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생각해보니 이진이가 배서준의 흔적을 찾아달라고 부탁한 이후로, 윤이건은 이 일에서 반은 손을 뗀 것 같았다. 누가 봐도 애써 찾는 분위기는 아니다.뿐만 아니라 회사에 대해서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은 것 같았다.생각할수록 이건을 점점 더 의심한 승연은 이건의 계정에 몰래 들어갔다. 아니나 다를까 흔적을 찾았다. 그러나 이건에 비해 능력이 부족한 승연은 몇 차례 해독을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AMC 그룹, 회의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이진은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대표님, 무슨 일이죠?”비서는 이진가 자기에게 할 말이 있다고 착각하고 서둘러 따라 걸음을 멈추었다.이진은 크게 숨을 들이켰다.“당장 차 대기시켜.”이리저리 찾으면서 가장 관건적인 부분을 놓친 것이다.만약 배서준의 실종이 이건과 연관된다면…….이진은 차갑게 웃으며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내려놓고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갔다.비서도 지체하지 않고 시키는 대로 즉시 실행했다.‘근데 왜 대표님 표정이 누구랑 쌈박질하러 가는 것 같지?’역시 비서의 추측이 맞았다. 30분 뒤 스포츠카는 YS그룹 빌딩 아래 멈췄다. 인내심을 잃은 이진은 바로 손을 흔들어 안내원의 말을 끊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최상층으로 직행했다. 이진을 본 이건이가 당황했다.그러나 바로 거두고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여긴 왜 왔어? 배서진 선생은 찾았고?”‘모르는 척하겠다 이거지!’이진은 코웃음 하고는 단도직입적으로 이유를 밝혔다.“그건 당신이 잘 알잖아요. 이건 씨, 우리 부부예요, 지금 사부 행방 알려주면 나도 당신이 날 속인 거 따지지 않을게요.”그 말을 듣고 이건의 얼굴에 황당한 기색이 얼핏 스쳐 지나갔다. 그는 마치 이진 말 속의 깊은 뜻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그 말은 내가 일부러 숨겼다고? 그래, 나도 배서준 선생이 너한테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 근데 어떻게 나를 의심해?”“의심인지 아닌지는 확인하면 알 수 있겠죠.”인내심이 바닥나자 이진은 이건을 힐끗 쳐다보고는
이진의 짧은 한 마디가 정희의 가슴을 찔렀다.정희의 표정은 순간 어두워졌다. 이진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에는 애틋함과 원망이 가득 담겨 있었다.“…….”‘그냥 한 말인데 맞았어?’이진은 어쩔 수 없는 웃음을 지으며 앞에 놓인 커피에 시선을 붙였다. 그리고 정희의 상처를 또 집을까 봐 조심해서 물었다.“무슨 일이야? 그냥 커피 마시자고 날 불러낸 건 아닐 것이고.”“아니야…….”정희는 부인하며 진실을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진이가 자신을 억지 부린다고 생각할까 봐 두렵기도 하였다.다시 생각해보니 이 일은 원래 민시우의 잘못이다. 그러니까 억지 부지는 건 아니다!‘잘못한 건 내가 아니고 시우 씨야!’ 자기를 설득한 듯 커피를 휘젓는 정희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급작스럽게 그녀는 숟가락을 툭툭 치며 이를 갈았다.