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를 든 천도준은 익숙한 환경에 놀라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정처없이 걷다 보니 전에 오남미와 같이 월세를 살았던 아파트 단지 입구에 와 있었다.어쩌다가 여기까지 온 거지?그는 자조적인 미소를 머금었다.그러고 보니 회식 장소가 여기와 꽤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과거에 저녁을 먹고 오남미와 함께 강변을 걸었던 기억도 새록새록 떠올랐다.술 취한 상태에서 본능적으로 걷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다신 돌아갈 수 없겠네.”천도준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돌아서던 순간, 누군가의 목소리가 그를 불러세웠다.“천도준 씨!”반가운 목소리와 함께 한 여자가 그에게 다가왔다.“정말 여기 살아요?”여자의 얼굴을 확인한 천도준의 얼굴이 차갑게 식었다.그녀는 오남미 남동생의 여자친구, 임설아였다.지난번에 그런 일을 겪고도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나?임설아는 굉장히 반가운 얼굴을 하고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하얀색 짧은 원피스에 가슴을 훤히 드러내고 밤바람을 맞으며 오들오들 떨고 있는 그 모습이 어쩜 이리도 꼴사나울까!“무슨 일이지?”천도준이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임설아는 오들오들 떨며 그의 가까이로 다가왔다. 가까이서 보니 여자의 가슴골이 더 선명하게 보였다.“거기까지!”천도준이 싸늘하게 말했다.“왜 그래요?”임설아가 화들짝 놀라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개수작 그만둬.”그녀에게서 시선을 돌린 천도준이 차갑게 말했다.임설아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순진무구한 표정을 하고 그에게 되물었다.“제가 뭘 어쨌다고요?”천도준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마사지하며 담담히 말했다.“다 보이니까 가릴 데 좀 가리라고.”임설아의 뺨이 탐스럽게 붉어지더니 간드러진 목소리로 말했다.“나빴어요.”허리를 배배 꼬고 가는 눈을 뜬 그 모습은 무언의 초대였다.천도준은 짜증이 치밀어 뒤돌아섰다.앞으로 성큼 다가선 임설아가 그의 손목을 잡고 매력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도준 씨에게 보여주고 싶었다고요.”“난 관심없어.”
이날, 임설아는 짜증이 나서 밤잠을 설쳤다.그렇게 노골적으로 다가갔는데도 천도준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남자의 심리에 대해 누구보다 잘 파악한다고 자부하던 그녀의 자존심이 철저히 무너졌다.알게 모르게 그에게 호감을 표시했고 자존심 굽혀서 사과까지 했다.그래서 한 번만 더 찾아가서 약한 모습을 보이면 남자가 당연히 넘어올 줄 알았다.물론 그와 연인이 되기는 힘들겠지만 이런 사람은 알아두면 나중에 콩고물이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기대도 있었다.그런데 천도준의 싸늘한 반응은 그녀의 상상 밖이었다.그녀는 미쳐버릴 것 같은 심정이었다.다음 날 아침, 오남준이 모닝콜을 걸어왔지만 전처럼 살갑게 대해줄 수 없었다.그녀는 천도준에게서 당한 짜증과 분노를 전부 오남준에게 쏟아냈다.“오남준, 아침부터 짜증나게 왜 전화질이야?”“설아야, 전부터 내가 모닝콜을 해주기로 했었잖아.”오남준이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모닝콜은 무슨! 밤새 못 자서 짜증 나 죽겠는데!”임설아는 짜증스럽게 머리를 헤집었다.“뭐? 밤새 못 잤어? 내가 지금 바로 갈게. 그렇게 힘들면 오늘은 출근하지 말고 집에서 쉬어.”오남준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출근 얘기가 나오자 임설아의 분노가 다시 폭발했다. 오남준의 이런 무의미한 관심은 그녀에게 부담일 뿐이었다.“출근 안 하면? 오남준 네가 나 먹여 살릴 거야? 그럴 시간 있으면 결혼자금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이나 좀 해봐. 대체 약혼은 언제하고 결혼은 언제 하니? 하기 싫으면 당장 그만둬!”오남준이 다급히 말했다.“설아야, 걱정하지 마. 집에서 이미 방법을 생각하고 있어. 약혼식 날에 네가 요구한 결혼자금 마련해 볼게.”“뭘 그렇게 어렵게 생각해? 매형이 그렇게 부자인데 그냥 달라고 하면 되잖아!”탁!그 말을 끝으로 임설아는 대답도 듣지 않고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천도준을 꼬시는 건 이미 실패로 돌아갔고 오남준에게서 돈까지 받아내지 못하면 그와 공들인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임설아가 사는 집 아래에서 통화 중이던 오
