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엄마도 푹 쉬세요. 내일 같이 병원 가서 의사 선생님과 잘 토론해 봐야 할 것 같아요.”나는 엄마의 손을 잡고는 어깨에 기댄 채 부드러운 목소리로 위로했다.엄마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억지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나는 엄마와 천천히 위층으로 올라갔다. 엄마가 방으로 들어간 걸 확인하고 나서야 나도 내 침실로 향했다. 로아와 승현이가 아기용 침대에서 쌔근쌔근 단잠을 자고 있었다.깊게 잠든 아이의 얼굴은 귀여우면서도 단순했다. 하지만 그들에겐 아빠도, 할아버지, 할머니도 없었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아껴주는 것도 좋지만 이것마저 어떻게 될지 모른다.나는 엄마 아빠가 없다면 어떤 모습일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내 아이가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를 잃는 것도 싫었다.“아가야, 우리 꼭 좋아질 거야. 그렇지?”나는 로아와 승현이의 볼에 뽀뽀하고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승현이의 입꼬리가 갑자기 올라갔다. 무슨 좋은 꿈이라도 꾸는지 귀엽고 달콤한 미소를 지었다. 이 미소에 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 같았다. 이 모든 상황을 직면할 용기와 동력도 같이 생기는 것 같았다.나는 샤워를 하고는 억지로 잠을 청했다. 하지만 걱정이 많아서 그런지 서너 시간밖에 자지 못했고 날이 밝자 바로 침대에서 일어났다.“로아야, 승현아, 너희들도 왜 이렇게 빨리 깨어났어?”아기용 침대에서 뽀얗고 포동포동한 손이 불쑥 튀어나오더니 이내 발까지 보였고 발을 계속 버둥대는 모습이 말캉하고 귀여워 보였다.나는 그쪽으로 다가가 직접 확인했다. 로아와 승현이는 나를 보더니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를 알아보는 건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둘 다 기분이 좋아 보였다.아줌마가 문을 열고 들어와 내게 인사를 건넸다. 아줌마는 로아를, 나는 승현이를 안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아줌마는 로아와 승현이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우유를 타 주고는 정원으로 나가서 맑은 공기를 마시게 했다.날씨가 춥긴 했지만 많이 껴입혔기에 별로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이때 엄마 아빠가 위층에서 내려왔다. 심리 작용인지는
엄마 말을 듣고 나니 나는 아빠가 무슨 걱정을 하는지 이해가 갔다. 나라도 무서울 것이다. 사람이라면 다 느끼는 감정이다.나도 전생에 유방암으로 죽었다. 하여 이번 생에도 그 병을 끔찍하게 두려워한다. 가슴에 조금이라도 통증이 느껴지면 바로 병원으로 달려가 검사했고 작은 문제라도 있으면 시간과 공을 들여 치료하려고 했다.“엄마, 일단 우리 둘이 방법을 생각해서 이런 심리적인 장애를 극복하게 해야 해요. 아빠 같은 상황은 치료를 빨리하면 할수록 좋아요. 더 끌면 리스크가 점점 더 커질 거예요.”나는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응, 알아, 나도 잘 타이를 거야.”엄마도 표정이 어두웠다. 엄마는 나보다 더 아빠의 건강을 걱정하고 있을 것이다. 오랫동안 살을 나눈 정도 있고 이 나이가 되어 누가 갑자기 먼저 세상을 떠나기라도 하면 남은 그 사람은 정말 큰 타격을 받을 것이다.이때 아줌마가 웃으며 로아를 안고 들어와 말했다.“작은 아가씨 엄마가 온 줄 알고 있나 봐요. 오늘은 내가 안아주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네요.”나는 핑크색 스웨터를 입은 녀석을 보고는 얼른 손을 뻗어 아줌마의 품에서 건네받았다. 로아는 이미 허리가 조금 발달한 상태라 내 팔에 앉혀도 별로 흔들리지 않았다. 그저 다른 손으로 로아의 어깨만 살짝 받쳐주면 된다. 인형처럼 예쁜 얼굴로 내게 가까이 다가오자 나는 분유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승현이는요?”나는 로아에게 뽀뽀하고는 아줌마에게 물었다.“작은 도련님은 자고 있어요.”아줌마가 대답했다.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줌마에게 먼저 내려가 보라고 했다. 나와 엄마는 거실에서 로아와 놀아줬다. 한참 후 아빠가 위층에서 내려오더니 예상 밖으로 배인호에 관한 일을 물었다.그는 핸드폰을 내게 건네주며 말했다.“배씨 집안 요새 왜 이렇게 어수선해?”핸드폰을 건네받아 내용을 확인해 보니 어제 내가 병원에서 나간 후 배인호와 이우범 사이에 충돌이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배인호가 직접 우지훈에게 손을 댄 게 아니라 보디가드를 시켰다.