“시우 씨, 나한테 마음이 없는 것 같아, 우리 둘만의 중요한 날도 잊었어, 내가 화내는 거 당연한 거 아니야?”“네가 화낸다고 뭐라고 했어?”이진은 얼굴을 찡그리며 정희를 부드럽게 달랬다.“흥분하지 말고 천천히 말해봐, 무슨 중요한 날이야?”“나한테 불만이 있어도 내가 말할 기회 줄 것 같아? 어림도 없지!”정희는 냉담하게 콧방귀를 뀌었다. 그리고 문뜩 요점을 떠올리고 다시 기죽었다. 날렵한 그녀의 눈동자도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어제 우리 1주년 기념일이었어, 분명 같이 지내자고 약속했는데 그 사람 깜빡 잊은 거 있지, 전화도 없었어, 그런 기억력으로 내가 뭘 바라겠니.”뿐만 아니라 시우에게 좋은 기억을 남겨주기 위해 일부러 춤 공연까지 미루었다. 그러나 시우의 머릿속에는 온통 일뿐이다.정희는 하루 종일 집에서 기다렸지만 처음의 기대에서 실망으로 마지막 술에 취해 한밤중 다른 사람에게 부축여서 들어온 시우를 보았다.준비한 서프라이즈커녕 만취 상태에서 아마 그녀가 누구인지도 알아볼 수 없을 것이다. 그녀의 마음에 비해 시우의 태도는 안면치레도 아니었다.정말 화를 내지 않으려고 해도 참을 수 없었다.마지막 정희는
“야!”정희는 초조해하며 앞으로 달려들어 핸드폰을 빼앗았다. 얼굴도 점점 붉어졌다.그러나 이진은 그대로 전화를 걸어버렸다.연결된 순간 정희의 목소리가 전화를 너머 민시우의 귀에 또렷이 들려왔다.“정희 씨?”잠시 멍하니 있던 시우는 머리를 숙이고 이진에게서 온 전화임을 확인하고 재빨리 반응했다.“아까 정희 씨 목소리 맞죠, 지금 같이 있나요?”“어딘 가요? 정희 씨한테 전화 좀 바꿔주세요, 제가 오전 내내 찾았어요, 정말 미칠 것 같아요!”사실이다. 굳이 눈으로 보지 않아도 전화 너머로 시우가 얼마나 조급했는지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그가 아니더라도 술 깨고 보니 옆 사람이 사라졌는데 조급해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시우는 뭘 또 떠올리고 손을 들어 머리카락을 움켜잡았다.“정희가 또 뭐라고 얘기했나요? 혹시 기념일 때문에 화나서 숨은 거라면…… 어쨌든 다 내 잘못이예요. 계약 때문에 중요한 날을 잊어버리는 게 아니었어요, 일단 전화 바꿔주세요, 제가 해명할게요, 숨어버리지만 않는다면 욕하든 때리든 다 들어주겠다고 전해줘요.”시우는 의심할 여지 없이 자신의 자세를 낮추어 용서를 빌었다.더 이상 예전의 세상 물정을 모르는 바람둥이가 아니다.구경꾼인 이진도 놀랬는데 하물며 정희는 말할 것도 없이 매우 놀랐다.이진은 정희 눈에 스쳐간 흔들림을 포착하고, 눈을 가늘게 뜨고 핸드폰을 내밀며 낮은 소리로 정희를 놀렸다.“다 들었지? 받을 거야?”받을 건지 아닌지 확실히 어려운 선택이다.시우를 이렇게 쉽게 용서하면 지금까지 헛걸음한 셈이다.“안 받을 거야!”정희는 이를 악물고는 마음을 다잡고, 시선을 피해 두 손으로 귀를 가렸다.이진은 어쩔 수 없이 핸드폰을 잡고 다시 귓가에 갖다 댔다.“여기 빙고커피예요.”긍정적인 응답을 받고 이진는 전화를 끊었다.옆에서 똑똑히 들은 정희가 또 한 번 화를 냈다.“야!”“적당히 하시지.”이진은 핸드폰을 거두고, 싸늘하게 정희를 힐끗 쳐다보더니 퉁명스럽게 말했다.“내가 모를 줄 알아, 너 지금