놀란 오남미가 비명을 질렀다. 발버둥치던 그녀는 오남준에 관한 일이라니까 잔뜩 긴장한 얼굴로 엄마에게 물었다.“남준이가 또 왜?”“결혼자금! 남준이 약혼식 날짜도 다가오는데 결혼자금 준비 못하면 설아가 남준이랑 헤어진다잖아! 남준이 지금 죽겠다고 난리라고!”장수지는 조급한 마음에 딸의 귀뺨까지 때리며 소리쳤다.“내가 대체 널 왜 낳았을까? 누나가 돼서 동생 결혼하는데도 손 놓고 도움도 안 주고! 너 엄마랑 남준이 죽는 꼴 보고 싶어서 이래?”오남미는 얼얼한 볼을 감싸며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엄마를 바라봤다.그녀는 눈물을 글썽이며 울분을 쏟아냈다.“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잖아. 내가 여기서 뭘 더 하기를 바라는데?”짝!장수지가 또 손을 들어 그녀의 귀뺨을 쳤다.“네가 뭘 한 게 있다고 큰소리야! 천도준 그 인간 돈이 많다며? 그 인간한테 가서 돈 좀 빌려오면 될 것을 이혼은 왜 했어? 너 남준이 엿 먹이려고 일부러 이혼한 거 아니야?”오남미는 충격 받은 얼굴로 엄마를 바라봤다.그녀가 알고 있던 세상이 무너지고 있었다.입술이 파르르 떨리고 눈에서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렀다.“그 사람 정말 돈이 없어. 결혼한 뒤로 카드도 다 나한테 맡겼는데 돈이 있으면 내가 먼저 알았겠지. 마지막 남은 돈까지 끌어다가 줬잖아. 정말 돈이 있었으면 내가 모른 척했겠어?”“남준이가 그 인간 돈이 많다고 했어. 그럼 남준이가 거짓말이라도 했다는 거야?”이성을 잃은 장수지는 바닥에 주저앉아 통곡하며 고함을 질렀다.“아이고 내 팔자야! 곱게 기른 딸은 이혼녀가 돼버리고 아들 혼삿길도 막혀 버렸으니 난 이제 뭘 보고 살아?”“그래! 나도 죽을 거야! 남준이 죽으면 나도 살 이유가 없어!”그 말을 끝으로 장수지는 방을 뛰쳐나갔다.겁에 질린 오남미는 다급히 달려가서 장수지의 팔목을 잡았다.“엄마, 이러지 마. 제발!”소리를 들은 오덕화가 밖으로 나와 아내를 부둥켜안았다.“남준이도 이제 성인이야. 당신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건데?”“귀한 아들이 결
그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 어머니는 아직도 응급실에서 수술을 진행 중이었다.지금 가장 시급한 건 어머니의 안위였다.어머니가 무사히 깨어나시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만약 무슨 문제라도 생긴다면 천도준 자신조차도 무슨 일을 저지를지 상상할 수 없었다.그는 음침한 얼굴로 응급실 밖을 지켰다.이가 갈리고 손발이 떨렸다.그는 곧장 오남미에게 문자를 보냈다.[지난번에도 우리 엄마한테 한 짓, 벌써 잊었어? 대체 언제까지 우리를 못살게 굴 거야? 제발 우리 엄마 더 이상 건드리지 마!]5분 뒤, 오남미에게서 답장이 왔다.문자를 확인한 그의 두 눈이 분노로 이글이글 타올랐다.[천도준, 이 사기꾼! 나쁜 자식아! 내가 가져간 4천만 원이 어머니 마지막 치료비라며? 그런데 어머니 멀쩡히 살아 계시잖아? 벌써 회복기에 들어갔다던데? 돈이 없었으면 치료를 어떻게 했니? 남준이 좀 도와달라니까 모른 척한 건 당신이었어. 그래서 어머니 찾아가서 좀 도와달라고 부탁한 게 그렇게 잘못이야?]쾅!천도준은 분을 참지 못하고 주먹을 벽에 꽂았다.“오남미, 그리고 당신 가족들… 이건 당신들이 자초한 거야!”응급실 문이 열렸다.천도준은 다급히 의사부터 찾았다.“선생님, 저희 엄마는 어떻게 됐나요?”장 박사가 마스크를 벗으며 피곤한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걱정 마세요. 다행히 응급조치가 빨리 이루어져서 지금은 고비를 넘겼어요.”“정말 감사합니다!”천도준은 그제야 가슴을 꽉 짓누르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기분이 들면서 다리에 힘이 풀려 비틀거렸다.놀란 장 박사가 얼른 다가와서 천도준을 부축했다.이수용이 직접 부탁한 귀한 사람인데 절대 문제가 생기게 할 수 없었다.장 박사가 정색한 얼굴로 당부하듯 말했다.“하지만 주치의로서 이 말씀은 드려야겠습니다. 전처와 이미 이혼했다고 들었어요. 어머님이 충격 받으실까 봐 사실을 얘기하지 않은 건 이해해요. 이번에는 전처분의 행동이 너무 과했다고 생각해요.”“다행히 응급조치가 빨리 이루어져서 고비를 넘겼지만 그분이 또 오
어쩌면 이혼마저도 그의 설계의 일부분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자 배신감에 서럽고 분노가 치밀었다.그래서 이난희 앞에서 울고 불고 난리를 피웠다.이혼했으면 위자료라도 챙겨줘야 한다는 게 그녀의 주장이었다.조금 치사한 감이 있지만 그 돈으로 가족들의 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못할 것도 없었다.일시적은 충동으로 천도준을 놓치고 동생의 결혼까지 도울 수 없게 된다면 평생 죄책감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 것 같았다.그런데 멀쩡하던 이난희가 갑자기 경련을 일으키며 쓰러진 건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잠시 후, 의료진이 달려와서 이난희를 응급실로 끌고 갔다.