 말한 대로 건강을 챙기신다면 곧 나아지실 거예요.”이진도 의사로서 저혈당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에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사실 이진은 다름 아니라 이
이진은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아, 고개를 돌린 채 헬렌을 쳐다보지도 않았다.이진이 협조하지 않으려고 하자, 헬렌은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헬렌은 갑자기 미친 듯이 이진의 이불을 들추었는데, 그 속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게 되었다.그리고 이진이 알아차리기 전에, 이불 속에 손을 넣어 도면 뭉치를 꺼냈다.공교롭게도 도면의 내용은 바로 이진이 디자인한 작품의 초고다.비록 초고지만, 헬렌을 놀라게 하기엔 충분했다.그 디자인은 헬렌이 기억하는 니키의 스타일과 정말 똑같았다.“아직도 본인이 니키 씨가 아니라고 부정하시는 거예요? 그럼 이 그림들은 어떻게 설명하실 거예요?”헬렌은 마치 이진의 약점을 잡기라도 한 듯이, 잘난 체하며 몸을 곧게 펴고는 이진을 내려다보았다.“이 디자인마저도 니키 씨를 모방한 거라고 하실 건 아니죠?”“당장 내놔요!”이진은 잠깐 사이에 가방이 빼앗겨 기분이 불쾌했는데, 헬렌의 태도에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진은 인내심이 바닥났지만, 애써 참으며 차가운 목소리로 경고했다.“제가 니키든 아니든 당신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어요! 이곳은 제 병실이지, 당신이 소란을 피워도 되는 곳이 아니에요. 당장 나가지 않으시면 사람을 찾아 당신을 쫓아낼 겁니다.”“그래요?”헬렌은 오기 전에 이미 이진과 끝까지 싸울 준비가 되어있어서, 이진의 협박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더욱이, 헬렌은 자기의 손에 이진의 가장 큰 약점이 쥐어져 있다고 생각했다.헬렌은 손에 든 디자인 원고를 날리며 득의양양하게 웃었다.“당신이 니키라는 신분이 들통나는 게 두렵지 않다면 맘대로 하시죠. 전 당장 이 소식을 모두에게 알리고 싶어 미칠 것 같거든요. 그리고 당신이 가장 걱정되었던 윤이건 씨한테도 모두 말해줄 겁니다.”이진은 이건의 이름을 듣게 되자 눈빛이 조금 흔들렸다.이것을 알아차린 헬렌은 자신의 추측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에 더욱 득의양양했다.‘이진 씨는 내가 만나 본 젊은이들 중에서 가장 똑똑하긴 해. 하지만 너무 어린 게 문제야.’헬렌은
이 비서는 이진을 한번 보고는, 얼른 헬렌의 손목을 잡고 병실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이진은 그제야 마음이 놓였지만 긴장되기도 했다.“이건 씨.”“먼저 푹 쉬어.”이진이 머뭇거리는 것을 알아차린 이건은, 긴 손가락으로 이진의 입술을 막았다.“아직 밥 못 먹었지? 내가 나가서 사 올까?”“좋아요.”이진이 망설이며 대답하자, 이건은 바로 병실을 나섰다.‘이건 씨도 분명 눈치채셨겠지.’이진은 이건을 속인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이건 씨라면 나를 아무리 믿어도 내가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것은 눈치채셨을 거야.’어쩌면 이진은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잘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한편 이 비서한테 잡힌 채 병원의 뒤정원으로 끌려간 헬렌은 완전히 미쳐버렸다.“절 왜 이곳에 데려온 거죠? 도대체 무엇을 할 생각이에요? 윤이건 씨는 어디 계신 거예요? 전 당신 같은 부하 말고 윤이건 씨와 직접 얘기할 겁니다.”“여기서 기다리세요. 제가 당신을 데리고 이곳에 온 건 대표님의 명령입니다.”이 비서는 전혀 신견 쓰지 않은 채, 헬렌이 몸부림을 칠수록 그녀의 손목을 잡던 손에 더 힘을 주었다.헬렌은 곧 자신의 힘으로 이 비서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잠시 복종할 수밖에 없었다.윤이건은 이진과 다르기 때문이다.‘이진 씨는 나한테 약점이 잡혀 쉽게 움직이진 못하실 거야. 하지만 윤이건 씨는 달라.’헬렌은 진작에 부하들을 시켜 이건에 대해 알아보았다.그 결과 헬렌은 이건이 얼마나 매서운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어쩌면 이건의 유일한 약점은 이진뿐일지도 모른다.헬렌은 마음을 가라앉히고는 사방을 둘러보다가 누군가를 발견하고는, 이 비서가 방심한 틈을 타 신속하게 달려가 비꼬듯이 말했다.“윤 대표님은 방금 저희 대화에 관심 없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왜 굳이 비서를 시켜 절 이곳에 데리고 온 거죠? 혹시 당신도 이진 씨의 비밀에 관심이 생긴 거예요?”헬렌은 팔짱을 낀 채 이건의 약점을 잡았다고 생각하고는 잘난 척을 했다.‘어쩌면