나는 잠시 멍해졌다. 그렇다. 현재 민설아보다 내가 더 빈이 엄마 같으니 말이다.“빈이는 좋은 아이예요.”침묵 끝에 나는 겨우 한마디 답했다.“흐흐.”하지만 배인호는 차갑게 웃어 보였다. 그는 나와 달리 빈이가 자기 아들이 아니란 걸 안 뒤로 아예 마음이 차갑게 식어버린 듯했고, 오히려 내가 빈이에게 알 수 없는 감정이 생겨난 것이다.나도 내 자신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게 설마 엄마가 된 후의 후유증 같은 걸까?“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배인호가 이어서 나에게 또 한마디 되물었다. 그는 이미 민설아가 한 짓에 대해 모든 걸 알고 있지만 그걸 해결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오히려 나를 보고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묻는데, 그 질문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한참이 지나서도 전화를 여전히 끊지 않은 채, 배인호는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나는 끝내 용기를 내 그에게 부탁하듯이 말했다.“민설아가 더는 빈이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사람 시켜서 잘 감시해 줘요. 그게 나를 돕는 거나 마찬가지니까요.”“허지영, 넌 너랑 아무런 상관이 없는 아이한테는 그렇게 마음 약하면서, 나한테는 마음 약해질 수 없는 거야?”배인호가 차갑게 나에게 물었다.“이건 서로 다른 두 가지 일이에요. 빈이는 결백하지만, 인호 씨는 아니잖아요.”나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쉽게 답할 수 있었다. 내가 배인호에게 마음 약하게 구는 건 스스로 나 자신을 잔인하게 대하는 거나 다름없는 것이다.“알겠어. 네가 이렇게나 빈이를 걱정하는데, 나도 잘 돌봐야지. 근데 문제가 하나 있어. 네가 솔직하게 답해줬으면 해.”배인호는 내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지만, 또 다른 질문을 나한테 건넸다.나는 그가 우리 집에 어떤 일이 생겼는지에 대해 질문할 줄 알았지만, 그게 아니었다.“우범이가 입원한 거, 너랑 연관 있는 거야?”배인호의 그 질문에 나는 말문이 막혀버렸다.어떻게 알았지?그는 내가 되묻기도 전에 이어서 계속 물었다.“나한테 숨길 필요 없어. 우범이와 내 관계가
내 대답을 들은 엄마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엄마와 함께 거실로 돌아가 보니 아빠 혼자서 두 아이와 놀아주고 있었다. 로아와 승현이는 울지도 않고 안아달라고 떼를 쓰지도 않아 아빠 혼자서도 쉽게 돌볼 수 있었다.“뭐야? 모녀 둘이 뭘 그렇게 오래 이야기했어?”아빠가 의심스럽다는 듯 나와 엄마를 번갈아 보며 물었다.아마 엄마와 내가 자신을 병원에 보내는 일에 대해 논의한 줄로 알고 걱정하는 듯했다.내가 답했다.“별거 아니에요. 그냥 이야기 좀 나눴어요.”“둘이 나 입원하는 거에 대해 설득할 생각은 하지도 마. 난 분명히 말했어. 수술 필요할 때면 내가 알아서 병원에 갈 거라고!”아빠는 역시나 이 부분에 대해 걱정하고 계셨고, 경각심 가득한 말투로 나와 엄마를 향해 말했다.