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지 못하는 게 아닙니다.”대치하는 동안 정임은 억울한 웃음을 지으며 이영이가 정신을 잃고 화를 내기 전에 바로 손을 거두었다.거기에는 책상 밑 손바닥에 숨긴 녹음펜도 포함했다.그러나 지금 이영의 전부 시선은 앞에 놓인 계획서뿐이라 정임의 다른 움직임을 전혀 몰랐다.카페를 떠나면서 둘 다 즐거운 듯했다.그러나 양심의 가책을 느낀 정임은 AMC로 돌아가는 길에 머리에 쓴 모자를 벗은 적이 없었다. 회사 1층 문턱에 발을 드리는 순간 뒤에서 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정임 씨?”귀에 익은 목소리, 듣기만 해도 누군지 알 수 있었다.정임은 자기도 모르게 긴장해졌다. 그는 잠시 숨을 조절하고 몸을 돌렸다. AMC 사람들은 임만만이 이진의 심복이며 그녀가 가장 믿는 비서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만약 임만만에게 들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이진도 알게 될 것이다.이상하게 보이지 않도록 정임은 재빨리 침착함을 되찾고 입을 열었다.“임만만 비서님, 무슨 일 있나요?”“네.”겨우 맞수라고 할 수 있는 회사에 보낸 사람, 임만만은 이젠 상대하기도 지겨워졌다.임만만은 건성으로 웃으며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그 계획서 말인데 대표님 뜻은 좀 더 얘기해 보려는 것 같은데 오전 급하게 가서 비서인 제가 대신 전해드리는 겁니다.”“대표님이 절 찾으셨어요?”정임은 짐짓 놀라는 척하며 미안한 기색을 보였다. 그리고 말을 돌렸다. “아까 전화가 와서 자리를 비웠습니다. 계획서는 어떻게 된 건가요?”‘설마 이진이가 그를 의심한 건가?’임만만은 그의 얼굴의 미세한 표정 변화를 한눈에 보고 조용히 말했다.“긴장할 필요 없어요, 그 계획서 대표님이 생각해보았는데 넘기기 전에 직접 확인하고 수정할 부분이 있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정임 씨가 계획서를 다시 대표님께 가져다줘야겠어요.”이 말에 정임의 안색이 완전히 변했다. 아까 카페에서 이미 이영이한테 넘겼는데 다시 이진에게 가져다주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무슨 일이세요? 어디 아파요?”정임의 표정이 왜 그런
루트의 연락을 받은 이진은 뭔가 알아차린 듯이 물었다.“그렇다면 정임 씨한테 의뢰를 한 사람이 저희 회사 직원인 거예요?”‘덕분에 내부의 스파이를 잡아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되는 건가?’루트는 뭔가 안 좋은 예감이 들어 안절부절못하며 말했다.“대표님.”“걱정 마세요.”이진은 호흡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예상 밖의 일이긴 하지만, 해결할 방법은 있으니 루트 씨는 계속 정임 씨의 행동을 주시하고 계세요. 무슨 일이 생긴다면 바로 저한테 연락 주세요.”‘정임의 뒤에 숨어있는 진짜 스파이는.’이진은 차갑게 웃으며 루트와의 대화를 끝내고, 또 한 통의 전화를 걸었다.“회의를 열 것이니, 당장 각 부서 책임자들에게 연락해.”반 시간이 지난 후, 커다란 회의실에는 각 부서의 책임자들이 모여 앉았다.회의실에 가장 먼저 들어선 사람은 이진이었다.이진은 차가운 눈빛으로 자리에 앉은 사람들을 훑어보고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오늘 여러분을 이 자리에 부르게 된 이유는, 최근 회사 내부에서 발생한 문제와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에 대하여 토론하기 위해서예요. 이미 여러 주주분들도 관련소식을 들으셨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최근에 이기태 씨는 자신의 회사로 저희와 여러 차례 프로젝트를 둘러싸고 갈등이 있었습니다. 만일 여러분 중에 이 문제에 대한 제안이나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언제든지 제게 말씀해 주시길 바랍니다.”이진은 말을 마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을 떠났다. 회의실에 남은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이게 다야? 지금 이걸 회의라고 하는 거야?’유독 구석에 앉은 주주가 고개를 숙인 채 이진이 했던 말을 되새기고 있었다.이진이 이 회의를 소집한 목적은 스파이를 시험하기 위해서다.이진은 회의실을 나서자마자 승연에게 연락하여, 시시각각 GN그룹을 감시할 것을 요구했다.이번에도 이진의 생각이 맞았다.그날 오후, 승연이가 전화를 걸어오더니 다소 흥분한 말투로 말했다.“사부님! 역시 사부님의 생각이 맞았어요! 그
