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은 이진을 품에 안고는, 손바닥으로 끊임없이 그녀의 등을 다독였다.이건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는, 이진이 마음을 다스릴 때까지 천천히 다독여주며 기다려주었다. 한참이 지나자, 이진이 흐느끼는 소리가 점점 작아졌다.이진이 울음을 그친 후 고개를 들자, 이건의 흰 셔츠는 이미 그녀의 눈물로 젖어 축축해지고 말았다.이진은 쑥스러워하며 코를 훌쩍거렸다.“이건 씨, 미안해요. 일부러 그런 건.”이진이 말을 하며 뒤로 물러서려 하자, 이건은 또다시 이진을 품에 안았다.“이진아, 사과할 필요 없어. 네가 눈물을 흘리면 난 마음이 너무 아프기만 할 뿐이야.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말해줄 수 있어?”이건은 잠시 망설이더니 물었다.“혹시 배서준 씨 때문이야?”“네.”이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한번 그의 품에 얼굴을 묻혔다.배서준이 이미 입원을 한 이상, 이진이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이진은 잠시 생각을 하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사부님은 남은 시간들을 병실에서 보내는 게 아니라, 여행을 가고 싶으시대요. 하지만 전 사부님이 이대로 떠나는 걸 보고만 있을 수는 없어요. 전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 보고 싶어요. 이건 씨, 제가 너무 이기적인 건 아닐까요?”“자신의 사부님을 곁에 좀 더 오래 두고 싶은 게 잘못일 리는 없잖아, 안 그래?”이건은 이진이 이미 결정을 내렸을 것이라고 믿었다.AMC그룹의 카리스마 넘치는 대표가, 사석에서 이렇게 아이 같은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는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다행히도 이진의 이런 모습은 이건만이 볼 수 있었다.이건은 곧 이진의 어깨를 가볍게 다독이며 부드럽게 말했다.“이진아, 네 마음은 이해하지만 이런 일은 당사자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 더 좋을 거야. 배서준 씨가 치료를 받으려 하지 않는다면, 네가 강제로 병원에 가두어도 협조하지 않으실 거야.”‘게다가 병원에서 배서준 씨를 제대로 잡아두지도 못할 거야. 그러니 병원에 남겨두는 것보다는 별장으로 데려가 돌보는 것이
만만은 회사 문어귀에서 이진을 기다리다가, 이진을 보자마자 종종걸음으로 달려가 맞이했다.“대표님.” “내가 직접 확인해 볼 테니 더 말할 필요 없어.”이진은 기세등등하게 한마디를 마치고는, 엘리베이터에 올랐다.사무실에 도착한 이진은, 책상 앞에 앉아 빠른 속도로 컴퓨터를 켜고는, GN그룹과 관련된 정보들을 찾아보았다.만만이 전화에서 말했듯이, 원래 그들의 여러 차례의 압박으로 GN그룹은 자금 사슬이 끊어져 엄중한 결손을 봤어야 했는데, 갑자기 거대한 자금이 주입되어 제때에 손실을 만회할 수 있었다.GN그룹을 위해 자금을 투자한 배후는 분명 큰 회사는 아닐 것이다.AMC그룹은 그동안 줄곧 조용히 행동해 왔으며, 적을 만들지 않았다.그래서 공공연히 AMC그룹과 맞서려고 나서는 기업은 없을 것이다.이 거액의 자금이 정말 아무 이유 없이, GN그룹에게 주입되었을 리는 더더욱 없을 것이다.이진은 갑자기 며칠 전에 알아냈던 일이 떠올랐다.백윤정이 이기태 몰래 회사를 차렸는데, 아마 이번에 주입된 자금은 이기태가 백윤정에게서 받아낸 것일 수도 있다.“대표님, 그럼 계속 진행할까요?”이진이 미간을 찌푸린 채 말을 하지 않자, 만만은 조심스럽게 다가와 물었다.이진은 컴퓨터 스크린을 스쳐보더니 대답했다.“일단 멈추고 상황을 지켜봐.”이진은 GN그룹을 파산시키는 것을 서두르진 않았다.짧디짧은 몇 시간 사이에 GN그룹은 수십억의 결손을 보았기에, 이기태는 분명 이진을 죽도록 미워하고 있을 것이다.애초에 백윤정이 이기태 몰래 회사를 차렸다는 것은, 그 돈들을 내놓을 생각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이기태는 이 돈을 얻기 위해 틀림없이 많은 공을 들였을 것이다.이진은 차갑게 웃고는 GN그룹에 대한 공격을 멈추었지만, 이기태에 대한 감시는 멈추지 않았다.이기태가 또 다른 행동을 보인다면, 이진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GN그룹을 파산시킬 것이다.이와 동시에, 이씨 별장은 한차례의 싸움을 거쳐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커다란 거실은 기괴할 정도로 조용했고,