당황한 오남미는 돈이고 나발이고 재빨리 그 자리에서 도망쳤다.“나랑은 상관없는 일이야. 내가 잘못한 건 없어. 천도준, 이건 당신이 날 속여서 생긴 일이야!”오남미는 초점을 잃은 눈으로 거리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천도준, 이 나쁜 자식아! 왜 나한테 거짓말했어? 나 부모님 반대에도 끝까지 당신 포기하지 않고 결혼까지 했어. 그리고 당신 따라서 내가 고생한 게 얼마인데 가족들 좀 도와줄 수도 있잖아? 내가 내 동생 결혼자금에 좀 보태겠다는데 그게 그렇게 큰 잘못이야?”“고작 그것 때문에 나를 세상 나쁜 년으로 만들고 이혼하니까 좋아? 우리가 함께한 세월이 얼마인데! 난 진심으로 당신을 사랑했는데 당신이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울분을 토해낼수록 그녀의 울음소리는 커져만 갔다.그녀는 자신이 가장 큰 피해자라고 생각했다.그렇게 그녀는 길바닥에 주저앉아 통곡했다.자존심이 강한 그녀였지만 주변사람들의 이상한 시선을 신경 쓸 여유조차 없었다.이때, 장수지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돈은? 받아냈어?”“아니… 못 받았어.”오남미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천도준과의 결혼은 그녀의 선택이었고 이혼 역시 그녀가 동의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만약 자신이 천도준의 간계에 속아 이혼했다는 걸 알면 엄마가 또 어떻게 나올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안 그래도 동생 결혼 때문에 힘든데 자신
오전 내내 고객의 민원 전화가 끊이지 않았지만 팀장이 두둔해 줘서 다행히 그럭저럭 넘어갔다.이때, 핸드폰 문자 알림음이 울렸다.임설아는 심드렁하게 문자를 확인하다가 놀라서 눈을 휘둥그레 뜨며 비명을 질렀다.계좌에 10억이 입금되었다는 문자였다.한꺼번에 불어난 계좌 잔액에 그녀는 머리가 어지러워서 사람들의 이상한 시선을 신경 쓸 여유조차 없이 곧바로 은행으로 달려갔다.확인 결과, 실제로 벌어진 일임을 재확인한 그녀는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그리고 이때, 핸드폰에 문자 알림음이 다시 떴다.확인해 보니 천도준이 보낸 문자였다.[10억 입금했어. 오남준이랑 결혼하는 대신, 내 부탁 좀 들어줘.]임설아의 볼이 빨갛게 상기되고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이미 불어난 계좌 잔액에 이성은 안드로메다로 날아 간지 오래였다.천도준이 준 금액은 오남준이 약속한 숫자보다 훨씬 많았다.그녀는 재빨리 문자에 답장했다.[평생 도준 씨를 위해 목숨이라도 바칠게요.]다시 회사로 돌아온 그녀는 고객 의뢰를 신속히 처리하고는 손으로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천도준이 갑자기 거액을 입금하고 부탁할 것이 있다고 했는데 이건 일종의 암시가 아닐까?그 추측을 확인하기 위해 임설아는 다시 천도준에게 문자를 보냈다.[도준 씨, 오늘 우리 집으로 올래요? 내일 저 약혼식 해요.]곧 그에게서 답장이 왔다.[그러지!]답장을 확인한 임설아의 볼이 토마토처럼 탐스럽게 물들었다.역시 내 생각이 맞았어!오남준과 10억, 비교할 가치도 없는데 하물며 상대는 천도준이었다.그녀는 오늘 밤에는 무조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그날 저녁 여덟 시.천도준이 임설아가 보낸 주소로 찾아갔을 때, 식탁에는 잘 구워진 스테이크와 촛불, 그리고 와인잔까지 세팅되어 있었다. 그리고 공기 중에 진한 향수 냄새가 풍겼다.천도준은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그가 임설아의 초대에 응한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내일 약혼식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였다.그런데 지금 펼쳐진 상황은 그의 마음을 불
정성 들여 준비한 촛불 만찬과 예쁘게 꾸민 여자.모든 것이 자연스러웠고 분위기도 좋았다.반쯤 취한 임설아는 그대로 천도준의 품을 파고들었다. 술기운 때문에 그녀의 입가에서 뜨거운 열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거리가 가까워지면서 천도준의 몸에도 반응이 찾아왔다.촛불에 비친 임설아의 몸매는 유난히 탐스럽고 매혹적이었다.그는 저도 모르게 눈을 감고 입꼬리를 비스듬히 올렸다.그녀가 지척으로 다가왔을 때 갑자기 그가 입을 열었다.“우린 사이는 단순한 거래일 뿐이야.”임설아의 어깨가 움찔 떨리더니 속눈썹이 파르르 진동했다. 그녀가 억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래요. 거래 맞아요.”천도준의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졌다.“그러니까 난 돈을 제공하고 넌 내가 시키는 일을 하면 되는 거야. 아주 간단하지?”