이영은 대답을 듣기도 전에 득의양양한 기색을 띠며 이진에게 다가갔다. “이진아, 네가 이길 것이라고 너무 확신하진 마. 괜히 좀 이따 나한테 지기라도 하면 얼마나 창피하겠어?”“백윤정 씨가 너한테 회사를 넘겨주기 전에 사업을 제대로 가르쳐 주진 않으셨나 봐?”이진은 이영과 말을 섞지 않으려고 했으나, 계속 자신의 앞에서 잘난 척하는 이영의 모습이 정말 꼴 보기 싫었다.이진은 웃음을 터뜨리고는 이영에게 다가가 말했다.“상대를 얕잡아 보지 않는 게 좋을 거야.”이진은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반면 이영은 멍하니 이진이 떠나는 뒷모습을 보더니 얼굴이 일그러졌다.그러나 이영은 곧 침착한 모습을 되찾았다.‘AMC의 기획안이 내 손에 있는데, 네가 그깟 쓸모없는 종잇조각 하나로 날 이길 수 있을 것 같아?’이영은 턱을 높이 쳐들고는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난 이미 경고했으니까, 좀 이따 나한테 져도 모두 네 탓이야.’이 일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던 이진은 SY테크놀로지의 대표인 유해와 만났다.이 기술을 따내기 위해 이영은 물론 이진도 큰 심혈을 들였다.이진은 이 기술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SY테크놀로지의 기술자들과 식사를 나누기도 했다.이 기회를 통해 이진은 적지 않은 내부 정보를 파악했으며, 유해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이영과 달리 유해와 이진은 식사 자리에서 꽤나 즐겁게 이야기를 나눴다.만약 불필요한 규칙들이 사라진다면, 유해는 당장 이진과 합작을 할 것이다.정식 입찰에서 유해는 먼저 이진에게 기획안을 발표할 기회를 주었다.‘내가 먼저 하면 이따가 재밌는 구경을 놓치게 될 거야.’이진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는 다급해 보이는 이영을 보며 느릿느릿 입을 열었다.“유 대표님, 저기 계신 이영 씨가 엄청 조급해 보이시는데, 먼저 이영 씨의 회사에서 준비한 기획안을 보시는 게 어때요?”“그게.”유해는 망설이며 이영을 쳐다보았다.“이영 씨, 괜찮으시겠어요?”“물론이죠!”상황은 이영이 바라던 방향으로 흘러가고
회의장 내의 이진은 준비한 기획안에 관한 설명을 마쳤고, 전화를 끊은 이영은 마침내 현장으로 돌아왔다.하지만 전화를 끊은 이영은 기분이 더 불쾌해져, 이진을 잡아먹을 듯한 눈빛으로 노려보았다.한쪽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던 유해는 더욱 이영을 아니꼽게 보았다.‘애초에 이영 씨가 찾아와 합작을 제기했을 때부터 왠지 모르게 걱정되었는데, 역시 내 예감이 틀리지 않았네. 게다가 이진 씨는 기획안이 표절 당했는데 전혀 당황하기는커녕, 오히려 전에 제기한 내용과 다르고 더욱 완벽한 기획안을 꺼내시다니.’이진이 기획안의 설명을 마치자, 정신을 차린 유해는 칭찬 가득한 눈빛을 이진에게 보냈다.그 눈빛은 마치 당장 이진과 합작을 체결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유해는 진지하게 고민하는 척하며 다른 두 책임자와 눈빛을 교환했다.그리고 목을 가다듬고는 입을 열었다.“두 분께서 준비하신 기획안 모두 너무 참신하네요. 하지만 종합적인 방면을 고려한다면, AMC그룹에서 보여준 기획안이 저희 회사의 요구에 더 부합되는 것 같아 저희 SY테크놀로지는 최종적으로.”“잠시만요!”유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영이 입을 열었다.지금 이영은 분노에 휩싸인 것만이 아니었다. 이영은 입찰이 시작되기 전에, 반드시 이진을 이겨 입찰에 성공할 것이라고 큰 소리를 쳤기 때문이다. 만약 SY테크놀로지가 이진을 선택한다면 이영이가 지게 되었다는 소식이 널리 퍼질 것이다.이영은 많은 사람들이 보내온 괴이한 눈빛을 무시한 채, 자리에서 일어나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 이진을 가리켰다.“유 대표님, 이진을 선택해시면 안 돼요. 이번 입찰은 이진이가 절 모함하기 위해 수작을 부린 게 분명해요! 안 그러면 제가 저 딴 년한테 졌을 리가 있겠어요?”‘표절한 주제에 이렇게 당당하다니?’유해는 하마터면 이영을 쳐다보던 혐오스러운 눈빛을 숨기지 못할 뻔했다.유해는 얼른 이영의 눈을 피하고 이진을 쳐다보았다.“이 대표님, 지금 이영 씨께서.”유해는 하려던 말을 멈추었지만, 이진은 유해가 자신의
이영이 더 이상 일을 벌일지 말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이진은 절대로 이영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이영은 이미 여러 차례 이진의 마지노선을 건드렸기에, 이영에 대한 이진의 인내심은 이미 한계를 돌파했다.이번에 이진이 참고 기다린 이유는 이영에게 제대로 된 교훈을 주기 위해서다.이영이 가까이 다가오기도 전에 이진은 손에 힘을 주고는 이영의 손목을 세게 잡았다. 그리고 차가운 눈빛으로 이영을 노려보며 말했다.“이곳에서 소란을 피울 시간에, 어떻게 빠져나갈지를 생각해 보는 건 어때? 네가 가지고 있는 기획안이 설마 공짜라고 생각한 건 아니지?”이진은 의미심장하게 입을 열었다.이영은 순식간에 등골이 오싹해지더니, 동작을 멈추고는 이진을 노려보았다.“지금 그게 무슨 소리야? 너 뭐 하려는 거야?”이진은 소리를 지르는 이영을 무시한 채 빠른 걸음으로 떠났다.이영은 순식간에 이진에 대한 증오와, 알 수 없는 공포에 빠지고 말았다.두 감정이 한데 얽히자 이영은 미치기 직전이었다.