백윤정의 폭탄급 위력의 말에 이영은 몇 초 동안 멍하니 있었다.“엄마, 이게 다 사실이예요? 날 위해 회사를 차렸다고요?”“우리 딸, 엄마가 언제 널 속였어?”백윤정은 딸이 우는 것을 보고 있을 수 없어 그동안 이기태 몰래 한 일을 모두 숨기지 않고 모두 이영에게 말했다.이기태에게 빼앗긴 돈은 그녀 계좌의 10분의 1도 안되었다.다시 말해 이기태 없이 GN그룹이 망한다고 해도 남은 돈으로 모녀가 평생 먹고 살기에 충분하다.이영은 여전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마침내 백윤정의 긍정적인 눈길에서 점차 안정을 찾았다.이렇게 많은 돈이 있으니 이진은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이 돈으로 사람을 찾아 몰래 이진을 처리하면…….’“이영아!”더 이상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백윤정이 이영의 생각을 알아차리고 그녀를 불렀다.이영이가 너무 고집불통이라 어쩔 수 없었다.백윤정은 어쩔 수 없이 어조를 올리며 다소 엄하게 말했다.“내가 뭐라고 했어? 왜 말을 안 들어, 지금은 이진을 잊어, 이진 곁에 윤이건이 있다는 거 잊었어? 쉽게 해결할 상대가 아니야.”윤이건을 꺼내자 이영의 눈에 원망의 빛이 빠르게 스쳤다.오늘 그녀가 당한 모든 것뿐만 아니라, 그녀에 대한 윤이건의 증오도 포함해서 모두 이진의 손에서 비롯된 것이다. 만약 이진만 없으면 이건의 곁에 서 있는 건 그녀이다!이영은 백윤정의 말에 일리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억지로 분노를 참았다.“알았어요, 섣불리 움직이지 않을게요.”백윤정은 가벼운 한숨을 내쉬며 다시 한번 그녀를 품에 안았다. 그리고 이영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일에는 계획이 필요한 법이야, 이진 차에 손대는 일 두 번 다시 있어서는 안 돼, 알았지?”이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순순히 대답했다.어차피 돈만 있으면 못할 일은 없다.조만간 그녀는 이진을 자기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과하라고 할 것이다!밤새 돌아가지 않은 이진은 너무 졸려서 아예 사무실에서 잠이 들었다.다음날 아침 일찍 이진은 전화 한 통에 잠을 깼다.
다시 생각해보니 이진이가 배서준의 흔적을 찾아달라고 부탁한 이후로, 윤이건은 이 일에서 반은 손을 뗀 것 같았다. 누가 봐도 애써 찾는 분위기는 아니다.뿐만 아니라 회사에 대해서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은 것 같았다.생각할수록 이건을 점점 더 의심한 승연은 이건의 계정에 몰래 들어갔다. 아니나 다를까 흔적을 찾았다. 그러나 이건에 비해 능력이 부족한 승연은 몇 차례 해독을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AMC 그룹, 회의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이진은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대표님, 무슨 일이죠?”비서는 이진가 자기에게 할 말이 있다고 착각하고 서둘러 따라 걸음을 멈추었다.이진은 크게 숨을 들이켰다.“당장 차 대기시켜.”이리저리 찾으면서 가장 관건적인 부분을 놓친 것이다.만약 배서준의 실종이 이건과 연관된다면…….이진은 차갑게 웃으며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내려놓고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갔다.비서도 지체하지 않고 시키는 대로 즉시 실행했다.‘근데 왜 대표님 표정이 누구랑 쌈박질하러 가는 것 같지?’역시 비서의 추측이 맞았다. 30분 뒤 스포츠카는 YS그룹 빌딩 아래 멈췄다. 인내심을 잃은 이진은 바로 손을 흔들어 안내원의 말을 끊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최상층으로 직행했다. 이진을 본 이건이가 당황했다.그러나 바로 거두고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여긴 왜 왔어? 배서진 선생은 찾았고?”‘모르는 척하겠다 이거지!’이진은 코웃음 하고는 단도직입적으로 이유를 밝혔다.“그건 당신이 잘 알잖아요. 이건 씨, 우리 부부예요, 지금 사부 행방 알려주면 나도 당신이 날 속인 거 따지지 않을게요.”그 말을 듣고 이건의 얼굴에 황당한 기색이 얼핏 스쳐 지나갔다. 그는 마치 이진 말 속의 깊은 뜻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그 말은 내가 일부러 숨겼다고? 그래, 나도 배서준 선생이 너한테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 근데 어떻게 나를 의심해?”“의심인지 아닌지는 확인하면 알 수 있겠죠.”인내심이 바닥나자 이진은 이건을 힐끗 쳐다보고는