말을 마친 그는 손을 뻗어 임설아를 밀어내고 자신의 계획을 말해준 뒤, 싸늘하게 자리를 떴다.너무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에 임설아는 아무런 응대도 할 수 없었다.저 남자가 지금 무슨 말을 지껄이고 간 거지?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간다고?사실 천도준이 임설아를 끌어들인 건 단지 어머니의 복수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임설아는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을 뿐이다.천도준은 절대 임설아 같은 여자를 눈에 담을 이유가 없었다.쾅!그녀는 홧김에 식탁을 엎어버리고 바닥에 주저앉아 머리를 쥐어뜯었다.오늘 밤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준비했는데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간 기분이었다.그 상실감에 그녀는 잠에 들 수 없었다.초인종 소리가 들려왔다.임설아가 짜증스럽게 현관에 대고 소리쳤다.“누구야?”“설아 씨, 나 남준이 누나야. 할 말이 있어서 왔어.”문밖에서 오남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임설아는 짜증이 극도로 치달았다.하지만 이내 옷을 갈아입고 지저분한 식탁을 정리한 뒤에 전등을 켜고 문을 열었다.오남미의 부탁을 들은 임설아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안 그래도 천도준이 시킨 일을 어디서부터 진행해야 할지 머리가 아팠는데 오남준 가족이 먼저 찾아와서 기회
장수지는 정색해서 오남준에게 주의를 주면서도 입가에 웃음이 떠나지를 않았다.“며느리가 잘 들어왔으니 나중에 친구들한테 나가서 자랑해도 되겠어.”말을 마친 그녀는 오남미를 흘겨보며 잔소리를 늘어놓았다.“그러니까 너도 그때 엄마 말 듣고 천도준이랑 결혼하지 않았으면 좋았잖아. 어련히 엄마가 좋은 혼처 자리를 소개해 주지 않을까. 결국 이혼녀 딱지나 달고, 이게 다 뭐야?”오남미는 어색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내일이 곧 오남준의 약혼식이었기에 이 시점에서 알고 있는 사실을 부모님에게 얘기할 수는 없었다.“당신도 참! 곧 애들 약혼식인데 재수 없게 그게 무슨 말이야? 오늘은 좋은 얘기만 하자고!”가장인 오덕화가 눈을 부릅뜨며 아내를 나무랐다.“친척이랑 지인들에게 청첩장은 다 돌렸지? 이따가 전화해 봐야겠어.”“참, 호텔에 확인해 본다는 걸 깜빡했네요. 무조건 성대하게 치러줘야죠. 설아가 이렇게나 양보를 해줬는데.”장수지도 잔뜩 흥분한 얼굴로 핸드폰을 들고 방으로 갔다.그날 밤, 그들 가족은 더 이상 다투지 않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밤을 보냈다.그 시각, 천도준은 병원에서 어머니의 옆을 지키고 있었다.잠든 어머니의 얼굴은 어느 정도 생기가 돌아왔지만 여전히 창백했다.그는 안쓰럽고 가슴이 아팠다.천도준은 착잡한 얼굴로 창가를 내다보며 중얼거렸다.“지금쯤 온 가족이 모여 앉아 축하하고 있겠지? 우리 엄마한테 한 짓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말이야!”그는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다시 고개를 숙였다.그 사람들이 양심이라는 게 있었다면 절대 오남미를 종용해서 어머니의 치료비까지 싹 긁어가지는 않았을 것이다.그러고도 뻔뻔하게 찾아와서 병든 어머니를 자극한 여자였다.“오늘을 잘 즐겨둬. 내일 뼈저리게 후회하게 될 테니까!”냉소를 짓는 천도준의 두 눈이 섬뜩하게 빛났다.“이건 당신들이 받아야 할 대가야.”다음 날.아침 일찍 천도준은 장 박사를 찾았다. 어머니의 병세가 안정되었다는 것을 확인한 뒤, 그는 약혼식이 있을 예정인 리빙턴 호텔로
이은화는 분노했다. “그럼 우리 청하가 중간에 껴서 난처해하는 모습을 눈 뜨고 보고만 있겠단 말이에요? 아빠라는 사람이, 어떻게 이 중요한 순간에 딸을 전혀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어요?”“알았어.”고덕화는 한숨을 푹 쉬었다. 어쨌든 동의한 셈이다. “그저 여기에서 며칠 더 묵었을 뿐이야. 천씨 가문쪽과의 협의를 또 지체해야 하는 건 아닌지 걱정 돼.”고덕화는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천씨 가문의 여세를 몰아 당신이 한 단계 더 높은 성과를 올리려고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어요. 저도 그 생각에 동의하고요. 게다가 당신을 응원해요.”이은화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여보, 우리에겐 자식이라고는 청하 한 사람 밖에 없어요. 당신이 이미 이룬 성공은 다른 사람들이 간절히 원하고, 또 원하는 것이예요. 돈은 필요한 만큼만 있으면 돼요. 청하의 행복이야말로 지금 우리의 가장 큰 목표예요.”“하지만…”고덕화는 여전히 변명하고 싶었다.“저는 저희의 잘못된 생각으로 청하가 좋은 인연을 놓치지는 걸 원하지 않아요. 