한참 후, 이영은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엄마, 돈이 아직 얼마나 남았어? 엄마가 날 도와줘야 하는데.”‘이진이 나한테 손을 대기 전에, 돈 주고 희생양을 구하면 되지.’이진은 회사에 돌아오자마자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루트를 만나게 되었다.루트가 손에 쥔 녹음 펜 안에는, 모두 이영이 정임을 통해 기획안을 훔친 증거들이 들어있었다.표절이 결코 작은 일이 아닌 데다가, 얼마 전 이영은 이진의 차에 몰래 손을 대기도 했다. 두 가지 죄명을 모두 밝혀낸 후 널리 알린다면, 이영이가 꽤나 고생을 하게 될 것이다.“대표님, 일이 더 늦어지기 전에 바로 경찰에 신고할게요.”루트는 이영이 벌인 짓들을 오랫동안 지켜보았기에, 당장 이영을 감방에 넣어버리고 싶었다.루트는 이진이 명령을 내린다면 바로 행동을 개시할 것이다.하지만 루트가 신고 전화를 걸기도 전에, 이진은 경찰 측에서 걸어온 전화를 받게 되었다.곧 전화를 받은 이진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모든 것을 지켜
이진이 냉철한 판단을 내리자 만만은 피가 끓어올랐다.언제부턴가 만만이 이진에 대한 숭배 심은 점점 더 커져갔다. 만만은 한걸음 물러서서 사무실을 나선 후, 이진의 말을 따라 회사 질서를 어긴 직원들에게 전부 경고와 처벌을 내렸다.도가 지나친 직원은 직접 법원에 넘겨 처리하였다. 이진의 무자비한 태도로 인해, 며칠째 직원들은 자신에게 불통이 튈까 봐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이 일을 알게 된 외부 언론들은, 모두 나이가 어리지만 판단이 명확한 이진에 대해 감탄을 감추지 못했다.더욱이, 이번 표절 사건 때문에 마음을 졸이던 SY테크놀로지의 책임자들은, 이 소식을 들은 후 서로 상의를 하고는 새로 작성된 계약서를 가지고 직접 이진을 찾으러 갔다.그중 가장 이진을 좋게 보던 유해는 두 회사의 계약에 대해 오랫동안 기대해왔다.유해는 흔쾌히 계약서의 마지막 페이지에 자신의 이름을 서명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 대표님, 좋은 합작이 되길 바랍니다.”“물론이죠.”이진의 가벼운 미소와 평온한 어조는, 왠지 모르게 그녀를 따르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킨다.이진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계속 말했다.“제가 기자회견을 열어 대외적으로 AMC그룹과 SY테크놀로지의 합작 소식을 선포하고 싶은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기자회견을 열어 홍보를 한다면, 그들의 신기술을 하루빨리 대중들에게 알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기술에 투자할 협찬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손해 볼 일은 아닌 것 같네.’유해 등은 당연히 반대하지 않을 것이며, 이진이 어떤 결정을 내리든 모두 협조할 것이라고 밝혔다.모두의 긍정적인 대답을 듣자, 이진은 신속하게 기자회견의 일정을 잡았다.이진이 회사를 정돈한 일로 떠들썩하던 언론들은, 두 회사의 합작 소식을 듣자 더욱 뜨거운 열기를 불러일으켰다.기자회견을 통해 이 기술의 이로운 점을 알게 된 네티즌들은, 이에 대해 더욱 흥미를 느꼈다.기자회견이 끝난 후, 반응은 이진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좋았
‘윤이건과 민시우는 친구라 그런지 하는 짓까지 똑같네! 모처럼 한가한데, 남자 문제는 그만 생각하고 이진이랑 같이 재밌게 놀기나 해야겠어!’정희는 핸드폰을 끄고 급히 옷장으로 향해 짐을 싸기 시작했다.반면에 전화가 끊긴 이건은 자신의 이마를 쓰다듬으며 방 안에 가득한 풍선들을 보며 침묵에 빠졌다.이건은 원래 이진과의 결혼 기념일을 몰래 서프라이즈로 즐기려고 했던 계획이었다. 그러나 서프라이즈를 준비한 것이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켰다. 여주인공이 도망가는 것은 물론이고, 친구와 함께 도망을 가버렸다.이런 상황에 이건은 머리가 찢어질 듯이 아팠는데, 이 비서가 정말이지 이 타이밍에 눈치 없이 다가왔다.“대표님, 말씀하신 것들은 모두 준비되었는데, 제가 작은 사모님을 모시고 올까요?”이 비서는 짧디짧은 몇 분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기에, 눈을 크게 뜨며 이건이 칭찬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마침 기분이 좋지 않았던 이건은, 이 말을 듣자 차가운 눈빛으로 이 비서를 쳐다보았고, 이 비서는 놀란 마음에 서둘러 입을 다물었다.하지만 이 비서에게 화를 내는 것보다는 일단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기념일은 물론 단둘이 보낼 시간을 놓쳐서도 안 돼.’이건은 얇은 입술을 오므리고는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것들은 모두 치워버려. 그리고 G시로 가는 가장 빠른 비행기 티켓을 구하고, 민시우를 불러와.”이건은 지시를 내린 후 부하더러 이진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추적하게 하였다.이진이 차를 몰고 간 데다가, 어느 호텔에 체크인을 했는지 알게 된 후, 이건은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비행기를 타고 G시로 가는 건 차를 몰고 가는 것보다 한 시간이나 빠르다.그러기에 이건과 시우는 이 시간을 이용해 함께 서프라이즈를 준비하기로 했다.이건의 머릿속엔 온통 이진으로 가득 찼고, 옆자리에 앉은 시우는 정희를 생각하고 있었다.이건과 함께 서프라이즈 준비를 마친 후, 시우는 호텔 부근을 돌아다니며 정희를 찾았다.마침내 시우는 호텔의
