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해. 그만 때리라고! 내가 뭘 잘못했다고? 당신들 대체 누구야!”이대광은 고통스럽게 울부짖었다.폭행하던 다섯 사람은 그제야 행동을 멈추더니 이대광을 에워싸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보이지 않는 아우라에 이대광은 몸을 잔뜩 움츠리고 겁에 질려 온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그는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이대광은 오남미와 ‘맞선’을 보고 나서 잔뜩 화가 치밀어 이곳으로 찾아왔다.모든 것이 준비되었고 그는 즐거운 마음으로 샤워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다섯 명의 덩치가 큰 남자들이 문을 열고 들어와 그에게 가운을 입힌 뒤 밖으로 끌어냈다.더 놀라운 것은 클럽 사람들은 감히 참견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고 할까나?이대광은 이 클럽의 배후 보스가 어떤 인물인지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그런 인물도 감히 손을 쓸 수 없다니?“내가 오늘 기분이 많이 상해서요.”이대광은 익숙한 목소리에 몸을 움찔하더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소리가 나는 방향을 바라보았다.이대광은 자기가 분명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사람들 사이로 천천히 걸어오는 사람은 바로 천도준이었다.“날 모욕했으니 대가를 치러야죠.”“천도준?”이대광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에워싼 다섯 남자를 가리키며 말했다.“이게 다 네 짓이야?”천도준은 눈썹을 치켜올리더니 고개를 비틀며 말했다.“저 새끼 믿지 못하는 거 같으니 어떻게 좀 해봐.”다섯 남자는 즉시 이대광에게 달려들어 또 한바탕 주먹질했다.비명이 메아리쳤다.5분 뒤, 다섯 사람은 동작을 멈췄고 이대광은 얼굴이 퉁퉁 부어 그야말로 도살장에 끌려가는 돼지나 다름없었다.“이러면 믿겠어요?”천도준이 물었다.이대광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이내 피가 섞인 침을 내뱉으며 깔깔 웃기 시작했다.“하하하...... 빌어먹을. 내가 널 너무 만만하게 봤어. 3년을 개처럼 키웠는데 정말 정태건설을 인수했다니.”그날 이후 이대광은 자기 매형에게 정태건설의 인수에 관해 물었지만 이대광의 매형은 진실을 말하려고 하지
오남미는 온몸이 쫄딱 젖어서 초라한 모습으로 집으로 돌아왔다.집에 들어서자마자 부모님과 오남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어딜 돌아다니다가 이제야 오는 거니?”장수지가 굳은 목소리로 그녀를 야단쳤다.“선 한번 보라는데 그게 그렇게도 싫었어?”오남미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엄마를 바라보며 물었다.“엄마, 내가 무슨 일을 당하고 온 건지는 알아?”“알아. 남준이한테 다 들었어.”장수지의 말에 오남미는 울컥 눈물이 나왔다.“남자가 좀 만질 수도 있지. 그러려고 선 자리 나간 거잖아. 차라리 둘이 같이 밤을 보내고 왔으면 나도 이렇게 걱정은 안 했을 거야. 너도 동생 앞길을 생각해야지. 애가 왜 그렇게 이기적이니?”“엄마는 대체 날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오남미가 울며 물었다.오덕화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그는 장수지를 힐끗 노려보며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당신은 애 앞에서 못 하는 말이 없어.”“딸한테 그런 말도 못해요?”장수지가 눈을 부릅뜨며 기세등등하게 말했다.“선 자리를 망쳤으니 우리 남준이는 언제 장가가요? 누나가 동생 위해서 그 정도는 도와줄 수 있지. 뭐가 문제예요?”아내가 떠드는 소리에 오덕화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오남미는 그제야 상황을 알아차렸다. 당시 오남준은 레스토랑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나중에 그녀가 도망치고 난 뒤에 도착해서 이대광의 말만 듣고 집에 와서 말을 전한 게 분명했다.오남미는 이 일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속으로 고민했다.“누나, 그래서 진짜 나 안 도와줄 거야?”오남준이 갑자기 다짜고짜 우는 소리를 했다.“나 누나 동생이잖아. 누나도 날 안 도와주면 누가 날 도와주겠어? 나 진짜 설아랑 결혼하고 싶단 말이야. 설아한테 버림받으면 나가서 콱 죽어 버릴 거야!”“남준이 죽으면 우리도 못 살아. 다 같이 죽어!”장수지까지 합세해서 목청을 높였다.죽겠다고 협박하는 동생과 엄마를 보자 오남미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바닥에 주저앉았다.“남미야, 네 마음은 알겠지만 엄마랑 동