천씨 가문을 떠나서, 천도준은 이미 훌륭한 성과를 거두었다고요. 만약 청하가 우리 때문에 헤어지면 아버지라는 사람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겠어요?”이은화의 목소리가 점점 더 높아졌다.“당신 설마 우리 청하가 석유 재벌이나 실리콘 밸리의 거물들의 자식들을 마음에 들어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고덕화는 잠시 멈칫하다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더니 바로 명쾌하게 말했다.“그럼 이렇게 하지. 모레 여전히 이곳에서 파티를 열어 천도준에게 사과를 하는 거야. 진정한 의미에서의 상견례를 갖는 거지.”“좋아요. 이래야 좋은 아버지죠.”이은화는 부드럽게 웃었다. ……고덕화와 정강수가 회관 주차장으로 달려갔을 때, 천도준은 이미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저 멀리에서 롤스로이스 한 대가 회관 밖으로 나가는 것이 보였다. 고덕화는 미간을 찌푸렸다. 정강수가 다급히 경호원에게 물어보니, 경호원은 천도준이 착잡한 표정으로 차량에 올라탔
그 말에 정강수는 몸을 움찔거렸다. 그의 표정은 어딘가 복잡해보였다.정강수는 국화의 대가였다. 그는 도도하고 자신의 존엄을 중요시 여기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외국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사람이었다. 때문에 그에게서 사과라는 단어를 좀처럼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하물며 자신보다 나이가 한참 어린 사람한테 사과하라니?그저 멍하니 서 있는 정강수를 보고, 유 원장은 화가 났다.“너, 나랑 박씨 어르신을 믿어, 못 믿어?”박씨 어르신도 한숨을 쉬었다.“가, 어서 사과 해. 체면이 깎이는 것도 아닌데 뭐.”천씨 가문 가주의 친아들, 그것도 천씨 가문 가주가 아들을 위해 이미연에게 협박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 천도준이 정강수의 사과를 받지 못해서야 되겠는가? 순간, 정강수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졌다.유 원장이 혼자 이러는 거면 무시해도 되겠지만, 박씨 어르신까지 이러니 그들의 말을 듣지 않을 수가 없었다.그가 아무리 어리석다고 해도 일이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다.정강수는 한숨을 쉰 후, 천천히 밖으로 걸어갔다.“엄마, 아빠. 제가 도준이를 잡으러 갈게요.”고청하는 감격에 겨워 밖으로 뛰쳐나갔다.오해가 풀렸다. 이건 그녀에게 있어서 정말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여자로서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부모님의 마음에 드는 것을 싫어할 사람이 어디있겠는가?정강수의 발걸음도 덩달아 빨라졌다.안채 안은 여전히 조용했다. 고덕화와 이은화는 아직도 무슨 상황인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오늘 밤, 모든 일이 너무 순식간에 지나갔다.기쁨에서 분노로, 다시 공포로 변했다. 두 사람은 그저 오랜 친구들을 불러 딸이 사랑하는 남자가 믿을만한 남자인지 보려고 했는데, 이렇게 큰 오해가 생길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조금 전 천도준에게 했던 말과 행동을 생각하면, 두 사람은 얼굴이 뜨거워졌다.고덕화는 박씨 어르신과 유 원장을 흘겨보았다.“오래 알고 지낸 친구인데, 어떻게 두 사람은 아직도 나를 속일 수가 있지
정강수는 눈을 부릅뜨고 분노했다.그들은 모두 오래된 절친한 친구고, 각자 분야에서 뛰어난 전문가들이어서 만약 진짜로 싸운다면 누구 하나 쉽게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유 원장은 얼굴을 붉히며 욕설을 퍼부었다.“넌 정말 양심도 없는 놈이야. 내가 너랑 싸우는 것을 두려워할 것 같아? 너한테 맞으면 난 내가 직접 치료하면 되는데, 넌 누가 치료해 줄 수 있을 것 같아? 난 절대 치료 못 시켜줘.”“너……”정강수는 얼굴을 붉혔다. 고덕화는 아직도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해했다.같은 편들끼리 왜 갑자기 싸움을 벌이는 거지? 그때, 박씨 어르신이 한 발짝 앞으로 나와 유 원장과 똑같이 어이가 없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정강수를 바라보았다.“강수야. 이번 일은 네가 경솔했어. 유 원장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어.”“너 까지 왜……”정강수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하지만 이내 뭔가를 깨달은 것 같았다.세 사람 중, 박씨 어르신이 제일 진중하고 침착한 편이었다. 아니었으면 높은 지위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두 사람 대체 왜 그래? 