이 수술은 링거주사를 맞는 것처럼 쉬운 게 아니라, 수술 전에 반드시 다른 치료와 검사도 해야 한다고 아빠한테 설명해 드리려 했지만, 아빠의 태도를 보니 내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쓸모가 없을 것 같았다. 아무래도 내일 병원에 가서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마음대로 해요!”엄마는 기분이 나쁘다는 듯 한마디 내뱉고 더는 아빠와 이야기하지 않으셨다.아빠도 엄마가 화난 걸 알지만 끝까지 고집을 부리셨고, 로아와 승현이를 두고 위층으로 올라가셨다. 이튿날 아침, 오늘은 아빠와 병원에 가야 하는 날이라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났다.나는 미리 비교적 잘 아는 유방외과 의사 선생님께 연락을 했고, 바로 검사받으러 갔다. 아빠는 내 옆에서 어디가 불편한지 묻는 것 외에, 자신이 아는 다른 경력이 많은 의사들에게 연락하여 이것저것 문의하기 시작했다.“아빠, 병원에 가서 재차 검사하고 다시 이야기해요. ”나는 아빠의 행동에 당황스러웠다. 마치 내가 당장이라도 죽는다는 통보를 받은 듯이 행동하니 말이다.“일단 먼저 물어보고. 하, 이게 다 그 배인호 때문이야!”아빠는 전화를 끊은 뒤 갑자기 화살을 배인호에게 돌렸다.“네?”나는 이해가 가지 않아 되물었다.“이게 다 화병으로
저녁, 엄마가 회사에서 돌아왔다.아빠는 엄마가 돌아온 걸 보고 바라 다가가 내 병세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내가 병원에 입원할 수 있게끔 강력히 설득하라고 엄마에게 요구했다.나는 그들의 외동딸이다. 이 때문에 아빠는 그 말을 듣고 엄마가 다급히 나더러 치료하라고 설득할 거라 자신했다. 하지만 엄마는 피곤하다는 듯 머리를 저으며, 아주 독보적인 연기로 답했다. “됐어요, 부녀 사이에 일을 제가 간섭할 수 있는 게 아니죠. 당신도 입원해서 수술받기 싫고, 지영이도 입원해서 수술받기 싫은 거잖아요? 둘 다 죽으면 나 혼자 쓸쓸하게 여기서 로아와 승현이를 키워야죠, 어쩌겠어요.”엄마는 테이블 위의 휴지 한 장을 들며 눈을 닦아 보였다.아빠는 멍해진 채 엄마의 훌쩍이는 모습을 보더니 이어서 나를 바라봤다.나도 얼른 “송구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 채 그들을 쳐다보지 않고 아빠가 혼자 심리전을 하도록 내버려두었다.아빠가 계속 뭐라고 하시기 전에 엄마는 이미 “의기소침한” 상태로 위층으로 올라갔고, 더 이상 우리와 얘기하고 싶지 않은 듯한 모습을 보였다.나도 아빠가 계속 뭐라 하시기 전에 바로 로아를 안고 위층으로 올라갔고, 도우미 아줌마더러 승현이를 안고 위층으로 올라와달라고 했다. 그러고는 침실문을 잠근 채 절대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나는 그날 밤 아빠의 마음이 매우 복잡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와 아빠의 동병상련 상황에서, 엄마는 이미 우리를 포기했으니, 아빠는 그의 결정을 바꿀 가능성이 아주 크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그냥 기다리는 것뿐이다.그렇게 나는 잠자리에 들었고, 핸드폰 진동 소리에 잠이 깼다.눈을 떠보니 16개 부재중 전화가 와있었고, 9통의 메시지와 8개의 부재중 영상통화도 와있었다…이 모든 게 전부 배인호에게서 온 것이었다.이때 또 한 통의 문자메시지가 왔다.「너 계속 안 나오면, 나 사람 불러서 문 부순다.」그 문자에 나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거 무슨 뜻이지?나는 빈 이에게 무