장수지의 말에 오덕화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오덕화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보수적인 선생이었다. 그래서 집안의 대가 끊기는 일에 아주 예민하게 반응했다.그는 짜증스럽게 머리를 감싸며 고통스럽게 말했다.“내가 친구들한테 돈 좀 빌려볼게. 어떻게든 결혼자금은 마련되지 않겠어?”“빌리면 그 돈은 언제 갚으려고요!”장수지가 앙칼진 목소리로 소리쳤다.오남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녀는 빨갛게 부은 눈으로 엄마를 바라보았다.빌린 돈을 갚아야 한다는 건 알면서 딸을 상품처럼 가치를 매겨 파는 건 괜찮다는 말인가!다음 날, 오덕화는 아침 일찍 돈을 빌리러 나갔다. 어젯밤 일 때문에 밤잠을 설치고 오랜 고민 끝에 돈을 구해보기로 한 것이다.오남미도 눈물로 밤을 지새웠다. 눈이 잔뜩 부어 있었지만 그녀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출근하러 갔다.천도준과 결혼한지 3년이나 지났지만 그녀는 전업주부가 아닌 비교적 일이 수월한 회사 안내데스크 직원으로 일했다. 월급은 적지만 생활비는 천도준이 다 부담했기에 그녀가 번 돈은 거의 용돈으로 쓰고 있었다.하지만 워낙 월급이 적었고 다른 수입이 없었기에 모은 돈도 별로 없었다.오남미는 멍한 얼굴로 거리를 걸으며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또 눈물이 나왔다. 그러다가 갑자기 SNS를 접속해서 힘들다는 글귀를 남겼다.곧이어 SNS에 그녀를 위로하는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따뜻한 말들을 보며 오남미는 조금 안정을 찾았다.정태건설.천도준은 SNS에서 그녀가 올린 글귀를 보고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그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서천구 재개발 프로젝트 방안을 다시 검토했다. 오늘 밤에 공표할 내용이니 절대 그 어떤 실수도 용납할 수 없었다.눈 깜짝할 사이에 저녁 여섯 시가 되었다.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온 사람들은 거실에 앉아 TV를 틀었다.“의성그룹은 최근 언론을 통해 우리 시로 진군할 의사를 밝혔습니다. 그룹 관계자는 상권을 개발하고 상업 단지를 건설할 계획을 밝히며 일차적으로 서천구부터 재개발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습니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이걸 알았을까?오남미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문자만 빤히 바라봤다.얼핏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뭔가 알 것 같았다.의성그룹은 국내 건설 업계의 일인자였다. 이 도시에 진군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미리 소식을 외부에 알릴 리 만무했다.그건 생판 모르는 사람들에 해당되는 것이고 천도준은 정태건설 부장이었다.정태건설이 의성에 비하면 보잘것없지만 그래도 의성이 진군하기 전까지는 이 도시의 건설 업계를 꽉 잡고 있는 존재였다. 그러니 뉴스가 보도되기 전에 미리 소식을 접했을 가능성도 있었다.한숨만 쉬던 오덕화가 갑자기 말했다.“어제 남미 말을 들었어야 했어.”오남미는 의아한 얼굴로 아빠를 바라보았다.그녀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장수지가 씩씩거리며 욕설을 퍼부었다.“나쁜 계집애! 다 너 때문이야! 어제 네가 조금 자세히 설명만 해줬어도 오늘 아침에 당장 거기로 가서 집을 샀을 거야. 그럼 네 동생 결혼자금도 해결되는 건데! 너 때문에 이게 다 뭐야!”가시가 잔뜩 돋친 말에 오남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엄마, 아빠, 난 집을 사라고 말했어. 엄마가 안 된다고 한 거고….”“닥쳐!”장수지는 듣기 싫다는 듯이 자기가 할 말만 늘어놓았다.“네가 조금 더 설득했으면 우리도 당연히 들었겠지. 너 싫은 선 자리 내보냈다고 일부러 우릴 엿 먹인 거지? 대박 기회를 이렇게 허무하게 놓치다니! 이제 우리 남준이 결혼은 어떡해!”말을 마친 그녀는 소파에 털썩 주저앉더니 통곡을 터뜨렸다.결혼이 물 건너갔다는 말에 오남준도 씩씩거리며 끼어들었다.“누나,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어? 설아랑 결혼 못 하면 차라리 나가서 죽어버릴 거야!”그들이 울고 불고 난리를 피워대는 통에 오남미는 미쳐버릴 것 같았다.그녀는 짜증스럽게 머리카락을 쥐여뜯으며 눈물을 쏟았다.“대체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는 거야?”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방으로 달려가서 문을 잠갔다.그리고 침대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음을 터뜨렸다.“왜 이 모든