무슨 일이야?”고덕화가 다급히 물었다.이은화와 고덕화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박씨 어르신과 유 원장을 번갈아 쳐다보았다.유 원장은 성격이 급한 나머지 발을 동동 구르며 를 가리키며 정강수에게 소리를 질렀다.“다시 한번 저 그림을 자세히 봐봐. 그래도 천도준이 선물한 그림이 가짜라고 한다면 오늘 너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그 말에 정강수는 마치 날벼락을 맞은 듯 정신이 멍해졌다.박씨 어르신과 유 원장은 천도준을 대신해 억울함을 호소했다.‘내가 진짜 잘 못 본 걸까?’정강수는 다시 를 들고 신중하게 테이블 위에 펼쳐놓았다. 그러더니 주머니에서 돋보기를 꺼내 자세히 살펴보았다.아까와 비교하면, 정강수는 확실히 침착했다. 안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어찌나 조용한지 바늘이 떨어지는 소리조차 들릴 것 같았다. 고덕화 일행은 막막했다. 하지만 박씨 어르신과 유 원장은 부끄럽기도 하고, 어딘
그의 한 마디에 방은 순식간에 시간이 멈춘 듯 조용해졌다. 박씨 어르신과 유 원장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어느새 두 사람의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하지만 정강수는 오히려 거만한 표정으로 천도준을 아니꼽게 바라보고 있었다.순간, 고청하는 눈앞이 컴컴해지는 것 같았다. 그녀의 갸냘픈 몸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떨려왔다.부모님은 불같이 화를 낸다. 처음 부모님을 소개시켜드리는 자리는 이렇게 완전히 망해버렸다.그럼 앞으로 두 사람의 사이는 어떻게 되는 걸까?고청하는 힘겹게 천천히 입을 열었다.“도준아……”그녀가 막 말을 내뱉은 순간, 천도준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미소는 봄바람처럼 따뜻했다.당백호의 는 이수용이 그에게 준 것이다. 그는 이수용이 고작 그림 한 점으로 수작을 부렸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박씨 어르신에게 주는 선물이라 해도 절대 가짜일 리가 없었다.그의 기분을 상하게 한 건 바로 정강수의 독단적인 태도였다. 그는 그림을 단 한 번만 보고 가짜라고 판단했다. 그건 아무리 전문가여도 너무 독단적이었다.그의 이런 독단적인 행동 때문에 기쁨과 환희가 차 넘쳐야 할 자리는 순식간에 발칵 뒤집히고 말았다.고청하의 목소리를 듣고, 천도준은 웃으며 말했다.“청하야, 난 괜찮아. 난 이만 나가볼게.”이미 상황이 이렇게 되어버렸으니 그가 계속 여기에 있는다면 고청하만 중간에서 곤란해질 뿐이었다.고청하는 그가 가장 힘들었을 시기에 그의 곁으로 돌아왔다. 그는 어렵게 얻은 이 진실된 감정을 각별히 소중하게 여겼다.하지만 지금, 난처해하는 고청하를 보고 있자니 천도준은 마음이 아파왔다.말을 마친 천도준은 얼굴에 미소를 띄고 사람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도준아……”고청하는 그를 잡으려고 했다.하지만 고덕화가 그녀를 붙잡았다.“청하야. 아직도 모르겠어?”“아빠…… 아빠는 제가 무엇을 이해하기를 바라세요?”고청하는 눈물을 흘리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청하야, 천도준은 이 도시에서 젊은 인재라고
쿵.그의 한 마디에 방 안의 몇 몇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라 어리둥절해했다.모두가 돈이 부족하지는 않지만, 이런 소장품에 대해서는 모두 관심이 없었다. 때문에 서화 면에서는 정강수처럼 조예가 깊은 사람은 없었다.한 폭의 그림이 거의 50억에 달한다니…… 그게 사실이라면 이 선물은 아주 귀한 것이었다.그 말에 천도준도 깜짝 놀랐다. 이수용은 너무 손이 컸었다. 다른 사람에게 주는 선물로 50억을 쓰다니?잠시 후, 천도준은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아저씨, 저는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분들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50억 정도는 내놓을 수 있습니다.”“어린 나이에 말은 잘하네?”정강수는 미간을 찌푸렸다. 점잖은 그의 얼굴에 흉악한 분노가 일었다. 고청하는 눈을 반짝였다. 천도준의 몸값을 생각했을 때, 50억 정도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그녀가 막 뭐라고 해명하려고 할 때, 정강수는 갑자기 냉소를 지으며 천도준에게 말을 걸었다.“방금 잘 못 들었어? 내가 말한 건 3년 전 시가야.”“잘 들었습니다.”천도준은 평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49억 2천 8백만원. 구체적인 가격을 어떻게 알았냐고?”정강수는 차가운 말투로 말을 이어갔다.“당시 이 그림이 경매에 팔렸을 때, 내가 그 경매 현장에 있었지. 이 그림은 당시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떤 한 신비로운 구매자 손에 들어갔어. 게다가 이 그림은 3년 전에 사간 이후로 한 번도 세간에 나타난 적이 없었지. 나이가 많이 어린 것 같은데, 설마 당신이 그때 그 그림을 산 사람이라고 하진 않겠지?”그 말에 고청하는 몸을 움찔했다. 그녀의 두 눈은 순식간에 휘둥그레졌다.3년 전이면 천도준과 오남미가 결혼하던 해다.그때의 천도준이 어떻게 50억 짜리 그림을 살 수 있었을까?‘설마…… 진짜 가짜란 말이야?’순간, 고청하의 눈앞은 순식간에 캄캄해졌다. 그녀의 마음은 순식간에 텅 빈 듯 공허해졌다.고덕화의 표정도 점점 굳어졌다.그는 정강수의 말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는 국화의 대가이고, 이 방면에