정희는 불쾌한 대화를 마치고는, 아무것도 챙기지 못한 채 방으로 돌아왔다.눈치가 빠른 이진은 단번에 정희가 이상하다는 것을 발견했다.애초에 정희는 간식을 가지러 아래층으로 내려간 것이다.하지만 정희는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컨디션이 엄청 안 좋아 보였다.“정희야? 왜 그래?”이진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묻자, 정희는 그저 싱긋 웃으며 이진의 곁에 앉았다.“방금 간식을 가지러 가지 않았어? 혹시 어디 아프기라도 한 거야? 방금 누가 괴롭히기라도 했어?”‘간식.’정희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미안해, 내가 깜빡했나 봐.”“사과할 필요 없어.”이진은 정희의 머리를 만지작거리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너 몸이 안 좋은 것 같으니 먼저 쉬고 있어. 내가 내려가서 간식을 가져올 게.”“잠깐만!”정희는 큰소리로 말하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이진의 앞을 막았다.‘만약 지금 이진이 내려갔다가 시우를 만나기라도 한다면, 이건 씨가 준비한 서프라이즈가 모두 들통날 거야.’정희는 이진의 손을 꽉 잡고는 다시 이진을 소파에 앉혔다.“이진아, 내가 잠시 깜빡한 것뿐이야. 내가 다시 가져올 테니 넌 방에서 기다리고 있어. 게다가 누가 감히 날 괴롭히겠어?”“진짜 괜찮은 거지?”정희가 계속 괜찮다고 말하자, 이진은 마음속의 근심을 가라앉히고 스위트룸에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오후 내내 두 사람은 스위트룸에서 음식을 먹고 게임을 하면서,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다. 저녁이 다 돼가자, 정희는 메시지 한 통을 받게 되었다.“무슨 일이야?”이진 역시 인기척을 듣고 무슨 중요한 일이 있는 줄 알고 정희에게 물었다.“아무것도 아니야!”정희는 빠르게 메시지 내용을 훑어본 후, 이진이 다가오기 전에 핸드폰을 거두고는 어깨를 으쓱거렸다.“방금 찾아봤는데, 이 호텔의 온천이 엄청 유명한 것 같아. 피로도 식힐 겸, 온천에 가보는 건 어때?” ‘온천에 가는 건 상관없지만.’오전까지 의심을 품었던 이진은, 지금 정희
결혼식 날짜는 8월 초로 정해졌으며, 국내와 해외에서 각각 한 차례씩 진행될 예정이다.웨딩드레스 가게에서 청혼한 이건의 이야기는 곧 널리 퍼지게 되었다. 오늘날까지 두 사람에 관한 이야기가 인터넷에 널리 퍼지고 있었다.이건이 바라던 대로, 전 세계의 사람들은 이진이 윤이건의 아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두 사람의 결혼식은 더욱 화려하고 시끌벅적했다.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두 사람은 친한 지인들 외에 회사 직원들만 초대했다.윤이건의 가족들은 보기 드물게 모두 현장에 참석했지만, 이진 쪽은 텅 비어 있었다.한편 이씨 가문은 여전히 다툼이 지속되고 있었다.“이것 봐! 내가 애초에 뭐라 그랬어? 이진 그년이 양심 없는 년이라고 몇 번을 말했는데, 이제 알겠지? 그년은 결혼식처럼 중요한 날조차 아버지인 당신을 부르지 않았어. 이기태, 정말 당신이 뭐라도 되는 줄 알아?”백윤정은 노발대발하며 욕설을 퍼부었다. 그녀에게는 예전의 자애로운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앞으로 달려들어 이기태를 때리려고 들었다.이기태는 화가 난 마음에 백윤정을 밀어냈다.“좀 저리 꺼져!”‘그래봤자 이진이는 내 친 딸인데, 지금 일이 이 지경이 된 건 모두 백윤정 때문이잖아. 백윤정이 중간에서 이간질을 하지 않았다면, 내가 이진이를 그렇게 대했겠어? 백윤정이 자꾸 끼어들어 모순을 만들어내지 않았다면, 이진도 날 이렇게까지 미워하진 않았을 거야.’물론 이기태의 눈에는 그저 이익밖에 없다. 그가 후회하는 건 오직 이진을 통해 이건의 도움을 받지 못한 것뿐이다.지금의 이기태는 백윤정과 사이가 완전히 틀어지고 말았다. 두 사람은 매일 싸우기 바빴다.이기태는 결혼식이 끝날 때가 되자 뻔뻔스럽게 이진에게 전화를 걸었다.“이진아.”“이기태 씨, 전에 제가 전화를 끊을 때 했던 말을 잊으신 거예요?”이기태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이진의 차가운 목소리가 전화 너머 들려왔다. 그는 등골이 서늘해지더니 그제야 기억난 듯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이진, 너!”