“궁금하신 게 그거예요?”이진은 예상하지 못한 질문에 멍하니 눈앞의 이건을 보고 있었다.‘내가 물어볼 기회를 줬는데도 안 물어보다니, 일부러 화나지 않은 척하시는 걸까?’“이게 작은 일이야?”이진이 더 생각하지 전에, 이건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지난번에도 불규칙적인 식사로 입원했었으면서, 고작 며칠 사이에 또 자기 몸을 이렇게 무너뜨린 거야? 입원이 자랑스러운 일은 아니고, 왜 자꾸 입원을 하는 거야.”이건은 한바탕 이진을 혼내고는 또다시 뭔가를 물었다.“내가 잘못 기억하지 않았다면, 출장을 갔다고 하지 않았어? 최근에 AMC에 출장을 갈만한 일은 없었다고 들었는데.”‘역시 물어볼 줄 알았어.’ 이진은 잠시 생각해 보더니, 더 이상 숨기는 것도 의미가 없다고 느꼈다.‘지금 이건 씨한테 알려주지 않아도, 신제품 발표회 날이 되면 분명 들통날 거야.’이진은 심호흡을 하고는 입을 열었다.“제가 출장을 간건 사실이지만, 이건 씨가 생각하는 그런 출장이 아니라 급한 불을 끄러 간 거예요. 저희 회사가 최근 해외의 한 보석 브랜드 측과 협력을 하기로 했는데, 상대방은 저희 회사의 디자이너들이 설계한 디자인들을 모두 맘에 들어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이 합작을 계속하기 위해 제가.”이진은 잠시 머뭇거리고는 마음을 졸이며 말했다.“협력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제 친구한테 부탁해 이 디자인을 완성시킨 거예요. 그래서 며칠 동안 밤을 새우게 된 거예요.”“그래?”‘디자인과 관련된 일인가 보네?’이건은 약간 실눈을 뜨며 방금 헬렌이 떠벌렸던 말을 되새겨 보았다.헬렌의 한 말에 이진이 한 말을 더하자, 이건은 이진의 비밀이 무엇인지 대충 예상할 수 있었다. ‘아직도 비밀이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는데, 정말 놀라울 정도야.’“절 안 믿으시는 거예요?”이건이 대답이 없자, 이진은 불안한 마음에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내가 이렇게까지 말한 이상, 이건 씨라면 알아들으셨겠지?’이건은 몰래 치켜든 입꼬리를 내리고는 이진의 아랫
민우의 과장된 칭찬이 끝나자, 양측은 즐거움 가득한 마음으로 계약을 체결했다.더불어, 민우는 특별히 AMC에게 장기적인 협력 기회를 제공했다.이것은 민우가 소속된 회사에서 처음으로 국내 기업과의 장기적인 합작을 약속한 것이었다.신제품 발표회 당일, AMC는 의심의 여지 없이 많은 관심을 받았다. 몇몇 기업들은 AMC를 통해 민우의 회사와의 협력 기회를 모색하려 했다. 야심가 이기태도 마찬가지다.이기태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이진의 능력을 철저히 분석했다. 이기태는 이진을 결코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따라서 이진과 합작 계획을 세웠다.‘어쨌든 두 회사가 함께 진행할 프로젝트도 몇 개 있잖아. 이진의 손에 있는 돈은 남에게 주는 것보단 아버지인 나한테 주는 게 더 유리해.’AMC와 민우가 합작을 성공적으로 이어가자, 이기태는 이진의 도움을 받으려는 생각을 확고히 했다.‘이렇게 좋은 기회를 내가 놓치고 있을 리가 없잖아.’이기태는 마음을 정하고는 바로 이진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화가 연결되지 않자, 이기태는 포기하지 않은 채 여러 번 전화를 걸었다.마침내 인내심이 바닥난 이진은 전화를 받고 물었다.“이기태 씨,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아빠한테 무슨 말 버릇이야?”이기태는 이진이 이렇게 나올 줄은 몰라, 하마터면 욕설을 퍼부을 뻔했다.하지만 자신의 목적을 떠올리고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진아, 예전 일들은 모두 아빠가 잘못했어. 네가 제때에 계좌에 관한 일을 말해주지 않았다면, 그 두 사람이 나 몰래 이런 짓을 벌인 걸 꿈에도 몰랐을 거야.”이기태는 백윤정의 개인 계좌에 관한 일을 알게 된 후부터, 다시는 같은 식탁에서 밥을 먹지도 않았다.‘내가 바보도 아니고, 백윤정이 몰래 회사를 차린 것마저 나한테 숨겼다면, 분명 또 다른 비밀도 있을 거야.’이영과 백윤정한테 줄곧 잘해줬던 이기태는, 순간 두 사람이 이진보다 못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이기태는 이런 생각을 하고는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이진아.”“지금 그 얘기를
