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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4화 정체를 알 수 없는 알약

나는 이우범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그의 상처에 약을 발랐다. 이런 부분에서 솜씨가 없는지라 그냥 봐줄 만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왜 아무 말도 안 해요?”

내가 조용해지자 이우범이 오히려 캐물었다. 이 부분에 대해 나와 명확히 하고 싶은 것 같았다.

“무슨 말을 하겠어요? 애초에 그런 선택을 할 때부터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했어야죠. 인호 씨는 우범 씨에게 제일 좋은 친구였잖아요. 먼저 그 관계를 깬 건 우범 씨에요.”

나는 차갑게 쏘아붙이고는 차키를 집어 들었다.

“용건 끝났으면 갈게요. 입원해 있는 동안 모든 비용은 내가 책임질게요. 뒤에 비용 청구해요. 모자라면 보태고 남으면 돌려줘요.”

나는 이 말을 뒤로 몸을 돌렸다.

하지만 이우범은 나를 다시 불러세웠다.

“지금 나 되게 밉죠?”

나는 걸음을 멈추고 그를 돌아봤다. 마음이 복잡했다. 몇 마디로 설명할 수 없었다. 이우범을 싫어하는 건 아니고 그냥 깊은 실망과 함께 그를 경계하고 있을 뿐이다.

아마도 내 눈빛이 너무 슬펐는지 이우범은 시선을 거두고 고개를 살짝 떨어트렸다. 나는 그의 표정을 볼 수 없었고 그저 까만 머리카락으로 꽉 찬 정수리만 보였다. 전보다 머리가 좀 긴 것 같았고 이마와 귓가에 드리워져 있었다. 조금씩 드러난 피부는 까만 머리에 더 뽀얗게 보였다.

‘이렇게 잘생긴 외모에 어떻게 그렇게 어두운 마음이 숨겨져 있을까?’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처음부터 그냥 좋은 친구가 되고 싶었어요. 그러다 좋은 남자라는 걸 알게 됐고요. 당신을 좋아하지 못한 건 내 손해에요. 우범 씨를 미워한 적은 없어요. 이것만은 믿어줘요. 그냥 내 기대가 너무 높아서 그런지 실망도 크더라고요.”

나는 이 말을 남겨놓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병실에서 나왔다.

밖은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지금 내 마음처럼 이루 말할 수 없었고 잔잔한 차가움이 서려 있다.

나는 병원 입구에서 몇 분 더 서 있었다. 늦은 밤, 보슬비가 바람을 타고 불어와 내 몸에 내렸다.

작은 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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