보통 사람이라면 분명 시언의 모습에 마음이 약해졌을 것이다.하지만 이진은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이진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그의 말을 듣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한마디 내뱉었다.“제가 사랑하는 남자는 윤이건 씨밖에 없다는 것을,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어요.”시언은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팠다. 그리고 힘겹게 한 마디 물었다.“제가 몇 년 더 빨리 나타났다면.”“그래도 결과는 똑같아요.”이진은 그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또박또박 말했다.말을 마친 뒤, 이진은 더 이상 시언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이건을 향해 걸어갔다.애초에 이진은 시우가 이 연회를 통해 정희와의 결혼 소식을 발표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이진은 마침내 시우의 의도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몸과 마음이 피곤했던 이진은 이건의 가슴에 기대어 말했다.“이건 씨, 저 해외여행 가고 싶어요.”“해외여행?”이건은 원래 뭔가를 계획하고 있었기에, 얼마 후 이진을 데리고 출국할 생각이었다.이진이 먼저 제기한 이상, 이건도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그는 활짝 웃으며 이진을 껴안고 말했다.“그래, 자기가 가고 싶은 곳이라면 어디든 좋아.”이를 위해 이건은 비행기 티켓을 예약하고 모든 일들 미뤘다. 하지만 이건의 원래 계획까지는 아직 시간이 좀 남았다.YS그룹에는 이건이 직접 처리해야 될 큰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이건은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이진을 데리고 해외로 여행을 간 것이다.이 소식을 전해 들은 YS그룹의 고위층들은 미치기 직전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이건에게 전화를 걸어 돌아와 달라고 부탁을 했다. 어쨌든 프로젝트는 끝내고 가야지.하지만 이건의 대답은 그저 한마디뿐이었다. 결혼식을 마친 후.결혼식을 마친 후, 이건은 분명 이진과의 아이를 돌보는 데 집중할 것이다.그러기에 앞으로 일에 전념하는 시간은 점점 적어질 게 뻔했다.옆에 있던 이진은 한쪽에 놓인 핸드폰이 끊임없이 울리는 것을 보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내가 너무 충동적인 건 아니겠지? 이건 씨는 날
이진은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내가 남학생을 꼬드겼다는 건 무슨 말이야? 아예 기억조차 나지 않는 데다가, 시우 씨의 동생인 건 아예 모르던 일이야. 도대체 이 일이 나랑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야?’이진은 화를 내며 이건을 노려보았다.“제가 언제 그런 행동을 했다고 그래요. 전 그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기억이 안 나거든요.”“정말이야?”이건은 일부러 장난친 거다. 사실 메시지를 보고 불쾌한 기분이 조금 들었는데, 이진의 반응은 그를 매우 기쁘게 했다.이건은 입술을 오므리며 말했다.“그렇다면 자기 마음속에는 나밖에 없다는 거지?”‘그럼 더 이상 시간 낭비하지 않아도 되겠네. 시우 이놈은 겁도 없네, 감히 내 아내더러 자기 사촌 동생을 위로해달라는 거야?’이건은 차갑게 웃으며 이진의 핸드폰을 가지고 시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시우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이진 씨, 제가 보낸 메시지를 보셨나요? 저도 어쩔 수 없어서 연락을 드린 거예요. 이 녀석이 술에 취해 밤새 이진 씨의 이름을 부르더니,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또.”“또 뭐 했는데?”이건은 그의 말을 끊은 뒤 질투 가득한 말투로 말했다.“네 사촌 동생이 대단한 사랑꾼인가 봐.”‘윤이건?’전화 너머의 시우는 하마터면 심장이 터질 뻔했다.“이건아, 이진 씨 핸드폰이 왜 네 손에 있는 거야? 난.”“나랑 이진이가 부부인 걸 잊은 거야?”이건은 더 이상 시간 낭비하기 싫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내 아내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지는, 내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그럼 내 아내를 좋아하는 사람마다 직접 가서 위로해 줘야 되는 거야? 내가 동의할지 말지는 둘째 치고, 이진이 정말 간다고 해도 네 동생이 괜찮아질 리는 없어.”마침 뭔가 생각난 이건은 잠시 망설이더니 협박하듯이 말했다.“술에서 깨면 네 동생한테 전해. 어제 같은 일이 또다시 일어나면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이건은 다른 남자들이 자신의 아내에게 들러붙는 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이