이진의 짧은 한 마디가 정희의 가슴을 찔렀다.정희의 표정은 순간 어두워졌다. 이진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에는 애틋함과 원망이 가득 담겨 있었다.“…….”‘그냥 한 말인데 맞았어?’이진은 어쩔 수 없는 웃음을 지으며 앞에 놓인 커피에 시선을 붙였다. 그리고 정희의 상처를 또 집을까 봐 조심해서 물었다.“무슨 일이야? 그냥 커피 마시자고 날 불러낸 건 아닐 것이고.”“아니야…….”정희는 부인하며 진실을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진이가 자신을 억지 부린다고 생각할까 봐 두렵기도 하였다.다시 생각해보니 이 일은 원래 민시우의 잘못이다. 그러니까 억지 부지는 건 아니다!‘잘못한 건 내가 아니고 시우 씨야!’ 자기를 설득한 듯 커피를 휘젓는 정희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급작스럽게 그녀는 숟가락을 툭툭 치며 이를 갈았다.“시우 씨, 나한테 마음이 없는 것 같아, 우리 둘만의 중요한 날도 잊었어, 내가 화내는 거 당연한 거 아니야?”“네가 화낸다고 뭐라고 했어?”이진은 얼굴을 찡그리며 정희를 부드럽게 달랬다.“흥분하지 말고 천천히 말해봐, 무슨 중요한 날이야?”“나한테 불만이 있어도 내가 말할 기회 줄 것 같아? 어림도 없지!”정희는 냉담하게 콧방귀를 뀌었다. 그리고 문뜩 요점을 떠올리고 다시 기죽었다. 날렵한 그녀의 눈동자도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어제 우리 1주년 기념일이었어, 분명 같이 지내자고 약속했는데 그 사람 깜빡 잊은 거 있지, 전화도 없었어, 그런 기억력으로 내가 뭘 바라겠니.”뿐만 아니라 시우에게 좋은 기억을 남겨주기 위해 일부러 춤 공연까지 미루었다. 그러나 시우의 머릿속에는 온통 일뿐이다.정희는 하루 종일 집에서 기다렸지만 처음의 기대에서 실망으로 마지막 술에 취해 한밤중 다른 사람에게 부축여서 들어온 시우를 보았다.준비한 서프라이즈커녕 만취 상태에서 아마 그녀가 누구인지도 알아볼 수 없을 것이다. 그녀의 마음에 비해 시우의 태도는 안면치레도 아니었다.정말 화를 내지 않으려고 해도 참을 수 없었다.마지막 정희는
“야!”정희는 초조해하며 앞으로 달려들어 핸드폰을 빼앗았다. 얼굴도 점점 붉어졌다.그러나 이진은 그대로 전화를 걸어버렸다.연결된 순간 정희의 목소리가 전화를 너머 민시우의 귀에 또렷이 들려왔다.“정희 씨?”잠시 멍하니 있던 시우는 머리를 숙이고 이진에게서 온 전화임을 확인하고 재빨리 반응했다.“아까 정희 씨 목소리 맞죠, 지금 같이 있나요?”“어딘 가요? 정희 씨한테 전화 좀 바꿔주세요, 제가 오전 내내 찾았어요, 정말 미칠 것 같아요!”사실이다. 굳이 눈으로 보지 않아도 전화 너머로 시우가 얼마나 조급했는지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그가 아니더라도 술 깨고 보니 옆 사람이 사라졌는데 조급해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시우는 뭘 또 떠올리고 손을 들어 머리카락을 움켜잡았다.“정희가 또 뭐라고 얘기했나요? 혹시 기념일 때문에 화나서 숨은 거라면…… 어쨌든 다 내 잘못이예요. 계약 때문에 중요한 날을 잊어버리는 게 아니었어요, 일단 전화 바꿔주세요, 제가 해명할게요, 숨어버리지만 않는다면 욕하든 때리든 다 들어주겠다고 전해줘요.”시우는 의심할 여지 없이 자신의 자세를 낮추어 용서를 빌었다.더 이상 예전의 세상 물정을 모르는 바람둥이가 아니다.구경꾼인 이진도 놀랬는데 하물며 정희는 말할 것도 없이 매우 놀랐다.이진은 정희 눈에 스쳐간 흔들림을 포착하고, 눈을 가늘게 뜨고 핸드폰을 내밀며 낮은 소리로 정희를 놀렸다.“다 들었지? 받을 거야?”받을 건지 아닌지 확실히 어려운 선택이다.시우를 이렇게 쉽게 용서하면 지금까지 헛걸음한 셈이다.“안 받을 거야!”정희는 이를 악물고는 마음을 다잡고, 시선을 피해 두 손으로 귀를 가렸다.이진은 어쩔 수 없이 핸드폰을 잡고 다시 귓가에 갖다 댔다.“여기 빙고커피예요.”긍정적인 응답을 받고 이진는 전화를 끊었다.옆에서 똑똑히 들은 정희가 또 한 번 화를 냈다.“야!”“적당히 하시지.”이진은 핸드폰을 거두고, 싸늘하게 정희를 힐끗 쳐다보더니 퉁명스럽게 말했다.“내가 모를 줄 알아, 너 지금
이진의 고집은 그 누구도 꺾을 수 없었다. 게다가 윤이건은 지금 그녀의 의심 대상이기도 하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갈 길은 하나밖에 없다.이건의 눈동자가 짙어지더니 이진의 냉담함을 외면하고, 얇은 입술을 살짝 꼬이며 그녀에게 가까이하였다.“여보, 내가 회사로 데려다 줄까?”‘이 뜬금없는 여보는 뭐야?’이진은 이상한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이건의 깊은 뜻을 재빨리 깨달았다.‘웃기고 있네, 내가 그렇게 쉬워 보여?’이진의 서늘한 눈망울이 그의 얼굴을 스쳤다. 먹히지 않는다는 뜻이다.“저 같은 하찮은 사람이 어찌 대표님을 귀찮게 하겠습니까? 제가 컴퓨터를 해킹해 회사 핵심자료를 훔치는 거 두렵지 않으세요?”이진은 사무실에서 컴퓨터 검색을 막은 사건을 그에게 일깨워주었다.이건은 목이 메며 배서준 행방을 숨긴 일에 대해 아주 후회했다. 노출은 두렵지 않으나 이것으로 아내를 잃어버린다면…….만분의 일의 가능성이라고 해도 그 가능성을 완전히 차단해버려야 했다.차분하고 힘 있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 잘못이야, 막지 말아야 했어, 아니면 나랑 같이 회사에 가자, 컴퓨터 안에 있는 거 원하는 대로 조사해도 괜찮아.”이건은 태연하게 말했다. 모르는 사람은 아마 그녀가 무리하게 소란을 피우고 일부러 트집을 잡는 줄로 알 것이다.이진은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지금 이런 말 하는 거 너무 늦었다고 생각되지 않아요?”‘누구를 바보로 생각하나.’한 시간이나 지났는데 정말 뭔가 있다고 해도 일찌감치 깨끗하게 삭제했을 것이다. 지금 가서 조사하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었다.이진은 불쾌하게 그를 노려보았다. 두 사람 사이를 감도는 분위기가 점점 타들어갔다.이때 핸드폰 벨 소리가 이 침묵을 깼다.누구 전화인지 확인하고 이진은 이건을 경계하며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리고 따라오지 않자 차에 들어가 전화를 받았다.며칠 동안 지켜보다가 원기를 회복한 이기태는 참지 못하고 공공연히 떠들어대며 AMC와 맞서려고 할 뿐만 아니라 AMC