이진의 고집은 그 누구도 꺾을 수 없었다. 게다가 윤이건은 지금 그녀의 의심 대상이기도 하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갈 길은 하나밖에 없다.이건의 눈동자가 짙어지더니 이진의 냉담함을 외면하고, 얇은 입술을 살짝 꼬이며 그녀에게 가까이하였다.“여보, 내가 회사로 데려다 줄까?”‘이 뜬금없는 여보는 뭐야?’이진은 이상한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이건의 깊은 뜻을 재빨리 깨달았다.‘웃기고 있네, 내가 그렇게 쉬워 보여?’이진의 서늘한 눈망울이 그의 얼굴을 스쳤다. 먹히지 않는다는 뜻이다.“저 같은 하찮은 사람이 어찌 대표님을 귀찮게 하겠습니까? 제가 컴퓨터를 해킹해 회사 핵심자료를 훔치는 거 두렵지 않으세요?”이진은 사무실에서 컴퓨터 검색을 막은 사건을 그에게 일깨워주었다.이건은 목이 메며 배서준 행방을 숨긴 일에 대해 아주 후회했다. 노출은 두렵지 않으나 이것으로 아내를 잃어버린다면…….만분의 일의 가능성이라고 해도 그 가능성을 완전히 차단해버려야 했다.차분하고 힘 있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 잘못이야, 막지 말아야 했어, 아니면 나랑 같이 회사에 가자, 컴퓨터 안에 있는 거 원하는 대로 조사해도 괜찮아.”이건은 태연하게 말했다. 모르는 사람은 아마 그녀가 무리하게 소란을 피우고 일부러 트집을 잡는 줄로 알 것이다.이진은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지금 이런 말 하는 거 너무 늦었다고 생각되지 않아요?”‘누구를 바보로 생각하나.’한 시간이나 지났는데 정말 뭔가 있다고 해도 일찌감치 깨끗하게 삭제했을 것이다. 지금 가서 조사하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었다.이진은 불쾌하게 그를 노려보았다. 두 사람 사이를 감도는 분위기가 점점 타들어갔다.이때 핸드폰 벨 소리가 이 침묵을 깼다.누구 전화인지 확인하고 이진은 이건을 경계하며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리고 따라오지 않자 차에 들어가 전화를 받았다.며칠 동안 지켜보다가 원기를 회복한 이기태는 참지 못하고 공공연히 떠들어대며 AMC와 맞서려고 할 뿐만 아니라 AMC
신원테크놀로지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뛰어난 과학기술뿐만 아니라 유해 본인의 소심함 덕분도 있었다.유해는 자기 체면을 목숨처럼 아끼는 사람이라 동의도 하지 않고 그렇다고 해서 명백히 거절하지도 않았다.의심할 여지없이 유해의 태도는 원래 협력 문제를 반드시 성사시키겠다고 했던 이영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하마터면 욕설을 퍼붓을 번 하였다.“대표님, 우리…….”“이영 씨, 저 지금 일이 있어서 먼저 가봐야 할 것 같네요, 다음 기회에 얘기합시다.”아주 얼버무린 한마디가 떨어지자 이영은 다시 입을 열려고 했지만 전화는 그렇게 끊겨버렸다.그녀의 완벽한 표정은 갈래갈래 찢겨 졌고, 남보란 듯이 핸드폰을 벽에 세게 뿌리쳤다.‘내가 직접 전화를 걸었는데 이렇게 날 대해?’AMC의 대표사무실, 사무실에 들어간 임만만은 업무를 보고하는 프로젝트 매니저가 떠난 후에야 앞으로 걸어 나왔다.“대표님, 예상대로 이영 쪽에서 신원테크놀로지 유해 대표와 연락하였습니다. 근데 유해 대표가 관심이 없는 모양입니다.”GN그룹 손실을 만회했다고 하나 얼마 전 주식 시장이 폭락한 것은 여전히 모두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이기태의 딸로서 이영도 당연히 신중하게 선택받는 사람이 되어버렸다.이진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예상 그대로의 시나리오이다.이미 결정을 내린 이상 앞으로 일어날 일은 모두 그녀의 예상 밖을 벗어나지 못한다.그리고 지금 미끼에 고개가 걸렸으니 더더욱 장대를 걷을 이유가 없었다.이진은 나른하게 기대어 앉아 무심코 입꼬리를 올렸다.“소식 내보내, 신원테크놀로지 내가 관심 두고 있는 프로젝트라 누가 감히 손대면 AMC와 맞서는 거라고.”이영의 성격에 이런 자극이 제격이다.유해한테 체면이 깔려 마음이 흔들리겠지만 이 소식에 반드시 유해 이 ‘대’를 꽉 물고 끝까지 그녀와 맞설 것이 틀림없다.이진의 이영의 마음을 완전히 읽은 셈이다.그날 오후, 이진은 일부러 정임이 보고할 때 전화에 불려가는 척하며 사무실을 떠났다. 정임이 움직이기