‘윤이건? 윤이건이 어떻게?’시언은 도저히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그와 시우는 사촌 형제이기에, 이건과 시우가 친한 친구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소문에 의하면 이건은 이미 결혼했고 사랑하는 아내가 있다.‘설마.’시언은 갑자기 깊은 생각에 잠겼다.이건과 이진이 어떤 사이든, 이진이 이건을 얼마나 의지하든, 그는 자신이 이진을 좋아한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시언은 몸 옆에 늘어진 손을 꽉 주먹 쥐었다. 이때 정신을 차린 그는 앞으로 나아가, 이건의 앞길을 막고 환한 미소를 선보였다.“윤 대표님, 전 민시언입니다. 시우 형의 사촌 동생이에요. 시우 형한테서 얘기 많이 들었는데, 이렇게 만나 뵙게 되니 너무 영광입니다. 혹시 이진 씨랑은.”“이건 씨, 나 돌아가고 싶어요.”시언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이진은 취기를 못 이겨 남자의 가슴에 얼굴을 가볍게 문질렀다.이건의 차가운 표정은 순식간에 눈 녹듯이 녹아내렸다.이건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 몸을 숙여 이진을 안았다. 그리고 시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이진을 조수석에 태웠다. 세심하게 안전벨트를 맨 후 무심코 뒤쪽을 스쳐보자, 시언은 방금 자세를 유지한 채 제 자리에 서 있었다.“이건 씨, 얼른 돌아가요.”이진은 아직도 이건에게 바짝 달라붙어 있었다.이건은 시선을 돌려 이진의 희고 정교한 얼굴을 보자 계획이 하나 떠올랐다.‘그동안 결혼식 하나 제대로 치르지 못했는데, 반드시 전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결혼식을 선물해 줄게.’이건이 직접 이진을 데려간 것을 목격한 시언은, 정신을 잃은 듯이 축 처진 채로 시우의 아파트를 찾았다. “민시언?”시우는 갑작스럽게 나타난 시언을 보자 조금 놀란 듯했다.“네가 이곳엔 왜 온 거야?”시언은 쓴웃음을 지으며 물었다.“형, 술 한잔하실 래요?”두 사람은 오랜만에 만났기에 술 한잔하는 것쯤은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다.하지만 시우는 정희와 함께 임신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최근 술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았다.시언의 상
하룻밤 푹 자고 난 뒤, 다음날 아침 이진은 호텔에서 출발해 학교로 갔다.서현도 마찬가지로 이번 만남을 무척 중시하였다. 그녀는 이진을 만나기 위해 일부러 수업을 오후로 미뤘다.카페에 앉은 서현은 커피잔을 만지작거리더니 웃으며 말했다.“이 대표님, 제가 오만해 보이긴 해도, 평범한 작가들과 비슷한 꿈을 꾸고 있거든요. 제가 쓴 시나리오를 대중들에게 알려, 널리 선보이는 게 제 꿈이에요. 하지만 제가 글을 쓸 때에는 저만의 요구가 있기에, 미리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요.”서현의 요구는 별로 지나치진 않았다. 그저 세훈이 제기했던 요구처럼 원칙적인 문제에 관한 것들이다. 이 방면의 문제는 서현이 말하지 않아도 이진이 끼어들지 않을 것이다.이진이 바로 동의하자 서현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이진의 시원시원한 성격은 전에 그녀를 찾아온 사람들과 사뭇 달랐다.서현은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어제 너무 지나친 행동을 보이지 않아서 다행이야. 안 그러면 이진 씨처럼 훌륭하신 분을 놓치게 되었을 지도 몰라.’ 세부사항을 토론한 후, 이진은 세훈과 서현을 데리고 원작자를 찾아가 판권을 따냈다.그 후 배우의 캐스팅으로부터 촬영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엄청나게 심혈을 기울였다. 배우들의 캐릭터 소화는 물론, 배우들 사이의 호흡은 날이 갈수록 좋아졌다.몇 달 후, 영화는 이건의 도움으로 성공적으로 상영되었다.의 원작 팬이 워낙 많았고, 호기심으로 본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그러나 영화관을 나설 때 모두 영화 속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정도로 영화에 푹 빠져 있었다.개봉 첫날, 전국의 영화관 티켓은 모두 매진되었다.심지어 대부분 영화관에서는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영화를 예정했던 시간보다 더 오랫동안 상영하였다.개봉한지 한 달이 되었을 때, 는 수십 년간 1위를 차지했던 영화를 뛰어넘기도 했다.이 영화의 촬영 제작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도 엄청난 인지도를 가지게 되었다.그들은 마치 다크호스처럼 갑자기 대중들의 시선 속에 나