그는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 미친 사람처럼 고개를 흔들었다.서천구 재개발 프로젝트에서 정태건설은 60억이 넘는 고가의 계약을 체결했다. 프로젝트가 실패하는 즉시 파산할 운명이었다.그래서 어젯밤 천도준에게 개 패듯이 맞고도 웃을 수 있었다.그는 천도준은 한낱 광대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의성그룹이 서천구 개발에 투자한다는 뉴스가 공개되는 순간까지도 대표인 그는 소식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그의 능력이 그만큼 떨어진다는 의미였지만 그게 더 기분이 나빴다.의성그룹은 전국 건설 업계의 명실상부 일인자 기업이었다. 진짜 이 도시에 투자하지 않더라도 공개한 뉴스만으로 서천구 땅값은 하늘로 치솟을 것이다.의성그룹이 손을 댄 지역 중에 땅값이 안 오른 지역이 없었다.그런 핵폭탄급 정보가 공개된 순간, 무리해서 계약을 추진했다고 비난 받던 천도준은 순식간에 대 역전극을 완성시킨 것이다. 그는 어제 천도준을 비웃었던 말이 떠올라서 더 수치스러웠다.“운이겠지? 그래 넌 그냥 운이 좋았던 거야. 운이 좋으면 돼지도 날개를 달고 훨훨 날 수 있지. 마침 의성그룹이 서천구에 흥미가 생겨서 너한테 행운이 돌아간 것뿐이라고!”이대광이 거친 숨을 토해내며 중얼거렸다. 그는 핸드폰을 찾아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누나, 나 이 회사 안 다닐래. 난 그래도 부동산 회사가 더 나랑 맞는 것 같아. 매형 휘하에 부동산 회사가 몇 개 있잖아? 매형한테 말해서 나를 그쪽으로 전직하게 해줄 수는 없어?”“누나, 이번 한 번만 내 부탁을 들어줘.”전화를 끊은 이대광이 광기 어린 웃음을 터뜨렸다.“천도준, 너한테는 천운이 따른 거겠지만 나한테는 매형이 있어. 네 천운도 이제는 끝이야!”천도준은 굳이 지역 뉴스를 찾아보지 않았다. 그는 재개발 프로젝트 방안을 정리한 후, 집으로 가서 어머니가 드실 저녁을 준비했다.이제 그에게 어머니는 그의 전부였다.열심히 돈을 버는 이유도 어머니를 위해서였다.그가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 문을 열자마자 소파에 앉아 있는 이숭ㅇ
의성그룹 진출 소식은 도심 전체에서 큰 화젯거리가 되었다.어떤 사람들은 손뼉을 치고 좋아하고 어떤 사람들은 낙담하며 한숨만 풀풀 쉬었다.이틀 사이에 서천구 부동산 매매가는 50퍼센트까지 뛰었다.천도준이 예상했던 것에 거의 미치는 결과였다.서천구 땅값은 주변 환경의 영향을 받아 이 도시에서 땅값이 가장 싼 지역이라는 오명을 장기간 달고 있었다.의성이 진출한다는 뉴스 하나로 서천구 지역의 땅값을 평균치까지 끌어올린 건 대단한 쾌거라고 할 수 있었다.서천구 부동산 가격이 뛰기 시작하면서 민심이 혼란스럽던 정태건설 내부도 활력을 되찾았다. 사무실도 예전의 활력 넘치던 때로 돌아갔다.천도준이 원했던 그림이었다. 첫 도전에서 거둔 승리는 적어도 직원들에게 그의 실력을 증명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앞으로 정태건설은 점점 더 좋아질 거라는 희망도 심어주었다.일부는 천도준이 무슨 확신을 가지고 거액의 계약을 체결했다가 대 역전극을 만들어냈는지 의문을 표했지만 그때마다 천도준은 담담한 미소로 일관했다.3일째가 되었다. 정태건설 직원들이 밤잠을 설쳐가며 야근한 결과, 서천구 재개발 프로젝트가 드디어 정식 궤도에 올랐다.저녁 여덟 시, 천도준은 직원들과 함께 축하 회식을 하러 주변에 있는 대형 식당으로 향했다.회식 자리에서 그는 직원들과 즐겁게 술잔을 기울였다. 많은 직원들이 그의 성공을 축하하며 술을 따랐고 그 역시도 따라주는 대로 마셨다.정태건설에서 3년을 함께 일하면서 그의 출중한 능력과 뛰어난 친화력은 부하직원들의 인정을 받았다.정태건설이 지금의 위치까지 오를 수 있었던 일등 공신이 바로 이 젊은 부장이라는 것을 직원들도 잘 알고 있었다.이것이 정태건설이 난항을 겪는 상황에서도 그들이 이대광처럼 회사를 버리고 떠나는 게 아니라 천도준을 믿고 자리를 지킨 이유였다.이대광이 물밑에서 벌인 추잡한 짓들을 직원들도 알고 있었다. 서천구 재개발 프로젝트를 믿고 따라와 준 건, 직원들이 그만큼 천도준을 믿고 따라왔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천도준은 처음부터 이
고개를 든 천도준은 익숙한 환경에 놀라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정처없이 걷다 보니 전에 오남미와 같이 월세를 살았던 아파트 단지 입구에 와 있었다.어쩌다가 여기까지 온 거지?그는 자조적인 미소를 머금었다.그러고 보니 회식 장소가 여기와 꽤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과거에 저녁을 먹고 오남미와 함께 강변을 걸었던 기억도 새록새록 떠올랐다.술 취한 상태에서 본능적으로 걷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다신 돌아갈 수 없겠네.”천도준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돌아서던 순간, 누군가의 목소리가 그를 불러세웠다.“천도준 씨!”반가운 목소리와 함께 한 여자가 그에게 다가왔다.“정말 여기 살아요?”