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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0화 법정에서 나를 지목하다

나는 법관이 내게 무슨 질문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순간 머리가 하얘졌기 때문이다.

변호사는 나 대신 문제를 몇 개 대답하고는 휴정을 신청했다. 휴게실에서도 정신이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오늘 민설아와 재판에 참석한다는 사실을 엄마, 아빠에게 알라지 않았다. 엄마는 처리할 일이 많았고 아빠는 회복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자극을 주기 싫었다.

하여 지금 이 자리에는 나와 내 변호사밖에 없었다. 그는 사건의 경과에 대해서만 잘 알고 있을 뿐 나와 민설아 사이에 발생한 일에 대해서는 아예 몰랐다.

“허지영 씨, 다시 잘 고민해 보세요. 원고가 한 말을 덮을만한 다른 유력한 증거가 있나요?”

변호사가 내게 물었다.

있긴 했다.

그냥 내가 사람들에게 빈이는 아예 배인호의 아이가 아니라고, 그렇다고 민설아의 친자도 아니라고 말하면 된다. 그리고 민설아는 진작부터 이 일들을 알고 있었지만 모른척한 걸 뿐이라고 말이다. 그러면 내가 질투 때문에 일부러 빈이에게 독극물을 탔다는 사실이 성립되기 어렵다.

내 두 아이가 배인호 아이였기에 배인호와 혈연관계도 없는 아이를 질투할 필요가 없었다.

문제는 지금 이런 걸 얘기해서는 안 된다는 거다. 앞으로 배인호는 민설아를 기소해 양육권을 경쟁하려 할 텐데 그러려면 빈이와 친자 관계여야만 했다. 만약 내가 이 사실을 들춰내면 배인호가 민설아의 손에서 빈이의 양육권을 뺏어오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비밀을 지켜야 할 뿐만 아니라 민설아가 직접 말할까 봐 걱정되기도 했다. 그럼 배인호가 빈이의 양육권을 뺏어오는 건 거의 가망이 없게 된다.

이때 휴게실 문이 열리더니 민설아가 찾아왔다. 그녀는 아예 내 담당 변호사를 무시하더니 우쭐대며 물었다.

“허지영 씨, 내가 이 일을 꺼낼 줄은 몰랐죠?”

“민설아 씨, 이렇게 하면 뭐 콩고물이라도 떨어져요? 빈이가 인호 씨 아이라면서요. 배씨 가문의 움직임에 응해 내가 아이를 돌려보내면 민설아 씨와 빈이의 지위가 점점 흐려지는 거 몰라요?”

나는 이성을 되찾고는 인내심 있게 말했다.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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