이진은 말을 마친 후 정희를 데리고 성큼성큼 떠났다.“이진아, 넌 저분이 동의할 거라고 확신하는 거야?”한참을 걸은 뒤 정희가 호기심에 물었다.이진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서현이 딱 봐도 설득하기 어려운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재능이 있는 작가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데, 굳이 모욕을 당하면서 저 여자를 선택할 필요는 없잖아.’정희는 잠시 생각해 보더니 말했다.“내가 연예계에 아는 사람이 꽤나 있는데, 그냥 이서현 말고 다른 작가 소개해 줄까?”“아직은 필요 없어.”이진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아마 날 거절하지 않을 거야.”이진이 거절한 이상 정희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정희가 포기한 채 택시를 잡으려던 찰나, 앞에서 엄청난 비주얼을 가진 키 큰 남학생이 두 사람에게 달려왔다.“예쁜 누나들, 어디 가시려는 거예요?”두 사람을 향해 한 말이지만, 남학생은 줄곧 이진을 훔쳐보고 있었다.이 모습을 지켜보던 정희는 몰래 웃음을 터뜨렸다.“왜요? 학생, 지금 대시하는 거예요?”생각이 들통난 남학생은 부인하기는커녕 겸연쩍은 듯 손을 들어 뒤통수를 긁었다. 그리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누나들은 저희 학교 학생이 아닌 것 같네요.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연락처라도 주시면 안 될까요?”“두 사람 연락처를 모두 받아 가시려는 거예요? 생각보다 욕심이 많으시네요.”정희는 눈썹을 찡긋거리며 장난을 쳤다.그러자 남학생은 볼이 빨갛게 달아오르더니, 용기를 내어 이진에게 핸드폰을 건넸다.“누나, 전화번호 주시면 안 될까요? 절대로 귀찮게 굴진 않을 게요!”‘지금 충분히 귀찮은 것 같은데.’이진은 눈썹을 찌푸리더니 깔끔하게 거절했다.“죄송하지만, 안될 것 같네요.”난생처음 대시를 시도해 본 남학생은, 자신이 이렇게 무자비하게 거절당할 줄은 몰랐다. 남학생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실망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옆에 있던 정희는 차마 이대로 지나치기 힘들어, 가방에서 이진의 명함을 한 장 꺼내 남학생의 손에 쥐여 주었다.“연락처는
이진은 자신의 가장 진실된 생각을 전한 것은 물론, 판권을 반드시 따내려는 결심으로 원작자를 두 번이나 찾아갔다. 결국 원작자는 그녀에게 한 번 만날 기회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이진은 이번 기회를 제대로 이용하기 위해, 전에 조사한 자료들을 들고 사람을 찾으러 대학으로 향했다.그녀 스스로 배역을 연구하는 것은 턱없이 부족했기에, 이진은 전문적인 작가를 찾아야 했다. 현재 대학교 교수인 이서현이 가장 좋은 선택지였다.출발하기 전에 이진은 특별히 학교의 포털 사이트를 통해, 서현의 수업시간표를 찾았다. 그리고 교장에게 부탁하여 수업에 참석할 수 있게 되었다.이진의 신분을 알게 된 교장은, 단번에 그녀의 의도를 알아차리고는 두 손 두 발 들어 환영했다.한편 이 일을 알게 된 정희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애초에 이진이 연예계에 투자할 의향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평소에 경제 뉴스밖에 안 보던 이진이 정말 영화를 찍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진심이었던 거야? 왜 갑자기 영화를 찍으려는 거지?’정희는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 이진에게 전화를 걸었다.“이진아, 네가 의 판권을 따내 영화로 제작한다고 들었는데, 정말 사실이야?”“내가 언제 거짓말한 적 있어?”비행기 탑승 시간이 10분밖에 남지 않았기에, 이진은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끊었다.“나중에 다시 얘기해, 지금.”“너 지금 공항이야?”눈치 빠른 정희는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마침 한가하던 정희는 이진을 따라 서현을 찾으러 갈 생각이었다.‘우리 이진이가 갑자기 영화를 찍다니, 어떻게 된 일인지 내 눈으로 확인해 봐야겠어.’정희는 결정을 내린 듯이 말했다.“이진아, 좀만 기다려 금방 갈게!”정희는 줄곧 생각나는 대로 움직이는 성격이라, 이진은 핸드폰을 거두고 방금 정희의 말을 신경 쓰지 않았다.비행기는 한 시간도 안 되어 착륙했다.이진은 택시를 타고 바로 학교로 향했다. 그리고 사전에 알아보았던 수업시간표를 따라 강의실을 찾았다. 분명 수업이 시작되기까지 시간