여자의 얼굴을 확인한 천도준의 얼굴이 차갑게 식었다.그녀는 오남미 남동생의 여자친구, 임설아였다.지난번에 그런 일을 겪고도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나?임설아는 굉장히 반가운 얼굴을 하고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하얀색 짧은 원피스에 가슴을 훤히 드러내고 밤바람을 맞으며 오들오들 떨고 있는 그 모습이 어쩜 이리도 꼴사나울까!“무슨 일이지?”천도준이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임설아는 오들오들 떨며 그의 가까이로 다가왔다. 가까이서 보니 여자의 가슴골이 더 선명하게 보였다.“거기까지!”천도준이 싸늘하게 말했다.“왜 그래요?”임설아가 화들짝 놀라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개수작 그만둬.”그녀에게서 시선을 돌린 천도준이 차갑게 말했다.임설아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순진무구한 표정을 하고 그에게 되물었다.“제가 뭘 어쨌다고요?”천도준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마사지하며 담담히 말했다.“다 보이니까 가릴 데 좀 가리라고.”임설아의 뺨이 탐스럽게 붉어지더니 간드러진 목소리로 말했다.“나빴어요.”허리를 배배 꼬고 가는 눈을 뜬 그 모습은 무언의 초대였다.천도준은 짜증이 치밀어 뒤돌아섰다.앞으로 성큼 다가선 임설아가 그의 손목을 잡고 매력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도준 씨에게 보여주고 싶었다고요.”“난 관심없어.”
이날, 임설아는 짜증이 나서 밤잠을 설쳤다.그렇게 노골적으로 다가갔는데도 천도준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남자의 심리에 대해 누구보다 잘 파악한다고 자부하던 그녀의 자존심이 철저히 무너졌다.알게 모르게 그에게 호감을 표시했고 자존심 굽혀서 사과까지 했다.그래서 한 번만 더 찾아가서 약한 모습을 보이면 남자가 당연히 넘어올 줄 알았다.물론 그와 연인이 되기는 힘들겠지만 이런 사람은 알아두면 나중에 콩고물이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기대도 있었다.그런데 천도준의 싸늘한 반응은 그녀의 상상 밖이었다.그녀는 미쳐버릴 것 같은 심정이었다.다음 날 아침, 오남준이 모닝콜을 걸어왔지만 전처럼 살갑게 대해줄 수 없었다.그녀는 천도준에게서 당한 짜증과 분노를 전부 오남준에게 쏟아냈다.“오남준, 아침부터 짜증나게 왜 전화질이야?”“설아야, 전부터 내가 모닝콜을 해주기로 했었잖아.”오남준이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모닝콜은 무슨! 밤새 못 자서 짜증 나 죽겠는데!”임설아는 짜증스럽게 머리를 헤집었다.“뭐? 밤새 못 잤어? 내가 지금 바로 갈게. 그렇게 힘들면 오늘은 출근하지 말고 집에서 쉬어.”오남준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출근 얘기가 나오자 임설아의 분노가 다시 폭발했다. 오남준의 이런 무의미한 관심은 그녀에게 부담일 뿐이었다.“출근 안 하면? 오남준 네가 나 먹여 살릴 거야? 그럴 시간 있으면 결혼자금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이나 좀 해봐. 대체 약혼은 언제하고 결혼은 언제 하니? 하기 싫으면 당장 그만둬!”오남준이 다급히 말했다.“설아야, 걱정하지 마. 집에서 이미 방법을 생각하고 있어. 약혼식 날에 네가 요구한 결혼자금 마련해 볼게.”“뭘 그렇게 어렵게 생각해? 매형이 그렇게 부자인데 그냥 달라고 하면 되잖아!”탁!그 말을 끝으로 임설아는 대답도 듣지 않고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천도준을 꼬시는 건 이미 실패로 돌아갔고 오남준에게서 돈까지 받아내지 못하면 그와 공들인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임설아가 사는 집 아래에서 통화 중이던 오
이은화는 분노했다. “그럼 우리 청하가 중간에 껴서 난처해하는 모습을 눈 뜨고 보고만 있겠단 말이에요? 아빠라는 사람이, 어떻게 이 중요한 순간에 딸을 전혀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어요?”“알았어.”고덕화는 한숨을 푹 쉬었다. 어쨌든 동의한 셈이다. “그저 여기에서 며칠 더 묵었을 뿐이야. 천씨 가문쪽과의 협의를 또 지체해야 하는 건 아닌지 걱정 돼.”고덕화는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천씨 가문의 여세를 몰아 당신이 한 단계 더 높은 성과를 올리려고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어요. 저도 그 생각에 동의하고요. 게다가 당신을 응원해요.”이은화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여보, 우리에겐 자식이라고는 청하 한 사람 밖에 없어요. 당신이 이미 이룬 성공은 다른 사람들이 간절히 원하고, 또 원하는 것이예요. 돈은 필요한 만큼만 있으면 돼요. 청하의 행복이야말로 지금 우리의 가장 큰 목표예요.”