그의 한 마디에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고덕화의 표정도 순식간에 굳어졌다. 고청하 어머니의 표정도 오싹하기 그지 없었다.박씨 어르신과 유 원장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아저씨, 도준이는 가짜 그림을 선물할 사람이 아니에요.”고청하는 다급히 해명했다.이건 천도준이 그녀의 부모님을 처음 만나는 자리다. 그녀의 가세로 보아, 고청하의 부모님은 천도준이 준 선물의 가치를 절대 따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선물이 가짜라면 그건 의미가 달라진다.이건 가식적이고 무례한 일이 아닌가?“그래, 맞아. 한 번 더 자세히 봐. 함부로 말하지 말고.”유 원장도 고청하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그는 천도준의 진짜 정체를 알고 있었다. 천도준 같은 사람이 어떻게 가짜를 구입할 수 있단 말인가? 반드시 정강수가 잘못 본게 틀림없었다.“그래, 아까 그저 얼핏 봤잖아. 네가 잘못본 게 틀림없을 거야.”박씨 어르신이 말했다.“뭐?”정강수는 박씨 어르신을 노려보았다.그는 국화의 대가이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이다. 그의 그림 한 점은 수백억원에 달하는 가치가 있었다.그는 수십 년 동안 서화에 빠져있었고 직접 본 서화는 부지기수였다.당백호의 는 정강수가 한 눈에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아볼 수 있었다.“당신……”박씨 어르신은 무의식적으로 천도준을 힐끔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정강수를 향해 말했다. “이 당나귀 같은 놈아. 오늘은 청하가 남자친구를 데리고 인사를 하러 온 날인데 왜 그렇게 화를 내는 거야?”천씨 가문 가주의 친아들이 어떻게 가짜 그림을 선물할 수 있겠는가? 무슨 말도 안 되는 농담을…… 만약 이번 일로 천도준이 대노한다면 천씨 가문의 명령하나 만으로 정강수는 그동안의 명성을 전부 내려놓아야 할지도 모른다.“왜 나를 탓하는 거야?”정강수는 매섭게 쏘아붙였다.“난 저 녀석이 여자친구 부모님에게 선물로 가짜 그림을 주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뿐이야. 보잘것 없는 선물이라도 정은 깊다는 말도 있는데 값비싼 선물을 주지 못해
“걱정하지 마. 이따가 확실하게 단련시켜 줄 테니까.”박씨 어르신은 워낙 권위가 높은 사람인지라 인자하게 웃으며 말했다.옆에 있던 유 원장과 정강수도 고개를 끄덕였다.“걱정마시게나. 우린 오랜 벗이잖아. 우리를 초대했으니까 우리도 자네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걸세.”“도대체 어느 잘난 놈이 청하 마음을 사로잡은 건지 똑똑히 봐둬야겠어.”고덕화는 활짝 웃었다. 그러면서 함께 주먹을 맞잡았다.바로 그때, 고청하는 잔뜩 민망해하는 천도준의 팔짱을 끼고 안으로 들어왔다.천도준을 보자마자 박씨 어르신과 유 원장은 동시에 아연실색했다. 그들은 깜짝 놀라 순식간에 동공이 움츠러들었다. ‘저…… 저 사람이 고덕화의 예비 사위라고? 세상에.’박씨 어르신과 유 원장도 권세도 높고 지위도 높은 사람들이었지만, 천도준을 보자마자 그들의 마음속에서는 거센 파도가 일었다.이렇게 큰 인물을 감히 누가 누구를 테스트하고, 누가 누구를 단련시킨단 말인가?박씨 어르신은 천도준의 신분을 알고 있었다.이율 병원 원장인 유 원장은 천도준의 어머니가 그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때, 그는 천도준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지만 장 의사를 통해 천도준에 관한 일을 들은 적이 있었다.“저 사람이 바로 네가 말한, 우리더러 잘 테스트해봐라던 그 사람이야?”유 원장이 말했다.옆에 있던 박씨 어르신은 의아한 표정으로 유 원장을 쳐다보았다. 그는 유 원장이 천도준의 신분을 알고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깨달았다.사실, 천도준은 방에 들어온 후에도 여전히 어리둥절했다. 오늘 밤 고청하의 부모님을 만난 다는 사실도 미처 몰랐었는데 뜻밖에도 이렇게 많은 거물급 인물들이 함께 있을 줄이야.박씨 어르신뿐만 아니라 유 원장도 있었다.그의 어머니가 이율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 어머니를 돌봐느라 병원에 자주 들르곤 했다. 그럴 때에 유 원장의 사진을 본 적이 있었다.오직 그 점잖은 얼굴을 한 사람과만 초면이었다. 하지만 그는 박씨 어르신, 유 원장과 함께 자리하고 있는 걸 보면 그 또한 만만한 인