특히 이기태는 이진의 일방적인 말만 듣고 이영을 버리려고 했다.이영은 가슴 아파하며 이기태를 실망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아빠, 아직도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어? 이진이가 없었다면 우리 가족이 이렇게 될 리가 없어. 맨날 엄마 탓하면 뭐가 달라지기라도 해? 차라리 이진을 탓해, 이진이 아빠 회사에 손을 대지 않았다면 아빠도 굳이 걔한테 도움을 청할 필요가 없잖아.”“네가 뭘 알아?”이기태는 짜증 섞인 말투로 말했다.이기태는 진작에 이영이 이진과 SY테크놀로지의 기술을 쟁탈한 일을 들었다.자신감이 넘치던 이영은 그래봤자 이진에게 지고 말았다.두 딸 중 이진이야말로 정말 능력이 있는 아이였다.‘내가 애초에 이진이한테 좀 더 잘해줬더라면, 이진이도 나와 사사건건 맞서지 않았을 거야. 아마 내 유능한 조수가 되어 내 회사를 물려받았을 지도 몰라.’이런 생각에 이기태는 백윤정을 잡아먹을 듯한 눈빛으로 노려보았다.‘모두 이 여자가 중간에서 이간질해서, 판단을 잘못해 이진처럼 좋은 딸을 놓치게 된 거야!’이기태는 곧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내가 경고하는데, 앞으로 내가 하는 짓엔 일률로 끼어들지 마. 누가 감히 쓸데없는 일에 참견하면 이 집에서 내쫓을 거야!”이기태가 하려는 일은, 하루라도 빨리 이진의 마음을 되돌리는 것이다.이진은 능력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이진의 뒤에는 윤이건이 있고 손꼽히는 각종 회사들과 친분이 있었기에, 이진과의 사이를 완화시키는 건 절대로 밑지는 장사가 아니다.한바탕 싸우고 난 이기태는, 생각이 바뀌기는커녕 오히려 이진을 따르기로 마음을 굳게 먹었다.이기태는 이런 생각을 품고 특별히 회의를 미루고 점심시간에, 직접 요리해 도시락을 싸고는 AMC로 갔다.그 목적은 자연히 이진의 앞에 나타나 그녀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것이다.아쉽게도 이진을 만나기도 전에, AMC의 프런트 데스크 직원에게 가로막혔다.이기태는 어쨌든 재경 신문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기에, 프런트 직원이 그를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었다.그러나 규칙
“네.”만만은 조심스럽게 이진의 표정을 살펴보았다.‘대표님도 모르고 계셨나 보네. 그렇다면 이기태 씨가 혼자 보내온 것인데, 그 목적이 뭘까?’이전 이기태와 있었던 불쾌했던 일을 생각하자, 만만은 경계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대표님, 제가 이기태 씨의 최근 동향을 알아볼까요? 갑자기 변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왠지 불길한 느낌이 들어요.”이진은 눈썹을 찡긋거리고는 문득 어젯밤의 통화를 떠올렸다.‘이기태가 내 비위를 맞추며, 점심에 도시락까지 싸왔다는 건.’이진은 눈을 가늘게 뜨고 도시락을 만만에게 주었다.“이건 네가 먹어. 먹기 싫으면 다른 방법을 생각해서 해결해. 아직 해야 되는 일이 있으니 이만 나가 봐.”“이기태 씨에 괜해 조사할까요?”만만은 최초의 목적을 잊지 않았다.이진은 눈앞의 도시락을 힐끗 보고는 깔끔하게 대답했다.“그럴 필요 없어, 내가 알아서 해결할 수 있어.”‘조사하는 것보다 전화를 하는 게 더 효과적이야.’이기태의 목적이 무엇이든, 그가 이 정도까지 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성의를 보인 것이다.만약 이기태가 통화 중에 거짓말을 한다면, 이진도 더 이상 이기태를 대꾸하지 않으려고 했다.사무실 문이 닫히자, 이진은 곧이어 이기태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화가 연결되는 순간, 전화기 너머에서 놀란 듯한 말투를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이진아, 아빠가 준 도시락은 받았어? 내가 임 비서를 시켜 너한테 주라고 했는데, 어때? 어렸을 때와 맛이 똑같지?”“그것들은 제가 어렸을 때 좋아하던 음식이지, 지금은 안 좋아해요.”이진은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어, 이기태의 열정을 무시하였다.이기태는 한동안 말을 하지 않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이진아, 아빠한테 전화한 이유가 뭐야?”“이 말은 제가 당신한테 물어봐야 할 것 같네요.”이진은 비아냥거리며 대답하고는, 머릿속으로 뭔가를 생각하더니 날카로운 말투로 물었다.“어제저녁에는 밥 먹자고 연락하시고, 지금은 또 도시락까지 싸오신 건 도대체 무슨 목적이신 거죠? 혹시