“믿지 못하는 게 아닙니다.”대치하는 동안 정임은 억울한 웃음을 지으며 이영이가 정신을 잃고 화를 내기 전에 바로 손을 거두었다.거기에는 책상 밑 손바닥에 숨긴 녹음펜도 포함했다.그러나 지금 이영의 전부 시선은 앞에 놓인 계획서뿐이라 정임의 다른 움직임을 전혀 몰랐다.카페를 떠나면서 둘 다 즐거운 듯했다.그러나 양심의 가책을 느낀 정임은 AMC로 돌아가는 길에 머리에 쓴 모자를 벗은 적이 없었다. 회사 1층 문턱에 발을 드리는 순간 뒤에서 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정임 씨?”귀에 익은 목소리, 듣기만 해도 누군지 알 수 있었다.정임은 자기도 모르게 긴장해졌다. 그는 잠시 숨을 조절하고 몸을 돌렸다. AMC 사람들은 임만만이 이진의 심복이며 그녀가 가장 믿는 비서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만약 임만만에게 들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이진도 알게 될 것이다.이상하게 보이지 않도록 정임은 재빨리 침착함을 되찾고 입을 열었다.“임만만 비서님, 무슨 일 있나요?”“네.”겨우 맞수라고 할 수 있는 회사에 보낸 사람, 임만만은 이젠 상대하기도 지겨워졌다.임만만은 건성으로 웃으며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그 계획서 말인데 대표님 뜻은 좀 더 얘기해 보려는 것 같은데 오전 급하게 가서 비서인 제가 대신 전해드리는 겁니다.”“대표님이 절 찾으셨어요?”정임은 짐짓 놀라는 척하며 미안한 기색을 보였다. 그리고 말을 돌렸다. “아까 전화가 와서 자리를 비웠습니다. 계획서는 어떻게 된 건가요?”‘설마 이진이가 그를 의심한 건가?’임만만은 그의 얼굴의 미세한 표정 변화를 한눈에 보고 조용히 말했다.“긴장할 필요 없어요, 그 계획서 대표님이 생각해보았는데 넘기기 전에 직접 확인하고 수정할 부분이 있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정임 씨가 계획서를 다시 대표님께 가져다줘야겠어요.”이 말에 정임의 안색이 완전히 변했다. 아까 카페에서 이미 이영이한테 넘겼는데 다시 이진에게 가져다주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무슨 일이세요? 어디 아파요?”정임의 표정이 왜 그런
루트의 연락을 받은 이진은 뭔가 알아차린 듯이 물었다.“그렇다면 정임 씨한테 의뢰를 한 사람이 저희 회사 직원인 거예요?”‘덕분에 내부의 스파이를 잡아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되는 건가?’루트는 뭔가 안 좋은 예감이 들어 안절부절못하며 말했다.“대표님.”“걱정 마세요.”이진은 호흡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예상 밖의 일이긴 하지만, 해결할 방법은 있으니 루트 씨는 계속 정임 씨의 행동을 주시하고 계세요. 무슨 일이 생긴다면 바로 저한테 연락 주세요.”‘정임의 뒤에 숨어있는 진짜 스파이는.’이진은 차갑게 웃으며 루트와의 대화를 끝내고, 또 한 통의 전화를 걸었다.“회의를 열 것이니, 당장 각 부서 책임자들에게 연락해.”반 시간이 지난 후, 커다란 회의실에는 각 부서의 책임자들이 모여 앉았다.회의실에 가장 먼저 들어선 사람은 이진이었다.