이진은 별장을 나선 뒤 홀로 국장의 집으로 향했다.공교롭게도 여태껏 이진을 만나보고 싶어 하던 가정의도 국장의 집에 있었다.하지만 연이은 실패로 가정의도 이진의 성격을 알 수 있었다.이진은 엄청 겸손한 데다가 이건의 아내다. 그녀가 어떤 신분이든 간에, 외부에 자신의 실력을 알릴 생각이 없다면, 가정의도 더 이상 묻진 않을 것이다.두 사람은 자리에 앉은 후, 국장의 건강에 대해 자세히 토론하기 시작했다.옆에 있던 국장은 조용히 듣고 있다가, 때때로 몇 마디 맞장구를 치자 분위기는 매우 화기애애했다.이진은 경계심을 내려놓고 많은 의견을 제기하였다. 국장은 모든 의견들을 자세히 기록하였다.모든 이야기를 마친 후, 국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눈물을 글썽였다.“모두 이진 씨 덕분이에요. 이진 씨가 아니었다면 이 늙은이가 고질병 때문에 죽을 때까지 고생했을 거예요. 어쩌면 어느 날 갑자기.”“국장님, 곧 괜찮아질 테니 너무 걱정하진 마세요.”이진은 국장의 말을 얼른 끊은 뒤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게다가 할아버지의 친구분이시니, 제가 당연한 일을 한 것뿐이에요. 전엔 제가 생각이 짧은 데다가 일 때문에 바쁘다 보니, 줄곧 시간을 내지 못했는데 너무 탓하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어요.”“탓하다니, 그럴 리가 있겠는가.”‘나한테 이렇게 큰 도움을 줬는데, 고마워하기도 모자랄 판에 탓할 리가 있겠어?’마을의 개발 프로젝트는 정상적으로 진행되었다.이진도 마찬가지로 세훈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이 대표님, 제가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워낙 조건이 후해 거절할 이유를 찾지 못하겠더라고요.”진심 어린 이야기를 마친 후, 세훈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을 이어갔다.“하지만 저한테 특별한 요구가 하나 있는데, 이 대표님께서 허락해 주셨으면 좋겠어요.”“어떤 요구죠?”이진은 호기심에 눈썹을 찡긋거렸다.세훈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이 대표님께서 절 좋게 봐주시는 건 알고 있어요. 하지만 영화가 방영되었을 때 괜한 추측들이 떠돌아다니는 것을 방
오 감독은 전략을 바꾸기로 결정 내렸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진에게 사과하기로 한 것이다.이진은 전에 말했던 대로 마음에 들었던 감독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작품마저 몇 개 없는 신인 감독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오 감독은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나처럼 유명한 감독을 마다하고 신인 감독과 합작한다는 거야? 내가 그동안 받은 상이 얼마인데! 이진 그년은 분명 사람 보는 눈이 삐뚤어진 거야! 신인 감독 주제에 얼마나 잘 찍을지 똑똑히 지켜봐야겠어.’오 감독은 불만이 가득했으나 자신의 앞날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이진에게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모두 이진이 예상했던 대로다. 전화를 받은 순간, 이진은 만만에게 눈빛을 보내 모 플랫폼에서 생방송을 시작했다.이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던 오 감독은, 애써 웃으며 이진의 용서를 구하는 척했다.“이진 씨, 전엔 제가 너무 무례한 행동을 보였던 것 같네요. 의 촬영을 양세훈한테 맡길 생각인 거죠? 제가 양 감독을 소개해 줄 테니, 실시간 검색어의 글들을 내려 주시면.”“글을 내려달라고요?”이진은 오 감독이 뜻밖의 비장 카드라도 쥐고 있는 줄 알았다. 그가 이 정도로 파렴치한 인간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지금 말 같지 않은 조건으로 나와 협상하려는 거야?’이진은 마음속으로 차갑게 비웃고는 비꼬듯이 입을 열었다.“오 감독님, 본인이 지금 어떤 처지인지 잊으신 거예요? 지금 저한테 조건을 제기할 것이 아니라 사과를 하셔야죠. 제가 양세훈 감독님을 선택한 건 사실이지만, 제 방식대로 촬영에 참여하도록 설득시킬 것이니, 당신의 도움 따위는 필요 없어요.” “당신, 좋은 말로 할 때 그냥 넘어가지 그래?”오 감독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모욕을 당했기에, 이대로 참고 있을 수 없었다. 결국 위선적인 모습을 집어치우더니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내가 굽신거려주니까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아? 네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 모두 윤이건 덕분이라는걸, 내가 모를 줄 알아? 아마 윤 대표한테 들러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