신원테크놀로지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뛰어난 과학기술뿐만 아니라 유해 본인의 소심함 덕분도 있었다.유해는 자기 체면을 목숨처럼 아끼는 사람이라 동의도 하지 않고 그렇다고 해서 명백히 거절하지도 않았다.의심할 여지없이 유해의 태도는 원래 협력 문제를 반드시 성사시키겠다고 했던 이영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하마터면 욕설을 퍼붓을 번 하였다.“대표님, 우리…….”“이영 씨, 저 지금 일이 있어서 먼저 가봐야 할 것 같네요, 다음 기회에 얘기합시다.”아주 얼버무린 한마디가 떨어지자 이영은 다시 입을 열려고 했지만 전화는 그렇게 끊겨버렸다.그녀의 완벽한 표정은 갈래갈래 찢겨 졌고, 남보란 듯이 핸드폰을 벽에 세게 뿌리쳤다.‘내가 직접 전화를 걸었는데 이렇게 날 대해?’AMC의 대표사무실, 사무실에 들어간 임만만은 업무를 보고하는 프로젝트 매니저가 떠난 후에야 앞으로 걸어 나왔다.“대표님, 예상대로 이영 쪽에서 신원테크놀로지 유해 대표와 연락하였습니다. 근데 유해 대표가 관심이 없는 모양입니다.”GN그룹 손실을 만회했다고 하나 얼마 전 주식 시장이 폭락한 것은 여전히 모두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이기태의 딸로서 이영도 당연히 신중하게 선택받는 사람이 되어버렸다.이진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예상 그대로의 시나리오이다.이미 결정을 내린 이상 앞으로 일어날 일은 모두 그녀의 예상 밖을 벗어나지 못한다.그리고 지금 미끼에 고개가 걸렸으니 더더욱 장대를 걷을 이유가 없었다.이진은 나른하게 기대어 앉아 무심코 입꼬리를 올렸다.“소식 내보내, 신원테크놀로지 내가 관심 두고 있는 프로젝트라 누가 감히 손대면 AMC와 맞서는 거라고.”이영의 성격에 이런 자극이 제격이다.유해한테 체면이 깔려 마음이 흔들리겠지만 이 소식에 반드시 유해 이 ‘대’를 꽉 물고 끝까지 그녀와 맞설 것이 틀림없다.이진의 이영의 마음을 완전히 읽은 셈이다.그날 오후, 이진은 일부러 정임이 보고할 때 전화에 불려가는 척하며 사무실을 떠났다. 정임이 움직이기
결혼식 날짜는 8월 초로 정해졌으며, 국내와 해외에서 각각 한 차례씩 진행될 예정이다.웨딩드레스 가게에서 청혼한 이건의 이야기는 곧 널리 퍼지게 되었다. 오늘날까지 두 사람에 관한 이야기가 인터넷에 널리 퍼지고 있었다.이건이 바라던 대로, 전 세계의 사람들은 이진이 윤이건의 아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두 사람의 결혼식은 더욱 화려하고 시끌벅적했다.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두 사람은 친한 지인들 외에 회사 직원들만 초대했다.윤이건의 가족들은 보기 드물게 모두 현장에 참석했지만, 이진 쪽은 텅 비어 있었다.한편 이씨 가문은 여전히 다툼이 지속되고 있었다.“이것 봐! 내가 애초에 뭐라 그랬어? 이진 그년이 양심 없는 년이라고 몇 번을 말했는데, 이제 알겠지? 그년은 결혼식처럼 중요한 날조차 아버지인 당신을 부르지 않았어. 이기태, 정말 당신이 뭐라도 되는 줄 알아?”백윤정은 노발대발하며 욕설을 퍼부었다. 그녀에게는 예전의 자애로운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앞으로 달려들어 이기태를 때리려고 들었다.이기태는 화가 난 마음에 백윤정을 밀어냈다.“좀 저리 꺼져!”‘그래봤자 이진이는 내 친 딸인데, 지금 일이 이 지경이 된 건 모두 백윤정 때문이잖아. 백윤정이 중간에서 이간질을 하지 않았다면, 내가 이진이를 그렇게 대했겠어? 백윤정이 자꾸 끼어들어 모순을 만들어내지 않았다면, 이진도 날 이렇게까지 미워하진 않았을 거야.’물론 이기태의 눈에는 그저 이익밖에 없다. 그가 후회하는 건 오직 이진을 통해 이건의 도움을 받지 못한 것뿐이다.지금의 이기태는 백윤정과 사이가 완전히 틀어지고 말았다. 두 사람은 매일 싸우기 바빴다.이기태는 결혼식이 끝날 때가 되자 뻔뻔스럽게 이진에게 전화를 걸었다.“이진아.”“이기태 씨, 전에 제가 전화를 끊을 때 했던 말을 잊으신 거예요?”이기태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이진의 차가운 목소리가 전화 너머 들려왔다. 그는 등골이 서늘해지더니 그제야 기억난 듯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이진, 너!”