이진은 근심이 가득 쌓여, 마침 위로가 필요하던 참이었다.이건이 먼저 나서서 위로해 주자, 이진은 기세를 몰아 이건의 목덜미를 껴안았다.그리고 최근 자신을 괴롭히고 있는 걱정거리를 모두 이건에게 들려주었다.“이기태 씨가 합작한 후에 다른 짓을 벌일까 봐 두려운 거야?”이건은 단번에 이진의 생각을 알아차리고는, 잠시 생각해 보고는 말을 이어갔다.“난 이기태 씨가 그런 행동을 벌이진 않을 것 같아. 두 회사가 합작하는 건 한배에 탄 거나 마찬가지인데, 그렇게 회사를 중요히 생각하는 사람이 자기 회사를 가지고 널 끌어내리진 않을 거야.”가장 중요한 것은 이기태에게 그럴 용기가 없을 것이다.‘만약 이기태가 이진을 끌어내리려 한다면, 이진이 손을 쓰기도 전에 내가 이기태한테 그 후과를 제대로 맛보게 해줄 거야.’이건은 고개를 숙이더니 이진의 이마를 가로막은 긴 머리를 넘기고는,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물론, 이건 내 생각일 뿐이야. 최종적으로 결정을 내려야 할 사람은 너야. 만약 이기태 씨와 합작을 하는 게 내키지 않는다면, 내가 YS그룹을 이용해 우리 자기만을 위한 프로젝트를 만들어 줄 수도 있어.”이진은 그의 말에 말문이 막혔다.이건의 말에 동의할 것은 아니지만, 이진에게 엄청난 안정감을 준 건 사실이다.‘이건 씨도 있는데, 내가 굳이 두려워할 건 없잖아?’이진은 그제야 컨디션을 회복할 수 있었다.하지만 이진이 GN그룹과의 합작에 관해 결정을 내리기도 전에, 보석 브랜드 측의 초대를 받아 보석 패션쇼에 참석하게 되었다.이진은 아름다운 얼굴에 허리가 가늘고 다리가 길쭉한 데다가, 모델 못지않은 인지도를 가지고 있었다.민우와 몇 명의 대표들은 한차례 협상을 거쳐, 전문적인 모델을 청하는 것보다는 이진을 직접 패션쇼에 출전시키기로 결정 내렸다.그들은 이진을 설득하기 위해, 엄청난 조건을 제기하기도 했다.물론 이진의 결정을 좌우 지한 건 그들의 조건이 아니라, 패션쇼에 참석한 또 다른 보석 디자이너의 이름이었다.그 사람은 이진
결혼식 날짜는 8월 초로 정해졌으며, 국내와 해외에서 각각 한 차례씩 진행될 예정이다.웨딩드레스 가게에서 청혼한 이건의 이야기는 곧 널리 퍼지게 되었다. 오늘날까지 두 사람에 관한 이야기가 인터넷에 널리 퍼지고 있었다.이건이 바라던 대로, 전 세계의 사람들은 이진이 윤이건의 아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두 사람의 결혼식은 더욱 화려하고 시끌벅적했다.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두 사람은 친한 지인들 외에 회사 직원들만 초대했다.윤이건의 가족들은 보기 드물게 모두 현장에 참석했지만, 이진 쪽은 텅 비어 있었다.한편 이씨 가문은 여전히 다툼이 지속되고 있었다.“이것 봐! 내가 애초에 뭐라 그랬어? 이진 그년이 양심 없는 년이라고 몇 번을 말했는데, 이제 알겠지? 그년은 결혼식처럼 중요한 날조차 아버지인 당신을 부르지 않았어. 이기태, 정말 당신이 뭐라도 되는 줄 알아?”백윤정은 노발대발하며 욕설을 퍼부었다. 그녀에게는 예전의 자애로운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앞으로 달려들어 이기태를 때리려고 들었다.이기태는 화가 난 마음에 백윤정을 밀어냈다.“좀 저리 꺼져!”‘그래봤자 이진이는 내 친 딸인데, 지금 일이 이 지경이 된 건 모두 백윤정 때문이잖아. 백윤정이 중간에서 이간질을 하지 않았다면, 내가 이진이를 그렇게 대했겠어? 백윤정이 자꾸 끼어들어 모순을 만들어내지 않았다면, 이진도 날 이렇게까지 미워하진 않았을 거야.’물론 이기태의 눈에는 그저 이익밖에 없다. 그가 후회하는 건 오직 이진을 통해 이건의 도움을 받지 못한 것뿐이다.지금의 이기태는 백윤정과 사이가 완전히 틀어지고 말았다. 두 사람은 매일 싸우기 바빴다.이기태는 결혼식이 끝날 때가 되자 뻔뻔스럽게 이진에게 전화를 걸었다.“이진아.”“이기태 씨, 전에 제가 전화를 끊을 때 했던 말을 잊으신 거예요?”이기태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이진의 차가운 목소리가 전화 너머 들려왔다. 그는 등골이 서늘해지더니 그제야 기억난 듯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이진, 너!”