“내가 병에 걸린 건 내 일인데, 대체 뭐가 미안한데요?”나는 배인호에게서 자초지종을 듣고도 바로 해명하지 않고 오히려 그에게 되물었다.이건 내 마음속에 매듭으로 남아있다. 전생에도 나는 배인호에게 물은 적 있었다. 내가 유방암 말기였던 가장 큰 이유는 결혼 5년 동안 기분이 억압된 채 산 것도 있는데 설마 그때는 양심의 가책도 못 느꼈단 말인가?그때 당시 배인호가 나에 대한 대답은 자업자득이었다.그 간단한 네 글자의 대답은 내 상처에 소금을 치는 격이었다.“노성민이 나한테 말했는데, 여자가 유방에 문제가 있는 가장 큰 원인은 정서적 문제래. 전에 네가 나랑 5년 동안 살았을 때 상처 많이 받았겠네. 모든 게 내 잘못이야.”배인호는 내 병의 원인을 모두 자신의 문제로 돌리며 반성하고 있었다.그의 말이 모두 맞는 말이긴 하지만 현생에 나는 그 정도로 비참한 건 아니다. 조금 전의 그 사과는 배인호가 전생의 나에게 한 사과라고 쳐야겠다.“네, 알겠어요. 그 사과 받을게요. 밖에 추운데 얼른 돌아가요.”나는 끝까지 내 상황에 대해 해명하지 않고 그냥 배인호더러 얼른 가보라고 재촉했다.“네가 나랑 서울로 돌아가거나 해외로 가지 않는 한 여기서 널 보살펴줄 거야. 내가 전 세계 최고급 의사 선생님을 찾아 네 병을 치료할 거니까 꼭 방법이 있을 거야!”배인호는 가려 하지 않고 오히려 다급히 그의 생각에 대해 알려주었다.“만약 시중에 새로운 약이 출시되면 그거 시도해도 되고. 내가 돈을 투자해 약물을 개발해도 돼. 비용이 얼마든지 기꺼이 투자할 마음이 있어! ”나는 배인호의 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게 뭐 하는 짓이지? 나 때문에 국내에 모든 일을 포기하겠다는 건가?“지영아, 너 지금 누구랑 이야기하는 거야?”이때 엄마의 목소리가 정원에서 들려왔고, 발걸음 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려왔다.나는 얼른 배인호에게 먼저 가라는 눈치를 주었다. 어쨌든, 엄마에게 있어 배인호의 인상은 여전히 좋지 않다. 나와 배인호가 친구가 된다 해도 엄마는 동의하
역시나 아빠의 마음속에서는 내 목숨이 그의 목숨보다 더 소중했다.그는 마음속으로 극복하기 힘들어 치료를 거부했지만, 나의 건강까지 더해지니 마음이 움직이신 것이다.이 방법은 역시나 효과가 있었고, 나는 마음속으로 감동 받았다.“하지만 전 가고 싶지 않아요…”나는 계속하여 일부러 아빠를 자극했고, 더욱 안달 나게 만들었다.“안돼, 반드시 가야 해! 이미 사람 시켜서 네 물건 정리하라고 했어. 그러니 곧 출발할 거야.”아빠는 강경한 태도로 단칼에 내 말을 거절했다.나는 달갑지 않은 듯한 모습으로 소파에 앉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도우미 아주머니가 나 대신 옷과 일상용품들을 정리해 줄 때까지 가만히 있었고, 도우미 아주머니가 정리를 끝낸 후에야 아빠는 내 팔을 잡아당겼다.“자, 이제 병원으로 가자.”나는 터덜터덜 아빠를 따라 문을 나섰고 차에 탔다. 로아와 승현이는 병원까지 데리고 갈 수 없으므로 도우미 아줌마더러 집에서 돌보게 하였다.오늘은 엄마도 우리와 함께 문을 나섰다. 나와 엄마는 뒷자리에 앉았고, 아빠는 조수석 자리에 앉았다. 