보통 사람이라면 분명 시언의 모습에 마음이 약해졌을 것이다.하지만 이진은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이진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그의 말을 듣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한마디 내뱉었다.“제가 사랑하는 남자는 윤이건 씨밖에 없다는 것을,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어요.”시언은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팠다. 그리고 힘겹게 한 마디 물었다.“제가 몇 년 더 빨리 나타났다면.”“그래도 결과는 똑같아요.”이진은 그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또박또박 말했다.말을 마친 뒤, 이진은 더 이상 시언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이건을 향해 걸어갔다.애초에 이진은 시우가 이 연회를 통해 정희와의 결혼 소식을 발표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이진은 마침내 시우의 의도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몸과 마음이 피곤했던 이진은 이건의 가슴에 기대어 말했다.“이건 씨, 저 해외여행 가고 싶어요.”“해외여행?”이건은 원래 뭔가를 계획하고 있었기에, 얼마 후 이진을 데리고 출국할 생각이었다.이진이 먼저 제기한 이상, 이건도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그는 활짝 웃으며 이진을 껴안고 말했다.“그래, 자기가 가고 싶은 곳이라면 어디든 좋아.”이를 위해 이건은 비행기 티켓을 예약하고 모든 일들 미뤘다. 하지만 이건의 원래 계획까지는 아직 시간이 좀 남았다.YS그룹에는 이건이 직접 처리해야 될 큰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이건은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이진을 데리고 해외로 여행을 간 것이다.이 소식을 전해 들은 YS그룹의 고위층들은 미치기 직전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이건에게 전화를 걸어 돌아와 달라고 부탁을 했다. 어쨌든 프로젝트는 끝내고 가야지.하지만 이건의 대답은 그저 한마디뿐이었다. 결혼식을 마친 후.결혼식을 마친 후, 이건은 분명 이진과의 아이를 돌보는 데 집중할 것이다.그러기에 앞으로 일에 전념하는 시간은 점점 적어질 게 뻔했다.옆에 있던 이진은 한쪽에 놓인 핸드폰이 끊임없이 울리는 것을 보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내가 너무 충동적인 건 아니겠지? 이건 씨는 날
이진은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내가 남학생을 꼬드겼다는 건 무슨 말이야? 아예 기억조차 나지 않는 데다가, 시우 씨의 동생인 건 아예 모르던 일이야. 도대체 이 일이 나랑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야?’이진은 화를 내며 이건을 노려보았다.“제가 언제 그런 행동을 했다고 그래요. 전 그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기억이 안 나거든요.”“정말이야?”이건은 일부러 장난친 거다. 사실 메시지를 보고 불쾌한 기분이 조금 들었는데, 이진의 반응은 그를 매우 기쁘게 했다.이건은 입술을 오므리며 말했다.“그렇다면 자기 마음속에는 나밖에 없다는 거지?”‘그럼 더 이상 시간 낭비하지 않아도 되겠네. 시우 이놈은 겁도 없네, 감히 내 아내더러 자기 사촌 동생을 위로해달라는 거야?’이건은 차갑게 웃으며 이진의 핸드폰을 가지고 시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시우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이진 씨, 제가 보낸 메시지를 보셨나요? 저도 어쩔 수 없어서 연락을 드린 거예요. 이 녀석이 술에 취해 밤새 이진 씨의 이름을 부르더니,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또.”“또 뭐 했는데?”이건은 그의 말을 끊은 뒤 질투 가득한 말투로 말했다.“네 사촌 동생이 대단한 사랑꾼인가 봐.”‘윤이건?’전화 너머의 시우는 하마터면 심장이 터질 뻔했다.“이건아, 이진 씨 핸드폰이 왜 네 손에 있는 거야? 난.”“나랑 이진이가 부부인 걸 잊은 거야?”이건은 더 이상 시간 낭비하기 싫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내 아내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지는, 내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그럼 내 아내를 좋아하는 사람마다 직접 가서 위로해 줘야 되는 거야? 내가 동의할지 말지는 둘째 치고, 이진이 정말 간다고 해도 네 동생이 괜찮아질 리는 없어.”마침 뭔가 생각난 이건은 잠시 망설이더니 협박하듯이 말했다.“술에서 깨면 네 동생한테 전해. 어제 같은 일이 또다시 일어나면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이건은 다른 남자들이 자신의 아내에게 들러붙는 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이