이진은 차가운 눈빛으로 자리에 앉은 사람들을 훑어보고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오늘 여러분을 이 자리에 부르게 된 이유는, 최근 회사 내부에서 발생한 문제와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에 대하여 토론하기 위해서예요. 이미 여러 주주분들도 관련소식을 들으셨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최근에 이기태 씨는 자신의 회사로 저희와 여러 차례 프로젝트를 둘러싸고 갈등이 있었습니다. 만일 여러분 중에 이 문제에 대한 제안이나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언제든지 제게 말씀해 주시길 바랍니다.”이진은 말을 마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을 떠났다. 회의실에 남은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이게 다야? 지금 이걸 회의라고 하는 거야?’유독 구석에 앉은 주주가 고개를 숙인 채 이진이 했던 말을 되새기고 있었다.이진이 이 회의를 소집한 목적은 스파이를 시험하기 위해서다.이진은 회의실을 나서자마자 승연에게 연락하여, 시시각각 GN그룹을 감시할 것을 요구했다.이번에도 이진의 생각이 맞았다.그날 오후, 승연이가 전화를 걸어오더니 다소 흥분한 말투로 말했다.“사부님! 역시 사부님의 생각이 맞았어요! 그
이영은 대답을 듣기도 전에 득의양양한 기색을 띠며 이진에게 다가갔다. “이진아, 네가 이길 것이라고 너무 확신하진 마. 괜히 좀 이따 나한테 지기라도 하면 얼마나 창피하겠어?”“백윤정 씨가 너한테 회사를 넘겨주기 전에 사업을 제대로 가르쳐 주진 않으셨나 봐?”이진은 이영과 말을 섞지 않으려고 했으나, 계속 자신의 앞에서 잘난 척하는 이영의 모습이 정말 꼴 보기 싫었다.이진은 웃음을 터뜨리고는 이영에게 다가가 말했다.“상대를 얕잡아 보지 않는 게 좋을 거야.”이진은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반면 이영은 멍하니 이진이 떠나는 뒷모습을 보더니 얼굴이 일그러졌다.그러나 이영은 곧 침착한 모습을 되찾았다.‘AMC의 기획안이 내 손에 있는데, 네가 그깟 쓸모없는 종잇조각 하나로 날 이길 수 있을 것 같아?’이영은 턱을 높이 쳐들고는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난 이미 경고했으니까, 좀 이따 나한테 져도 모두 네 탓이야.’이 일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던 이진은 SY테크놀로지의 대표인 유해와 만났다.이 기술을 따내기 위해 이영은 물론 이진도 큰 심혈을 들였다.이진은 이 기술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SY테크놀로지의 기술자들과 식사를 나누기도 했다.이 기회를 통해 이진은 적지 않은 내부 정보를 파악했으며, 유해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이영과 달리 유해와 이진은 식사 자리에서 꽤나 즐겁게 이야기를 나눴다.만약 불필요한 규칙들이 사라진다면, 유해는 당장 이진과 합작을 할 것이다.정식 입찰에서 유해는 먼저 이진에게 기획안을 발표할 기회를 주었다.‘내가 먼저 하면 이따가 재밌는 구경을 놓치게 될 거야.’이진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는 다급해 보이는 이영을 보며 느릿느릿 입을 열었다.“유 대표님, 저기 계신 이영 씨가 엄청 조급해 보이시는데, 먼저 이영 씨의 회사에서 준비한 기획안을 보시는 게 어때요?”“그게.”유해는 망설이며 이영을 쳐다보았다.“이영 씨, 괜찮으시겠어요?”“물론이죠!”상황은 이영이 바라던 방향으로 흘러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