“하지만…”고덕화는 여전히 변명하고 싶었다.“저는 저희의 잘못된 생각으로 청하가 좋은 인연을 놓치지는 걸 원하지 않아요. 천씨 가문을 떠나서, 천도준은 이미 훌륭한 성과를 거두었다고요. 만약 청하가 우리 때문에 헤어지면 아버지라는 사람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겠어요?”이은화의 목소리가 점점 더 높아졌다.“당신 설마 우리 청하가 석유 재벌이나 실리콘 밸리의 거물들의 자식들을 마음에 들어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고덕화는 잠시 멈칫하다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더니 바로 명쾌하게 말했다.“그럼 이렇게 하지. 모레 여전히 이곳에서 파티를 열어 천도준에게 사과를 하는 거야. 진정한 의미에서의 상견례를 갖는 거지.”“좋아요. 이래야 좋은 아버지죠.”이은화는 부드럽게 웃었다. ……고덕화와 정강수가 회관 주차장으로 달려갔을 때, 천도준은 이미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저 멀리에서 롤스로이스 한 대가 회관 밖으로 나가는 것이 보였다. 고덕화는 미간을 찌푸렸다. 정강수가 다급히 경호원에게 물어보니, 경호원은 천도준이 착잡한 표정으로 차량에 올라탔
그 말에 정강수는 몸을 움찔거렸다. 그의 표정은 어딘가 복잡해보였다.정강수는 국화의 대가였다. 그는 도도하고 자신의 존엄을 중요시 여기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외국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사람이었다. 때문에 그에게서 사과라는 단어를 좀처럼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하물며 자신보다 나이가 한참 어린 사람한테 사과하라니?그저 멍하니 서 있는 정강수를 보고, 유 원장은 화가 났다.“너, 나랑 박씨 어르신을 믿어, 못 믿어?”박씨 어르신도 한숨을 쉬었다.“가, 어서 사과 해. 체면이 깎이는 것도 아닌데 뭐.”천씨 가문 가주의 친아들, 그것도 천씨 가문 가주가 아들을 위해 이미연에게 협박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 천도준이 정강수의 사과를 받지 못해서야 되겠는가? 순간, 정강수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졌다.유 원장이 혼자 이러는 거면 무시해도 되겠지만, 박씨 어르신까지 이러니 그들의 말을 듣지 않을 수가 없었다.그가 아무리 어리석다고 해도 일이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다.정강수는 한숨을 쉰 후, 천천히 밖으로 걸어갔다.“엄마, 아빠. 제가 도준이를 잡으러 갈게요.”고청하는 감격에 겨워 밖으로 뛰쳐나갔다.오해가 풀렸다. 이건 그녀에게 있어서 정말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여자로서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부모님의 마음에 드는 것을 싫어할 사람이 어디있겠는가?정강수의 발걸음도 덩달아 빨라졌다.안채 안은 여전히 조용했다. 고덕화와 이은화는 아직도 무슨 상황인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오늘 밤, 모든 일이 너무 순식간에 지나갔다.기쁨에서 분노로, 다시 공포로 변했다. 두 사람은 그저 오랜 친구들을 불러 딸이 사랑하는 남자가 믿을만한 남자인지 보려고 했는데, 이렇게 큰 오해가 생길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조금 전 천도준에게 했던 말과 행동을 생각하면, 두 사람은 얼굴이 뜨거워졌다.고덕화는 박씨 어르신과 유 원장을 흘겨보았다.“오래 알고 지낸 친구인데, 어떻게 두 사람은 아직도 나를 속일 수가 있지
정강수는 눈을 부릅뜨고 분노했다.그들은 모두 오래된 절친한 친구고, 각자 분야에서 뛰어난 전문가들이어서 만약 진짜로 싸운다면 누구 하나 쉽게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유 원장은 얼굴을 붉히며 욕설을 퍼부었다.“넌 정말 양심도 없는 놈이야. 내가 너랑 싸우는 것을 두려워할 것 같아? 너한테 맞으면 난 내가 직접 치료하면 되는데, 넌 누가 치료해 줄 수 있을 것 같아? 난 절대 치료 못 시켜줘.”“너……”정강수는 얼굴을 붉혔다. 고덕화는 아직도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해했다.같은 편들끼리 왜 갑자기 싸움을 벌이는 거지? 그때, 박씨 어르신이 한 발짝 앞으로 나와 유 원장과 똑같이 어이가 없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정강수를 바라보았다.“강수야. 이번 일은 네가 경솔했어. 유 원장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어.”“너 까지 왜……”정강수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하지만 이내 뭔가를 깨달은 것 같았다.세 사람 중, 박씨 어르신이 제일 진중하고 침착한 편이었다. 