이윽고 엄마가 물었다.“오늘 웬일이에요? 저 혼자 과부로 남기게 하고 싶지 않은 거예요?”“그래, 당신 99살까지 살아야 하는데 인생 아직 길잖아? 내가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당신 늙은 과부로 남게 할 수 있겠어?”아빠는 장난스럽게 엄마를 향해 답했다.그 말에 엄마의 얼굴색은 순식간에 변하면서 아빠에게 뭐라고 욕설을 퍼부으려는 듯했으나, 기사님이 있는지라 결국은 자신의 이미지를 지켜야 했다. 어쨌든 더는 여기에 대해 따지지 않고, 아빠가 병원에 입원하는 건 좋은 일인 것이다. 병원에 도착 후 나와 아빠는 입원 수술 절차를 밟을 준비를 하였다. 이때 내가 전에 찾았던 의사 선생님이 다시 나에게 도움이 되었다.그녀는 우리 아빠 앞에서 나에게 다른 병원을 추천해 주었다. 그 병원이 유방암 치료를 더 잘하고 최고의 효과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이다.그 말을 들은 아빠는 바로 자신의 처지에 대해 답했다.
“네, 이제는 혼자 앉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로아는 아직 제대로 기어다닐 수는 없고 승현이는 그래도 조금 기어다닐 수 있어요.”나는 마음속으로 이게 어떤 감정인지 형용할 수 없었다. 흑과 백 사이에는 항상 회색지대가 있는 것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좋고 나쁨이 없는 것 같았다.“아마 남자아이라 더 움직이기 좋아할 거예요. 그래서 운동적인 부분에서도 더 좋을 거고요. 로아도 기어다니는 거 많이 가르쳐줘요. 발육에도 도움이 될 테니까요.”이우범은 나를 당부하며 말했다.이 모든 건 나 한 잘 알고 있다. 게다가 도우미 아주머니한테도 특별히 말씀드린 적 있고, 로아를 최대한 기어다닐 수 있게 여러 방법을 시도해 보라고도 말했었다.“알겠어요.”나는 한마디 답한 후 더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 마지막에는 말없이 전화를 끊었다. 이우범도 더는 전화를 다시 걸어오지 않았고, 나도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아빠가 입원한 뒤 엄마는 회사 쪽 일까지 더해지면서 더욱 바빠지기 시작했다. 나는 엄마가 고생하는 모습을 손 놓고 바라볼 수만은 없어 적극적으로 회사 일을 돕겠다고 엄마에게 말했다.전에 비록 나 혼자서 겨우겨우 집에 회사를 운영한 적 있지만 그래도 적지 않은 경험을 쌓았었다. 하여 잠깐 엄마를 도와 일을 하는 건 나도 할 수 있을 것이고, 지금은 엄마도 곁에 있으니 언제든지 나를 지휘하고 가르쳐줄 수도 있는 것이다. “지영아, 너 할 수 있겠어?”하지만 엄마는 아주 걱정스러워 보였다. 엄마한테 있어서 나는 사업적인 재능이 없는 사람이었다. 사업과 관련된 일이라면 나는 언제나 골치 아파하곤 했었으니 말이다.“엄마, 나 믿어요.”나는 더는 설명하지 않고 바로 엄마에게 답했다. 앞으로 부모님이 계속하여 회사를 관리할 수 없다면 결국은 내가 이어받아 관리도 해야 하기에 이건 지금부터라도 미리 적응해야 하는 일인 것이다.엄마도 여기까지 생각을 한 듯 흔쾌히 승낙해 주셨다. 나도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언제든지 바로 엄마에게 물을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