‘윤이건? 윤이건이 어떻게?’시언은 도저히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그와 시우는 사촌 형제이기에, 이건과 시우가 친한 친구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소문에 의하면 이건은 이미 결혼했고 사랑하는 아내가 있다.‘설마.’시언은 갑자기 깊은 생각에 잠겼다.이건과 이진이 어떤 사이든, 이진이 이건을 얼마나 의지하든, 그는 자신이 이진을 좋아한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시언은 몸 옆에 늘어진 손을 꽉 주먹 쥐었다. 이때 정신을 차린 그는 앞으로 나아가, 이건의 앞길을 막고 환한 미소를 선보였다.“윤 대표님, 전 민시언입니다. 시우 형의 사촌 동생이에요. 시우 형한테서 얘기 많이 들었는데, 이렇게 만나 뵙게 되니 너무 영광입니다. 혹시 이진 씨랑은.”“이건 씨, 나 돌아가고 싶어요.”시언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이진은 취기를 못 이겨 남자의 가슴에 얼굴을 가볍게 문질렀다.이건의 차가운 표정은 순식간에 눈 녹듯이 녹아내렸다.이건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 몸을 숙여 이진을 안았다. 그리고 시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이진을 조수석에 태웠다. 세심하게 안전벨트를 맨 후 무심코 뒤쪽을 스쳐보자, 시언은 방금 자세를 유지한 채 제 자리에 서 있었다.“이건 씨, 얼른 돌아가요.”이진은 아직도 이건에게 바짝 달라붙어 있었다.이건은 시선을 돌려 이진의 희고 정교한 얼굴을 보자 계획이 하나 떠올랐다.‘그동안 결혼식 하나 제대로 치르지 못했는데, 반드시 전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결혼식을 선물해 줄게.’이건이 직접 이진을 데려간 것을 목격한 시언은, 정신을 잃은 듯이 축 처진 채로 시우의 아파트를 찾았다. “민시언?”시우는 갑작스럽게 나타난 시언을 보자 조금 놀란 듯했다.“네가 이곳엔 왜 온 거야?”시언은 쓴웃음을 지으며 물었다.“형, 술 한잔하실 래요?”두 사람은 오랜만에 만났기에 술 한잔하는 것쯤은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다.하지만 시우는 정희와 함께 임신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최근 술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았다.시언의 상
하룻밤 푹 자고 난 뒤, 다음날 아침 이진은 호텔에서 출발해 학교로 갔다.서현도 마찬가지로 이번 만남을 무척 중시하였다. 그녀는 이진을 만나기 위해 일부러 수업을 오후로 미뤘다.카페에 앉은 서현은 커피잔을 만지작거리더니 웃으며 말했다.“이 대표님, 제가 오만해 보이긴 해도, 평범한 작가들과 비슷한 꿈을 꾸고 있거든요. 제가 쓴 시나리오를 대중들에게 알려, 널리 선보이는 게 제 꿈이에요. 하지만 제가 글을 쓸 때에는 저만의 요구가 있기에, 미리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요.”서현의 요구는 별로 지나치진 않았다. 그저 세훈이 제기했던 요구처럼 원칙적인 문제에 관한 것들이다. 이 방면의 문제는 서현이 말하지 않아도 이진이 끼어들지 않을 것이다.이진이 바로 동의하자 서현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이진의 시원시원한 성격은 전에 그녀를 찾아온 사람들과 사뭇 달랐다.서현은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어제 너무 지나친 행동을 보이지 않아서 다행이야. 안 그러면 이진 씨처럼 훌륭하신 분을 놓치게 되었을 지도 몰라.’ 세부사항을 토론한 후, 이진은 세훈과 서현을 데리고 원작자를 찾아가 판권을 따냈다.그 후 배우의 캐스팅으로부터 촬영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엄청나게 심혈을 기울였다. 배우들의 캐릭터 소화는 물론, 배우들 사이의 호흡은 날이 갈수록 좋아졌다.몇 달 후, 영화는 이건의 도움으로 성공적으로 상영되었다.의 원작 팬이 워낙 많았고, 호기심으로 본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그러나 영화관을 나설 때 모두 영화 속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정도로 영화에 푹 빠져 있었다.개봉 첫날, 전국의 영화관 티켓은 모두 매진되었다.심지어 대부분 영화관에서는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영화를 예정했던 시간보다 더 오랫동안 상영하였다.개봉한지 한 달이 되었을 때, 는 수십 년간 1위를 차지했던 영화를 뛰어넘기도 했다.이 영화의 촬영 제작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도 엄청난 인지도를 가지게 되었다.그들은 마치 다크호스처럼 갑자기 대중들의 시선 속에 나