아니었으면 높은 지위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두 사람 대체 왜 그래? 무슨 일이야?”고덕화가 다급히 물었다.이은화와 고덕화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박씨 어르신과 유 원장을 번갈아 쳐다보았다.유 원장은 성격이 급한 나머지 발을 동동 구르며 를 가리키며 정강수에게 소리를 질렀다.“다시 한번 저 그림을 자세히 봐봐. 그래도 천도준이 선물한 그림이 가짜라고 한다면 오늘 너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그 말에 정강수는 마치 날벼락을 맞은 듯 정신이 멍해졌다.박씨 어르신과 유 원장은 천도준을 대신해 억울함을 호소했다.‘내가 진짜 잘 못 본 걸까?’정강수는 다시 를 들고 신중하게 테이블 위에 펼쳐놓았다. 그러더니 주머니에서 돋보기를 꺼내 자세히 살펴보았다.아까와 비교하면, 정강수는 확실히 침착했다. 안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어찌나 조용한지 바늘이 떨어지는 소리조차 들릴 것 같았다. 고덕화 일행은 막막했다. 하지만 박씨 어르신과 유 원장은 부끄럽기도 하고, 어딘
그의 한 마디에 방은 순식간에 시간이 멈춘 듯 조용해졌다. 박씨 어르신과 유 원장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어느새 두 사람의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하지만 정강수는 오히려 거만한 표정으로 천도준을 아니꼽게 바라보고 있었다.순간, 고청하는 눈앞이 컴컴해지는 것 같았다. 그녀의 갸냘픈 몸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떨려왔다.부모님은 불같이 화를 낸다. 처음 부모님을 소개시켜드리는 자리는 이렇게 완전히 망해버렸다.그럼 앞으로 두 사람의 사이는 어떻게 되는 걸까?고청하는 힘겹게 천천히 입을 열었다.“도준아……”그녀가 막 말을 내뱉은 순간, 천도준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미소는 봄바람처럼 따뜻했다.당백호의 는 이수용이 그에게 준 것이다. 그는 이수용이 고작 그림 한 점으로 수작을 부렸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박씨 어르신에게 주는 선물이라 해도 절대 가짜일 리가 없었다.그의 기분을 상하게 한 건 바로 정강수의 독단적인 태도였다. 그는 그림을 단 한 번만 보고 가짜라고 판단했다. 그건 아무리 전문가여도 너무 독단적이었다.그의 이런 독단적인 행동 때문에 기쁨과 환희가 차 넘쳐야 할 자리는 순식간에 발칵 뒤집히고 말았다.고청하의 목소리를 듣고, 천도준은 웃으며 말했다.“청하야, 난 괜찮아. 난 이만 나가볼게.”이미 상황이 이렇게 되어버렸으니 그가 계속 여기에 있는다면 고청하만 중간에서 곤란해질 뿐이었다.고청하는 그가 가장 힘들었을 시기에 그의 곁으로 돌아왔다. 그는 어렵게 얻은 이 진실된 감정을 각별히 소중하게 여겼다.하지만 지금, 난처해하는 고청하를 보고 있자니 천도준은 마음이 아파왔다.말을 마친 천도준은 얼굴에 미소를 띄고 사람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도준아……”고청하는 그를 잡으려고 했다.하지만 고덕화가 그녀를 붙잡았다.“청하야. 아직도 모르겠어?”“아빠…… 아빠는 제가 무엇을 이해하기를 바라세요?”고청하는 눈물을 흘리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청하야, 천도준은 이 도시에서 젊은 인재라고
쿵.그의 한 마디에 방 안의 몇 몇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라 어리둥절해했다.모두가 돈이 부족하지는 않지만, 이런 소장품에 대해서는 모두 관심이 없었다. 때문에 서화 면에서는 정강수처럼 조예가 깊은 사람은 없었다.한 폭의 그림이 거의 50억에 달한다니…… 그게 사실이라면 이 선물은 아주 귀한 것이었다.그 말에 천도준도 깜짝 놀랐다. 이수용은 너무 손이 컸었다. 다른 사람에게 주는 선물로 50억을 쓰다니?잠시 후, 천도준은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아저씨, 저는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분들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50억 정도는 내놓을 수 있습니다.”“어린 나이에 말은 잘하네?”정강수는 미간을 찌푸렸다. 점잖은 그의 얼굴에 흉악한 분노가 일었다. 고청하는 눈을 반짝였다. 천도준의 몸값을 생각했을 때, 50억 정도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그녀가 막 뭐라고 해명하려고 할 때, 정강수는 갑자기 냉소를 지으며 천도준에게 말을 걸었다.“방금 잘 못 들었어? 내가 말한 건 3년 전 시가야.”“잘 들었습니다.”천도준은 평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49억 2천 8백만원. 구체적인 가격을 어떻게 알았냐고?”정강수는 차가운 말투로 말을 이어갔다.“당시 이 그림이 경매에 팔렸을 때, 내가 그 경매 현장에 있었지. 