보통 사람이라면 분명 시언의 모습에 마음이 약해졌을 것이다.하지만 이진은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이진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그의 말을 듣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한마디 내뱉었다.“제가 사랑하는 남자는 윤이건 씨밖에 없다는 것을,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어요.”시언은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팠다. 그리고 힘겹게 한 마디 물었다.“제가 몇 년 더 빨리 나타났다면.”“그래도 결과는 똑같아요.”이진은 그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또박또박 말했다.말을 마친 뒤, 이진은 더 이상 시언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이건을 향해 걸어갔다.애초에 이진은 시우가 이 연회를 통해 정희와의 결혼 소식을 발표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이진은 마침내 시우의 의도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몸과 마음이 피곤했던 이진은 이건의 가슴에 기대어 말했다.“이건 씨, 저 해외여행 가고 싶어요.”“해외여행?”이건은 원래 뭔가를 계획하고 있었기에, 얼마 후 이진을 데리고 출국할 생각이었다.이진이 먼저 제기한 이상, 이건도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그는 활짝 웃으며 이진을 껴안고 말했다.“그래, 자기가 가고 싶은 곳이라면 어디든 좋아.”이를 위해 이건은 비행기 티켓을 예약하고 모든 일들 미뤘다. 하지만 이건의 원래 계획까지는 아직 시간이 좀 남았다.YS그룹에는 이건이 직접 처리해야 될 큰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이건은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이진을 데리고 해외로 여행을 간 것이다.이 소식을 전해 들은 YS그룹의 고위층들은 미치기 직전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이건에게 전화를 걸어 돌아와 달라고 부탁을 했다. 어쨌든 프로젝트는 끝내고 가야지.하지만 이건의 대답은 그저 한마디뿐이었다. 결혼식을 마친 후.결혼식을 마친 후, 이건은 분명 이진과의 아이를 돌보는 데 집중할 것이다.그러기에 앞으로 일에 전념하는 시간은 점점 적어질 게 뻔했다.옆에 있던 이진은 한쪽에 놓인 핸드폰이 끊임없이 울리는 것을 보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내가 너무 충동적인 건 아니겠지? 이건 씨는 날
이진은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내가 남학생을 꼬드겼다는 건 무슨 말이야? 아예 기억조차 나지 않는 데다가, 시우 씨의 동생인 건 아예 모르던 일이야. 도대체 이 일이 나랑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야?’이진은 화를 내며 이건을 노려보았다.“제가 언제 그런 행동을 했다고 그래요. 전 그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기억이 안 나거든요.”“정말이야?”이건은 일부러 장난친 거다. 사실 메시지를 보고 불쾌한 기분이 조금 들었는데, 이진의 반응은 그를 매우 기쁘게 했다.이건은 입술을 오므리며 말했다.“그렇다면 자기 마음속에는 나밖에 없다는 거지?”‘그럼 더 이상 시간 낭비하지 않아도 되겠네. 시우 이놈은 겁도 없네, 감히 내 아내더러 자기 사촌 동생을 위로해달라는 거야?’이건은 차갑게 웃으며 이진의 핸드폰을 가지고 시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시우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이진 씨, 제가 보낸 메시지를 보셨나요? 저도 어쩔 수 없어서 연락을 드린 거예요. 이 녀석이 술에 취해 밤새 이진 씨의 이름을 부르더니,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또.”“또 뭐 했는데?”이건은 그의 말을 끊은 뒤 질투 가득한 말투로 말했다.“네 사촌 동생이 대단한 사랑꾼인가 봐.”‘윤이건?’전화 너머의 시우는 하마터면 심장이 터질 뻔했다.“이건아, 이진 씨 핸드폰이 왜 네 손에 있는 거야? 난.”“나랑 이진이가 부부인 걸 잊은 거야?”이건은 더 이상 시간 낭비하기 싫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내 아내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지는, 내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그럼 내 아내를 좋아하는 사람마다 직접 가서 위로해 줘야 되는 거야? 내가 동의할지 말지는 둘째 치고, 이진이 정말 간다고 해도 네 동생이 괜찮아질 리는 없어.”마침 뭔가 생각난 이건은 잠시 망설이더니 협박하듯이 말했다.“술에서 깨면 네 동생한테 전해. 어제 같은 일이 또다시 일어나면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이건은 다른 남자들이 자신의 아내에게 들러붙는 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이