이진은 말을 마친 후 정희를 데리고 성큼성큼 떠났다.“이진아, 넌 저분이 동의할 거라고 확신하는 거야?”한참을 걸은 뒤 정희가 호기심에 물었다.이진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서현이 딱 봐도 설득하기 어려운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재능이 있는 작가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데, 굳이 모욕을 당하면서 저 여자를 선택할 필요는 없잖아.’정희는 잠시 생각해 보더니 말했다.“내가 연예계에 아는 사람이 꽤나 있는데, 그냥 이서현 말고 다른 작가 소개해 줄까?”“아직은 필요 없어.”이진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아마 날 거절하지 않을 거야.”이진이 거절한 이상 정희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정희가 포기한 채 택시를 잡으려던 찰나, 앞에서 엄청난 비주얼을 가진 키 큰 남학생이 두 사람에게 달려왔다.“예쁜 누나들, 어디 가시려는 거예요?”두 사람을 향해 한 말이지만, 남학생은 줄곧 이진을 훔쳐보고 있었다.이 모습을 지켜보던 정희는 몰래 웃음을 터뜨렸다.“왜요? 학생, 지금 대시하는 거예요?”생각이 들통난 남학생은 부인하기는커녕 겸연쩍은 듯 손을 들어 뒤통수를 긁었다. 그리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누나들은 저희 학교 학생이 아닌 것 같네요.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연락처라도 주시면 안 될까요?”“두 사람 연락처를 모두 받아 가시려는 거예요? 생각보다 욕심이 많으시네요.”정희는 눈썹을 찡긋거리며 장난을 쳤다.그러자 남학생은 볼이 빨갛게 달아오르더니, 용기를 내어 이진에게 핸드폰을 건넸다.“누나, 전화번호 주시면 안 될까요? 절대로 귀찮게 굴진 않을 게요!”‘지금 충분히 귀찮은 것 같은데.’이진은 눈썹을 찌푸리더니 깔끔하게 거절했다.“죄송하지만, 안될 것 같네요.”난생처음 대시를 시도해 본 남학생은, 자신이 이렇게 무자비하게 거절당할 줄은 몰랐다. 남학생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실망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옆에 있던 정희는 차마 이대로 지나치기 힘들어, 가방에서 이진의 명함을 한 장 꺼내 남학생의 손에 쥐여 주었다.“연락처는
이진은 자신의 가장 진실된 생각을 전한 것은 물론, 판권을 반드시 따내려는 결심으로 원작자를 두 번이나 찾아갔다. 결국 원작자는 그녀에게 한 번 만날 기회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이진은 이번 기회를 제대로 이용하기 위해, 전에 조사한 자료들을 들고 사람을 찾으러 대학으로 향했다.그녀 스스로 배역을 연구하는 것은 턱없이 부족했기에, 이진은 전문적인 작가를 찾아야 했다. 현재 대학교 교수인 이서현이 가장 좋은 선택지였다.출발하기 전에 이진은 특별히 학교의 포털 사이트를 통해, 서현의 수업시간표를 찾았다. 그리고 교장에게 부탁하여 수업에 참석할 수 있게 되었다.이진의 신분을 알게 된 교장은, 단번에 그녀의 의도를 알아차리고는 두 손 두 발 들어 환영했다.한편 이 일을 알게 된 정희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애초에 이진이 연예계에 투자할 의향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평소에 경제 뉴스밖에 안 보던 이진이 정말 영화를 찍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진심이었던 거야? 왜 갑자기 영화를 찍으려는 거지?’정희는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 이진에게 전화를 걸었다.“이진아, 네가 의 판권을 따내 영화로 제작한다고 들었는데, 정말 사실이야?”“내가 언제 거짓말한 적 있어?”비행기 탑승 시간이 10분밖에 남지 않았기에, 이진은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끊었다.“나중에 다시 얘기해, 지금.”“너 지금 공항이야?”눈치 빠른 정희는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마침 한가하던 정희는 이진을 따라 서현을 찾으러 갈 생각이었다.‘우리 이진이가 갑자기 영화를 찍다니, 어떻게 된 일인지 내 눈으로 확인해 봐야겠어.’정희는 결정을 내린 듯이 말했다.“이진아, 좀만 기다려 금방 갈게!”정희는 줄곧 생각나는 대로 움직이는 성격이라, 이진은 핸드폰을 거두고 방금 정희의 말을 신경 쓰지 않았다.비행기는 한 시간도 안 되어 착륙했다.이진은 택시를 타고 바로 학교로 향했다. 그리고 사전에 알아보았던 수업시간표를 따라 강의실을 찾았다. 분명 수업이 시작되기까지 시간