이 그림은 당시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떤 한 신비로운 구매자 손에 들어갔어. 게다가 이 그림은 3년 전에 사간 이후로 한 번도 세간에 나타난 적이 없었지. 나이가 많이 어린 것 같은데, 설마 당신이 그때 그 그림을 산 사람이라고 하진 않겠지?”그 말에 고청하는 몸을 움찔했다. 그녀의 두 눈은 순식간에 휘둥그레졌다.3년 전이면 천도준과 오남미가 결혼하던 해다.그때의 천도준이 어떻게 50억 짜리 그림을 살 수 있었을까?‘설마…… 진짜 가짜란 말이야?’순간, 고청하의 눈앞은 순식간에 캄캄해졌다. 그녀의 마음은 순식간에 텅 빈 듯 공허해졌다.고덕화의 표정도 점점 굳어졌다.그는 정강수의 말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는 국화의 대가이고, 이 방면에
그의 한 마디에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고덕화의 표정도 순식간에 굳어졌다. 고청하 어머니의 표정도 오싹하기 그지 없었다.박씨 어르신과 유 원장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아저씨, 도준이는 가짜 그림을 선물할 사람이 아니에요.”고청하는 다급히 해명했다.이건 천도준이 그녀의 부모님을 처음 만나는 자리다. 그녀의 가세로 보아, 고청하의 부모님은 천도준이 준 선물의 가치를 절대 따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선물이 가짜라면 그건 의미가 달라진다.이건 가식적이고 무례한 일이 아닌가?“그래, 맞아. 한 번 더 자세히 봐. 함부로 말하지 말고.”유 원장도 고청하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그는 천도준의 진짜 정체를 알고 있었다. 천도준 같은 사람이 어떻게 가짜를 구입할 수 있단 말인가? 반드시 정강수가 잘못 본게 틀림없었다.“그래, 아까 그저 얼핏 봤잖아. 네가 잘못본 게 틀림없을 거야.”박씨 어르신이 말했다.“뭐?”정강수는 박씨 어르신을 노려보았다.그는 국화의 대가이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이다. 그의 그림 한 점은 수백억원에 달하는 가치가 있었다.그는 수십 년 동안 서화에 빠져있었고 직접 본 서화는 부지기수였다.당백호의 는 정강수가 한 눈에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아볼 수 있었다.“당신……”박씨 어르신은 무의식적으로 천도준을 힐끔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정강수를 향해 말했다. “이 당나귀 같은 놈아. 오늘은 청하가 남자친구를 데리고 인사를 하러 온 날인데 왜 그렇게 화를 내는 거야?”천씨 가문 가주의 친아들이 어떻게 가짜 그림을 선물할 수 있겠는가? 무슨 말도 안 되는 농담을…… 만약 이번 일로 천도준이 대노한다면 천씨 가문의 명령하나 만으로 정강수는 그동안의 명성을 전부 내려놓아야 할지도 모른다.“왜 나를 탓하는 거야?”정강수는 매섭게 쏘아붙였다.“난 저 녀석이 여자친구 부모님에게 선물로 가짜 그림을 주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뿐이야. 보잘것 없는 선물이라도 정은 깊다는 말도 있는데 값비싼 선물을 주지 못해
“걱정하지 마. 이따가 확실하게 단련시켜 줄 테니까.”박씨 어르신은 워낙 권위가 높은 사람인지라 인자하게 웃으며 말했다.옆에 있던 유 원장과 정강수도 고개를 끄덕였다.“걱정마시게나. 우린 오랜 벗이잖아. 우리를 초대했으니까 우리도 자네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걸세.”“도대체 어느 잘난 놈이 청하 마음을 사로잡은 건지 똑똑히 봐둬야겠어.”고덕화는 활짝 웃었다. 그러면서 함께 주먹을 맞잡았다.바로 그때, 고청하는 잔뜩 민망해하는 천도준의 팔짱을 끼고 안으로 들어왔다.천도준을 보자마자 박씨 어르신과 유 원장은 동시에 아연실색했다. 그들은 깜짝 놀라 순식간에 동공이 움츠러들었다. ‘저…… 저 사람이 고덕화의 예비 사위라고? 세상에.’박씨 어르신과 유 원장도 권세도 높고 지위도 높은 사람들이었지만, 천도준을 보자마자 그들의 마음속에서는 거센 파도가 일었다.이렇게 큰 인물을 감히 누가 누구를 테스트하고, 누가 누구를 단련시킨단 말인가?박씨 어르신은 천도준의 신분을 알고 있었다.이율 병원 원장인 유 원장은 천도준의 어머니가 그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때, 그는 천도준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지만 장 의사를 통해 천도준에 관한 일을 들은 적이 있었다.“저 사람이 바로 네가 말한, 우리더러 잘 테스트해봐라던 그 사람이야?”유 원장이 말했다.옆에 있던 박씨 어르신은 의아한 표정으로 유 원장을 쳐다보았다. 그는 유 원장이 천도준의 신분을 알고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깨달았다.사실, 천도준은 방에 들어온 후에도 여전히 어리둥절했다. 오늘 밤 고청하의 부모님을 만난 다는 사실도 미처 몰랐었는데 뜻밖에도 이렇게 많은 거물급 인물들이 함께 있을 줄이야.박씨 어르신뿐만 아니라 유 원장도 있었다.그의 어머니가 이율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 어머니를 돌봐느라 병원에 자주 들르곤 했다. 그럴 때에 유 원장의 사진을 본 적이 있었다.오직 그 점잖은 얼굴을 한 사람과만 초면이었다. 하지만 그는 박씨 어르신, 유 원장과 함께 자리하고 있는 걸 보면 그 또한 만만한 인