죽림 정원.웃음 소리가 본연의 고즈넉함을 깨뜨렸다. 고청하는 의자에 앉아 자신의 아버지와 그의 몇 몇 오랜 벗이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안절부절못하며 지켜봤다.한 쪽의 대원들 외에, 국화의 대가, 의학의 권위자 등등이 한자리에 모여있었다. 이 사람들은 국내에서 명성이 자자할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위상이 높았다. 이 사람들은 모두 고청하 아버지의 절친한 친구들이었다. 이따가 천도준이 오면, 어떤 광경이 펼쳐질까? “자네, 오랫동안 보지 못했는데, 못 본 새에 이율 병원 원장으로 국제적으로 유명하더군.”중년 남자는 활짝 웃으며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 남자를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외국의 의학 잡지에 자네가 자주 등장하더군.”“하하하. 그만 칭찬하게나. 이게 다 검은 머리가 희도록 밤 새서 노력한 결과물이니……”유 원장이 웃으며 말했다.“국제적으로 명성이 높은 걸로 따지면 정강수가 제일 자격이 있지.”그 말에 점잖은 외모에 안경을 쓴 또 다른 중년 남자가 말을 이어갔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니야. 국제적으로 유명하다니? 정말 국제적으로 명성을 떨친 건 내가 아니라 고씨 지. 석유 재벌과 실리콘밸리의 가물들과 어울려 놀잖아.”“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내가 이번에 너희를 부른 건, 중요한 일이 있어서야.”“바로 사윗감을 테스트 하는 거지.”박씨 어르신이 진지하게 말했다.이 말에 유 원장과 정강수는 동시에 흥미를 느꼈다. 그들은 앞다투어 고덕화의 예비 사위가 누구인지 물었다.고덕화는 말없이 웃으며 나중에 소개하겠다고 말했다.“생각지도 못했어. 덕화가 이 도시에서 가문을 일으켰는데 사위도 이 도시에서 찾고, 어느 집 재주가 뛰어난 놈이 우리 조카딸을 그렇게 오매불망 기다리게 한 거야?”유 원장은 참지 못하고 한 마디했다.“기다려보면 알아.”고덕화는 살짝 웃었다. 그러면서 고청하에게로 시선을 옮겼다.“마침 사람들도 다 모였으니 이 녀석들이 나를 도와 그 녀석이 진짜 합격된 놈인지 아닌지 테스트할거야.”고청하는 두 손을 맞잡
세 개의 분양 아파트 실시간 데이터는 꾸준히 잘 유지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일주일 정도면 이번에 나온 매물들을 다 팔 수 있을 것 같았다.이건 그에게 있어서 가장 좋은 결과였다.그는 큰 주목을 받지 않는 선에서 가장 빠른 이익화를 실현하려고 했다.오후 5시, 천도준은 마영석에게 오늘 밤 축하연을 마련하라고 했다.하지만 그의 테이블로 배달된 초대장 하나가 그의 계획을 완전히 허사로 만들었다.초대장에 적힌 글자를 보고, 천도준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그는 기뻐하면서 조금 놀란 것 같았다.초대장에는 사인회관이라는 장소가 적혀 있었다.사인회관의 초대장이다. 입문 자격을 갖췄다는 뜻이었다.“누가 보낸 거지?”그는 울프를 바라보았다.하지만 울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떤 젊은 사람이야. 그저 초대장만 건네주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가버렸어.”천도준은 엉겁결에 웃음을 터뜨렸다.이 초대장은 진짜 초대장이 맞았다. 사인회관의 명성이 워낙 강하다보니 아무도 감히 이 초대장을 위조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초대장에는 주인의 이름이 빠져있었다.‘혹시 박씨 어르신인가?’천도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박씨 어르신의 신분으로 이 초대장을 보낸다면 자신의 이름을 빼먹지 않을 것이다.“축하연은 오늘 너희끼리 해야겠어. 나는 약속 장소로 가봐야 해.”그는 초대장을 흔들며 마영석에게 말을 걸었다.만약 정말 박씨 어르신이 보낸 초대장이라면 상대방의 체면을 구길 수 없었다.간단한 초대장 한 장이라고는 하지만, 주건희, 주준용같은 사람들에게는 아주 귀한 물건이었다.지금 상대방이 직접 그의 손에 가져다줬는데 그가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면 그건 멍청한 거나 다름이 없었다.깊은 어둠이 내려앉았다. 사인회관은 여전히 독특한 신비로움과 장엄함을 자랑했다.작은 뜰.환한 등불이 비추고, 즐거운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초대장이 없으면 함부로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다.진정한 사인회관의 단골손님만이, 전체 사인회관에서 이 대나무 숲의 작은 뜰에 출입할 수