이진은 별장을 나선 뒤 홀로 국장의 집으로 향했다.공교롭게도 여태껏 이진을 만나보고 싶어 하던 가정의도 국장의 집에 있었다.하지만 연이은 실패로 가정의도 이진의 성격을 알 수 있었다.이진은 엄청 겸손한 데다가 이건의 아내다. 그녀가 어떤 신분이든 간에, 외부에 자신의 실력을 알릴 생각이 없다면, 가정의도 더 이상 묻진 않을 것이다.두 사람은 자리에 앉은 후, 국장의 건강에 대해 자세히 토론하기 시작했다.옆에 있던 국장은 조용히 듣고 있다가, 때때로 몇 마디 맞장구를 치자 분위기는 매우 화기애애했다.이진은 경계심을 내려놓고 많은 의견을 제기하였다. 국장은 모든 의견들을 자세히 기록하였다.모든 이야기를 마친 후, 국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눈물을 글썽였다.“모두 이진 씨 덕분이에요. 이진 씨가 아니었다면 이 늙은이가 고질병 때문에 죽을 때까지 고생했을 거예요. 어쩌면 어느 날 갑자기.”“국장님, 곧 괜찮아질 테니 너무 걱정하진 마세요.”이진은 국장의 말을 얼른 끊은 뒤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게다가 할아버지의 친구분이시니, 제가 당연한 일을 한 것뿐이에요. 전엔 제가 생각이 짧은 데다가 일 때문에 바쁘다 보니, 줄곧 시간을 내지 못했는데 너무 탓하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어요.”“탓하다니, 그럴 리가 있겠는가.”‘나한테 이렇게 큰 도움을 줬는데, 고마워하기도 모자랄 판에 탓할 리가 있겠어?’마을의 개발 프로젝트는 정상적으로 진행되었다.이진도 마찬가지로 세훈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이 대표님, 제가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워낙 조건이 후해 거절할 이유를 찾지 못하겠더라고요.”진심 어린 이야기를 마친 후, 세훈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을 이어갔다.“하지만 저한테 특별한 요구가 하나 있는데, 이 대표님께서 허락해 주셨으면 좋겠어요.”“어떤 요구죠?”이진은 호기심에 눈썹을 찡긋거렸다.세훈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이 대표님께서 절 좋게 봐주시는 건 알고 있어요. 하지만 영화가 방영되었을 때 괜한 추측들이 떠돌아다니는 것을 방
오 감독은 전략을 바꾸기로 결정 내렸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진에게 사과하기로 한 것이다.이진은 전에 말했던 대로 마음에 들었던 감독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작품마저 몇 개 없는 신인 감독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오 감독은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나처럼 유명한 감독을 마다하고 신인 감독과 합작한다는 거야? 내가 그동안 받은 상이 얼마인데! 이진 그년은 분명 사람 보는 눈이 삐뚤어진 거야! 신인 감독 주제에 얼마나 잘 찍을지 똑똑히 지켜봐야겠어.’오 감독은 불만이 가득했으나 자신의 앞날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이진에게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모두 이진이 예상했던 대로다. 전화를 받은 순간, 이진은 만만에게 눈빛을 보내 모 플랫폼에서 생방송을 시작했다.이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던 오 감독은, 애써 웃으며 이진의 용서를 구하는 척했다.“이진 씨, 전엔 제가 너무 무례한 행동을 보였던 것 같네요. 의 촬영을 양세훈한테 맡길 생각인 거죠? 제가 양 감독을 소개해 줄 테니, 실시간 검색어의 글들을 내려 주시면.”“글을 내려달라고요?”이진은 오 감독이 뜻밖의 비장 카드라도 쥐고 있는 줄 알았다. 그가 이 정도로 파렴치한 인간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지금 말 같지 않은 조건으로 나와 협상하려는 거야?’이진은 마음속으로 차갑게 비웃고는 비꼬듯이 입을 열었다.“오 감독님, 본인이 지금 어떤 처지인지 잊으신 거예요? 지금 저한테 조건을 제기할 것이 아니라 사과를 하셔야죠. 제가 양세훈 감독님을 선택한 건 사실이지만, 제 방식대로 촬영에 참여하도록 설득시킬 것이니, 당신의 도움 따위는 필요 없어요.” “당신, 좋은 말로 할 때 그냥 넘어가지 그래?”오 감독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모욕을 당했기에, 이대로 참고 있을 수 없었다. 결국 위선적인 모습을 집어치우더니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내가 굽신거려주니까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아? 네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 모두 윤이건 덕분이라는걸, 내가 모를 줄 알아? 아마 윤 대표한테 들러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