‘윤이건? 윤이건이 어떻게?’시언은 도저히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그와 시우는 사촌 형제이기에, 이건과 시우가 친한 친구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소문에 의하면 이건은 이미 결혼했고 사랑하는 아내가 있다.‘설마.’시언은 갑자기 깊은 생각에 잠겼다.이건과 이진이 어떤 사이든, 이진이 이건을 얼마나 의지하든, 그는 자신이 이진을 좋아한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시언은 몸 옆에 늘어진 손을 꽉 주먹 쥐었다. 이때 정신을 차린 그는 앞으로 나아가, 이건의 앞길을 막고 환한 미소를 선보였다.“윤 대표님, 전 민시언입니다. 시우 형의 사촌 동생이에요. 시우 형한테서 얘기 많이 들었는데, 이렇게 만나 뵙게 되니 너무 영광입니다. 혹시 이진 씨랑은.”“이건 씨, 나 돌아가고 싶어요.”시언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이진은 취기를 못 이겨 남자의 가슴에 얼굴을 가볍게 문질렀다.이건의 차가운 표정은 순식간에 눈 녹듯이 녹아내렸다.이건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 몸을 숙여 이진을 안았다. 그리고 시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이진을 조수석에 태웠다. 세심하게 안전벨트를 맨 후 무심코 뒤쪽을 스쳐보자, 시언은 방금 자세를 유지한 채 제 자리에 서 있었다.“이건 씨, 얼른 돌아가요.”이진은 아직도 이건에게 바짝 달라붙어 있었다.이건은 시선을 돌려 이진의 희고 정교한 얼굴을 보자 계획이 하나 떠올랐다.‘그동안 결혼식 하나 제대로 치르지 못했는데, 반드시 전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결혼식을 선물해 줄게.’이건이 직접 이진을 데려간 것을 목격한 시언은, 정신을 잃은 듯이 축 처진 채로 시우의 아파트를 찾았다. “민시언?”시우는 갑작스럽게 나타난 시언을 보자 조금 놀란 듯했다.“네가 이곳엔 왜 온 거야?”시언은 쓴웃음을 지으며 물었다.“형, 술 한잔하실 래요?”두 사람은 오랜만에 만났기에 술 한잔하는 것쯤은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다.하지만 시우는 정희와 함께 임신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최근 술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았다.시언의 상
하룻밤 푹 자고 난 뒤, 다음날 아침 이진은 호텔에서 출발해 학교로 갔다.서현도 마찬가지로 이번 만남을 무척 중시하였다. 그녀는 이진을 만나기 위해 일부러 수업을 오후로 미뤘다.카페에 앉은 서현은 커피잔을 만지작거리더니 웃으며 말했다.“이 대표님, 제가 오만해 보이긴 해도, 평범한 작가들과 비슷한 꿈을 꾸고 있거든요. 제가 쓴 시나리오를 대중들에게 알려, 널리 선보이는 게 제 꿈이에요. 하지만 제가 글을 쓸 때에는 저만의 요구가 있기에, 미리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요.”서현의 요구는 별로 지나치진 않았다. 그저 세훈이 제기했던 요구처럼 원칙적인 문제에 관한 것들이다. 이 방면의 문제는 서현이 말하지 않아도 이진이 끼어들지 않을 것이다.이진이 바로 동의하자 서현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이진의 시원시원한 성격은 전에 그녀를 찾아온 사람들과 사뭇 달랐다.서현은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어제 너무 지나친 행동을 보이지 않아서 다행이야. 안 그러면 이진 씨처럼 훌륭하신 분을 놓치게 되었을 지도 몰라.’ 세부사항을 토론한 후, 이진은 세훈과 서현을 데리고 원작자를 찾아가 판권을 따냈다.그 후 배우의 캐스팅으로부터 촬영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엄청나게 심혈을 기울였다. 배우들의 캐릭터 소화는 물론, 배우들 사이의 호흡은 날이 갈수록 좋아졌다.몇 달 후, 영화는 이건의 도움으로 성공적으로 상영되었다.의 원작 팬이 워낙 많았고, 호기심으로 본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그러나 영화관을 나설 때 모두 영화 속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정도로 영화에 푹 빠져 있었다.개봉 첫날, 전국의 영화관 티켓은 모두 매진되었다.심지어 대부분 영화관에서는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영화를 예정했던 시간보다 더 오랫동안 상영하였다.개봉한지 한 달이 되었을 때, 는 수십 년간 1위를 차지했던 영화를 뛰어넘기도 했다.이 영화의 촬영 제작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도 엄청난 인지도를 가지게 되었다.그들은 마치 다크호스처럼 갑자기 대중들의 시선 속에 나