죽림 정원.웃음 소리가 본연의 고즈넉함을 깨뜨렸다. 고청하는 의자에 앉아 자신의 아버지와 그의 몇 몇 오랜 벗이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안절부절못하며 지켜봤다.한 쪽의 대원들 외에, 국화의 대가, 의학의 권위자 등등이 한자리에 모여있었다. 이 사람들은 국내에서 명성이 자자할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위상이 높았다. 이 사람들은 모두 고청하 아버지의 절친한 친구들이었다. 이따가 천도준이 오면, 어떤 광경이 펼쳐질까? “자네, 오랫동안 보지 못했는데, 못 본 새에 이율 병원 원장으로 국제적으로 유명하더군.”중년 남자는 활짝 웃으며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 남자를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외국의 의학 잡지에 자네가 자주 등장하더군.”“하하하. 그만 칭찬하게나. 이게 다 검은 머리가 희도록 밤 새서 노력한 결과물이니……”유 원장이 웃으며 말했다.“국제적으로 명성이 높은 걸로 따지면 정강수가 제일 자격이 있지.”그 말에 점잖은 외모에 안경을 쓴 또 다른 중년 남자가 말을 이어갔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니야. 국제적으로 유명하다니? 정말 국제적으로 명성을 떨친 건 내가 아니라 고씨 지. 석유 재벌과 실리콘밸리의 가물들과 어울려 놀잖아.”“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내가 이번에 너희를 부른 건, 중요한 일이 있어서야.”“바로 사윗감을 테스트 하는 거지.”박씨 어르신이 진지하게 말했다.이 말에 유 원장과 정강수는 동시에 흥미를 느꼈다. 그들은 앞다투어 고덕화의 예비 사위가 누구인지 물었다.고덕화는 말없이 웃으며 나중에 소개하겠다고 말했다.“생각지도 못했어. 덕화가 이 도시에서 가문을 일으켰는데 사위도 이 도시에서 찾고, 어느 집 재주가 뛰어난 놈이 우리 조카딸을 그렇게 오매불망 기다리게 한 거야?”유 원장은 참지 못하고 한 마디했다.“기다려보면 알아.”고덕화는 살짝 웃었다. 그러면서 고청하에게로 시선을 옮겼다.“마침 사람들도 다 모였으니 이 녀석들이 나를 도와 그 녀석이 진짜 합격된 놈인지 아닌지 테스트할거야.”고청하는 두 손을 맞잡
세 개의 분양 아파트 실시간 데이터는 꾸준히 잘 유지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일주일 정도면 이번에 나온 매물들을 다 팔 수 있을 것 같았다.이건 그에게 있어서 가장 좋은 결과였다.그는 큰 주목을 받지 않는 선에서 가장 빠른 이익화를 실현하려고 했다.오후 5시, 천도준은 마영석에게 오늘 밤 축하연을 마련하라고 했다.하지만 그의 테이블로 배달된 초대장 하나가 그의 계획을 완전히 허사로 만들었다.초대장에 적힌 글자를 보고, 천도준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그는 기뻐하면서 조금 놀란 것 같았다.초대장에는 사인회관이라는 장소가 적혀 있었다.사인회관의 초대장이다. 입문 자격을 갖췄다는 뜻이었다.“누가 보낸 거지?”그는 울프를 바라보았다.하지만 울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떤 젊은 사람이야. 그저 초대장만 건네주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가버렸어.”천도준은 엉겁결에 웃음을 터뜨렸다.이 초대장은 진짜 초대장이 맞았다. 사인회관의 명성이 워낙 강하다보니 아무도 감히 이 초대장을 위조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초대장에는 주인의 이름이 빠져있었다.‘혹시 박씨 어르신인가?’천도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박씨 어르신의 신분으로 이 초대장을 보낸다면 자신의 이름을 빼먹지 않을 것이다.“축하연은 오늘 너희끼리 해야겠어. 나는 약속 장소로 가봐야 해.”그는 초대장을 흔들며 마영석에게 말을 걸었다.만약 정말 박씨 어르신이 보낸 초대장이라면 상대방의 체면을 구길 수 없었다.간단한 초대장 한 장이라고는 하지만, 주건희, 주준용같은 사람들에게는 아주 귀한 물건이었다.지금 상대방이 직접 그의 손에 가져다줬는데 그가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면 그건 멍청한 거나 다름이 없었다.깊은 어둠이 내려앉았다. 사인회관은 여전히 독특한 신비로움과 장엄함을 자랑했다.작은 뜰.환한 등불이 비추고, 즐거운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초대장이 없으면 함부로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다.진정한 사인회관의 단골손님만이, 전체 사인회관에서 이 대나무 숲의 작은 뜰에 출입할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