이진은 말을 마친 후 정희를 데리고 성큼성큼 떠났다.“이진아, 넌 저분이 동의할 거라고 확신하는 거야?”한참을 걸은 뒤 정희가 호기심에 물었다.이진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서현이 딱 봐도 설득하기 어려운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재능이 있는 작가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데, 굳이 모욕을 당하면서 저 여자를 선택할 필요는 없잖아.’정희는 잠시 생각해 보더니 말했다.“내가 연예계에 아는 사람이 꽤나 있는데, 그냥 이서현 말고 다른 작가 소개해 줄까?”“아직은 필요 없어.”이진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아마 날 거절하지 않을 거야.”이진이 거절한 이상 정희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정희가 포기한 채 택시를 잡으려던 찰나, 앞에서 엄청난 비주얼을 가진 키 큰 남학생이 두 사람에게 달려왔다.“예쁜 누나들, 어디 가시려는 거예요?”두 사람을 향해 한 말이지만, 남학생은 줄곧 이진을 훔쳐보고 있었다.이 모습을 지켜보던 정희는 몰래 웃음을 터뜨렸다.“왜요? 학생, 지금 대시하는 거예요?”생각이 들통난 남학생은 부인하기는커녕 겸연쩍은 듯 손을 들어 뒤통수를 긁었다. 그리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누나들은 저희 학교 학생이 아닌 것 같네요.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연락처라도 주시면 안 될까요?”“두 사람 연락처를 모두 받아 가시려는 거예요? 생각보다 욕심이 많으시네요.”정희는 눈썹을 찡긋거리며 장난을 쳤다.그러자 남학생은 볼이 빨갛게 달아오르더니, 용기를 내어 이진에게 핸드폰을 건넸다.“누나, 전화번호 주시면 안 될까요? 절대로 귀찮게 굴진 않을 게요!”‘지금 충분히 귀찮은 것 같은데.’이진은 눈썹을 찌푸리더니 깔끔하게 거절했다.“죄송하지만, 안될 것 같네요.”난생처음 대시를 시도해 본 남학생은, 자신이 이렇게 무자비하게 거절당할 줄은 몰랐다. 남학생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실망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옆에 있던 정희는 차마 이대로 지나치기 힘들어, 가방에서 이진의 명함을 한 장 꺼내 남학생의 손에 쥐여 주었다.“연락처는
이진은 자신의 가장 진실된 생각을 전한 것은 물론, 판권을 반드시 따내려는 결심으로 원작자를 두 번이나 찾아갔다. 결국 원작자는 그녀에게 한 번 만날 기회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이진은 이번 기회를 제대로 이용하기 위해, 전에 조사한 자료들을 들고 사람을 찾으러 대학으로 향했다.그녀 스스로 배역을 연구하는 것은 턱없이 부족했기에, 이진은 전문적인 작가를 찾아야 했다. 현재 대학교 교수인 이서현이 가장 좋은 선택지였다.출발하기 전에 이진은 특별히 학교의 포털 사이트를 통해, 서현의 수업시간표를 찾았다. 그리고 교장에게 부탁하여 수업에 참석할 수 있게 되었다.이진의 신분을 알게 된 교장은, 단번에 그녀의 의도를 알아차리고는 두 손 두 발 들어 환영했다.한편 이 일을 알게 된 정희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애초에 이진이 연예계에 투자할 의향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평소에 경제 뉴스밖에 안 보던 이진이 정말 영화를 찍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진심이었던 거야? 왜 갑자기 영화를 찍으려는 거지?’정희는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 이진에게 전화를 걸었다.“이진아, 네가 의 판권을 따내 영화로 제작한다고 들었는데, 정말 사실이야?”“내가 언제 거짓말한 적 있어?”비행기 탑승 시간이 10분밖에 남지 않았기에, 이진은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끊었다.“나중에 다시 얘기해, 지금.”“너 지금 공항이야?”눈치 빠른 정희는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마침 한가하던 정희는 이진을 따라 서현을 찾으러 갈 생각이었다.‘우리 이진이가 갑자기 영화를 찍다니, 어떻게 된 일인지 내 눈으로 확인해 봐야겠어.’정희는 결정을 내린 듯이 말했다.“이진아, 좀만 기다려 금방 갈게!”정희는 줄곧 생각나는 대로 움직이는 성격이라, 이진은 핸드폰을 거두고 방금 정희의 말을 신경 쓰지 않았다.비행기는 한 시간도 안 되어 착륙했다.이진은 택시를 타고 바로 학교로 향했다. 그리고 사전에 알아보았던 수업시간표를 따라 강의실을 찾았다. 분명 수업이 시작되기까지 시간
이진은 별장을 나선 뒤 홀로 국장의 집으로 향했다.공교롭게도 여태껏 이진을 만나보고 싶어 하던 가정의도 국장의 집에 있었다.하지만 연이은 실패로 가정의도 이진의 성격을 알 수 있었다.이진은 엄청 겸손한 데다가 이건의 아내다. 그녀가 어떤 신분이든 간에, 외부에 자신의 실력을 알릴 생각이 없다면, 가정의도 더 이상 묻진 않을 것이다.두 사람은 자리에 앉은 후, 국장의 건강에 대해 자세히 토론하기 시작했다.옆에 있던 국장은 조용히 듣고 있다가, 때때로 몇 마디 맞장구를 치자 분위기는 매우 화기애애했다.이진은 경계심을 내려놓고 많은 의견을 제기하였다. 국장은 모든 의견들을 자세히 기록하였다.모든 이야기를 마친 후, 국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눈물을 글썽였다.“모두 이진 씨 덕분이에요. 이진 씨가 아니었다면 이 늙은이가 고질병 때문에 죽을 때까지 고생했을 거예요. 어쩌면 어느 날 갑자기.”“국장님, 곧 괜찮아질 테니 너무 걱정하진 마세요.”이진은 국장의 말을 얼른 끊은 뒤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게다가 할아버지의 친구분이시니, 제가 당연한 일을 한 것뿐이에요. 전엔 제가 생각이 짧은 데다가 일 때문에 바쁘다 보니, 줄곧 시간을 내지 못했는데 너무 탓하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어요.”“탓하다니, 그럴 리가 있겠는가.”‘나한테 이렇게 큰 도움을 줬는데, 고마워하기도 모자랄 판에 탓할 리가 있겠어?’마을의 개발 프로젝트는 정상적으로 진행되었다.이진도 마찬가지로 세훈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이 대표님, 제가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워낙 조건이 후해 거절할 이유를 찾지 못하겠더라고요.”진심 어린 이야기를 마친 후, 세훈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을 이어갔다.“하지만 저한테 특별한 요구가 하나 있는데, 이 대표님께서 허락해 주셨으면 좋겠어요.”“어떤 요구죠?”이진은 호기심에 눈썹을 찡긋거렸다.세훈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이 대표님께서 절 좋게 봐주시는 건 알고 있어요. 하지만 영화가 방영되었을 때 괜한 추측들이 떠돌아다니는 것을 방
오 감독은 전략을 바꾸기로 결정 내렸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진에게 사과하기로 한 것이다.이진은 전에 말했던 대로 마음에 들었던 감독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작품마저 몇 개 없는 신인 감독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오 감독은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나처럼 유명한 감독을 마다하고 신인 감독과 합작한다는 거야? 내가 그동안 받은 상이 얼마인데! 이진 그년은 분명 사람 보는 눈이 삐뚤어진 거야! 신인 감독 주제에 얼마나 잘 찍을지 똑똑히 지켜봐야겠어.’오 감독은 불만이 가득했으나 자신의 앞날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이진에게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모두 이진이 예상했던 대로다. 전화를 받은 순간, 이진은 만만에게 눈빛을 보내 모 플랫폼에서 생방송을 시작했다.이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던 오 감독은, 애써 웃으며 이진의 용서를 구하는 척했다.“이진 씨, 전엔 제가 너무 무례한 행동을 보였던 것 같네요. 의 촬영을 양세훈한테 맡길 생각인 거죠? 제가 양 감독을 소개해 줄 테니, 실시간 검색어의 글들을 내려 주시면.”“글을 내려달라고요?”이진은 오 감독이 뜻밖의 비장 카드라도 쥐고 있는 줄 알았다. 그가 이 정도로 파렴치한 인간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지금 말 같지 않은 조건으로 나와 협상하려는 거야?’이진은 마음속으로 차갑게 비웃고는 비꼬듯이 입을 열었다.“오 감독님, 본인이 지금 어떤 처지인지 잊으신 거예요? 지금 저한테 조건을 제기할 것이 아니라 사과를 하셔야죠. 제가 양세훈 감독님을 선택한 건 사실이지만, 제 방식대로 촬영에 참여하도록 설득시킬 것이니, 당신의 도움 따위는 필요 없어요.” “당신, 좋은 말로 할 때 그냥 넘어가지 그래?”오 감독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모욕을 당했기에, 이대로 참고 있을 수 없었다. 결국 위선적인 모습을 집어치우더니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내가 굽신거려주니까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아? 네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 모두 윤이건 덕분이라는걸, 내가 모를 줄 알아? 아마 윤 대표한테 들러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